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05화 (784/877)

“아주 미인이네.”

살짝 대머리 남편은 병원에서 제공한 옷을 입고 유리를 사이에 두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는 딸을 바라봤다.

겨우 하루 지나서, 원래는 면회기 안 되는데 능연의 환자라서 신생아 중환자실 주임도 묵인해 주었다. 사실 주임도 마음에서 우러나서 허락해준 것이기도 하고.

심정지를 겪고 모녀 모두 무사히 평안해지는 일이 매일 생기는 건 아니었고, 앞으로 몇 달 동안 이렇게 듣기 좋은 소식이 없을지도 모른다.

항상 중환자실에 묻혀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NICU 의사들에겐 갈혜우 모녀의 일은 의사들의 메마른 생활에 단비 같고 비타민 같은 소식이었다.

“미인으로 클 겁니다.”

정배도 살짝 대머리인 남편 옆에서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눈앞의 신생아는 사실 아직도 조금 쭈글쭈글했고, 눈도 뜨지 않아서 크기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보호자가 하는 말을 정배가 반박할 리가 없었다.

“이틀 정도 더 두고 보다가 문제없으면 산모 옆에 가도 됩니다.”

정배가 하는 말에 남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중얼거렸다.

“향향,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정 선생님 장수패 하나 세워 드리자. 알았지?”

“장수패라니요?”

“그냥 패예요, 이름이랑 본적 같은 거 적어서 지정 위치에 놓고 가끔 틈날 때마다 향이나 피우고요.”

“그건 위패잖아요. 전 아직 서른 몇입니다. 그런 거 안 해도 돼요!”

정배가 다급하게 하는 말에 살짝 대머리가 활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위패랑 달라요. 그냥 글씨 좀 새기는 것 정도죠. 요즘은 다 기계로 파는데, 신경 쓰이면 제가 직접 파드릴게요. 양각으로 하실래요? 양각이 예쁘거든요.”

정배는 입술을 달싹이면서 물었다.

“깜빡했는데,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집이 절입니다.”

“절이요?”

“예, 신을 모시는 절입니다.”

“무슨 신을 모시는지…….”

“지방 신입니다. 제도 올리고 신도들 소원도 빌어주고 그러죠.”

살짝 대머리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우리 혜우랑 향향이도 운명에 겁이 있었나 보네요. 지금은 넘겼지만. 정 선생님은 우리 가족의 은인입니다. 그러니까 장수패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오자, 정배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전 한 게 없습니다. 사실 따지자면 우리 능 선생 공이죠. 그러니까 장수패는 됐습니다. 의사들은 그런 거 안 믿습니다.”

“능 선생님이요? 그 되게 잘생기신 분?”

응급센터 병실에서 하루 꼬박 있었던 절집 남편도 능연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이제 위급한 상황도 끝났고, 의사-환자 문제도 생길 일 없어지자, 정배도 마음 편하게 대답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모르셔서 그러시겠지만, 환자 심장이 멈춘 지 15분 넘었을 때 능 선생이 달려와서 직접 지휘하고 또 CPR도 직접 해서 산모를 구했습니다. 사실 어른은 포기하고 태아만 꺼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듣던 절집 남자는 자칫하다가 아내가 황천길 건널 뻔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손을 벌벌 떨었다.

“그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런 헛소리하는 의사는 잡아다가 벌을 줘야죠!”

정배는 웃고 싶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는 아닙니다. 사실 그때 산모 살리는 건 능 선생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아이도 이미 질식 상태라서 제왕절개를 바로 하면 아이는 살릴 가능성이 매우 컸을 때고요.”

“어쨌든 아이도 구하지 않았습니까.”

절집 남자는 목소리가 다 가라앉았다.

“그러나 능 선생 같은 실력이 없으면 그런 결정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저라면 10분을 더 준대도 산모 심장 박동을 다시 살릴 거라고 보장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정배는 숨을 고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가 나왔는데 심장이 뛰지 않아서 더 심각했죠. 그래서 저는 아무런 공이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위험을 벗어난 건 모두 능 선생 덕분이었어요.”

“그런 줄 몰랐습니다.”

남편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아내 분과 아이한테 잘하세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정배는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신생아를 바라보던 남편은 고개를 돌리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 두 분 장수패를 세워 드려야겠네요. 양각이 아니라 조각상을 해야겠습니다.”

정배는 멍해졌다.

“아니 그건 좀. 그러다가 요절하겠네요.”

“의사들은 정말 이런 거 안 믿어요?”

남자가 되묻는 말에 정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잘 안 믿는 건 맞지만, 절집 남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어찌 됐든 전 됐습니다. 전 한 것도 없고요.”

“정 선생님도 어려운 결정하셨죠.”

신생아과 간호사 하나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계란형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상황이 위급한 때라, 상급 의사 부르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정 선생님은 그 위험을 무릅쓰고 능 선생님한테 전화하셨으니까요”

“그런 말은 할 거 없고.”

정배는 얼굴을 찌푸렸다. 환자 보호자 앞에서 허세를 부리면 뭘 하고, 보호자가 아무리 감사하면 뭘 한단 말인가. 잘못하다가 상대가 고소할 일을 만들면 그야말로 우스워지는데.

자신이 용감하게 사실을 밝혔는데도 정배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던 간호사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눈썹 진하고 눈 큰 정 선생님은 간호사 놀릴 때나 간이 크시네요.”

정배는 욕을 먹고도 할 말이 없었다. 눈썹 진하고 눈이 큰 것도 맞고, 간호사 놀리는 것도 맞고, 간이 큰 것도 맞지만, 지금 이런 이야기를 보호자 앞에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간호사는 고개를 팩 돌리고 돌아갔고, 절집 남자는 히죽대며 웃었다.

“정 선생님, 어서 따라가 보세요. 아가씨 화났네요.”

정배는 멈칫했다.

“친하지도 않은데요…….”

“따라가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죠.”

“그럼……. 가볼게요.”

경험 가득한 사람의 말투에 정배는 잠시 고민하다가 움직여 보기로 했다.

“예, 예. 어서 가세요.”

절집 남자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조각상은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건 최고로 좋은 석재로 하고, 능 선생 건 도금도 할게요. 옆에 사진도 걸고, 어찌 됐든 예쁘게 만들게요.”

걸음을 내딛던 정배는 왜 자기 건 도금이 아니냐고 묻고 싶어서 멈칫하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 붙은 도금 조각상이라니. 내가 무슨, 내가 무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