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99화 (778/877)

이른 아침.

햇살을 받은 갑판엔 바다 분위기가 물씬 났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어선과 소형 운송선이 꿀벌과 나방처럼 바다와 강 위에 규칙 없이 움직이면서도 부딪치지 않고 운행했다.

좌자전은 아침 예배를 올리는 기분으로 수십 미터 높이, 수십 미터 너비 물건 위로 올라갔다.

“이것이 크루즈구나.”

좌자전은 고향 사투리까지 쓰면서 감탄했다.

사실 그들은 어제 거의 병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렇게 오래 있을 필요도, 다 같이 있을 필요도 없었는데, 크루즈가 아니라 우선 병실에 시간과 정력을 써야 한다고 의견 일치를 봤다.

연문빈은 하룻밤 꼬박 새운 눈을 문지르고는 쉴 새 없이 주변의 거대하고, 화려하고, 정교한 시설들을 바라보며 기대감 가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런 크루즈, 엄청 비쌀까요.”

좌자전이 연문빈을 힐끔 봤다.

“이 크루즈, 위로 5층, 아래는 3층인가 4층이야.”

“3층이라고 들었어요.”

“그럼 총 8층이지.”

“그렇죠.”

“길이 50미터, 너비도 2, 30은 되겠지.”

“그렇겠죠.”

“20이라고 치자.”

좌자전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럼 한 층만 1,000제곱미터야. 문빈아, 8,000제곱미터 집 인테리어 하면 얼마가 드는지 아니? 이렇게 꾸미려면 얼마나 드는지 아냐고.”

연문빈의 고개가 저절로 내려갔다. 전에 산 집 인테리어 할 때 1제곱미터 인테리어 하는 데 족발 5백 개를 팔아야 했는데 8천은 그냥 주택 인테리어로 단순 계산해도 족발 4백만 개를 팔아야 했다.

그렇게 환산해본 연문빈은 마음이 진정됐다. 돼지는 다리가 4개니까, 족발 4백만 개면 돼지 백만 마리일 뿐이네.

돼지 십만 마리를 열 번 죽이면 족발은 충분하네. 운화병원 직원만 몇천 명이잖아. 인당 평균 천 개만 먹으면 되네.

설사 크루즈 인테리어가 주택 인테리어보다 열배 백배 비싸다고 해도, 그럼 사람들이 열배 백배로 족발을 먹으면 될 일이지.

그러니까 결국 수학은 모든 문제의 해결 방안이야. 수학만 잘 배워두면 죽을 때까지 걱정 없어.

연문빈 얼굴에 사내아이 같은 멍청한 미소가 떠올랐다.

“깨달았냐?”

좌자전은 자기가 연문빈을 깨닫게 해준 줄 알고 기분 좋아서 똑같이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의사 생활이나 열심히 해. 돈을 번다고 해봐야 얼마나 벌겠어. 또 얼마를 벌어야 충분하겠냐고. 돈 다 끌어모아서 사 봐야 기름도 못 넣을 크루즈 어디에 쓰게.”

“기름 정도가 뭐라고요.”

연문빈은 껄껄 웃으며 속으로 족발 2만 개, 인당 서너 개라고 읊으며 별것 아니란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기름 넣을 수 있다고 대단한 거 같냐? 보험료는? 그래 영끌해서 보험료 냈다 치자, 그럼 또 어쩔 건데. 새로 결혼한 마누라랑······.”

“새로 결혼한 마누라 데리고 근육이 탄탄한 구릿빛 피부 젊은 선원들 데리고 출항해서, 헬스로 선원들 깔아뭉갠 다음에, 마누라 끼고 걔들이 열심히 일하는 거 지켜보죠.”

연문빈은 좌자전이 자주 하는 애잔한 말을 자르고 자기 스토리를 써 내려갔다.

여원은 뒷짐 진 채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서 거대한 갑판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에겐 이 갑판이 현실감이 너무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댄서 하나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바로 향해 해장술을 달라고 했고, 여원은 옆에서 그녀의 가슴을 힐끔 보면서 이 크루즈의 모든 것이 다 크다고 생각했다.

“크지?”

좌자전은 연문빈과 대화가 통하지 않자, 여원 곁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너무 심하게 변태까지는 아닌 대화를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좌자전의 말에 여원은 여전히 바 쪽 자리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

“좌 선생님, 너무 스케일이 작아요.”

“아?”

“게다가 크기만 고려할 것도 아니잖아요. 모양, 색깔도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좌자전은 저 정도면 광택과 넓기 모두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앞쪽 갑판을 바라보다가, 여원이 저렇게까지 깊게 생각하는 모습에 생각에 잠겼다.

“여 선생이 이런 쪽에도 관심 있어?”

여원은 고개를 숙여 자기를 힐끔 보고는 다시 좌자전을 바라보면서, 유명한 작은 손을 주먹으로 단단히 쥐고 소매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대로 실수인 것처럼 휘둘러 버리면 통쾌할 텐데, 이렇게 생각하다가, 능 팀 연구비는 모두 좌 선생을 거쳐야 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차츰 평온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가서 식사부터 하시죠.”

맥순은 촌뜨기 의사들이 눈호강이라도 하길 기다렸다가 다가가서 아는 척했다. 예전에 그녀를 본 적 있는 좌자전은 타향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워서 순간 이 제약회사 직원이 눈매도 곱고 예뻐 보인다고 생각했다.

“귀찮으실 텐데 저흰 아침은 됐어요.”

“능 선생님은 이미 드셨고, 옆에 배에 놀러 가셨어요. 그러니까 편안하게 드세요. 많이 드시면 좋고요. 나중에 배 출발하고 바빠지면 먹을 시간도 없을 거예요.”

맥순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연문빈은 어리둥절해졌다.

“크루즈에 먹을 거 놀 거는 빠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크루즈는 그렇죠. 하지만 오늘 이 크루즈 VIP는 능 선생님이잖아요.”

“그래서요?”

“능 선생님이 어제 심심하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우리 전칠 아가씨가 오늘 해상 구조대 신청하셨어요. 이따가 능 선생님이랑 아가씨가 옆 의료선에서 돌아오시면 아마도 바로 바다로 나갈 거예요.”

맥순은 마치 디즈니랜드에 간다는 듯이 말했지만, 사실상 해상 구조대에 참여하는 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차라리 의료선 하나 빌리고, 태국 해상 인원 몇 데리고 같이 출항하는 게 더 쉬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좌자전과 연문빈 등 능 팀 인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그럴 시간 있으면 방콕에서 노는 게 낫지 않나.”

연문빈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손에 찬 서브마리너 그린을 쓰다듬었다.

“어제 종일 바빴는데, 먼 길 오느라 바쁘기도 했고. 좀 쉬어야지.”

“크루즈에서 쉬시면 돼요. 먹고 마시는 것도 다 준비됐고요. 바다에서 응급상황이 안 생기면 그냥 해상 투어잖아요. 나쁘지 않을 거예요. 안 그래요?”

맥순은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 주려고 애썼다. 연문빈은 그제야 알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낚싯대 드리우고 있다가 고기가 잡히기 전까진 신나게 놀다가, 혹시 걸리면······.”

“능 선생님이 신나게 놀겠죠.”

맥순이 연문빈의 말을 이었다.

“능연 새끼는 참 좋겠다.”

연문빈은 서브마리너 그린을 쓰다듬고 있으니 간도 커지는 모양이었다.

“이 의료선 꽤 좋네요.”

능연은 미련이 잔뜩 남은 얼굴로 옆 선박에서 돌아왔다.

50미터짜리 크루즈는 호화롭고 명품 중의 명품이지만, 페인트 칠도 대충한 의료선 아래엔 수술실이 있으니 말이다.

한 칸뿐이었고, 좀 괜찮은 병원 데브리망실 수준이었지만, 어찌 됐든 분명한 수술실이었다.

전칠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에 들면 나중에 자선 단체에 가입해서 비슷한 의료선 하나 사들여야겠어요. 여기저기 잘 쓸 수 있을 거예요. 예인선으로 써도 되고, 간단한 운반 작업도 할 수 있고, 의료 쪽 용도를 더 활용하려면 의료 설비를 더 추가하고요.”

중국에서 의료 자선 단체에 쉽게 가입할 수 없고, 의료선을 사는 것도 쉽지 않고, 사 온 의료선 인테리어 하는 건 더 어려웠다. 하지만 전칠과 능연 모두 그 어려운 부분은 깊게 고려하지 않았다.

능연은 그냥 진지하게 생각해 본 후 현명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자주 바다에 나갈 시간이 없어요. 게다가 배 위 수술실이 아무리 안정적이라고 해도 뭍하고 비교할 수 없고요. 작업 효율 떨어질 거예요.”

“그야 당연하죠. 하지만 바다에 있는 의료선은 더 재미있잖아요.”

전칠은 확신은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강태공처럼 낚싯대 드리우고 환자 기다리는 거죠. 이 세상에 없는 신의 같네요!”

그녀의 사고방식대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능연은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 동안 환자를 낚지 못하면 신의도 실력이 퇴보하겠네요.”

“아, 그렇게나요?”

“완벽한 수술을 추구하려면 고려해야 할 게 많으니까요.”

능연은 요즘 완벽한 수술을 해 나가면서 점점 생각이 많아졌다.

“능 선생은 이미 완벽해요.”

“그래도 더 발전할 공간은 있죠.”

능연은 타인의 평가를 언제나 보류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제일 확실한 예로, 학교 다닐 때, 때때로 98점, 99점을 맞아도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이 정도면 완벽해.’ 하고 위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98점, 99점을 어떻게 ‘완벽’이라는 말로 수식한단 말인가. 98점이 완벽하다면, 100점은 또 뭐고. 가장 중요한 점은, 완벽이란 유일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완벽한 것이고. 그러니까 98점과 99점은 더더욱 ‘완벽’이란 말로 같이 표현될 수 없다.

능연의 이런 판단 기준을 모르는 전칠의 눈에 능연은 진지하게 겸손 떠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진지하게 겸손 떠는 잘생긴 남자의 이미지야말로 가슴 떨릴 정도로 완벽했다.

뚜우! 옆 배에서 울리는 기적 소리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능 선생님, 이제 출항합니다.”

맥순이 눈을 질끈 감고 보고했다.

“구조 필요한 선박 있대요?”

능연은 울창한 하늘을 기분 좋게 바라봤다. 태국 날씨가 매우 더워서 광활한 바다 위에 서서 바람을 쐬니 더욱 속이 후련했다.

“아직은 없어요. 계획은 바다를 순회하다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만나면 바로 구조하는 겁니다. 그 전엔 크루즈에서 쉬고요. 낚시 좋아하세요?”

맥순은 혹시나 하는 말투로 물었다.

“바다낚시가 특색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다른 이벤트도 많이 준비했습니다.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 해상 헬기 투어도 있고요. 아니면 선박 내 이벤트도 있고······.”

“낚시 몇 번 해봤는데 잘하지 못해요. 바다낚시 잘하는 사람 있어요?”

“물론입니다. 있기만 한가요. 대단한 낚시신도 있어요. 이따 바다로 나가면 언제든 부르세요.”

맥순은 살짝 안도한 미소를 지었다. 능연이 반대하지만 않고, 재미없어하지만 않으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연문빈은 스쿠버다이빙에 흥미가 생겨서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나는 스쿠버다이빙 하러 가도 됩니까?”

“다이빙 포인트에 순조롭게 갈 수 있다면요.”

맥순은 연문빈 생각을 따를 생각이 없다는 듯 생긋 웃어 보였다.

크루즈가 서서히 움직였다. 음악 소리와 함께 나타난 남녀들이 이 거대한 크루즈가 깜짝 놀랄 정도로 삭막해 보이지 않도록 갑판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서 있었다.

직원들은 빠른 속도로 아래층 후갑판에 내려가서 낚시할 준비를 시작했다. 낚시 도구, 술과 음식, 간식, 바비큐 그릴, 영상, 음향 시스템과 마사지사 등등······.

건장한 여인 하나가 유심히 낚시 도구를 검사하고 조절한 다음 능연 일행을 불렀다. 슬쩍 바라본 연문빈은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맥순을 잡아당겼다.

“헬스 트레이너도 구해온 거예요? 나 때문에 일부러 준비한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맥순이 침착하고 솔직하게 연 선생을 바라봤다. 연문빈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

“내가 아니면 능 선생? 그럴 필요 없는데. 능 선생은 헬스 안 해요. 트레이너는 더 필요 없고.”

그는 감탄하는 얼굴로 그 건장한 여인의 어깨와 목을 바라봤다.

“승모근을 저렇게 단련한 여자는 정말 보기 드문데.”

“저분은 낚시신이에요.”

“여자분이요?”

연문빈이 놀란 표정을 짓자, 맥순은 묘하게 화가 났다.

“트레이너는 되고 낚시는 안 돼요?”

“아니, 대단한 여자 트레이너는 본 적 있으니까요.”

연문빈은 손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일단 모르겠고요, 가서 인사나 해야겠어요.”

맥순도 막진 않았다. 어차피 다 함께 즐겁자고 고용한 사람이라, 연문빈이 같이 헬스를 하겠대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연문빈이 내려가는 걸 본 좌자전은 낚시신을 유심히 보다가 웃음 지었다.

“잘 모셔왔네요.”

“그런 거 같아요?”

맥순은 좌자전이 능 팀 집사라는 걸 아는 데다가 나이도 있는 사람이라 조금 더 예의를 갖췄다.

“해상 스포츠는 원래 많이 안 걸치잖아요. 툭하면 옷도 벗고. 그런데 남자면 아무래도 분란이 일어날 수 있죠. 여자면 능연한테 더 잘할 거고. 그러니까 괜찮은 거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구한 건 아니에요. 그런 추측은 하지 마시고요. 자자, 아래 거의 준비 됐나 봐요. 우리도 내려가요.”

사람들은 맥순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바에서 얼쩡거리던 댄서가 술잔을 홀짝 비우더니 성큼성큼 다가갔다.

“미안해요. 의사죠?”

중국말에 좌자전 일행은 바로 걸음을 멈췄다.

“예. 의사입니다. 그런데 중국 의사예요.”

“의사면 됐어요. 작은 문제가 있는데, 좀 봐주실 수 있나요?”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젊은 댄서는 팔다리가 길고 얼굴이 단정한 것이 유순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쪽을 주시하던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의심스러운 듯 서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저거 누가 구해온 환자야?”

“무슨 병이야?”

“이건 도덕적 해이지. 상의도 하지 않고 환자를 들이미는 게 어디 있어요. 이렇게 공을 가로채는 게 어디 있냐고.”

“우리 사람 아닌데.”

“우리 팀도 아니야.”

“나도.”

직원들은 서로 한바탕 물어봐도 대답을 찾지 못했다.

좌자전은 그때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응급 상황이 아니면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응급이에요. 많이 급해요. 부탁드려요. 좀 봐주세요.”

젊은 댄서는 얼굴을 찌푸렸다.

“일단 증상부터 말해 봐요.”

좌자전은 매우 신중했다. 해외이고, 설사 옆에 의료선이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특히 이렇게 누군지도 모르고 갑자기 와서 도와달라는 사람은 뒤에 카메라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힐끔 맥순을 보고는 긴말 없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이틀 전에 요리하다가 실수로 생선 위에 앉았어요.”

좌자전, 맥순, 그리고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원을 향했다.

“아이고, 이건 여 선생님 스트라이크 존인데.”

직원들은 난리가 났다.

“그러니까. 능 선생님은 장 수술 안 하는데. 설명 파일도 안 읽었나?”

“아니, 배에 환자가 나타난다, 이런 설정은 한 번이면 되는데, 운이 좋은 우연 뭐 이런 걸로. 혹시 들켜도 용서받을 일이고. 그런데 ‘작은 손 여’한테 변태를 배정했다가 나중에 무슨 말을 들으려고. 게다가 생선 위에 앉은 이런 자극적인 환자까지 생기면, 능 선생님 환자는 어쩌려고. 간을 물고기한테 물린 환자, 이런 거?”

“너희들은 지금 능 선생 환자로 뭘 준비했는데?”

“태국 병원 시스템 안에서 선별하고 있어. 여긴 우리가 잘 아는 곳도 아니고, 배에서 수술할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게다가 반 응급 수술이어야 해서 쉽지 않아.”

“그러니까 없단 소리네?”

“네가 칼빵 맞으면 바로 생기겠네.”

“다들 닥쳐!”

총 지휘자가 화가 나서 고함쳤다.

“누가 허락도 없이 환자를 보낸 거야? 이러고도 팀웍이라는 게 있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나와, 누구야!”

순간 다들 조용해졌다. 한참 만에 연차 높은 직원이 입을 열었다.

“다들 몇 년 동안 같이 일한 사람들인데…… 아무도 없는 걸 보면 진짜 사고가 생긴 걸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슨 사고? 누가 실수로 생선에 앉았다가, 게다가 생선이 미끄러우니까 그래서 똥꼬로 굴러갔다고? 네가 해 봐!”

지휘자의 목소리가 무언가 던지는 효과음과 함께 들렸다. 그러자 직원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렇게 희한한 일이니까 사고가 아니냐는 거죠. 아니면 우리 중에 누가 이렇게 머리에 구멍 뚫린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하고 그것도 실천했겠어요. 누가 그렇게까지 하겠냐고요.”

지휘자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 그 말에 조금 침착해졌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논리가 좀 있네.”

“생선 위에 앉았다는 게 정말 말도 안 되긴 하지.”

“대체 뭔 생선이래.”

“여 선생 쪽은 보너스가 없어서 아쉽네. 아니었으면 원추형 물건 다 끌어다가, 올해 새 차로 바꿀 수 있었겠다.”

직원들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워했다. 총 지휘자는 보너스 분배권이 있는 사람이라서 굳이 눈 밖에 났다간 손해만 볼 테니까.

“정보팀이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보고, 구매팀은 가서 근처에 의료선 더 없는지 알아 봐. 적당한 의료 헬기 없는지도 같이. 일반 헬기도 괜찮을 거 같아. 아무래도 수술실 하나짜리 의료선은 부족한 거 같으니까.”

총 지휘자는 일단락 지으며 구구절절 명령을 내렸다.

대화 채널에 빈자리가 생기자, 현장 직원이 바로 채널로 들어왔다.

“라이브 방송 채널 하나 열게요. 다들 로그인 하세요. 그럼 무슨 상황인지 다 볼 수 있겠죠.”

그 말에 다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크루즈엔 각 층 갑판과 복도에만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마침 좌자전 일행의 얼굴이 찍히는 각도였다. 놀라고, 의문이고, 웃고 싶은데 못 웃는, 거절하고 싶은데 적당한 거절 사유가 없는, 볼 만한 표정이 나오고 있었다.

여원은 얼굴은 찍히지 않고 목소리만 똑똑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활어라는 게, 그쪽 항문에서 이틀 동안 놀고 있다고요?”

“예.”

젊은 댄서는 다 내려놓고 대답했다.

“막 집어넣었…… 아니, 막 앉았을 땐 꿈틀댔었는데, 꺼내려고 하니까 처음에 버둥대더니 나중엔 안 움직이더라고요. 그리곤 점점 깊이 들어가서…….”

직원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요즘 애들 대단하다.”

“사건 해결이네. 이틀 전이라면 우리가 준비한 게 아니네.”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걸 수도 있잖아.”

채널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여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장은 꿈틀거려요. 그쪽이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위에서 들어간 물건은 아래로 움직이고, 아래에서 들어간 건 위로 움직이죠. 이틀 지났고, 거기에 살아 있는 거라서 지금 상황이 아주 골치 아프다는 거죠. 몇 살이에요?”

“21요.”

“21에 이렇게 심한 짓을…….”

“요리하다가 실수로 앉은 거예요.”

여원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댄서는 다시 자신의 설정을 강조했다.

“하하하. 21살에 요리, 그것도 생선 요리를 직접 하는 젊은 사람이라. 아래에 물건을 쑤셔 넣는 사람보다 훨씬 드무네요.”

“……그래요?”

“얼마나 큰 물고기? 무슨 종류?”

댄서가 멈칫하며 하는 말에 여원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

“500g 좀 넘어요. 머리가 동그랗고 긴 종류예요. 뭔지는 잘 몰라요.”

“가물치?”

“아, 가물치면 심각한데.”

여원이 얼굴을 흐리며 하는 말에 좌자전 역시 놀라서 중얼거렸다.

“가물치 아닐 거예요. 들어보면 금방 죽은 거 같던데, 가물치는 생명력이 강하거든요.”

연문빈이 바로 부정했다.

“종류도 모르고 샀어요?”

여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환자를 바라봤다.

“평소에 요릴 하는 것도 아니고, 태국 시장엔 종류도 많고. 어차피 다 가격도 비슷비슷해서 자세히 안 물었죠.”

배를 움켜쥐어야 할지, 엉덩이를 움켜쥐어야 할지 알 수 없는 환자는 자포자기해서 대답했고, 채널에서 순간 ‘우아’하며 웃음이 터졌다.

여원도 웃고 싶었지만, 웃음을 참았다.

“어떻게 됐는지 대충 알았으니 뭍으로 보낼 방법 생각해 볼게요.”

“그냥 선생님이 꺼내주세요. 병원비는 낼게요.”

“병원비 문제가 아닙니다.”

댄서가 다급하게 하는 말에 여원이 손을 휘휘 저었다.

“의료 행위 자격 문제도 걱정할 거 없잖아요. 일단 준비해 두고 공해로 나가서 꺼내도 돼요.”

환자가 제대로 준비해 온 듯이 하는 말에 여원은 싱긋 웃고는 다시 고개 저었다.

“네, 그것도 문제긴 한데 그보다 그쪽 문제 때문에 안 돼요.”

“왜요? 무슨 문제요? 그냥 고쳐만 주세요. 이런 일 몇 번만 더 하면 약값은 금방 벌어요. 정말로 돈 낼 거예요.”

상대가 머뭇거리며 하는 말에 여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렇게 설명해 드릴게요. 태국에서 그래도 며칠 있었죠? 태국 평균 온도, 30도 넘죠?”

“그렇죠.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당신 장 온도랑 비슷하다고요. 자, 이런 태국 날씨에, 생선을 실외에, 냉장도 신선 처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틀 두면 어떤 상태겠어요?”

손발이 길쭉한 댄서는 작은 입을 달싹이다가 유순한 얼굴이 점점 뒤틀렸다.

“그러니까, 이런 배에서 생으로 꺼내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요. 병원으로 가세요. 어쩌면 개복해야 깨끗하게 꺼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여원은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병원이었다면 정말로 한 번 꺼내 보고 싶긴 하네요.”

양발을 꼬고 서 있는 댄서는 얼굴과 몸으로 갈등했다.

하갑판.

능연과 전칠은 위에 무슨 희한한 일이 벌어진 지 모른 채, 낚시신을 따라 진지하게 각종 낚시 도구를 익히고 배우고 있었다.

물론, 희한한 일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능연이든, 전칠이든, 두 사람 주변엔 항상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데, 일일이 신경 쓰고, 일일이 마음 쓰다간 인생 전체가 그런 희한한 일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능연은 진작부터 많이 보고 덜 묻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그는 연문빈처럼 낚시신을 왜 근육을 키운 건장한 여자로 고른 건지 묻지 않았고, 바비큐 요리사를 호랑이 등, 곰 허리인 옹골진 여성으로 바꾼 건지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양쪽에 서 있는 구조 요원이 왜 어깨가 건장하고 허리가 둥근 탄탄한 부인인지는 더 궁금해하지 않았다.

낚시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능연은 항상 눈앞에 벌어진 일에 집중했다. 전칠은 무슨 물고기가 잡히든 상관없이 마냥 신나 있었다. 어차피 낚싯대를 넣기만 하면 물고기가 잡히니까.

전칠은 차라리 능연과 무슨 이야기를 할까, 혹은 낚시를 핑계로 능연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는 동안, 구조를 바라는 고함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전칠은 능연에게 기댄 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즐기고 있었다.

직원들도 하나같이 어린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신남 지수 다시 폭발. 나도 롤렉스 사도 되겠데.”

“이 일 참 오래 했는데, 보너스 받기가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우사인 볼트가 된 기분이군. 오늘은 어제의 기록을 깨기 위해서 존재했군.”

현장 지휘자 역시 늙은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이 일 오래 해오면서 딱히 출세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눈앞의 데이터 기록을 보면 자신의 안목이 참 좁았음이 증명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오늘 기록으로 승진, 월급 인상은 확실했고, 잘하면 세 등급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칠 아가씨 기분 좋게 하는 게 이렇게 쉬운 줄 정말 몰랐네.”

채널 안의 젊은이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건 능 선생님을 만나서 그렇지. 게다가 능 선생님이 만나기 쉬운 사람도 아니고. 사실 능 선생님은 특급 크루즈로도 그렇게 신나 하지 않잖아. 쉽지 않아.”

“능연 반의반만 닮았어도.”

“반의반까지도 필요 없어, 10%만 닮아도 내가 집 사서 너 먹여 살린다.”

연차 높은 여직원이 호언장담하는 말에 한창 신이 났던 젊은 사람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현장 지휘자는 격앙된 모습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안 잘생들은 일이나 열심히 하자. 정 할 일 없으면 물 밑에 내려가 물고기라도 잡던가.”

물론 농담일 뿐이었다. 근육이 불끈한 낚시신이 있는 한, 직원들이 잡아 온 물고기는 스테이크 한 조각보다 가치가 없을 테니. 게다가 직원들이 잡는 물고기가 필요하지도 않고.

크루즈는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위치에 도착했고, 낚시신은 그곳의 어류의 크기와 종류를 확인한 후 어떤 방법으로 낚시할지 결정했고, 능연마저도 매우 즐겁게 낚시를 즐겼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시간은 휴식 시간으로 즐기면서.

전칠은 나중엔 아예 물고기가 잡혀도 낚싯대조차 들지 않고 능연과 대화에 집중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올 때쯤엔, 능연도 낚시를 멈추고 바람을 쐬며 대화에 집중하자 전칠은 더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직원들이 환호하는 소리로 배가 뒤집힐 지경이었다.

“아, 오늘 4 제부 가지고 왔어요. 아마 이따 구울 거예요.”

“4 제부 이미 우리가…… 아, 새로운 4 제부?”

바비큐 냄새를 맡은 전칠이 갑자기 하는 말에 능연은 전칠 삼촌네 N 제부는 대대로 내려온다는 것을 떠올렸다.

“응, 맞아요. 당신이 큰 고기 좋아하는 거 알아요. 4 제부 맛이 제일 괜찮을 거예요. 더 큰 놈은 오히려 맛이 없어.”

“그건 그래요.”

능연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부는 원래 소 중에 마른 편이라서 조건 좋은 놈으로 신경 써서 골라야 했다. 즉, 제부 중의 뚱보를 골라야 맛있다.

그러나 모든 육류가 그렇듯이, 크게 많이 먹을 땐 너무 기름지면 맛이 없다. 4 제부는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큰 제부보다 바다에서 굽기에 더 적당하다.

능연은 갑자기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켰다. 스태미너 포션의 약효가 발휘되어,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몽땅 날아갔다.

전칠은 눈까지 휘어라 웃으면서, 자기가 직접 고기를 굽는다고 나서서 바쁘게 움직이며 물었다.

“어떤 부위?”

“꽃등심!”

“꽃등심 큼직하게 잘라줘요. 그리고 등심도.”

능연은 전혀 체면 차리지 않고 가장 좋은 부위를 말했고, 능연의 이런 방식을 매우 좋아하는 전칠도 냉큼 명령을 내렸다.

“오늘 잡은 돌우럭도 같이 구우실래요?”

맥순이 재빨리 묻는 말에 전칠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응, 큰 걸로 두 마리 구워.”

생선 잘못 구웠다가 이미지가 망가질 거란 생각에 굽는 작업은 아랫사람에게 넘겼고, 맥순은 하마터면 자기네 아가씨 이미지를 망가트릴 뻔한 것도 모른 채 자기가 어시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룰루랄라 명령을 전하러 사라졌다. 직원들 채널에 가득한 원망을 남긴 채.

다행히 다들 ‘눈치 없는’ 팀원이 있는 사실에도 익숙해서, 크루즈 분위기는 대체로 화목한 편이었다.

밤.

석양을 감상한 후, 크루즈는 부두로 돌아왔다.

능연도 쉴 생각 없이 바로 팀원을 데리고 방콕 병원으로 달려갔다. 창고 가득 스태미너 포션이 차 있고, 5백 병 넘게 마시는 동안 포션의 안전성도 증명되었으니, 이럴 땐 아낄 필요도 없었다.

좌자전 일행은 죽을 거 같았지만, 의사 생활이란 원래 이런 것인 데다가 진품 서브마리너 그린도 손목에 차고 있으니 일하는 만큼 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능연의 리듬을 맞출 수 있었다.

환자의 태국 주치의 차룬왕은 다시 만나니 더욱 겸손한 태도로 환자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고는 환자의 치료 방안을 유지할지 말지, 예의 바르게 물었다.

사실 출장 수술이 끝나면 환자는 더는 출장 수술 의사의 소관이 아니어서, 다른 의사였다면 차룬왕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능연의 수술이 너무나 막강하고, 그 수술 영상을 여러 잘 아는 의사들에게 보여줬을 때 누구나 감탄하는 모습에 차룬왕은 더욱 특별하게 능연을 대했다.

능연은 간섭할 생각이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ICU 선생님 지시대로 하면 됩니다. 음, 별문제 없으니 전 이만 귀국 준비하겠습니다.”

“아, 그건 말이죠……. 혹시 수술 몇 건 더 하시겠습니까?”

사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데, 일반적인 실력을 대대적으로 초과한 외과 의사라서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장면에 너무 익숙한 좌자전은 능연에게 확인부터 한 후 통역사에게 통역할 내용을 전달했다.

“단순한 외과 수술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현지 법률을 따라야 하고요, 우리도 아는 사람을 통해 자문을 구한 다음 정하겠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차룬왕은 OK라고 손짓하며 비용 문제도 지난번과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좌자전이 묻기 전에, 사람들 손목에 찬 롤렉스를 힐끔 보며 말을 이었다.

“추가 선물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건 환자 보호자가 따로 준 거라서요.”

그 말에 좌자전은 정의롭고 담담한 미소를 바로 지어 보였다.

“몇 건입니까?”

안 그래도 손이 근질근질하던 능연이 물었다. 낮에 내내 놀았고, 밤이 되었는데 포션의 약효가 아직 남아 있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 물론 불면 상태와 다르니 게임하고 논문 읽는 사이에 수술 두어 건까지 할 수 있으면 최고였다.

“구체적인 건수는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환자들이 수술은 아무래도 두려워하니까요. 게다가 아직 해외에 있는 환자도 있어서, 방콕에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좀 걸립니다.”

“확정된 환자가 있으면 바로 오라고 하세요.”

능연은 어깨를 주물럭대며 준비를 바로 마쳤고, 차룬왕은 헛웃음 지었다.

“능 선생은 수술이 너무 좋아서 약간 미친, 그런 유형인가 보네요.”

“그냥 수술을 좋아하는 겁니다.”

통역의 말을 전해 들은 좌자전이 냉큼 대답했다.

“능 선생은 처세술이 좀 둔하고 기술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의사예요.”

미쳤다는 말이 꼭 긍정적인 건 아니라서, 좌자전은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차룬왕은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사실 능 선생 같은 의사를 자주 만나죠. 능 선생이 이런 성격이라 오히려 안심했고요. 우리 방콕 병원엔 세계 각지에서 온 의사가 수술하고 협진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의사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두 명 만났잖습니까.”

“음, 그 둘은 능 선생보다 순위가 낮잖습니까.”

능연이 묻는 말에 차룬왕은 의미심장하게 좌자전 손의 시계를 힐끔 봤다. 그 당시 보호자의 능연을 향한 기대치를 바로 서브마리너 그린으로 알 수 있었다. 다른 두 의사의 순위가 능연보다 그렇게 낮지 않았다면, 보호자도 그렇게까지 다급하진 않았을 것이다.

좌자전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뿌듯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면서도 또 부럽기도 우울하기도…….

“첫 번째 환자는 언제 옵니까? 수술 준비는 되어 있고요?”

능연은 의사들의 기 싸움 같은 건 모르겠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만 물었다.

“아마 내일 아침쯤?”

“내일 아침이라면 3시요?”

“아침, 3시?”

능연이 다시 구체적인 시간을 확인하는 말에 차룬왕은 단어 조합을 다시 해본 후 알겠다는 듯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태국시간으로 이야기하죠. 여긴 태국이니까요. 아침 10시 30분 어떻습니까? 진료 시간도 충분하고 여러분도 푹 쉴 수 있고요. 여러분도 종일 피곤하셨을 텐데.”

“태국시간으로 해도 돼요. 그러니까 태국시간 아침 3시에 해도 된다고요.”

차룬왕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아침 3시, 는 쉬는 시간입니다. 적어도 태국에선 그래요…….”

“아침 3시도 늦은 편인데요. 검사하고 수술 준비하고, 그럼 수술 시간은 아침 6, 7시가 될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좀 서두르면 아침 10시 반까지는 적어도 두 건은 하겠네요. 거기서 이어지면…….”

“능 선생, 능 선생!”

좌자전이 재빨리 능연의 말을 자르고 통역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능 선생, 방콕 병원은 우리랑 리듬이 달라.”

“음…….”

능연은 하늘을 힐끔 보고는, 열네다섯 시간 후에나 수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를 저었다.

“잘못된 리듬이에요.”

“응, 응, 그래요, 네 말씀이 옳아요.”

좌자전은 통역하지 못하게 막으며 계속 설득했다.

“방콕 병원의 리듬이 문제지, 암. 하지만 이게 바로 고쳐지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우리가 방콕에 온 게 여기 병원 관리 방식을 뜯어고치러 온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냥 이쪽 시간대로 수술하자.”

“그럴 수밖에 없죠.”

능연도 할 수 없다는 듯 승낙하면서 속으로 방콕은 설비가 최첨단이고, 국제 투어 의료 체계도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국내는 아무리 작은 병원이라도, 예를 들면 무신 시 1병원 같은 곳도 필요하면 아침 3시에라도 수술을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연달아 수술하고.

수술 보장 능력만 따지면 방콕 병원은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좌자전은 몰래 식은땀을 훔치며 차룬왕을 바라봤다.

“내일 아침 10시 30분. 더 미루면 안 됩니다. 확실히 해주세요.”

“네.”

차룬왕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돌아가기 전에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방콕에서 글로벌 의료를 긴 시간 해왔는데, 환자보다 수술을 급하게 바라는 의사는 정말 얼마 못 봤습니다.”

“능 선생 같은 실력을 갖춘 의사도 많지 않을걸요.”

좌자전은 그 점은 매우 자신 있었다. 능연은 성격이 조금 남다르지만, 실력과 얼굴은 어디 가서 뒤진 적이 없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게다가 원래 실력이 뛰어난 의사일수록 괴벽이 많죠.”

차룬왕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좌자전을 힐끔 보다가 그의 손을 붙잡고 진심에서 우러나서 말했다.

“좌 선생, 수고 많습니다.”

좌자전은 글로벌 투어 메디컬을 자랑하는 방콕 의사인 차룬왕도 별별 꼴을 다 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연처럼 남다른 의사도 많이 봤을 것이고. 말투만 들어보면 정말 많이 만난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룬왕도 참 힘들 것 같았다.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차룬왕의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도 고생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좌 선생이 고생이 많습니다.”

“아니죠, 아니죠. 선생님이 더 고생이십니다.”

여원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봤다.

안쓰러운 차룬왕을 배웅하고, 모두 일제히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이 생각에 잠긴 것 같은 모습에 연문빈은 깜짝 놀랐다. 아침에 직원한테 족발 삶으라고 재촉할 때랑 비슷한 표정인데!

능연이 생각을 마치기 전에 연문빈이 흠흠대며 말을 꺼냈다.

“능 선생, 다들 하루 꼬박 잠을 못 잤잖아. 호텔에 가게 차 불러 달라고 할까?”

“어제 안 잤어요?”

능연이 놀란 표정을 보이자, 연문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다들 병원에 있었는데 당연히 자연스럽게 일을 했지! 사실 솔직히 말하면, 환자는 하나, 의사는 여러 명이라 연문빈을 포함한 모두 쿨쿨 잘만 잤다.

그래서 못 잤다는 말은 정말로 나오지 않았다. 환자는 바로 ICU로 들어가서 전문 의료진이 돌봤고, 연문빈들은 그냥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가 나중에 보호자에게 물으면 바로 들통날 말이었다.

“자긴 잤지. 그런데 내일 수술하려면 푹 쉬어야지.”

연문빈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자기네 직원이 자주 하는 핑계를 꺼내 둘러댔다.

“그럼 연 선생님은 가서 쉬세요.”

능연은 연문빈이 신나 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좌 선생님이랑 여 선생님은 내일 아침 수술에 빠지고 같이 논문 준비해요.”

연문빈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기분, 뒤통수에 화살이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른 아침.

9시를 막 넘은 시각, 연문빈은 터덜터덜 방콕 병원 국제부로 도착해 조금 조마조마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좌자전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신발도 벗고 짝이 다른 양말을 벗은 것도 신은 것도 아니게 발목에 걸치고 널브러져 있었다.

연문빈은 뜨끔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어젯밤엔 10시 마감 전에 수영도 마쳤고, 쇠질도 했고, 달걀도 18개나 먹은 데다가 잠도 푹 잔 상태로 44세 좌자전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뿌듯했다. 물론 그래서 더 뜨끔하고.

“좌 사장님, 어제 많이 힘들었습니까?”

연문빈은 옆 일인용 소파에 털썩 궁둥이를 붙이다가 뭐가 배겨서 손을 넣어 보니 레드불 캔이 구르고 있었다.

“레드불로 버텼다.”

좌자전이 흠냐흠냐 중얼거렸다.

“태국 레드불은 유명하더니, 이걸 바로 쓸 일이 생겼네요. 좌 선생님이 특산물은 제일 많이 챙길 줄은 몰랐네요.”

좌자전의 상태가 그래도 괜찮은 편인 걸 본 연문빈은 다시 농담했고, 좌자전은 묘하게 웃으며 연문빈을 힐끔 봤다.

“응, 마실만 하더라고. 밤새우면서 마시니까 좋던데?”

“밤 너무 많이 새우지 마세요.”

“아이고, 이제야 늙은 동료 몸 걱정해주시는 건가. 의학계에서 이 나이는 아직 중년입니다만!”

“중년 과로사가 제일 많잖아요.”

좌자전은 몸을 일으키고 미간을 문지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문빈아, 나 못 자게 할 생각이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농담입니다. 농담.”

다른 의사보다, 재산이 많은 연문빈은 좌자전 앞에서 좀 세게 나가는 편이었다. 게다가 개국공신인 셈이라 좌자전보다 일찍 능연 밑에 있었다. 그래서 가끔 이런 농담 정도는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좌자전도 화 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또 뭘 얻어먹으러 온 거냐. 수술도 네가 하면서.”

“어제 무슨 논문 하셨어요?”

어제 마시다 남은 식은 차를 마시며 좌자전이 묻는 말에, 연문빈은 히죽 웃으며 요구르트를 내밀었다.

“밤새운 다음에 요구르트 좀 마시면 장에 좋대요.”

연문빈은 호텔 모닝 뷔페에 나오는 요구르트로 생색냈다.

“이런 거까지 배워서 어쩔 생각하지 마라. 네 요구르트랑 능 선생 요구르트는 맛부터 다르니까. 알겠냐?”

좌자전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바로 손을 내밀어 요구르트를 받아 빨대를 꽂아서 꿀꺽꿀꺽 마셨다.

“능 선생 건 능 선생 거고, 제 건 제 거죠. 제건 열정이 있으니까요.”

연문빈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는 말에 좌자전이 눈을 부릅떴다.

“입 열지 말고 그 말 다시 한번 반복해 보렴.”

“어제 열 시간 넘게 했는데, 성과는 있었어요?”

연문빈이 실실 웃으면서 좌자전의 화를 받아주고는 웃으며 물었다.

“일고여덟 시간 정도였던가? 능 선생이 네다섯 시쯤에 졸리다고 자러 갔거든. 우리도 정리 좀 하고 끝냈지.”

“끝냈다고요?”

“응. 넌 탐내지 마. 이번 논문은 능 선생이 직접 쓴대. 데이터도 능 선생이 직접 한 수술에서 추출할 거고, 데이터 통계는 여 선생이 이미 정리 다 해놓았고. 그래서 총괄자, 제1 저자는 다 능 선생, 여원은 공동 제1 저자, 내가 제2. 네 자린 없어.”

좌자전은 연문빈이 자신이 온 목적을 입으로 말하길 기다린 후에야 잔인하게 그 꿈을 짓밟았다. 이번 논문은 중화계열에 발표할 것이라 제2 저자 뒤로도 이삼십 명 나열할 순 있지만, 연문빈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논문 발표할 때는 공동 저자를 이렇게 줄 세우지 못하지만, 능연은 이제 이름값이 있는 편이라 제한을 덜 받았다.

연문빈은 유감스러운 듯 대답했다.

“나도 매일매일 밤새우는데 논문은 없네요.”

“수술 잘하면 되지.”

좌자전은 순간 뿌듯해져서 일부러 연문빈을 자극했다.

“나 어제 네 시 좀 넘어서 자서 사실 잘 잔 편이야. 뭐, 영화 보다가 좀 늦게 잔 셈 치면 돼.”

“하하. 좌 선생님, 토 나와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영화 아니거든.”

“하하하.”

연문빈은 우울하게 수술실로 들어가서 박 원장이 보낸 통역을 통해서 태국 의사와 간호사와 소통하면서 수술실 안의 각종 기기와 설비를 검사했다.

출장 수술을 오래 하면 각종 희한한 일이 다 생겨서, 능연 이하 모든 팀원은 수술실 모든 사항을 체크하고 또 했다.

연문빈은 모든 준비가 제대로 끝난 걸 확인하고 지킬 사람을 배정하고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다음 수술 구역 밖으로 나가서 이번엔 협진실로 가서 새로운 사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10시 30분, 능연은 정확하게 협진실에 도착했고, 잠시 후에 차룬왕과 한 무리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들어왔다.

“능 선생, 소개할게요. 이분은 미얀마에서 유명한 사업가 먀오앙등 선생입니다. 능 선생 이력을 듣고 일부러 방콕까지 오신 겁니다.”

차룬왕이 싱글벙글 웃으며 환자와 보호자를 소개했고, 박 원장은 통역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덧붙였다.

“사전에 알아봤더니, 이 미얀마 사업가는 우리 방콕 병원 회원이시더라고요. 해마다 후원도 하고, 정기적으로 우리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요.”

“미얀마에서 방콕까지요?”

연문빈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말에 박 원장이 웃어 보이고는 근처에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작은 나라라 어쩔 수 없죠. 방콕 병원 분원이 15개고, 하급 병원도 45개나 되는 것이 다 글로벌 메디컬 덕분입니다.”

능연은 벌써 환자 필름을 받아서 보기 시작했다.

“담낭 절제 때문에 온 겁니까?”

능연이 의아한 듯 묻는 말에 차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낭염으로 6년이나 고생했습니다. 올해부터 통증이 더 심해져서 요즘 적당한 서전을 찾던 중이라서…….”

“전 간 절제 수술환자인 줄 알았는데요.”

능연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 모습에, 차룬왕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급하게 박 원장을 바라봤다.

“능 선생 실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능 선생에게 설명 좀 해주세요. 좋은 의사가 이 수술을 하길 바랐다고. 환자 입장에서는 담낭 절제라고 해도 전신 마취해야 하는 중대 수술이니까요.”

박 원장은 바로 이런 의료 중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우선 차룬왕부터 진정시키고는 웃으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작은 수술은 작은 수술 나름 좋은 점이 있지 않습니까. 부자들이 목숨을 더 아끼는 법이라, 좋은 의사한테 수술받고 싶어 하니까요.”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기술 측면에서 고려해서…….”

“능 선생.”

미묘한 말투를 감지한 박 원장은 바로 능연의 말을 잘랐다.

“우리 지금 수술 전 면담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일단 환자한테 믿음부터 주는 게 어떨까요? 안 그래요?”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방향을 바꿔서 대답했다.

“전 간 절제를 더 잘합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환자는 담낭 결석이라서요.”

“아깝네요.”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시스템 평가에 따르면, 그의 간 절제 기술은 세계 5위인데 담낭 절제는 아직 전문가급이었다. 천릿길을 달려와 수술받는 건데, 간 수술이 타산이 맞을 텐데 말이다.

“이건 통역하지 마세요.”

박 원장이 진지하게 당부했다.

미얀마인 먀오앙등은 병실에서 편안하게 샤워하면서 여독과 진료받느라 쌓인 피로를 풀었다. 그후 병상에 누워 수술 전 수액을 맞고 병원에서 고용한 마사지사의 안마를 받으면서 30분 동안 편안하게 쉰 다음에야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수술실 내부 준비도 막 끝났다.

“먀오앙등 씨, 안녕하세요.”

수술실의 태국 간호사는 매우 친절하게 먀오앙등의 정보를 대조하며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마흔 남짓한 먀오앙등은 태국어로 간호사와 농담할 여유도 있었다.

미얀마 환경이 여러모로 부족해서, 일 년의 반을 태국에서 생활하는 그는 이쪽 병원과 간호사 등이 꽤 익숙했다. 물론 수술은 낯설지만, 오히려 더 흥분 상태였다.

마취의도 매우 친절한 얼굴로 체중 등 갖가지 정보를 확인하고는 마스크를 건넸다.

“자 이제 곧 수술 시작할 겁니다.”

“예. 참, 결석 남겨 주세요. 그걸로…….”

먀오앙등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이 부분이 우리 방식이랑 가장 비슷하네요.”

연문빈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예의 때문인지 아니면 포인트가 맞았는지, 통역을 통해 전해 들은 태국 의료진도 작게 웃었다.

옆에서 ‘시중’ 들던 박 원장도 입을 열었다.

“수술이란 게 핵심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환자는 수술 과정을 모르니까, 우린 다른 부분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차 살 때 내부만 보는 것처럼요?”

“좀 비슷하네요.”

연문빈이 웃으며 하는 말에 박 원장도 웃으면서 비위를 맞췄다.

“연 선생님은 수입 엔진인 셈이죠.”

“엔진은 능 선생이죠. 저는 기껏해야 변속 기어고요.”

연문빈이 짐짓 겸손한 척하는 말에 박 원장은 하하 웃으면서 ‘너 따위가 3대 부품 안에 들겠다고?’ 하고 태클 걸고 싶은 마음을 굳이 감췄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능연이 시간 맞춰 수술실로 들어왔고, 수술실 안은 순간 숙연해졌다.

능 팀 멤버는 둘째치고, 출장 수술에 익숙한 태국 의료진도 하나같이 현명해서, 의사들의 가치 순위, 실력 등등을 잘 모른다고 해도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는 불문율 같은 규칙이 있었다.

실력이 좋은 서전이 당연히 더 존중받는 건 세계 어느 병원에서나 통하는 이치였다. 사실상, 방콕 병원처럼 서비스 좋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국제 투어 의료 목적지인 병원은 정말로 최고인 의사, 특히 외과 의사를 모시기가 쉽지 않았다.

서비스가 좋다는 것 자체가 환자의 권력이 크다는 의미지만, 세계 정상급 서전의 권력도 무시 못 하게 크니까 말이다.

오늘 수술받는 이 먀오앙등 선생만 해도, 의사들이 선택권이 있다면 이런 평범한 담낭 절제 수술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물론, 돈이 그만큼 많으면 아무리 최고 의사라고 해도 허리를 굽힐 수도 있다. 대단한 명성과 유명세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래서 메이요는 언제나 높은 가격, 최고의 서전을 유혹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전을 대하는 의학계 혹은 의료계 혹은 병원 그룹의 태도는 태생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능연이 한 수술은 안 그래도 주목받을 수술인데 하룻밤 발효된 후로, 태국 의료진은 다시 능연을 만났을 때 ‘공손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를 대했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태국 간호사도 능연이 손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이 수술복을 깔끔하게 갈아입혔다. 간호사 둘이 능연 옆에서 비비적대는 모습에 연문빈은 눈이 다 시뻘게질 지경이었다.

같은 의사에 똑같은 나라에서 왔는데, 연문빈은 조금 전에 제 손으로 수술복을 뜯어서 제 손으로 입었다. 그런데 능연은? 잘 묶인 허리끈까지 간호사가 굳이 풀어서 다시 묶어 주었다.

“준비 다 됐어, 능 선생.”

“기기, 설비 다 손에 익었어요?”

연문빈이 큰 소리로 상기시키는 말에 능연은 눈으로 주변을 훑으며 물었다.

복강경 하 담낭 절제술은 세계 순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전문가급 수준으로 수술을 끝내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모두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실수가 나올 유일한 가능성이 바로 이런 ‘외부 문제’였다.

연문빈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거랑 비슷해. 조절할 수 있는 건 다 바꿨고. 그리고 여기 방콕 병원 총랏비몬 선생이 같이 수술하실 거야.”

“능 선생, 안녕하세요.”

까맣고 마른 총랏비몬 선생 역시 공손하게 영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능연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주변을 눈으로 검사하고는 어깨를 풀면서 시작하자고 했다. 이미 소독을 마친 환자는 바로 천공하고 기복 상태가 되어 배가 볼록해졌다. 그리고 곧 막대 세 개가 꽂혔다.

수술을 시작한 능연은 바로 집중했고, 연문빈은 복강경을 들고 조금 따분한 듯이 몸을 뒤틀어댔다.

지금 그는 방콕 병원이 제공한, 세월의 흔적이 조금 느껴지는 면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환자가 보지 않는 곳에는 소위 첨단 의료도 돈을 아끼는 모양이었다.

사실 방콕 병원 가격이 저렴한 것도 다 여러 방면으로 경비를 아끼기 때문이었다.

차룬왕을 통해 진행되는 수술은 방콕 병원에서 VVVIP급 수술이지만, 한 단계 낮은 일반 항목에서 태국 의료 시스템은 그렇게까지 완벽하지 않았다.

군안 진료소보다 더 저렴한 브로커로 바꾸고, 미얀마인 먀오앙등보다 더 낮은 진료 비용을 내야 하는 의료 서비스는 당연히 급이 달라진다.

“절개 완료.”

능연은 여전히 매우 수월하게 담낭 절개를 마쳤다. 비록 전문가급 담낭 절제술이라고 해도, 더 높은 등급의 여러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작은 수술은 대단히 쿨& 시크할 게 없어서 그렇지, 순조롭기 짝이 없었다.

“연 선생님, 나머지는 맡길게요.”

능연은 십몇 분만에 집도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수술실에 있는 모두 그러려니 했다. 환자는 소 잡을 칼로 닭 잡길 바라지만, 소 잡을 칼을 쥐는 사람은 닭의 목만 베고 나면 배를 가르고 알을 꺼내는 것 같은 일은 마찬가지로 닭 잡는 칼을 쥔 사람에게 맡긴다.

박 원장은 연문빈이 낑낑대며 집도의 자리로 가는 걸 보고는 능연에게 다가가 수술복 벗는 걸 도왔다.

“능 선생, 수술 몇 건 더 있는데, 며칠 더 있다가 BMW라도 벌어서 가지 않을래요?”

“무슨 수술, 몇 건이요?”

능연은 바로 핵심을 물었다.

“능 선생 마음대로요. 방콕 병원에서 능 선생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해요.”

박 원장이 영광스러운 듯 대답했다. 의료 브로커로서 지금 그는 매우 기분이 째지는 상태였다. 다른 중개처럼 네고 당하지 않을지 걱정할 일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대신 가격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서, 이런 기분은 정말 남달랐다.

능연은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앞으로 48시간 동안 수술 12건 이상 배정해줄 수 있으면 이틀 더 있겠습니다.”

기분이 째지던 박 원장은 순간 김이 새버렸다. 이런 능연 모드, 외국인은 감당 못 하지…….

“이틀 연속 수술이요? 능 선생이 가능하다는 건 믿지만, 굳이요?”

박 원장 맞은편에 앉은 차룬왕이 공손하고 궁금한 말투로 물었다.

밤을 새우고 수술하는 경험이야 의사라면 모두 있다. 미국 의사도 주치의(미국 의사 가장 높은 직함)가 된 후에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어도, 레지던트 시절엔 48시간, 심지어 72시간까지 못 자는 것도 정상 범위에 속한다.

아무리 느긋함으로 유명한 태국 의사, 차룬왕 같은 의사도 십 년 전엔 연속 이삼일 일한 경험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출장 수술 온 의사는 당연히 기준이 다르건만, 먼저 48시간 수술을 제시하다니, 차룬왕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동안 능연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어서 그렇지, 이상한 눈빛까지 보일 뻔했다.

사실 박 원장도 이런 식으로 일하긴 처음이라 눈을 질끈 감았다.

“능 선생은 시간 관리 방면에 자기 습관과 방법이 있습니다. 긴 시간 수술할 때 더 즐거워 한 대요.”

통역 된 말을 들은 차룬왕은 멍해졌다.

“이런 거로 흥분하는 사람은 드무네요.”

박 원장은 얼굴색이 변해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딱히 설명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하시겠어요?”

“그럽시다. 능 선생이 그래 준다면 우리야 좋죠.”

차룬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말했다.

“잘됐네요. 사실 익숙해지면 능 선생 같은 의사가 가장 완벽한 서전 아닙니까.”

박 원장이 웃으며 하는 말에 차룬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한테야 그렇죠. 능 선생은 확실히 내가 봐 온 것 중에 가장 순수한 서전입니다.”

그 말에 박 원장이 껄껄 웃으며 덧붙였다.

“괴벽이 있긴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또 괴벽 있는 의사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다른 서전과 비교하면……. 음, 능 선생이 수술 환경이나 수술할 환자만 따지는 거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죠.”

방콕 병원 본원 상급 의사들은 환자가 부족한 상황이 없었다. 태국 전역에 40개 넘는 병원과 15개 분원에서 환자는 끊임없이 보내줄 수 있었다. 특히 유명한 의사라면 환자 찾기가 더 쉬워지고.

현대 의료 체계에서 흔한 일이었다. 좋은 병원과 좋은 의사는 절대로 환자가 부족할 일이 없다. 때문에 첨단 의료 체계의 구성원들은 턱을 치켜들고 지낸다. 차룬왕이 잘 아는 상급 외과 의사에 관한 괴벽과 그들의 조건을 나열하면 책 한 권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단순히 의료 자체 문제로 조건을 거는 능연 같은 의사가 더 편했다. 장시간 다발성 수술하는 서전은 거의 희귀 동물이고, 병원도 오히려 이로 인해 큰돈을 벌 수 있다. 어찌 됐든 같은 시간 동안 수술을 더 많이 하면 병원엔 이득이니, 차룬왕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박 원장도 절로 마음이 놓여서 말 나온 김에 의사들의 괴벽을 비아냥거리고는 이때다 싶어 말을 이었다.

“아, 우리 진료소에도 존스 홉킨스 졸업해서 소화기 외과 전공인 의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라이센스 땄나요?”

다른 사람 이야기가 나오자, 차룬왕도 그렇게까지 겸손하게 굴진 않았다. 능연 급 의사는 굳이 박 원장의 추천이 없어도 되지만, 박 원장이 따로 추천해야 할 정도의 의사라면 당연히 심사해 봐야 했다.

박 원장 역시 다시 기분과 표정을 가다듬고는 저자세로 웃어 보였다.

“홍콩에서 진료 중입니다.”

“존스 홉킨스 졸업해서 홍콩에서 일한다고요? 구체적인 이력은요?”

차룬왕은 몇 마디 이야기해 보고는 상대가 ‘명의’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세계급 명의가 아닐뿐더러, 심지어 현지에서도 이름을 못 알리고 기껏해야 우수한 정도? 그래서 박 원장이 기회를 주려고 애쓰는 것 같은…….

차룬왕은 평소에 굳이 그런 홍콩 의사를 모셔올 생각도 하지 않지만, 오늘은 능연의 체면을 생각해서 박 원장이 이력서를 낼 기회 정도는 주기로 했다.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박 원장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메일을 보냈다. 원래 1+1은 단김에 쇠뿔 뽑듯이 해야 하니까.

능연은 국내에 있을 때와 달리 다른 의사들에게 넘기지 않고 수술 예정 환자 협진에 연달아 참석했다. 방콕 병원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고, 필름이나 검사 결과를 직접 보고 증상을 판단하고 싶었다.

연문빈과 여원은 덕분에 잠시 휴식 시간을 얻었고, 좌자전은 군안 진료소에서 보내준 아르바이트생과 가장 기본적인 조수 업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환자 서너 명 당 작은 선물이 있어서 피곤에 찌든 좌자전도 정신이 났다.

차룬왕은 능연의 일하는 방법과 과정이 남달라도 다들 좋아하는 걸 보고 별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지금 그는 수술을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 출장 수술 의사 접대하는 일을 했다. 아무래도 경험 많은 의사라, 차룬왕도 여기저기에서 환영받았다. 그러나 당연히 능연이 환영받는 것과 다른 방식이었다.

“능 선생 진단도 괜찮죠?”

박 원장이 기회 잡은 김에 거들먹거리는 말에 차룬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필름 판독도 매우 훌륭합니다. 특히 MRI, 독일에서 모셔온 전문가만큼 정확해요.”

말하는 사람이 무심하게 한 말을, 박 원장은 가슴에 새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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