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초짜 의사는 주임급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다. 주임급 의사를 움직여서 원하는 대로 하게 하는 건 더욱 어려웠다. 능연의 요구라고 해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거절당할 수 있다.
하지만 좌자전 님은 평범한 의사가 아니기에, 가볍게 적합한 노선을 찾아냈다.
“도 주임님, 다들 주임님 수업이 너무 좋아서 그런 현장 학습을 몇 번 더 듣고 싶어서 난리입니다.”
좌자전은 족발 네 개가 담긴 상자를 들고 도 주임 테이블에 올려놓고 웃어 보였다.
“문빈이가 큰 족발을 엄선해서 가지고 왔네요. 제일 오래된 씨육수로 끓여서 맛은 보장합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문빈이가 참 마음 씀씀이가 좋아. 자네도 그렇고. 음, 그럼 감사히 받겠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출장 한 번 나가시면 족발 한 트럭 사시면서. 주임님 수업이 너무 좋아서 다들 난리랍니다. 배울 게 많다고요. 아시잖아요, 요즘 젊은 의사는 옛날이랑 달라서 상급 의사 수업 들을 때 따지는 것도 많습니다. 재미도 있어야 하고 뭐 필도 있어야 하고 어쩌고······.”
좌자전은 싱글벙글 웃으며 도 주임을 추켜세웠다. 퇴직을 앞두고 타이머를 켜둔 도 주임 같은 외과의는 병실에 누워있는 조폭 대빵처럼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언제나처럼 공손한 좌자전을 바라보며, 도 주임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심지어 좌자전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도 주임님. 혹시 마연린 수술도 좀 봐주실 시간 되실까요? 의견도 좀 주시고요.”
도 주임의 얼굴이 점점 더 온화해지는 걸 본 좌자전은 그 틈을 타 요구를 꺼냈다.
“음? 한 번 더 하라고? 젊은 의사들도 슬슬 질려 할 텐데?”
도 주임은 조금 망설였다.
“그럴 리가요. 다른 주임님이라면 혹시 질렸을지도 모르지만, 도 주임님 수업은 다들 끝나는 걸 아쉬워할 정도인데요.”
좌자전의 아부 어휘는 다양하지 않지만, 뻔뻔함만은 충분했다. 그리고 사실상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부를 듣는 사람의 요구는 그리 높지 않았다.
도 주임도 좌자전에게 대단한 아부 기술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외과 의사 업계에서는 거의 모든 외과 의사가 불가피하게 아부를 떤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부 기술은 사실 건성건성 넘길 정도였다. 대부분 재능으로 먹고 잘고, 극소수의 외과 의사만 진지하게 그런 쪽 기술을 연마한다.
“그러지 그럼. 어떤 수술이 좋을 것 같나?”
도 주임은 좌자전에게 설득당했다. 마연린에게는 조심해야 할 일이지만, 도 주임에게는 큰일도 아니었다. 주임급 의사가 봐주는 수술, 그것도 설명이 딸린 모드라면 체면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다.
새벽 4시.
마연린은 실습생 두 마리, 훈련의 한 마리를 데리고 따로 요청한 마취의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병실로 향했다. 병원엔 수련의가 넘쳐났고 평소에 수술할 때 얼마든지 부릴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런 시간에 면허 있는 상대를 부릴 수는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능 팀 의사라고 해도 5시 반은 되어야 출근을 했다.
“안녕하세요. 회진입니다.”
“뭐라고요?”
마연린은 바로 목표를 당해 달려갔고 한참 만에 병실 안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마 선생입니다. 오늘 일찍 회진할 거라고 어제 보호자분께 말씀드렸는데요.”
마연린은 다시 문을 두드리고는 조용히 문 앞에서 기다렸다. 능 팀 의사들에게 가장 익숙한 장면이었다.
환자는 대부분 초보고, 보호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능 팀 의사들이 일찍 일어나는 것, 그리고 아침에 하는 수술에 아무리 익숙해진다고 해도 새로 온 환자와 보호자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마 선생?”
몽롱한 눈으로 병실 문을 연 보호자는 상대가 마연린인 걸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찍 온다고 해서 7시 정도인 줄 알았죠. 아니면 6시 반이거나.”
“아무래도 아침이 효율이 높거든요. 그래서 환자분 아버지 수술을 9시에 잡았죠. 모닝 골든 타임이라고 할 수 있을 좋은 시간대입니다. 그래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단 피검사하고요, 문제없으면 바로 마취 준비할 겁니다. 환자가 하나라면 조금 늦게 해도 되겠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뒤에도 환자가 많거든요. 일단 검사부터 하시죠. 어쨌든 병 치료하러 병원에 오신 거잖아요. 그죠?”
마연린은 능숙하게 보호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쪽으로 꽤 침착한 편이었다.
“느낌 어떠세요?”
마연린은 흔들어 깨운 환자 앞에 서서 침대 끝에 달린 리스트를 눈으로 살피면서 물었다. 침대에 누운 노인은 흠냐흠냐 하며 대답했다.
“새벽 4신데, 당연히 졸리죠.”
“정말로 개방식 수술하실 건가요? 보호자하고 상의는 끝내셨고요?”
마연린은 상대의 잠투정을 그냥 웃어넘기며 물었다.
“개방식 수술로 할 겁니다. 제 말만 들으면 돼요.”
환자 곁에서 간호하는 아들은 고작 스물 남짓해 보였고, 어쩌면 좋을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다른 가족은 안 오셨나요?”
마연린이 계속해서 물었다.
“없어요. 아킬레스건 하나 끊어진 걸로 사람을 많이 부를 수는 없잖아요.”
환자는 손을 흔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사인하라는 거 다 하면 되잖아요. 수술만 제대로 해요.”
“환자분 나이 때문에 그러죠. 최소 절개술도 좋은 거 같아서요. 개방식 수술은 주로 운동선수가 하는 거거든요. 아니면 운동량이 많은 아마추어나요.”
다른 예비 환자도 많았지만, 지금 눈앞의 환자가 가장 공개 수술에 적당하니 설명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환자는 마연린과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을 힐끔 보고는 입을 삐죽였다.
“계속 반복해서 물으니 저도 반복해서 대답하겠소. 난 춤추는 사람이요. 춤추는 거 무시하지 마시오. 그것도 운동량이 대단하다고. 아킬레스건이 안 좋은 사람이 추는 춤은 볼 게 못 돼.”
“개방성 아킬레스건 수술은 큰 수술입니다. 절개구도 십 센티미터가 넘어요. 춤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 있을까요?”
마연린이 설득하듯 일깨워 주었다.
“최소 절개술로 하면 부분 마취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개방식 수술은 전신 마취를 해야 해요. 수술 시간도 4시간이나 되고요.”
마취의도 한마디 거들었고, 수술 시간을 조금 늘려 말한 덕에 환자가 아닌 환자 아들이 놀랐다.
“아빠. 최소 절개로 해요. 그래도 된다잖아요.”
“그래도 되기는. 그건 그냥 그럭저럭 된다는 거야. 앞으로 남은 평생 요 며칠처럼 간호하면서 살고 싶으냐?”
환자는 아들에게 감정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네? 수술하면 괜찮아지잖아요.”
“그럼 다음엔? 나도 이제 쉰이 넘었는데 몸은 점점 안 좋아지겠지. 춤출 수 있을 때 새엄마를 찾아야지, 아니면 만날 휴가 내고 내 병간호 할래?”
거기까지 말한 환자는 고개를 돌려 의사를 바라봤다.
“긴말할 것 없어요. 난 가장 튼튼한 아킬레스건을 원합니다. 춤 연습을 얼마나 했는데, 아킬레스건 하나 때문에 발목 잡힐 수는 없어요.”
9시 반.
마연린은 도 주임이 도착하길 기다리지 않고 벌써 수술을 시작했다. 주임 의사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존재였고, 흔히 그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는다. 동시에 대부분 주임 의사는 시간에 까다로워서 환자 마취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는 도 주임이 늦게 도착해서 그걸 보고 화를 낼 수도 있었다.
어차피 두세 시간에서 서너 시간은 걸리는 수술이니, 마연린은 도 주임이 오든 말든 계획된 수술 시간대로 수술을 시작했다.
그와 손발을 맞추는 수련의는 체형이 거대한 주겸만이었다. 마연린 밑에서 퍼스트 어시를 선 지 일주일 좀 넘어서 아킬레스건 수술에 조금 적응된 상태였다. 선임 주치의였던 주겸만이 수술대 곁에 서 있던 시간이 마연린의 훈련 기간을 거의 따라잡을 정도라서, 당연히 일반 실습생이나 훈련의보다 퍼스트를 잘 잡았다.
곁에서 참관하는 실습생과 훈련의 눈에 마연린 맞은편에 서 있는 주겸만은 왕만두처럼 생겨서, 네모반듯한 얼굴을 착실하게 숙이고 있는 모습이 제사상 위에 놓인 돼지머리 같기도 했다.
주겸만은 타인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마연린을 도와 훅을 잡고 스킨을 당기고 석션하면서 껄껄대며 대화 상대도 되어주었다.
“쉰 넘은 환자가 개방식 수술을 다 하네. 보기 드물어.”
“가끔 있어요. 이분은 새 마누라 구하고 있대요. 생각도 명확하고 요구도 확실하고. 어제도 물어봤고, 사인받고 아침에 또 물었는데 보호자도 사인했으니 더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냥 해야죠, 뭐.”
마연린은 노련하게 환자 피부와 지방층을 벌려 아킬레스건 박리를 시작했다.
“아니 무슨 마누라를 아킬레스건으로 구해?”
“광장에서 춤추는 거, 노인들 중요한 사교활동이라고 증명됐잖아요. 특히 노년 남성이 춤을 잘 출수록 건강하다는 뜻이니까요. 몸이 건강하다는 건 중요하잖아요.”
“마 선생이 출동했으니 이 환자 나중에 광장에서 춤출 때 가장 눈에 띄겠네.”
마연린이 감탄하는 말에 주겸만은 살짝 아부를 떨었다. 마연린은 기분 좋아서 몸이 다 부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인생에 손꼽힐 아부를 즐기며 주겸만을 바라보자, 그의 진한 눈썹도 묘하게 보기 좋아 보였다.
그때 도 주임이 수술복을 입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참관실에 실습생과 수련의도 몇 명 들어갔다.
도 주임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말을 꺼냈다.
“나 때는 교수님 수술 있다고 하면 다들 두 시간은 일찍 나와서 수술실로 갔었지. 혹시라도 늦을까 봐. 그런데 간호사 누님한테 쫓겨 나오고, 요즘 참 좋아졌어. 곽 주임이 참관실까지 만들어 줬는데 조금 일찍 와 있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나.”
수술실 분위기가 순간 고요해졌다. 도 주임은 그것으로도 흡족한 듯 껄껄 웃으며 수술대 쪽으로 다가갔다.
“순조롭나?”
“예. 제법 순조롭습니다.”
마연린이 대답하자 도 주임이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서 평가를 내렸다.
“출혈량도 괜찮고 수술 시야도 또렷하군. 맞다, 요즘도 지혈대 쓰지?”
“네. 씁니다.”
“음음. 지혈대는 항상 풀어 놓도록. 지금이 수술하기 제일 편한 순간이야. 그리고 제일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고. 지금 여기서 빨리하면 할수록 뒷부분이 수월하지.”
고개를 들어 참관실을 본 그는 사람들이 표정이 하나같이 진지한 것을 보고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혈대 쓰는 방법은 내가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을 거고. 전에 혈관 문합 비결이 뭐냐고 누가 묻더라고. 그래서 생각해보다가 내가 대답했지. 평소에 많이 연습해서 경험 쌓는 거 외에 더 잘하고 싶으면 주의 사항은 딱 하나라고. 유혈전엔 참여하지 말기. 여자친구랑 동거할 때 주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도 주임의 마지막 말에 순간 웃음과 박수 소리가 터졌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실습생과 훈련의는 진짜로 웃고 있었지만, 대부분 수련의는 예의상 웃어 준 것이다.
이런 등급의 음담패설은 이미 몇 년이나 일해온 수련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연린은 안심하고 수술대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능연 밑에서 오래 일했던 만큼, 다른 건 몰라도 조용히 해야 할 때 조용히 하는 것만은 확실하게 배웠다. 오늘 수술에서 집도의는 자기지만, 주목 받아야 할 사람은 당연히 도 주임이니 조용히 있는 게 나았다.
도 주임 역시 마연린의 태도에 매우 흡족해했다.
외과 의사는 사실 모두 그랬다. 작은 수술에서라도 자기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도 주임은 능 팀 젊은 의사들을 제법 만족하는 편이었다. 다들 끈기 있고 말수는 적고 또 호응해야 할 때는 하고.
“연린이 잘 하는구만.”
도 주임은 몇 마디 격려하는 말을 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요즘은 개방식 수술을 많이 안 하지. 나 때는 개방식 수술 기회가 많아서 평범한 의사 실력도 다 이랬지. 음, 아킬레스건으로 따지면 연린이 수준이면 꽤 괜찮은 편이지. 부주임이라고 이 수준이 되리란 법은 없거든.”
그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킬레스건 보건술 같은 수술에 에너지를 쓰는 의사 자체가 별로 없었고 게다가 현대 의학은 시간이 흐르며 축적된 기술이라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 같은 지금 수술 방식은 도 주임의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훨씬 선진 기술이었다. 게다가 마취 기술과 새로운 설비, 약품 등이 있으니 마연린의 기술이 좋다고 해도 양심에 위배되는 말은 아니었다.
자리에 있는 의사들이라고 아킬레스건 보건술에 다 익숙한 건 아니라, 도 주임의 말에 마연린을 높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다들 주의. 여기 봉합, 우선 아킬레스건 테두리 접합이 아주 잘 되었어. 이건 뭐 어려운 것도 없고, 딸 머리 빗어주는 거랑 같아. 많이 보고 많이 하고, 손재주 있으면 좀 더 잘할 거고 손재주 없으면 연습 많이 하고. 음, 정식으로 봉합 시작했군. 물론 마 선생이 지금 하는 축능 보건술의 핵심은 혈관과 혈행이지만 아킬레스건 자체 봉합도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하네. 여기도 실력이 매우 중요하지. 축능 보건술은 우리 병원에서 연수하는 의사들은 모르는 사람 없겠지. 골관절 센터 축 원사와 우리 병원 능연 선생이 함께 만들어 낸 수술이지. 효과가 매우 좋고 개방성 수술이라 흉터가 크게 남는 거 외에 단점이 없다고 할 수 있지. 마 선생 혈관 봉합 동작은 우리 능 선생한테 제대로 배웠군. 이거 보라고, 타이, 정말 멋지군.”
수십 명의 의사가 주목하고 있으니 도 주임은 점점 신이 나서 가끔 마연린을 추켜세웠다. 수련의의 시선을 끌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수술실에서 한창 간 절제 중이던 능연도 오늘치 제시어를 받았다.
- 퀘스트: 증명.
- 퀘스트 내용: 아래 의사의 능력이 동기를 앞질렀음을 증명하라.
- 퀘스트 진도:3/5
능연은 벽걸이 시계를 힐끔 보고는 흡족한 듯 고개를 뜨덕였다.
도 주임이 제법 쓸 만한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두 개도 도 주임이 매우 빨리 해내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