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12화 (691/877)

“묘 선생, 우리 솔직히 이야기해요. 정말로 운화병원 능연 선생이 우리 애 수술하는 거 맞아요?”

모녀가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아이 아버지가 묘탄생을 불러세우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직이 물었다.

묘탄생과 나이가 비슷한 환자 아버지도 사실 의사였다.

“당연하죠. 이런 일을 어떻게 속입니까.”

묘탄생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바로 서서 상대방의 초조한 얼굴을 보고는 곧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 능 선생네 집안 진료소라니까. 능 선생 지금 안에 있어요. 조금 있으면 나올 거야. 능 선생 본 적은 있죠?”

“있죠.”

홍 선생이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됐지. 능 선생이 어디 가짜로 속일 수 있는 인물인가. 안 그래요?”

묘탄생을 슬쩍 농담하면서 환자 부모 된 사람의 마음을 풀어 주었다.

진료소에 오래 있으면서 실력은 늘지 않았지만,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는 능력만큼은 크게 늘었다.

홍 선생은 입가를 실룩일 뿐 결국 웃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표정은 조금 편안해졌다.

“능 선생처럼 생긴 연기자 구하려다가 파산하겠네.”

“하하. 그러니까.”

묘탄생은 순간 묘하게 서글프다는 생각을 하며 생선눈을 끔뻑였다.

“시설은 괜찮은 거죠? 전에 수술한 적 없다길래.”

홍 선생이 고개를 들어 둘러보며 물었다. 하구 진료소 리모델링 후 겉모습은 그럴싸하니 꽤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그러나 병원은 겉모습이 중요한 곳이 아니니, 홍 선생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새로운 수술실에 이제 막 수술을 시작한 진료소는 아무래도 큰 감점 요소였다. 묘탄생이 능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면 홍 선생은 때려죽여도 딸을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능연이 집도한다면 진료소 환경이 조금 떨어져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묘탄생은 최대한 그를 달랬다.

“진료소 수술실 설비는 여러 번 점검했어요. 마취의도 다 능 선생 밑에 있는 의사고. 알잖아요, 능 선생 지금은 아킬레스건 수술을 거의 안 해요. 마침 진료소에서 수술을 시작한다니 일부러 하는 거라고요.”

“네. 그런데 능 선생이 아킬레스건 수술을 그렇게 잘한다면서 왜 안 하는 거요?”

“간 절제를 더 잘하니까.”

묘탄생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단하긴 대단하네.”

홍 선생이 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묘탄생과 동년배인 그는 묘탄생과는 같이 일을 해온 사이였다. 하지만 같은 의사라고 해도 능연을 아는 게 아니라서 능연에게 아킬레스건 수술을 부탁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능연은 매주 반나절만 외래를 보고 응급센터는 의사 지정 진료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니 홍 선생이 며칠 기다리지 않은 이상 능연과 연락할 채널이 없었다.

물론 능연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니 원래 계획대로라면 상해로 딸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정형외과 병원이라서 아킬레스건 수술쯤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바로 그 골관절 센터를 통해서 능연이 아킬레스건 쪽에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옛 친구가 전화를 걸어서 능연을 언급했을 때 홍 선생은 바로 계획을 바꿨다.

능연이 집도한다는데 뭐하러 상해에 간단 말인가.

지금 이러쿵저러쿵 묻는 것도 수술이 임박하니 긴장해서였다.

“가서 능 선생 한번 만나 봅시다.”

진료소 생활을 오래 하다가 하는 첫 수술이라, 묘탄생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홍 선생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묘탄생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진료소 수술실은 서쪽 건물 중앙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환자와 보호자는 제일 먼저 오픈형 휴게실이 눈에 들어왔다.

능연은 바로 휴게실 정중앙 소파에 앉아 188.88cm 긴 다리를 앞으로 치켜들고 있었다.

처음으로 코앞에서 능연을 본 홍 선생은 우선 긴장했다가 바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실력이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한 데다가 기세까지 충만한 의사 앞에 서니, 같은 의사라도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환자의 보호자로 온 홍 선생은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능 선생, 전에 한 번 연설을 들은 적 있습니다. 얼마나 인상이 깊었는지, 한동안 생각나더라고요.”

홍 선생은 성큼성큼 다가가 순식간에 묘탄생을 앞질렀다.

조금 전까지 어떻게 분위기를 풀지, 특히 능연이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어쩌지 걱정했던 묘탄생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이 되었다.

능연의 팬처럼 구는 홍 선생의 모습에 그 모습이 일부러 능연 보라고 꾸민 것인지는 알지만, 여전히 껄끄러웠다. 척이라고는 해도, 아까까지만 해도 불만투성이인 모습이더니 능연 앞에서는 팬처럼 굴어?

사람은 일단 생각이 많아지면 기분이 언짢아지기 마련이었다.

“묘 선생님, 괜찮으세요?”

운화병원에서 온 소몽설이 이상해 보이는 묘탄생의 모습에 살며시 물었다.

“아, 소 간. 오늘도 고생스럽겠지만, 잘 부탁해요.”

“저희가 무슨 고생을요. 그냥 수술인데요. 게다가 보너스가 얼마나 많은데요. 아, 묘 선생님 능 선생님이 부러운 거예요?”

소몽설이 달콤하게 웃으며 물었다.

“질투 나서 미칠 것 같네요.”

묘탄생이 일부러 담담한 척 농담했다.

“뭐, 그러실 거 있나요. 그저 능 선생님이 조금 젊고, 잘생기고, 실력이 좋고, 수술 잘하고, 성실하고, 앞날이 밝고······.”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소몽설의 말에 묘탄생이 떠보듯 물었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는데요. 어쨌든, 묘 선생님은 자기 일만 잘하시면 되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럼 바이바이.”

묘탄생이 어이없다는 듯 허리춤에 팔을 대고 한숨을 쉬었다.

“홍비 학생, 핸드폰 주세요. 치워드릴게요.”

수술 전 준비를 하던 순회 간호사가 특수병동에서 트레이닝 받았던 그대로 공손하게 홍비에게 말을 걸었다.

“다리 수술이잖아요. 나는 상관 말고 꿰매세요.”

“그건 안 돼요.”

“왜 안 돼요?”

홍비가 입을 삐죽이며 핸드폰을 들고 눈을 깜빡였다.

“참, 생중계해도 돼요? 내 수술이니까 괜찮죠?”

“안 괜찮아요.”

그때 수술실로 들어온 소몽설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본인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소 선생님. 빨리 좀 오세요. 이러다 환자 묶어야겠어요.”

“전신마취하려고요? 부분 마취면 된다면서요?”

“능 선생님이 하시는 축-능 아킬레스건 수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환자분이 그렇게 오래 못 버텨요. 그리고 수면제랑 거의 비슷한 약한 마취제 놓을 거니까 걱정 말아요.”

소몽설은 얼굴이 바뀐 것처럼 생긋 웃으면서 대답했고, 홍비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동화되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렇게 해요. 언니 동영상 하나 찍어요. 그럼 핸드폰 줄게요.”

홍비는 소몽설을 바라보며 본인 시청자 수가 느는 상상을 했다.

내가 유명 유투버랑 뭐가 달라?

홍비는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벌써 본인만의 생각과 일 처리 방식이 뚜렷했다.

소몽설은 멈칫하다가 그런 홍비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요.”

“언니가 할 거 없어요. 내가 하면 되니까.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요.”

“안 돼요.”

“그럼 같이 찍어요.”

소몽설은 열 몇 살짜리 동영상 놀이에 낄 생각이 없었지만, 홍비는 열심히 이해득실을 계산했다.

그때 소가복이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빠르기도 해라.”

소가복은 간호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미리 선수 치며 투덜거렸다.

“홍비 학생. 이분이 마취과 선생님이세요. 능 선생님이랑 자주 수술하는 소 선생님은 실력 있는 의사랍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소몽설도 아이 앞에서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러나 홍비는 전혀 인내심이 없는 것 같았다.

“싫어요. 안 찍으면 수술 안 해요.”

“다리 안 아파요?”

소가복은 의자에 걸터앉아 묵묵히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 모습에 홍비는 멈칫했다가 못 들은 척하고 이를 악물었다.

“간호사 언니, 짧게 두 개만 찍어요. 네? 하나는 같이 찍고 하나는 일하는 모습 좀 찍을 게요.”

소몽설이 웃으며 거절했다. 예쁘장한 그녀는 사람 거절하는 데 소질이 있었다.

상대가 그렇게까지 나오자 홍비는 난처해져서 수술대에 누운 채 금세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귀여운 소녀가, 게다가 환자인데 갑자기 울기 시작하니 곁에 있는 아무런 상관없는 마취의 소가복이 긴장했다.

“아이고, 동영상 찍으려고요? 나랑 같이 찍어요. 응? 그럴래요?”

힐끔 소가복을 본 여자아이는 더 슬프게 울었다.

그때 그의 귓가에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몰래 손가락 틈으로 바라보는 홍비의 시선에 수술실 무영등 아래 하얀 가운을 입은 훤칠한 의사가 보였다. 당당하게 수술실에 들어오는 그 모습, 그 몸매, 그 목소리, 그 걸음걸이. 그야말로 꿈꿔온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홍비는 다급하게 눈물을 닦고, 왕자님에게 잘 보이려는 듯 얼굴을 단장했다.

그때 그의 귓가에 백마 탄 왕자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마취.”

홍비가 백마 탄 왕자님의 심층 심리를 아직 파악하는 사이, 벌써 의식이 흐릿해졌고 산소 부족을 느끼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수술실은 다시 능연이 좋아하는 분위기로 조용해졌다.

“MRI 안 찍었나요?”

능연은 손을 치켜들고 각종 영상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원래 상해로 갈 생각이라서 검사를 많이 하지 않았대.”

마연린이 대답했다.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전공할 생각이라 관련 수술이 있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간 절제 수술은 문턱이 높아서 일반 의사는 10년 정도 경험이 없으면 함부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연린이 능연 어시할 때도 주로 능연이 핵심 부분을 맡았고, 조금 복잡한 수술은 능연 역시 장안민과 연문빈 위주로 어시를 선택했다.

이제 겨우 레지던트가 된 마연린과 비교하면 연문빈은 이제 곧 4년차 선임 레지던트가 되고, 훈련의 시간까지 더하면 7년 정도 외과 경험이 있었다. 그런 경험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수술 디테일에서는 결국 드러난다.

마연린이 더 실력을 올리고 싶으면 수술을 더 많이 해야 장안민과 연문빈의 걸음을 따라갈 수 있다. 병원의 젊은 의사는 모두 그렇듯이 다들 966 근무제도는 싫지만, 그렇다고 너무 뒤떨어지는 것도 싫어했다.

“앞으로 아킬레스건 수술하는 환자는 최대한 MRI를 찍도록 해요.”

능연 역시 마연린이 아닌 맞은편 묘탄생에게 지시했다.

“응. 내가 상황을 잘 몰랐네.”

묘탄생이 바로 해명하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곁에 있던 마연린이 설명을 보탰다.

“능 선생은 MRI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지금 운화병원에서 MRI 판독 방면은 능 선생이 손에 꼽히는 의사예요. 그래도 긴급 수술일 때는 X-ray나 CT도 괜찮습니다.”

“내가 능 선생 습관을 잘 몰라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마 선생.”

묘탄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고분고분 대답했다.

“편하게 물어 보세요.”

마연린이 껄껄 웃으며 대답하자 묘탄생은 다시 감사 인사를 했다.

고작 세컨드 어시 자리를 받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능연과 수술을 해본 적이 없으니 세컨드 어시라도 감지덕지했다. 게다가 본인도 이런 ‘큰 수술’은 오랜만이라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묘탄생은 특별히 기구를 체크했다.

각종 스프레딩 포셉, 론저, 오스테오톰 등등. 익숙한 듯 낯선 기구들을 바라보며 묘탄생은 저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청결한 수술실엔 언제나 묘한 흥분감이 감돌았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능연은 고개를 들어 묘탄생을 힐끔 봤다. 함께 하는 의사가 수술 욕구가 있다는 건 수술 압박을 견딜 수 있다는 뜻이니 당연히 좋은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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