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마취제 투여.”
“심장 박동 멈췄습니다.”
체외 순환을 하는 의사가 나지막이 상황을 보고하며 일사불란하게 설비를 지켜봤다. 오늘은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심장외과 의사들에겐 조금 부담되었다. 그와 비교하면 능연이 데리고 온 연문빈과 여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이긴 해도 대범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구석에서 레지던트들이 할 만한 작은 일이나 했지만, 능연이 자리 잡고 있으니 심장외과 수술 앞에서도 흥분이 됐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수술 정도는 사람이 많은 적든 두 사람에게는 진작에 익숙해진 일이었다. 평소에 응급센터 1번 수술일에서 더 많은 의사에게 둘러싸여 수술을 진행해왔었고.
“좀 더 가까이.”
능연의 목소리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강 주임은 노련하게 모니터를 가까이했다. 능연은 심장의 전경뿐 아니라 전체 모습을 보게 되었고 손을 놀리기가 더욱더 편해졌다.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강 주임은 능연의 움직임을 지켜볼 시간이 많았다. 능연이 오른손을 움직였다가 왼손을 움직였다가 다시 오른손을 움직였다가 또 왼손을 움직······.
왼손?
강 주임이 눈을 치켜들었다.
왼손이 언제 이렇게 능숙해진 거지? 정말 연습 많이 했구나, 너.
위청 그리고 수술을 지켜보는 다른 의사들도 역시 능연의 왼손을 주목했다. 능연이 복강경을 할 때는 그래도 오른손 위주로 작업해서 왼손 조작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흉강경은 활동 범위가 더 좁아서 오른손을 메인으로 움직이면 몸을 움직여야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왼손을 오른손처럼 노련하게 움직일 수 있으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오늘 수술으로 능연의 왼손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꼬마 아가씨가 운이 좋군.”
소화기 외과 서 선생이 한마디 칭찬했다.
능연의 조금 전 기술만으로 체외 순환 시간을 15분 정도 줄이는 것도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전체 수술 시간은 그로 인해 30분 줄어들지 모르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는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아까 봤던 가상 인간을 회상한 능연은 수술 전에 봤었던 심전도 등 데이터도 떠올려보고는 대답했다.
“굉장히 좋은 건 아니고요. 심방 사이막 결손이 조금만 더 작았더라도 인터벤션 수술로 했으면 더 안전했을 겁니다.”
아무래도 심방 사이막 폐쇄술보다 흉강경이 더 손상이 컸다. 보통 환자는 체외 순환 수술 한 번으로 술자리 서른 번에서 떠들 수 있다.
“인터벤션 수술이 더 안전하지만, 이 아가씨 결손 상태로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 해도 운이 좋은 거지.”
서 선생은 간접적으로 능연을 칭찬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강 주임님, 우리 국내에서 비슷한 수술을 하는 게 얼마 만이죠?”
아까부터 묻고 싶었지만, 능연의 조작이 어떤지 보지 않고 물었다가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봐 그러지 않았는데 능연의 조작을 보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강 주임이 서 선생을 힐끔 바라봤다.
“비슷한 수술이 바로 이 수술이야. 수술 시간만 서너 시간일 때도 있고, 체외 순환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아이고, 오래 걸리네요.”
구체적 시간은 모르던 서 선생은 강 주임이 말한 수치가 능연이 말한 수치와 큰 차이가 난다는 걸 깨닫고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한 시간 반 체외 순환을 50분으로 줄이는 건 큰 차이가 나겠죠?”
수술에는 ‘말’ ‘배움’ ‘놀림’ ‘놀이’가 있어야 하는데 집도의가 보기 드물게 말이 없는 사람이니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 좋게 분위기를 살리면 집도의의 칭찬을 받기 쉽다.
강 주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보통 의사들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고 50분은 진짜 대단한 거지.”
“환자에게 영향이 크겠죠?”
서 선생은 착한 학생인 척 물었다.
“그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강 주임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흉강경 체외 순환 시간은 개흉 체외 순환보다 30분은 줄어야 하니까. 그것도 종합적인 손상을 고려해야지.”
“그래서 50분에 흉강경 수술을 끝내면 각 방면 손상을 가장 낮게 줄일 수 있는 거죠?”
서 선생은 겉으로 질문하는 척하며 능연이 들으면 기분 좋을 말을 했고 그런 서 선생의 마음을 잘 아는 강 주임은 흉강경 메인 기기를 살펴보며 대답했다.
“흉골을 자르지 않아도 되니까, 수술 회복에 유리하긴 하지.”
“흉강경 수술 염증 반응이 빨리 오고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능연이 수술 후 회복에 관해 한마디 했다.
“환자 심장에 더 큰 자극을 받아서겠지. 흉강경은 상대적으로 체외 순환 시간이 길고 주동맥 차단 시간도 있으니까 수술 후 혈청 염증 요인이 조기에 나타날 수 있지. 하지만 그래도 흉골을 가르는 것보다 나아. 절개구 회복도 훨씬 빠르고.”
잠시 생각하다가 강 주임이 하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가 하는 수술은 체외 순환이 필요한 최소 절개구 수술이나 마찬가지였다.
능연은 가볍게 환자의 우심방을 열어 심방 결손 크기를 확인한 후 4-0 봉합사를 건네받아 연달아 꿰매고는 환자의 심방 결손 보건을 모두 마쳤다.
강 주임은 다시 말을 하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능연의 봉합을 지켜봤다.
봉합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하면, 서너 시간 수술에서 심장을 한 시간 넘게 정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몇 바늘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봉합이야말로 이 수술의 핵심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심장외과 의사들은 최대한 완벽한 봉합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봉합하고, 마지막 바늘은 배기하여 매듭짓고, 또 어떤 매듭을 지을지, 팽창 검사 밀도는 어느 정도로 할지······.
능연이 나이 든 심장외과 의사처럼 노련하게 움직이는 걸 보며, 강 주임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점점 날려 버렸다. 능연이 어디서 심장외과 기술을 배운 건지 몰라도, 대항할 의지를 전혀 생기게 하지 않을 기술이었고 환자에게 도움이 될 기술이었다.
자기 심장이 터질 상황이 온다면 그때 유언으로 ‘능연을 찾아가라.’라고 남기겠지. 고개를 들어 흉강경 메인 기기를 본 강 주임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전부터 흉강경 수술을 하고 싶어 했다.
그때만 집행했어도 운화병원 심장외과에서 그리 큰 수술은 못 할지 몰라도, 흉강경으로 하는 작은 수술로 진료과를 일으킬 수는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구매 신청조차 몇 번이고 반려되었다. 물론,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고 한 해 한 해 미룬 탓에 지금은 응급센터에 선두를 뺏기에 되었고.
능연이 수술을 잘못 했다면 속으로 위안이라도 했겠지만, 능연이 하필 이렇게 수술을 완벽하게 하니······.
강 주임은 눈을 들어 수술실 시계를 바라봤다. 디지털 숫자는 겨우 35분을 나타내고 있는데 능연은 벌써 우심방을 봉합하고 있었다.
강 주임은 쓰읍하고 숨을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프로타민(protamine) 준비해.”
여기까지 진행하는 데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 능연이 기술로 흉강경의 단점을 완전히 커버했다는 뜻이었다. 강 주임은 저도 모르게 능연이 개심 수술을 했다면 수술 시간을 대체 얼마나 줄였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연을 바라보는 강 주임은 대항할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오히려 눈앞의 환자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이런 수준의 흉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가 어떤 수준으로 회복할지 궁금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강 주임이 적극적으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수술 끝나고 케어는 내가 할게.”
“네.”
좌자전이 대답하려고 하는데 능연이 벌써 대답해 버렸다. 심장외과 수술은 수술이 끝나도 마음을 놓으면 안 되고 의사가 장시간 케어하면서 환자의 응혈 상태, 절개구 상태, 흉액 퀄리티 등을 살펴야 한다.
강 주임의 능력으로 그런 걸 해내는 건 당연히 문제가 없다. 좌자전은 더 많은 걸 고려했지만, 이왕 능연이 승낙했으니 끼어들지 않았다. 정 안 되면 나중에 레지던트 한 마리 보내서 같이 살피면 그만이었다.
보호자는 이미 기다리다 지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환자의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삼촌 숙모들, 외삼촌 외숙모, 독신 삼촌, 독신 이모 그리고 사촌 형제와 외사촌 형제가 대기 로비 구석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병원 수술 시간은 마취 때부터 계산된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 기준으로는 환자가 스트레처 카에 실려 가는 그 순간부터 불안하고 초조해서 몸이 근질거리게 된다. 그러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심장 수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보존 치료를 해야 했던 거 아닐까.”
환자의 엄마가 그 말을 몇 번째 남편 귓가에 꿍얼거렸는지 모른다. 답을 바라는 건 아니고 거의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고 그걸 잘 아는 남편도 마찬가지로 웅얼거렸다.
“결정한 건 후회하지 말자.”
“우리는 후회 안 해도 애가 후회하면 어떡해.”
어머니는 그제야 감정을 쏟아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후회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잖아. 수술이······ 혹시라도 수술이······.”
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말문이 막혔다.
“기운 빠지는 소리 하지 마라. 아직 수술 중인데 울상 좀 짓지 말라고.”
외할머니가 다가가서 발언권을 빼앗아 버렸다.
“임신했을 때 내가 무리해서 그래. 그때 일을 그만뒀어야 했어.”
어머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그때 졸업반 맡았었잖아. 학생들 공부하는 게 힘들어서 갑자기 선생을 바꿀 수 없다고 당신이 그랬었잖아.”
남편이 나지막이 아내를 위로했다. 하지만 환자 엄마는 점점 더 크게 울면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개만 흔들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