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62화 (741/877)

“임 선생, 아이고, 오랜만이야.”

집돼지처럼 투실투실한 주치의 주겸비는 응급실에서 임기를 포착하고는 돼지라도 잡는 듯 목소리가 꽥하고 높아졌다.

임기는 조건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가 깜짝 놀랐다.

“주 선생? 네가 왜 여기에.”

“왜? 친구가 운화에 왔는데, 기린 새끼, 모르는 척하는 거냐?”

주겸비가 하하 웃으며 친한 척 임기를 얼싸안고 그의 등을 두드렸다.

임기는 조금 얼떨떨해졌다.

우리 이렇게 친하진 않지 않냐? 전에는 새끼 기린이라고 부르더니, 이제 기린 새끼로 승격한 거냐? 내가 변한 거냐, 네가 변한 거냐?

추 현 병원에 있을 때 나이가 비슷해서 자주 밥 먹고 놀았다고는 하지만, 원래 좁은 바닥이고 현 병원 같은 환경에서 누구와도 그 정도는 했다.

따지고 보면 임기와 주겸비는 그저 일반적인 동료 관계였고, 고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클럽 좋아하는 녀석이야말로 주겸비의 절친이었다. 노래방이나 좋아하는 임기는 멧돼지와 집돼지처럼 거리가 멀었다.

특히 추 현 병원을 떠난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친한 척 구는 주겸비의 태도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어디 아프냐?”

의사인 임기는 가장 가능성 높은 질문을 했다.

주겸비의 생활방식으로 어디 문제가 생겼대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아니야.”

“다행이네.”

“아이고, 옛 동료 사이인데 왜 이렇게 멀어진 거 같지? 자자, 이러자. 밤에 내가 쏠게. 일단 밥 먹고 노래방 가자. 너 가고 싶은 대로 가.”

임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 바빠서 자리 못 비워.”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냐.”

그러자 임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득해도 소용 없어. 밥 먹을 시간이 30분만 있어도 감지덕지다. 나가서 먹을 시간 없어. 운화에 며칠이나 있을 거야? 나중에 스케줄 정리해보고 내가 연락할게.”

“며칠 있긴 할 건데······.”

주겸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솔직히 이야기할게, 뭐 좀 알아보려고 왔어.”

“이야기해.”

임기는 속으로 안도했다. 소식을 알아보려고 온 게 부탁하러 온 것보다 나았다.

주겸비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구석으로 임기를 끌고 가 비밀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린아, 운화병원에서 한다는 트레이닝 캠프에 너도 있냐?”

그런 주겸비를 바라보며 임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주 선생은 비밀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니지.’였다.

“임 선생, 나 정말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래. 많은 걸 도와달라는 것도 아냐. 그냥 정보만 좀 줘. 응?”

임기가 알려주기 싫은 거라고 생각한 주겸비는 더욱 진지한 말투로 표정도 더 간절하게 말했다.

사실 운화병원에서 트레이닝 캠프를 연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마음이 동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주기까지 한다는데, 이렇게 좋은 걸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북경이나 상해에는 비슷한 캠프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조건이 매우 좋은 캠프도 있었다. 하지만 진입 장벽도 매우 높았다. 전국적으로 사람을 모집하고 최종적으로 선발되는 인원 역시 지시급 삼갑병원에서 장기적으로 훈련받은 중견 인원이었다.

추 현 병원 같은 작은 곳은 레지던트든 주치의든 그런 대가들이 노는 구역에서 트레이닝 받을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운화병원은 달랐다.

운화병원은 지방 삼갑병원 수준으로는 화서 같은 큰 병원에 버금가는 수준이지만, 주겸비 같은 의사에게도 못 올라갈 나무는 아니었고 까치발을 들면 어떻게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임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겸비의 자신감이 크게 늘었다.

“너도 그만두려고? 현 병원 생활 접게?”

임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겸비를 바라봤다.

임기는 능연의 막강한 실력을 몇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에 멀쩡한 자리를 버리고 운화병원에 남은 것이었다. 그것도 여러 날 심사숙고하고 내린 결정이었고.

주겸비처럼 현 병원에서 친구를 소환해서 더럽게 먹고 노는 의사가 그런 의지가 있다는 걸 임기는 믿을 수가 없었다.

주겸비는 의아한 듯 임기를 바라봤다.

“그냥 트레이닝 캠프에 참석하는 거야. 기술 좀 배우면 현 병원으로 돌아가야지. 나는 너랑 달리 부모님도 애도 있잖냐. 거기 못 떠나.”

“너 이번에 온 거 윗분들은 모르지 않냐?”

주겸비가 따라웃자 임기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게? 나는 운화병원 수련의 명의로 지금 응급센터에 눌어붙어 있는 거다. 네가 운화병원 응급센터에 무슨 트레이닝 캠프 참여한다고 하면 진료과 주임이 가만히 있겠냐? 소식만 알아보러 온 거라고 해도 병원은 널 집에 보내서 일하라고 할걸?”

주겸비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웃어 보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그러니까, 네가 트레이닝 캠프에 참여한다 치자. 그럼 현 병원 일은 어쩌려고?”

임기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묻는 말에 주겸비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집돼지 같은 몸매도 더 무거워였다.

임기는 팔짱을 끼고 응급실에 오가는 환자와 보호자를 둘러보며 조용히 주겸비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지 뭐. 어쨌든 지금은 트레이닝 캠프에 들어가고 싶어.”

주겸비의 대답은 역시나 임기가 기억하는 주겸비 스타일 대로였다. 그는 언제나 눈앞만 중요하지 미래는 나중에 차차 생각하면 된다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제대로 생각한 거냐?”

임기는 한 번 더 확인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응.”

제대로 중심 잡고 선 주겸비의 목소리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래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임 선생, 네가 몰라서 그래. 지금 우리 병원 거의 폭풍 전야야. 버티기 힘들다고.”

“왜?”

“솔직히 이야기할게. 너 그만둔 다음에 보너스 한 푼도 못 받았다. 보험도 툭하면 물어내야 하고. 우리 병원 정책이 그건 의사가 물어내야 하잖냐. 그러니까 지금 지방 병원은 정말 있을 곳이 못 돼.”

주겸비는 매우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며 말을 이었다.

“생각 끝냈어. 우리한텐 역시 기술이 필요해. 너만 봐도 그래, 지금 네가 돌아간다면 어느 진료과에서 널 마다하겠냐? 트레이닝 캠프를 마친 다음에 돌아가서 설명하면 모든 문제도 해결이야.”

임기는 부러워해야 할지 비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겸비를 바라봤다.

“가자, 가면서 이야기해.”

더는 할 이야기가 없어진 임기가 주겸비를 데리고 수술 구역으로 향했다.

임기는 탈의실에 온 다음 주겸비에게도 옷을 내밀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안 나왔어. 너처럼 사전에 알아보러 온 의사는 일단 먼저 수술 보고 발전 방향을 정하도록 하고 있지.”

“방향부터 확정하라고?”

“응. 능 선생이 설정한 방향을 미리 좀 알려주자면, 수부외과, 슬관절, 일반 외과, 간담췌외과, 그리고 응학 조금. 능연 팀 일반 의사들 수술하는 거보면 개념이 좀 잡힐 거다.”

임기는 원래 예정된 방안으로 트레이닝 캠프를 소개했고, 주겸비가 원하는 내부 기밀도 두 손으로 떠받쳤다.

“수술을 보는 건 좋은데, 일반 의사 수술을 보라고?”

“일반 의사 수술을 봐야 네 훈련 목표를 알 수 있지.”

언짢은 듯이 하는 주겸비의 말에 임기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수술 리스트를 확인하고는 주겸비를 데리고 3번 수술실로 향했다.

주겸비는 머리를 굴리면서 임기를 따라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구석에 서서 말없이 수술을 지켜봤다.

임기 역시 말없이 곁에 서서 다른 모르는 의사들과 함께 섞여 있었다.

한창 수술 중인 연문빈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며칠 전, 처음으로 이런 정책을 시행했을 때만 해도 연문빈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병원 밖 의사들이 수술을 참관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특별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관 횟수가 늘어나면서 연문빈도 점차 깨달았고, 수술할 땐 수술하고 근육 과시할 땐 과시하면서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다.

덕분에 그가 집도하는 탕 봉합 수술 과정도 하루하루 안정되어 갔다.

독립해서 집도하는 일은 기술을 끌어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능연이 트레이닝 시키면 더욱 다르고.

연문빈은 고개를 숙인 채 세심하게 근건을 박리했고, 족발 처치하는 것만큼 노련한 모습이었다.

“음.”

연문빈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손을 뻗자 간호사도 탁 하고 5-0 봉합사가 묶인 니들홀더를 건넸다.

연문빈은 바로 받아들여 봉합을 시작했다.

표준적인 탕 봉합법으로 몇 번 바늘이 오간 후 환자의 아킬레스건이 단단히 제어되었다.

주겸비는 더 똑똑히 연문빈의 동작을 보기 위해 몸을 옆으로 이동하면서, 복부의 물컹한 살이 옆에 있는 의사에게 부딪혔다.

연문빈의 수술 방식을 보는 게 아니라 연문빈의 봉합 수법을 보는 것이었다.

가늘고 약한 바늘을 들고 정교하게 봉합하는 수법······.

주겸비는 운화병원의 아킬레스건 봉합 수준은 지금 자기 눈앞의 의사 실력보다 높아서 더 뛰어난 의사가 넘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동시에 본인이 이 기술을 배워서 돌아가면 추 현 병원에는 유일한 의사가 되리라고 믿었다.

어쩐지, 임가 놈이 안 돌아오더라니.

주겸비는 저도 모르게 임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좋은 곳을 찾았구나. 언제 솜씨 한 번 보여주지 그래?”

그러자 임기가 속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회가 있겠지.”

연문빈은 느긋하게 수술을 진행했다. 주겸비는 마지막까지 두드러진 실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그중 혈관 끝단 봉합 부분은 겨우 7, 8분만 사용했고, 혈관 클립을 푼 후에도 피가 스며 나오지 않자 주겸비는 혀를 내둘렀다.

혈관 끝단 문합은 외과 수술 중 중급 기초 조작이었다. 일반적으로 의사가 혈관을 둘러서 한 바퀴 실을 찔러 놓고 계속해서 당기면서 혈관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보통 의사가 큰 끝단 혈관 문합하는 데 10분은 걸린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보통이라는 건 월급을 말할 때 ‘일반인 월급 1만 위안’과 마찬가지로 평균도 아니고 중간치도 아닌, 그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치일 뿐이다.

월급 만 위안은 되어야 월급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난 끝단 문합에 10분 정도 걸려’라는 말이 의사들이 혈관 문합 이야기할 때 내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저것보다 느린 의사는 남이 이야기하는 동안 조용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혹은 ‘내 친구 월급 3만 위안’처럼 ‘우리 주임님 저번에 혈관 문합하는 데 겨우 5분 걸렸어.’라고 말해야 겨우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월급처럼 개인적인 문제와 달리 혈관 문합에 걸리는 시간은, 혈관 문합에 관심 있는 의사는 쉽게 서로 이해한다.

주겸비가 아는 바로는, 추 현 병원 각 대형 진료실에 혈관 문합을 10분 안에 할 수 있는 의사는 막강한 부주임과 주임 몇밖에 없고, 다른 사람은 14분, 15분 걸려도 정상이었다.

주겸비가 큰 혈관 끝단 문합할 때도 보통 15분 이상 걸리고, 게다가 그가 하는 혈관 문합은 지혈 포셉만 풀면 피가 스며 나와서 8자 봉합을 두어 번 더 해야만 완성할 수 있었다.

주겸비가 다른 부분을 알아봤는지 아닌지 몰라도, 혈관 문합 부분은 짜릿하게 지켜봤다.

사실 평범한 의사가 하는 평범한 수술은 다 거기서 거기라, 혈관 문합 같은 기초 중에 고급 기술에 속하는 부분이 오히려 주겸비 같은 의사를 혹하게 했다.

수술이 끝난 후, 양손을 뻗어 수술 가운을 찢어내는 연문빈을 본 주겸비가 냉큼 다가갔다.

“연 선생, 수술 정말 멋졌어요.”

주겸비 뒤에 있던 임기는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주겸비가 입맛을 다시며 꼬치집 사장에게 꼬치 정말 맛있네요! 하고 칭찬하던 장면이었다.

말투, 동작 모두 그야말로 똑같았다.

연문빈은 수술도 적잖게 했고, 사람들에 둘러싸인 경험도 꽤 있지만, 이토록 대놓고 하는 찬양엔 마음이 흔들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제가 감사해야죠. 운화병원에 와서 이렇게 대단한 수술을 볼 줄 몰랐습니다. 참, 주겸비라고 합니다. 추 현 병원 주치의입니다. 임 선생 옛 동료죠.”

연문빈이 공손하게 하는 말에 주겸비는 망설이지도 않고 임기를 끌어내 사교 매개체로 삼았다.

“아, 주 선생님.”

연문빈은 주겸비의 몸매에 그의 성을 결합하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이고, 그냥 주 선생이라고 해요.”

“그건 안 되죠. 제가 나이가 더 어린걸요.”

연문빈은 그렇게 말하고 임기를 바라봤다.

“내 다음 수술에 능 선생이 들어올 거라서요. 준비하러 갑니다.”

“아, 예, 예. 가서 일 보세요.”

연문빈을 눈으로 배웅한 주겸비가 저도 모르게 임기에게 물었다.

“저분 정말로 우리보다 여러? 아니면 하는 소리야?”

“연 선생? 많아 봐야 스물일곱, 여덟일걸? 아직 레지던트야. 얼굴이 급해서 그렇지.”

“너무 급했는데?”

임기가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탄식하던 주겸비가 다시 물었다.

“다음 수술은 능 선생 수술에 들어간다고? 나도 볼 수 있을까?”

“응. 그런데 능 선생이 연 선생 수술에 들어가는 걸 거야. 능 선생 밑에 있는 선생들 요즘 독립 수술하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능 선생이 요즘 저 연문빈하고 마연린이라는 선생에게 단독 집도 기회 주거든. 그리고 매일 한 건씩 수술실에 들어가서 퍼스트 어시 잡아.”

임기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하는 말에 주겸비는 놀라서 입도 다물지 못했다.

“능 선생이 레지던트 퍼스트 서준다고? 매일?”

“며칠 됐어. 아니면 연문빈 수술 실력이 왜 저렇게 좋겠어.”

임기가 입을 삐죽였다.

병원에서 수술을 한 건 집도하는지, 5, 10건 하는지, 아니면 20건 하는지에 따라 실력이 확연히 달라진다.

수술을 문제집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모든 기초가 준비된 학생이 문제집 하나 푸는 것과 5, 10개 푸는 것과 20개 푸는 건 공부한 것을 장악하는 정도가 확연히 다르다.

물론 문제집을 풀면서 중간에도 끊임없이 보충하고 재학습한다.

그 과정에서 대단한 선생님이 일대일 문제 풀이해주면 효과는 더욱 달라진다.

주겸비는 부러움에 침이 다 흐를 것 같았다.

“수술 내내 어시해준다고? 능 선생 본인 수술은?”

“어시 끝나고 본인 수술 하지. 말로는 요즘에 침대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사실 편애지.”

임기는 질투가 치밀었다.

“출장 수술도 잘 안 하더라고. 수술 몇 건은 할 시간에 레지던트 수술 어시 서다니. 에휴. 뭐 어쩌겠어. 연문빈하고 마연린은 능 선생 직계니까.”

“운화병원 직계는 이런 대우 받냐? 우리 아부지도 나한테 이렇게는 안 하셨다.”

“야, 그건 아니지······.”

“너 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너 숙제 하는 거 지켜보느라 티비도 안 보고 신문, 소설도 안 읽고 일주일 돌봐주신 적 있냐?”

잠시 생각하던 임기의 미소가 점점 굳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