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선생님, 10분 전 우리 팀 의사들 작업 내용 좀 기록해두세요.”
능연은 콘서트홀에서 나와 좌자전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퀘스트는 어렵지 않고 본인이 나설 필요도 없지만, 복잡하긴 했다.
그래도 이번에 두 번째 성공한 케이스를 확인하면 나머지 세 명은 따라 하면 되니까 아마도 쉽게 흘러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능연은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시간과 범위까지 딱 정해주었다.
좌자전은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뭘 위한 명령이지?
의료 사고? 아니면 누군가 진찰받으러 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대놓고 묻기도 그래서 좌자전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능 선생,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거야? 아니면······.”
“구체적일수록 좋아요.”
“그럼 CCTV도 꺼내서 볼까?”
좌자전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마을 위생병원에서 일할 때 비슷한 일을 했었다. 별 쓸모가 없어서 그렇지.
능연도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그러라고 했다.
“잊어버리기 전에 물어보고 기록해두세요. 나쁜 일 아니니까 감출 필요 없다고 해주시고요.”
좌자전은 안도하며 바로 대답했다.
능연이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하니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좌자전은 그런 면에서 능연을 매우 믿고 또 감탄하는 사람이었다. 할 말 있으면 하고, 감추는 것도 없고 거짓말은 더군다나 하지 않고. 이런 유형의 실력형 의사는 처음엔 주변 사람이 잘 적응 못 할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이런 의사가 오히려 더 존중받는다.
운화병원에서 젊은 능연이 지금 위치에 오를 수 있던 건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간담췌외과 하원정도 능연은 그저 자신의 병상을 탐내는 거지 자신의 자리를 뺏을 생각이 없다는 걸 똑똑히 알았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하원정 역시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운화병원 사람이라면, 본인이든 가족이든 능연이 치료 가능한 병에 걸렸다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떠올릴 것도 없이 당연하게 능연을 찾을 것이다.
능연의 성격과 품격을 믿어서이기도 했다.
좌자전은 안심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일 처리를 하러 갔다.
능연 역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전칠을 바라봤다.
“미안해요. 지금 꼭 걸어야 하는 전화였어요. 늦으면 처리하기 힘들어서.”
“괜찮아요. 우리 식구들도 밥 먹다가 전화 자주 해요. 우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우리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할아버지도 자주 말씀하셨어요. 세계는 누구 하나를 위해서 도는 게 아니라고요.”
전칠이 대범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나이가 좀 있는 스페인 서버들이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능연과 전칠의 대화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스페인어로 말을 꺼냈다.
“능 선생님, 전칠 아가씨, 하웨 셰프가 에피타이저 준비를 끝냈습니다. 언제든 드시면 됩니다.”
통역 두 명도 동시에 다가갔다. 한 명은 전칠이 데리고 온 통역이고 나머지 한 명은 크루즈 소속이었다. 두 사람은 미리 이야기가 됐는지, 바로 스페인 서버의 말을 통역했다.
유심히 듣던 전칠은 그들의 말이 끝나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요. 하웨 셰프가 만든 해산물 덮밥을 먹을 생각만 해도 배가 꼬르륵거리는 느낌이에요.”
“미스터 하웨도 특별히 특제 해산물 덮밥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특별히 막 잡아 올린 신선한 홍새우를 사용했습니다. 스페인 항구 어선에서 엄선한 홍새우가 오늘 새벽에 막 도착했거든요. 미스터 하웨의 아들인 하웨 주니어가 직접 골라서 비행기를 타고 운화로 가지고 왔답니다. 또 오늘 해산물 덮밥엔 뉴질랜드 대구도 들어갑니다. 이것도 레스트랑 구매 담당자가 직접 골라 온 것이죠.”
“완벽하네요.”
전칠이 공손하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능연과 함께 서버를 따라 레스토랑 쪽으로 향했다.
콘서트 홀은 하웨 레스토랑과 거리가 좀 있어서 가는 내내 서버가 불빛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길 안내를 했다. 전칠이 데리고 온 사람들과 보디가드도 소홀함이 없도록 빠른 걸음으로 앞질렀다.
나이가 좀 있는 스페인 서버 역시 전칠과 능연을 바짝 따랐고, 잠시 후 통역을 통해 말을 전했다.
“전칠 아가씨, 이따 식사하실 때 듣고 싶은 곡이 있을까요?”
그러자 전칠이 고개를 들어 능연에게 무슨 곡이 듣고 싶은지 물었다.
“난 잘 모르니까 아무거나 좋아요.”
능연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럼 알아서 해주세요. 서정적인 멜로디로, 연주자는 최대한 적게.”
잠시 생각하던 전칠이 시원스럽게 지시하자 스페인 서버가 허리 숙여 인사하고 물러났다.
“잠시만요, 춤은 필요 없어요.”
“알겠습니다.”
전칠이 다시 불러서 하는 말에 서버가 다시 고개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곧 인테리어를 새로 한 하웨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오아시스호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 중 하나인 하웨 레스토랑은 위치도 좋고 경치도 좋았다.
레스토랑에 원래 있던 테이블은 모두 치웠고 창가 자리면 몇 개 남아 있었다. 한쪽은 밝고 넓은 레스토랑이고, 다른 쪽은 살며시 파도치는 바다가 보여 몸도 점점 편안해졌다.
능연은 수술 준비를 할 때처럼 어깨를 잠시 움직였다. 느낌이 매우 좋았다. 장시간 수술실에 있는 것도 당연히 무한한 즐거움이 있지만, 수술실 밖 생활에도 일반인의 즐거움이란 것이 있는 듯했다.
“전칠 아가씨.”
이름을 수놓은 셰프복을 입은 하웨가 이름을 수놓은 셰프 모자를 쓰고 중앙 주방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멀리서부터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기사가 경례하는 동작을 하며 전칠을 불렀다.
“하웨 셰프님.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아닙니다. 전칠 아가씨가 이렇게 와주시니 우리 레스토랑이 휘황찬란해지는군요.”
하웨는 꽤 표준적인 중국말로 ‘휘황찬란’이라고 발음했다.
그러자 전칠이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때 능연에게 시선을 돌린 하웨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분이 전설 속의 능 선생님이군요!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그의 인사를 들었다.
낯선 사람의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는 그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그저 잠시만 기다리면 인사치레도 곧 끝날 것이다.
바이올린 소리가 근처에서 울렸다.
하웨 셰프는 주방으로 돌아갔고, 곧 느긋하게 접시가 서빙되었다.
잠시 식사를 즐기면서 술도 두어 모금 마셨을 때, 전칠의 비서가 몇 미터 밖에서 전칠을 바라봤다.
“일이 생겼나 봐요.”
전칠이 능연을 향해 웃어 보이자 능연도 미소로 화답했다.
“괜찮아요. 아까 전칠 씨도 말했듯이 세상이 누군가를 위해서 도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