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병원 수술층, 일반 외과 소속 16번 수술실.
수술과의 간호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수술실을 오가며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도 모자라 기구도 여러 가지 준비했다. 마취과도 위 절제 수술 하나 때문에 부주임에 선임 레지던트로 구성된 최강 진용을 꾸렸다.
일반 외과 수술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다른 진료과 의사와 간호사가 임기를 매우 궁금해하는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다들 이번 일로 쓸데없는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반 외과는 일반 외과 큰 주임 타이틀을 칠판 가득 채울 수 있는 운화병원의 전통 있는 큰 진료과였다. 위청은 아직 부주임이지만, 뒤에 큰 주임이 버티고 있어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응급의학과의 곽종군 님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고, 심지어 성격이 포악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유명한 능연까지 연관된 일이라 16번 수술실 안팎이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임기, 이번 수술 자네한테 달렸다.”
뒷짐을 지고 나타난 위청은 뜻대로 이뤄진 게 만족스러운 듯 녹색 수술복을 입고 수술 지도라도 하는 모습으로 수술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능연이 그렇게 오래 키운 사람을 자기 진료과로 뺏어 왔어. 이게 성과가 아니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임기가 머쓱한 듯 웃었다. 위청은 전에는 꼬박꼬박 임 선생이라고 부르더니, 일반 외과로 적을 옮긴 후 이름을 부르는 게 더욱 친밀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네. 맡겨 주세요.”
임기는 그렇게 대답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그다지 익숙한 얼굴은 아니었는데, 위청의 주치의는 기본적으로 모두 자리에 있었다.
임기의 수술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지난번보다 위청 팀 의사들이 더 많이 참여했다.
임기도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지만, 분위기 전환도 할 겸 웃으며 말을 꺼냈다.
“다들 고생이시네요. 이렇게 다 모이기도 어려웠을 텐데. 사실 저는 일반 외과에서 이제 막 배우는 학생입니다. 전에는 추 현 병원에서 여러분 신세를 많이 졌죠. 이렇게 유명한 운화병원 일반 외과에 올 수 있게 되고, 우리 위 주임 밑에 있게 된 게 참······. 기묘한 운명이구나 싶습니다. 아, 이제 시작할까요?”
한창 흐뭇하게 들으면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위청은 임기가 곧 메스를 달라고 손을 내밀자 바로 미간을 찡그렸다. 이러고 마는 거야? 사람 추켜세우려면 제대로 해야지.
하지만 임기가 현 병원 출신인 걸 생각하고는 곧 이해했다.
현 병원 같은 곳도 재능이 좀 있는 의사는 두각을 드러내기 쉽다. 특히 비교적 큰 현 병원은 할 수술만 있으면 실력이 되는 의사는 역시 말보다는 종일 수술만 하면 되는 구조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임기를 좀 높이 쳐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다른 일반 외과 의사들의 표정도 괜찮은 편이었다. 임기가 위대한 운화병원 일반 외과 의사라고 추켜세운 바람에 다들 그의 존중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 외과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존중이었다. 어차피 돈은 거기서 거기니까.
“우리 임기, 긴장하지 말고 수술 잘해.”
같은 팀 선임 주치의도 곁에서 응원했다.
“그렇다고 너무 힘 빼지 말고요. 다들 추가 근무하면서 수술 보는 거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수술 시간 잘 컨트롤하세요. 우리 위 주임님은 퇴근하고 기다리는 미녀한테 가야 하니까.”
이 말을 한 나광은 임기보다 좀 더 어린 의사지만, 주치의가 된 지 2년인데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아 정직원은 되지 못했다. 그러니 임기와 경쟁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상대를 힐끗 본 임기는 내심 그를 기억해두면서 웃어 보였다.
“오늘 여러분 시간을 뺏긴 했네요. 나중에 밥 살게요.”
“성원이죠?”
“그래도 되고요.”
나광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임기도 웃으며 대답했다. 반년 정도 능연 밑에서 수술하면서 일반 외과 의사들보다 몇 배는 벌었으니 주머니가 두둑해서 태도도 당당했다.
임기가 흔쾌히 응할 줄은 몰랐던 나광은 속으로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더는 드러내고 몰아붙이지 않았다.
일반 의사가 성원에서 밥을 산다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때 위청이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내일은 과 회식하자고. 환영회 해야지. 임기 자네는 나중에 쏴.”
“네! 다들 시간 내주시면 전 돈만 내겠습니다.”
임기가 시원시원하게 하는 말에 의사들은 큰 소리로 호응했고 분위기도 뜨거워졌다.
임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능 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능 팀 의사들은 다들 바빠서 꽁지에 불이 붙을 지경이었다. 운화병원 의사들은 다 바쁘다지만, 능 팀처럼 바쁜 의사들도 드물었다. 그래서 평소에 누가 밥을 사도 성원에 가는 일은 드물었고 다들 병원 안 식당에서 먹는 걸 더 좋아했다. 너무 바쁠 때는 밥을 얻어먹느니 차라리 쪽잠이라도 자는 걸 택했다.
한편으로 능 팀 의사는 능연을 따라 출장 수술을 자주 가서 주머니가 두둑했고, 성원이니 뭐니 진작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임기 눈에 능 팀과 위청 팀 의사 중에 후자가 더욱 현 병원 의사처럼 보였다. 물론, 그런 건 말로 할 수 없고 심지어 티를 내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임기는 다시 웃음을 거두고 평소처럼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개복하고 복강경을 찔러넣고 검은 스틱을 집어넣고······.
61세 환자의 고통받은 위가 곧 드러났다.
임기 님은 초음파 메스를 최고 공률로 올린 다음 모니터를 바라보며 닭고기 찢듯 환자의 위 인대를 박리하고 타원형으로 위를 절제했다.
사람들은 이내 지루해했다.
임기가 못해서가 아니라 나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한 수준이라서였다. 운화병원 정도 되는 병원에서 위 절제 수술을 잘하고 못하고는 기본적으로 거기서 거기라 평범한 의사는 초월할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초월한 부분이 없는 수술은 지루하기 마련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런 단순한 수술엔 농담이 오가야 제맛이었다.
위청이 임기를 슬쩍 바라봤지만, 우리 임기는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위청이 다시 임기를 바라봤지만, 초짜 임 선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임기, 긴장되나?”
위청이 결국 못 참고 물었다.
“아니요. 순조로운데요.”
임기가 싱긋 웃었다. 정말로 순조로웠으니까.
위청이 보기에도 순조로워 보였다.
위청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능연 밑에서 수술을 오래 하더니 수술 중에도 느긋하구만.”
임기는 멈칫하고는 머쓱한 듯 웃었다.
“사실 평소엔 말이 많은데, 오늘은 집도하다 보니 긴장이 되긴 하네요.”
임기는 냉큼 변명했다. 아무리 배신자라고 해도 주인한테 정말로 밉보였다가는 앞날이 고될 뿐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제까지 정말로 많은 준비를 했었다. 장안민 선생한테 여러 수를 배우느라 전화비도 꽤 썼는데 하필 만담하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
물론 하려고 들면 임기 님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현 병원 주치의 수준이라······. 운화병원에서 그리 오래 눌어붙어 있었어도 만담 능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잠시 굳어있던 임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곰과 토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음, 곰 얘기 좋지.”
위청이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순회 간호사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토끼는 세 마리 이상이어야 해요.”
“세 마리? 왜요?”
“우리 사천 사람은 먹을 때 한 번에 세 마리가 기본이에요.”
임기를 잠시 놀린 순회 간호사는 미안한 기색 하나 없었다.
임기는 갑자기 능연의 수술실이 그리웠다. 한때는 능연의 수술실이 재미없다고 생각했지만, 재미없는 게 놀림 받아서 초조해지는 것보다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