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느긋하게 입원 병동 수술 구역으로 돌아가 수술실 리스트를 살펴보고는 어슬렁어슬렁 수술과로 향했다.
오늘 심장외과에서 진행하는 승모판 기계 판막 치환술은 운화병원 심장외과에서 할 줄 아는 비교적 고차원적인 수술이었다.
시간을 살핀 능연은 지금쯤 개흉 상태이리라 추측했다. 본인이 직접 판막 치환술에 뛰어들 자신은 없었고 일단 수술과로 가기로 했다.
“심장외과에 요즘 심방 사이막 결손 보건술 하나요?”
수술과 휴게실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던 간호사들은 능연의 목소리를 듣고 허둥지둥대며 난리를 부리다가 한참 후에야 간호사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서 대답했다.
“모레 한 건 있는 거 같아요. 제가 확인해 볼게요.”
“네.”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능 선생님, 심장외과 도와······주시려고요?”
간호사가 허둥지둥 마우스를 잡고 소곤대며 물었다.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심장외과 상황에 따라서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도 되고요.”
“비밀로 해드릴게요.”
간호사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휴게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능 선생님이 이렇게 잘생겼는데, 목소리도 이렇게 좋은데, 심장외과가 어떻게 되든 알게 뭐람.
“엽 선생. 그럼 그렇게 하는 걸세.”
위청은 엽사공을 의학 기술 병동 구석으로 끌고 가 모든 절차를 한 번 설명한 후 엽사공의 손을 쥐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엽 선생은 우리 진료과 주력 의사가 된 거라고. 오게 되면 알겠지만, 우리 진료과 대우는 응급센터하고 비교할 게 아니야. 하하하.”
엽사공은 위청 부주임의 심리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 일반 외과에 있을 때 다른 데는 무시할 수 없어도 응급의학과는 무시했었으니까. 이제 막 배신자 노릇을 배운 엽사공은 이럴 때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저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가봐야 합니다. 소 염통이 벌써 도착해서 지금 안 가면 늦습니다.”
“오케이, 오케이. 볼일 봐.”
위청은 일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한마디만 더 할게. 우리 의사 손으로 요리하는 거 참······. 특히 자네처럼 실력 있는 의사 손을 밥하는 데 쓰는 거 너무 아깝지 않나? 능연도 참, 귀한 줄도 모르고.”
엽사공은 머쓱한 듯 웃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보통 출장 수술이나 가야 요리해요. 만날 식당밥 먹으면 다들 미칠걸요? 오늘도 그렇습니다. 다들 추가 근무가 길어서 좀 색다른 거 먹는 거죠. 시간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칼 오래 간다고 장작 패는 데 영향 주는 거 아니잖습니까.”
“칼은 장작 패는 사람이 갈고, 요리는 마누라가 하면 되지.”
위청이 센스 있게 한마디 하고는 말을 이었다.
“추가 근무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밥 먹으면 되지. 우리 진료과는 추가 근무도 별로 없어. 그렇게 추가 근무하는 데가 어디 있어. 능연네 진짜 추가 근무가 너무 많긴 해.”
병원 선임 부주임이 젊은 능연이 추가 근무를 많이 한다고 투덜거리는 모습에 엽사공은 이번엔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능 팀에서 정직원 의사들은 집에 잘 안 돌아가더라고요.”
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능연은 말할 필요도 없고, 돌싱 좌자전도 말할 필요 없고, 솔로 연문빈도 말할 필요 없고, 또 다른 솔로 여원도 말할 필요 없고, 마연린은······ 왜인지 아내가 매번 돌아올 때마다 며칠 들어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와서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집에는 더욱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엽사공은 잠시 생각하다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병원에서 음식 하면 조수도 있고 어차피 스킨 봉합 정도로 쉬운 일이라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위 주임님도 좋아하는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연습 좀 하겠습니다.”
이것은 장안민이 전수한 제8계였다. 적의 내부에 들어간 전사는 아무래도 티 나게 행동할 수 없으니 은근슬쩍 그림의 떡을 쥐여주는 것이다.
부주임 생활을 오래 한 위청은 실습생이나 훈련의, 수련의에게 수많은 그림의 떡을 쥐여줬는데, 오늘 엽사공에게 받은 그림의 떡이 의외로 맛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엽사공이 일반 외과로 들어온 다음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이제부터 족발을 먹고 싶으면 족발이 생길 거고, 순대를 먹고 싶으면 순대가 생길 거고, 야채볶음, 소염통······. 그렇게 상상하던 위청은 문득 생각해보니 능연처럼 산다는 건 제법 짜릿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이고, 엽사공을 완전히 옭아매기 전에는 그래도 몸을 좀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청은 필요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일반 외과로 들어오게 되면 알겠지만, 우리 일반 외과는 의사들한테 쓸데없는 부담을 주지 않아. 특히 밥 같은 일로는 더더욱 말이지. 병원 밥 질리면 성원 호텔······ 옆에 운해천 식당이라고 있어. 거기서 먹고 사인만 하면 돼. 나중에 진료과에서 가서 계산한다고.”
위청은 자기 진료과의 매력을 선보이기 위해 조금 부풀려서 말했다. 정직원이기만 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병원이나 진료과마다 대우 차이는 있었다. 위청은 엽사공이 완전히 승복하고 들어오길 바랐다. 최대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원래 주인과 완전히 대판하고 새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그런 방식으로.
엽사공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지금 배신자의 장점을 하나 발견했다. 장안민 부주임이 말한 것처럼, 적진에 들어간 의사는 실질상 입장이 달라서 진료과의 각종 정책과 문제 앞에서 더욱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된다.
아는 사람 수술은 안 하는 것처럼, 적진에 들어간 의사는 아무래도 자기 입장보다는 자신의 지식 체계에서 출발해서 일을 완수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위청의 말에서 엽사공은 일반 외과에서는 그를 주치의로 고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실히 읽어냈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주력 의사가 아닌 주치의라고 바로 말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위청이 조금 전에 한 말에서는 일반 외과 양극화 문제가 드러났다. 위에 의사는 자주 고급 식당으로 가서 해피할 수 있지만 밑에 의사는 구박받는 며느리 신세가 더 심하리라는 것. 밥 먹고 사인만 하고 온다는 건 레지던트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주치의도 그다지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특히 이런저런 규정이 점점 엄격해지는 요즘, 초짜 의사가 감히 식당에서 사인하고 나오는 그런 일을 어찌할까. 제약회사 직원들도 주치의한테 그런 대접은 하지 않고 밥 한 번 사는 것도 여러 번 고민하는 상황에 말이다.
“그럼 준비는 위 주임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엽사공은 겉으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속으로 정직원 자리만 받으면 본 모습을 드러내도 탓하지 말라고 생각했다.
“걱정 말게. 아무 문제 없어.”
위청은 겉으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며 속으로 진료과에 들어오기만 하면 본 모습을 드러내도 탓하지 말라고 생각했다.
위청을 배웅한 엽사공은 시계를 보고는 응급 병동으로 달려갔다. 수술 구역으로 들어가 보니 지금은 밀폐형으로 개조를 끝낸 작은 주방에 주먹만 한 염통이 놓여 있었다.
엽사공은 순간 마음을 놓았다. 주재료가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저녁을 만들 수가 없었고 저녁이 제때 준비되지 않으면 의사들은 배를 곯아야 한다.
능 팀 시간은 매우 촉박했고 특히 의사들이 대부분 독립해서 집도하기 시작한 후로 남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수술 중 의외의 상황에 할애하지, 밥 먹는 것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이미 정해진 수술 계획을 바꾸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주방장인 엽사공은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고작 능 팀 몇 사람도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면 요리사 집안 전승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그리고 엽사공 본인의 가치는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물론, 적진에 침투한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장안민의 성공에 대비해보면 엽사공은 그래도 자기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싶었다.
“거기 누구지, 와서 좀 도와줘.”
엽사공이 테이블을 두드려 한창 화학 검사 결과지를 붙이던 실습생을 불렀다.
“저 밥 해본 적 없는데요.”
이제 막 졸업한 실습생이 망연한 눈으로 엽사공을 바라봈다.
“사람이면 다 해.”
엽사공은 뒤돌아서 안으로 들어가 소 염통을 처리하면서 계속 말했다.
“소 염통은 별맛이 없어서 맛있게 하기 힘들어. 그래서 조미료를 많이 준비해야 하거든?”
“곁들일 게 있으면 좀 괜찮을 거야.”
문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린 엽사공이 기뻐하며 상대를 반겼다.
“주 주방장님! 맥 매니저!”
“매니저는 무슨요. 심부름꾼인데.”
운리에서 온 맥순이 눈을 깜짝이며 말을 이었다.
“도와주러 왔어요.”
“잘됐네요. 그럼, 전칠 아가씨도 왔어요?”
엽사공도 이제 알 건 알았다. 그 말에 맥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냥 구색 맞추러 온 거고요, 주 주방장님이 메인이죠.”
이미 여러 번 주 주방장과 손발을 맞췄던 엽사공이 웃으며 그를 맞았다.
“주방장님이 오셨으니 됐네요. 안 그래도 소 염통을 어떻게 굽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소 염통은 샥스핀이랑 같아. 주재료는 적게, 곁들일 요리를 많이.”
주 주방장은 원대한 포부를 품은 표정으로 설명했다.
“소 염통 구이는 등심, 갈비, 부채살, 살치살, 소혀 이런 거랑 같이 굽는 게 좋지. 그럼 맛도 보장할 수 있어.”
그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맥순이 뒤로 감췄던 양손에 든 거대한 바구니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얼음에 깔린 소고기가 보였다.
“목장에서 급하게 잡은 제부야.”
주 주방장이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물론 소는 그냥 장식이고, 주재료는 소 염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