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두꺼운 의학 서적을 품에 안은 왕장용이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하구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얼굴과 몸매가 아니었다면 예쁜 초등학생이 책을 끌어안고 안전하지 않은 거리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지나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하구 진료소 근처에 가까워진 후에야 주변의 소리도 들리고 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능연!”
왕장용은 목소리를 높여 고함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열 몇 쌍 눈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왕장용을 빤히 봤다.
왕장용은 저도 모르게 우뚝 섰다.
“석 주임님. 역 주임님, 악 선생님.”
운화병원에서 실습할 때 의사를 적잖게 알게 됐다.
“음, 왕장용. 자네군. 참, 능연이랑 같은 운대 출신이지.”
재활과 주치의 악 선생이 왕장용과 인사했고, 나머지는 그저 매너있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왕장용은 1:1 웃음 서비스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기입니다.”
“그러게. 자꾸 까먹네. 능 선생이 졸업한 지 오래된 거 같아서 말이야.”
악 선생은 감탄하다가 의아한 듯 왕장용을 바라봤다.
“근데 뭐하러 왔냐?”
“능연이 볼 일이 있다고 해서요.”
왕장용은 어이가 없어졌다.
“아, 그렇지. 능 선생이랑 아는 사이니까 왔겠지.”
악 선생의 눈빛에 진지함이 가득했다.
비록 업무 외 일이었지만, 어떤 의사 일을 해주느냐에 따라 의미도 달랐다. 지금 하구 진료소만 해도 여기서 일하면 능연과 가까워질 수 있어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활 의사는 사실 그렇게 필요하지 않으니, 왕장용이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었다.
악 선생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운화병원에서 발전하는 능연을 매우 좋게 보고 있었다. 이따 정말로 왕장용과 경쟁해야 한다면, 다년간 쌓아온 수단으로 이 어린놈을 톡톡히 교육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왕장용 선생님이세요?”
병실 구역에서 나온 연자는 손에 든 핸드폰을 참깨 주무르듯 조심스럽게 흔들었고 그 핸드폰 액정엔 왕장용의 사진이 있었다.
“예, 예. 접니다.”
“능 선생님이 오늘 수술 환자 세 명 모두 재활을 선생님한테 맡기시겠다던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문제없습니다!”
왕장용은 그보다 더 빠를 수 없을 만큼 냉큼 대답했다. 피 공포증 때문에 완전히 재활 쪽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독립 케이스를 맡을 기회는 역시나 귀했다.
옆에 있던 악 선생이 멍해졌다가 물었다.
“누가 더 나은지 비교도 안 하고? 시험 같은 것도 없고? 능 선생은? 아는 사람이라고 차별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데.”
“저희는 작은 진료소니까요.”
연자는 ‘작은’에 악센트를 넣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