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야. 이따 난 심장외과 수술실 간다.”
정규적인 똥 꺼내기 작업이 끝난 시간에 위청이 통보하듯이 한마디 했다.
임기는 더러워진 보안경을 쓰고 콧등을 찌푸리며 물었다.
“심장외과 수술 보시려고요?”
“능연 수술이야. 심방 사이막 결손 보건술이라던데. 체외 순환기를 쓰는 개심 수술.”
위청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모습에 임기는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적진에서 오래 일하다가 갑자기 아군이 대승하고 잃었던 땅을 다시 거둬들였단 소식을 들은 느낌?
“자네 응급센터에 있을 때 능연이 심장외과 수술 연습했었나? 아니지?”
위청은 의심스럽다는 말투로 수술하면서 중얼거렸다.
“기술을 대체 언제 익힌 건지. 체외 순환 수술은 응급센터에서 할 조건도 안 되잖아. 학교에서 배웠을 리도 없고.”
순간 임기는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찮은 위청 선생, 지금 무슨 생각이시지요? 과거에서 능연의 잘못을 캐내려고요? 아니면 더 심하게 의학 이론에서 트집을 잡으려고요?
임기는 맹세컨대, 학교 시험에서 커닝할 때도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린 적은 없었다.
임기는 머리를 미친 듯이 굴리는 와중에 대답도 해야 해서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꼭 그런 건 아닐걸요? 능연은 심장 외상 수술도 여러 건 했었으니까요.”
“그것도 다 최근이잖아.”
“능 선생이 수술한 게 몇 년이나 됐다고요.”
임기가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위청도 임기의 말을 믿는 듯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포상을 내리겠다는 말투로 나머지 부분을 해치우라고 했다.
“옛설!”
임기는 매우 신난 척 대답했고 위청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수술할 때 수술대 위만 주의하지 말고 수술대 아래 상황도 주목해야 한다.”
“무슨 뜻이신지······.”
위청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확실하지는 않은 듯 대답했다.
“요즘에 능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야. 심장외과 수술을 하는 게 단순히 기술 놀음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심장외과 쪽으로 생각이 있는 건지······. 말 안 해도 보이는 건 있을 거 아니야. 우리 둘이 가서 보고 분석해보자고······.”
위청은 뒤로 가면 갈수록 말투가 좋지 않아졌다.
능연의 수술 방식은 아닌 게 아니라, 갈수록 위협적이었다.
간 절제나 하면 몰라도, 아킬레스건 수술에서 국제 환자 두어 명은 부르고 심지어 혼자 운동 정형과를 세워도 충분할 판에 요즘엔 위 절제도 시작하더니 심장외과 수술까지.
위청의 머릿속에 떠올리기 싫은 과거사가 떠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곽종군의 대형 응급.
곽종군이 운화병원 응급센터에 뿌리내린 지도 어언 20년이었다. 게다가 군의관에서 전직한 것이라 운화병원에 몇 년 되지 않아 바로 주임 자리에 올랐다. 진료과 주임 자리에 20년 앉아 있었으니, 그야말로 고목의 뿌리처럼 탄탄하고 든든한 것도 당연했다.
요즘 곽종군은 회의를 열 기회만 있으면 대형 응급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큰 진전은 없고 각 진료과 의사들도 그런 곽종군의 제안을 암암리에 배척했지만, 곽종군의 행동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옛날엔 시골 인구가 많고 대부분 환자는 외래나 작은 병원에서 트랜스 되어 오는 일이 많아서 다른 진료과는 응급에 대한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응급의학과에서 다른 진료과 눈치를 봤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응급 환자가 점점 많아졌고, 일반 외과 같은 진료과는 어떨 때는 환자 절반을 응급의학과에서 보낼 때도 있었다.
응급의학과에서 보내온 환자는 작은 수술이라고 해도 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몇 명 정도라면 일반 외과에서도 기뻐하겠지만, 환자 수가 대규모로 변한다면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된다.
그런데 대형 응급이니 뭐니, 정말로 시행한다면 일반 외과의 숨통을 조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거기까지 생각한 위청은 저도 모르게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바로 고개를 흔들면서 혼잣말에 가깝게 중얼댔다.
“심장외과에서도 이번엔 일어날 거야.”
“일어나요?”
“능연은 하고 싶은 수술을 다 하고, 그게 무슨 짓이냐고. 중국이라 가능한 얘기지, 다른 나라였으면 진료과 외 수술을 하고 싶으면 새로 시험 봐야 한다고. 알아? 면허 취소도 가능하다고.”
임기가 어리둥절해서 묻는 말에 위청이 씩씩대며 대답했다.
“외국이었으면 곽 주임님이 면허 위원회에 있었을 겁니다.”
임기가 반 농담으로 하는 말에 위청은 멈칫하다가 웃기 시작했다.
“일리 있군. 그래, 곽종군이라면 가능한 얘기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위청은 다시 얼굴을 흐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뭐가 됐든, 이번에 심장외과도 방어하려고 애쓸 거야. 우리가 좀 도와야지. 임기, 무슨 좋은 생각 있으면 바로 말하라고.”
“우리가 심장외과를 돕는 거죠?”
임기가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음. 지금 심장외과는 2차 세계 대전 때 영국 같은 상황이야. 알겠나? 우리가 심장외과를 도와서 이 고비를 넘기면 우리도 우리 진영에서 안전하게 보낼 수 있지.”
위청이 진지하게 하는 말을 유심히 듣던 임기는 위청이 헛소리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걱정이 늘었다.
능 선생이, 이거 막을 수 있을까?
30분 후, 임기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위청을 따라 새로 옷을 갈아입고 심장외과 수술실로 향했다.
임기는 옷을 갈아입는 틈을 타 좌자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간단히 내용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보내놓고도 초조한 마음은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적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본진이 뚫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물론 한 번에 무너질 본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일로 능연이 큰 타격을 입는다면 앞으로 일반 외과의 구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임기는 막으려야 막을 수도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사람 다 찼어요.”
수술실 입구에서 순회 간호사가 누군가의 앞을 막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가로막힌 사람은 아마도 주치의인 것 같은데 임기는 모르는 얼굴인 걸 봐서 뇌 외과 혹은 성형외과 아니면 비뇨기과 같은, 응급센터가 아직 팔을 뻗지 않은 진료과 사람일 것으로 추측했다.
나이가 많은 편인 순회 간호사가 엄숙한 말투로 대답했다.
“안에 벌써 10명이나 있어요. 사전에 예약한 사람 아니면 못 들어가요.”
“수술을 예약해야 한다고? 예약하라는 공지 못 받았는데요.”
그 주치의도 당연히 처음 가로막힌 건 아니었으나, 이제 젊은 초짜 의사가 아니니 바로 표정을 바꾸고 엄격하게 물었다.
“부주임 이상만 예약할 수 있거든요.”
순회 간호사가 가차 없이 대답하는 말에 주치의는 할 말을 잃었고, 뭐라고 반박하려는 그때 등 뒤에서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청이 웃는 얼굴로 그쪽으로 다가갔다.
“위 주임님.”
간호사가 생긋 웃으며 살짝 몸을 틀어 자리를 내주었다. 임기는 냉큼 달려가 같이 수술실로 들어갔고, 뒤에 남은 주치의는 끽소리 못하고 바라봤다.
심장외과 수술실은 언제나 그렇듯이 넓고 깔끔했다.
아직 수술이 시작되지 않았고, 의사들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좌우를 살피던 임기는 능연이 아직 도착하지 않을 걸 보고 속으로 위안하며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주목 받는 심장외과 수술실은 운화병원 최첨단 수술실 중 하나였고 강 주임 위주로 의사들이······.
임기는 수술실 구석에 있는 강 주임을 바라보다가 강 주임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은 걸 문득 발견했다. 위청 역시 그 점에 주목했다.
“강 주임, 별일 없고?”
“그럭저럭.”
위청이 냉큼 다가가서 말을 걸자 강 주임의 안색이 흐려졌다. 딱 봐도 이상하단 생각에 위청이 미간을 좁혔다.
“강 주임, 우린 모두 자네를 지지하네.”
“저거 못 봤어?”
강 주임이 입을 삐죽이며 곁에 있는 기구를 가리켰다.
“흉강경?”
강 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도착했어. 오늘 심방 사이막 결손 보건술을 흉강경으로 할 거래.”
강 주임이 길게 설명하기도 전에 위청의 뇌리에 설명 한 줄이 뿅 하고 튀어나왔다. 전(全) 흉강경 하 심방 사이막 결손 보건술.
위청은 매우 놀라면서 또 동정하는 눈으로 강 주임을 바라봤다.
그런 수술은 운화병원을 통틀어도 진행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