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선생.”
두과 제약회사 직원이 창서제약 황무사와 함께 회식이 끝나고 나오는 능연을 뒤쫓았다.
계산도 가로채서 하고, 들어가서 술을 접대하면서 얼굴을 내밀고, 현지 제약회사 직원까지 초대한 것은 모두 이 순간 능연하고 대화를 잘 해볼 생각 때문이었다.
“가면서 말씀하시죠.”
곁에 언제나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사람이 넘치는 능연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유치원 때부터 고기를 내밀며 볼 키스를 해달라던 학부모가 있었고, 의사가 된 후에는 능연의 상상을 초월하는 제약회사 직원의 별별 접근 방식이 다 있었다.
능연은 언제나 자유 방임 주의였다. 다른 사람의 생각, 행동을 결정하고 저지할 수 없으니 상대가 뭘 하는 건지만 묻고 무슨 생각인지는 묻지 않았다.
두과 제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약회사로, 국내 영업 규모도 작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 앞에서 제약회사 직원은 언제나 비굴하고 능연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제약회사 직원들이 능연을 졸졸 따라갔다. 선두에 선 직원이 능연을 바싹 뒤쫓으며 말을 꺼냈다.
“능 선생님, 오늘도 대단한 수술을 하셨다고.”
“어느 수술 말입니까?”
능연이 그의 말을 자르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수술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진지했다.
하지만 두과 제약회사 직원은 말문이 막혔다. 그냥 표준적인 인사말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라는 의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오후······첫 수술?”
혹시라도 능연이 다시 캐물어서 또 말문이 막힐까봐, 유일하게 알고 있는 수술을 입에 올렸다.
“아.”
“제가 무슨 실수라도.”
두과 제약회사 팀장은 나이가 좀 많아 보였다. 서른 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것이 충동적이고 거침없을 나이는 지났을 텐데, 지능은 주량과 함께 오르지 않나 보다.
“오후 첫 수술은 생중계도 안 했고, 그쪽이 수술실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수술 대단했다는 말도 그냥 빈말인 셈이죠. 능 선생은 그런 찬사엔 상대 안 합니다.”
마연린은 얼굴이 두껍지는 않지만, 아까 상대랑 술 한잔했던 정을 봐서 일부러 설명해주었다.
“아, 그렇군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제약회사 직원은 제 뺨을 한 대 내려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
“그쪽이 의사도 아니고, 칭찬 하나 마나 대수로울 것도 없습니다. 용건 있으면 말씀하세요.”
마연린이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예, 예, 예.”
두과 직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호흡 한 번 하고 본인이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갔다.
“조금 전에 나눈 이야기랑 완전히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능 선생님, 저희 두과가 다음 주 운화에서 학술회의를 하나 엽니다. 능 선생님을 초청해서 강연 하나를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괜찮으실까요? 물론 보수랑 차비 같은 건 최고 수준으로 집행하겠습니다.”
“무슨 회의입니까?”
“저희 바늘과 실을 홍보하는 자리입니다. 능 선생님도 저희 제품 써보셨지요?”
“아, 그러네요. 써봤네요.”
능연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대답했다.
“네네, 능 선생의 변함없는 성원에 늘 감사드립니다. 능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현장에서 저희 제품으로 수술 두어 건 해주십사, 수술 설명도 하시면서 저희 제품의 특징도 설명해주시면 제일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제약회사 직원은 능연의 표정을 살피면서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저희가 플랫폼 하나를 능 선생님께 제공하는 거고요, 선생님께서 뭘 하시든 그건 선생님 자유입니다. 단 하나, 작은 부탁이 있다면 저희 경쟁 업체는 거론하지 않아 주셨으면 하는 거랍니다. 아예 다른 제약회사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면 제일 좋고요.”
“설사 단점이라도 얘기 안 하는 게 좋습니다.”
황무사가 옆에서 웃는 얼굴로 한마디 보탰다.
“무슨 얘길 하든 상관없다고요?”
능연이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그렇습니다.”
두과 제약회사 직원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 있는 의사에 대한 표준 대우였다. 중국의 대형 제약회사는 해마다 소위 학술토론회를 1만 건 이상 개최하는데, 그 수많은 학술토론회체 모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름을 붙이는 의미도 없었다.
사람은 청개구리 심리가 있어서, 제약회사에서 대놓고 홍보 학술회의를 열면, 초짜 의사야 공짜 식사라도 얻어 먹을까 싶어서 여러 건 돌기도 하지만, 실력 있는 의사일수록 당연히 점점 참석 횟수가 줄어든다.
그러니 제약회사의 학술토론회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말로 학술토론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물론, 꼼수는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두과에서 능연을 초청하는 것도 능연이 자주 그들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능연을 초빙해 시범 수술을 하고 관련 강연을 한다면, 능연이 두과의 제품을 사용하기만 해도 대대적인 홍보 효과를 얻는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하는데 A사 간장을 쓰고 B사 치킨스톡을 쓴다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간장이나 치킨스톡을 써야 할 때 먼저 그 제품을 고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술실에서 그런 효과는 더욱 뚜렷해진다. 초심자는 조건 제한만 없다면, 대부분 선배의 경험을 복제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처음부터 할 일 없이 메이커를 교체하는 의사는 없다. 특히 초짜는 소모품 하나 바꿨다가 수술이 잘못되면 정말로 할 말이 없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수술 방식에 익숙해지고 본인만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생긴 다음 본인이 좋아하는 도구, 설비, 소모품으로 바꾸는 건 제약회사도 손해 볼 것이 없다. 특히 대형 제약회사는 제공할 수 있는 아이템을 수도 없이 준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능연은 조금 머뭇거리면서 턱을 문질렀다. 주말엔 원래 병원 밖에서 출장 수술을 하기도 하니까, 시내에서 학술회의에 참석하면서 그 김에 수술 두 건, 그것도 선택할 수 있는 수술을 한다면 타지역으로 날아가는 수고를 덜 수도 있다.
하지만 수술 두 건뿐이라면, 출장 수술과 비교해서 수량이 너무 적었다. 그러니 능연은 남는 시간에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능 선생님. 요즘 유명한 의사는 다들 학술회의 강연 하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들을 사귈 경로도 되고요. 아니면 의사들이야 만날 병원에 틀어박혀서 사람 사귀기가 쉽습니까? 아는 의사가 많아져야 환자도 더 많이 소개하고 받고, 그리고 지도 수술을 하러 갈 기회도 많아지고 그러는 거죠.”
능연 앞에서 서성거린 지도 2, 3년 된 황무사가 바로 능연이 혹할 만한 화제를 입에 올렸다.
의사에게 명예와 이득은 나눌 수 없다. 유명한 의사는 당연히 이득이 있지만, 이득이 있다고 반드시 유명한 건 아니라서, 의사들은 처음부터 유명세를 쫓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명의가 되려면 환자의 입소문만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다.
황무사는 능연 같이 수술 좋아하는 사람을 너무 잘 알기에, 두어 마디 만에 능연에게 학술회의에 참가하는 의미를 깨우쳐줬다.
“좋아요. 그럼 가봅시다.”
잠시 생각하던 능연은 곁에 있는 두과 직원에게 물었다.
“어떤 화제도 괜찮다고요?”
“예, 뭐든 상관없습니다.”
두과 제약회사 직원이 비굴하게 웃으며 통쾌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