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 선생. 오후 수술에 진료과 의사 몇 데리고 갈 생각인데 그냥 모르는 척해.
위청이 엽사공에게 보낸 메시지 마지막엔 웃는 이모티콘도 붙어 있었다.
-네.
엽사공은 재빨리 답장하긴 했지만, 내용은 상대가 미간을 좁힐 정도로 간단했다.
핸드폰 너머 위청은 역시나 미간을 좁히고는 다시 메시지를 입력했다.
-엽 선생. 우리가 협의한 내용 바뀐 건 없지?
-물론입니다. 수술 중.
엽사공은 간단하고 냉랭하게 대답했다.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장안민이 그에게 알려준 제 6번째 수칙이었다.
초급단계에서는 일단 냉랭하게 대하기로 했다. 그렇게 따지면 장안민이 전수한 12계는 초급과 고급으로 나뉘니 총 24계, 그야말로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엽사공은 장안민이 주임이 되어 36계까지 만들어 내면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서 정말로 수업을 열어도 되겠다 생각했다.
위청은 당연히 엽사공 뒤에 장안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묘하게 걱정이 되어서 옆에 있는 회계 담당하고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엽사공이 자신만만한 거 같은데, 주치의들도 좀 데리고 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위청은 생각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다른 의사를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심사할 생각이라는 걸 알았을 거야. 자신 없으면 어떻게든 말을 돌렸거나 빠져나가려고 했겠지.”
“그쪽에서 낚시하는 거 아니에요?”
회계 담당이 대충 대답했다.
“고작 수련의인데. 원래는 운이 좋아도 봉직의나 되면 다행이라고. 정직원 자리는 꿈도 안 꿨을걸. 이런 기회 앞에서 낚시는 무슨 낚시야. 누구나 강태공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런데 뭐하러 걱정해요. 안 되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되잖아요.”
“그건 안 돼. 엽사공하고 임기가 능연 밑에 제일 오래 있었어. 이 둘을 낚아 와야 보란 듯이 능연을 혼내줄 수 있지. 그리고 곽종군도.”
위청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그런 장면을 본 듯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회계 담당은 눈을 흘기더니 곧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사람 혼내주는 게 뭐가 재미있어요. 차라리 나를 혼내줘요.”
위청은 불끈하다가 이내 식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지금은 가 봐야 해. 수술 보러 간다고 했는데 바로 취소할 순 없잖아.”
오후, 엽사공이 집도하는 위 절제 수술이 1번 수술실에서 진행됐다.
모든 의사의 수술 시간과 수술방식은 매일 수술 구역 게시판에 공개된다. 최근 1, 2주 동안 엽사공과 임기는 매일 집도하는 수술이 한 건 있었다.
오늘은 마침 우연히 엽사공의 수술이 1번 수술실에 배정되었고, 그래서 위청도 그날 오후 수술을 참관하기로 한 것이다.
응급센터 1번 수술실 참관실엔 매일 오고 가는 의사가 있었고 어떨 때는 수술이 아닌 참관실만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위청과 수하 의사 몇이 그 자리에 있어도 눈에 띄지도 않았다.
“능연이 엽사공 어시를 잡는다고? 이햐, 이건 진짜 특별 대우인데.”
같은 부주임인 상지걸이 감탄했다. 그는 생중계로 능연의 수술을 보는 자주 봐왔고, 내심 언젠가 능연이 자기 어시를 서는 그런 날을 꿈꾸고 있었다.
위청은 답답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끝까지 하는 건 아니야. 저 옆에 세컨드 보이지? 자주 중간에 이어서 하더라고.”
“그래도 그게 어디야. 능연처럼 수하 키워내는 태도가 얼마나 대단한데. 하루에 한 번씩 집도하게 해줘, 또 수시로 어시 잡아줘. 그리고 어시 설 기회도 얼마나 많이 주냐. 돼지라도 위 절제 배우겠다.”
위청은 미간을 좁히며 자연스럽게 뒤에 서 있는 일반 외과 주치의를 바라보고는 헛기침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능연은 본인 수술량이 많아서 몇 개 던져줘도 차이가 안 나는 거니까. 비율로 따지면 우리가 내주는 집도의 자리보다 더 적다고. 게다가 능연 수술이 저렇게 많은 게 우리 수술을 빼앗아서 그런 거 몰라?”
상지걸도 위청이 아래 의사 들으라고 하는 말인 건 알지만, 뒤로 갈수록 들어줄 수가 없어서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어차피 우리 침대도 다 찼잖아.”
삼갑병원의 병상은 언제나 부족했고, 특히 일반 외과 같은 진료과는 어떤 환자를 골라 받을지 선택할 수 있을 뿐, 병상이 비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위 절제 수술은 위암 관련 증상이 아닌 이상 운화병원 일반 외과에서 달가워하는 유형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 문제는 일반 외과 자체 병실이 차고 안 차고가 아니었다.
위청이 더 어두워진 얼굴로 대답했다.
“상 주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언제부터 응급센터가 이렇게 맘대로 우리 일반 외과 수술을 하냐고. 충수염 준 것만 해도 곽 주임님 체면 생각한 건데, 위까지 건드리면 안 되지.”
“그건 나도 동의하지.”
눈이 시뻘게진 위청의 모습에 상지걸도 냉큼 태도를 바꿔서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저 엽사공은 네가 쓸 거냐? 나 줄 거냐?”
이번에 그와 위청의 치료팀에서 정직원 자리를 하나씩 뺀 것이니 당연히 확실히 해야 했다. 위청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엽사공은 내가 쓸 거야. 저기 통통한 놈, 네가 가져.”
“그랴.”
원래 따지는 게 별로 없는 상지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수술부터 보자고.”
위청의 얼굴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능연과 곽 주임의 코를 납작하게 할 수 있으면 진료과에서 그의 위치도 크게 오를 것이라 이 일을 매우 중시했다.
그것이 지금 그에게 실데나필(Sildenafil: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이나 피나스테라이드(Finasteride: 남성형 탈모,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보다 더 필요한 것이었다.
상지걸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매우 바쁜 사람이었고, 능연의 수술을 보는 것만 해도 시간을 쪼개서 보는 것이라 엽사공 같은 수련의 수술을 진지하게 보는 경우가 정말 드물었다.
그들과 함께 온 주치의들도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위청이 잡고 있는 정직원 자리가 어제 오늘 생긴 것은 아니다. 일부러 자리를 잡고 놓지 않는 이유는 갑자기 필요한 일이 생길까봐여서였고 그보다 중요한 건 진료과 보너스 분배 문제 때문이었다.
정직원이 하나 늘면 그만큼 보너스가 줄어든다. 병상은 고정된 상태이니, 보너스를 나눠줄 자격이 되는 의사는 차라리 수련의나 실습생을 더 바란다. 위청이 지금 사람을 추가하기로 결정 내린 건 모두의 이익에도 당연히 영향을 주었다. 그런 때니, 사람들도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의사가 팀에 들어오게 되는지 궁금했다.
혹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주임이라도 해도 그런 일을 강행할 순 없고.
엽사공은 아래층에서 평소처럼 수술을 진행했다.
위에서 자기 수술을 보는 사람이 있는 걸 알고 있고, 오늘부터 운명이 25도 정도 바뀌리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러나 엽사공은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수술 스텝을 이미 뼛속 깊이 기억해둬서 그런지도 모른다.
엽사공은 능연의 협조하에 아무런 정체 없이 한 스텝, 한 스텝 진행해나갔다. 위 절제하기도 전에 참관실에 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소란스러워졌다.
위청과 상지걸 모두 수련의 표준 기준으로 수술을 지켜봤는데 지금까지 보는 동안 엽사공은 그들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엽사공 나 줘.”
견물생심이라고, 상지걸이 저도 모르게 한마디했다. 그러자 그 밑에 있는 주치의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동료가 있으면 병상 수가 모자라도 서로 업무를 분담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위청 팀 의사들도 당연히 같은 마음이라, 대빵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일부러 꿍얼댔다.
“다 이야기 끝낸 건데······.”
“내 쪽에 위 하나 부족하단 말이야.”
상지걸의 말에 위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 주임, 우리 지금 위 때문에 사람 모집하는 거 아니잖아.”
“그럼 나 주면 되지.”
“이야기 끝난 일을 그렇게 쉽게 바꾸면 되나.”
위청은 입으로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지킬 건 지켜야지. 안 그래?”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술을 지켜보는 동안 말투가 점점 단호해졌다.
그때, 능연이 살짝 고개를 들어 위층을 바라봤다. 그의 앞에 시스템 제시어가 튀어나왔다.
- 퀘스트 완성: 증명
- 퀘스트 내용: 아래 의사의 능력이 동기를 앞질렀음을 증명하라.
- 퀘스트 진도: 5/5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