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65화 (744/877)

“곽 주임, 자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의미가 없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왕 주임은 얼굴이 시뻘게지니 털 자란 양파처럼 보였다.

“그래서?”

곽종군이 하루 이틀 사람 패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패기 위해서 패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상대는 그럴 가치도 없었다.

그는 심지어 왕 주임과 함께 있는 의사들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곽종군의 무시를 느낀 왕 주임은 화가 나서 머리카락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이 현실적인 인간!

사람이 늙고 실력 없고 권력 없으면 무시해도 되냐?

내가 운화 의학계 경력이 얼마인데, 날 보고 다들 ‘왕 주임’하고 부르는 거 못 봤냐?

좋게 이야기하고 보상 좀 해준 다음에 공손하게 우리를 배웅하면 그만인 것을! 지금 이게 무슨 태도야? 응? 사람 무시하냐?

왕 주임님은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는데 곽종군의 태도가 변함없이 ‘내 벼락으로 널 죽일 수도 있으니 자중하시게.’ 하는 모습을 보이자 저도 모르게 말투가 심각해졌다.

“곽 주임, 내 미리 말해두는데, 자네만 그 캠프를 개최할 능력 있는 건 아니라네. 우리도 협력하면 자네보다 더 요란하게 캠프를 열 수 있어! 사람도 더 많이 모을 수 있고.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 있겠나?”

마지막에 ‘그런데’가 아니었다면, 왕 주임 뒤에 있는 의사들은 그가 당장에라도 발의를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헛기침하며 ‘우리 사전에 말해준 이야기는 이게 아니잖아.’하고 왕 주임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왕 주임이 눈빛으로 ‘걱정하지 마, 그냥 겁 좀 주는 거라고.’ 하고 대꾸했다.

잠시 정말인가 싶어서 걱정하던 곽종군이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트레이닝 캠프가 그렇게 쉽게 열 수 있는 거냐?

수련의는 다다익선의 존재가 아니라 쓸모 있게 활용할 줄 알아야 상대적으로 효과 볼 수 있는 거다!

운화병원처럼 눈코 뜰 새 없는 병원에서나 최대한 대범하게 수련의를 모집할 수 있다.

사실 응급센터가 막 생긴 게 아니고 인원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곽종군도 단숨에 몇십 명이나 수련의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련의는 확실히 쓸모있는 가용 인력이고, 정직원 자리를 걸지 않고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수련의가 왜 그런 자리를 원할까? 바로 미래, 그리고 고수입을 위해서였다.

특히 수입 면에서 수련의는 훈련의과 실습생하고 완전히 대우가 달랐다.

실습생과 훈련의는 병원 정책으로 젊은 의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수련의는 달랐다. 게다가 수련의는 졸업한 지 오래되어 속도가 빠른 의사는 거의 독립할 만한 능력이 있고, 좀 느려도 집 있고 차 있고 헬스하고 가방 사고 개를 키우는 소비를 감당할 정도라서 훈련의가 버틸 만한 수입으로는 꼬실 수 없다. 수련의 월급과 보너스를 조금 낮게 책정해도 되고 본 병원 의사보다 낮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쓸모 있는 의사는 그만큼 이득을 보는 것이고, 쓸모없는 의사는 괜한 돈 드는 셈이라 열 몇 명이라고 해도 꽤 아픈 출혈이 된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주임 혹은 원장이라고 해도 손으로 하늘을 가리지 못한다. 수련의 월급은 진료과 금고에서 나가는 것이고, 도움이 되어 작업량이 줄고 수입이 는다면 의사들도 당연히 반기겠지만, 쓸데없는 지출이 되면 의사들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진료과 주임이 의사들에게 더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주지 못한다면, 그의 말에도 힘이 없어진다.

운화 시에서 그런 트레이닝 캠프를 열 수 있는 건 탑 3 병원이고 나머지 삼갑병원, 예를 들어 왕 주임이 몸담은 시 2 병원은 자기 진료과 정직 의료진들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먹이기만 해도 괜찮은 정도였다.

트레이닝 캠프?

곽종군의 시선이 왕 주임을 지나 늙은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왕 주임 등은 한창 옥신각신하다가 다시 허리를 펴고 서서 담담하게 곽종군을 바라봤다.

“우리 트레이닝 캠프도 몇 달 걸리지 않네. 끝나면 자네들 방안도 정리해보도록 하지. 그럼 우리도 좋고 자네들도 좋고, 쓸데없는 자원 낭비도 하지 않아도 되고. 내 말은 여기까지일세. 알아서 결정하게.”

곽종군의 입가에 미소가 스치자 왕 주임은 귀에서 김이 다 날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런 말이 어디 있나!”

곽종군은 서늘한 눈빛으로 언제든 왕 주임과 원수가 될 준비를 했다.

왕 주임은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는, 곧 인신공격에서 기술 토론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수련의를 그만큼 모집한다고 치세. 어떻게 트레이닝 할 생각인가. 트레이닝 캠프라는 건 트레이닝 기회를 준다는 거 아닌가? 다른 집 아들딸 시간을 뺏을 순 없지 않은가.”

“우리에겐 능연이 있네.”

왕 주임이 태도를 바꾼 것을 본 곽종군도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이 오합지졸들이야, 말만 덜 듣고 캠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솔직히 패도 그만 안 패도 그만이었다.

왕 주임이 역시나 웃음을 터트렸다.

“능연 혼자 캠프를 관리한다고?”

“능연이 큰 짐을 지고 나머지가 분담하고, 우리는 자체 중환자실도 있는걸?”

곽종군은 그 말을 하고 이미 뿌듯함에 입가가 실룩거렸다.

왕 주임 등은 순간 기세가 꺾였다.

그래, 얘들은 자체 중환자실도 있지.

게다가 중환자실 인력 소모는 가장 무시무시했다. 병상 8개짜리 중환자실에 의사는 적어도 12명부터 시작이고 인력이 충분하게 배치하려면 16명도 많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보니 곽종군이 트레이닝 캠프를 여는 것도 정말로 필요해서인 것 같기도 했다.

왕 주임의 눈빛이 저절로 모니터로 향했다.

그때 연문빈은 근건 봉합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고, 7-0 봉합사로 근건을 한 바퀴 두르는 모습이 그야말로 진지했다.

“수처 실력이 어떤가?”

사람들의 표정을 주목한 곽종군이 저도 모르게 슬며시 웃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연문빈은 집도 자리에 서긴 했어도 실력이 지금 수준은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주치의 정도였다. 그러나 능연이 한 달 정도 옆에서 보살핀 후 개인 실력이 거의 탈바꿈한 수준이었다.

특히 디테일 처리 방면은 곽종군도 놀랄 정도였고, 운화병원 수부외과 주치의들의 수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대다수 수련의는 정상급 병원을 로테이션 하면서 하나같이 병원의 대들보가 된다. 우선 의사가 그만큼 경험을 쌓아야 했고, 실력자의 지도는 그다음 문제였다.

디테일 같은 것도 그냥 지적하거나 알아차리는 건 상대적으로 쉽지만,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그것도 빈번하고 긴장되게 움직이는 수술 중에 어떻게 구현할 건지는 보통 외과의의 개인 경험에 달렸다.

탕 법이나 근건 봉합 기술만 봐도 능연의 실력이 운화병원에서 손꼽히는 것도, 그렇게 디테일한 수법을 가르쳐 낼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능연뿐이라서였다.

직접 지도받지 않고 옆에서 보기만 해서 연문빈 정도가 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외과의의 삼엄한 등급도 바로 이런 식으로 드러난다. 젊은 의사가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지 않으면 성장하기 매우 어렵다.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상급 의사가 신경 써서 지도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과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어떤 주임은 은퇴할 때가 다 되어서야 겨우 보물상자 밑바닥에 있는 기술을 수하 의사에게 전한다. 그 방법과 사고방식은 수천년 전부터 내려온 장인들과 비슷했다.

왕 주임 등 역시 연문빈의 솜씨에서 조금 다른 점을 감지했다.

“수처 솜씨 좋군.”

구석에 있던 나이 든 의사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는 중산 병원 이변섭이었다.

“이 의사도 능연 능 선생이 키워낸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남의 집 아들딸을 시간 뺏는 건 아니겠지요?”

“기초가 잘 되어있군요.”

나이 든 의사 이변섭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수술은 종반에 접어들었다.

능연은 잠시 지켜보다가 곧 흥미를 잃고 손에 든 포셉을 옆에 있던 세컨드 어시에게 던져 주고는 수술실에서 나갔다.

참관실에 있던 의사들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삼삼오오 참관실을 떠났다.

그때 곽종군의 핸드폰에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열어보니 낯선 번호로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중산 병원 이변섭입니다. 능 선생 트레이닝 캠프에 자리 하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아들을 보내고 싶군요.

곽종군은 고개를 들어 비스듬히 바라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바로 메시지에 답장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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