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 포크너 일행이 시간에 맞춰 성원 호텔에 나타났다.
외국인들은 파티를 매우 사랑해서, 다빈 같은 도박 중독자도 마작관에 갈 시간을 포기하고 초대장을 들고 성원 호텔에 왔다.
운리 제약회사 직원과 성원 호텔 직원이 함께 꾸민 휘황찬란한 파티장에 열정이 가득했다.
병원 고위층과 위생국 간부도 현장에 나타났다.
메이요 병원과 뉴욕 장로회 병원 의사가 온다는데 어느 정도 급이 되는 관원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요리 등급도 상당했다.
“음, 잘 꾸몄네요. 돈 많이 썼겠어요.”
샴페인을 든 주 부원장이 곁에 선 곽종군을 칭찬했다.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닙니다. 지난번에 송년회 했을 때랑 비슷해요.”
곽종군은 숨기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럼 정말 괜찮군요. 훨씬 수준 높아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주 부원장이 흥미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언제 이 옷을 입을 수 있을지, 이제나저제나 기회를 기다렸는데 오늘에야 소원을 이뤘다.
“운리랑 관계가 좋아서 지원을 적당히 해줍니다.”
자주 운리를 동원하는 곽종군이 모처럼 그들을 칭찬하자 주 부원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쩐지 사 매니저가 운리에서 지분을 많이 뺏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제품 경쟁력을 올릴 생각을 해야지요. 자세만 낮춘다고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곽종군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창서제약은 운화에 씨를 뿌린 지 오래된 회사지만, 제약회사는 제약회사일 뿐, 오래 거래했다고 권리나 의무는 없었다.
설사 있다고 해도 지금 하는 거로 봐서는 깨질 날이 머지않았다.
주 부원장이야 그런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의 눈에도 운리가 제법 잘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세 외국인의 기분도 매우 좋았다.
폐쇄적인 파티가 아니라서 운리가 특별히 다른 외국인들도 초청해서 포크너 등과 어울리게 하면서 그 김에 자기네 인간관계를 과시했다. 어차피 돈은 운화병원이 내는 거고.
밤이 깊어갈수록 포크너 일행은 점점 즐거워졌고, 장시간 날아온 피로감도 적잖게 해소됐다.
홀가분해진 박 원장도 주로 포크너 일행 곁에 머물면서 외국인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게 그의 본업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비록 두 회장의 수술이 주요 업무라 중국 의사가 집도하는 걸 지지하긴 했어도 그의 중개 업무는 대부분 외국 의사한테 기대야 했다.
돈 많고 권력 있고,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이 중국 의사를 꼭 본인을 통해 구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포크너와 다빈이 지금은 노매옹의 연줄이지만, 두 회장이 수술이 끝난 지금 유명 병원 출신인 이 두 의사도 박 원장의 연줄이 될 수도 있었다.
박 원장은 그것 때문에 매우 진지해져서 술도 더 많이 마셨다.
“음, 능연 왔군.”
위스키를 신나게 들이켜던 포크너가 잔을 내려놓았다. 마찬가지로 적잖게 마신 다빈도 흐린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청 잘생긴 저건가?”
다빈이 가리키는 쪽을 본 포크너가 피식 웃었다.
“저건 조각이고. 능연은 저쪽.”
포크너는 다빈의 팔 위치를 조정해서 능연이 나타난 쪽을 가리켰다.
“아. 어쩐지. 이쪽이 더 잘생긴 게 맞군요. 음, 옆에 아가씨도 미인이군. 엄청난 미인이야.”
“저분은 전칠 아가씨입니다.”
박 원장이 활가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눈을 비비고 능연과 전칠이 있는 방향을 빤히 보던 포크너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눈가가 점점 벌게졌다.
그걸 못 본 박 원장은 그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참, 아까 드신 와인 중에 ‘No.7’은 모두 전칠 아가씨네 와이너리 제품입니다. 제법 괜찮았죠?”
“와이너리도 있습니까?”“카드 친답니까?”
포크너는 놀라며 물었고, 다빈은 궁금한 듯 물었다.
박 원장은 어이없어졌다.
“곁에 있는 사람이 와이너리 관리인입니까?”
독일인 코버트의 시야 범위가 조금 더 넓은 것 같았다. 그쪽을 바라본 박 원장이 미간을 좁혔다.
“꽤 친해 보이는군요.”
“저분은 소 사장입니다.”
아내와 팔짱 끼고 나타난 마연린이 웃는 얼굴로 소개했다.
“소 사장은 우리 병원 명예 환자랍니다. 자주 병이 나지만, 매우 강인한 환자지요.”
“아, 나도 저런 환자가 있었습니다.”
다빈이 그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있었다고요?”
박 원장이 과거시제를 주목했다.
“알잖습니다. 좋아하는 환자 곁에 의사가 은퇴할 때까지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요.”
“소 사장은 다릅니다!”
마연린이 질색하며 무심결에 반박했다.
“응? 뭐가 다르지요? 환자가 뭐가 특별하다고.”
다빈이 술김에 큰 소리로 웃었다.
“소 사장은 매우 특별합니다.”
“당신 식견이 부족해서겠지요.”
고집을 부리는 마연린의 모습에 다빈은 더 크게 웃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얼굴도 시뻘게졌다.
“I······ I'm······I'm······.”
다빈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들어가는 숨은 적도 나오는 숨은 많은 모습으로 몇 번이고 시도해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얼굴은 더욱 테이블 위 새우처럼 시뻘게졌다.
“뉴욕 선생이 암이라도 걸린 모양입니다?”
좌자전이 하는 말에 박 원장이 혀를 끌끌 차며 웃으면서 좌자전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이것도 유머라고.”
“미국인하고 사귀려면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영화 보니까 지구를 구하는 그 급한 상황에도 농담부터 하고 시작하던데요?”
좌자전은 말을 마치고서 곁에 있는 통역을 끌고 왔다.
“저기, 내가 운화병원 응학 의사라고 말씀하시고, 혹시 알레르기 있는지, 뭔가 알레르기 있는 음식을 접했는지, 그게 뭔지 물어봐 줘요.”
통역은 바로 입을 열었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했다.
하지만 좌자전 등은 다급하지 않은 모습으로 모두 침착하게 지켜봤다.
다빈은 눈물이 다 맺혀서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알레르기 요인을 접한 적 없으면 손가락 하나, 잘 모르겠으면 두 개,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으면 세 개 들어보세요.”
호흡이 곤란한 다빈을 바라보며 박 원장이 바로 선택지를 내놓았다.
다빈은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면서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었다.
“별로 쓸모없는 것 같으니 우리가 바로 합시다.”
통역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걱정도 하지 않고 박 원장이 중국어로 꿍얼댔다.
“평평한 곳을 찾아서 앉힙시다.”
의사 하나가 다가가서 다빈의 상황을 살핀 다음 의견을 냈다.
“바닥에요? 저기, 쿠션 같은 것 좀 가져다줘요.”
“바닥은 차가울 겁니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요.”
좌자전이 온순하게 따르면서 하는 말에 곁에 있던 다른 의사가 세심하게 의견을 냈다.
“테이블이 낫겠군요. 처리하기도 편하고. 여기 바 어때요? 너무 높나?”
“아까 에피타이저 놓았던 테이블이 좋을 것 같군요. 아, 높이는 괜찮은데 지탱력도 괜찮으려나.”
“저기, 에피타이저 테이블 가지고 와. 구급차 불렀나?”
다빈 곁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의사였고 적어도 박 원장처럼 의료 관계자여서 저마다 한마디씩 의견을 냈다. 그들 모두 일사불란하게 다급하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움직였다.
다른 곳이었다면 야단법석이었겠지만, 잠시 시선을 끌었을 뿐 곧바로 질서정연해졌다.
반쯤 호스트인 박 원장도 그렇게까지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공황장애 아닌가? 외국인들은 공황장애가 많아서 툭하면 기절한다던데. 맞다, 국내에서 공황장애로 기절하는 사람 본 적 있어?”“없습니다. 심각한 알레르기도 드물죠. 그런데 알레르기라면 이미 늦은 거 아닌가요?”
“제일 흔한 게 아무래도 심근경색이지? 그런데 심근경색이면 좀 힘들겠구만.”
주변 의사들이 분분히 떠들어댔다. 대부분 중국어에 영어를 섞어서 대화했고, 가끔 괴상망측한 영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순식간에 회의 분위기가 되어서 질문이라도 하는 듯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다투지 않고 주고받았다.
환자인 다빈 본인은 조금 다급해져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듯 호흡이 곤란해져서 목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 기절을 하지 않아서 자세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요즘은 목에 손을 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의사 하나가 다가가 다빈이 목에 걸친 손을 끌어당기자, 다빈이 눈을 흘기면서 상대를 바라봤다.
“잠시만요.”
그 의사가 핸드라이트를 꺼내 잠시 흔들자 다른 의사들도 일제히 본인이 휴대한 의료 기구를 하나둘 꺼냈다.
누군가는 청진기를, 누군가는 수트 주머니에서 체온계를, 또 수트 주머니에서 바늘을 꺼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뒷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내는 의사까지.
능연도 전칠과 함께 현장에 나타나서 묵묵히 알콜겔을 꺼내들었다.
“구급차 부를 거 없을 거 같아. 길이 막힐 수도 있잖아. 그냥 여기서 삽관하자.”
좌자전이 적극적으로 내는 의견에 능연도 동의했다.
“내 기관 절개 키트가······.”
“능 선생님!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창서제약 황무사가 다년간 익숙한 모델 걸음으로 다가와 능연의 기관 절개 키트를 양손으로 바쳤다.
“아, 고마워요.”
능연이 황무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일 때, 그의 옆에 얼굴이 누렇게 뜬 맥순과 운리제약 직원여러 명이 있었다.
“제세동기 준비하고, 소가복 선생님, 환자 마취해주세요. 좌 선생님, 환자 눕히시고.”
기관 절개는 혼자 할 수 있는 작은 수술이었지만, 능연은 그래도 본인의 팀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고, 좌자전 등 역시 재빨리 손을 놀렸다.
운화병원의 현재 심폐소생 팀은 원래 좌자전 등으로 꾸려져 있었다. 지금도 매일매일 훈련하고 실전에도 임하고 있기에 능연의 명령이 떨어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절개합니다.”
능연은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기관 절개 같은 작은 수술은 손씻기를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지만, 장갑을 끼는 건 의사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전칠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나서, 우선 핸드폰을 꺼내 사진부터 찍었다.
그쪽으로 다가간 소 사장 역시 얼굴이 시뻘게진 다빈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이고, 운도 없지. 우리 가게였다면 모든 준비가 완벽했을 텐데. 성원이 이렇다니까. 규모가 크고 음식이 괜찮을 뿐, 기초 의료 쪽은 엉망이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역시나 핸드폰을 꺼내 다빈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밖에 나오면 별별 일이 다 생기는데, 이럴 때 기초 설비가 완벽한, 특히 의료 기초 설비가 완벽한 가게를 찾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겁니다.’
게시물을 업로드한 후, 소 사장의 핸드폰에서 계속해서 알람이 울렸다.
소 사장은 싱글벙글 핸드폰을 열어 액정을 바라봤다. 어차피 현장 수술이라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어차피 봐도 못 알아볼 거, 차라리 렌즈를 능연에게 맞추는 게 나았다.
파티장 저편엔 여전히 대화가 계속되었고, 이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술을 지켜보며 대화가 이어졌다.
“미국 사람 심혈관 정말 엉망이네.”
“젊은 의사 같은데 심혈관이 왜 이 모양이지.”
“이 녀석 밤 엄청 새운다던데요? 매일 카드 친대요.”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