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자, 랍스터 맛 좀 보라고. 다들 알아서 들게.”
곽종군은 얼굴 근육에서까지 온화한 빛을 내며 모두를 대접했다.
“하 선생, 체면 차리지 말고 들어. 젊으니까 식욕도 좋을 거 아닌가. 많이 들게. 자자, 한잔 하자고.”
하량은 허둥지둥 잔을 들어 곽종군과 건배하고는 젊고 예쁘지만 자꾸 능연을 힐끔대는 서버가 들고 있는 접시에서 커다란 랍스터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독한 고량주와 랍스터의 청향에 하량은 입 안에 돈이 터지는 죄악적 쾌감을 만끽했다.
열 명 넘는 서버, 농구를 해도 될 정도로 큰 룸, 그리고 정교하게 접시에 담긴 음식들, 늙어서 얼굴이 쭈글쭈글한 손님들을 바라보며 하량은 취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심장외과에 들어오기 전에 계획한 삶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적어도 주치의의 생활이란 이래야 했다.
그러나 심장외과에 들어간 후에야 드라마는 모두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아한 파티, 넘치는 인맥, 끝도 없이 펼쳐진 미식······같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평범한 심장외과 의사는 평범한 환자와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전화, 질리도록 먹는 배달 음식이 다였다.
하량이 처음으로 요리된 랍스타를 본 것은 레지던트 2년 차 때였다. 그리고 그때 그는 이미 심장외과 같은 작은 진료과는 랍스타를 먹을 수 없고 대하도 명절 때나 먹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응학도 처음에는 대하나 겨우 먹었다. 진료과가 커진다고 꼭 돈을 많이 벌고 잘 먹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평균은 됐고, 랍스타를 먹으려면 심장내과나 안과를 가야 했다.
“하량, 무슨 생각하나? 왜? 수술 더 하고 싶나? 늙은이들이랑 같이 식사하자니 답답하지?”
곽종군이 다시 하량에게 말을 걸었다. 원래 포섭하려던 강 주임보다 하량이 확실히 돌파구가 되긴 더 좋았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냥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요.”
“그래, 그런 것 같군. 말주변 있는 놈은 지금 ‘주임님이 늙었다니요, 아직 청춘이십니다. 전립선도 팔팔하고요.’라고 했겠지. 하하하하.”
곽종군은 크게 네 번 웃고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자자, 다들 한잔하게.”
주 부원장이 그저 잔을 들고 홀짝여서 그렇지 술자리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의사는 취할 필요가 있었지만, 예외도 가끔 있었다.
능연도 음료수가 든 잔을 들었다 놨다. 그는 원래 예외인 사람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음료수를 홀짝이는 능연의 신경은 온통 강 주임과 하량에게 쏠려 있었다.
수술실 밖에서 기술을 펼쳐서 강건과 하량에게 동료의 찬사를 얻어 내라고 시스템이 매우 명확하게 말했다. 그러니 수술실 밖에서 두 사람을 치료해야 하는 게 탕탕탕! 결정된 일이었다.
능연은 유심히 두 사람을 관찰하면서 미세한 증상을 놓치지 않도록 수시로 시진을 했다.
강 주임과 하량 모두 심장외과 의사이니, 그들의 찬사를 들으려면 심장외과 수단을 쓰면 손쉽게 목적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수술실 밖에서 심장외과 수단을 쓰려면 기준이 엄격할 수밖에 없고, 모든 능력을 이용해서 아주 작은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심장외과 수술은 감염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모두 최고급 층류 수술실에서 하는데 호텔 룸에서 수술을 하려면 얼마나 위험하겠나. 지금은 의사들이 메스를 가지고 놀다가 단숨에 사람을 죽이고도 오후에 계속 수술하는 19세기가 아니었다.
이따 강 주임이 쓰러지든 아니면 하량이 쓰러지든 일단 목숨을 살리는 치료를 우선으로 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환자가 버티기만 하면 병원으로 돌아가 수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퀘스트가 사라지면 이어서 하면 되지만, 목숨은 없어지면 그만이었다.
술이 세 바퀴 돌고, 네 바퀴 돌고, 다섯 바퀴 돌아도 강 주임과 하량은 쓰러지지 않았다.
능연은 슬슬 오늘은 퀘스트를 완성하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퀘스트에서 오늘 완성해야 한다는 말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 퀘스트를 끝내지 못하면 앞으로 며칠 동안 병원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데 그때 강 주임과 하량이 쓰러지면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퀘스트, 깰 수 있을까?
탁.
강 주임 쪽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났다.
능연이 휙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강 주임 앞에 있던 랍스터 껍질이 바닥에 떨어졌다.
“늙었구만.”
강 주임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유심히 관찰한 능연은 강 주임이 혈전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얼굴이 붉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적잖게 술을 마신 하량이 한 바퀴 술을 돌리고는 잔을 들고 능연 앞에 섰다.
“능 선생. 한잔하자고. 난 원샷, 넌 원하는 만큼 마셔.”
그러고는 고개를 꺾어 잔을 비우고는 혀를 낼름거리며 물었다.
“능 선생, 님 대체 어떻게 연습한 거임?”
“요즘 연습할 시간도 없습니다.”
잠시 되짚어본 능연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매일 수술하다 보면 실력도 늘겠지.”
하량도 무척이나 수술을 하고 싶었다. 주치의 급 의사에게 수술량은 훈련량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수입과 지위도 나타냈다.
심장외과 수술량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하량 같은 젊은 의사들이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점이었다.
능연은 싱긋 웃기만 했다. 그의 기술은 단순히 수술로 익혀낸 게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평소에 내가 어떻게 연습하는지 알아?”
하량은 술기운에 한마디 더 했다.
“어떻게 하는데요?”
능연은 궁금하긴 했다.
“계란으로 해.”
그렇게 말한 하량은 서버를 불러 계란을 달라고 했다.
“계란술 만드는 계란이면 될까요?”
“네.”
매니저가 예의를 갖춰 묻는 말에 대답한 하량이 가방에서 메스를 꺼냈다.
“우리가 자주 하는 게임이야. 메스로 계란에 글자 새기기. 계란이 안 깨지면 이기는 거지. 능 선생 해볼래?”
하량은 그새 밝아진 눈빛으로 물었다.
기회는 쟁취하는 것이다. 하량의 지위와 경력으로 주 부원장이나 곽종군 같은 인물 앞에서 기술을 선보길 기회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운화병원 심장외과가 진작에 존재감이 없어진 건 둘째치고, 설사 존재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 리더급 인물이 수술을 보러 오게 하려면 첨단 수술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심장외과 상태로는 일반 수술도 주임이 먼저 고르는데, 첨단 수술은 당연히 주임의 권리였다. 그러니 하량이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어디 있을까.
지금 같은 기회가 아니면 하량이 실력을 선보일 틈이 없었다.
잠시 후 매니저가 계란을 가지고 왔고, 하량은 바로 받아서 본인 앞에 놓았다.
“능 선생, 내가 시범부터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메스를 들고 날계란 위에 그었다.
껍질이 갈라질 정도로 세게 그었지만, 노른자와 흰자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량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담담한 척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계란 껍질은 벗기고 안에 막은 건들면 안 돼. 시간 있으면 밖에 글자도 새겨도 돼!”
하량은 살짝 취한 상태로 대담하게 계란을 건드렸다.
외과의의 기본은 대담함과 세심함이다.
외과의는 쭈뼛쭈뼛하면 크게 될 수 없고 기껏해야 그냥 평범한 외과의, 정말로 평범한 외과의가 된다.
심장외과 의사는 실력이 어떻든 대담함은 필수였다.
간이 크지 않고 감당 못 하는 외과의는 심장 외상 보건술 같이 쿵쿵 뛰는 심장에 바느질하는 수술을 할 수는 있다고 해도 통쾌하게 하지 못한다.
세심함은 설명할 것도 없고.
하량은 술을 마셨어도 안정적으로 계란을 잡고 있었다.
계란을 샴페인 잔에 올리고 왼손으로 살짝 계란을 잡아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잡은 메스로 살며시 계란 표면을 그었다.
흔적이 진해질수록 계란 위쪽 껍질이 점점 흔들렸다.
주 부원장은 신하의 검무를 관람하는 주군처럼 잔을 들고 깔깔 웃으며 곽종군을 바라봤다.
“잘하네요.”
“재미있고요.”
“우리 진료과에서는 자주 이런 식으로 연습합니다.”
곽종군도 고개를 끄덕이자, 강 주임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수부외과 연습실 같군요.”
주 부원장은 백만 위안짜리 수부외과 생쥐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강 주임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면서 감정을 숨기며 웃었다.
“우리야 수부외과 같은 연습실을 지을 능력이 안 되지요. 계란이 어딥니까.”
“연습실 필요한가?”
마찬가지로 기분 좋게 취한 곽종군이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물었다.
다른 진료과 주임이 물었다면 그 주임이 심장외과 연습실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강 주임도 그저 웃고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강 주임은 곽종군이 얼마 전에 응급센터에 침대 8개짜리 중환자실을 설립한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연습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곽 주임님, 우리 심장외과에 너무 관심이 많으시군요.”
강주임이 빛을 받아 영롱하고 커다란 기형 진주 같은 랍스터 살을 한 조각 집어 들었다.
“진료과끼리 관심 가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곽종군은 대놓고 얼버무렸다.
“응학에서 정말로 신경 써줄 생각이라면 심장 쪽 환자를 많이 보내주시면 되지요.”
강 주임이 술김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곽종군 지위 정도 되면 응급 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매우 크다. 단순히 환자 분류만 하는 게 아니라, 능연이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할 때 밖에서 여러 아킬레스건 환자를 구해올 수 있던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심장외과에 필요한 환자를 곽종군이 오히려 다른 병원에 보내버릴 수도 있고.
정말로 그런 일이야 있겠냐마는, 그래도 의심은 갔다.
곽종군은 은근슬쩍 웃음으로 퉁 치고는 말투가 조금 사나워져서 입을 열었다.
“환자 구하기야 쉽다고 치고, 해낼 수 있느냐가 문제지.”
“수준을 올리는 게 어디 하루이틀에 가능한 일도 아니고요.”
강 주임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하량을 가리켰다.
“저 계란 껍질 벗기는 것도 말입니다. 우리 하량이 쉽게 하는 것 같아도 몇 달 동안 연습하면서 서서히 익힌 거죠.”
“쉽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량을 힐끔 본 곽종군이 강 주임을 보며 웃었다.
강 주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지금 포인트는 그게 아닐 텐데?
계란 껍질을 벗기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하량은 쉽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곽종군의 말에 울컥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확실히 쉽게 하는 건 아닌 게 맞지만, 그럴수록 더 응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좌 선생, 연 선생. 한 번 해보겠나?”
강 주임이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있던 좌자전과 연문빈에게 물었다.
“전 괜찮습니다.”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좌자전은 절대로 기술을 뽐내는 자리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
“해본 적이 없어서요. 저도 괜찮습니다.”
연문빈 역시 미소 지으며 거절했다.
“어려울 것도 없어. 그냥 해보는 건데 뭐.”
강 주임도 미소 지은 채 대답하고는 곽종군을 슬쩍 봤다.
그러자 곽종군이 표정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응급센터 수술은 이런 세심한 게 아니라 크게 크게 하는 게 많지. 능연도 이런 연습은 안 했어. 하루 평균 수술 3건 이상하고 종종 6, 7건도 하는데, 전공이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지.”
곽종군은 혹시라도 능연이 심장외과 의사에게 책잡힐까 봐 능연을 위해서 변명거리를 마련했다.
솔직히 계란 껍질 까는 기술 같은 건 원래 심장외과나 신경외과에서나 쓰는 방법이었다. 쓸만한 의사를 키우는 데 종종 5년에서 10년은 걸리니 가끔 일반외과나 응학을 무시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강건의 심장외과는 너무나 약체였고, 곽종군은 그런 심장외과에 무시당하기 싫었다. 능연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었다.
“다 됐다.”
하량은 조심스럽게 계란을 샴페인 잔에 넣고 테이블 중간 돌아가는 부분에 놓고 슬쩍 밀어 주 부원장 앞으로 보냈다.
껍질이 1/4만 남은 계란이 완전히 얇은 막에만 의지해서 깨지지 않고 버티면서, 안에 노른자와 흰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잘했군.”
“정말 잘했어.”
주 부원장이 한마디 하자 박수가 울려 퍼졌다.
주변에 있던 서버들도 하량을 다시 보는 눈빛이었고 하량의 얼굴이 붉어졌다.
“능 선생도 해 봐.”
하량이 메스를 능연에게 건넸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능연과 비교를 해볼 생각이었다.
능연 같은 의사와 실력 비교해서 이기면 대서특필할 큰 사건이 되는 것이고, 져도 잃을 건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한 경기장에 서는 것만으로도 하량은 큰 홍보가 되었다.
작은 진료과 쪼랩 주치의가 병원 고위층 눈에 들 기회가 생겼는데, 손해도 감수해야 했다.
능연도 자연스럽게 메스를 받아들였다.
벌써부터 그를 주시하던 서버가 엄선한 큰 계란을 얼른 가져다주었다.
하량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까 본인의 계란 1.5배 정도 되는 크기였다.
이거 치트키 아냐?
하지만 규정이 명확한 시합도 아니었으니, 한소리 할 수도 없었다.
물론, 마음은 그렇게 편안하지 않아서, 하량은 다시 술잔을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원장님, 한잔 올리겠습니다.”
주 부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전히 홀짝이기만 하고 바로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 글자 새기는 건가? 뭐라고 새긴 거지?”
“네. 글자 새기는 게 더 재미있는 거 같아서요.”
능연의 대답에 하량은 들고 있던 술잔의 술을 흘렸다.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보니 능연이 한 손으로 계란을 잡고 붓을 놀리듯이 계란 위에서 휘두르고 있었다.
계란은 능연의 손바닥에 찰싹 붙은 것처럼 안정적이었고, 계란 껍질은 심장외과 동료애처럼 취약했다.
하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빠르기도 하지.”
분위기가 싸늘해질까 봐, 주 부원장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강 주임과 하량 모두 가볍게 ‘네’하고 대답했다.
“뭐라고 새겼지?”
주 부원장이 궁금한 듯 물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능연은 그렇게 말하며 그냥 메스를 잡고 한 번 건드렸을 뿐인데, 껍질이 바로 떨어졌다. 그리고 계란에 깔끔한 해서체 글자가 남아 있었다.
그러자 좌자전이 바로 달려나가 반쯤 무릎 꿇은 자세로 고개를 들어 낭랑하게 읊었다.
“모든 명의가 병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심신을 안정하고 욕심을 버리고 대자대비 측은지심으로 오로지 환자의 고통을 구하는 것만 생각해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