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27화 (706/877)

운화병원, 응급센터.

당직 간호사 왕가가 다리를 꼬고 핸드폰을 만지다가 메시지를 보더니 펄쩍 뛰어올랐다.

“능 선생님 병원으로 오신대.”

왕가는 크리스마스라도 된 것처럼 기뻐했다.

선임 간호사 유 간호사도 바로 핸드폰을 꺼내 만지면서 혀를 찼다.

“역시 능 선생님. 식사하러 갔다가 다시 당직 서려고 온다니. 맞다. 방 청소 잘했지?”

“오늘 안 봤는데요. 직원 부를게요.”

왕가가 바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급하게 물었다.

“라벤더 향유 쓸 거예요? 능 선생님은 시트러스 향을 더 좋아하는데.”

“시트러스는 코롱 냄새 같잖아. 라벤더가 릴렉스하기엔 더 좋아.”

유 간호사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간호사들을 모두 모았다.

“다들 겸사겸사 병실 정리 좀 합시다. 능 선생님이 지금 돌아오시면 내일 아침에 회진할지도 몰라요.”

“예!”

“알겠습니다.”

평소에는 말을 잘 안 듣는 간호사들도 지금은 매우 열심히 바쁘게 움직이면서 응급센터 병실 구역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려 애썼다.

유 간호사도 정리하면서 만족스러운 듯 어린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간호사들의 당직 시간은 바쁘게도, 그렇지 않게도 보낼 수 있다.

평온하게 지나간 밤에 환자 상태가 평온하면 새로 들어오는 환자 처리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그럼 간호사들도 좀 편안해진다. 그러나 환자 몇 명이 상태가 안 좋은 날엔 다들 정신 없어진다.

그러나 능연이 온다니, 온 응급센터가 덩달아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술에 참여하는 간호사들은 팀으로 움직이는 것에 진작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 간호사의 눈빛이 자연스럽게 구석에 놓여 있던 소고기 통조림으로 향했다.

잠시 고민하던 유 간호사는 사과 하나를 들고 통조림 밑에 두고는 공손하게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조용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유 간호사는 아무리 부지런한 능 선생이라도 하룻밤은 푹 쉬고 내일 다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주: 사과의 중국어 발음이 ’평온하게 지내다‘와 같습니다.)

응급센터 수술 구역.

주 선생은 레지던트, 훈련의, 수련의와 실습생들을 데리고 정식으로 작은 주방에 도착했다.

“의사가 당직할 때는 말이야, 다들 습관이 있을 거다. 그러나 다들 우선 내가 하는 방식을 보고 따라 하다가 나중에 자기 방법대로 하길 바란다.”

말을 마친 주 선생은 요리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끄덕 인사하고는 혼자 엄숙한 얼굴로 위쪽 캐비닛 열쇠를 열어 길고 긴······오겹살을 꺼냈다.

사람 팔뚝만 한 오겹살은 비계와 살이 겹겹이 다섯 겹에 선명한 색깔로 양쪽에 두꺼운 마 끈이 둘려있고, 기름이라도 바른 듯 번들번들했다.

“조림 고기입니까?”

운대에서 온 실습생 제윤조의 캠퍼스 기자 호기심이 순간 폭발했다.

주 선생은 진지한 눈으로 제윤조를 잠시 바라봤다.

“절임 고기다.”

“절임 고기요?”

주 선생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선 절임 고기를 먹는 게 좋다.”

그는 ‘절임’에 포인트를 주어 발음했다.

제윤조를 비롯한 실습생들은 모두 그 뜻을 알아들었다.

주 선생은 긴말 없이 의자를 밟고 팔뚝만 한 오겹살을 천장에 달린 고리에 걸었다. 새로 리모델링한 작은 식당엔 원래 고리를 걸 곳이 없었는데 주 선생의 요구 하에 하나 새로 달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주 선생은 손을 휘둘러 모두를 데리고 정식으로 오겹살을 향해 허리를 굽혔고 입으로 뭔가 중얼댔다.

제윤조가 고개를 둘러보니, 주 선생뿐만 아니라 연차 높은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로 진정성을 가지고 절을 했으며 수련의 역시 주 선생에게 뒤지지 않을 진지하고 진실한 얼굴이었다.

젊은 의사일수록 오겹살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했다.

제윤조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생각에 잠겼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됐다. 치워.”

허리를 편 주 선생은 편안해진 얼굴로 밑에 레지던트를 시켜 오겹살을 꺼내 다시 캐비닛에 넣고 문을 잠갔다.

레지던트와 수련의들도 편안해 보였다.

실습생과 훈련의의 표정은 어리둥절했다.

키 크고 건장한 수련의 임기가 하하 웃으면서 사람들을 제사 모드에서 깨웠다.

“마침 내가 사과를 샀어. 다 같이 나눠 먹자.”

그는 뒤돌아서 냉장고에서 락앤락 케이스를 꺼냈고 뚜껑을 열자 가지런히 들어있는 사과가 보였다.

“사과를 잘라 놨더니 색이 좀 변했네. 사과 자체는 좋은 사과다.”

임기는 이쑤시개 한 움큼을 꺼내오며 껄껄 웃었다.

“품종은?”

“국광이요.”

주 선생이 냉정하게 묻는 말에 임기 역시 암호 맞추기 하듯 엄숙하게 대답했다.

다른 의사들 역시 순서대로 사과를 받았고, 사과를 좋아하든 아니든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맨 뒤에 서 있던 제윤조는 사과를 받아들고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주 선생님, 왜 품종을 물은 겁니까?”

오겹살에 절도 했고, 사과도 먹은 주 선생은 느슨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당직할 때 먹기 적당하지 않은 품종도 있으니까. 예를 들어 부사. ‘사’자 들어가잖아.”

그러자 임기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야. 언젠가, 우리 병원에서 당직설 때 부사 하나 먹은 다음에 그날 밤 국도에서 사중 추돌 사고가 일어나서 한 번에 8명이 죽었어. 생각해보라고 국도야, 속도가 얼마나 되겠어. 그런데도 사중 추돌 사고라니. 소름 끼치지 않아?”

주 선생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젊은 의사랑 간호사는 잘 몰라서, 사과만 있으면 평온한 줄 아는데. 머리가 있으면 생각해 봐, 빨간 부사, 홍옥 이런 빨간 품종, 당직할 때 먹고 싶어? 그야말로 살의를 품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빨간 부사가 제일 소름이죠. 빨간 4라니. 으으, 끔찍해.”

“홍옥도 마찬가지야. 한번은 멀쩡하던 충수염 환자가 있었고, 다음 날 바로 수술할 거였는데 밤에 갑자기 통증이 심해져서 그 밤에 수술실로 들어갔거든. 세상에, 터졌잖아. 초를 다투는 전쟁이었지.”

제윤조는 눈앞에 보이는 사과를 먹고 싶지 않아졌다.

“난 그럼 자러 간다. 무슨 일 있으면 일단 모여서 상의하고, 정 안 되면 그때나 불러라.”

그때 주 선생이 기지개를 켜며 하는 말에 임기 등은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 선생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그적어그적 당직 휴게실로 들어갔다.

다른 의사들도 바로 해산했다. 이선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당직 때 잠깐 눈은 붙일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8시간도 잘 수 있었다.

물론 운이 너무 안 좋으면 할 수 없이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아침에 이어서 수술해야 한다. 레지던트에게는 흔한 일이었고.

마지막에 남은 제윤조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표정으로 모두를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늙으면 다 저래. 신경 쓰지 마.”

같은 팀 실습생은 이때다 싶어 냉큼 다가가 호감을 살 수 있는 말을 했다.

“응.”

제윤조는 아까 조금 먹고 반은 넘게 남은 사과를 내려놓고 보는 사람 없을 때 쓰레기통에 몰래 던졌다.

“맞아. 미신이야.”

같이 온 실습생 남자도 남은 사과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난 사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

“나도야.”

제윤조가 끄덕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식당 구석 자리로 가자 실습생 남자도 제윤조가 고른 자리를 보고는 속으로 기뻐하며 냉큼 따라가 맞은편에 앉았다.

제윤조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별말은 하지 않고 바로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면서 곁눈으로 식당에 사람들을 살폈다.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것에 익숙한 남자는 싱긋 웃었다. 그는 사교성이 없는 여자가 사실 더 공략하기 쉽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제윤조, 요즘 무슨 어플 제일 많이 써?”

“배고파?”

“너 배고파?”

이렇게 갑자기 데이트 신청을 해?

제윤조는 고개를 흔들면서 곁에 있는 루이비통 가방에서 망고를 꺼내 남자 앞에 놓았다.

“너 배고프냐고.”

이럴 때 배고프지 않다고 할 놈이 있어?

남자는 기쁜 마음에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깎을게, 같이 먹자.”

제윤조는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용과(火龍果: 드래곤후르츠)도 살며시 남자 앞에 두었다.

식탐 쩌는 앤가?

남자가 멈칫했다.

그리고 아직 어리둥절해 있는데 왕자이 우유(旺仔牛奶 달콤한 맛의 우유) 한 팩이 망고 옆에 나타났다.

“개······바쁨?(*망고, 화용과, 왕자이 우유의 앞글자를 딴 뜻)”

드디어 의미를 알아들은 남자가 긴장해서 좌우를 살피면서 다른 의사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기, 제윤조야. 자꾸 교수님들한테 태클 걸지 말라고. 누가 이걸 본 다음에 오늘 밤에 바빠지면 얼마나 욕을 먹으려고 그래.”

“바쁘면 좋지.”

제윤조가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머리를 톡톡 내리쳤다.

“넌 네 신분도 잊었니? 넌 실습생이야. 야간 당직 때 환자가 없으면 언제 수술할 기회를 얻을래?”

“실습생은 잠 안 자도 되냐?”

남자는 아직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듯 되물었고 제윤조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방에서 마오쇠이왕(*선지, 피가 왕성하게 나온다는 뜻) 컵 훠궈를 꺼냈다.

“정 무서우면 이거 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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