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문빈은 아침 9시에 겨우 센터로 달려왔다. 왕복 비행기 일정에 수십 시간 수술로 에너지가 기본적으로 다 소모됐을 상태라서, 능연도 그의 상태가 걱정이라 강제로 연문빈, 좌자전 등에게 휴식 명령을 내렸었다.
운화 시에 있었다면, 연문빈은 기어서라도, 족발을 졸일 시간을 줄여서라도, 정, 정, 정 안 되면 헬스 할 시간을 줄여서도 수술실에 나타났을 것이다. 지금 능 수술 어시 자리 경쟁은 매우 치열하니까.
박 원장만 ‘큰 제자’ 연문빈의 가치를 아는 게 아니라, 운화에도 눈치 빠른 사람은 얼마든 있었다. 그러나 출장 수술에 와서까지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는 없었다.
능연의 수술 건수는 마찬가지로 많지만, 아니 오히려 더 많지만, 경쟁할 동급생도 없고, 출장 수술 현지 병원에도 의사가 있어서 설사 에너지가 넘쳐도 조금은 기회를 양보해 줘야 했다.
“연 선생, 왔어요?”
100.55 레지던트는 밤새 잠도 못 자고 많은 생각을 한 바람에 마중 나와서도 정신이 조금 몽롱했다.
“예, 왔어요. 선생님이 나오셨네요.”
족발 장사를 오래 해온 연문빈은 ‘장사꾼 미소’에 진작 익숙해져 있었고, 그 미소에 100.55는 마음이 따듯해졌다. 밤새 홀로 수많은 ‘왜’를 고민해온 뒤에 보는 미소란, 누구의 미소라도 따듯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와야죠. 수술실로 바로 갈까요? 아니면 좀 쉬다 갈까요? 능 선생은 막 수술 시작해서, 한참 더 거릴 거예요. 중간에 들어가도 의미 없잖아요.”
레지던트는 근육남 연문빈이 조금 마음에 들어서 아무렇지 않게 작은 비밀을 누설해주었다.
“막 시작했어요? 얼마나 됐는데요?”
연문빈은 역시나 바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굳이 수술실에 들어가서 퍼스트 어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힘든 건 둘째치고, 지금 퍼스트가 언짢아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여기 센터 의사는 능연을 만날 기회도 드물고, 수술실에 같이 들어갈 기회는 더 드물어서, 지금 그 기회를 몹시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한 15분?”
“여기 헬스장 있나요? 한 시간 정도 시간 있을 거 같아서 몸 좀 풀고 싶어서요.”
“당연하죠. 요즘 병원 기본 레이아웃이잖아요. 처음엔 트레이너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잘 안 가니까 나중엔 없어졌지만. 바쁜 의사들이 헬스 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근육 키우는 건 더 힘들지. 하하하.”
연문빈은 100.55가 껄껄 웃으며 하는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바로 이런 일반인 앞에서 해주려고, 오매불망, 밤낮없이 바라며, 수없이 많은 날 땀을 흘리며 준비해온 말을 하려고 소매를 걷어 올리려는데…….
“게다가 그 트레이너가 주치의랑 비슷하게 벌더라고요. 여자한테 인기도 더 많고. 그게 말이 돼요?”
연문빈은 넋이 나갔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환자도 곧 병실로 돌아올 거고요.”
겨우 40분 정도 채우고 수술 구역으로 돌아간 연문빈은 마침 복도에서 하는 말을 들었다. 걸음을 서둘러 다가가 보니, 낯익은 의사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수술 복도 문을 닫고 있었다.
“능 선생 수술 끝난 거죠?”
“연 선생? 안 그래도 늦게 오시면 좋겠다 했네요.”
상대는 불끈불끈한 근육을 알아보고 웃어 보였다.
“오늘 어시하셨어요?”
연문빈은 바로 알아듣고 물었다.
“예. 저녁 내내 세 건 했습니다.”
“겨우 세 건이요? 아, 두 사람이 교대하는구나.”
“당연하죠. 수술실 두 개 로테이션했어요. 꼬치 구이집처럼.”
“냄새도 비슷하네요.”
연문빈은 그렇게 말하고는 히죽 웃어 보였다.
“그럼 이렇게 해요. 이따 저도 들어가야 하는데, 일단 제가 세컨 할게요. 선생님이 계속 퍼스트 하세요. 능 선생이 다른 말 없으면 계속하고, 바꾸라고 하면 저도 어쩔 수 없고요.”
연문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좋죠.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상대 의사는 순간 기분이 좋아져서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모르시겠지만, 저도 이번에 기연을 얻어서 어시 선 거죠. 전에 영상으로 볼 때 능 선생 수술이 이렇구나, 저렇구나 했던 거랑 진짜로 보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수술할 때 능 선생이 지도도 해줬죠?”
연문빈은 그들이 여기저기 출장 수술하는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능연 기술이 너무 뛰어나고, 유명세가 크고, 수술 횟수가 많고, 수술 예후가 좋은 것 말고도, 능연이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특히 그날 퍼스트는 현장에서 문제를 지적당하고 해결책을 얻는 때가 많았다.
물론 능연은 수술 중에 말수가 별로 없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더 기억에 남았다.
의사가 헤헤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몰랐는데, 전에 수술 습관에 문제가 좀 있었더라고요. 전에는 몰랐는데 능 선생 이야기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어찌 됐든 정말 고마워요. 참, 인사나 해요. 나 주운무라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같은 종족이죠.”
연문빈은 어리둥절했다.
“5백 년 전엔 한 가족이었다는 소리는 자주 듣지만, 같은 종족이라니, 왜 그렇게 되는 거죠?”
주운무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능 선생 밑에 연 선생이랑 마 선생, 둘 다 우리 센터에 자주 오잖아요. 내가 주가니까, 연마주 다 짐승이잖아요. 그러니까 같은 종족이죠.”(*연마주의 중국 발음이 당나귀, 말, 돼지임)
“아, 그래서 같은 종족이라고요.”
연문빈은 38cm 팔뚝에 힘을 꾹 주며 주운무의 하얀 치아를 빤히 봤다. 그는 서전의 실력대결에 돌입했음을 깨닫고 마찬가지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우리 일족 중에 주 선생님이 제일 비참하네요. 수명도 제일 짧고, 대부분 거세당하니까요.”
그러자 주운무가 큰 소리로 웃었다.
“당나귀는 강제로 이종 교배도 하는걸요. 그거야말로 비참하지.”
연문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속으로 쌍뻐큐를 날렸다.
“전화 한 통부터 하고 손 씻을게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연문빈이 핸드폰을 꺼내며 하는 말에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주운무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샥샥 씻기 시작했다.
연문빈은 문밖에서 이를 악물고 운화 직원에게 전화했다.
“오늘 돼지 한 마리 잡아. 대가리 큰 놈으로. 꼭 내가 남겨둔 그 칼로 잡아. 잡을 때 영상 찍어서 보내고. 응, 그리고 잡을 때 이렇게 외쳐, ‘연을 대신해서 주를 잡는다! 악귀야 물러가라.’, 알았지?”
그루잠을 자고 있던 직원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사장님, 보면 안 될 거 봤어요? 무섭게 왜 그래요.”
“병원에 있는데 보면 안 될 게 뭐가 있어.”
연문빈이 콧방귀 뀌며 하는 소리에 전화 저편 직원은 완전히 잠에서 깨서, 병원이야말로 보이지 말아야 할 게 많은 곳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고는 부르르 몸서리쳤다.
“사장님, 그렇게 하고 나서요? 돼지만 잡으면 돼요? 향은요? 도사는 안 불러도 돼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영상이나 잘 찍어서 보내. 돼지는 졸여서 파는 부위는 팔고, 안 팔린 부분은 나머지는 가지고 가서 먹어. 복지다, 복지.”
연문빈은 당부를 남기고 전화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후 연문빈은 그렇게 잊어버렸지만, 직원은 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돼지를 가지고 집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어떻게든 팔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씨 족발은 원래 특정 몇 부위만 팔았다.
그럼, 나머지는 특가로 팔까?
그 생각에 직원은 바로 도살장 사장에게 연락하고, 홈페이지 갱신한 다음 단골손님 몇에게 연락한 후 일하러 갔다.
그리고 한참 만에 쉬러 돌아왔더니, 핸드폰이 난리가 났다.
“이게 돼지 한 마리 문제가 아니구나.”
직원은 몰려든 주문을 바라보며, 고객들이 특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놀랄 틈도 없이 묵묵히 계산해봤더니, 이번 특가만으로도 2년치 월급이 나왔다.
그 생각에 마음이 시려왔다.
수술실로 들어간 연문빈은 곧 수술에 몰입했다. 몰입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
능연의 수술은 매우 빠르고 수술 중 관리도 점점 잘 되어가고 있어서, 세컨 어시인 연문빈도 할 일이 많아졌다.
다들 정신을 집중한 사이,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연문빈은 수술이 거의 끝날 때쯤에야 겨우 리듬에 익숙해져서 겨우 입을 열 여유가 생겼다.
“능 선생, 앞에 한 수술도 다 순조로웠어?”
“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김에 목을 세우고 땀을 닦아 달라고 했다. 귀여운 회색 토끼 모자를 쓴 간호사가 폴짝폴짝 달려와 거즈로 살며시 능연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연문빈은 샘이 나서 근육통이 다 생길 것 같았다.
“완벽한 순조로움?”
“두 건은요.”
능연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그의 완벽 추구 퀘스트는 벌써 1-4 (2/6)까지 진화했다. 전보다 수술량이 훨씬 늘었지만, 능연으로서는 전혀 부담이 아니었다.
어젯밤만 해도 완벽한 수술을 두 건이나 했고, 그것도 상대적으로 복잡한 아킬레스건 수술에서 달성했다.
“두 건이면 상당히 괜찮은 거지.”
연문빈은 능연 기분이 괜찮은 것 같아서 저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아침에 나올 때 하늘이 너무 밝아서 오히려 어색하더라고.”
“평소에 달 보고 나와서 별 보고 들어가요?”
주운무는 연문빈이 수다 떨고 싶어졌음을 깨닫고 바로 끼어들었다. 능연이랑 수술하면 배우는 건 많지만, 심심할 땐 정말 심심했다.
간호사마저도 매우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우린 원래 나이트 근무 많아요. 의사들은 당직 때 잠자면서 무슨 달 보고 별을 본대요.”
그 말에 연문빈이 짐짓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팀은 당직이 휴식이에요. 평소엔 돌아가면서 수술하니까. 나는 시간만 나면 헬스장 가거든요. 그럼 또 금방 다시 수술 시간이라 시간이 모자…….”
“연 선생님은 헬스 자주하는데도 이렇게 뚱뚱해요?”
순회 간호사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하는 말에 연문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속으로 쌍뻐큐를 날렸다.
주운무는 능연을 힐끔 바라보고는, 그가 다른 사람이 수다 떠는 건 상관하지 않는 걸 보고 한시름 놓았다.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고, 혈관 봉합할 때는 눈까지 다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수술에서는 퍼스트나 세컨은 집도의 아부 포지션도 겸직해야 했다. 능연 같은 급 의사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뭐라고 아부하면 좋을까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그러고도 아차 하다가 실수할 때도 있고.
능연처럼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 남이 대화하는 건 터치하지 않는 의사는 거의 희귀종이었다.
그때 능연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뒤로 아킬레스건 수술 몇 건 있어요?”
“더 하려면 내일 수술밖에 없어요. 내일도 하나 남았고요. 더 필요하면 모레 할 수술을 해야 해요.”
주운무는 대답하고 나서 참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수술을 미루는데 능연은 당겨서 하기도 하다니.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할 거 없어요. 이 수술 끝나면 슬관절 수술이죠?”
“음, 원래 계획은 점심이 되면 휴식할 예정이었는데요.”
“전 안 피곤합니다.”
주운무가 머뭇대며 하는 말에 능연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스태미너 포션은 차고 넘쳤다.
“나야 수술 더 하고 싶지만, 기 주임님이 그렇게 정하셔서요. 반드시 능 선생 건강 챙겨야 한다고 하셔서요. 잠은 자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주운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하는 말에 능연도 고집부리지 않았다. 그의 인생 경험으로 닭과 오리가 대화하는 것처럼 안 통하는 일은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별로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주운무는 능연이 쉽게 받아들일 줄은 몰라서 서둘러 덧붙였다.
“일단 가서 푹 주무시고요, 모레 다시 수술을 배정하면 효율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그 말에 능연은 저도 모르게 반성 모드에 돌입했다.
“그럼 지금 수술은 역시 효율이 낮다는 거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그게 아니라…….”
주운무가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효율을 더 높일 방법이 있을 거예요.”
능연은 깊은 생각에 잠겨서, 모아놓은 중급 보물 상자와 초급 보물 상자를 바라봤다.
능연이 숙고에 잠기자 주운무는 조금 당황했다. 그는 대신 이야기 좀 해달라고 연문빈의 다리를 건드렸다. 이러다 능연이 정말로 자기 수술에 효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었고, 그래서 수술 플로를 바꿀까 봐 큰 걱정이었다. 그랬다간 정말로 큰 난리가 날 테니까.
연문빈은 주운무를 위해서 나설 생각이 전혀 없어서, 허벅지에 힘을 꾹 주고 있다가 잠시 후 눈썹을 찡긋하며 물었다.
“딱딱하죠?”
“딱딱해요?”
반사적으로 되물은 주운무는 그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연문빈은 흡족한 듯 웃으면서 교미할 나이가 된 수탉처럼 고개를 치켜들었다.
스크럽 간호사와 순회 간호사가 눈빛을 교환하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나는 그게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라…….”
주운무의 언어 조직 능력이 고장 났다. 그는 연문빈과 달리 의학 센터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이제 앞으로 간호사를 희롱한 것도 아니고, 출장 수술 온 남자 의사를 희롱한 사람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 같았다.
토끼 모자를 쓴 간호사가 이해심 많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주 선생님, 괜찮아요. 우린 다 이해해요.”
“아니, 말실수라고요.”
“네네, 말실수라는 해명, 완벽해요.”
간호사들은 매우 협조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머리 위 토끼 귀가 흔들흔들했다.
능연은 여전히 침묵 상태로 사람들의 대화를 차단하고는 시스템 화면을 불러냈다.
“초급 보물 상자 373개 열어줘.”
지금까지 모은 374개 초급 보물 상자는 대부분 ‘진심 어린 감사’로, 일부는 ‘동료 의사의 감탄’으로 얻은 것이었다. 하나를 굳이 남긴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373이 374 이내에서 가장 큰 대칭 소수였기 때문이었다.
373, 727, 757 등 대칭 소수는 미적 감각이 느껴졌다. 373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3, 7 모두 소수였고, 37과 3도 대칭 소수였다.
시스템은 아무런 말 없이 373개 상자를 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광망이 순간 능연의 시야를 가렸다. 익숙하게 스태미너 포션부터 모두 챙기고 나니, 스킬북 두 권과 해부 경험서 한 권이 남았다.
- 부분 해부 경험: 심장 해부 50회.
- 단일 항목 스킬북: 주머니 봉합법 (그랜드 마스터 급)
- 단일 항목 스킬북: 심박 중격(心房中隔: 좌우의 심방을 나누고 있는 격벽) 조루술(造瘻術) (마스터급)
세 권 모두 심장 관련 스킬과 경험이었다. 기대에 부응하는 기술이었고, 다른 사람이라면 운이 좋다고 고함칠 일이지만, 능연은 그저 랜덤으로 얻은 기본적인 조작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동안 수부 외과, 일반 외과 스킬과 경험이 나왔으니 이제 심장외과가 나올 때도 되었다. 물론, 신경외과 기술이라고 해도 웃으며 받았을 것이다.
부인과나 소아과 같은 스킬은 사실 단독적인 기술이 아니다. 부인과는 조금 특별하지만, 단순히 스킬 난도는 그다지 높을 게 없었다. 기본적으로 골반강 해부 구조에 익숙하고 수술 몇 번 따라 들어가면 쉽게 할 수 있었다.
소아과도 비슷했다. 외과적 난도는 아이의 덩치가 크냐 작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진정한 난도는 내과 쪽으로 있었다. 그리고 능연은 아직 내과 쪽 기술은 많이 얻지 못했다.
능연은 속으로 주머니 봉합 스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관련 스킬을 전에 얻었었지만, 그랜드 마스터급 봉합과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물론 그 기술을 어디에 쓰냐에 따라 다르긴 하다. 평소에 흔히 볼 수 있는 주머니 봉합은 위나 방광에 자주 쓰인다. 유사한 일반 외과 수술에서 쓰이는 주머니 봉합법은 마스터 급이든 그랜드 마스터 급이든 아마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장 수술에서 주머니 봉합 스킬을 쓸 땐, 등급 차이를 크게 발휘할 수 있다.
“능 선생, 아까 내 말은, 푹 쉬는 게 좋다는 말이었어.”
주운무는 능연이 한참 동안 말이 없자, 효율 문제라는 말로 상대가 크게 노한 것이라 생각했다.
능연은 그제야 시스템을 끄고 주운무를 바라봤다.
“쉴 때 쉬라는 게 틀린 말도 아니죠.”
주운무는 고분고분 ‘응’ 하고 대답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더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능 선생 말은, 배정해준 휴식 시간대로 쉬겠다는 겁니다.”
연문빈의 설명에 주운무는 고마운 듯 그를 바라봤다.
“아, 네네. 그럼 여러분, 점심 뭐 드시고 싶으세요?”
말이 여러분이지, 시선은 다시 능연을 향해 있었다. 능연은 일단 소 사장을 떠올렸지만, 안타깝게도 소가 식당은 운화에 있었다. 그렇게 좋은 가게가 상해에 분점이 없다니…….
“근처에서 대충 먹어요.”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경치 좋은, 선베드가 있는 곳으로’ 하고 덧붙였다. 괴상한 요구지만, 주운무에겐 차라리 더 수월했다.
“문제없습니다. 우리 상해에 다른 건 몰라도 경치 좋은 식당은 있습니다.”
주운무가 껄껄 웃었다. 물론 그런 가게는 가격이 저렴하지 않지만, 어차피 자기 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땐 당연히 공금으로 능 선생을 접대하니까 말이다. 그래야 다음 수술에서 배울 때 덜 미안하고.
“슬관절 수술 환자 잘 준비시켜 주세요. 내일 아침 일찍 수술하죠. 속도 좀 빨리할게요. 주 선생님 말대로 효율 높이게.”
능연이 고개를 숙여 손을 놀리면서 하는 말에 주운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운무는 그렇게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샤워하는 틈을 타서 쪼르륵 연문빈에게 달려갔다.
“연 선생, 능 선생이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아니면 풍경이라든지. 최대한 좋은 곳으로 대접하고 싶어서.”
“사과하는 마음으로 잘 대접하려고요?”
“네네네, 그렇죠.”
연문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풍경 좋은 곳, 그리고 선베드도 있어야 하는 걸 보면……. 아마도 게임 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게임 잘하는 사람 아는 사람 있어요?”
“게임……이요?”
“능 선생, ‘왕자’ 게임 좋아해요. 그쪽 고수 있으면, 능 선생 데리고 몇 게임 같이 하면 좋아할걸요? 그럼 선생님 기억해 줄지도 모르죠.”
“그렇구나.”
주운무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동료들한테 한 번 물어볼게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도시에서, 의사는 발이 가장 넓은 직군 중 하나이다. 특히 삼갑병원 의사는 십 년 이십 년 동안 의사 생활하다 보면 어느 업계에나 아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사람 사귀는 게 서툰 의사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사귀게 되고, 정 안 되면 동료가 아는 사람이라도 끌어다가 쓸 수 있고.
주운무는 고개를 숙이고 숙고에 빠졌다. 능연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느 병원 어느 의사에게 도움을 청해도 아마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들 잘하고 싶어서 안달을 부리면 부렸지.
와이탄(外灘: 상하이의 빌딩 밀집 구역).
강물이 넘실넘실, 느려 보여도 빠른 속도로 흐르며 일으키는 물결이 돈줄처럼 몰려들었다가 훅 빠져나갔다.
드넓은 강물이 오랜 시간 도시에 거주한 사람들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하고, 강변의 휘황찬란한 건물에 대한 호화로운 환상도 갖게 했다.
작은 소나무가 고집스럽게 자라고 있는 작은 건물의 테라스에 청록색 잎이 불쌍할 정도로 짧은 처마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원래 접난이 어울릴 만한 곳인데, 낡은 틀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이 작은 소나무를 고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능 선생, 우리가 반드시 상대를 마크할게요. 그러니까 바로 궁 써서 머리를 거둬요.”
왼쪽에 남자 셋, 여자 하나, 프로 게이머 네 명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소속팀 대표 부탁을 받고 온 소속팀 내 언저리 선수로서 모처럼의 귀한 기회인 것도 그렇고, 대표의 개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도 그렇고, 매우 진지하게 함께 플레이하고 있었다.
다만, 네 사람이 한 사람 서포트 해주는 것도 이렇게 힘겨운 싸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게 다 여자 게이머가 처음에 너무 애를 써서 능연을 너무 높은 등급에 올려놓은 탓이었다.
“아, 궁 빗나갔네요.”
“크, 큰 판이니까 궁이 빗나갈 수도 있죠. 잠시만요. 우리가 해볼게요. 그때 스킬 써서 죽이세요.”
게이머 팀장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나머지 셋은 이미 멘붕에 빠져서, 지금은 거의 팀장 혼자 이야기하고 있었다. 능연은 대답하고는 캐릭터를 조종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가는 사이, 저도 모르게 과제가 떠올랐다.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에서 정맥혈관 봉합 순서를 조금 조정하면 수술 시간을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능 선생, 방향 틀어졌어요. 내가 갈게요.”
작은 화면으로 전환한 팀장은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괜찮아요……. 음, 오실 거 없네요.”
능연은 살며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저 멀리 바라봤다.
능연은 이런 쉬는 시간을 좋아했다. 정신도 쉴 수 있고, 몸도 쉴 수 있고. 게임 할 땐 생각을 분산해도 되고, 모니터가 꺼지면 멀리 시선을 두고 릴렉스해도 되고. 딱 지금 능연의 상태였다.
물론 게임도 더 순조롭게 이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능 선생, 부활했어요.”
여자 게이머가 시간 맞춰 능연을 불렀다.
“네.”
능연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저 앞 숲에 좀 숨어 계세요. 성과 나타날 거예요.”
여자 게이머는 케릭터를 조종하면서 팀원과 함께 먹잇감을 포위하고 사냥하듯, 맞은편에 있는 영웅을 향해 달려갔다.
“오키요.”
능연 역시 재빨리 움직였다.
근처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주운무는 못 봐주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참 미안하네. 다들 프로 게이머인데 이러다가 프로 그만두고 싶어할 거 같군요.”
“하지만 능 선생 보세요. 저거 진짜 좋아하는 얼굴이에요. 잘하셨어요. 제가 한두 마디 거들어 주면 아까 해프닝은 분명 없던 일이 될 거예요.”
연문빈이 웃으며 하는 말에 주운무는 앞으로 다가가 능연의 옆얼굴을 유심히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왔다.
“그렇게 좋아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요. 평소랑 비슷한데.”
“날 믿어요. 좋아하는 얼굴 맞아요. 그랜드 마스터급 수술을 끝냈을 때나 나타나는 표정입니다.”
연문빈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랜드 마스터급 수술이요?”
“능 선생은 자기 판단 기준이 있거든요. 매우 완벽하게 끝낸 수술만 그랜드 마스터급 수술이라고 부르죠.”
주운무는 오리무중이었지만, 어찌 됐든 능연이 지금 기뻐하고 있는 게 맞다고 이해했다.
좋아하면 됐지. 저 프로 게이머 넷은, 저것도 직업 리스크라고 생각해야지 뭐.
“어쩔 수 없네요. 게이머분들 희생시켜야지.”
주운무는 예전에 흰 쥐와 고별할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눈가를 닦았다.
“의미 있는 희생이죠”
“의미 있음 됐죠. 의미 없는 희생이면 문제지만.”
“의미 있을 겁니다. 능 선생이 즐거울 때만 티가 안 나는 줄 알아요? 화낼 때도 티 안 나요.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요.”
“그건 능 선생 성격이 좋은 거고요.”
주운무가 하는 말에 연문빈은 좌자전과 조금 비슷한 모습으로 묘하게 웃었다. 연문빈의 시선에 묘하게 어색해진 주운무는 머쓱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격 좋은 서전이 드물긴 하죠.”
“드물어요? 거의 희귀종이죠.”
“그럼 능 선생은?”
주운무가 떠보듯 묻는 말에 연문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좋아요?”
주운무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속 좁은 사람 눈 밖에 나는 게 가장 힘드니까. 그러나 연문빈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건 좌 선생님이 더 잘 알 거예요. 어쨌든 내 기억에, 능 선생이 화내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어요. 기본적으로 없긴 하죠. 화낼 필요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럼 다행이네요.”
주운무는 다시 안도했다.
능연은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새롭게 멍 때리기 시작했다. 주운무는 저도 모르게 의문이 들기 시작해서 나지막이 웃었다.
“능 선생 수술을 직접 본 게 아니면 지금 능 선생을 못 믿을 거 같네요.”
연문빈이 대답이 없자 주운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보니 슬관절경 수술도 내가 많이 들어갔네요. 남은 수술도 내가 들어가는 게 어때요?”
“그건 좌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야 해요.”
“좌 선생님 뭐 좋아해요?”
주운무는 오늘 성공을 이어가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좌 선생님이 좋아하는 거?”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빠졌다.
“좌 선생님, 굿모닝.”
일찍 호텔로 달려간 주운무는 로비에서 좌자전이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주 선생이죠? 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대를 알아본 좌자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반은 우연이고요. 가방 제가 들게요. 차는 밖에 있습니다.”
주운무가 얼굴 가득 미소 지으며 다가가서 하는 말에 좌자전은 머뭇거리면서 자료가 가득 담긴 서류 가방을 건네주었다.
“그럼 부탁합니다. 오늘은 정말 좀 무거워요. 허리랑 다리가 아파서……. 아이고, 늙으면 이래.”
사실 정말 힘들긴 했다. 태국에서 열몇 시간 일한 건 둘째치고, 연달아 두 나라 세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매우 힘들었다.
마흔 몇이란 나이는, 마을 위생 병원 의사였다면 고급 차 한 잔 따라놓고 오줌이나 자주 갈기면서 신문으로 얼굴 덮고 생활할 나이였다.
물론 예전 좌자전의 지위와 생활 방식이 조금 비참했지만, 이렇게까지 몸이 힘들진 않은 건 확실했다. 상전 마중, 배웅 말고는 별일이 없었으니까.
주운무는 나이 든 주임을 대하듯 재빨리 좌자전의 서류 가방을 받아들고는 어깨가 훅 내려가는 척까지 했다.
“정말 무겁네요. 고생이 많으세요, 좌 선생님. 이런 일은 아랫사람한테 시키시지. 상해에 계실 땐 저 시키시면 됩니다.”
보통 아부가 아닌 그 말에 좌자전은 살며시 눈을 찌푸리고 주운무를 바라봤다.
“정말입니다. 병원에서 별 할 일도 없이 한가한걸요.”
그 말은 반은 진짜, 반은 거짓이었다. 정말로 할 일이 별로 없다면 능연 퍼스트 자리를 꿰차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연차 낮은 주치의 실력이 평범하고 수술을 맡을 수도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서전들이 가장 중시하는 수술은 뭐니 뭐니 해도 실력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비록 어떤 병원 주치의 혹은 부주임은 평범한 기술로도 수술하지만,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같은 정상급 병원에서 얼렁뚱땅 살아남는 건 쉬워 보여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남기는 또 쉽지 않았다.
좌자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서서히 걸음을 옮기면서 대답했다.
“한가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나 좀 봐요, 나이 든 레지던트. 아랫사람 시키라고 그랬죠? 내가 그 아랫사람인걸.”
“아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이 레지던트지, 경험이 다르잖아요.”
주운무는 재빨리 추켜세웠다. 좌자전이 대단히 유명하진 않지만, 그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바로 이름을 알게 될 것이고, 그의 전설적인 인생 경력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좌자전은 그제야 살며시 미소 지으면서 진지한 눈빛으로 주운무를 바라봤다.
“주 선생처럼 훤칠하게 생긴 데다가 좋은 학교 나온 사람 인생 경력은 나 같은 사람이랑 다르죠.”
“그래도 선생님 같은 경험을 어디 할 수 있습니까. 진짜, 나중에 시간 있으실 때 자세히 좀 이야기해 주세요.”
주운무는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신경 써서 준비한 봉투를 내밀었다.
“좌 선생님, 아들 있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만.”
“잘됐네요. 디즈니랜드 입장권 두 장 있어서요. 그냥 입장권이 아니라 프리패스예요. 줄 안 서도 되는 거.”
주운무는 좌자전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전엔 저도 몰랐죠. 사람 엄청 많잖아요. 인기 있는 건 두세 시간도 빠른 거죠. 평범한 것도 삼사 십분 서야 하고. 한 시간도 있죠. 나중에 알았어요, 줄 안 서는 표가 있다는 걸.”
“비싸겠죠.”
“그냥 사면 비싸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도 친구한테 받았어요. 환자 아니고요. 며칠 동안 같이 다니면서 자문해준 일이 있거든요. 친구라서 돈 받기도 그렇고, 그런데 이걸 굳이 주더라고요. 자기도 직원 혜택으로 받은 거라고.”
다 사실은 아니었지만, 대충 넘어갈 만한 내용이었다.
좌자전은 잠시 머뭇거렸다. 돈이나 그냥 입장권이었다면 바로 거절했겠지만, 프리패스 입장권이라면 아들 앞에서 체면이 설 것 같았다.
“좌 선생님, 그냥 받으세요.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요.”
주운무가 한마디 더 하자, 좌자전은 오히려 마음을 정하고 고개를 저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주 선생한테 선물 받을 이유가 없어서요.”
“태국에서는 받으셨잖아요.”
“그게 같나요. 이거 왜 주는 건데요?”
“그게…… 능 선생 슬관절 수술 몇 번 더 하고 싶습니다.”
주운무는 좌자전의 시선에 털이 다 주뼛 서는 것 같아서 아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린 출장 수술 온 사람 아닙니까. 누가 수술실에 들어올지는 그쪽 진료과에서 배정하잖아요. 그럼 그쪽 사람한테 부탁해야지…….”
“능 선생이 한마디 하면 기 주임님이야 반대할 리 없으니까요.”
“그건 말도 안 돼요. 이런 일은 나한테 부탁해도 소용없습니다.”
좌자전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주운무는 오히려 미소 지었다.
“그럼 제가 우리 쪽 의사랑 개인적으로 바꾸는 건 괜찮겠습니까?”
“상대가 동의할까요?”
“출국 준비하는 녀석이라, 잘 이야기하면 될 겁니다.”
주운무는 꽤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마다 기회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그는 그 나름의 준비가 있었다.
좌자전은 정확히 대답하진 않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만 했다. 그리고는 주운문가 다시 내민 봉투를 밀어냈다.
“이런 건 됐습니다. 회진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기나 해요.”
주운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의 회진은 따로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시간이든, 능연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어느 시간에 하느냐 고르기만 하면 됐다.
능연에게 회진은 비표준화 상태인 환자의 질환을 최대한 표준화로 바꿔주는 과정이었다. 외과 의사는 사실 표준화된 수술만 할 줄 안다. 많은 개량 수술 방식 혹은 환자 신체 구조 변이에 관한 연구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의사들은 표준적인 수술을 한다.
지금 가장 전형적인 수술은 거의 연문빈 등에게 넘겨도 수월하게 해낸다. 능연의 관심 포인트도 서서히 수술이 아닌 부분으로도 넓어졌다.
물론 오늘은 출장 수술이고, 퀘스트도 걸려 있어서 직접 할 생각이지만.
“무릎 상태가 괜찮은 편입니다.”
쉰쯤 된 중년 여인 침대 곁으로 다가간 능연은 그녀의 무릎 MRI가 마음에 든 듯 바라봤다. 건장한 인대와 둥근 반월판이 퉁퉁한 것이 매우 건실해 보였다. 물론 파열되긴 했지만.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크로스 컨트리 갔다가, 150m 정도로 뛰었는데 집에 오니까 아프더라고요. 다음 달에 마라톤 할 예정이었는데, 이번엔 못 가겠죠?”
“음, 아마 앞으로도 못 갈 겁니다.”
여자가 후회되는 듯이 하는 말에 능연은 매우 단호하게 대답했고, 여자는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아니세요? 이런 작은 문제가 뭐라고. 전에도 자주 다쳤었어요.”
“그러니까 무릎 다친 거겠죠.”
병상 저 끝에서 누군가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하고 싶어 하던 말이라서, 일제히 고개를 돌렸더니 청소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여자가 마대를 들고 서 있었다.
“한미?”
좌자전이 의외라는 듯 제일 먼저 이름을 불렀다. 능연은 상대의 제복부터 확인하고는 마찬가지로 의외라는 듯 물었다.
“왜 또 여기서 청소하는 거예요?”
“며칠 안 보이시길래 알아봤더니 상해에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속철도 타고 왔죠.”
한미는 살며시 웃어 보이며 계속 설명했다.
“단기 알바 구했어요.”
“수술 보려고요?”
능연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 역시 대학 시절이었다면 수술 하나 보려고 몇 시간 고속철도를 탓을 거니까.
한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한미 씨한테 수술 시간 알려 드리세요.”
능연은 다시 환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다른 문제 있나요?”
환자는 능연과 한미, 그리고 그녀의 복장을 번갈아 보며 불안한 듯 몸을 비틀었다.
“문제가 너무 많아요!”
한미는 수술복을 입고 조금 불안한 듯 수술실 광경을 둘러봤다. 사실 그녀는 수술실 환경에 매우 익숙했다. 6개월 넘게 병원 청소 일을 해온 그녀는 심지어 일부 초짜 의사보다 수술실에 더 익숙할 만도 했다.
그러나 몸에 맞지도 않고 불편한 수술복을 입고 방관자로서 서 있는 건 한미에게 참신한 경험이었다.
지금 한미는 무슨 말로 기분을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곧 처음에 운화로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비슷하게 흥분했었다. 다만 그때는 개인적인 기대보다 도시라는 곳이 주는 놀라움이 더욱 컸다.
“한미 씨, 내 뒤로 와서 서요.”
좌자전이 손짓해서 부르자, 한미가 쪼르르 달려갔다.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볼 거예요.”
“음, 수술실 규칙은 다 알 거예요. 그래도 설명 좀 할게요.”
좌자전은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단 서 있는 자리. 이 선을 넘지 말아요. 특히 수술 중엔 아무리 잘 안 보여도 이 선 밖으로 머리 내밀고 그러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누가 목이 그렇게 길어요!’ 이렇게 대답했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좌자전이 일부러 농담을 했다. 대단히 웃긴 농담은 아니었지만, 한미는 작게 웃었고 그 바람에 긴장도 좀 풀렸다.
“다른 사람 건들지 말고, 기기와 설비도 건드리면 안 되고. 이런 건 말 안 해도 알 거고, 어쨌든 조심하면 돼요.”
좌자전이 다시 코치해주는 말에 한미는 딱따구리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없어요. 그냥 많이 보고 말은 많이 하지 말고, 그거면 됩니다.”
좌자전은 웃어 보이며 선의 활동을 마쳤다. 한미는 능연이 특별히 불러온 사람이니까, 능연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는 몰라도, 설사 그냥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든 거라고 해도 좌자전은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줄 의무가 있었다.
비슷한 일을 마을 위생 병원에서도 자주 했었다. 다만 그때는 수준 낮은 일뿐이었지만. 좌자전은 문득 세상이 참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한미 역시 신세계를 경험했다. 특히 능연이 수술을 시작한 후로, 수술실 분위기가 확 변했고, 평소에 한미나 다른 청소부 언니 동생들이 잘난 척하거나 농담이나 실실한다고 생각했던 녀석들이 얼굴에 정의감을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경박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확 달랐다.
“정말로 청소부를 수술실에 들여보내셨네요.”
슬관절 수술은 전신 마취할 필요가 없기에, 긴장한 상태는 이미 지난 환자가 한미를 힐끔 보고는 오히려 긴장되는 듯 중얼거렸다. 한미도 덩달아 긴장했고, 다른 의사들도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능연은 매우 자연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네.”
잠시 기다려도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자, 환자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돼요?”
“됩니다.”
능연은 관절경 모니터를 바라보며 관절경 안 반월판을 건드렸다. 야들야들한 백색 납작한 물체로, 주변에 불균일한 솜털 모양의 것들이 달려있어서 얼핏 보면 시끄러운 찐빵 같았다.
한미는 순간 배가 고팠다.
환자는 조금 어이없는 듯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수술과 상관없는 사람이잖아요.”
이번엔 능연이 대답하기 전에 좌자전이 목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수술에 영향 주진 않을 겁니다. 사실 젊은 사람이 수술 참관하는 게 환자분한테도 좋아요.”
“왜요?”
“누가 참관하면 의사들이 더 집중할 거고, 수술도 더 완벽해질 테니까요. 환자분, 운동 좋아하시죠? 운동도 보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잘하는 거 아닙니까? 같은 이치예요.”
좌자전이 웃으며 하는 말에 환자는 차츰 평온해졌다.
“수술은 잘 되고 있죠?”
“매우 순조롭습니다.”
이번엔 능연이 대답했다. 이번에도 똑같이 직설적인 대답이었지만, 아까는 그 솔직한 대답에 기분 나빴던 환자도 이번엔 신뢰도가 크게 올라갔다.
“매우 순조롭다면 다음 달에 마라톤 나가도 되겠네요?”
“안 됩니다.”
환자가 혹시나 하고 묻는 말에 능연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정말 안 돼요? 해마다 참석했단 말이에요. 올해 안 뛰면 답답한데.”
곁에서 줄곧 눈치를 살피던 좌자전은 능연이 눈을 깜빡이는 모습에 바로 알아차리고 냉큼 대답했다.
“지금은 마라톤이 아니라 일단 걸을 수 있는지부터 생각하자고요. 심한 운동은 당분간 못합니다.”
“하지만 능 선생님은 운동선수 수술 자주 하시잖아요. 다들 몇 주 만에 다시 시합 나가던데요.”
좌자전은 말문이 막혔다가 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환자분 재활 속도, 그리고 몸 상태, 운동선수랑 비교할 수 없잖습니까.”
“내 상태가 어때서요. 다치기 전엔 젊은 사람보다 훨씬 나았어요.”
“어쨌든 젊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좌자전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서 팝콘 먹는 마취의를 사나운 눈으로 노려봤다. 마취의는 깜짝 놀라서 아까 준비해놓았다가 사용하지 않은 그것을 발사했다. 자신의 나이와 운동 능력에 대해 열변을 토할 준비를 하던 환자는 쿠울하고 잠이 들었다.
“반 선생, 구경하니까 재미있어요?”
그제야 한숨 돌린 좌자전은 말투가 조금 딱딱했고, 마취의는 기가 죽었다.
“저 반씨 아닌데요.”
“왜 반씨가 아닌데요.”
좌자전이 얼굴을 찌푸리고 하는 말에 마취의는 멍해져서 이게 무슨 논리인지 고민했다.
능연은 역시나 부하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관절경을 들여다보며 반월판 테두리를 정리했다. 다른 의사와 달리 능연은 반월판이 얼마나 가지런하게 정리되는지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다.
그냥 단순한 테두리 정리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고, 절대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메스가 재빨리 움직이며 손상된 반월판을 정리했고,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났다.
“예쁘다.”
한미는 갈수록 모니터에 보이는 반월판 모양에 시선을 빼앗겼다. 다들 바라보는 시선에 한미는 묘하게 긴장해서 다급하게 덧붙였다.
“저 모니터 안에 보이는 거 말이에요.”
“반월판이요.”
“네, 네. 아깐 털이 보송보송했는데 지금은 딱 봐도 예뻐졌어요.”
“그런가요?”
묵묵히 관절경을 들고 있던 주운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조금 따지듯이 물었다.
“어디가요?”
“더 매끄럽고, 더 가지런하고. 어찌 됐든 모양이 완벽해요. 아니 그냥 하는 소리예요. 평소에 청소할 때도 가지런한 게 좋아서.”
“계속 그렇게 해요.”
능연이 보기 드물게 끼어들었다.
“응? 아, 네, 네!”
한미는 두 눈을 반짝였다. 그 습관을 칭찬해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한미가 칭찬받는 모습에 주운무는 속이 간질간질했다. 청소부도 칭찬받는데, 나는……, 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주운무는 능연이 보통 사람이 아니고, 그가 보통 사고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환상을 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능 선생한테 배울 수 있다면 슬관절경부터 배워야 할까, 아니면 아킬레스건부터 배워야 할까.’
주운무는 관절경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 관절경부터 배워야겠지. 응용 범위도 넓고, 속도도 빠르고. 잘만해서 조금만 유명해지면 손이 저릴 정도로 돈을 벌게 될 테니까.
관절경을 한 번 들기 시작하면 열 시간은 넘게 들어야 하니 손이 시리고 저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운무는 곧 능연의 아킬레스건 기술은 세계급이고, 유위신 등 운동선수들이 세계를 정복하고 다니며 성적을 낼수록 유명세가 올라간다는 걸 떠올렸다. 일단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특히 능연 밑에서 배웠다고 소문나면 슬관절경 같은 조건 없이 바로 유명해질 것이다.
아, 갈등 된다!
주운무는 환상에 취해 있었다.
“좀 아래로 잡으세요. 봉합 준비합니다.”
능연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아, 아.”
주운무는 다급하게 대답하는 동시에 힐끔 좌자전을 살피고는 표정에 변화가 없자 한시름을 놓았다. 수술 중에 정신을 팔다니…… 는 사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소에 정신을 팔아도 어차피 수술이 조금 늦어질 뿐이라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능연의 수술은 아무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말없이 봉합 세상으로 빠졌다. 봉합하는 동안 반월판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수술 중에 가장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수술 중 동태(動態) 봉합을 떠올리면 보통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하는 봉합, 즉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심장외과 수술을 생각하는데 사실 반월판 봉합도 활동 상태에서 진행된다. 비록 심장외과 수술의 위험성과 복잡도와 비교할 수 없지만, 봉합 자체의 난도는 매우 두드러졌다.
그래서 능연일지라도 봉합할 때는 120% 정신을 차린다. 수술 효과가 좋고 나쁨도, 그 전의 어느 스텝보다 이 봉합에 달렸기 때문이다.
봉합을 잘하면, 환자의 반월판이 처음처럼 회복한다고 할 순 없어도 7, 80%는 회복하고, 극한까지 실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프로 선수가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봉합을 못 하면, 그럼 뭐 할 말이 없게 된다. 잘된 수술이란 천편일률이지만, 망한 수술은 별별 종류가 다 있다. 정상적인 의사는 후진 의사가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도 없을 테니까.
주운무는 정신을 차리고 능연의 손놀림을 주시했다.
그런데…….
바늘이 반월판에 닿고, 통과하고, 작은 막대로 쿡쿡 밀고, 또 통과하고…….
두 번째 바늘, 세 번째 바늘이 계속 통과하는 것만 보이는데…….
“끝입니다.”
능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정적인 손놀림을 위해 호흡을 조절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주운무는 망연하기만 했다. 전에 주임들이 반월판 수술하는 걸 보긴 했다. 봉합 각도, 부하 등등, 조금이라도 부정확하면 얇은 반월판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쉽게 재파열하곤 했다.
그런데 능연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잘 보셨어요?”
수많은 ‘주운무’들을 겪어온 좌자전이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주운무는 매우 솔직했다. 사실 그는 자신감이 있는 편이었다. 좋은 학교 졸업했고,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정직원으로 오래 근무하면서 간접 경험은 할 만큼 한 그가 오리무중이니 말 다한 수준이었다.
“능 선생이 곧 논문 발표할 거니까, 지켜보세요.”
“아. 예. 그럴게요.”
역시 적계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주운무는 실망스러웠다.
“사실 자주 보면 익숙해질 겁니다.”
“어떻게 해야 자주 볼 수 있을까요.”
“자주 오잖아요. 올 때마다 자주 와서 보세요. 그럼 경험이 쌓일 겁니다.”
“아, 예.”
주운무가 조금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좌자전은 웃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 센터는 국내 정상급 정형외과 센터라 여기 와서 출장 수술하는 게 능연에겐 큰 도움이 되니까, 떡밥을 던져 놓은 것이었다. 축 원사가 있어서 능연이 출장 수술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같은 편이 많으면,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초짜라고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사실 좌자전은 이미 그런 것에 익숙했다. 어느 병원에 가도 초짜 의사들과 관계를 다지고 작은 이익, 작은 은혜를 베풀곤 했다.
지금 능연은 다 끝내지도 못할 정도로 출장 수술이 밀려들지만, 어찌 됐든 선택을 넓혀 둬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의사라는 직업은 다른 업계와 달리 불안정성이 매우 높고, 스카우트 되어 나갈 확률은 낮고, 오래 할수록 지위가 올라갈 확률이 높다.
주운무 같은 초짜 주치의도 몇 년 후엔 어쩌면 부주임이 될지 몰라서 무시할 수 없었다. 의학 센터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작은 병원으로 내려가게 돼면, 그럼 차라리 주임이 되거나, 중대형 병원 진료과 주임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연줄을 만드느니 차라리 지금 기회를 좀 더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히려 지금 그런 기회를 많이 받는 의사가 나중에 승진할 기회가 높을 것이고.
“됐습니다.”
능연은 마무리 작업을 어느 정도 끝내고는 나머지는 주운무에게 맡겼다. 주운무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는 관절경을 자기 병원 다른 레지던트에게 맡겼다.
“능 선생님, 제가 하는 걸 좀 봐주실 수 있나요?”
“네.”
주운무가 용기를 내서 묻는 말에 능연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은 의학 문제엔 항상 적극적이라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승낙했다. 다른 초짜 의사들이 감히 하지 못 하는 행동을 하는 주운무의 모습에 좌자전은 내심 그를 높게 평가했다.
주운무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정신을 집중하고 서서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몇 분 후, 주운무가 순조롭게 마무리 작업을 마쳤을 때, 능연 앞에 퀘스트 제시어가 나타났다.
- 퀘스트 1-4 완성: 완벽을 추구하라
- 퀘스트 내용: 완벽한 수술은 평생 죽어서도 변하지 않을 외과 의사의 바람. 완벽한 수술 여섯 번 완성할 것.
- 퀘스트 진도: (3/6)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주운무의 마지막 작업이 수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기본은 됐다는 뜻이었다. 능연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어요.”
능연이 좋은 평가를 내리자, 주운무는 자신감이 폭등했다. 능연이 실질적 지도는 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 주운무는 자신이 한 단계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능연은 수술실에서 매우 즐거웠다. 특히 완벽한 수술을 연달아 두 건 끝낸 후엔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에게도 완벽한 수술은 극한까지 치닫는 수술이고, 그런 극한을 겪은 후 만족한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속이 후련했다.
밤까지 달린 능연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계속 달리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이를 쉬라고 쫓아냈다.
“왜죠?”
연문빈은 몹시 놀랐고 의문스러워졌다. 매일 2시에 일어나는 직원이 출근했더니 연문빈이 새로운 족발을 준비해놓지 않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말도 안 돼!
능연도 똑같이 놀란 얼굴로 연문빈을 바라봤다.
“쉬기 싫어요?”
“쉬고 싶어! 왜 안 쉬고 싶겠어!”
연문빈은 서둘러 고개를 끄떡였다.
“그냥 좀 이상해서. 님은 수술을 계속하고 싶어 할 줄 알았지.”
“당일 수술만 하는 것도 좋은 거 같아서요. 게다가 선생님들도 힘들어 보이고.”
아무리 간단한 수술도 오래 하면 효율도 떨어지고 실수할 확률도 높아진다. 슬관절경 같은 수술은 쉽다면 쉬워서 간호사 하나만 데리고 두 사람이 끝낼 수 있는 수술이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하려면 수술실 전체의 협조도 매우 중요했다.
연문빈 등은 모두 태국에서 돌아와서 육체 피로뿐만 아니라 정신도 지친 상태였다. 특히 오후엔 버티고 버틴 상태였고, 능연도 완벽한 수술을 몇 건 한 상태라 더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푹 자고 내일 다시 수술하는 게 효과가 나을 수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배려에 연문빈은 마음이 따듯해졌다. 좌자전과 여원도 내심 한숨 돌렸다.
“힘들어. 응, 힘들 때도 됐지. 내일까지 버텨야 할 줄 알았는데, 쉬라니, 하루 번 것 같네. 반올림하면, 그게…….”
“흠흠.”
연문빈 말을 자른 좌자전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능연을 힐끔 보고는 다시 연문빈을 바라봤다.
“반올림하면 하루 쉬는 거나 마찬가지지. 우리 돌아가는 시간도 계산해야지, 안 그래? 가서 목욕하고 옷 갈아입어야지, 밥도 먹어야지, 이것저것 해야지. 그러니까 하룻밤 정도는 쉬어야 해.”
좌자전의 말에 연문빈은 바로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올림 같은 소리 하다가 잘못하면 반이 깎일 수도 있었다.
수술도 끝났고, 진지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능연은 사람들이 사실 매우 쉬고 싶어 하는 걸 깨닫고 흡족한 듯 웃었다.
팀 단결 스킬 Get!
능연은 샤워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고 대충 차를 잡아서 와이탄에 갔다. 숙소도 와이탄에 잡았고, 며칠 전 함께 게임 했던 준 프로 게이머 네 명과 밤새 게임 하기로 약속도 잡아 두었다.
네 게이머는 사실 달갑진 않았지만, 외과 의사의 경제력이 매우 후덜덜하니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주운무에게 전화까지 했다. 공짜 매니저가 생긴 셈이랄까? 그들은 곧 그 ‘매니저’가 이끄는 대로 함께 호텔로 달려갔다.
호텔 로비에 도착한 그들은 수트 차림의 남녀들에게 가로막혔다.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공손하게 웃는 캐주얼 수트를 입은 여자에게서 위암갑이 느껴졌다.
“우리요?”
주운무가 확실하지 않은 얼굴로 상대를 살폈다. 작업용으로 입기엔 상당히 비싼 중가 이상의 수트였다.
“능 선생님이랑 게임 하러 오신 거죠? 주운무 선생?”
여자는 주운무보다 몇 살 많아 보였는데, 화장을 해서 그런지 더 어리고 더 엄숙해 보였다.
“절 아세요?”
주운무가 얼굴을 찌푸렸다. 의사들은 일면식 정도밖에 없는 사람들을 많이 알았고, 그런 사람은 대부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선물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수트 차림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딱딱한 재질의 수트케이스를 든 두 사내가 다가오더니 팔 위에 케이스를 올려놓고는 뚜껑을 열었다.
“이건…….”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상대가 케이스를 열고 나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특제 금은화입니다.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은화, 금화, 백금화. 보석도 몇 개 있습니다.”
상대가 일일이 소개하는 말에 한참 들여다보던 주운무는 머쓱한 듯 웃어 보였다.
“예, 아름답네요.”
“음, 여러분이 능 선생님과 함께 게임 할 때, 능 선생이 마지막에 어느 레벨에 이르느냐에 따라 그에 상당하는 금은화가 지급될 겁니다.”
상대가 매우 설득력 있는 말투로 케이스 안의 금은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다는 겁니까?”
게이머 하나가 이미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은화는 별로 돈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저 호두만 한 금화가 정말로 순금이라면 엄청나게 귀해진다. 보석은 말할 것도 없고.
“하시는 게임의 등급이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 맞죠?”
“예,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능 선생님 등급이 실버가 되면 은화, 골드면 금화, 플래티넘이면 백금화. 마찬가지로 다이아가 되면 보석도 받게 됩니다.”
“백금은 금만큼 가치가 없잖아요.”
여자 게이머도 마음이 동해서 저도 모르게 손을 들고 물었다.
“플래티넘 등급이 되면 은, 금, 백금 다 같이 받게 되니까요. 음, 질문 더 있나요?”
“그럼 왕자가 되면요?”
그 질문에 여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알기론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그러네.”
“맞아, 뭔 생각하는 거야.”
“다이아면 됐어.”
“다이아도 힘들거든!”
“꿈이라도 꾸자!”
게이머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때 여자 게이머가 갑자기 손을 흔들었다.
“잠시만, 며칠 전에 우리 게임 했잖아. 그때 플래티넘보다 높게 올라가지 않았나?”
맞은편 여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문제는 조금 복잡합니다.”
“다시 떨어진 건 아니겠죠?”
“미안합니다. 저희는 대답할 권한이 없습니다.”
“무슨 기밀도 아니잖아요.”
여자 게이머가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도 여자 책임자는 웃지 않고 오히려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능연은 상해에서 사흘 더 머무르면서 낮엔 당일 수술하고 밤엔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해서,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의학 센터엔 복도까지 침상이 꽉 찼다.
마지막 날, 능연은 복도를 따라 환자 하나하나 회진하며 지나갔다.
관절경과 아킬레스건 보건술은 상대적으로 작은 수술이다. 특히 관절경 수술은 당일 수술로도 할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회복이 빨랐다. 게다가 유명한 외과 의사가 한 수술이라 환자와 보호자 모두 기분이 보편적으로 괜찮았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쉴 새 없이 나타나는 ‘진심 어린 감사’와 ‘진심 어린 감사’로 끊임없이 쌓이는 보물 상자로 알 수 있었다.
“보이냐? 능 선생이 평소에 말수가 없는 거 같아도,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환자랑 보호자는 다 안다. 환자들 표정 좀 봐봐. 저건 진심으로 감사하는 거라고.”
기 주임은 이 기회에 젊은 의사들에게 인성 교육을 했다.
“사실 저희가 능 선생보다 환자한테 친절한데 환자나 보호자는 그런 거 못 느낍니다.”
100.5 레지던트가 살짝 반항했다. 아무리 능연은 이 칭찬을 못 듣는다고 해도 평생 숙적이 뿌듯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기천록은 100.5를 힐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감사받으려고 환자한테 잘하라는 거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반응은 틀린 거야. 지금까지 의사 생활해왔지만, ‘의사-환자 관계는 어떻게 해결할까요?’ 하고 물으면 일단 네 스스로 떳떳한지 생각해 보라고 대답한다.”
100.5는 진지하게 듣는 척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전혀 대답이 되지 않았는데요. 그런 질문도 하고 싶은 생각 없고요. 얼마 전에 멱살 잡힐 뻔한 거 잊으셨나 봐요?
“어찌 됐든,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품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의학은 다 기술만 중시해. 사실 인문학 교육도 매우 중요한데.”
기천록은 매우 느끼는 바가 많은 듯 이야기를 이어갔고, 초짜 의사들은 별로 동감 못하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기술 교육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은데 무슨 인문학. 배우고 싶은 사람이나 배우라지.
“능 선생이 인성 교육 좀 해주면 좋겠네요.”
초짜 의사 하나가 갑자기 한마디 하자, 100.5가 육중한 눈알을 굴리며 레이저를 쏘았다. 대체 누가 저렇게 버릇없이 갑툭튀야.
눈을 찌푸리고 유심히 봤더니, 올해 막 들어온 여자 박사였다. 전엔 깊은 인상을 못 받았는데 지금 유심히 보니 매우 영리해 보였다.
100.5는 볼수록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물론 토끼 모자를 제일 좋아했고, 이 앞에 이분은 그냥 마음에 드는 정도였다. 그래서 100.5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대충 대답했다.
“능 선생이 인성 교육해주면 좋겠네요. 환자와 보호자들이 정말로 능 선생을 좋아하니까요. 특히 수술 후 회진 때 보면 사인을 안 받아서 그렇지, 거의 팬 사인회예요. 하하하.”
“아, 그러네. 사인받아도 되겠네요. 받았어요?”
여 박사는 저도 모르게 100.5 레지던트를 바라봤다. 여자의 시선을 받은 100.5는 땀을 흘리며 이것이 우리의 첫 대화라고 기억해 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능연의 사인? 잠시 기억을 더듬은 100.5는 곧 후회했다. 사실 능연의 사인을 받을 기회가 매우 많았었다. 그런데…….
“능 선생 사인받고 싶으면 내가 받아 줄 수 있어요.”
자신의 원칙과 ‘평생의 숙적’ 방어 대책엔 살짝 위배되지만, 더 심층 원칙이 나타날 때는 원칙을 개정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니까.
“필요 없어요. 내가 받으면 돼요.”
여 박사는 매우 자신감이 넘쳤고 또 매우 대담했다.
100.5는 멈칫하고는 질척대기 시작했다.
“능 선생은 사인 안 해줘요. 정말로 사인받고 싶으면 스킬이 필요한데.”
그러나 여자 박사는 ‘무슨 스킬이요?’ 같은 질문 없이, 어느새 곧장 능연을 향해 다가갔다.
“저 녀석이…….”
100.5는 저도 모르게 기천록을 바라봤다. 여자 박사의 이런 행동은 잘못하면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적에게 투항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물론 능 선생은 전우지 적이 아니지만, 외과 의사 세상에서 체면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주임이 혹시라도 언짢아할 수도…….
“배울 기회가 생기면 바로 잡아야지. 난 예전에 뭘 배우길 위해서라면, 다른 병원에 무슨 수술 있다고 들으면 그 전날 바로 출발했어. 그래야 가서 자고 수술실에 일찍 들어갈 수 있으니까. 늦으면 쫓겨난다고.”
기천록이 너그럽게 하는 말에 사람들은 그 말이 진짜인지 가까인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우리도 능연처럼 수술해 댔지. 수술 있으면 다른 건 생각하지도 않고 수술만 했어. 쉬는 건, 언제든 쉴 수 있으니까. 물 끊기고, 전기 끊기고, 수술실 설비 고장 나고, 길이 무너져서 환자가 못 넘어오고…….”
기천록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땐 최장 서른, 마흔 시간까지 수술한 적도 있었지. 수술할 땐 멀쩡하던 사람이 수술 끝나면 바로 기절하고.”
“대단하세요…….”
“완전 대단하네요!”
사람들은 다시 공손하게 아부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능 선생처럼 수술도 잘하고 환자 회진도 열심히 하는 의사가 대단한 거지. 능 선생 지금까지 자기가 수술한 환자, 적어도 한 번은 직접 회진한다며?”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이라고 무시하지 말라고. 우리 병원 주임도 그렇게 하는 사람은 몇 없어. 그걸 유지하는 게 더 대단하지.”
100.5는 주임이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주임이라니. 능연이 벌써 주임급 의사란 말인가. 점점 대단해지는데?
그 생각에 100.5 레지던트는 저도 모르게 생수 뚜껑을 비틀어 꿀꺽꿀꺽 비웠다.
“능 선생님, 저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의사 장원이라고 해요. 제가 좀 도와 드릴게요.”
여자 박사가 대담하게 다가가 자신 넘치는 모습으로 말을 걸었다. 뒤돌아 그녀를 본 능연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 선생 따라가세요.”
일하는 도중에 누가 나타나서 도와주겠다고 할 때, 능연은 무슨 의도가 있나 의심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도움을 받아들였다.
연문빈도 걱정하지 않고 여자 박사를 힐끔 바라봤다.
“그럼 뒤에서 들어요.”
회진할 땐 잡일이 있기 마련이라 굳이 지금 여자의 의도를 밝힐 필요가 없었다.
능연은 계속해서 환자 회진을 진행하면서 무심결에 시스템 제시어를 바라봤다.
- 퀘스트 2-2: 티끌 모아 태산
- 퀘스트 내용: 스킬을 획득할 확률이 있음. 보물 상자를 여러 개 모아라.
- 퀘스트 진도: (2/5) 중급 보물 상자; (500/500) 초급 보물 상자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곽 주임님은 요즘 뭐 하세요?”
능연이 갑자기 돌아보고 그렇게 묻더니 계속해서 다음 회진할 환자를 바라보며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곽 주인님? 불벼락 쏘고 계시겠지……?”
연문빈은 잠시 고민해봤지만, 다른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빈도는요? 늘었어요, 줄었어요?”
“흠, 그러고 보니, 줄었네? 우리가 나와 있는 동안 두 번 있었다고 들었어.”
연문빈은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성격도 좋아지셨네.”
“그게 돼요?”
능연은 연문빈의 대답이 기대에 어긋났다고 생각했다. 능연의 물음에 연문빈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확률로 따지면 낮긴 하네. 그럼 왜 화가 줄었다고 생각하는데?”
능연은 자신의 추측을 말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아서 성격이 좋아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잘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