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빠른 걸음으로 응급센터 구역으로 돌아와 하얀 가운만 갈아입고 손과 얼굴을 다시 씻은 다음 홀가분하게 처치실로 돌아와 다음 목표를 물색했다.
상급 의사가 되면 좋은 점 중 하나가 하급 의사의 환자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택일 수술이라면 그래도 이미지를 고려해야겠지만, 응급실에서는 대부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걸 더 좋아한다.
응급센터 생활이 그렇다. 택일 수술처럼 늘 같은 몇 가지 증상과 수술 방식을 반복해서 기술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응급센터의 환자는 많고 의사는 적은 상황이라 보통 환자를 뺏을 것도 없다. 변화무쌍한 병세를 경험에 의존해서 처리하긴 해도 혹시 해결하지 못 하는 증상이면 어쩌나, 환자와 보호자가 막무가내면 어쩌나, 그런 걸 더 걱정한다.
인간관계에 약한 능연은 보호자가 없어 보이는 환자를 찾아 다가갔다.
“아트로핀 0.5, 아이소프레날린은 음……. 1.0. 정맥 주사 10에서 15.”
선임 레지던트 정배가 오더를 내리고 있었다. 능연은 침상 모니터를 힐끔 보고는 과감하게 방향을 바꿨다. 약을 저 정도 쓸 정도면 환자가 기절한 것이고 잘못하면 쇼크일지도 모른다. 그건 능연도 도움이 되지 않고, 용약도 정배보다 더 잘하진 못했다. CPR을 할 일이 생기면 모를까, 능연이 있어도 소용없었다.
능연은 아예 저쪽 데브리망 실로 향했다. 베드에 엎드린 환자가 다리에 수건을 덮은 채 용모가 평범한 레지던트에게 이리저리 건드려지고 있었다.
“도와줄게요. 무슨 상황이에요?”
“어. 못을 밟았는데 녹슨 못이었어.”
능연이 두말없이 다가가 묻는 말에 용모가 평범한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능 선생님, 손가락 길이랑 비슷한 7센치 넘는 못이었어요.”
곁에 있던 간호사가 흥분한 듯 거들었다.
“못은 안에 있어요?”
“아니.”
“아. 포셉.”
능연은 레지던트 맞은 편에 앉아 손을 내밀었고 간호사가 서둘러 포셉을 건넸다. 능연의 손바닥에 손가락이 살짝 닿자, 가슴이 파르르 떨렸다.
“바닥에 박힌 못이었어요. 빠지지 않는 거.”
학생 같아 보이는 환자는 엎드리고 있어서 능연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듣고도 조금 안심되었다.
“빼려고 해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사진 찍었는데, 보실래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필요한 줄 알았는데.”
“왜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학생이 실망한 듯이 하는 말에 능연이 물었다. 환자가 이상한 생각을 하면 꼭 물어봐야 했다. 병력 청취의 일부분이니까.
“지난달에 뱀한테 물렸었거든요. 그때 의사가 그런 일이 있으면 뱀을 가지고 오는 게 좋다고 해서요. 그래야 판단할 수 있다고.”
학생이 불안한 듯 꿈틀거리며 말하다가 그제야 깨달은 듯 말을 이었다.
“가지고 올 필요 없구나. 그럼 저번 의사가 뻥 친 거네요? 그렇죠?”
용모가 평범한 레지던트가 고개를 들고 웃어 보였다.
“뱀은 가지고 와야지. 못은 필요 없지만.”
“그럼 거기 꿇어앉아서 못 빼려고 했던 거, 헛짓이네요?”
“아마도?”
“지난번 의사는 뱀 잡아 오라고 쫓아냈는데.”
“뱀은 뱀 종류 확인하라고 잡으라는 거고…….”
레지던트는 환자와 몇 마디 더 주고받고는 고개 돌렸다가, 간호사가 진지한 얼굴로 손을 꼭 쥐었다 폈다 하는 걸 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더니, 능연이 이미 가장자리를 봉합하고 있었다.
“다, 다했어?”
레지던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잠시 한눈판 사이에 보는 앞에서 일거리 뺏어 간 거야?
능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싱 하세요. 처치 후 고지 잘해주시고요.”
“알겠어요, 능 선생님 조심히 가세요.”
간호사가 즐겁게 능연을 배웅했다. 레지던트는 데브리망 실 가장 안쪽에 앉아서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능 선생님이 오셔서 다행이네요. 드레싱 하세요, 전 저쪽에 가볼게요.”
간호사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저쪽이 어딘데…….”
레지던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는 이미 자취를 감췄다.
창밖의 비가 더 거세졌다.
연문빈은 힐끔 밖을 보고는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따듯한 정식 하나 만들어. 채소, 밥, 국 다 뜨겁게, 거기에 족발 넣는 그런 거로. 세트니까 따로따로 하는 거보다 5위안 정도 더 싸면 돼. 응급센터로 가지고 와.”
“난 족발 두 개.”
연문빈이 전화를 끊자, 마연린이 손가락 두 개를 치켜올렸다.
연문빈이 싫다는 듯 마연린을 흘겨봤다.
“살찔까 봐 겁도 안 나냐 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넌 지금 젊어서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는 거 같지? 얼른 운동해라. 앞으로도 계속 만날 만날 밤새워야 할 텐데, 버티겠냐? 나중에 다리도 못 든다.”
마연린도 똑같이 무시하듯 연문빈을 바라봤다.
“난 두 다리 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요. 연 선생님은 팔뚝이나 굵지, 다리 들 일이나 있어요.”
“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연문빈은 문득 말을 멈추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지금 OS 수술 얘기 아니지, 그렇지?”
마연린은 히죽 웃으며 V를 내밀었다.
“예이.”
“다리 들 생각 그만하고 사람 들 준비하세요.”
왕가가 막 전화를 받고 들어와서 끼어들었다.
“내 덩치가 좋다고 나만 시키지 마라, 좀. 아무리 그래도 난 이제 집도 차도 있는 사람인데, 존중 좀 해주면 안 되겠니.”
항상 그런 일에 불려가는 연문빈이 툴툴거렸다.
“TA 사고(Traffic Accident: 교통사고) 크게 났어요. 사람 모자란다고요.”
왕가도 농담 아니라는 듯 진지하게 대답했다.
“결혼식 가던 차량이 연쇄 충돌했대요. 미끄러진 차도 있고.”
“얼마나?”
마연린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다친 사람이 벌써 50 넘는대요. 헬기도 갔고. 30분이면 돌아올 테니, 준비하세요.”
“헐. 결혼식에 얼마나 많이 가길래 다친 사람이 벌써 50이야.”
한 차에 다섯 명 탄대도 50이면 열 대였다.
“결혼식 차량만 다친 건 아니고요. 어찌 됐든 서른 대는 되는 거 같아요. 지금 현장에서 구급차 10대 오고 있거든요.”
왕가가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연문빈이 혀를 찼다.
“서른 대? 렌트하는 데 돈도 안 드나. 요즘 결혼도 참 쉽지 않군.”
“계속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앞으로 그 쉽지 않은 일이 생길 일도 없을걸요!”
왕가가 눈을 부릅뜨고 하는 말에 연문빈은 잠시 생각한 후에야 왕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입을 삐죽였다.
“같은 개끼리 물어뜯을 거 있냐.”
“개에 물린 환자 있어요?”
그쪽으로 가다가 ‘개’란 말을 들은 능연이 흥미가 생긴 듯 물었다. 동물에게 물린 상처는 가지런한 상처보다 도전 가치가 높으니까.
“능 선생, TA야. 연쇄 충돌. 첫 번째 환자들은 헬기로 오고 있대.”
연문빈이 재빨리 왕가에게 들은 말을 전했다.
“능 선생님, 정말로 개한테 물린 환자가 있긴 해요. 막 도착했고요.”
왕가가 서둘러 하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헬기 환자는 언제 도착하는데요?”
“30분이요.”
“그럼 먼저 개에 물린 환자부터 볼게요.”
능연은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당부했다.
“연 선생님, 가서 헬기 기다려요. 환자 뺏기지 말고.”
능연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는 칸막이 쪽으로 향했다.
“보호자들이 많이 같이 왔어요. 다들 처치실에서 너도나도 한마디 하면서 시끄러워요.”
왕가가 앞장서면서 현장 상황을 설명하는 말에 능연이 싱긋 웃었다.
“그런 쪽은 경험이 좀 있어요.”
“경험이요? 무슨 뜻이에요?”
“혼란스럽고 사람 많은 곳은 헛기침 몇 번 하면 효과적이에요. 노크하는 것처럼요.”
능연은 매우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는 진지하게 주먹을 말에 입가에 가져다 대고 흠흠흠, 헛기침했다.
능연의 헛기침 소리는 언제나 금세 시선을 끌었다. 환자를 에워싼 보호자들은 자연스럽게 능연을 바라보고는 자연스럽게 따라 했다.
왕가는 온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이런 경험, 다른 사람이 쓰겠냐?
“능 선생님, 오셨어요!”
컹컹 짖는 환자를 지키고 있던 제윤조가 능연을 보고 재빨리 다가갔다.
“환자 상처가 꽤 깊어요. 많이 아픈가 봐요.”
“개는 찾았고?”
제윤조가 멍청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기르는 개래요. 보더콜리. 보더콜리는 다 순하다던데, 왜 그런지 갑자기 물었나 봐요.”
동물에게 물린 상처는 능연도 경험이 있는 편이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에도 매일 광견병 주사 맞는 사람이 오고 가장 흔한 건 강아지 혹은 고양이에게 물리거나 긁힌 거고, 토끼, 쥐, 햄스터도 적잖게 있다. 가끔은 고슴도치, 여우, 담비, 악어, 스라소니, 돼지도 신인류의 무료함과 애정결핍을 충분히 드러냈다.
물론 신세대 의학 기술 진보도 충분히 드러냈다. 병원이 싸고 쓸모 있지 않았다면, 동물에게 물려 죽거나 다치는 인간 비율이 놀랄 정도로 늘 것이다.
“개한테 전염병이나 광견병은 없대?”
“네. 자세히 확인했어요.”
“그럼 봉합 키트 가지고 와.”
능연은 침착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는 우선 어떤 동물인지 확인해야 한다. 야생 동물이나 유기 동물이면 좀 더 위험하고, 집에서 기르는 건 조금 낫지만, 그래도 건강 상태는 확인해야 한다. 대형견에게 물린 상처가 소형견보다 위험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다리나 팔을 물렸다면 근건이 드러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이다.
능연은 곧 환자 앞으로 와서, 알코올겔을 짜서 바르면서 유심히 환자를 살폈다. 서른 후반 직장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아닌 환자가 매우 불편한 듯 허리를 비틀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고 싶은 것 같은데 못 보는 상태로.
“의사세요?”
몸매가 좋은 젊은 부인이 보호자였다. 겉으로 보기에 환자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보호자는 유심히 능연을 살펴보고는 어느새 카메라를 켜두었다.
“네, 능연입니다.”
능연은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왕가를 불렀다.
“옷 찢어요.”
왕가가 가위를 들고 오면서 의아한 듯 안에 있는 간호사를 바라봤다.
“내 잘못 아니네요. 손도 못 대게 했거든요.”
“남자 의사가 잘라달라고요.”
청년이 아닌 직장인은 고개를 돌려 젊은 부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와이프랑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친밀한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네요.”
왕가는 입을 비쭉이며 환자 옷 잘라주는 의사가 어디 있냐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할게요.”
능연은 별 부담 없이 가위를 받아들고 슥삭슥삭, 환자의 바지까지 몽땅 잘랐다. 환자의 상처 부위인 허리 쪽엔 피가 뭉쳐 있어서 그쪽을 할 때는 조금 세심하게 건드렸다.
슥삭슥삭. 부인이 관심 가득한 눈빛으로 가위를 쳐다보자, 청년이 아닌 직장인은 정신이 번쩍 들어 아픔을 견디며 웃어 보였다.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내는 화들짝 놀라 서둘러 남편을 향해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
“남자다워요.”
“그래?”
청년이 아닌 직장인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배꼽 위 근육이 신이 난 듯 흔들리자, 아픈데 소리는 못 지르겠고 입술을 악물었다.
“한 번 닦아 내요.”
능연은 가위를 내려놓고 다시 알코올겔을 바르고 장갑을 낀 다음 환자 상처를 뒤적였다.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난 깊은 상처는 명백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능연은 최신 버전 <동물 치상 전문 상식>을 회상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봉합은 안 하는 게 낫겠어요. 데브리망하고 상처를 열어둔 상태에서 상처 조직이 좀 자라는 거 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의사가 어떤 직급에 오르든,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을 마주할 때는 가이드, 표준 혹은 전문 상식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더 높은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학회를 열고 논문을 쓰는 것이다. 전문 분야에서 지위를 확립한 후 만들어내는 건 모든 의사의 작업 가이드가 되기 마련이고, 명예와 이익 어느 쪽으로 봐도 유혹이 넘치게 된다.
능연이 <수술 봉합 재료 선택>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반박하는 건 그가 봉합에 익숙하고 본인이 해당 분야 전문가이며 상대의 의견과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확인할 능력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동물 치상’ 방면에서는 그다지 전문적이지 않은 데다가, 최신 <전문 상식>을 읽었으니 당연히 그 기준으로 일을 처리했다.
환자는 보호자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주저하며 물었다.
“봉합을 안 해도 됩니까?”
“상처 안 세균 걱정 때문입니다. 염증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리고 광견병도 조심해야 하고. 상처가 깊긴 한데, 출혈은 적습니다. 신경을 건들지도 않았고요. 게다가 옷으로 덮여 있었어요. 그러니 봉합하지 말고 데브리망만 하는 걸 건의드립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염증 생기면 어떡해요?”
“째고 다시 데브리망하고 봉합하면 됩니다. 그럴 가능성도 완전히 없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네요.”
“그럼 봉합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흉이 조금 크게 남을 겁니다. 하지만 봉합하게 되면 재감염되기 쉽고, 상처 회복 속도도 느려집니다. 신경이 손상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능연은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환자가 계속 질문하면 좌자전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환자가 결정을 내렸다.
“그럼 흉이 남아도 되니까 선생님 말대로 할게요. 그리고 광견병 주사 놓으실 거죠?”
“네. 제윤조, 가서 좌 선생님한테 동의서 받아와서 사인받아.”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제윤조에게 명령했다. 항상 진지하고 엄격한 그는 융통성이 없을 정도였지만, 다들 그의 매력 중 일부로 여겼다.
능연은 이어서 왕가에게 오더했다.
“부분 마취할 거예요. 1% 포비돈-아이오딘, 그리고 식염수 많이.”
잠시 후, 제윤조가 동의서를 가지고 돌아와 사인하라고 내밀자, 아내가 조심스럽게 제윤조를 살며시 끌어당기며 나지막이 물었다.
“선생님, 물어볼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제윤조도 하얀 가운의 존경 버프를 매우 즐기는 편이었다.
“제 남편, 돌아가서 아이 가지는 데 문제없을까요?”
“강아지한테 물린 것뿐이라 전혀 상관없어요.”
“아니, 제 말은……. 돌아가서 바로요. 배란 촉진제 맞았거든요.”
의아한 듯 대답하는 제윤조의 말에 아내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제윤조는 멈칫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학원 기자 생활할 때도 이런 직접적인 질문은 못 받아봤다. 제윤조는 미친 듯이 그동안 배운 걸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론적으로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환자가 다쳤으니 너무 힘들면 안 되겠죠. 아무래도 한 두어 달 기다리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아, 그럼 괜찮아요. 금방 끝나요.”
젊은 부인이 미소 지었다.
개에 물린 남자를 처치한 능연이 바로 수술 구역으로 들어가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나오니 헬리콥터로 온 두 환자가 마침 수술실로 들어왔다.
능연도 따라 1번 수술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곽종군이 병원에 있어서 능연이 지휘할 필요가 없었다. 곽종군이 병원에 있어도 평소엔 현장에 오지 않고 올 필요도 없지만, 특수 상황에서는 당연히 주임이 자리를 지켰다.
어느 기자가 아무렇게 ‘운화병원 응급센터 주임, 느긋하게 나타나다’ 혹은 ‘운화병원 응급센터 주임,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다’라는 말을 흘리면 센터 주임 자리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위에서 ‘태도 문제’ 어쩌고 하는 걸 제일 싫어해도 어쨌든 그들이 신경 쓰는 것도 결국 ‘태도’뿐이었다. 병원이 규정을 지키거나 규정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헬리콥터를 타고 따라온 보호자는 이미 울고불고 난리였다.
“여보, 여보, 죽으면 안 돼요…….”
여자 목소리는 하이톤을 찍어 수술실 문을 뚫고 수술실 복도를 지나 수술실 안까지 들렸다.
“환자, 달치 컴퍼니 사장이래요. 저 밖에서 울고 있는 건 새로 생긴 둘째 애인이고. 차를 새로 선물 받았는데, 아직 명의 변경을 안 해서 저렇게 슬프게 운다네요.”
여원은 몸집이 작은 이점을 이용해서 이런 쓸모없는 정보를 잘 물어왔다. 중요한 순간엔 항상 나타나는 주 선생이 검사하면서 대답했다.
“목소리 들어보니 젊은 거 같은데.”
“둘째 애인이니까 젊죠. 서른 안 됐을걸요.”
주 선생은 나이 많아 보이는 사장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심하게 다치긴 해도 인생 헛산 건 아니니 손해 볼 건 없네. 이 환자가 신랑은 아니겠지?”
“아니에요. 주 선생님, 양심도 없으시네요.”
여원도 지금은 주 선생과 제법 친해져서 이런 농담은 아무렇지 않게 했다. 능연도 이때 수술대 앞에 도착했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도 진지하게 오더 내렸다.
“CPR팀 준비해요.”
순회 간호사는 멈칫하고는 서둘러 대답하고 전화하러 갔다.
능연이 훈련해낸 CPR팀은 모두 장시간 CPR에 익숙한 젊고 기운 센 의사들로, 병원에서 있는 척하며 보호자나 위로하는 부류가 아니라 실력도 있고 자신감도 있는 부류였다.
주 선생은 능연에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계속 고개 숙이고 검사했다.
“비뇨기과도 불러야겠네. 앞으로 둘째 애인이 쓸 일이 없겠어. 가정이 화목해지긴 하겠네. 신장은 어떻게든 남겨줘라. 신장 하나 없으면 나중에 버림받을걸.”
여원도 받침대 두 개를 깔고 올라와 들여다보며 물었다.
“고관절도 심각한데요?”
“다리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고관절은 바꿀 수나 있지, 다리는 바꾸고 나면 환자가 꽤 고생한다고.”
진작 불려온 정형외과 부주임이 꽤 잔혹한 판단을 했다. 여원도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나이도 있으니 다리 자르고 나면 휠체어 신세겠어요.”
“그것도 없어진 마당에, 차라리 휠체어는 받아들일 수 있을걸.”
주 선생은 겨우 주치의지만, 이럴 때는 냉철했고 매우 직접적으로 말했다.
“다리는 지혈부터 하고 처치는 나중에. 출혈량 주의하고.”
“다리 출혈 포인트는 바로 봉합할게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니들홀더를 받아서 너덜너덜한 살 사이로 혈관 봉합을 했다. 엉망이 된 장기는 어쩔 수 없어도 사지의 혈행을 지켜내면 되살릴 확률이 컸다.
몇 분 동안 모니터링 기계가 쉴 새 없이 울부짖었다.
“제세동.”
주 선생이 침착하게 오더하고는 다들 비켜나자 제세동기를 바로 300j까지 올렸다. 두 번 제세동 후, CPR팀이 다시 자리 잡았다.
한바탕 바삐 움직인 다음, 모니터 수치가 드디어 볼 만해졌다. 주 선생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일반 외과 의사와 함께 장을 치켜들었다.
“능연, 옆 수술실 가보지 그래. 여기는 이제 뒤처리나 남았는데.”
“그럼 가볼게요.”
장쪽 수술은 질색하는 능연은 바로 돌아서서 자리를 비워줬다. 정형외과 의사가 냉큼 그 자리로 들어가 골절 부위를 처치했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퀘스트 진도도 (3/20)으로 갱신됐다.
능연은 별말 없이 수술실에서 나왔다.
재난 구조에 참여한 후로, 경중, 완급에 대한 인식이 다른 의사보다 더 강렬해졌다. 구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본적으로 했으니 나머지 작업은 전문 진료과에서 할 일이었다. 물론, 간 절제 같은 수술이라면 그가 계속해도 되고.
수술실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 출구 쪽을 힐끔 바라봤더니, 그쪽도 조용했다. 능연은 다시 손을 씻으러 갔다. 한창 씻고 있는데 좌자전이 나타났다.
“능 선생, 잘됐네. 수술실에 있을 줄 알았지.”
능연은 가볍게 대꾸하고 계속 손을 씻었다.
“곽 주임님이 여유 있으면 처치실로 가보라네. 지금 정신없거든.”
좌자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각 진료과도 다 달려왔는데 곽 주임님한테 붙잡혀서 응급실에서 나오질 못해. 도 주임님 말도 아무도 안 듣고. 처치실 지금 난리야.”
“거긴 늘 그렇지 않아요?”
능연은 의아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능연 본인은 평소 상태의 처치실을 좋아했다. 평소에도 시끄럽긴 해도 환자도 많고 케이스도 많아서, 생기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넘길 만했다.
그러나 긴급 상태의 처치실은 좀 견디기 힘들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지나치게 많고, 도와주러 온 각 진료과 의사들이 혼란스러운 회오리가 되어, 모든 공간이 뒤죽박죽되는 상황은 능연이 좋아하는 환경이 아니었다.
능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는 좌자전이 히죽 웃었다.
“전에야 우리 응급센터에서 다른 과 의사까지 터치하지 못했지. 그런데 지금은 말이야, 곽 주임님이 님더러 나서보래. 분위기를 좀 다스릴 수 있을지 말이야.”
“질서 회복이요?”
“그렇지.”
“알겠어요.”
짚이는 게 있는 듯 묻던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꽤 자신 있는 분야였다.
좌자전은 그런 능연을 보면서, 혹시 자기가 메시지를 잘못 전한 게 아닐까 싶어 묘하게 뜨끔해졌다.
능연은 안정적인 걸음으로 처치실로 향했다. 좌자전은 자기는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능연의 대범함에 감탄하며 뒤를 따랐다.
사적으로 누군가와 교섭하라면 직급이 아무리 높은 윗분이라도 여러 가지 방법과 대책이 있겠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화 혹은 명령을 내리는 건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능연은 태연해 보였다. 좌자전은 능연이 이쪽으로 경험이 있으리라 여겼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랬다. 능연은 어릴 때부터 항상 대중 앞에 노출되어 있었을 테니. 어쩌면 아침에 샤워하면서 흥얼거린 노래가 저녁엔 여기저기 불리고 있을지도.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그런 생활을 하라고 하면 그렇게 살지 말지 고민해 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처치실 가까이 가자, 벌써 시끄러운 소리, 물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좌자전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들여다봤더니, 커튼으로 구분됐던 칸막이는 이미 난장판이었고 의사, 간호사와 보호자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오가는 것이 설날 대목 마트 같은 모습이었다.
능연은 보고도 못 본 듯 안으로 들어가 주먹을 쥐고 마스크 앞에 가져다 대고 짐짓 ‘흠흠흠’ 했다. 문 쪽 침대에 있던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작이 조금 빠른 사람도 느린 사람도 있었지만, 능연을 보는 순간 다들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팩 돌리는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그렇게 문 근처 열몇 명이 한순간 모두 능연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게 바로 능연이 익숙한 환경이었다.
능연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환자마다 보호자 한 분만 있으면 되니까, 상의하시고 나머지는 나가서 기다리세요.”
중국 의료 환경에서 환자는 꼭 보호자가 있어야 하니, 다 나가라고는 하지 않았다. 보호자들이 사실상 간호사와 조무사의 일을 일부 하고 있어서 전부 내보내면 간호사와 조무사가 전혀 감당하지 못한다.
보호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망설였다. 능연의 말투가 단호하기도 했고, 하얀 가운을 입은 데다가 정상이 아닐 정도로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쩌나 보고 결정하려고 했다.
그때, 응급센터 레지던트 하나가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사람들을 내몰았다.
“16번 베드, 누가 남으실 거예요? 나머지는 나가세요.”
레지던트가 큰 소리로 명령하자, 보호자들은 다시 얼굴을 마주 보고는 몇 명이 느릿느릿 나갔다.
“15번은요? 누가 남으실 거예요?”
레지던트가 계속 목소리를 높여 고함쳤다. 아까도 쫓아냈지만, 아무도 안 들었는데 이제 능연이 뒤에 있으니 자신감에 넘쳤다.
“여기 있지 말고 나가자, 나가. 의사들이 할 일 해야지.”
“자자, 여기 있지 말자고요.”
“움직여요. 가요, 가.”
몇몇 보호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고 처치실에서 열몇 명이 나가니 문쪽 침대 근처가 순간 넓어졌다.
능연은 스스로 나가는 보호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안으로 들어가 의사들을 바라봤다. 열린 칸막이 안에서 바삐 움직이던 의사들은 저도 모르게 능연을 바라봤다.
“밖에도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다들 서두릅시다.”
능연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을 쭉 훑었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여전히 흠흠흠 대면서 보호자를 하나만 남기고 쫓아냈다.
능연의 그림자 뒤에 선 좌자전은 의사들이 다시 작업 모드로 돌입한 데다가 응급센터 의사들을 대하는 태도도 명백히 부드러워진 걸 느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뭘요?”
“다른 진료과 의사들도 님 명령을 듣잖아.”
좌자전이 공손하게 웃으며 묻자 능연도 똑같이 웃어 보였다.
“명령을 정확하게 내리면 다들 잘 따를걸요.”
“아.”
좌자전은 반박할 사례를 만 건은 들 수 있지만, 침착하고 당연해하는 능연의 모습에 뭐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좋을지 몰랐다.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능연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자신의 의견이 의심됐다. 어쩌면 능 선생이야말로 옳은 게 아닐까?
“보호자는 한 분만 남으세요. 부탁드려요.”
능연이 계속 전진하며 똑같이 명령하고 똑같이 웃어 보였다. 처치실은 곧 사람이 줄어 편안해졌다. 좌자전이 한번 훑어봤더니, 의사들은 긴장하고 엄숙한 얼굴로 한 단계 등급이 낮아진 것처럼 열중했다. 툭하면 응급센터 의사들한테 고함치던 각 진료과에서 협진 나온 의사들은 더 명백하게 태도가 나아졌다.
상급 의사가 하급 의사에게 호통치는 건 흔한 일이지만, 그건 보통 같은 진료과 이야기고 상하 관계가 없는 상태로 욕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욕을 하고 안 하고는 상급 의사 마음이고, 하급 의사가 욕을 먹을지 안 먹을지는 네가 일을 어떻게 했냐도 있지만, 아버지가 밀어주냐 아니냐에도 달렸다.
곽종군은 매우 무서운 진료과 주임이지만, 응급실을 지키고 있느라 처치실까지 관리할 겨를이 없었다.
능연은 바로 그 부족함을 메꾸려고 나타난 것이고. 온 처치실이 바로 조용해졌다. 능연은 앞에서 뒤로, 좌에서 우로 두 번 이동하고는 곽종군이 요구한 질서 유지 임무를 완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능연 근처 침상의 소녀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전 보호자가 없는데 선생님이 옆에 있어 주면 안 돼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능연을 바라보는 소녀는 입이 살짝 벌어졌고 목까지 조금 벌겠다. 그녀는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어딜 다쳤죠?”
“저는……. 옆을 좀 긁혔어요.”
소녀는 목을 움츠리면서 겨우 대답했다. 증상엔 항상 진지한 능연은 환자의 정보를 단순하게 믿지 않고 직접 확인하겠다고 했다.
“커튼 내리면 안 돼요?”
“그래요.”
소녀가 머뭇거리며 하는 말에 능연은 바로 대답하고는 왕가를 불러 커튼을 내려 작은 밀폐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왕가의 도움을 받아 소녀의 옷을 들어 올렸다.
핏자국이 난 찰과상이 길게 나 있었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가볍진 않았다. 그래도 오늘 교통사고 환자와 비교하면 이런 상처는 식은 죽 먹기라, 능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른 선생님들은 다 바쁜 거 같으니까, 선생님이 봐주세요.”
적극적으로 요구한 소녀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다리부터 좀 보고요.”
능연이 잠시 생각하고 대답하는 말에 소녀는 순간 얼굴이 시뻘게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능연은 환자의 바짓자락을 걷어 올렸다. 소녀의 하얗고 보들보들한 다리가 드러났다.
“그래요, 내가 봉합할게요.”
능연은 환자가 피부를 훌륭하게 관리한 걸 보고는 바로 봉합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소녀는 순간 흥분해서 핸드폰을 힐끔 보고는 다시 덮었다.
처치 준비하던 왕가는 액정에 뜬 <남신에게 고백하는 법>을 한눈에 보고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그게 글로 되면 사람들이 뭐하러 화장하고 성형하고 포샵하겠니.
“아주 얇은 실을 쓸 거예요. 그럼 흉이 잘 안 남아요. 하지만 뜯어지기 쉬우니까 평소에 조심해야 해요.”
능연이 소독하며 환자에게 설명했다. 소녀는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핸드폰을 누르며 겨우 작은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제대로 들었어요?”
능연이 다시 묻는 말에, 소녀는 능연의 손을 바라보며 다시 ‘네’ 하고 대답했다. 손 예쁜 남자 최고야. 능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잘생기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손만 예쁘면 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한 말 반복해 봐요.”
능연은 소녀의 표정을 보고는 경험 많은 듯 되물었다.
“그게…….”
소녀는 망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실마다 장단점이 있어요. 결정해야 해요.”
능연은 수술할 때보다 더 길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소녀는 이번엔 노트를 꺼내 메모할 기세로 진지하게 들었다.
“얇은 실로 할래요, 아니면 굵은 실로 할래요?”
“얇은 실이요.”
소녀는 단호하게 대답했고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준비된 실을 꺼내 봉합하기 시작했다. 동작은 매우 섬세했지만, 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혈관과 신경을 봉합하면서 연습해낸 스킬이었다.
평범한 기술이고 의사라면 누구나 하는 봉합이지만, 현실에서 ‘에스테틱’ 기술로 봉합하는 의사는 드물었다. 설사 가능해도 능연의 속도와 효과를 내는 사람은 드물었고.
예를 들어 능연에게 배우는 묘 선생은, 1~2년 배우면서 매일 매일 연습했지만 3㎝ 상처를 봉합하는 데 여전히 이삼십 분 걸렸다. 일부러 속도를 올리는 연습을 하진 않아서였다. 진료소에서는 후환을 남기지 않고 양심과 의사의 도덕심을 위해 잘 봉합해야 하지만, 빨리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 빨리 봉합하면 환자들의 기대와 달라져서 비용 문제로 갈등이 생길 여지가 있었다.
물론 수술하는 외과의는 그런 고민이 없었다. 특히 혈관과 신경을 봉합하는 의사는 봉합 기술을 상당히 중시했다.
“됐어요.”
단숨에 환자 상처를 봉합한 능연은 등줄기에 살짝 땀이 났다. 얇은 실을 썼다고 위험 고지도 했지만, 신경 써서 처리하지 않으면 긴 상처다 보니 뜯어질 가능성이 컸다. 상처가 뜯어지면 흉터 조직이 성장하는 원흉이 되고.
그런 일이 생기는 걸 피하기 위해 능연은 여러모로 신경 썼고 위치도 고민해서 골랐다.
“사진 좀 찍을게요.”
봉합된 상처를 능연보다 더 많이 본 왕가도 능연이 이렇게 훌륭하게 꿰맨 걸 보고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환자 동의를 받은 왕가는 찰칵찰칵, 수십 장이나 사진을 찍었다.
환자는 숭배하는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님, 너무 고마워요.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드레싱 끝나면 돌아가도 돼요. 보답은 필요 없고. 힘주지 않은 거 조심하고요. 상처 뜯어지면 흉 더 크게 남아요.”
능연은 재빨리 단숨에 대답하고는 곧바로 칸막이에서 나왔다. 용기를 내고 이제 30초 후에 고백할 준비하던 소녀는 아쉬운 얼굴로 봉합할 때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왕가는 의자를 발로 차서 환자 쪽으로 밀어 놓고 앉은 다음 특별할 것도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깊게 생각할 거 없어요. 앞으로 능 선생 보고 싶으면 인터넷 검색해요. 몰래 찍어서 올린 거 많을 거예요.”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순결한 간호사복을 입은 왕가를 바라봤다.
“난 얼빠 아니에요. 난 남친은 첫 느낌만 맞으면 돼요. 그리고 손이요. 손이 이쁘면 좋지만, 필수는 아니에요. 그냥 능 선생님 진지한 태도에 끌려서 그래요. 아까 봉합할 때…… 정말이지, 온 신경을 집중한 그런 모습, 정말 남달라요. 저렇게 잘생기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왕가는 커튼을 발로 밀어내며 입을 삐죽였다.
“저기 있네요. 온 신경 집중해서 진지하게 봉합하는 의사. 여기에 얼마든지 널려 있죠. 특히 능 선생님보다 안 잘생긴 부류는.”
왕가가 얼굴이 평범해서 누구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를 가리켰다. 평범하고 또 평범한 대중적인 얼굴에, 평범한 홑꺼풀, 평범한 낮은 콧대, 평범한 툭 튀어나온 입이었다. 중국 남자가 정확히 7억 3천만 1명이라면 이 레지던트의 얼굴 순위는 아마 3억 6천5백만 1 정도?
난처한 얼굴을 한 소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때요? 저 의사도 태도는 할 말 없죠? 봉합할 때 눈빛 좀…….”
“손이 안 예뻐요.”
소녀가 왕가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손이 반드시 예뻐야 하네요. 이제 알겠어요, 사실 나 손 밝혀요.”
“멀어서 손도 잘 안 보이잖아요. 게다가 장갑도 끼고 있고. 아니면 불러올까요.”
“됐어요. 처음 본 남자 손 보자고 할 수 없잖아요. 인연이 아닌 거죠.”
소녀는 후련한 듯 웃어 보였다.
“아, 그래요.”
“네. 아, 참. 능 선생님 위챗 좀 알려주실래요?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실 정리해 드릴게요.”
“크리스 골절이구나. 수법 복위 어때?”
“여기 절개하고 드레인.”
능연이 처치실 두 바퀴 더 도는 사이, 처치실의 질서는 응급센터 주인이 주인 노릇 할 때와 비슷하게 회복했다.
기술만 따지면, 능연이 온 진료과를 커버할 정도도 아니었고, 다른 진료과 증상 진단과 처치를 다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의사란 직업은 평균치로 영웅이 결정되는 게 아니고 누가 뭐래도 최고치로 결정된다. 각 항목 평균인 의사는 존중받지 못하고 단 한 가지일지라도 뛰어난 의사는 모든 분야에서 평균치인 의사보다 입김이 세다.
물론, 현실에서 한 가지 수술 방식에 정통해 피크에 오른 의사는 평균치도 낮지 않다.
수술은 이제 해부만 알고 토하지만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반 외과는 아직 그럴지 몰라도 일반 외과를 제외한 다른 진료과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
운화병원에서 능연은 더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아는 분야에만 발언해도 각 진료과에서 도와주러 온 의사들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낮췄다.
상급 의사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하급 의사는 반박할 수 없고, 어떤 때는 설사 상급 의사가 잘못을 해도 반박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다른 진료과 의사는 더는 응급센터 의사를 상대로 스트레스를 풀지 못했다.
현장 제어하던 도 주임도 은근히 한시름 놓았다. 이제 곧 퇴직할 거라 아무에게도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 누구에게나 착한 허허 선생이 되었다. 그러나 외과 의사들은 원래 거칠어서 상대가 양보할수록 더욱 거침없이 굴었던 것이다.
능연이 현장을 제어해주니 도 주임은 당연히 기뻤다. 그는 능 선생이 다가오자 바로 손짓해서 불렀다.
“능 선생, 잠시 이리 와서 앉게.”
“예. 무슨 케이스입니까?”
“아, 연쇄 충돌 사고 환자인데 어깨 찢어진 게 제일 심해. 다리도 일부 연조직에 타박상 입었고.”
능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묻자, 도 주임은 아낌없이 환자를 내놓았다. 능연은 자연스럽게 환자 곁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그때 보호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 화상, 전 여친 결혼식에 가던 중이었어요. 차라리 치어 죽지.”
침대 곁에 앉아 있던 여자가 태블릿만 한 손바닥을 치켜들어 그대로 내리치자, 환자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얼굴 연조직 타박상도.”
도 주임이 전전긍긍 한마디를 보탰다.
“다친 곳이 많으니 일단 근육 파열부터 처치하겠습니다.”
능연은 여자가 환자를 다 때리길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검사했다. 결론을 낸 뒤엔 예의 바른 모습으로 도 주임을 바라봤고.
응급센터 주임 의사인 도 주임이 능연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리 없고.
“응, 알아서 해.”
라고 대답하고는 속으로 고양이와 놀아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능연 역시나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깨 봉합할 겁니다. 상처가 커서 마취해야 해요.”
뺨을 맞은 환자는 욱한 듯 끽소리도 하지 않았고, 보호자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해요. 어차피 멍청이라 이보다 더 멍청해질 것도 없어요. 아니지, 마취할 것도 없이 아파서 죽으라고 해요.”
도 주임이 ‘흠흠흠’ 헛기침하자, 곁에 있던 간호사가 눈을 찌푸리며 나섰다.
“싸우실 거면 두 분만 있을 때 싸우시든가 아니면 다 싸우고 나면 봉합하러 올게요.”
“아니에요. 봉합해주세요.”
여자가 태블릿만 한 손바닥으로 다시 한번 환자를 후려쳤다.
“눈도 꿰매 버리면 좋겠네요. 코도, 입도 싹.”
“그만 싸우시라고요.”
눈앞에서 작업량이 늘어나는 모습에 간호사는 진절머리가 났다. 남 눈치는 보이는지, 여자는 저절로 손을 거두고는 또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잘 보이려는 듯 웃어 보였는데 얼굴이 팅팅 부어서 조금 보기 안 좋았다.
“마취의 불러.”
도 주임은 뭐든 직접 할 나이가 진작 지났고, 마취의가 할 일을 스스로 할 리가 없었다. 물론 주임 의사의 특권이이었다. 초짜 의사가 마취의를 아무렇게나 불렀다가는 먹은 욕으로 배 터져 죽을 것이다.
마취의를 기다리는 동안 도 주임은 다정하게 능연에게 말을 걸었다.
“전에 곽 주임한테 능 선생이 이런 관리 능력도 최고라고 했는데 안 믿더라고. 이젠 곽 주임도 인정할걸?”
도 주임은 전엔 곽종군을 ‘곽가’라고 불렀지만, 퇴직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존칭으로 부르고 ‘곽가’라고 부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능연은 살며시 웃기만 했다. 매번 공손하게 고개 숙이고 대답하다간 목이 부러질지도 모르니까. 도 주임도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능연아, 아무래도 관리 업무를 좀 늘리는 게 좋겠어. 국내 병원은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도 주임은 본인이 말하고도 허탈한 듯 웃었다.
“나처럼 옛날엔 본인 실력이 괜찮다고 믿고 주임 자리도 노릴 생각 없이 그냥 열심히 했더니 이렇게 말이야……. 하하하.”
도 주임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나이가 들었더니 말만 많아졌네. 참, 능연, 관리 쪽은 거의 안 해 봤지?”
“학교 다닐 땐 했었습니다.”
“반장이나 조장 같은 거 말고.”
“시 초등학교, 중학교 운동회도 집행해 봤고, 만 명 마라톤, 천 명 수영대회, 그런 것도 해봤습니다.”
능연이 웃으며 하는 말에 도 주임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자네가? 어떻게 했는데?”
“조직 규정에 따라서 집행 컨셉을 잡고 참여할 뜻이 있는 친구들을 자유 경쟁시켰죠. 그리고 이긴 학생을 뽑고 조직 규정을 엄격하게 따르면 아무런 문제 없거든요.”
능연은 잠시 떠올려보더니 덧붙였다.
“제가 참여한 활동은 보통 성공했어요.”
도 주임은 반박하려고 준비한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능연의 말을 듣고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일리 있는 내용 같네요.”
왕가도 옆에서 놀란 듯이 끼어들었다.
“그러게, 우리 융통성 없는 능 선생이…….”
도 주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융통성 없는 능 선생이라 리더에 어울리는지 모르지.”
“왜요?”
‘능 조공팀’ 단톡방에 던지면 순간 이슈가 될 화제라 왕가는 순간 흥미진진해졌다.
“왜 인류는 인공지능이 통제하면 가장 완벽해진다는 이야기 있잖아. 무슨 책에서 읽은 건데…….”
“와아! 정말 어울리겠다.”
왕가는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바로 입을 다물고 도 주임과 함께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은 침착한 얼굴로 환자 상처를 돌보고 있었다.
마취의가 곧 나타나 열정적으로 도 주임에게 인사하고는 환자를 마취했다. 그런데 도 주임은 문득 서글퍼졌다. 다른 진료과 의사들이 자신을 존중하는 이유는 대부분 주임 의사라는 타이틀 때문인데, 곧 은퇴할 사람이니 타이틀도 내려놓아야 하고 즉 존경도 사라진다는 말이었다.
앞으로 지인 침대 하나 마련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순간 다 재미없어졌다.
퇴직하고도 존재감이 여전한 과 주임과 주임 의사는 거의 일부였다. 소위 존재감이란 사실 평소에 지인 침대를 마련해주느냐 마느냐였다. 물론 삼갑병원에서 친척, 친구를 위한 침대를 구할 수 있는 건 평범하게 은퇴한 노인네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의사라고 해도 퇴직하고도 존재감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직에 있는 치료팀 팀장 혹은 과 주임이 체면을 세워 줘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도 주임은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능연 같은 제자를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능연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은퇴한 노인네에겐 인공지능 같은 치료팀 팀장이 열정이 넘치는 치료팀 팀장보다 더 인간미 넘칠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근육이 심하게 손상됐네요. 앞으로 팔 근육에 영향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마취가 끝난 후, 환자 상태를 검사한 능연은 리스크를 설명했다. 환자는 웃으면서 별 상관없는 듯 대답했다.
“밥벌이만 하면 되죠. 그건 되겠죠?”
“정상 운동 능력 60%는 보존될 겁니다.”
자주 운동선수 아킬레스건 수술했던 능연은 그런 쪽 판단은 경험 있는 편이었다.
“그럼 됐어요. 어차피 먹여 살릴 식구도 그렇게 많지…….”
“안 돼!”
옆에 있던 여자가 큰 소리로 말을 잘랐다.
“60%로 뭘 한다고! 지금도 날 잘 안지도 못하면서, 60%만 남으면 당신이 무슨 필요 있다고!”
“그럼 헬스할게.”
“약속한 거다?”
남자가 멈칫하다가 하는 말에 여자가 핸드폰 크기만 한 입술을 삐죽였다.
“응.”
“알았어. 꿰매주세요.”
여자는 다시 능연을 바라보며 본인 생각에 가장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 끝났습니다.”
능연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 선생님!”
옆 침대 환자가 능연 쪽을 바라보며 고함치자, 곁에 있던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무슨 일이세요.”
“선생님 말고요. 저기…… 능 선생님이요. 운화병원 올 때 검색했는데 저 선생님이 나오더라고요.”
환자는 능연을 지명했고 곁에 있던 보호자도 능연에게 다가갔다.
“능 선생님, 우리 남편 다리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킬레스건 파열 같아요. 아킬레스건 전문 의사시죠? 유위신 아킬레스건도 꿰매셨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더라고요.”
“아킬레스건 파열 아니라니까요.”
그 침대 담당 레지던트는 얼굴이 질려서 허탈하게 대답했다.
“능 선생님, 거절해요. 상대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왕가가 나직이 하는 말에 능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관상 볼 줄 알아요?”
왕가는 멈칫했다. 능연의 성격을 잘 몰랐다면 비꼬는 줄 알 뻔했다.
“태도 좀 보세요.”
왕가가 다시 목소리를 낮춰서 하는 말에 능연이 잠시 생각하다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다른 환자들은 담당 의사가 있잖아요.”
“환자는 대기실에도 있어요.”
“거기 환자는 다 경상이라.”
능연은 딱히 내키지 않았다. 봉합을 하긴 해도 단순한 표피 봉합은 재미가 떨어졌다. 왕가도 바로 알아듣고 눈을 흘겼다.
“하지만 이 환자 맡으면 골치 아플 거라고요! 나중에 면담실에 불려 다니면 더 재미없을걸요!”
“오, 일리 있네요.”
능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그럼 좌 선생 불러서 처리하라고 해주세요.”
능연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기다리다 짜증 난 환자가 큰 소리로 고함쳤다.
“능 선생님! 미안하지만 좀 와줘요! 여기 이 의사는 한참 들여다봐도 뭔지 모르는 거 같아요.”
그 말에 질렸던 레지던트의 얼굴이 이번엔 흐려졌다. 환자가 가득한 처치실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초짜 레지던트라고 해도 쪽팔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부분 의사는 초짜 의사가 쪽팔릴 얼굴이라도 있긴 하냐고 생각하겠지만, 초짜 의사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왕가는 더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때 다시 말리면 환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의사들도 그쪽을 바라봤다.
초짜 의사가 뭘 하든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매우 주목받는 중요한 경기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는 특별히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시합 내내 단 한 번도 그 선수를 쳐다보지 않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스타 선수는 일거수일투족 모두 주목받는다.
특히 지금 하는 일이 수월한 편인 의사들은 모두 능연을 바라봤다. 아까는 능연이 고작 봉합 중인 데다가 커튼까지 치고 있어서 거들떠보기도 귀찮았지만, 지금은 환자가 꽤 심하게 다친 것 같은 데다가 아킬레스건 문제인 것 같다고 하니 더 주목할 가치가 있었다.
그 초짜 레지던트만 얼굴이 질렸다 흐렸다 했다.
“상황 어때요?”
능연은 초짜 레지던트의 표정과 얼굴빛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그에게 물었다.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뒤따라간 왕가가 눈을 반짝이며 초짜 레지던트의 얼굴을 바라봤다. 넋을 놓고 있던 초짜 레지던트는 곧 왕가의 시선을 느끼고 안색이 변하고 또 변했다.
그리고는 질렸다 흐려지다 못해 누렇게 뜬 얼굴이 되어 언제나처럼 고분고분해졌다.
“추월 차량 운전자예요. 종아리 비장근, 그리고 연조직 손상. 지혈하고 봉합했는데 혈종이 생겼어요. 하지만 아킬레스건은 멀쩡해요.”
초짜 레지던트는 조금 자신 없는 듯 대답했다. 인원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직접 봉합할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봉합 결과를 자신할 수 없는 거고.
“좀 볼게요.”
능연이 침대 옆에 서서 물었다.
“사고 차량 중 한 대 운전자고 종아리만 다친 거 맞아요?”
“네, 운전석이 들이받히면서 종아리가 눌렸어요.”
환자는 아직 놀란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죠. 앞차 운전자는 바로 수술실에 들어갔다더라고요.”
“음, 에어백은 터졌어요?”
능연은 환자 코와 입술 사이에 붉은 흔적이 신경 쓰였다. 평소 집에서라면 작은 상처고, 연쇄 추돌 사고에서는 다친 것도 아닌 상처지만.
“예, 터졌어요. 다행이죠. 아니었으면 머리가 날아갔을걸요.”
“X-ray 찍었어요?”
능연이 곁에 있는 레지던트를 바라봤다.
“찍었어요. CT 찍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차례가 안 와서 X-ray 찍었어요. 거기도 사람 많았는데 내가 가서 이야기해서 겨우 자리 하나 받았어요.”
레지던트는 조금 억울한 듯 말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응급실에서 오늘 그도 열심히 노력하고 공헌했다.
능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 안색을 살피며 손가락도 만져봤다.
“신체 검진은 했어요?”
“다리 쪽 우선 보느라…….”
레지던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능연은 별말 없이 환자를 바라봤다.
“검사 좀 할게요.”
능연은 환자의 목부터 시작해서 신체 검진을 시작했다. 레지던트는 멈칫하다가 부자연스럽게 물러났다. 능연은 재빨리 검사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 복부로 내려왔고, 동작이 세심해졌다.
“아야!”
환자가 바로 고함치자, 능연이 옷을 들쳤더니 복부에 이미 피멍이 들어 있었다.
“초음파랑 수술실 준비해줘요.”
예상한 장면에 능연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오더 내렸고, 레지던트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아까는 없었어요.”
“됐어요.”
왕가는 바로 레지던트의 발을 밟았다.
“좌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오시라고 할게요.”
왕가는 바로 수술실을 준비했고 다른 간호사가 초음파 기계를 밀고 왔다.
“아아!”
겔을 바른 초음파 패드가 복부에 닿자 환자가 바로 고함쳤다. 그쪽을 주시하던 의사들도 상황을 짐작한 듯 눈빛을 주고받았다.
“비장 파열입니다.”
능연은 바로 비장부터 살폈고, 비장 주변 응혈 증상이 바로 드러났다.
“4번 수술실 준비됐어요!”
왕가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시름 놓은 듯 고함쳤다.
“수술실로.”
능연은 긴말 없이 환자를 밀고 나갔다. 보호자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상태로 긴장해서 물었다.
“이제 어떡해요?”
“일단 진정하세요. 남편분은 지금 만발성 비장 파열이 의심돼요. 그래서 긴급 수술할 거예요. 이따 자세히 설명하러 선생님 한 분 오실 거예요.”
“그런데…….”
환자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다른 수술실은 안 돼요? 4번이라니, 불길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