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빈이 탕 법도 이제 그럴싸해졌군.”
곽종군은 수술실에 있는 연문빈의 모습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집도의 자리에 선 연문빈은 멀리서 봐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고 바늘도 날 듯이 움직였다.
“능연 느낌도 좀 나는군.”
왕해양은 능연과 비슷한 나이에 다만 얼굴이 천지 차이인 연문빈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능연이 탕 법을 시작한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연문빈을 가르쳐내다니.”
“능연이랑 비교하기엔 조금 멀었지. 그래도 잘하고 있는 건 맞지.”
곽종군은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부 무인 구역을 다루는 탕 법은 매우 가치 있는 수술이다. 게다가 수부외과 수술은 운화에 차고 넘쳐서 연문빈이 기술을 익히면 능연의 수술량을 대폭 줄이면서 응급센터의 수술량은 늘릴 수 있다.
물론, 수부외과는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겠지만, 능연이 연일 수부외과 수술을 해도 반감을 사지 않았으니 연문빈이 꼼지락거리며 해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왕 주임도 문빈이 잘 좀 돌봐주게. 젊은 사람은 아무래도 조잡한 면이 있으니 말일세.”
곽종군이 뻔뻔한 부탁을 하자 왕해양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내 무덤을 파라는 건가?”
“에이 무슨. 연문빈은 능연처럼 영리하지 않고 또 장사도 같이하고 있어서 능연처럼 발전하진 못하지. 그런데 자네한테 무슨 영향을 주겠나. 젊은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좀 도와줘야지. 안 그래?”
곽종군은 연문빈의 안전한 앞날을 위해서 열심히 말발을 발휘했다.
왕해양은 그런 곽종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지만, 어제 연문빈이 선물한 마트 상품권을 떠올리고는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
“그럴 기회가 생기면 당연히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
왕해양은 그래도 완전히 거절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왕해양도 출장 수술 요청을 많이 받고 있는데 연문빈 같이 사리에 밝은 의사를 잘 굴리면 어쩌면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곽종군은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한 다음 안심하며 아래층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항상 능연이 하는 수술만 보다가 다른 의사 수술 보니까 좀 적응이 안 되긴 하구만.”
곽종군의 말투엔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능연 스타일이 보이긴 해.”
“응?”
“절개나 노출 습관, 저거 다 능연 스타일 아닌가.”
수부외과 의사 생활을 오래 한 왕해양이라 보는 눈이 확실히 있었다. 사실 곽종군도 알아는 봤지만, 일부러 왕해양을 추켜세웠다.
“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구만.”
“틀림없네. 의사 습관이잖나. 앞으로 연문빈이 수술하는 걸 보는 사람은 딱 보면 능연 제자라는 걸 알 걸세.”
곽종군의 부추김을 받은 왕해양의 얼굴에 과 주임도 못 된, 그냥 주임 의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사실 지금도 능연이 앞에서 지켜보고 있질 않나.”
“젊은 의사가 다 그렇지 뭐.”
“음. 상급 의사가 있으니 젊은 의사라도 대담하게 손을 놀릴 수 있지.”
왕해양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저 자리에서 서 있으면 평소에는 엄두 못 내던 방식으로 작업할 것 같네.”
“음?”
“하늘이 무너져도 능연이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 줄 거 아닌가.”
왕해양은 과감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한바탕 웃어댔다. 그 모습에 곽종군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다가 왕해양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더 높이 올라갈 생각을 버린 왕해양 같은 주임 의사는 오히려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지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건 상대방이 협조하는지 안 하는지에 달리긴 했지만.
“능 선생, 그럼 수처한다?”
연문빈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능연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눈으로는 계속해서 검사 작업을 했다.
능연은 어시로서도 상당한 경험이 있었지만, 탕 법 어시는 별로 서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중이었다.
연문빈은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탕 법을 할 때는 능연의 어시를 서거나 아니면 혼자 집도하거나 해서 누군가에게 가르침 받는 느낌이 없어서 항상 어딘가 허전했었다.
오늘 능연과 함께 수술하니, 연문빈도 다른 각도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으니 역시 느낌이 다르긴 달랐다.
“특훈이 다르긴 다르네.”
“네.”
연문빈이 감탄하며 하는 말에도 능연은 그저 가볍게 응수했다.
“전에는 사실 탕 법 하겠다고 결정 내리면서도 고민했었거든.”
능연의 태도에 익숙한 연문빈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했고 능연은 듣고 있는지 아닌지 싶은 모습으로 수술이 끝날 때까지 듣고 있었다.
“연 선생도 집도할 땐 말이 많네.”
왕가가 속삭이는 말에 참관실에 있는 의사들이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연문빈은 신이 나서 샤워하고는 휴게실에 처박혀 마 간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파블로프 공략법이 슬슬 효과를 발휘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족발을 이틀이나 끊었으니 슬슬 메시지를 보내올 때도 됐겠지?
물론, 그러는 동안 연문빈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화쯤이야, 파블로프 공략법에 영향을 주지 않겠지.
“좋은 일은 겹쳐서 일어나는 법이니까.”
휴게실 의자에 틀어박힌 연문빈은 나불나불대며 메시지를 입력했다.
피땀으로 번 돈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아내에게 명품백을 선물하는 조낙의가 연문빈을 힐끔 보며 미소지었다.
“맞는 말이지. 좋은 날은 나중에 오는 법이니까.”
연문빈은 더욱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메시지를 입력하는 속도까지 빨라졌다.
마 간호사는 너스 스테이션에서 핸드폰 대화 기록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왜 그래? 잘 안 돼?”
곁에 있던 간호사가 가십거리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적의 직진남을 어쩌겠어요. 말실수 한 번 했다고 버릴 수도 없고.”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못 버리는 이유가 새 집이 많아서인 건 아니고?”
“동네 개도 아쉬워할 걸요. 족발, 족발, 족발. 40년 전이었다면 우리 아빠가 나서서 시집 보내려고 했을 거예요.”
마 간호사가 한숨을 내쉬는데 핸드폰이 다시 윙하고 울렸고, 슬쩍 내려다본 마 간호가가 어깨를 으쓱했다.
“연문빈?”
“누구겠어요.”
“또 이상한 말 해?”
“그건 아니고요.”
마 간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닉네임 바꾸겠대요. 진심 영웅으로. 심장 수술을 했으니까라나 뭐라나.”
마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고는 메시지를 입력했다.
-심장 만지는 거 징그럽지 않았어요? 무섭지 않아요?
“얼씨구. 길게도 쓰네.”
플라스틱 미인인 절친이 고개를 내밀고 힐끔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휴게실에 있던 연문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자 곁에 있던 의사가 의아한 듯 바라봤다.
“왜 그래?”
“음······. 갑자기 마 간이 되게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연문빈의 머릿속에 한 번 떠오르는 그런 생각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