오후가 되자 좌자전도 병실로 왔다. 들어서자마자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집도의가 코빼기도 안 비치다니. 이런 의사가 어디 있습니까?”
좌자전이 어이없는 듯 웃으며 마중나온 박 원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 원장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련님’이라고 입모양을 했다.
좌자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못 들은 척 들어가 바로 대답했다.
“능 선생은 두 회장님 검사 결과를 이미 확인했습니다. 지금 팀에서 분석 중이고요. 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능 치료팀 좌자전입니다. 두 회장님 담당 의사지요. 병원에서는 저를 찾으면 됩니다.”
“아니, 능연이라는 의사 젊다고 안 했어요? 왜 갑자기 늙은 의사가 왔지?”
말버릇이 가차 없던 작은아들은 좌자전의 나이를 보고는 말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예. 알겠습니다. 좌 선생님, 제 상황은 어떤가요?”
“원래 능 선생이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응급 수술이 생겼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 두가동의 말에 좌자전이 그렇게 다독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회장님 각종 보고는 다 살펴봤답니다. 능 선생은 최대한 빨리 수술하길 건의 드린답니다. 나중에 진료하러 올 테니 구체적인 건 그때 다시 자세히 말씀 나누시죠.”
두가동의 표정이 살짝 변했고, 노매옹을 힐끔 보더니 느릿느릿 물었다.
“능 선생은 수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까?”
“예.”
필름 판독할 줄 모르는 좌자전은 그저 능연의 대답을 반복했다.
두가동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올해 65세로 겉으로는 아직 건강해 보여도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위암 간 전이 후, 많은 의사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수술에 대해 다들 이렇다저렇다 결론을 내지 못했고 대부분 상황을 설명하면서 선택을 두가동에게 넘겼다.
이렇게 단호하게 수술해도 된다고 대답한 의사는 지금까지 둘뿐이었다.
“좌 선생님한테 차 한 잔 대접해.”
두가 작은아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며 한마디 던졌고, 눈치를 살피며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능연은 확실히 응급 수술 중이었다.
전신마취된 환자는 복강이 열린 상태로 비장 주변에 대량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비장과 복강 점착 때문에 안은 정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환자는 2년 전에는 틀림없이 바로 일반외과를 불러 넘겨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집도의인 주 선생은 잠시 고민하다가 능연을 불러와서 바로 물었다.
“능연, 비장이랑 복막염 수술할 줄 알지? 맞지? 췌장은? 할 줄 알아?”
“췌장은 못 합니다. 복막염도 그렇게 많이 한 건 아니고요.”
능연은 매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비장 절제 스킬이 있어서 비장은 놀이처럼 처리할 수 있었고 복막염도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췌장 난도는 높았고, 지금까지 접해본 적도 없었다.
주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손을 씻으며 말을 이었다.
“복부 골반강 CT는 찍었고, 비장 주위 적혈을 동반한 비장 파열일 거라고 초기 진단 내렸어. 그리고 복막염, 췌장 가성(假性) 종낭도 의심 가고. 이따 개복 검사하면서 비장, 췌장 처리해줘. 문제 생기면 그때 GS 부르고, 별일 아니면 안 그래도 되고.”
능연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그저 조금 복잡한 응급 수술이지만 장악하고 있는 범위 내의 수술이었다.
주 선생 역시 한숨 돌렸다. 사실 최근 응급센터와 일반외과의 사이가 미묘했다.
응급센터가 이름을 떨칠수록 다른 현, 다른 시에서 오는 외과 환자의 비율이 높아져서 응급 외과 환자 점유율이 높아졌다. 그에 따라 병원 스타일과 명성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마찬가지로 외지에서 온 내과 환자, 예를 들면 심근 경색 같은 경우는 성립 혹은 육균 병원을 선택할 가능성이 컸다. 곽종군의 강세는 외과에 집중되었고 내과에 대한 커버력이 크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내과를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외과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게다가 능연의 치료팀이 수술량을 대폭 늘린 바람에 응급센터 외과 환자의 점유율이 평균을 훌쩍 웃돌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일반외과 구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반외과 자체의 수술과 환자가 넘쳐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지금은 여전히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해도 응학의 침범을 계속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에는 응학에서 충수염이나 장경색 같은 수술할 때는 신경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기기도 했었다.
능연이 간 수술을 하는 것도 일반외과 자체의 발전엔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위장 질환은 경계선에 있었다. 위 절제 같은 수술은 일반외과도 소화기 외과와 다투고 있는데 응급까지 끼어든다면 당연히 좋아할 리가 없다. 소화기 외과에서 반응하지 않고, 곽종군이 누르고 있어서 아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일반외과의 태도에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겼다. 전 같으면 이런 환자를 만났다면 주 선생도 당연히 망설이지도 않고 일반외과를 호출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장의 귀속도 불분명하고.
일반외과에서 이때다 싶어서 응학의 비장 수술에 개입하면 주 선생이 사고를 친 것이 되게 된다.
곽종군이 레지던트를 물어뜯는 모습을, 당시 원숭이였던 주 선생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비장은 할 수 있으면 우리가 해야 해. 그런데 환자 상황이 좀 특별하니까 너도 조심하고.”
주 선생은 머릿속으로 정치를 고민했지만, 능연 앞에서는 오로지 증세 이야기만 했다.
증상이 해결되면 정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믿음이 주 선생에게도 있었다.
능연은 손을 헹구며 물의 압력을 느끼면서 물었다.
“어떻게 특별한데요?”
능연의 질문에 주 선생은 생각을 잠시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2개월 전에 명확한 이유 없이 좌측 상복부에 통증이 생겼대. 지속성 팽창 통증. 요통도 함께. 꽤 심한 편이었대. 그런데 현병원에서 치료한 후 상태가 완화되었고,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통증이 재발했대. 이번에도 명확한 이유는 없었고. 그래서 나중에 지역 병원에서 다시 입원 치료했는데 이번에도 증상이 완화됐다가 퇴원하니까 다시 재발해서 이번엔 운화병원으로 온 거지.”
“조금 더 자세한 진단을 바란대요? 그럼 외래로 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구급차 타고 왔어. 시간이 늦어서 외래가 끝나서 바로 응급실로 들어왔지. 원래는 트랜스 시키려고 했는데, 밤늦게 고생해서 그런지 쇼크가 와서 일단 응급 수술하려고 수술실로 보냈어.”
주 선생은 외래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운화병원 같은 지역 정상급 삼갑병원은 암표가 들끓기에, 외래 창구엔 전날부터 줄이 늘어지게 된다.
지금 이 환자만 해도 복부 통증이 지속되는데 당장 번호를 받을 수 없으니 응급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진찰 기교라고 할 수 있었다.
“블리딩은 아직 있는 겁니까?”
능연이 머리를 내밀고 바라봤다.
“네. 복강 안이 난리야.”
수련의인 임기는 그래도 식견이 넓은 편으로 능 팀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전투력이었다. 재능 보통, 실력 보통이지만 다년 축적한 경험이 있고 노력도 하는 편이라 이런 상황에 임시 투입해서 쓰기 딱 적당했다.
장점은 딱히 없고 그저 평범한 의사지만, 두드러진 단점도 없고 실수하는 일도 드물어서 대부분 그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능팀에서는 오히려 수술 기회를 대량으로 얻었다.
그러나 안목을 따지면 임기의 안목은 그저 그랬다.
주 선생은 복강을 바라보며 가볍게 헤집으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유착이 심각하다는 거야. 복강하고 복벽, 췌장은 또 조직 포낭에 유착했고 블리딩은 역시 비장일 거 같아.”
“음.”
능연 역시 주 선생을 따라 복강을 살폈다.
개복 검사는 외과의 버그급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환자처럼 필름을 찍고 온갖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개복 검사로 비장 유혈임을 알게 되고, 유착이 이렇게나 됐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쉽게 확진할 수 있었다.
“진구성 비장 파열 같네.”
주 선생이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유착이 이렇게 심각한데, 비장이랑 췌장 꼬리 같이 잘라야 할 거 같은데?”
“해본 적 없습니다.”
능연이 고개를 들고 대답해다.
“그······ 안 되겠으면 GS 부르고.”
“우선 비장이랑 췌장 꼬리 박리는 할 수 있습니다.”
능연의 말에 주 선생의 사고회로가 돌아갔고 눈이 번쩍 뜨이다가 다시 머뭇거렸다.
“억지로 하진 말고. 문제 생기면 안 돼. 췌장을 남겨놓는 것만 해도 괜찮은 거니까.”
“한번 해볼게요.”
능연도 확정적으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췌장은 취약하기로 유명하다. 거품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여서 박리하기 꽤나 어려운 것이다.
“박리할 수 있으면 좋고.”
주 선생은 금세 안도하며 미소지었다.
“참, 좌 선생님한테 이야기 좀 해주세요.”
능연이 주 선생에게 코치했다. 이런 수술은 한번 시작하면 30분, 한 시간 안에 끝날 수술이 아니었다.
“아. 좌 선생님은 무슨 일인데?”“군안 진료소 박 원장님이 동가 그룹 회장님을 운화병원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특수 병동에 도착할 때 됐을 거예요.”
능연이 설명하는 말에 주 선생은 눈이 다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오늘?”
“네. 30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고 연락 왔었습니다.”
“오늘? 게다가 지금?”
주 선생이 다시 확인하자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박리 시작합니다.”
능연은 주 선생을 상관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했다.
주 선생은 옆에 멍하니 서서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 역시 사고 친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