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31화 (710/877)

심각한 눈빛으로 수술대 위의 환자를 바라보는 요 부주임은 손에 든 메스가 무거웠다.

지혈은 어느 외과의에게나 낯선 일이 아니며, 부주임 의사에게는 더욱 일상다반사였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오늘 환자의 지혈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욱 잘 알았다.

칼을 대는 건 쉬워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출혈을 잡지 못하면 환자는 수도꼭지를 연 것처럼 피를 흘릴 것이고 수혈을 두 곳으로 해도 부족할 것이다.

요 부주임은 이 죽일 놈의 상황을 너무 잘 알았다.

그는 손에 메스를 든 채 여전히 능연을 힐끔대다가 한 걸음 물러나서 나직이 물었다.

“능 선생, 내가 개복하고 능 선생이 지혈할래?”

능연의 맨손 지혈은 온 병원에서 유명했다. 개복은 어려운 것이 없었다. 그냥 열쇠로 문을 여는 것이고 포인트는 문을 연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수술실 분위기가 좋아졌고 능연의 자신감이 강해 보였지만, 요 부주임은 그래도 안전한 패를 쥐고 싶었다.

하지만 현장 지휘에 바쁜 능연은 직접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유감이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구급차가 바로 도착할 겁니다. 직접 하셔야 해요.”

“어, 그래.”

요 부주임도 어쩔 수 없었다. 이유도 타당하고, 어쨌든 수술대 위 환자는 그의 환자였다.

다시 말하자면,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도 완전히 전가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 연다.”

요 부주임도 더는 긴말 없이 문을 열 듯 재빨리 메스를 그었다.

능연의 명령이 있으니, 그 과정도 전과는 달랐다.

요 부주임은 아쉽다는 듯 속으로 탄식했다. 능 선생도 역시 성장했군. 전에는 이렇게······.

그때 능연이 말을 꺼냈다.

“최대한 아래로 오픈하세요. 복막 연 다음에 손을 넣어서 혹시 블리딩 포인트가 그쪽인지 오른쪽 더듬어 보세요. 중간에서 30도 정도 오른쪽일 겁니다.”

요 부주임이 멈칫했다. 이렇게 구체적이라고?

그러나 꼬치꼬치 물을 시간이 없었다.

요 부주임은 살짝 숨을 들이쉰 다음 그동안 참가했던 모든 시험 때처럼 정신을 집중했다.

시험 보기 전에 얼마나 준비했든지, 모든 가능성을 꼼꼼히 체크했든지, 수험장에 들어가면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 그리고 무슨 예상 밖의 상황이 닥치든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수술 기회도 단 한 번이었다.

메스를 긋기 전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책임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했던 요 부주임도 일단 메스를 긋고 나면 모든 생각은 과거형이 될 뿐이라는 걸 알았다.

수술대에서 일어난 일만 마지막 결론이 된다.

요 부주임은 얼굴을 찌푸리고 메스를 놀리면서 석션을 명령하고 능연이 말했던 대로 환자 복강에 손을 집어넣었다.

요 부주임은 맨손지혈 경험도 자신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동작이 조금 더디고 느렸다.

다행히 능연이 아무런 말이 없자 요 부주임도 조금 안심했다.

여기서 지적당하면 보통 껄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찾으셨습니까?”

“찾고 있어.”

뒤에서 들리는 능연의 목소리에 요 부주임은 피가 이렇게 많이 흐르고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냐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능연은 눈썹을 찡그리고 손으로 가상 인간을 불러냈다. 요 부주임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본인도 손을 놀리고는 바로 가상 인간을 치웠다.

중급 보물상자에서 나온 가상 인간이니 스태미너 포션처럼 마시고 싶다고 펑펑 마실 수 없고 아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요 주임님, 팔뚝 수직 방향으로 1cm 정도만 조금 앞으로 가세요.”

능연은 가상 인간으로 얻은 정보대로 정확한 위치를 짚어 주었다.

“어, 그래.”

요 부주임은 능연이 멀리서 그렇게 정확하게 짚어 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해보는 게 뭐 어때서. 어차피 환자 복강이 엉망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요 부주임은 손가락을 살짝 치켜들고 능연을 바라봤다.

“구부렸다가 다시 밑으로.”

요 부주임이 동작을 묻는 것으로 생각한 능연이 자세히 지시하자, 요 부주임이 싱긋 웃으며 검지를 움직였다.

절대로 그 느낌을 놓치지 않을 아주 미약하고 미약한 힘이 검지 끝에 느껴졌다.

요 부주임은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재빨리 검지를 세웠다.

“찾았다.”

요 부주임은 매우 놀라서 고함쳤다.

전에 했던 맨손 지혈은 대부분 눈으로 보면서 진행했고, 이렇게 큰 출혈 포인트도 아니었다.

매우 험난할 줄 알았던 수술을 손가락 하나로 해결한 요 부주임은 찍었던 문제를 맞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책상에서 발견한 커닝 용지에 오늘의 어려운 문제 답안이 있는 느낌이었다.

“힘 너무 주지 마세요.”

능연은 냉정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마취의를 바라봤다.

“어서 수혈하시고요. 혈압 돌아왔나요?”

“네. 수혈 중입니다.”

마취의 역시 당황한 상태였다.

그는 자주 정형외과와 요 부주임과 팀을 이루는 마취의였지만, 이런 상황은 눈으로 목격한 건 둘째치고 들어보지도 못했다.

능연의 맨손 지혈은 운화병원에서 이제 희귀할 것도 없지만, 다른 사람을 지도해서 맨손 지혈을 해내다니. 적어도 요 부주임은 전에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마취의가 가장 잘 알았다.

수술실 분위기가 더욱 조용해졌다.

“다른 문제 없으면 전 이만 나가겠습니다.”

끝까지 손을 대지 않은 능연의 행동은 평소와 다름 없었지만, 마음은 비슷했다.

요 부주임은 능연과 바로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돌려 모니터링 기기를 주시했다.

그의 마음은 지극히 평온하지 않았다.

그의 손은 아직 환자의 피 안에 있었고, 손가락으로 환자의 파손된 혈관을 만지고 있었다. 외과의의 일상이었지만, 아까 과정을 회상해본 요 부주임은 평소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술실에서 나가 응급센터 최전선으로 돌아갔다.

요 부주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개복 부위를 더 크게 늘렸고, 석션을 최고 공률로 올린 다음 눈으로 출혈 포인트를 찾아내 봉합을 시작했다.

봉합 위치가 좋지 않아서 봉합 속도는 조금 느렸다. 요 부주임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너 아까 능연 지도하에 수술한 거 아니니? 레지던트처럼 말이다.

곽종군이 집에서 허둥지둥 병원에 도착했을 때 세 번째로 도착한 구급차가 휩쓸고 간 피크는 이미 지난 때였다.

아직 응급 로비에서 대기 타는 의사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훈련의 둘, 그리고 진료과에서 달려온 초짜 레지던트 서넛뿐이었다.

그리고 능연은 예전처럼 응급 처치실 혹은 수술실로 달려가지 않고 아직도 구급차 출입구에 서 있었다.

능연의 쭉 뻗은 몸매에 곽종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의료진이 묘하게 안심했다.

“구급차는 몇 대나 왔나?”

곽종군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졌다. 능연이 아직 나서지 않았다는 건 응급센터에 아직 여력이 있다는 뜻이었고, 운화병원 응급 시스템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전투에서 장군 깃발 아래 장갑차가 아직 출동하지 않은 느낌이라 곽종군은 자기가 늦은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놓았다.

막 통화를 마친 능연은 곽종군의 질문을 듣고 바로 돌아서서 웃어 보였다.

“총 12대, 환자 21명입니다.”

막 앞으로 내딛던 곽종군의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22번째 환자가 될 뻔했다.

“구급차는 몇 번 왔는데?”

“세 번이요.”

“잠깐 사이에 세 번이나?”

“네.”

“이 녀석들이······.”

어떤 가능성을 떠올린 곽종군이 눈썹을 찌푸렸다.

“경상 환자가 많던가? 이것들이 우리 돈으로 먹고 즐기면서······.”

“구급차마다 중상 환자가 있었습니다.”

능연이 한마디로 곽종군의 추측을 차단했다.

“마땅히 그래야지.”

욱하려던 곽종군 얼굴에 분노가 사라졌다. 병원으로서는 중상 환자가 경상 환자보다 훨씬 이득이었다.

외상 환자는 팔 하나만 부러지면 X-ray 찍고 깁스하고, 그게 다였다.

그러나 중상 환자는 달랐다. 특히 ICU에 들어갈 정도로 중상인 환자는 수액 수량과 종류만 해도 작은 진료소의 약 투여량과 비교될 정도였다.

운화 응급센터 관리자인 곽종군이 신경 써서 휴게실을 만들고 구급요원과 기사를 공짜로 먹이고 쉬게 해준 것은 모두 병원을 위해서였다. 경상 환자는 어디로 보내든지 상관없고, 중상 환자는 운화병원으로 보낼 것, 그것이 병원 휴게실에 있는 피자에 쓰여 있는 문구였다.

곽종군은 순간 뭔가 의문인 듯 능연을 바라봤다.

“중상 10명을 모두 잘 처리했다고?”

“네. 각 진료과에 분배하는 것 위주로요. 우리 수술실은 아직 하나 남아 있습니다.”

능연이 재빨리 대답했다.

곽종군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돌발 사고에서 응급센터가 초보적인 구조를 하고 환자를 안정시킨 후 다른 진료과로 보내면 임무는 완성한 셈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곽종군의 머릿속에 큰 물음표가 떴고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각 진료과에서 모두 잘 협조했고, 능 선생 역시 합리적으로 분배해서 순조롭게 트랜스 됐습니다.”

구석에서 나온 좌자전은 곽종군이 어디에 의문을 품는지 너무 잘 알았다. 곽종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심지어 본인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진료과가 협조한다고 해도······.”

곽종군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런 대규모 돌발 사건에 협조하지 않는 진료과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응급센터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는 진료과와 의사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비협조적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런 행동이 반드시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외과의는 특수한 직업인데, 병원의 플로우가 아무리 순조로워도 환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병원은 조금 더 표준화하고 플로우를 정하려고 하지만, 인간의 몸이 표준화되기 전에는 병원에서도 억지를 부릴 수 없는 일이다.

응급에 대해서도 진료과와 의사마다 다른 습관과 요구가 있고, 응급센터에서 하라는 대로 모두 다 따르리라는 법은 없었다.

곽종군은 자연스럽게 좌자전을 바라봤다.

곽종군 눈빛의 의미를 알아들은 좌자전은 수사자의 눈빛을 알아본 새끼 사자처럼 고분고분 쓰다듬으라고 앞발을 내밀고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능 선생 지도 수술의 효율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게 당연한 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해 못 하고, 운화병원 사람들은 모두 당연하다고 여길 말을 곽종군이 했다.

“곽 주임네 능연이 어떻게 지도 수술을 하는지 한 번 보시면 알 겁니다.”

비뇨기과 부주임 곽립청이 느릿느릿 다가왔다.

“자네한테 폐 끼친 건 아니지?”

곽종군은 일단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지도를 우리가 받았는데요. 폐가 아니라 도움이었죠.”

곽립청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곽종군은 그 말투에 은근한 원망이 담겼음을 느꼈지만, 무기력함도 느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무기력은 지금 상황에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지도했나?”

곽종군은 드디어 관심 있는 문제를 물으며 능연을 바라봤고, 능연은 잠시 되짚어 보더니 대답했다.

“제가 해결 방안을 내고 받아들이고, 그게 답니다.”

곽종군이 곽립청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곽립청 주임?”

곽종군은 곽립청이 능연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이상한 부류면서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특히 본인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며칠이나 화장실에 숨어서 호객하듯 포경 수술을 했고, 숫자를 맞추기 위해 본인 수술도 했던 ‘한 말은 지킨다’의 모범 사례라는 걸.

“그 댁 능연의 눈이 MRI보다 빠르더라고요. MRI 판독 실력이 대단한 건 알았어도 MRI도 찍지 않고 요도관 어디가 터졌는지 찾아내는 건 살아서 처음 봅니다. 맹세해요.”

“아.”

곽종군이 머릿속에서 디테일을 조합하는데 구급차 2대가 또 들어왔다.

“지켜보시죠.”

곽립청이 곽종군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그때 남은 레지던트 두 마리와 실습생 두 마리가 이미 달려갔다.

능연은 직접 나가지 않고 여전히 로비에 서 있었다.

레지던트 두 마리가 재빨리 환자를 증세 경중에 따라 구분했고, 경상 환자 셋은 실습생이 처치실로 데리고 갔다.

두 중상 환자는 능연이 서 있는 곳을 지나쳐 응급 처치실로 향했다.

“이 환자는 잠시만. 흉외 협진 콜 해줘.”

순서대로 환자를 간단하게 검진한 능연이 환자 하나를 막아섰다.

그리고 다른 환자는 바로 응급 처치실 안으로 들어갔다.

“흉외 선생님 콜해서 늑골 혈관 보라고 해. 활동성 출혈 있을 거야.”

사실 그는 이미 환자가 지나칠 때 가상 인간을 꺼내 재빨리 해부해서 증상을 확신했다.

능연이 오늘 발견한 방식이었다. 지극히 짧은 시간, 예를 들면 1초 만에 환자를 종횡 그러니까 관상면과 야상면으로 해부해서 자연스럽게 대량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가상 인간을 쓰는 건 낭비지만, 오늘 같은 돌발 상황에는 덕분에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다.

그렇게 아낀 시간에 다른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까.

곽립청이 혀를 끌끌 차며 곽종군을 바라봤다.

“보셨죠? 사진 찍을 것도 없이 힐끔 보고는 바로 블리딩을 찾아냅니다.”

곽종군은 멍청이 보듯 곽립청을 바라봤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응급센터는 이제 이런 것도 척척합니까?”

곽종군이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 가슴에 피 흘리는 거 안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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