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06화 (785/877)

사무실.

모든 것이 평소로 돌아왔다.

능연은 수술실에 수술하러 갔고, 곽 주임은 기분 좋게 불벼락 뿜으러 성립에 회의하러 갔고, 에피프레넘은 접난을 좌우로 끌어안고 꽁냥대고 있었다.

여원은 자기 머리보다 세 개는 높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치켜들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심폐소생술 두 번에 산모와 태아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성적은 당연히 논문감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할지, 심폐소생 하는 동안 능연이 또 무슨 생각을 했을지,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특히 능연이 흉부 타격을 쓴 것이 논문 쓰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자료 찾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논문 쓰는 데 이 정도 고민은 일상다반사였다. 여원은 습관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컴퓨터를 노려보면서 조금씩 써 내려갔다.

“여 선생님, 또 논문 써요?”

안으로 들어온 마연린이 껄껄 웃으며 아는 척했다.

“응, 내친김에 써야지.”

여원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다리를 틀고 의자에 앉는 자세는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허리나 어깨가 아프지 않게 해주는 자세였고, 그녀의 긴 논문 생애에 중요한 비밀 무기 중 하나였다.

“선생님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데, 뭘 또 내친김에 쓰신다고 그래요.”

마연린은 씻어온 체리를 여원 옆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환자 가족이 챙겨 주더라고요. 뭐 어디 특산물이라던데, 어쨌든 맛있더라고요.”

“할 일 없이 이럴 리 없고, 또 듀티 바꿔 달라고?”

“듀티 바꿔 달라는 건 아니고, 잘 보일 일 있는 건 맞고요.”

“뭔데?”

여원은 마연린이 멍청하게 웃는 걸 잠시 바라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네 몸에서 뭐 꺼낼 거 있냐?”

“아니거든요! 그런 헛소리하지 말아요. 소문나면 내 명예는 끝이니까.”

“초짜 의사가 무슨 명예.”

“초짜 의사라서 명예는 없지만, 이건 아니죠…….”

마연린은 조심스러워하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사람 없는 걸 보고 안도했다.

“사실 논문 좀 같이 쓰고 싶어서요.”

예상 외의 대답이었지만, 여원도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아, 주치의?”

임상 의사는 레지던트 다음 단계마다 논문이 필요하고, 주치의, 부교수에서 교수까지 올라갈수록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져서 각 단계마다 논문은 기본적으로 모두 필요했다.

임상의의 논문은 연구 기관보다 복잡하거나 어렵진 않고, 형식도 비슷하며, 어느 정도 사전 준비도 필요했다. 특히 레지던트들의 논문 수준은 거의 비슷한데, 다 쓰려면 얼마나 걸리는지는 둘째치고 보내고 심사하느라 6개월 이상은 걸리고, 새치기하지 않으면 1년 이상 기다리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사전에 준비하지 않으면 늦어져서 승진 평가할 때 누락될 수도 있다.

“헤헤. 의사라면 미리미리 준비해야죠.”

“와이프한테 배우지 왜. 와이프도 논문 많이 쓰지 않아?”

마연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체리를 쓰윽 밀었다.

“의사는 집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길잖아요. 게다가 선생님 지금 그 모녀 케이스 쓰는 거 아니에요? 저도 그거 관심 있는데.”

“그럼 자료 조사 도와줘.”

여원은 가차 없이 바로 마연린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건 일단 회의용 논문으로 쓸 생각이야. 너도 무슨 생각 있으면 정리해서 나한테 보내.”

“예압!”

마연린은 대답만 하고 바로 자리에 앉진 않고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 선생님, 능 선생이 이번에 한 심폐소생술, 대단한 거죠?”

여원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특히 흉부 타격할 때, 고려할 게 많아. 이미 시행한 제세동과의 관계성, 심방, 부정맥, 그리고 호흡 빈도, 산소, 혈압 등등.”

마연린은 잠시 멈칫하고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능 선생 혈액 분석 같은 거, 안 한 것 같던데.”

“흉부 타격은 기껏해야 55J인데 제세동은 120부터 시작이지. 그런데 흉부 타격하고 제세동기의 차이가 뭔지 알아?”

“낮은 에너지?”

“흉부 타격은 물리적이잖아. 알겠어? 심장 마사지 같은 느낌이라고. 옛날엔 심정지 오면 아예 개흉했어. 알아?”

거기까지 이야기한 여원은 자기가 흥분해서 손을 휘저었다.

“일단 가서 자료 찾아. 난 생각 정리 좀 해야겠다.”

여원은 타닥타닥 바쁘게 글자를 입력했다. 마연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어쩐지 여원이 대단한 논문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자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마연린도 점점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어쩐지 자기도 대단한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고. 마연린도 문서 프로그램을 열어서 입력하기 시작했다.

잠시 글 입력하고, 자료를 찾는 동안 시간이 째깍째깍 흘렀다.

“여 선생님, 심폐소생 모의 같은 거 해보면 어떨까요?”

마연린이 갑자기 멈추고 묻는 말에 여원은 힐끔 보고는 바로 잘랐다.

“됐어. 병원 일도 다 못하는데,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하지만 능 선생이 심폐소생을 정말 잘하잖아요. 발전할 방향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아요?”

“능 선생이 하는 심폐소생은 의사들은 몰라도 일반인은 발전시키지 못해.”

“그럼 의사들이 발전하도록 하면 되죠!”

마연린이 멈칫하고는 다시 이었다.

“좌 선생님하고 상의해 보고 병원에서 트레이닝 좀 하는 거 어때요?”

여원은 다시 반대했다.

“의미 없어. 병원에서 어떤 기술을 트레이닝하든 다 돈이거든. 병원에 대단한 의사, 대단한 기술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일일이 다 배울 수 있냐? 모두 다 트레이닝 할 수도 없다고. 다들 배우고 나면 연습을 잘 안 해. 의교과에서 시켜도 못한다고. 다만…….”

“다만?”

여원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능 선생이 전문의들한테 트레이닝 하면 가능성 있겠지.”

“그게 응급센터 의사 트레이닝이잖아요. 그건 규모가 너무 작아요.”

“성내 응급진료과 위원회라면 성 전체 의사 트레이닝 할 수 있겠지. 문제는 누가 그런 트레이닝을 열어 주냐고.”

“곽 주임님이 전에 우리 경비 남았다고 하시는 거 같던데. 성내 응급위원회 학회 열고 능 선생 논문 발표하면 이 김에 규모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마연린이 하는 말에 여원도 차츰 침착해져서 잠시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화에서 학회 하면서 경비 좀 쓰고, 논문 발표하는 것도 문제는 없는데, 트레이닝 규모를 키우는 건 아무런 의미 없어. 뭐, 능 선생이 위원회 들어가는 덴 도움 될 수 있겠네.”

“능 선생이 위원회에 들어가요?”

“왜? 자격 없는 거 같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여원이 눈을 가늘게 뜨는 모습에 마연린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서 그렇죠. 아무래도 능 선생은 젊고, 직책도 낮잖아요.”

“창서성 응급진료과 위원회지, 전국도 아닌데 뭘. 반대하는 사람을 곽 주임님이 가만두지 않을걸?”

여원은 혀를 끌끌 차면서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