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폰(Cardiac tamponade: 심장 압전), 절개 감압 준비합니다.”
포크너가 수술 시야를 바라보며 지시를 내렸다.
수술 팀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니 그때그때 소통하면서 수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헐떡거리던 강 주임은 통역의 말을 듣고 바로 입을 열었다.
“수혈 준비. 이따 절개 감압하면 피가 쏟아져 나올 거야.”
“준비됐습니다.”
마취의가 나긋하게 대답했다.
고개를 돌린 강 주임은 해동된 혈액 제품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음, 잘했군. 집도의보다 먼저 준비할 줄도 알고.”
어차피 집도의가 외국인이니 말실수할 걱정도 없었다.
마취의는 껄껄 웃다가 곽종군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는 번뜩해서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능 선생이 미리 지시했거든요. 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에요.”
곽종군의 기세에 마취과 초짜 주치의가 공손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신분으로 능연의 공을 가로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쓸모없는 일일뿐더러 오히려 능연과 곽종군에게 밉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곽종군이 과연 미소를 슬쩍 드러냈다.
능연의 정확한 판단으로 곽종군은 자신감이 대폭 늘었다. 능연의 재능으로 뭘 배우든 빨리 배울 것이고, 배우기만 하고 익숙해지면 수하 의사를 키우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곽종군의 뇌리에 이미 응급 간담췌외과 진료, 응급 수부, 족부 진료, 응급 슬관절 진료, 응급 심장 진료, 응급 장 진료 등 이름표가 촤르륵 펼쳐졌다.
이름표는 금사 녹나무로 하고, 의국은 지금보다 세 배 크기에 대기실엔 소파도 놓아야 한다. 물론, 간이 의자도 필수다. 진료실도 더 커져야 한다. 수술실도 늘려야 하고. 설비도 당연히 완벽해야 하고. 돈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그리고······.
“능 선생이 심장 수술도 하나?”
강 주임은 벌써 안색이 변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능연은 못 들었고, 앞에 있는 초짜 의사는 들었지만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강 주임의 뇌리에 다시 한번 자기 사무실이 떠올랐고, 책상 위에 사진과 개인용품이 깨끗이 정리되어 구석에 놓이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아직 은퇴할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 수술 케이스 더미에 파묻혀서 어떻게든 논문을 쓰려고 머리를 쥐어 짜내는 모습도.
“드레인 준비.”
능연의 목소리가 들리자 강 주임이 망연한 듯 바라봤다. 능연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과 멋짐이 바로 보였다.
그리고 포크너도 무언가 영어로 말했다.
통역이 머뭇거리다가 우선 중국어로 ‘드레인 준비’라고 말하고 영어로 다시 한번 말했다.
수술실 사람들은 바로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이번에도 능연이 선수를 쳤다.
“능 선생, 심장 수술도 할 줄 아는군요. 그렇죠?”
“실제 조작한 적은 없습니다.”
포크너의 질문에 능연이 대답했다.
“아, 나도 그랬었죠. 혼자 연습을 오래 한 다음에야 심장외과 닥터 손에서 기회를 얻었지요.”
포크너가 추억에 잠긴 듯 한마디 했다.
통역이 포크너의 말을 전하자 심장외과 강 주임의 심장이 쿡 하고 쑤셨다.
너무 괴로웠다. 이 두 사람의 대화, 너무 건강에 좋지 않았다.
“해볼 용기 있습니까?”
포크너가 다시 물었다. 그의 말투는 어느새 메이요에 있을 때와 비슷해졌다.
주치의인 포크너는 메이요에 있을 때, 일반적인 외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일부러는 나서지 않는 유형이었다. 지금은 메이요에 연수 온 초짜 의사를 대하듯 능연을 대했다.
수술실에서 능연이 보인 활약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유형인 심장 수술 앞에서 자연스럽게 심리적 우세를 느낀 것이다.
능연의 국적과 나이 때문에 포크너는 무심결에 그를 낮춰 본 것이다. 일부러 무시하는 건 아니고, 오랜 시간 익숙해진 자연스러운 무시였다. 메이요 같은 병원에서 진행되는 모든 수술은 항상 참관인이 가득한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대부분 개발도상국에서 온 의사들이었다. 바로 능연 같은 젊은 의사 위주로.
포크너는 저도 모르게 위에서 능연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제가 이어서 할 수 있습니다.”
능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하, 역시 젊군요. 겁이 없어요. 그래요, 일단 심낭 적혈과 핏덩이를 처리해요. 구분할 수 있겠어요?”
포크너는 어시를 대하듯 능연을 대했다. 그로서는 매우 좋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능연이 아니었다면 수술 기회를 다른 의사에게 넘길 리가 없었다.
“잘 보입니다. 바로 심낭 적혈 처리하겠습니다.”
능연이 매우 똑똑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야기하면서 팔을 뻗어 도구를 받은 다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포크너는 안심한 상태로 허허 웃으며 지켜봤다.
일반 데브리망과 큰 차이는 없지만, 심장 주변이라 아무래도 복잡했다.
수술대에서 벌어지는 수술은 대부분 기술 문제가 아니라 책임 문제가 어려운 법이다.
담낭 절제 같은 수술은 자칫 잘못하면 담낭이 찢어져서 담즙이 복강 내 뿌려지고 담관 결석이 어딘가로 떨어지는 수술은 대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결과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 않으면 그저 조용히 블랙박스를 닫는다.
그러나 심장 수술의 실수 용납률은 매우 낮아서 자칫하면 환자가 죽어 버리기 때문에 그 책임을 조용히 묻는 건 불가능했다.
데브리망을 잘못하면 기껏해야 흉이 남는 거지만, 심장 수술을 잘못하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포크너는 수술을 능연에게 넘기긴 했지만, 여전히 경계하며 지켜봤다.
이어서······.
30초 만에 포크너는 드러난 심장을 보게 됐다.
“오, 사실 그렇게 빨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크너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핏덩이를 처리하는 능연을 바라보며 어쩐지 다리에 마비가 오는 기분이었다.
능연은 대답 없이 잠시 기다렸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블리딩 포인트 클리어. 이제 지혈합니다.”
“음,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포크너가 다시 반복했다.
능연은 꿈틀거리는 심장을 바라보며 서서히 팔을 뻗었다.
포크너는 능연의 과감한 동작 덕에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순식간에 능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처해도 됩니다.”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이 지금 마스터급 심장 외상 보건술과 협력하여 극강의 효과를 발휘했다. 포크너가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수술은 능연의 손바닥 안에 들어갔다.
사실 이 정도 외상은 원래 딱히 복잡할 것도 없어서, 글로 설명하자면 기껏해야 외상 부위를 처리하고 상처를 눌러서 봉합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상처가 심장이어서 난도가 훌쩍 올라가긴 하지만 수술 과정엔 별 변화가 없다.
능연에게 상처 부위를 처리하라고 한 포크너는 이제 능연이 상처를 누르고 마지막 스텝을 진행하는 걸 바라봤다.
“능연, 수처 자신 있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포크너는 곽종군의 안색을 살핀 후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문제없습니다. 그럼 내가 수처합니다.”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노는 손으로 실을 받았다.
포크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마디 코치했다.
“수혈 대기. 수처 과정에서 다시 출혈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장외과 강 주임은 더욱더 눈이 빠져라 수술대를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능 선생, 심장 수술 수처는 아직 익······.”
쑥.
소리 없이 손을 놀리던 능연의 실이 벌써 심장을 꿰뚫었다.
심장을 뚫는 느낌이란?
능연은 처음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처음으로 하는 심장 외상 보건술, 처음으로 심장을 건드릴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아서 감상에 젖을 틈이 없었다.
이 순간 감상에 젖을 사람은 강 주임밖에 없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이 가장 정통한 심장 외상 보건술을 능숙하게 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비록 심장외과에서 가장 간단한 수술이지만, 심장외과는 한때 외과 의사의 금단 구역이었던 걸 생각하면 강 주임은 저도 모르게 누군가 금기를 건드린 분노, 수치, 쇼크, 찔림 그리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생각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은 계속 진행됐다.
능연은 가늘고 긴 손가락을 뻗어 살며시 심장의 찢어진 곳을 눌렀고, 동작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트렌디한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분위기였다.
간호사들도 심쿵 해서 부르르 떨었다.
환자의 심장마저 살며시 흔들리는 듯했다.
능연의 손가락의 힘은 안정적이고 균일했다.
그 힘이 불안정하고 불균일했다면, 심장의 찢어진 곳은 아마도 드라마 여자 주인공처럼 갑자기 남자 주인공을 밀어붙이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를 일단 제압하고 1-0 봉합사로 잘 꿰매면 바늘이 이끄는 대로 심장은 고요해진다.
모든 이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그들은 트렌디 드라마가 예술 영화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바늘이 찢어진 상처를 찌르는 걸 바라봤다.
능연이 거기까지 해내자 포크너도 다시 온 정신을 집중했다.
살짝 술을 마신 미국 의사는 언제든 능연을 저지하고 뒷 수습을 할 준비가 된 상태였다.
아무리 실력이 평범한 의사라고 해도 메이요 의사인 만큼, 하급 의사의 실수를 덮어줄 능력은 있었다.
능연은 바늘을 놀리며 심장 내막층 앞에서 가볍게 실을 끌어냈다.
포크너는 바로 걱정을 내려놓았다.
이런 봉합 실력이라면 심장 외상 보건술의 모든 스텝을 패스할 수 있다.
포크너는 망설이지도 않고 앞으로 나가서 상처 부위가 단단히 고정될 수 있도록 봉합 타이를 도왔다.
막 그 동작이 끝나자마자 포크너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능연의 손가락이 이동한 곳에 다른 상처가 보였다.
똑같이 봉합하고, 다시 타이하고, 똑같이 상처를 고정하고.
그렇게 세 번 움직이는 사이 적은 크기가 아니던 외상 부위 봉합이 드디어 끝났다.
포크너는 문득 본인이 완벽하게 어시했음을 깨달았다.
“음, 잘했군.”
포크너는 상급 의사는 여전히 나라는 태도로 능연을 칭찬했다.
“그런 거 같네요.”
능연이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었다.
“음, 이렇게 잘 끝냈는데, 느낌이 좋아야지.”
포크너의 말에 어쩐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원래 본인이 하고 싶던 수술이었다. 특히 무료한 파티를 하다 보니 짜릿하고 간단한 심장 수술이 매우 필요했었다.
“자, 그럼 마무리 수처합시다.”
포크너는 마무리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메인 요리가 사라졌으니 가니쉬라도 먹어야지, 배를 쫄쫄 굶을 수는 없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런 말 없이 봉합을 도왔다.
첫 번째 심장 수술 앞에서 능연은 완벽하게 마무리까지 했다.
가위를 내려놓는 순간 시스템 인터페이스도 튀어나왔다.
- 퀘스트 완성: 심장 외상 보건술을 접해보아라!
- 퀘스트 내용: 심장 외상 구급 수술에 참여해서 심상 수술의 매력을 느껴 볼 것
- 퀘스트 보상: 스태미너 포션
스태미너 포션이 번쩍이며 능연 앞에 나타났다.
능연은 손을 휘둘러서 포션을 거뒀다.
곽종군은 능연에게 다가갔고, 그 뒤엔 핸드폰을 든 주 선생이 있었다. 곽종군이 늙고 못생긴 기자처럼 물었다.
“닥터 포크너, 능연의 첫 번째 심장 수술은 어땠습니까?”
“아주 잘했습니다. 훌륭해요.”
카메라 앞에 선 포크너의 말투엔 미국식 오버가 가득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프로 수준입니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포크너도 조금 전 수술을 회상했다. 그리고는 점점 더 느낌이 살아나는 듯, 앞에 하이라이트를 놓친 것처럼 말투가 더욱 진지해졌다.
“능 선생 실력이 대단합니다. 심장외과 분야에 재능이 있습니다. 하늘이 주신 재능을 허비하지 마세요.”
능연이 뭐라고 하기 전에 곽종군이 이미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능연의 실력은 좋은 플랫폼이 있어야 진정으로 발휘되는 법이죠.”
심장외과 강 주임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었다. 그의 작디작은 심장외과는 이미 거물이 된 응급센터 앞에서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았다. 간담췌외과와 하원정이 운화병원의 작은 진료과에 속한다면, 심장외과가 변두리 진료과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간담췌외과는 적어도 해마다 담낭 수술을 천 건이나 하는 자체적으로 이윤을 내는 진료과였다. 그러나 심장외과는······ 종합병원이라는 타이틀을 위해 존재하는 진료과였다.
“곽 주임······ 저기······ 아니······.”
안 그래도 두서없는 강 주임의 생각이 말로 옮기려니 더욱 엉망이 되었다.
곽종군은 그런 강 주임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우렁차게 발언했다.
“우리 운화병원 지금 상태로 말하자면, 반드시 ICU를 도입해야 합니다.”
“응······?”
강 주임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맹호가 토끼를 잡다가, 양을 발견한 건가?
곽종군이 고개를 돌려 능연을 바라봤다.
“사실 최근에 계속 ICU 건을 고민하고 있었네. 간 절제 수술은 이미 난도 높은 수술인데, 위, 간 연합 수술에 ICU가 필요한 건 말할 필요도 없지.”
강 주임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ICU를 물어뜯어! 작은 진료과 주임인 그 역시 중증감호과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곽종군 역시 자신을 설득하던 중이라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능연, 자네 심장 수술하고 싶으면 하게. ICU 문제는 벌써 오래 고민했으니 결단을 내릴 때도 됐지.”
“아. 심장 수술은 환자가 많지 않더라고요.”
“괜찮네. 있는 대로 하면 되지. 앞으로는 내가 방법을 생각해보겠네.”
곽종군은 문제도 아니라는 듯 가슴에 품은 큰 뜻을 내보였다.
강 주임은 저절로 멍해져서, 부러워서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능연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