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선생, 저녁에 식사 같이 하게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능연의 수술이 끝나기를 지키고 있던 곡 선생은 무신 시 1 병원 의사들보다 먼저 능연을 초대했다.
원래 수술실 안까지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능연의 수술실엔 사람이 많고, 능연이 데리고 온 간호사가 인원을 관리해서 들어갈 기회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아부 떨기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 곡 선생은 현명하게 수술실에서 물러나 휴게실에서 기다렸다.
무신 시 1 병원 의사들도 그와 함께 능연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들 역시 수술실 인원 제한 문제로 수술 참관도 하지 못하고 쫓겨났고 결국 수술실엔 부주임급 이상 의사나 겨우 들어갔다.
참관실이 없는 병원이라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휴게실에 막 들어서던 능연은 누군가 지키고 있다가 가로막을 줄은 몰라서 걸음을 멈췄다. 물론, 이런 장면은 매우 익숙했다. 상대가 지금 편지와 종이학을 건넨대도 능연은 매우 침착할 것이다.
능연은 늘 그렇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곡 선생이 멈칫했다.
이렇게 바로 거절? 아니,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음, 일단 침착하자. 아직 내가 무지개 아부를 떨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거야. 소식만 전해 들으면 능 선생도 나를 달리 보겠지.
곡 선생은 그런 생각을 하며 좌자전을 바라봤다.
좌자전은 매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곡 선생님, 우리 능 선생은 밖에서 먹는 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다시 시간 잡도록 하죠.”
곡 선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머쓱한 듯 웃었다.
“그렇지. 이해합니다. 요즘은 다들 집밥을 좋아하죠. 밖에 음식은 MSG가 너무 강해서. 그래도 우리 지금 무신 시에 있잖습니까. 운화에 가서 밥 먹고 돌아올 수는 없잖아요. 제가 아주 정갈한 밥집 알아 놨습니다. 분명 입맛에 맞을 거예요. 몸에도 좋은 음식들이고······.”
“곡 선생님, 우리 팀 밥은 제가 합니다.”
엽사공이 투지를 불태우며 앞으로 나서서 매우 진지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우리, 능 선생은, 요즘 내가 하는 밥을 좋아합니다.”
엽사공은 그렇게 말하고는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지면서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먼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곡 선생은 멍하니 엽사공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 무슨 뜻이죠?”
곡 선생은 자기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병원 수술실에 작은 주방이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주방은 아니라 국 끓이고 밥 데우는 정도는 쓸 만해도 튀기고 볶고 하는 건 무리라 엽 선생이 적당한 곳을 구해서 밖에서 밥을 한 다음에 여기로 가지고 옵니다. 덕분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죠.”
“아니, 그러니까, 저분이 밥을 하러 갔다고요?”
좌자전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이 몸이 엽사공을 불러들인 건 요리 솜씨가 마음에 들어서라오,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외과 의사도 손 놀리는 솜씨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요리사와 외과 의사의 공통점을 지금 늘어놓을 수도 없고, 좌자전 선생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곡 선생님도 안 바쁘시면 같이 식사 하시죠.”
능연이 그렇게 말하며 좌자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엽 선생한테 말해둘게.”
좌자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 끝에 서 있는 제윤조 학생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실습생 제윤조 학생이 바로 노트를 꺼내 간단하게 기록하기 시작했고 곡 선생은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내가 능 선생하고 여기서 같이 밥을 먹어도 될까?”
그저 능연과 한 자리에서 밥을 먹고 싶었던 그는 속에 없는 말을 했다.
“상관없습니다.”
능연이 따듯한 미소로 화답했다.
단호하게 상대방 초대를 거절한 후에 부드러운 미소로 대하는 것, 어머니 도평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학교 다닐 때 능연은 자주 음료 같은 걸 받았고, 가방을 들고 있으면 항상 요구르트를 넣어 다녔다. 가벼워서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좋았다.
거절당해서 훌쩍이던 여학생도 요구르트를 받아들고 이로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감정도 점점 진정되곤 했다.
곡 선생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받아들였고 능연 일행과 같이 앉아서 녹차까지 받았다.
뾰족 선 새잎이 예쁜 찻잔에 동동 떠 있는 모습에 곡 선생은 고급 호텔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곡 선생은 이제 능 팀의 내막을 좀 알 것 같았고, 출장 수술을 나와도 상해에서 자기가 지내는 것보다 훨씬 잘 지낸다는 걸 알고는 정말로······부러워졌다.
“다구와 찻잎을 직접 가지고 온 겁니까?”
“도자기 잔으로 차를 마시는 게 유리잔보다 더 릴렉스 되는 느낌이라서요.”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집안에서도 항상 이런 식으로 차를 마신다는 얘기잖아.
곡 선생은 저도 모르게 능연을 바라봤다.
한 손으로 찻잔받침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찻잔을 든 능연의 동작은 표준적인 다도와는 차이가 났지만, 그래도 우아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모두가 이런 자태를 배워야 할 것만 같았다.
“능 선생이랑 같이 수술하면서 배우고 싶군요.”
곡 선생이 차를 홀짝이며 농담 반 진심 반으로 한탄했다.
“사람이 다 차서요.”
능연도 차를 한 입 홀짝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그의 밑엔 정말로 사람이 꽤 많았다. 특히 얼마 전에 의사 두 명이 추가되어서, 당분간 정말로 사람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받더라도 상대적으로 젊은 의사를 받을 생각이었다. 곡 선생처럼 마흔 넘은, 게다가 어쩌면 좌자전보다 나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 의사의 경쟁력은 너무 떨어졌다. 다음에 비슷한 증명 퀘스트를 받는다면, 곡 선생에서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서서히 마음이 편안해지던 곡 선생의 어깨가 다시 굳어버렸다.
능연, 이 자식. 정말로 말을 잘 못 하는구나.
곡 선생은 눈꺼풀을 내리깔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바로 마음을 다스리고는 능연의 말에 대답했다.
“유감이군. 사실 능 선생 수술은 보기만 해도 좋지. 시간만 된다면 아래 의사들을 모아서 참관하고 싶다니까.”
그 말에 능연은 찻잔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수하 의사의 실력이 동기를 넘어섰다는 걸 증명하기에 참관 수술은 필수 항목 같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몇 명이나, 얼마나 오래 참관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그럼 우리 병원으로 와서 참관하세요.”
능연은 재빨리 결정을 내리고 곡 선생에게 대답했다.
곡 선생은 이번엔 눈알까지 굳었다.
그냥 하는 말을 정말로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난처한 고민에 빠졌다. 그냥 인사말이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 내 목을 조르는 꼴이 될 텐데?
“참관 수술 좋지.”
곡 선생은 그렇게 말해놓고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미 생각이 굳은 상태에서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시간 나면 꼭 그렇게 할게. 아니, 밑에 의사들한테 물어봐야 하니까.”
곡 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도와달라는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능팀에서 그나마 좌자전이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능연의 생각을 알 수 없는 상태라, 좌자전도 당연히 함부로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이벤트성이라도 괜찮습니다. 한 번에 여러 병원 젊은 의사를 초대해서 기술 교류하는 것도 좋겠네요.”
능연이 곡 선생의 말을 받아 그렇게 말했다.
곡 선생은 능연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고, 물을 엄두도 못 냈다.
그러자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졌다는 걸 깨달은 좌자전이 다급하게 나섰다.
“능 선생, 아무리 교류 활동이라고 해도 제한은 있어야지. 어떤 명목으로 어느 방향 젊은 의사들을 초대할까?”
좌자전은 이미 구체적인 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사회를 열고 상도 준비해도 되겠네요. 중환자실 상금 남을 거라고 곽 주임님이 그러셨었는데, 그걸 좀 써도 되지 않을까요? 좌 선생님이 한 번 물어봐 주세요.”
“그게······.”
좌자전은 바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병원 확장하고 난 후이니 당연히 여유 자금이 있을 것이고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곽 주임이 능연에게 주려는 것이지 정말로 남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심사회를 열어 상을 준비한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하려던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능연은 하나의 심사회와 시상식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경력으로 보면 능연은 사실 충분한 자격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