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97화 (776/877)

“바로 눕히고 허리에 패드 대주세요.”

능연은 수술대 앞에서 바로 오더 내렸다. 택일 수술할 때는 체위 같은 작은 디테일은 신경 쓸 일도 없이 어시들이 그의 습관대로 환자를 눕히고 능연이 와서 메스 대길 기다린다.

긴급 수술엔 그런 대우를 기대하기 어렵고, 인원이 부족할 때는 과 주임도 나서서 환자 자세를 잡아줘야 한다. 응급센터가 병원에서 지위가 별로 높지 않은 원인 중 하나였다. 사실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로 더럽고 힘든 일일수록 무시 받는다. 특별히 포악하거나 대단히 잘생기지 않은 이상.

그리고 외과 의사의 지위 고하는 수술과에서 어떤 마취의와 간호사를 배정하는지, 또 그들의 태도가 어쩐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초짜 의사는 누가 배정되면 무조건 그 사람과 수술해야 한다.

조금 높은 의사는 조건을 달아도 된다. 예를 들면 재빠른 간호사라든가 혹은 수술 방식에 노련한 선임 간호사라든가 또 혹은 마취의가 수술 내내 있을 것 등등 조건을 내걸어도 수술과와 마취과에서도 보통 협조했다.

상급 의사의 조건은 조금 더 다양하다. 어떤 주임은 예쁘고 젊은 간호사를 원한다거나, 그럴 때 못생긴 간호사가 배정되면 화를 내고 트집 잡아도 된다거나. 써먹고 써먹은 경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려고 새로 온 간호사를 좋아하는 주임도 있다.

조용한 수술실을 좋아하는 능연의 조건은 수간호사가 몇 마디 당부만 하면 되어서 상대적으로 맞추기 쉬웠다. 반면에 능연은 감염 관리 쪽 요구가 까다로워서 순회 간호사의 책임이 막중해진다.

그리고 마취의에게도 능연은 모시기 좋은 의사는 아니었다. 수술 중에 까다롭게 굴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의사는 아니지만, 수술 후 회복에 관해서는 요구가 까다로웠다. 특히 능연의 수술 결과가 매우 안정적이고, 능연 스스로가 마취 케어 쪽에 꽤 연구를 하는 편이라 어디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확인했다.

수술 후 협진에서 능연에게 두 번 망신 당한 마취과는 그 후로 매우 신경 써서 능연에게 마취의를 보냈다. 마취과 내부에서는 능연에게 보내는 걸 일종의 테스트로 여겼다. 물론 너무 바빠서 사람이 없을 때는 마취과 내부적으로 비법이 있었다. 소가복을 보내는 것.

능연은 소가복과 자주 협력하고 익숙한 편이라, 소가복은 최근 2년 동안 진료과에서 희희낙락 잘 지냈다.

오늘처럼 이미 30시간 일해도 소가복은 여전히 평온한 상태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엉덩이 아래 둥근 의자를 깔고 앞뒤 전후, 전후 앞뒤로 흔들거리면서 바로 릴렉스했다.

“난 준비 됨.”

순회 간호사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다시 한번 검사하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좌측 복직근 절개.”

능연은 메스를 건네받고 환자 복부를 그어 내려가며 물었다.

“GS 왔어요?”

“손 씻는 중.”

받침대 두 개를 밟은 여원은 대답부터 하고 덧붙였다.

“사실 GS 필요 없이 우리끼리 해도 돼.”

“장이 많이 부었어요. 가능하면 GS가 위장 감압부터 하고 장을 조금 비켜주면…….”

능연이 메스를 놀리면서 설명하자 여원이 입을 삐죽였다.

“그걸 굳이 GS 시킬 필요 있어?”

“전 하기 싫어요.”

“내가 하면 되지.”

단호하게 대답하는 능연의 말에 여원이 작은 목소리로 본인을 어필했다. 올해 주치의 시험에 패스하면 이제 주치의가 되어 좋아하는 수술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정교하고 위험한 간 절제는 싫고, 세밀하고 안전한 단지 이식도 싫었다. 그러니 일반 외과에서 똥 꺼내는 일에서 맴돌았다.

능연은 의외라는 듯 여원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보세요.”

“응? 그래도 돼? 그런데 GS 벌써 왔는데?”

여원이 놀란 듯 되물었다.

“마침 좀 봐달라고 하면 되겠네요. 서둘러요, 비장 출혈 중이에요.”

“아, 아. 응.”

여원은 재빨리 나서서 바삐 움직였다. 뒤늦게 들어온 일반 외과 의사는 자기가 할 파트를 여원이 하는 걸 보고도 그저 싱긋 웃고는 고분고분 여원의 지도 선생 노릇을 했다.

“장이 좀 무겁네.”

“응급 수술은 원래 그래요. 장 비울 시간이 없으니 안에 든 게 많아서. 조심해요. 찢어지면 난리 난다.”

“아……. 예.”

여원이 숨을 내쉬자 마스크가 둥글게 부풀었다. 존재감을 어필한 일반 외과 의사는 힐끔 능연을 바라보며 계속 존재감을 뽐내려 했다.

“이 환자, 장 쪽 압박이 심하네요. 여기 봐요, 부은 거. 전에 어시할 때 한 번 이런 경우 있었지. 그때도 응급 수술이었는데 결국 찢어져서 안에 든 게 무영등까지 튀었어요.”

“아이고 아까워라.”

“그러니까 내 말……. 아니 그게 아니라…….”

여원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일반 외과 의사는 어리둥절해졌다.

“형용사 잘못된 거 아니에요?”

여원도 멈칫하고는 이내 웃어 보였다.

“아니, 안타깝다고요.”

“흠…….”

일반 외과 의사는 존재감 어필하느라 이야기하는 것도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섹드립부터 시작할걸.

여원도 이런 대화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바쁘게 움직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부어오른 장 위치를 옮겼고, 곧 복강 내 굳은 핏덩이가 드러났다.

“조심해서 석션해요.”

능연은 바로 이어받아 금세 비장에 연결된 위와 결장 인대를 찾아내고 박리한 후에 비장 동맥을 결찰하고 비장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비장 절제술도 따지고 보면 일반 외과 수술인데 대부분 비장 수술은 만성 질환이거나 합병증이 원인이라 택일 수술인 경우가 많다.

능연이 비장 수술을 시작하기 전엔, 비장 쪽 응급 수술은 바로 일반 외과 의사를 불러 해결하거나 일반 외과에 침대가 남고 그들도 원한다면 아예 트랜스 시켰다.

그러나 비장 절제 기술로 말하자면, 지금 능연 수술을 지켜보는 일반 외과 의사는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

의사도 무협 소설처럼 담 넘어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문득 머릿속에 각 팀 주임, 부주임 그리고 주치의가 능연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 꿇은 모습을 상상한 일반 외과 의사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슬쩍 올라갔다.

“임 선생님, 응급센터 콜 왔는데 가실래요?”

초짜 의사가 다가와 묻는 말에 차트 정리에 여념 없던 임기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내가 가도 돼?”

“되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콜 받고 가는 건데.”

재빠리 대답하던 의사는 그제야 임기는 위 주임이 응급센터에서 데리고 온 사람임을 깨닫고 히죽 웃었다.

“싫으면 다른 사람 가라고 할게요.”

“아니야, 내가 갈게.”

임기가 재빨리 상대의 말을 자르고 바로 일어났다. 장난하나. 얼마나 기다린 날인데.

임기가 장안민에게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언젠가 진료과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네 앞에서 응급센터 어쩌고 하면 기본적으로 잠복 성공한 것이다, 였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일반 외과 다른 의사들이 처음으로 임기를 응급센터로 가라고 한 날이었다.

임기는 흥분을 억누르며 가운을 걸치고 웃었다.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내가 갈게.”

“그럼 부탁드려요.”

초짜 의사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임기는 펜을 조심스럽게 챙기고 발걸음도 가볍게 응급센터로 움직였다.

재빨리 복강에 물 찬 환자 하나를 검사하고 트랜스한 임기는 바로 일반 외과로 돌아가지 않고 연문빈을 찾았다.

기골이 장대한 연문빈은 간호사와 보호자 사이에서 고양이 무리의 곰처럼 눈에 띄었다.

“연 사장, 바쁘십니까?”

임기는 영업맨처럼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잠시만요.”

환자 발가락을 검사하던 연문빈은 임기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을 쭉 찢고는 환자의 발을 건드리다가 보호자를 바라봤다.

“큰 문제 아니네요. 데브리망하고 봉합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임기를 향해 껄껄 웃어 보였다.

“임 대인, 어쩐 일이십니까.”

“아이고, 연 사장, 또 놀리나.”

“연 사장이라고 먼저 부르셨잖아요.”

“아 그래? 그럼 연 선생.”

임기는 너털대며 농담하면서도 결국 연문빈이나 문빈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문빈 동지가 능연이랑 매우 가깝고 지금도 큰 제자나 마찬가지라서 임기같이 얼렁뚱땅 레지던트가 된 능구렁이와 비교할 수 없었다.

“아이고, 참. 이제 GS 유명인이시면서, 아무렇게 부르시면 어때서요.”

“연 선생, 솔직히 우린 형제 같은 사이니까 하는 이야긴데 GS에서 사람대우 못 받고 지내는데 연 선생까지 이러면 나 진짜 맘 상한다.”

솔직히 일반 외과에서는 레지던트 임기 동지를 인간 취급하지 않는 건, 사실이긴 했다. 일반 외과에서는 원래 레지던트를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 물론 응급센터에서도 인간 대접받는 레지던트는 손에 꼽히고.

연문빈은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만큼 임기가 그렇게 말하니 머쓱해져서 웃어 보였다.

“아이고, 우리가 형제 같은 사이군요.”

“같이 동고동락한 세월이 있는데 그게 형제가 아니라면 뭐가 형제야.”

연문빈은 그제야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외아들이라 형제도 없이 외로운 데다가 여자친구도 없고 앞으로 아내가 생길는지도 모르고…….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 건 알아도 정말 기분이 좋았다.

“능 선생 만나러 오신 거죠?”

“응, 만나고 싶긴 하네.”

임기가 주변을 둘러보며 웃었다.

“연 선생, 안 바쁘면 같이 가자. 한동안 능 선생 못 만나서 조금 켕기는데 누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좀 가볍잖아. 오늘 도와주면 내가 족발 쏠게.”

그래서 연문빈을 부른 것이었다. 연수의이자 지금 일반 외과로 파견된 배신자인 임기는 아직 능연과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만 있으면 분위기가 썰렁할까 걱정이었고.

오늘 온 것도 능연에게 질문도 하면서 거리도 좁히면서 얼굴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그래야 충심도 표시하고, 적진에 투입된 임기라는 의사가 있다는 걸 큰 보스가 잊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임기가 그동안 관찰하고 깨우친 것에 따르면, 다른 일로 능연을 찾아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고 얼굴을 비치려는 효과도 별로 없다. 여원이 사람 엉덩이를 얼굴보다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달까.

일반 외과에 있는 동안 질문도 꽤 많이 쌓아두어서 능연의 시선을 끌 수 있으리라 여겼다.

연문빈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생님도 도와주세요. 이 환자 처치 끝나면 같이 능 선생한테 가요.”

“좋지.”

임기는 바로 움직였다.

처치실.

다시 돌아와 현장 질서를 유지하던 능연은 바로 연문빈과 임기가 짝지어 나타나는 걸 보고 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큰 수술 있어요?”

능 팀 지금 상황으로 일반적인 수술은 둘이나 함께 올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냥 도와주러 왔어. 능 선생이랑 한참 수술 못 했잖아. 그래서 잠시 팔로우 하려고.”

임기가 냉큼 덧붙이는 말에 연문빈은 남이 아부 떠는 모습을 보는 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능연도 별 상관없었다. 요즘 수술을 너무 노련하게 해서 응급 구조든 수술이든 셋이든 혼자 하든 아무렇지 않게 수술을 끝낼 수 있고, 필요하면 어시들이 지쳐서 죽을 일 없도록 업무량을 균일하게 나눌 수도 있었다.

“능 선생, 아까 구급차로 단지 환자 들어왔다던데, 할래?”

연문빈도 바보가 아니라서 능연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응급실 쪽은 어때요?”

능연이 망설여지는 듯 물었다.

“큰 수술은 이미 다 뺏겼지. 님도 아시다시피 오늘 간 절제 환자는 없고 다른 환자는 곽 주임님이 다 나눠주셨어. 그래야 다른 사람한테도 지지받지.”

연문빈이 히죽 웃었다.

오늘 연쇄 추돌 사고 역시 여러 병원이 분담해서 맡았고, 운화병원 쪽도 여러 진료과가 협력하는 모드였다. 그러니 병원 내부에서 다투느니, 곽종군은 차라리 보기 좋게 이번 임무를 끝내길 더 바랐다.

응급센터 간판은 세워야 하지만, 운화병원만 인정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비슷한 협동 구조를 통해 차차 이름을 알려야 했다.

능연도 교통사고 때마다 간 수술 환자가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단지 해요. 환자는 어때요?”

환자 상황 이야기가 나오자 연문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신부 아버지야. 유명한 화가라더라고. 사고 났을 때는 벨트해서 문제가 없었는데, 사람 구하다가 다쳤대.”

“화가가 손가락이 잘리면 앞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려?”

임기가 놀라서 물었다.

“세 개나 잘렸어요. 그래서 능 선생이 수술 이야기 꺼내니 바로 생각 난 거지.”

연문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했다.

“이미 병원에 도착했으면 의사 배정받았을 텐데?”

임기가 다급하게 묻는 말에 연문빈이 씨익 웃었다.

“OS로 넘어갔는데 능 선생이 한다고 하면 당연히 은혜에 감사하다 하겠죠.”

그 말에 임기가 멍해졌다.

“아, 맞아. 지금 여기 응급센터인 걸 깜빡했네.”

“이분은 궁개접, 화가시고. 오른손가락 세 개 절단, 심하게 눌렀고 절단면이 가지런하지 않고 기름으로 심하게 오염됐어.”

정형외과 주치의는 능연 일행이 환자 ‘뺏으러’ 온 걸 보고도 태연했다. 소림사 고산 분원 속가제자가 ‘나라 사랑 식물 조경 활동’에서 소림사 달마원 상무 부원장을 만나서, 직접 산에서 골라온 묘목을 빼앗겼을 때처럼. 그런 때에 웃는 거 말고 무슨 다른 선택이 있을까.

아미산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서, 고작 단지 환자고 콜 받고 와서 그렇지, 정형외과 주치의가 탐낼 만한 환자는 아니었다. 특히 세 손가락 단지 이식은 두 사람이 해도 네다섯 시간에 끝날지 장담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이런 눈 빠지고 손 아픈 수술이 정형외과 의사에게 무슨 이득이 될까. 새 바늘 선물? 아니면 새로운 경험? 단지 이식처럼 돈도 안 되는 수술 경험 따위, 정형외과 의사는 배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속가제자는 세속적인 만큼 그런 걸 잘 알아야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능연은 수술을 가리지 않는다. 언제나 하고 싶은 걸 하는 성격이지 가성비를 따지지 않았다.

능연은 수술 자체에 더 포커스를 두었다.

“단면이 뼈 부분이라 쉽지 않겠네요.”

환자 손바닥을 이리저리 뒤집어 본 능연은 우선 한숨을 쉬었고 환자와 보호자의 표정이 순간 흐려졌다.

“저기, 그럼 그냥 왕 선생님이 해주실래요?”

궁개접의 쉰 남짓한 부인은 대단한 아주머니처럼 모던하고 단정하게 꾸몄는데 지금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 말에 정형외과 주치의는 헛기침하며 다급하게 대답했다.

“능 선생이 더 잘합니다.”

고산 분원 속가제자인 그는 능연을 이길 생각은 없었다. 운화병원엔 참고할 케이스가 너무 많으니 말이다.

그러나 환자와 보호자는 믿기지 않는 듯 의심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봉합하는 데 문제 없다고 하셨잖아요.”

환자 부인은 그리 좋지 않은 말투로 왕 주치의에게 물었다.

“봉합할 수는 있다는 말이었죠. 능 선생은 그냥 쉽지 않다고 한 거고요.”

왕 주치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때 임기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핸드폰 가지고 있으시죠? 능연 선생 구글링 해보세요.”

“구글링?”

“핸드폰 브라우저 열고 능연 두 글자 입력하세요. 쫙 나올 겁니다.”

임기는 일반 외과에서 수시로 능연을 검색했다. 다른 의사처럼 대놓고 능연의 소식을 묻지 못하니 인터넷에서 더 많은 소식을 얻었다.

아파서 얼굴이 다 일그러진 환자는 아내에게 검색해보라고 시켰다. 검색란에 ‘능연 선생’ 네 글자를 입력했더니 소개와 뉴스가 주르륵 열렸다.

일반인은 보통 의학 뉴스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나 현대인은 병이 나면, 특히 큰 병을 겪은 후에는 바로 의료계 유명 의사에 대해 빠삭해진다.

고급 의사와 일반 의사의 진료 비용이 비슷해진 시대에서 고급 의사는 그저 환자가 많고 접수하기 어려운 의사일 뿐이다. 가능성만 있으면 환자는 그래도 유명 의사를 더 원한다.

능연은 쉴 새 없이 수술하고 치료해 오면서 이미 충분히 유명해졌다. 궁개접 부부는 검색 내용을 읽으면서 능연을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졌다.

“그럼 능 선생님같이 이렇게 유명한 의사가 더 잘 꿰매겠죠?”

궁개접의 부인이 조금 자극하는 말투로 묻자, 연문빈은 정형외과 주치의를 힐끔 보고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기준이 다른 거죠.”

순간 궁개접 부부는 바로 알아들었다. 환자 궁개접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님, 저는 화가입니다. 평생 그림을 그렸어요. 손가락은 제 밥벌이 도구입니다. 제발 지켜주세요.”

“우리 이이는 독학한 사람이에요. 유명한 학교 출신 화가처럼 사부, 사형, 사제가 서로 서포트하는 화가가 아니라서 이 나이에 겨우 이름을 알렸어요. 어제만 해도 다른 사람처럼 앞으로 손녀에게 해마다 그림 한 장 그려야겠다고 했는데……. 능 선생님, 단지 전문가시잖아요, 제발 손가락 잘 붙여주세요.”

“단지 이식입니다.”

연문빈이 나지막이 고쳐줬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 붙이는 건 쉽지만, 기능을 회복하는 건, 특히 화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앞으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말씀인가요?”

궁개접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모습이었다.

“예. 아무래도 정상 상태 60% 정도밖에 회복하지 못할 겁니다.”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궁개접의 안색이 다시 변했다.

“60%, 60%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연문빈이 대신 대답했다.

“선반 작업자라면 60%로 충분합니다. 특별히 정교한 작업은 못 하겠지만, 일반적인 작업은…….”

“전 화가입니다. 선반 작업자가 아니라고요!”

궁개접은 순간 화를 내고는 바로 누그러뜨렸다.

“선반 작업자가 어떻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60%가 그 정도라면…….”

“그, 그래도 손가락 없는 거보단 낫잖아요. 안 그래요?”

아내가 궁개접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전에 그랬잖아요. 손가락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당신 생각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하아…….”

궁개접도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 한숨만 내쉬었다.

“수술하실 거면 최대한 빨리 결정하시는 게 좋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궁 선생님이 화가인 걸 알고 제가 일부러 능 선생을 불러온 겁니다. 국내 전문가 중에 능 선생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외국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중국 단지 이식 기술도 둘째가라면 서럽습니다.”

연문빈이 설명하자, 옆에 있던 정형외과 주치의가 드디어 조금 불편한 듯 입을 열었다.

“있는 대로만 말해, 다른 사람 체면도 생각해 줘야지.”

“선생님이 능 선생보다 단지 이식을 못 한다고 하지 않은 것만 해도 포상인데요.”

연문빈이 힐끔 보며 하는 말에 정형외과 주치의는 잠시 멍해졌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반박할 말이 없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연문빈은 족발 바라보듯 정형외과 주치의를 바라보다가 다시 환자를 바라봤다.

“두 분 생각은 어떠세요?”

“우린……. 딸 생각을 좀 들어봐야겠어요.”

궁개접이 잠시 생각하다가 하는 말에 부인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몇 초 후, 핸드폰에서 우는 소리와 함께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렸다.

“엄마, 심걸이 나랑 결혼 안 한대. 헤어지재.”

“너희는 또 왜!”

궁개접 부인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까지 떨었다.

“심걸이…… 결혼 안 하겠다잖아. 이번엔 내가 아니라고! 엄마, 나 어떡해.”

핸드폰 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을 정도로 점점 더 커졌다.

“일단 진정 좀 해. 진정.”

이미 넋이 나갔던 궁개접의 부인은 그래도 할 수 없이 딸을 위로했다. 핸드폰에서 계속해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다들 마음이 번잡해졌다.

궁개접도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화가 나서 멀쩡한 손으로 침대를 내리쳤다.

“내가 뭐랬어!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했지? 그냥, 그냥 작은 고비일 뿐인데, 바로 못 참고. 식도 올리기 전에 혼인신고 할 것 없다고 했는데 말 안 듣더니…….”

부인이 눈을 부릅뜨면서 핸드폰을 멀리 가지고 가며 물었다.

“지금 어디니? 내가 갈게. 아니, 이모보고 가보라고 할게. 진정하고.”

부인은 전화를 끊고 또 전화하고, 거의 무너질 것 같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주변을 서성거렸다.

“당신도 진정해요.”

말만 해도 아프던 궁개접은 하도 아프니 오히려 정신이 들어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아직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잖아. 나중에 왕 교수한테 바로 가서 따져 봐야겠어. 당당한 미대 교수들이 이런 미꾸라지처럼 물 흐리는 놈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말이야.”

“왕 교수, 죽었대요.”

“주, 죽어?”

궁개접은 넋이 나가서 중얼거렸다.

“왕 교수랑 유 교수 같은 차 아니었나…….”

“응, 다 죽었어요.”

“어쩐지. 배신자 놈, 우리 집 연줄이 다 끊긴 걸 보고 저러는 거였군.”

왕 교수와 유 교수는 궁개접 친구 중에 그나마 남은 권력파였다. 특히 그 두 사람은 궁개접을 많이 도와줬고 은혜 모를 사위에게도 약속한 것이 있었다.

“어쩌다가.”

궁개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앞쪽에 있었고 벨트를 매지 않아서 사고 나는 순간 바로 그렇게 됐대요.”

궁개접 부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핸드폰을 꾹 쥐고 고개를 돌려 연문빈과 능연을 바라봤다.

“아까 검색해봤더니 운화병원 수부외과도 유명하던데, 거기서 하면 가능성이 더 커질까요?”

“능 선생보다 더 정교하진 못할 겁니다.”

이번엔 연문빈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부외과는 운화병원 엘리트 진료과로, 비록 시대적 요인으로 내리막이지만 그래도 역시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유형이었다. 연문빈이 이 화가를 돕고 싶은 건 맞지만, 그건 자신을 무덤으로 밀어 넣지 않은 선에서였다.

궁 부인은 연문빈의 태도가 변한 걸 느꼈지만, 바로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남편이 40년 넘게 그림을 그려온 오른손이며 그가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자 가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

궁 부인은 계속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그럼요.”

연문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능연을 바라봤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오늘 연쇄 추돌 사고로 환자가 매우 많습니다. 그럼 상의해 보시고, 우린 다른 수술하러 가겠습니다. 결정하시면 다시 구체적인 수술 시간 잡으면 되니까요.”

“아, 네.”

궁 부인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었다. 궁개접은 아픔을 참으며 연문빈, 능연을 번갈아 보며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

“능 선생님, 연 선생님, 정말 미안합니다. 60%는 정말 난감해서요. 7, 80이라면 받아들이겠는데…….”

“좋습니다.”

“좋다고요?”

“네. 7, 80%도 안 될 건 없습니다. 80%도 가능은 하고요.”

능연이 대답했다. 잠깐 사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 곁에 서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심사숙고한 결과 70에서 80을 보장한다는 건 지나치게 과한 약속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궁개접 부부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걱정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이 의사, 어쩐지 이상해 보여.

10분을 기다린 능연은 궁 씨 부부가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처치실로 돌아가 각종 작은 부상 환자들을 처치했다.

퀘스트가 진행 중이니, 작은 처치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질환이 적이라면, 능연은 지금 명백히 적을 학대하고 있었다. 학대할수록 점점 더 신나게.

한편, 궁개접 부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갈등이 됐다. 게다가 손도 점점 더 아파왔다. 아까는 참을 만한 통증이어서 마음 상태가 그나마 평온했는데 이 정도로 아프니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안 되겠어. 못 참겠어.”

궁개접이 머리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럼 능 선생한테 수술받을 거예요?”

아내가 묻는 말에 궁개접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핸드폰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럼 좀 알아봐요. 당신이 하기 그러면 내가 할게요.”

“누구한테 걸려고? 아는 사람들은 다 우리 결혼식에 오는 길이었는데.”

“다 그런 건 아니죠.”

운이 좋아서 찰과상도 없는 궁 부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주 사장 안 왔잖아요. 갤러리도 있고 집안도 괜찮으니까, 아는 게 있을 거예요.”

“아, 그렇군. 그래요, 그럼 걸어 봐.”

궁개접은 지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고, 누가 마취해 주면 그냥 모르는 척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궁 부인은 그 고통을 공감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감정은 비슷했고 바로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서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신부 화장을 한 딸이 멍하니 앉아 있었고 곁에 어쩔 줄 모르는 초짜 의사가 있었다.

“왜 그러니?”

“엄마…….”

궁 부인은 바로 또 무슨 일이 생겼음을 깨달았고, 딸은 눈물 콧물 흘리며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초짜 의사를 바라봤다.

“무슨 일 생겼어요?”

“네. 결정을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하든, 다른 병원으로 가시든요.”

“능 선생님한테 수술받을게요.”

초짜 의사가 나지막이 하는 말에 궁 부인은 매우 단호하게 대답했다. 진통제 맞고 잠시 눈을 붙였던 궁개접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능 선생님한테?”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국내 최고 의사래요.”

궁 부인은 초짜 의사에게 봉투를 건네며 웃어 보였다.

“선생님, 아시겠지만 오늘 우리 딸 결혼식이었어요. 길한 숫자로 맞춘 봉투예요. 다른 뜻은 없으니 그냥 받아주세요.”

초짜 의사는 더욱 난처한 듯 거절했다. 지금 병원은 단독 사무실이 없는 의사는 봉투 받는 걸 매우 꺼렸다.

궁 부인은 성의 표시만 한 거로 만족하며 눈물을 닦고는 웃었다.

“그럼 능 선생님한테 수술받으려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하죠?”

“제가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봉투는 받지 않았지만, 초짜 의사의 태도는 훨씬 좋아졌다. 궁 부인은 그 사이에 작은 목소리로 궁개접을 위로했다.

“주 사장이 당신 다친 걸 알고 비행기 타려고 가고 있대요. 그리고 손 나으면 개인전 열어준다고 걱정하지 말래요.”

“개인전은 무슨.”

궁개접이 헛웃음 지었다.

“이 손, 70%까지 회복한대도 유명 화가들과 비교하면 거의 망가진 거나 마찬가지요.”

“주 사장 말이, 장애인 화가도 꽤 시선을 끌 거래요.”

“이 새끼가…….”

궁 부인이 슬쩍 웃으며 하는 말에 궁개접의 표정이 확 굳었다.

“어쨌든 마음 놓고 수술받아요. 수술 끝나면 다시 생각하고요.”

그건 남편을 향한 응원이자, 본인을 향한 응원이기도 했다.

궁 씨 일가가 수술동의서에 서명한 후 한참 기다린 후에야 마취의가 나타났다. 마취의는 자기소개부터 하고는 바로 술 마셨는지부터 물었다.

“손님 접대하면서 조금요. 많이는 아니고요. 능 선생님이 수술하는 거 맞죠?”

의사가 나타나자, 궁개접은 드디어 한시름 놓으며 물었다.

“예. 많이 안 드신 건 얼마나 드신 건가요?”

“한 바퀴 돌면서 바이주 두어 잔, 그리고 맥주 세 병 넘게요.”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한 궁개접은 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부 측 혼주라 가장 친한 지인들을 초대했다. 친구를 만나면 술 두어 잔 기울이고 이야기 나누는 건 당연한데, 가장 기쁜 날 이렇게 인정 없는 사고가 일어날 줄이야.

오늘 비슷한 환자를 많이 마주한 마취의는 기록하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적게 드신 건 아니네요. 얼굴은 안 빨개졌네요.”

“원래 얼굴엔 안 나타나요. 게다가 두세 시간이나 지난걸요.”

마취의는 궁개접의 체질이 조금 부럽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러면 좋겠네요. 주량이 좋으신가 봐요. 이따 위 삽관해서 위를 좀 비울 거예요. 그래야 마취할 때 안전해요.”

역류 문제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완층 마취할 겁니다. 풀네임은 완신경층(brachial plexus) 마취라고, 가장 익숙한 마취 방식입니다. 의사가 수술하기 쉽도록 어깨 쪽 신경을 차단하는 거예요. 그리고 수술할 때 잠이 들 수 있도록 진정제를 투여할 수 있고요. 그래야 조금 편해요. 하지만 전신 마취는 아닙니다.”

궁개접 부부는 얼떨떨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토한 적 있으세요?”

“술 마실 때요?”

“뭐 그런 셈이죠.”

“있긴 있습니다.”

“음, 그럼 위 비워야겠네요. 구체적인 건 나중에 결정하겠습니다.”

마취의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기록하면서 사정 동의서를 내밀었다.

요즘 병원엔 마취의가 가장 부족해서 마취의 하나가 마취하는 환자 수는 서전 두어 배도 거뜬했다. 그리고 응급센터 환자 마취는 마취의에게 더 까다로운 환자였다. 음식물이나 술이 남은 경우가 가장 골치 아픈 두 케이스였다.

미리 속을 비우는 택일 수술 환자와 달리 응급 수술 환자는 오늘 수술할 걸 예상한 것이 아니라서 당연히 대부분 속이 비워지지 않은 상태다. 술 마신 환자는 혈액에 알코올이 남아 있어서 마취가 잘 안 되는데 술 마신 사람이 응급실에 올 확률은 또 높다.

궁 부인은 조금 무뎌진 마음으로 마취과 사정 동의서에 서명했다.

“능 선생님이 수술하는 거 맞죠? 중간에 바꾸면 안 돼요.”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전 마취 담당이라서요”

책임질 이유가 없는 마취의는 딱 잘라서 책임을 회피했다.

“됐어요. 알아서 하시겠지.”

한참 고생하던 궁개접은 이제 오히려 가족을 위로했다. 마취의는 긴말 없이 노트를 챙겨서 다음 환자에게 향했다.

오늘 응급 환자가 너무 많아서 평소에 바쁜 의사들에게도 큰 스트레스였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타나서 환자를 여기저기 끌고 가 사진을 가득 찍었댔다. 응급센터에서는 능연과 곽종군 환자나 받는 대우였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상급 의사일수록 환자를 존중하고 진지하게 일에 임하며 검사도 합리적으로 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배후엔 상급 의사일수록 그럴만한 여유가 있어서 환자가 보기에도 달리 느끼는 것이다.

일반 주치의와 주임 의사는 자기도 죽을 것 같아서 환자에게 별로 좋은 얼굴을 보이지 못한다.

능연과 곽종군은 검사나 뒤치다꺼리 같은 일은 모두 부하가 대신해주고, 평소 베드 관리, 보호자에게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동정심 소모하는 일도 모두 레지던트와 훈련의가 한다. 심지어 환자와 보호자가 다리가 부러지도록 해야 하는 검사도 모두 팀 내 실습생과 연수의가 하니, 환자와 보호자는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고 능연이나 곽종군을 만나면 얼굴이 활짝 핀다.

그에 비해, 레지던트급 베드 담당 의사는 능 선생이나 곽 주임처럼 실제로 휘두를 권한이 없으니, 영상의학과에 가서도 눈치 보고 웃어 보여야 해서 설사 환자에게 친절해지고 싶어도 그럴 여력이 없는 것이다.

궁개접은 한 바퀴 돌고 30분 정도 더 기다린 후에야 수술실로 들어가 능연을 만났다. 궁개접은 묘하게 마음이 놓여 바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능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저는 손가락이 부러지는 게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어쨌든 예술인이라, 궁개접은 억지로 웃으며 농담 비슷한 걸 했다. 능연이 아무런 표정이 없자, 곁에 있는 크고 건장한 연문빈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때, 새로 들어온 간호사가 생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이에요.”

수술실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몇몇 연수의들이 특히 크게 웃었다.

“올드한 개그인데 현장에서 들으니 이것도 웃기네.”

“어린 아가씨가 하는 거라 그런지 더 재미있는데?”

“맞아, 맞아.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앞으로도 잘하겠어.”

궁개접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웃고 싶은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새로 온 간호사는 입을 오므리고 웃다가 다들 신나게 웃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단지 이식 수술은 정말로 처음이에요.”

이번엔 웃음소리가 변했다. 궁개접은 드디어 웃지 못하고 나직이 물었다.

“정말로요?”

간호사는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고, 연문빈이 헛기침하며 궁개접에게 말했다.

“오늘 수술은 능 선생이 하잖습니까. 시간 날 때 검색해보면 우리 능 선생이 하는 단지 이식은 손해 볼 일 없을 거라는 걸 아실 겁니다.”

“그야 지금도 알죠.”

궁개접은 이미 여러 사람에게 물었고 검색도 해본지라, 고개를 돌려 능연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주무시게 해요.”

능연의 목소리가 들리고, 마취의가 대답하는가 싶더니, 궁개접은 몇 초 만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저 멀리서 ‘카메라 켜고, 라이브 접속해.’라는 소리가 들렸고, 순간 궁개접은 자기가 봤었던 의사와 환자 영상을 떠올리고는 흥분해서 우주가 폭발하는 것 같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외과의는 지극히 과시욕이 강한 집단이다. 특히 기술이 뛰어난 의사일수록 본인이 정통한 수술을 할 때 온 병원 사람이 다들 와서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워 안달이다.

그러다 보니 순회 간호사가 상급 의사의 수술 비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다. 오늘 의사가 상태가 좋고, 감정이 흥분한 상태면 의사 혹은 실습생을 조금 더 많이 들여보내 참관하게 한다. 반대로 오늘 수술이 그 의사가 자신 없어 하거나 혹은 결정적으로 제어하지 못해 불편해하는 부분이 있는 수술이라면 사람을 덜 들여보내고 심지어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가 크게 화를 내지 않도록 몰래 사람을 내보내기도 한다.

그런 각도로 보면, 전국에서 해마다 만 번 넘게 열리는 각종 학회가 매년, 매년, 매일, 매일 반복해서 열리고 반복해서 진행되어도 언제나 깜짝 놀랄 만한 전문가가 참가하는 것도 다 과시욕 버프 때문이다.

웬만한 숙소나 왕복 교통편만 제공해도, 원사 이하 의사를 초청하는 건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다. 특히 본인이 가장 정통한 수술 방식에 관한 학회는 사실 의사들은 체면만 세워줘도 쉽게 초청에 응한다.

운리 라이브 방송 시스템도 따지고 보면 체면 덕분에 생긴 것이다. 운화병원 라이브 시스템에서 라이브 방송해봐야 수입도 없고, 좋아요, 구독도 없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즐겁게 라이브를 하면서 자신의 가장 훌륭한 면을 대중에게 생방송으로 내보낸다.

물론 운리에서 라이브에 참여한 진료과에 보너스 명목으로 비용을 주지만, 진료과 경비로 줄 수밖에 없어서 기껏해야 연구개발비로 쓰지 본인이 가져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능 팀 의료진은 그 보너스가 적잖게 들어왔다.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능연이 매일 라이브하면 다 함께 사나흘에 한 번 훠궈 파티를 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래서 능연이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기회만 되면 누군가는 라이브를 열어서 4K 카메라 한 대는 수술 구역, 한 대는 능연의 얼굴에 비춰서 라이브마다 시청자 수를 손쉽게 늘렸다.

오늘 수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능연은 침착한 표정으로 시청자 4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술했다. 그리고 1, 2분마다 우측 아래에 숫자도 위로 한두 명씩 늘었다.

“얇은 거로. 5mm.”

“더 위로. 문지르지 말고.”

“더 힘줘요.”

능연은 느긋하게 손을 놀리면서 연문빈과 함께 데브리망을 마친 후에 환자의 부러진 손가락을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뼈가 심하게 눌렸네요.”

“좀 잘라낼까?”

세상을 잘 아는 연문빈은 환자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이런 결정은 자기가 뒤집어쓰기로 했다. 능연은 생각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수많은 환자의 손가락뼈를 살린 적도 있지만, 이번엔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손상을 줄일 수 있게 최대한 조금만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포셉을 내려놓고 어깨를 움직였다. 데드 리프트 전에 몸 풀 때 자주 하는 익숙한 동작에 연문빈이 멈칫했다.

“손가락뼈는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 80% 이상 기능을 되살리려면 다른 부분 조심해야 해요.”

능연이 고개를 들고 보기 드물게 코치했다.

“다들 정신 차리자고요.”

수술실 안 의료진은 모두 부르르 떨며 정신을 바짝 집중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가 생긴 이래, 달마다 외국 환자가 들어오고 VVIP가 들어오지만, 능연이 ‘정신 차리자’고 하는 수술은 그야말로 손에 꼽히니 다들 특별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문빈은 온몸의 근육까지 순간 팽팽해져서 바지가 꽉 낄 정도였고 대둔근이 불끈해지니 목소리까지 귀여워졌다.

“120% 정신 차리고 있어, 능 선생,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수술 난도가 올라갈 것 같아요. 연 선생님도 그만큼 부담 갈 거예요.”

능연이 마지막으로 설명했다. 수술 정밀도라는 건 한계가 없는 법이고 특히 수술 방식에 익숙해지면 주의해야 할 디테일이 무궁무진했다. 발로 하는 축구 경기도 수천, 수만 가지 기교가 있는데 손으로 진행하는 외과 수술의 깊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능연은 심지어 온 팀의 수술 정밀도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가 수술할 때 어시의 능력대로 일을 나눠주는 것처럼 말이다. 어려운 수술에서는 월등한 어시에게 일을 더 많이 주고 자기는 디테일 컨트롤에 집중하는 방법도 있다.

1, 2년 전엔 이런 방식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연문빈이 독립해서 탕법과 단지 이식을 진행할 정도니, 부담할 수 있는 부분이 당연히 더 많아졌다.

좌우로 살핀 능연은 모두 집중한 것을 확인하고 근건을 들어 올렸다.

“순행법으로 합니다.”

순행법은 단지 이식하는 의사가 가장 먼저 배우는 수술 방식으로 기법이 가장 간단하고 사고 회로도 가장 단순했다. 그러니 연문빈 같은 ‘초심자’에게도 부담 적은 방법이었다.

연문빈은 능연이 그런 쪽까지 고려하는 걸 모르는 듯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순행법으로!’ 하고 되풀이했다.

“네. 문합 주의하고요.”

능연은 근건 봉합을 시작하고 뒤이어 손등 정맥을 봉합했다. 유사한 수술을 연문빈 혼자도 백 번 가까이해서 수술 횟수로 따지면 약체가 아니었다. 어시한 수술 횟수가 아니라 명백히 집도한 수술 횟수로만도 그랬다.

연문빈은 얼굴 가득 자신감을 띤 채 손가락을 재빠르게 놀리며 능연을 따라 선 정리도 하고 또 능연의 플로를 따라 다음 스텝 준비를 하기도 했다.

연문빈은 능연이 대놓고 자신의 기술을 배우도록 키운 제자였다. 능연은 단지 이식처럼 시간은 길고 간 절제와 비교하면 환자에게 이득이 적으면서 병상은 오래 차지하는 수술을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것도 지난 달이고 조수도 연문빈이 아니었다.

연문빈이 기억하기로, 그는 한 두어 달 동안 능연 앞에서 성장을 뽐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두어 달 동안 연문빈이 해온 스물, 서른 개 가까운 손가락 수술은 그의 실력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연문빈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손가락을 가볍게 놀렸다.

“이 혈관 다시 다듬어야 해요.”

능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다듬어?”

연문빈이 무의식적으로 능연의 말을 되풀이하면서 고개를 들었더니, 역시나 곧 능연이 봉합해야 할 혈관이 조금 비틀어져 있었다. 혈관이 비틀리면 생기는 문제점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혈액 흐름에 영향을 주고, 색전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는 혈관에 저렇게 작게 비틀린 거까지 발견하다니…….

연문빈은 다시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까 능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순간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작은 혈관이 저렇게 조금 비틀린 것도 신경 쓰라니. 오늘 수술 얼마나 힘들까.

그와 동시에 운리 라이브 시스템 ‘운화병원 응급센터 능연 선생’ 라이브 채널 대화창도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저렇게까지 세심하게 할 거 있어?”

“아무리 능연이라도 전엔 저렇게까진 하지 않았잖아.”

“능 선생이라고 해야죠, 예의 좀 지킵시다.”

“생각하고 발언하세요. 운리 라이브는 실명제입니다.”

“아, 곽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신입이라…….”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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