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임기는 얼떨떨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응급실 일은 병원에서 가장 짜증 나는 일이었다. 거대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의사-환자 갈등을 최전선에서 마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더럽고 혼란스러운 환경 때문에 병원에서 가장 중시하지 않는 부서라는 점이었다.
다시 한번 선택할 수만 있다면, 임기는 심장내과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정형외과 슬관절경, 그것도 아니면 간 절제를······.
임기는 또다시 쓸데없는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 서서 뭐 하십니까?”
주 선생이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가자 임기는 상대가 주 선생이니 도망은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분고분 수련의의 침착함을 발휘하며 대답했다.
“주 선생님, 금방 환자 하나 진찰했습니다.”
“음, 잘하고 계시네요.”
주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의는 실습생과 비슷해서 마음대로 부려도 되지만, 조심해서 부려야 하고 막 대하면 안 된다.
주 선생의 공손한 태도에 임기는 당황했다.
“일단 절 따라오세요.”
주 선생은 잔말 없이 뒷짐 지고 임기를 데리고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주 선생 경험상, 뒷짐을 지고 걸으면 멋있어 보일 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정서도 안정되어서 태도도 좋아진다. 아무래도 대빵으로 보이니 말이다.
사실 부주임과 주임은 보통 수술실이나 응급 처치실에 있으니 지금 응급실에서 주 선생이 대빵이긴 했다.
주 선생 대신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걸 알아차린 임기는 포기하고 주 선생을 뒤따랐다.
다행히 주 선생은 이것저것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었고, 응급실 플로우가 아직 생소하던 임기도 서서히 진정이 됐다.
“주 선생님.”
접수 간호사가 환자 한 명을 밀고 들어왔다.
“아침에 새우 먹다가 새우 머리를 삼켰대요. 지금 목이 답답하고 삼키는 게 불편하답니다.”
“아침부터 새우를?”
임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환자가 냉랭한 얼굴로 조금 차갑게 임기를 바라보자, 임기는 헛기침하면서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임 선생, 진단 내려 봐요.”
주 선생은 테스트라도 하겠다는 말투로 일거리를 임기에게 떠넘겼다. 임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앞으로 나섰다.
“이물질이 목이 걸린 거죠.”
“음. 그리고요?”
“그리고······? 꺼내야죠?”
임기가 나지막이 하는 말에 주 선생이 임기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우선 간접 후두경을 씁니다. 섬유 후두경을 써도 되고요.”
임기가 드디어 쓸 만한 답을 내놓자 주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세요.”
주 선생은 뒷짐 진 손을 풀었지만,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때 환자와 함께 온 보호자가 다급하게 나왔다.
“저기······. 선생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언짢아하지 마시고요.”
보호자는 쉰 넘어 보이는 남자였고 안경 쓴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환자 치료하느라 쓴 에너지가 얼마 없는 주 선생이 여유롭게 미소 지어 보였다.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들놈이 막 미국에서 돌아왔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오자마자 미국은 이게 좋고 저게 좋고 어쩌고. 그래서 우리 중국 의료도 대단하다고 설명하면서 가시로 예를 들었거든요. 미국에서 생선 가시 하나 빼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아느냐, 우리는 몇십 위안이면 되고, 몇 분 만에 된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남자가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직접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들놈한테 제대로 보여주게요.”
이유도 있고 스토리도 있는 말이었다.
주 선생처럼 농땡이 의사가 아니었다만 아마도 직접 치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 선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역시나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나라라고 몇십 위안, 몇 분 만에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일단 검사하고요. 간접 후두경으로 바로 보이면 간단하게 되긴 합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보호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 선생이 임기에게 계속하라고 눈짓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서 살짝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가시 이야기해서 아들이 일부러 새우 대가리를 삼킨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아버지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 식구들은 새우 먹는 법을 다 잘 압니다!”
간접 후두경은 길게 생긴 작은 거울로 귀이개 확장판 같은 느낌이다. 의사가 환자의 혀를 잡고 환자의 목구멍에 간접 후두경을 집어넣어서 많은 정보를 얻는다.
후두경에는 종류도 많고, 굵은 것 가는 것도 있는데, 괴롭지만 지속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은 검사 방식이었다.
임기는 간호사에게 간접 후두경 세트를 건네받고 바로 뜯지 않고 손으로 커버를 만지작거리면서 머릿속으로 간접 후두경에 관한 모든 지식을 떠올렸다.
그는 전에 응급 관련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응급수술이라고 해도 일반 외과 선임 주치의는 똥은 자주 꺼내도 목을 후빌 기회는 별로 없었다.
임기의 간접 후두경에 대한 기억은 아직 실습생 혹은 훈련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임기는 난감한 듯 주 선생을 바라봤다.
“이비인후과로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라면 하세요.”
주 선생이 나긋하게 대답했다.
곽종군의 대형 응급은 일반 외과, 정형외과 같은 진료과도 먹으려고 하는데 목에 뭐가 걸린 정도로 이비인후과로 보내는 건 너무 웃긴 일이었다.
“네.”
임기는 조금 억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선임 주치의였으니 주 선생이 무슨 생각인지 짐작은 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수련의인데 어쩌겠나. 정확하게 말하면 운화병원에 눌어붙어 있는 수련의 임기는 고분고분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팔자였다.
“이쪽으로 와서 제 맞은편에 앉으세요.”
임기는 한숨을 내쉬고 환자를 앞으로 수그리게 하고 라이트를 쬐면서 머뭇머뭇 후두경을 꺼냈다.
“입 벌리시고, 혀 내미세요.”
임기는 무균 거즈도 꺼내서 환자의 혀를 잡은 다음 끌어냈다.
잠시 신음하던 환자가 별로 반항도 하지 않자 임기도 마음을 놓았다.
그의 후두경 실력은······ 사실 실력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환자가 협조만 하면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그때 주 선생이 팔짱을 낀 채 재촉했다.
“후두경 넣으세요.”
“네!”
임기는 필사적으로 스텝을 회상하면서 16짜리 후두경을 골라 머뭇머뭇 환자의 구강에 찔러 넣었다.
“어느 쪽으로 넣으면 되나요?”
슬쩍 보니, 임기 머릿속에 후두경 다루는 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주 선생이 옆에서 코치했다. 그 말에 임기는 바로 기억을 떠올렸고, 거울을 비틀어서 왼쪽으로 밀어 넣었다.
“대답.”
주 선생은 아래 의사에게 만만한 의사가 아니었다.
“좌측으로 진입합니다.”
임기가 냉큼 대답하자 주 선생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옆에 있던 환자 보호자는 이제 확실히 주 선생이 보스임을 깨닫고 다시 앞으로 나와서 한창 후두경 검사 중인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보렴, 중국 의사들이야말로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의사라니까. 미국이었어봐, 지난번에 나도 한 번 겪었잖니. 중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목에 가시 하나 걸린 거로 X-ray 찍고 CT 찍고 돈을 얼마나 쓴 줄 아니? 그래서 효과는 있었냐고? 아니!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그 말은 아들에게 하는 것 같아도 사실 의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사회생활 할 줄 아는 아버지의 말에 듣는 의사는 확실히 기분이 좋아졌다.
임기는 묘하게 이건 국위 선양의 기회라는 부담감을 느꼈다.
그는 더욱 정신을 집중해서 유심히 후두경 안의 혀, 후두 등을 살폈다.
환자 아버지는 임기의 진지한 모습을 힐끔 보고는 더욱 신이 나서 칭찬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미국 의료 체계는 끝장날 거다. 미국 의사는 요즘 모든 일을 책임을 회피하며 하고 있어. 병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보다 일단 책임, 소송 이런 것만 생각한단 말이지. 그리고 돈 벌 생각만 한단다. 그러니까 병원만 가면 검사만 잔뜩하고, 가격도 얼마나 비싼 줄 아니. 저번에 허리가 아파서 갔을 때 그 뭐냐······. 아, MRI. 한 번에 1만 위안이었잖니. 보험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보험 있으면 걱정 없겠네요. 우리보다 낫네.”
옆에서 국제 XX 이야기를 하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몰려들었다.
그 말에 환자 보호자가 껄껄 웃었다.
“보험도 돈 주고 사는 거지요. 보험료 계산하면 일 년에 만 달러 넘는걸요. 게다가 보험이 안 되는 질병도 있고요. 중요한 건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생선 가시, 새우 가시 걸린 것도 툭하면 수술해야 한다고 한다니까요.”
“새우 가시가 뭡니까?”
“새우 대가리에 가시 있잖습니까. 새우 수염이라고도 하지요.”
환자 아버지가 진지하게 설명하는 말에 다가온 환자가 놀라서 물었다.
“그게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까?”
“왜 없어요. 생선 먹다가 가시 걸리는 것처럼 새우도 조심하지 않으면 걸리는 거죠.”
“아니, 누가 새우 대가리를 먹냐는 말이죠. 맛도 없고 중금속 표준 초과라는데, 바보 아닙니까?”
환자 아버지가 휙 고개를 돌려 주 선생을 바라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물었다.
“선생님, 응급실에 생선 가시나 새우 가시 걸린 환자 자주 오죠?”
“음, 생선 가시는 더러 있네요.”
주 선생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새우 가시는요?”
주 선생이 미소를 거두고 회상하는 표정을 짓다가 한참만에 대답했다.
“가끔 닭 뼈 걸려서 오는 환자는 있네요.”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응급실이라고 모두 중환자는 아니었다. 특히 처치실엔 친구가 던진 돌에 맞고, 친구가 문질러서 껍질이 까지고, 친구가 알코올을 먹여서 위가 빵구난 환자가 있었고, 그런 환자나 환자 보호자는 웃을 기운이 있었다.
그러나 임기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연구개, 구개편도, 혀끝, 목구멍 깊숙이 다 들여다봐도 그 전설 속의 새우 가시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내려간 거 아닌가.
임기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물질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물질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임기는 도와달라는 듯 주 선생을 바라봤지만, 주 선생은 냉랭한 표정이었다.
“주 선생님?”
임기는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내서 주 선생을 불렀다.
“안 보이면 사진 찍어서 정확한 위치를 찾아야죠.”
주 선생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영상의학과 연락하고 환자와 보호자 동의서 받으세요.”
“네.”
임기는 무기력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후두경 기계를 치웠다.
“미안합니다. 목 안에 아직 이물질 있는 느낌이면, 사진 찍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가죠.”
환자가 생동감 넘치는 얼굴로 보란 듯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하지만 환자 아버지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우리 중국 의사도 사진을 찍자고 하다니!”
“안 보이니까 사진을 찍어야죠.”
“아휴, 당신들 정말······ 정말······.”
체면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에 어둠이 가득했다.
임기는 가볍게 한숨 쉬고는 구토감을 느끼는 환자를 향해 예의 있게 물었다.
“느낌 어떠세요? 후두경 하면 원래 목이 불편합니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전 익숙해요. 헛구역질 좀 하면 낫더라고요.”
환자는 이해한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이어서 헛구역질을 몇 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