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04화 (783/877)

“환자분, 신체검사 좀 할 거예요. 바지 좀 올려 주세요.”

능연은 침대로 다가가서 검사 리포트를 대충 보고는 촉진을 시작했다. 외과 의사 생활이 길어지면 다들 비슷한 습관이 생기는데, 검사 리포트보다 자기 눈으로 보고 기계와 손으로 만져본 결론을 믿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내과는 외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운화병원은 전형적인 외과 계열 병원이고, 역대 원장도 기본적으로 외과 출신 의사가 맡았다. 특히 최근 20년은 순수한 정통 의학원 출신 외과 의사가 외과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바로 그런 이유로 운화병원이 성립과 육군병원을 제압하는 지역 정상급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성립 등 다른 병원은 내과 외과 의사가 번갈아 가며 원장을 맡았고, 내부 발전이 더 균형 잡혔지만, 경쟁력은 더 약해졌다.

일반적으로 병이 나기 전에는 병원, 의사 그리고 명의 같은 것에 별 개념도 없고 공감도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병이 난 사람은, 특히 만성 혹은 심각한 질환을 앓는 사람은 병원, 의사, 명의 등등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게 된다.

능연 앞에 있는 환자도 마찬가지로 이름을 듣고 온 것이라 능연에게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은 후에도 장시간 입원을 고집했다.

오늘은 벌써 능연이 세 번째로 신체검사를 하는 것이어서, 환자는 매우 협조적으로 상처를 내보이며 미소 지어 보였다.

“요 며칠 괜찮은 편이에요. 그래도 힘은 잘 안 들어가고, 아파요.”

“상처는 괜찮습니다. 회복도 잘 되고 있고요. 재활 강화하세요.”

능연이 말한 몇 가지 제안은 사실 평소에 레지던트들이 여러 번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상급 의사가 말하면 환자들은 매우 협조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마디 더 하고는 옆 침대로 향했다.

“보호자는요?”

간호사가 나지막이 물었다.

“일하러 갔어요. 일일이 붙어 있지 않아도 난 괜찮아요.”

나이 든 부인이 답답한 듯 대답했다. 능연은 가까이 다가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릎 좀 볼게요. 잘 회복했으면 퇴원하셔도 됩니다.”

“아직 퇴원하기 싫어요. 며칠 더 있고 싶은데.”

비스듬히 누운 노인은 방어하듯 젊은 의사들을 바라봤다. 간호사는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병실 환자는 모두 퇴원을 미루고 있었다. 퇴원하기 싫어하는 환자 중엔 정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도 있고, 그냥 우기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 검사부터 해보고요.”

능연은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요즘 그는 그만의 일하는 방식이 있었다. 자기가 잘하는 기술부터 시작하는 것.

노부인은 ‘아’ 하고 대답하고는 누운 채 힘을 쓸 수 없다고 대답했다.

“제가 옷 좀 열어 드릴게요.”

간호사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에 여원은 멈칫하고는 직접 나서고 싶지 않아서 실습생 제윤조를 향해 눈짓했다. 이것 역시 능연의 회진에서나 있는 일이지, 다른 초짜 의사 회진엔 간호사들이 따라오지도 않아서 무슨 일이든 직접 해야 했다.

제윤조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의대생이라, 여원의 눈빛이 무슨 뜻인지 파악하는 사이, 누군가 뒤에서 밀었다.

“저도 도울게요.”

한미였다. 언제나 시원스럽게 일하는 그녀는 바로 커튼을 치고는 슉슉슉 노부인의 옷을 정리했다.

“전에 해본 적 있어요?”

한미가 걸친 하얀 가운을 본 간호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간병인 한 적 있어요.”

“아, 당신 의사 되고 싶다는…….”

한미가 자연스럽게 웃으며 하는 말에 간호사가 이제 알겠다는 대답했다.

“네 의사 되고 싶어 하는 청소부예요.”

한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간호사의 말을 이었다. 두 사람 뒤에 스무 명쯤 있는 의사들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미를 바라봤다. 한미는 역시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청소부, 매점,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이 무시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나중엔 대부분 아예 관심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부끄러워하든, 신경 쓰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한미는 노련한 동작으로 침대를 흔들었고, 노부인의 빈 잔에 물도 채워 주었다.

“왜 그만뒀어요?”

한미와 함께 물러난 간호사는 궁금한 듯 또 질문했다.

“간병인이요?”

“네. 잘하는 거 같은데. 힘들어하지도 않고.”

간호사는 다방면 오지라퍼가 되어 궁금해했다.

“간병인은 밤새워야 하잖아요. 난 밤새우는 거 싫거든요.”

“의사 되면 더 많이 새워야 하는 거 모르시나 봐요.”

“의사 되어서 밤새우면 더 의미 있죠.”

“의미 있겠죠, 의사들은 그냥 자면 되니까.”

간호사가 입을 삐죽였다.

“쉿.”

여원이 앞 나타나서 두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간호사는 다시 입을 삐죽였지만, 어찌 됐든 능연의 회진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미는 여원 손목의 서브마리너 그린을 주목했다. 여원의 가늘고 작은 손목에 커다란 손목시계를 차고 있으니 어쩐지 어색했다. 그러나 며칠 내내 응급센터에서 떠들썩한 화제라서 한미도 호기심이 가득했다.

2년 동안 안 먹고 안 마시고 모아야 살 수 있는 시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이었다.

웅웅웅. 좌자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나 좌자전의 핸드폰은 항상 울려서 다들 개의치 않았다. 좌자전 역시 사과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여원이 있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

“좌 선생님, 능 선생 지금 시간 되나요? CPR 환자 있어요.”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다급한 소리에 좌자전은 얼굴을 찌푸렸다.

“응급센터에 CPR팀 있잖아.”

능연이 CPR을 시작한 이래, 특히 초장시간 CPR을 한 후로 CPR 팀이 생겼고, 한 사람이 하는 것보다 명확하게 성공률이 더 높았다.

전화 저쪽에선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해요. 40주 임산부입니다. 벌써 15분 동안 CPR 했는데 정 안 되면 배 열어야 해서요.”

심폐소생술의 목적은 몸, 특히 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폐소생을 잘해도 산소 공급을 보장할 수 없고, 특히 아이를 가진 임산부에겐 아무리 좋은 심폐소생술도 태아의 산소 공급을 보장할 순 없었다.

다시 말하면 배를 여는 것이 태아에게 유리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는 것만이 임산부를 살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건 산모를 살릴지, 태아를 살릴지 문제였다.

“너 이 새끼.”

좌자전은 핸드폰에 뜬 이름을 다시 보고 욕설을 내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 너머 정배도 쓴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능연이 병원에 들어올 때 이미 고 연차 레지던트였고, 작년엔 이미 주치의가 되었다. 좌자전도 평소라면 응급센터 주치의인 정배를 존중했다. 그러나 지금 좌자전의 말투가 좋지 않고 심지어 태도가 저래도 정배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본인이 잘못했으니 상대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래도 심폐소생은 신의 기술이 아니라서 심장이 멈춘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만 하면 심폐소생을 잘하고 못하고는 아주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역시 환자 본인의 상태가 좋은지, 체력이 좋은지, 심장이 더 튼튼한지에 달렸다.

그래서 지금 능연을 부르는 건, 정배 손의 뜨거운 감자를 능연에게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건 CPR 팀을 부르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엄마를 살릴지, 아이를 살릴지, 이런 문제를 마주하고 싶은 의사는 없는 법. 사실상 하나를 버린다고 하나를 꼭 살린다는 보장도 없고 둘 다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다른 환경, 다른 환자였다면, 정배도 절대로 그런 전화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 출혈 환자라면 능연을 찾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은 낚싯대를 던진다고 바로 효과 보는 그런 기술이 아니었다.

능연이 초장시간 심폐소생을 리드해서 진행한 경험이 많고, 상당한 경험과 이긴 전적이 있다고 해도, 통계적으로 심폐소생에 능통한 의사라고 보통 의사보다 성공률이 더 높다는 실질적인 통계는 없다.

정배도 가장 먼저 능연을 떠올렸을 뿐이다. 평소에 관찰하고, 들은 정보로 은연중에 능연의 심폐소생 성공률이 높다고 느꼈다. 근거 없는 개인적인 판단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붙들 수 있는 지푸라기는 능연뿐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나중에 원망듣고,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정배도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정배는 흐려진 얼굴로 고개 숙이고 침상 위 임산부를 바라봤다.

살짝 통통한 몸집에 하얀 얼굴이 동글동글한, 서른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병원에 오기 전에 얼굴에 옅게 화장도 해서 얼굴에서 빛이 났다. 살짝 봉긋한 배에 임신선이 두드러지지 않은 걸 보면 평소에 신경 써서 관리한 듯했다.

정배는 아는 사람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자기 여동생, 누나, 혹은 어머니에 대입해서 생각했다.

임신하고 매우 즐겁고 행복했을 것이고, 가정환경도 괜찮아 보였다. 힘든 40주 임신 기간이 지나고 나면 유아용품을 구매할 준비를 하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대했을 것이다. 산모와 태아의 생명을 한꺼번에 위협할 위험이 닥치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니, 이건 위험이 아니라 재난이었다.

정배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의학을 배우고 시작한 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의사로 따지면, 이제 주치의 대열에 들어간 정배는 직업 인생이 걸음마를 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평범한 성인이면 10년 직장 생활을 한 지금 눈앞에 벌어진 모든 것에 충분한 판단과 인식이 있었다.

능연을 부르는 게 이 여인과 그녀 배 안의 아이가 살 가능성이 가장 큰 기회였다. 두 가정, 혹은 여러 가정을 구할 가장 큰 기회고.

그것 때문에 누군가의 눈 밖에 나야 한다면 차라리 그러자.

정배는 이를 악물고는 한창 CPR 중인 사람들 향해 이제 능연이 곧 오니까 조금만 버티라고 말했다. 의사들도 대답하고는 다시 열중했다.

상급 의사를 부르는 것도 룰이 있어서,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진료과 의사를 콜 하거나 같은 팀 부주임 의사를 부르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능연을 부르는 건 선 넘은 행동이었다.

이 환자의 복잡한 상황을 생각하자, 정배보다 경력이 더 짧은 초짜 의사들은 더 걱정됐다.

“능 선생이 정말 온대요?”

정배와 항상 어울리는 레지던트가 확인하려는 듯 다시 물었다.

“응.”

“하지만 벌써 20분이나 CPR 했는데요.”

“다른 방법 있어?”

정배가 매섭게 묻는 말에 레지던트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 방법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을까.

“내가 할게.”

정배도 답답해져서 CPR하고 있는 의사와 바꾸고 직접 올라가서 양손을 교차하고 하나, 둘, 셋 하고 외쳤다.

표준적인 심폐소생술은 1분에 100회 누르고, 누를 때마다 3cm 이상 눌러야 했다. 그렇게 압박하는 건 의사의 체력 부담에도 매우 영향이 컸다.

이미 두 바퀴 했었던 정배는 올라가자마자 곧 땀이 주르륵 흘렀다.

“더 빠르게 눌러요.”

능연이 어느샌가 사람들을 데리고 처치실에 나타났다. 정배는 바짝 긴장해서 뒤돌아보고는 금세 긴장을 풀었다.

“더 빨리요. 속도 안 나오면 교체하고요.”

능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듣기 싫은 내용이었지만, 아랑곳할 겨를이 없었다.

“힘이 넘쳐서 괜찮아.”

정배는 자조하듯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계속 압박했다. 처치팀에서 정배가 가장 실력 좋은 의사였고, 이제 능연까지 왔으니 힘을 아낄 생각이 없었다.

곁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심박, 혈압 등 수치를 보고하는 사이, 능연은 듣는 듯 마는 듯, 정배의 동작에 더 집중했다.

모든 문제는 임산부의 심장이 이미 멈췄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배가 너를 불렀어?”

처치실 구석에서 나타난 주 선생의 얼굴이 심각했다.

“네.”

능연은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산부인과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여기!”

능연의 기억에 별로 남지 않은 평범한 용모, 안 유명한 서른 남짓한 의사가 앞으로 나섰다.

“태아는 얼마나 버틸 것 같아요?”

“태아가 40주라…….”

산부인과 주치의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태아만 따지면 지금 배 열고 꺼내는 게 살 확률이 높아.”

그러나 지금 배를 열면 산모는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선택이 매우 어렵다는 걸 잘 아는 능연은 티 내지 않고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CPR 20분째죠? 30분 되면 결정할게요.”

“능 선생, 솔직히 말할게. 환자 지금 상태로 심정지 30분이면, 태아는 죽어.”

산부인과 주치의가 눈을 질끈 감고 말을 꺼냈다.

“지금 배 열고 꺼내도 태아가 산다는 보장도 없는 거 아닌가요?”

능연이 되묻는 말에 산부인과 의사는 반박하고 싶지 않아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 생존율이 더 높아. 배를 열자고 건의하는 게 아니라. 난…….”

“책임 문제?”

막 숨을 돌린 좌자전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런 상황을 일부러 만든 게 아니잖아요.”

산부인과 주치의는 정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20분이면 이미 길어요. 게다가 10분 더 한다고 산모가 사는 것도 아니고…….”

처치실 분위기가 딱딱해졌다. 상황이 이러니 다들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가족 의견을 묻자고 제안하는 사람은 없었다.

능연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뒤이어 다시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10분 더 CPR 합니다. 산부인과, 가장 실력 있는 선생님을 모셔주세요. 반드시 10분 안에 도착해야 합니다.”

“능 선생…….”

“태아가 살아 있다면, 어머니한테 10분 더 줄 수 있도록 열심히 버틸 거라고 믿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더 고집을 부리고 싶었지만, 능연이 천천히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더는 의견을 묻지 않고 바로 정배를 바라봤다.

“이제 저랑 바꿔요. 10초 셉니다.”

“원 주임님. 시간 되시면 사람 데리고 처치실로 와 주세요. 임신 40주 임산부 심정지 20분입니다. 지금 능 선생이 CPR 중이에요.”

좌자전의 전화에 신분 지위, 콜 등 따지려던 원고가는 능연이 직접 나섰다는 말에 바로 승낙했다.

“10분 안에 가겠습니다.”

“최대한 빨리요. 능 선생이 10분 뒤에 최종결정할 예정이라서요.”

좌자전은 대충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원고가가 지금 뭘 하는지 몰라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고가가 가장 빠른 속도로 처치실에 나타날 것을 확신했다. 그게 안 되면 응급센터 ICU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또 원고가가 자신을 증명할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능연이 필요할 때, 가장 중요한 처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기회. 원고가의 지능이 정상이라면 이때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좌자전은 재빨리 산부인과 주임의 전화를 누르고 통화가 연결되자 재빨리 말했다.

“이 주임님, 능 선생이 지금 임신 40주 임산부 CPR 중입니다. 네, 전화 받으신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주임님 말고 믿을 사람이 없어서요. 괜찮으시면……. 네, 능 선생이 9분 뒤에 최종 결정한답니다.”

다시 전화 끊고, 다시 연결하고, 좌자전은 순서대로 마취과, 신생아과, 그리고 심장내과, 심장외과 그리고 마지막에 겨우 곽종군, 원무과에 전화했다.

좌자전이 설명하는 상황, 그리고 전화한 이유를 알게 된 다음, 다들 원고가와 비슷한 태도로 지체 없이 대답했다. 지금 운화병원에서 능연이 직접 나선 일에 콜 하면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사실 좌자전이 전화하지 않고 각 진료과로 긴급 콜만 해도 능연의 이름만 대면 각 진료과에서 최강 정예 부대를 보낼 것이다.

연달아 전화를 돌린 좌자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능연의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심폐소생을 표준, 그리고 높은 빈도로 하려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구하려면 표준 그리고 높은 빈도로 해야 했다.

능연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흉부 압박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해결 방안을 고심하느라였다. 고 퀄리티 흉부 압박으로도 지금 이 환자를 살린다는 보장이 없었고, 임산부에게 적합하지 않는 약물을 대량 투여한다고 해도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답이 뭔지 잠시 고민했던 능연은 이내 그 생각을 멀리 던져 버렸다. 지금 이 순간엔 정확한 답은커녕 살릴 기회 하나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그 생각에 능연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기도 검사하고, 제세동기 준비. 에피네프린 1mm, 정맥 주사.”

앞의 두 명령은 당연했지만, 뒤의 명령에 마취과 의사가 잠시 멈칫하더니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에피네프린 투여한 지 4분도 안 됐어.”

“네.”

능연은 오더를 취소할 생각이 없었고, 마취의는 묵묵히 물러났다. 곁에 있는 의사들은 두 사람의 대화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럴 땐 집도의의 결정이 그게 무엇이든 정확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약물을 쓴 후 발생하는 위험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그러나 약물을 쓰지 않고 치료도 하지 않으면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환자도 죽는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제세동기 준비됐어요.”

간호사가 젤을 바른 후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200J.”

능연은 뒤로 물러났고, 연문빈이 제세동기를 들고 환자 가슴에 안정적으로 눌렀다. 소리 없는 진동 후, 모두 모니터를 주시했다. 평평한 직선이 솟아오르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다.

젊은 의사들이 뒤돌아봤더니, 능연이 어느새 다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심폐소생 과정 중에 흉부 압박이 가장 중요했고, 심정지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았다. 그러니 잠시 제세동기를 쓸 때를 제외하곤, 능연은 바로 흉부 압박으로 돌아갔다.

흉부 압박은 순전히 기계 물리치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심장은 원래 펌프 역할인데, 펌프 기능이 멈췄으니 혈액 펌프도 멈췄고, 그래서 끊임없이 흉부 압박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환자의 장기, 뇌, 그리고 복중 태아, 모두 흉부를 압박해서 보내는 혈액으로 숨 쉬고 있었다. 고 퀄리티 흉부 압박은 40%, 최고 60% 혈액을 공급할 수 있다. 그것으로 장기와 뇌, 그리고 태아가 최소한 필요한 양은 보장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초장시간 심폐소생의 이론이며, 능연이 10분을 바라는 원인이었다. 그는 10분 사이에, 눈앞의 임산부에게 지대한 생존 기회를 가지고 올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태아의 손상도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초는 기초고, 아무리 흉부 압박을 잘해도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으니, 제세동을 해야 가능했다.

80%의 성인의 심장이 멈추는 이유는 심실세동(심장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해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지 못하는 현상) 때문이다.

정확한 방식으로 심폐소생 플로를 따르면 일반인이라도 이론상으로는 심정지 온 환자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운화병원, 또는 창서성 안에서 손꼽히는 심폐소생 전문가인 능연도 그런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

정확한 타이밍, 정확한 제세동, 거기에 작은 운이 기적을 가지고 올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 문제는, 능연이 아직 정확한 타이밍을 모르고, 정확한 제세동에 필요한 에너지도 모르고, 어떻게 운을 잡아야 할지는 더욱 모른다는 것이었다.

“에피네프린.”

능연은 고심 끝에 다시 명령을 내렸고, 간호사는 망설이지도 않고 시행했다. 마취의는 숨을 들이마시며, 현장에 막 도착한 마취과 주임을 향해 나지막이 벌써 네 번째라고 말했다. 20분 동안 두 번 사용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능연이 두 번 더 사용했다.

마취과 주임은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그저 능연의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가이드랑 달라서…….”

“성공하면 자기 경험으로 가이드를 바꾸는 거야.”

마취과 주임은 손을 흔들어 부하를 내려오라고 하고는 자기가 침대 곁 작은 의자로 가서 앉았다.

신생아과, 산부인과, 그리고 ICU 주임도 착착 도착했다. 그러나 침대 곁에 모여들어서 능연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흉부 압박을 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심폐소생이 끝나기 전엔 여기 모인 주임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혹시 심폐소생이 실패하면 헛걸음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사망 토론할 때 태클 걸릴 일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능 선생, 내가 제세동할게.”

주변을 둘러보던 원고가가 알아서 일을 찾아냈다. ICU에서 오랜 시간 일한 만큼 제세동기를 적잖게 써 왔다. 심폐소생도 사실 경험이 많았고. 그러나 능연은 의외로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제세동기 필요 없어요.”

“안 한다고?”

“해요.”

원고가가 놀라서 하는 말에 능연은 간단히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속속 도착한 주임들도 영문을 몰라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묻기도 그런 타이밍이었다.

능연은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계속해서 흉부 압박을 했다. 능연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 연문빈이 나섰다.

“능 선생, 바꿔. 내가 할게.”

“괜찮아요.”

능연은 고개 숙인 채 힘껏 흉부를 압박했다. 1분에 100번 넘게 압박하니 땀이 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땀이 목을 타고 뚝뚝 흘렀다.

연문빈은 영문도 모른 채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10분에서 이미 7분이 지나 있었다.

갑자기, 능연이 휙 동작을 멈췄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는가 싶더니, 환자 흉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가슴이 완전히 올라오자 망설이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꾹 쥐고 환자 심장 쪽을 힘껏 내리쳤다.

“흉부 타격?”

능연의 행동에 원고가가 놀라서 입을 벌리며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모니터를 바라봤다.

삐- 하는 소리와 작은 돌기가 모니터 구석에서 살며시 솟아올랐다.

“뛴다!”

“심장 박동 회복했어?”

“내려쳐서 돌아온 거야?”

한참 숨죽이고 있던 의사들이 살며시 환호성을 쳤다.

응급센터 의사가 아니더라도 사실 죽음은 많이 봐왔다. 하지만, 의사가 평범한 사람의 생로병사를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어머니의 생사가 어떤지 모를 땐, 또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새로운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땐 웬만해선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정배 같은 미꾸라지도, 평소엔 간호사와 농담이나 하고 실실거려도, 이럴 땐 직업 리스크까지 걸고 유일한 해결 방법을 찾고 싶어 한다.

정배는 힐끔 능연을 훔쳐봤다. 다른 건 몰라도, 두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라면 능연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모자 모두 살 수 있다면 더욱 기쁜 일이고.

원고가도 놀라움과 감탄이 섞인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흉부 타격은 60년대에 시작된 응급 기술이었다. 가장 먼저 보도된 것이 1960년이고, 대단한 발명은 아니지만, 효과가 의외로 좋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널리 퍼졌다.

60년대부터 2000년까지, 흉부 타격의 장점이 매우 두드러졌다. 우선, 제세동기가 필요 없고, 그렇다는 건 어느 구급 현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제세동기가 아직 발명되지 않고, 덜 보급된 시대엔 흉부 타격이 유일하게 채택할 수 있는 제세동 수단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요인은 96년 이전 제세동기는 모두 단상파형 기술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2000년 이전 의학 드라마를 보면, 의사들이 입만 열면 360J이라고 소리치는데, 2000년 이후엔 200J, 심지어 100J까지 낮춰졌다.

이중파형 제세동 효과는 명백히 단상파형보다 높아서 2010년이 되었을 땐 가이드에도 명백하게 흉부 타격을 이선 기술로 나열했다. 1996년에 개발한 이중파형 제세동기가 그때서야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중파형 기술이 나오기 전엔 흉부 타격 기술도 사실 효과 좋은 기술이었다. 적어도 단상파형 기술보다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조기 심폐소생 리포트를 보면 흉부 타격의 성공률도 매우 높은 편이었고, 덕분에 흉부 타격의 사용 범위도 상당히 넓었다.

특히 60년대, 70년대, 80년대까지는 단상파형 기술조차 세상에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흉부 타격은 일반 의사들이 사람 살리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2010년 가이드 이후부터 흉부 타격이 이선 기술로 나열되면서, 그 기술을 쓰는 의사도 점점 줄어들고 사용하게 되지 않게 된 것이다.

어찌 됐든, 기술이라는 것도 연습해야 하니까.

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점점 더 많이 쓰면서 흉부 타격은 점점 쓰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익숙하지 않으니 더더욱 쓰지 않게 된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원고가도 흉부 타격을 할 수는 있지만, 쓴 적은 몇 번 없었다. 능연이 쓸 줄은 더욱 몰랐고, 이렇게 제대로 해낼 줄은 더욱 몰랐다.

지금 이 순간, 결과론으로 보면, 능연이 흉부 타격을 사용한 건 제세동기보다 좋은 선택이었다.

제세동기는 강대한 전류가 심장을 통과해서 심실세동을 중지하고 동결절을 다시 일으켜 심장 박동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제세동기는 전류 작용을 통한 것이다. 단상파든 이중파든 그건 차이가 없다.

반면에 흉부 타격은 물리적이다.

이미 여러 번 제세동기를 사용했는데 다시 전기 충격을 준다고 만족할 결과가 나올까? 사실 지금 가이드 내용에 따르면, 제세동기 한 번 사용하는 건 효율이 높지만, 그 후로 이어지는 제세동도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처음 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능연에게 시간이 많다면, 제세동기를 두어 번 더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게, 리스크는 더 높을 수 있어도 차라리 효과가 더 높을 수도 있다.

이것 역시 그랜드 마스터급 심폐소생 전문가와 가이드만 믿는 일반 의사 사이의 차이 중 하나였다.

일반 의사는 가이드에서 제공하는 방식 외에 다른 심폐소생 기술을 전혀 연구할 일이 없으니까 다른 선택도 없다. ICU과 응급센터 의사는 다른 건 조금 더 배울 수 있어도 전문가급까지 연구하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가이드엔 언제나 가장 기초적인 방안만 있기 마련이다.

사실 심폐소생 가이드의 다년간 변화만 봐도 완전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고, 심지어 믿을 수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초기 심폐소생 가이드에선 흉부 압박을 60-80회/분으로 규정했고, 88년에서야 80-100회/분으로, 2010년엔 고퀄리티 흉부 압박은 100회/분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88년 전에 환자가 가이드를 정확하게 따르는 의사를 만났다면 살 수 있을지도 보장할 수 없고, 후유증도 분명 많이 남았을 것이다.

임상 의학은 어디까지나 경험 의학이고 성공해야 가장 좋은 이유가 된다.

능연이 흉부 타격을 선택했고, 성공했으니 그의 경험과 안목이 정확하다는 걸 증명한 셈이었다.

“간이 커도 너무 커.”

원고가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는 얼굴로 능연을 바라봤다.

혹시 실패했다면, 아내와 아이를 동시에 잃은 남편이 너무 비통한 나머지 병원과 의사를 고소한다면 변호사는 흉부 타격이 틀린 선택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물론, 성공했으니 질타받을 일은 없지만.

“이제 열까?”

산부인과 주임은 심장박동 곡선이 돌아오려고 하자, 벌써 팔을 치켜들고 실리콘 장갑을 꼈다. 아직 멍하니 있던 주임들도 정신을 차리고 능연을 바라봤다.

“잠시만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능연은 백성들과 동고동락하지 않고, 여전히 침착하고 객관적인 상태에 있었다. 환자의 심장이 차차 회복하고 있다고 바로 응급 제왕 절개를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운화병원 산부인과 기술이야 몇십 초, 심지어 십몇 초만 있어도 아이를 산모 배에서 꺼낼 수 있겠지만, 산모의 몸이 그 신속한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바로 배를 연다는 건 산모의 목숨을 다시 도박 테이블에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도박해야 한다면, 좀 더 좋은 패로 할 수 있길 바랐다.

“얼음모자, 얼음주머니 가져와요. 체온 내려야 해요.”

능연은 모니터의 곡선과 수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새로운 명령을 내리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산부인과 주임을 향해 다시 한번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반대하고 싶었지만, 능연을 믿어 보기로 했다. 주변에 잔뜩 몰려 있는 의사들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능연이 기적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고 더 믿고 싶었다.

얼음모자와 얼음주머니는 응급센터에서 자주 쓰는 비품이었다. 주요 기능은 인체에서 가장 취약한 기관이 혈액 공급 부족으로 가장 먼저 무너지지 않도록 뇌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정배는 서둘러 산모에게 올리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환자의 입술 색을 살폈다.

“조금 붉어진 것 같은데?”

그리고는 서둘러 환자 목을 짚어 보고는 흥분해서 고함쳤다.

“맥박도 강해졌어.”

능연도 마찬가지로 우선 맥박부터 짚고, 동공을 보고, 호흡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한 바퀴 체크하느라 몇십 초 쓴 다음에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열죠.”

아무도 능연의 행동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럴 땐 어떤 결정이든 쉬운 것이 아니니까. 특히 산모와 아이 모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부주임급 아래 의사는 감히 이런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다.

그리고 능연이 결정을 내린 후로 다들 한시름 놓았다. 진작 기다리고 있던 산부인과 의사가 바로 나섰다. 단순한 제왕절개는 사실 외과의도 가능하다. 스텝 자체는 매우 단순했고, 관련 해부 구조를 조금만 배우고 집중하면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오늘 능연은 제왕절개에 도전할 생각이 없었다. 같은 의사라고 해도 산부인과 주임이 훨씬 제왕절개에 익숙할 테니까. 주임으로 승진한 다음 작은 수술을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다른 진료과 의사와 달리, 제왕절개는 산부인과에서 특수한 지위에 있는 수술이고,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이었다. 일 년 내내 산부인과 주임이 직접 나서야 할 수술이 몇 번은 생겼고, 덕분에 산부인과 주임은 그 익숙함을 지켜갔다.

오늘도 바로 산부인과 주임이 직접 출동해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초짜 의사하고 비교하면 주임이 실제로 하는 제왕절개 횟수는 적지만, 해부 구조에 더 익숙하고 기본 동작이 더 정확한 사람이 수술하면 산모에게 더 좋다.

사실 산부인과 주임은 정상적인 스텝대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리 마취과 주임과 확인한 대로 마취과 의사가 요오드를 환자 복부에 붓는 걸 보고는 바로 메스를 들고 배를 갈랐다.

대충 몇 번 그리는 것 같더니, 산부인과 주임이 바로 손을 뻗어 주변 지방을 잘라내고는 온몸이 시퍼런 태아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40주 태아는 이미 완전하게 발육한 상태로, 매우 허약하고 쪼글쪼글해서 그렇지, 얼핏 보면 작은 괴물 같아 보였다.

산부인과 주임은 탯줄을 자르고는 눈을 찌푸리고 살핀 다음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동시에 능연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신생아 CPR?”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해서, 다들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아무래도 비통하고 유감스러운 사망 사고가 아닌 원만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더 상상하기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다시 능연을 바라봤다. 성인과 달리 매우 작은 영아의 심폐소생술은 확연하게 다른 영역이었다. 정배도 트레이닝이야 받았지만, 실제로 조작한 횟수는 눈물 날 정도로 적었다.

능연은 당연히 망설이지도 않고 앞으로 나섰다.

“삽관, 마취, 모니터.”

“내가 할게.”

마취과 주임이 미리 준비한 신생아 기관 키트를 꺼내고서 심각한 얼굴로 이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에게 삽관을 시도했다.

신생아는 겨우 2~3킬로그램으로, 50킬로 넘는 어른과 비교하면 모든 장기 조직이 10배 축소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 마취과 주임 역시 자주 신생아과로 달려가는 경험이 있어서, 정신 집중했더니 한 번의 시도로 성공적으로 삽관했다.

간호사와 의사들 모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능연은 손가락을 풀고는 중지와 무명지를 뻗어 태아 가슴 정중앙 유두와 이어진 살짝 아래의 부분에 올렸다.

“1001, 1002…….”

능연의 동작은 매우 가벼웠고, 목소리도 매우 작았다. 모든 이의 시선도 능연의 동작에 따라 살며시 흔들렸다.

손가락 두 개만 쓰는 심폐소생이지만 누르는 압력은 성인에 뒤지지 않아서 기본적으로 4cm 정도까지 내려가야 효과를 보고, 마찬가지로 빈도도 100회/분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압박 깊이와 빈도로 성인을 눌러도 두드러지는 기복 움직임이 보이는데, 겨우 2~3킬로그램 신생아에게 할 때의 시각적 충격은 더욱 강렬해진다.

“저렇게 세게 눌러야 해요?”

구석에서 지켜보던 젊은 간호사가 저도 모르게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입이 마를 정도로 긴장해서 바라보던 남자 의사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게 표준 동작이에요. 신생아에게 CPR 하는 건 대동맥 혈압을 되돌리고 혈액 순환을 살리기 위해서라서 압력이 모자라면 안 되죠.”

“그렇군요…….”

간호사는 습관적으로 나긋나긋 대답했고, 남자 의사는 자신의 지식이 공을 세웠다는 생각에 순간 가슴을 활짝 폈다.

“대동맥 혈압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딘데?”

이번에도 여자 목소리인데 조금 싸늘했다. 남자 의사는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롤렉스 녹색이 아래에서 어른거렸다.

“여, 여 선생님.”

젊은 의사가 주뼛주뼛 대답했다. 치프 레지던트인 여원은 응급센터 초짜 의사들을 기본적으로 모두 한 번씩은 학대했다. 그 일로 의사가 불만을 품더라도, 이물 제거할 때 몇 번 지명 당하게 되면, 여원을 볼 때마다 생리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어디냐고.”

여원이 눈썹을 꼬면서 서브마리너 그린을 풀어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제, 제 생각엔…… 수축압?”

초짜 의사가 쭈뼛쭈뼛 대답했다.

“관맥압이야.”

여원이 싸늘하게 말을 자르고는 말을 이었다.

“곁에서 지켜볼 땐 조용히 보도록.”

“예.”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지.”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곽종군은 매서운 한마디로 자신의 등장을 온 수술실에 알렸다.

초짜 의사는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숨을 죽였다.

“곽 주임님.”

“곽 주임님!”

다들 목소리를 낮춰서 곽종군을 향해 인사했다.

“뭐 도와줄 일 없나?”

곽종군은 일부러 몇 분 늦게 도착했다. 좌자전의 보고를 듣고 바로 올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늦게 오는 만큼 능연이 주도할 시간이 주어질 테니.

아무도 곽종군의 농담에 웃지 않았고, 수술실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곽종군은 혼자 피식 웃고는 모두를 위로하듯 덧붙였다.

“적어도 산모는 살렸잖나.”

그리고는 여전히 정신 집중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능연을 바라봤다.

“신생아 상태는 어떤가.”

“아까보단 낫습니다.”

“아까보다 낫다고?”

곽종군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묻자, 능연은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능연은 신생아가 엄마 배에서 이제 나왔으니 최선의 응급 처치를 받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초장시간 심폐소생술할 준비도 끝냈고. 아직 신생아 초장시간 심폐소생술 성공 사례는 없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술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점점 사라졌다. 주임을 포함한 의료진들 모두 능연의 결연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와앙!”

큰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후우…….”

여원 곁에 서 있던 젊은 의사가 저절로 깊은숨을 토해냈다.

신생아의 울음을 들은 능연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시간 심폐소생 준비도 했고, 한 시간, 두 시간 계속하면 신생아의 생존율을 어찌 됐든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생 생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막에서 물을 찾을 준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 준비하는 건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체력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물을 찾으면 행복이라는 듯이.

“어서 NICU로.”

능연은 간단한 검사만 하고 바로 신생아를 신생아 중환자실 의사에게 넘겼다. 응급센터 ICU와 마찬가지로 NICU도 신생아과 부속 치료 팀으로, 28일 이하 신생아를 전담했다.

콜을 받고 온 신생아 중환자실 주임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자마자 심폐소생을 한 신생아 케어가 얼마나 어려울지 명백했다.

“최선을 다하겠네.”

주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우선 결심을 표현하고는 부하를 불러 조심스럽게 신생아를 옮겼다.

능연은 신생아 심장 위치를 살며시 건드렸다. 겨우 2킬로그램 넘는 어린 녀석은 생사기로에서 한참 서성인 것도 모른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능 선생, 수고했네.”

곽종군이 한마디 했다. 응급 의사인 곽종군은 15분 동안 능연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번에 두 목숨이 달린 상황에,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중간에 무수한 결정을 내렸고, 그중 하나만 틀렸어도 지금처럼 거의 완벽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능 선생, 수고했어!”

주변에서 지켜보던 의사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아부했다.

“CPR 해오더니, 오늘은 정말 대단한 구경하게 해줬네.”

“흉부 타격 기술이 좋다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효과 좋을 줄은 몰랐네.”

“거의 기적이지.”

현장 의사들은 수군수군했고, 병원 단톡방은 아까부터 난리가 났다. 아까부터 호사가 의사들이 이쪽 상황을 단톡방에 옮겼고, 온 병원 의료진이 주시하고 있었다. 사람이란 다 비슷해서, 누군가 주목할 만한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었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매일 생로병사 잔혹사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오늘 케이스는 역시나 괴롭고 긴장되는 케이스였다.

능연이 두 번의 응급 처치를 무사히 마쳤을 때, 병원 단톡방엔 한순간에 몇백 개의 메시지가 폭발했다.

떠들썩한 가운데, 좌자전이 서브마리너 그린을 찬 손으로 정배를 불러서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 선생, 수술 끝났으니 보호자한테 통보는 정 선생이 해.”

“예?”

정배는 저도 모르게 멈칫하고는 서둘러 대답했다.

“능 선생이 CPR 해서 성공한 건데요? 전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제가 갈 일이 아니에요. 아니, 능 선생이 간다고 해도 전 아무런 의견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정 선생이 뭐라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대?”

좌자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말투는 조금 거칠었다.

“능 선생을 부른 이상, 어떤 결과가 생겼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다 예상한 거 아니야?”

정배는 머뭇거리다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모두 기뻐할 결과가 나와서 천만다행이지.”

좌자전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겼다면, 아니 문제 생길 가능성이 너무 큰 일이었지. 문제가 생겼다면 모두 능 선생 책임이었겠지.”

“그게 말이 됩니까. 문제가 생겼으면 제가 책임졌죠.”

정배가 하는 입바른 소리에 좌자전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그랬겠지. 어찌 됐든 일단 보호자 면담은 정 선생이 해.”

중간에 말이 빠졌지만, 정배도 좌자전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듯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서명도 제가 하겠습니다.”

“그건 필요 없고. 어찌 됐든 CPR은 능 선생이 한 거니까, 공은 능 선생 거지. 처음부터 끝까지 능 선생 공이야. 정 선생은 보호자 문제만 잘 처리하면 돼.”

좌자전이 입을 삐죽였다.

정배가 능연을 불러온 건 의학적으로 정확한 판단이라는 걸 좌자전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무모했고, 그럴 필요가 없는 위험을 능연이 완전히 뒤집어쓰게 했다. 그런 주치의를 벌 줄 자격이 좌자전에게는 없지만, 좋은 얼굴을 보일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보호자 면담이 쉬운 일도 아니라서 그 일을 정배에게 넘기는 것으로 이 일을 끝낼 생각이었다.

정배는 자기 의사들을 데리고 다급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복도로 나간 후, 의사들은 정배의 안색을 살피며 조금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모자 모두 안전하니까 좋은 일이잖아요. 게다가 확률도 낮은 이 어려운 CPR을 하고 살렸는데, 왜 보호자 면담을 우리 벌주듯이 하라고 하는 거죠?”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니까.”

정배는 그제야 머리도 맑아지고 생각이 명확해졌다.

“우리야 정말 어렵게 모자를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봐, 건강했던 산모가 뜬금없이 위급해져서 2, 30분 동안 심장이 멈췄어. 아기도 몇십 분 산소 공급이 없었고. 앞으로 발생할 합병증도 가득하고. 이런 대화를 하기 쉽겠냐?”

“위급 통지서 서명도 받았는데요?”

“그게 개뿔 소용 있겠냐?”

정배는 입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산모 집안도 괜찮은 거 같더라. 어쩌면 단체로 몰려왔을 수도 있어. 웅성웅성 댈 텐데 한마디라도 실수하면 큰일나.”

“그랬구나. 어쩐지.”

살짝 흥분했었던 초짜 의사가 김샌 듯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도 아니야. 원래 우리가 할 일이었고. 최대한 조심해서 이야기하고, 정 안 되면 때리면 맞고 욕하면 욕먹어야지 어째.”

정배가 고개를 저으면서 옷매무시를 정리하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보호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갈혜우 씨 보호자 분!”

정배가 고함치고는 바로 손을 가지런히 하고 옆으로 섰다.

“여기요!”

보호자 몇 명이 재빨리 손을 들었다.

“아, 갈혜우 씨랑 무슨 관계세요?”

“남편입니다.”

“그럼 같이 면담실로 가시죠.”

정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밖으로 부르자, 갈혜우 남편이 바로 따라 나왔다. 다른 친척들은 양쪽으로 나뉘어서 서넛은 그 자리에 남고, 서넛은 뒤따라왔다.

정배는 말리기도 싫다는 듯 면담실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호흡을 조절하곤 갈혜우 남편을 마주 봤다.

“일단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응급 처치 중에 갈혜우 씨가 한 번 심정지가 왔습니다. 심장이 갑자기 정상적으로 뛰지 않았다는 거죠. 심방을 다시 뛰게 하려고 약물을 쓰고 심폐소생하고 전기 제세동도 몇 번 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위급 통지서도 발행했었고요.”

살짝 머리숱이 줄어든 남편은 거기까지 듣고는 어느새 소파 손잡이를 잡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선생님 그럼 제 아내……. 혜우는…….”

“위급 상황은 지났습니다. 여러 진료과 의사와 함께 협진했고, 고퀄리티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정상 심장 박동으로 돌아왔는데 전체적으로 허약해서 아직 지켜보는 중입니다.”

“그럼 아이는요?”

“아이도 비교적 긴 시간 산소 공급이 부족해서 제왕절개로 꺼냈습니다. 역시 심정지가 있었고요. 그래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갔고요.”

“위급한 상황은 지났습니까?”

보호자들은 그 말을 기대하는 듯 물었고, 정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위급 상황은 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도 산모처럼 심장이 멎었다가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라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후유증이 생길지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둘다 살았습니까?”

살짝 대머리 기운이 있는 남편이 다시 확인했다.

“당분간은 그렇습니다.”

“다행이군요.”

남편이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흥분해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아이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정배는 순간 당황해서 바로 부축하려고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은 그대로 정배의 손을 덥석 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큰 소리로 울어 댔다. 큰 적을 마주한 태세로 대기하던 의사들은 울음을 터트리는 보호자들을 보며 저절로 혼란에 빠졌다.

아까 이야기랑 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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