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좀 찍어야겠네요.”
주 부원장은 감탄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어 계란 이쪽저쪽을 여러 장 찍고는 SNS에 올렸다.
- 능연 선생의 절묘한 기술을 직접 목격. 3분 만에 계란에 글을 새겼음.
주 부원장이 찍은 다음엔 곽 주임이, 그리고 좌자전과 연문빈이 찍었고 강 주임과 하량도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한쪽으로 계란을 치우자, 룸 안에 있던 서버들이 더욱 난리가 나서 매니저의 말도 듣지 않고 핸드폰으로 찍고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돈 내러 일부러 달려온 제약회사 직원은 더욱 이런 귀한 장면을 놓치기 싫었고, 계란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능 선생의 수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힘들게 연습했었는지는 몰랐네요.”
주 부원장이 감탄하며 말했다. 날계란에 글을 새기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능연처럼 조각을 하다니, 거의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일부러 연습하진 않았습니다.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까 메스를 잡는 것도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능연은 그냥 웃으면서 대답했다.
‘절개’ 같은 기본 동작만 따지면 능연이 따로 연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간 절제 같은 수술로 자연스럽게 메스를 놀리는 실력이 늘었고, 수술을 계속하다 보니 끊임없이 훈련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능연은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에도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다.
주변엔 항상 이렇게 별것 아닌 일도 호들갑 떠는 사람이 많아서 표정도 별 변화가 없었다.
계속 능연을 주시하던 하량도 드디어 능연에 탄복했다.
조금 전까지는 능연을 이기는 순간을 상상했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도 상상 속에서 상대가 무릎 꿇고 패배를 인정하는 게 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하량은 승리한 다음 주 부원장과 곽종군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할지······ 도 모두 생각해놨었다.
그러나 능연이 날계란 껍질에 놀라운 일을 하고 이렇게 담담하게 있을 줄은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능연은 이미 평소에 너무 놀라운 상과가 많았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하량은 정말로 탄복했다.
그때 능연이 하량을 바라봤다.
머릿속에 퀘스트 제시어가 튀어나왔다.
- 퀘스트: 기술을 펼쳐라 (1/2)
- 퀘스트 내용: 수술실 밖에서도 기술을 펼칠 수 있다. 수술실 밖에서 선보인 기술로 강건과 하량에게 ‘같은 동료의 칭찬’을 받아라. 그렇게 더 많은 수술과 자유로운 수술 선택권을 쟁취해라.
- 퀘스트 진도: 하량 (완성)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상자
그와 동시에 ‘같은 동료의 칭찬’ 초급 보물상자 역시 능연 앞에 나타났다.
하량이 내놓은 보물상자였다.
능연은 하량의 부분만 끝났고, 강 주임은 아직도 ‘같은 동료의 칭찬’을 내놓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능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량의 칭찬 상자가 이렇게 쉽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강 주임이 꿈쩍도 안 할 줄은 더욱 몰랐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퀘스트를 완성하기에 조금 어려워진다. 어쩌면 정말로 심근경색이 돌발해야 할지도?
능연이 유심히 강 주임을 살폈지만 불그스레 한 얼굴로 술을 마시는 그에게 심근경색이 생길 징조는 없었다.
‘흐르는 대로 둬야겠네.’
강 주임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그 나이에 일주일에 겨우 20건 정도 수술한다면 그렇게 잘 챙겨 먹지 않고 술을 좀 많이 마신다고 해도 심근경색이 일어나긴 어려웠다.
일반외과나 뇌외과 같은 진료과라면 과 주임이 바쁠 때는 접대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접대받을 수 있을 때가 되면 심근경색이 오거나 뇌경색이 와도 이상하지 않는 수준이다.
능연은 하량이 내놓은 ‘같은 동료의 칭찬’ 초급 보물상자를 열고는 랍스터를 한 조각 집어들어 느긋하게 먹기 시작했다.
익숙한 찬란한 빛 안에 두꺼운 책 한 권이 푸른 빛을 내며 떠올랐다.
능연이 눈을 깜짝이고 보는 사이, 책이 촤르륵 열리며 글자가 나타났다.
- 부분 해부 경험: 심장 해부 경험 10회
능연은 머릿속으로 ‘심장 해부 경험 10번으로 책이 이렇게 두껍다고? 시스템이 두께 개념이 있긴 한가?’라고 생각하며 눈썹을 꿈틀댔다.
허공에서 살짝 흔들리는 책을 능연이 거두자 푸른 빛도 완전히 사라졌고, 능연 앞에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능 선생님, 눈부신가요?”
살짝 눈을 찌푸린 능연의 동작을 알아차린 매니저가 바로 다가가서 다정하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매니저가 ‘눈이 부시지만 괜찮다’라고 받아들이고 조명을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잘 아는 능연은 특별히 그냥 둬도 된다고 덧붙였다.
아마도 잘 알아들었을 매니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로 물러서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능 선생님, 아까 계란에 글자 새기던 장면, 저희 동료가 틱톡으로 찍었는데 올려도 될까요?”
“아, 그러세요.”
능연은 아까 이미 동영상을 찍고 있는 서버를 봤기에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능연의 사진과 동영상이 적지 않은데 절대다수는 본인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물어보기까지 하니 거절할 이유가 더욱 없었다.
매니저는 바로 감사 인사를 하고 신이 나서 뒤로 물러났다.
“날계란 가지고 노는 방법이 사실 하나 더 있지.”
강 주임이 웃으면서 잔을 들었다.
“계란을 깨서 내막을 한 줄로 절개한 다음 다시 봉합해서 뒤집어도 새지 않는지 보는 거지. 그런데 이건 현미경이 있어야 하니까······.”
“저 가지고 왔습니다!”
능연이 재빨리 대답하고는 손짓하자 좌자전이 루페를 내밀었다.
“왜 이런 걸 가지고 다니는 겐가?”
강 주임이 멍해져서 물었다.
“아킬레스건이나 수지 파열 환자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 장비가 없으면 불편하거든요.”
능연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강 주임을 바라봤다.
강 주임은 어쩐지 소름이 돋아서 하하하 크게 웃었다.
“능 선생도 참, 유머 감각이 있군.”
“능 선생이 기계를 가지고 오라고 하면서 확실히 그런 식으로 말하긴 했습니다.”
좌자전이 헛기침하며 나섰다.
“혹시나 능 선생이 매번 이런 걸 가지고 다니는 줄 오해하실까 봐 설명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래, 그래. 그렇겠지. 의사가 밖에 나갈 때 매번 도구를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한가. 안 그래?”
“기관 절개 키트는 가지고 다녀야죠.”
능연은 강 주임의 말을 반박하고는 루페를 쓰고 메스를 들고 계란을 잘 잡고는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다들 핸드폰을 치켜들고 그 모습을 주목했다.
계란 내막을 봉합하는 건 능연이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렵지 않고, 어려운 사람은 못 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계란 위에 글을 새기는 건 국어책을 베끼는 것처럼 글자수가 많을수록 힘들어지는 것과 같아서, 하량 같은 평범하고 평범한 주치의도 운이 좋으면 계란 위에 길게 글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더 많이 새기지 못하는 이유는 실수할 확률이 높다는 것, 그리고 실수하면 완전히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한두 글자 쓰고 나면 한계가 오는 것이다.
그러나 걔란 내막을 봉합하는 건 오히려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 수학 문제처럼 못 푸는 건 못 푸는 것이라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실수할 기회도 없다.
강 주임이 계란 내막 봉합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저 실력을 한번 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무수한 카메라 렌즈 앞에서도 능연은 아무런 영향이 없는 듯 한 손으로 메스를 잡고 깨 놓은 계란 내막에 대담하게 손을 놀렸다.
“실.”
능연이 높낮이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주변 사람들은 혹시라도 계란아 터질까 봐 걱정하는 듯 숨을 죽이고 조용히 지켜봤다.
반쯤 꿇은 채 옆에 있던 좌자전은 가지고 온 작은 상자에서 7-0 봉합사를 꺼내 능연에게 건넸다.
계란 봉합은 당연히 소독 문제를 고려할 것이 없지만 능연은 여전히 신중하게 손을 놀렸다. 그저 동작을 적게 사용할 뿐, 수술할 때랑 똑같이 손을 놀리면서 실과 바늘을 건네받아 다른 곳은 건드리지 않고 정확한 위치에서 바늘로 가볍게 계란 내막을 찔렀다.
몰래 생중계를 하는 서버의 채널에 두 자릿수밖에 없는 관중들이 미친 듯이 글을 입력했다.
- 와 대체 이건 무엇?”
- 뭔가 신세계야.
- 바늘이 이렇게까지 가늘구나.
- 생중계 영원히 막힐 거 같은데? 귀한 영상 잘 즐기자고.
룸 안의 서버들도 모두 집중해서 능연을 지켜봤다.
루페를 쓴 능연의 얼굴이 일부 가려져서 얼핏 이상해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쿨’, ‘패션리더’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버들은 아까 밥 먹을 때는 아무래도 손님 서비스에 집중해야 해서 대놓고 능연을 살피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따질 것도 없으니 모두 핸드폰을 들고 기회를 아끼며 열심히 관찰했다.
게다가 계란 내막 봉합이 계란 껍질에 글을 새기기보다 쉬워 보여도 단순히 감상하기엔 글씨 새기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사람들은 움직이는 능연의 손가락 외에 계란 내막에 일어나는 변화를 거의 볼 수 없었고, 가깝게 서 있는 사람도 검은 선이 점점 늘어나는 것 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강 주임 같은 의사나 계란 내막의 상태를 조금 똑똑히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계란 내막의 변화보다 능연의 동작만 유심히 보면 그만이었다. 봉합 효과는 나중에 계란을 보면 그만이고.
능연은 평소에 수술하는 것처럼 곧게 서서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전에 계란 내막 봉합을 한 적 없어서 오히려 재미있었다.
이걸 장기 훈련 모드로 유지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능연은 편안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놀림은 더욱 물 만난 고기처럼 리듬 있게 움직였다.
그로서는 어차피 같은 봉합인 데다, 손가락 혈관 봉합의 압박감보다 덜한 작업이었다.
날계란 내막 봉합을 실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당연히 압박감이 있을 리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지켜보는 것도 능연에겐 일상이었고, 성공 혹은 실패, 찬양 혹은 비난, 모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 비방하거나 안 좋은 태도를 보여도 누군가 그를 응징할 테니, 능연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
능연에겐 배불리 먹고 소화시키는 느낌에 가까웠다.
사실상 그는 이런 식사 중 이벤트를 좋아했다.
밥 먹다 말고 봉합 한 번 하면, 한 번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됐습니다.”
능연이 살며시 매듭짓고는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술 마신 다음 빈 잔을 내보이는 것처럼 계란을 뒤집었다.
그러자 짝짝짝 박수 소리가 먼저 들렸다. 사람들은 결과는 개의치 않고 능연이 동작을 마치자 일단 박수부터 쳤다. 그게 예의니까.
“내가 한 번 보겠네.”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술기운도 오른 강 주임이 나섰다. 그는 약간 거칠게 앞으로 나가 능연 앞에 있는 계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심하게. 밑부분도 잘 받치고 들어.”
곽종군이 덤덤하게 한마디 하고는 웃는 듯 아닌 듯 강 주임을 바라봤다.
“강 주임, 조금 취했군.”
강 주임은 멈칫하다가 자기가 너무 큰 동작으로 움직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아예 곽종군의 말대로 흥건하게 취한 적 굴면서 능연 앞에 있는 계란을 들어 자세히 살폈다.
“루페 좀 주게.”
강 주임이 거침없이 손을 내밀었다.
능연은 잠시 강 주임을 관찰하다가 심근경색 같은 징조도 없고 모든 게 정상인 것을 판단하고 루페를 그에게 내밀고는 좌자전을 바라봤다.
“철저히 소독할게.”
좌자전이 믿음직스럽게 대답하자 능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편안하게 의자에 기댔다.
강 주임은 루페를 쓰고 집중해서 계란 내막 봉합 상황을 살폈다.
그냥 맨눈으로 볼 때, 내막 봉합은 단순한 검은 선에 중간중간 짧은 가로, 세로 줄이 보일 뿐이다.
그러나 루페를 쓴 시야에서 주는 정보는 너무나 많았다.
곧게 뻗은 가는 검은 선은 봉합 범위와 방향이 정확하다는 뜻이었다. 검은 선이 구부러지거나 접히지 않은 건 봉합사의 장력이 균일하고 봉합 간격이 균형 있다는 것이었다.
강 주임은 눈썹을 치켜들고 짧은 가로 선을 살폈다.
가로 선 역시 검은색이고, 완전히 계란 내막 ‘상처 부위’를 꿰매면서 마치 지네 발처럼 가지런하고 촘촘하게 양쪽을 누르고 있었다.
루페로 관찰한 능연이 봉합한 계란 내막은 보기 좋다기보다 차라리 흉악했다.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는 멈추지 않겠다는 흉악함.
강 주임은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강 주임이 젊었을 때도 절묘한 기술을 많이 연습했었다. 계란 내막 봉합 역시 그가 자주 연습하고 퍼포먼스하던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봉합이 이렇게나······ 생동적으로 시도해보진 못했다.
“테스트 해보세.”
강 주임은 그렇게 말하면서 계란을 들고 살며시 돌렸다.
계란물이 흐르지 않았다.
“대단하군.”
강 주임은 계란을 천천히 샴페인 잔 안으로 돌려놓았다. 식사 시간 중 여흥이었지만, 깊은 압박감을 느꼈다.
갑자기, 능연이 계속 자기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강 주임이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무슨 문제 있나?”
그냥 습관적으로 강 주임을 주시하던 능연이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초급 보물상자 하나가 폴짝 능연 앞에 나왔다.
‘같은 동료의 칭찬’ 제시어도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이어서 능연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 퀘스트: 기술을 펼쳐라 (2/2)
- 퀘스트 내용: 수술실 밖에서도 기술을 펼칠 수 있다. 수술실 밖에서 선보인 기술로 강건과 하량에게 ‘같은 동료의 칭찬’을 받아라. 그렇게 더 많은 수술과 자유로운 수술 선택권을 쟁취해라.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