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09화 (788/877)

“능 선생이 정말로 우리 수술 들어와?”

심장외과 의사들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능 선생님, 정말로 우리 수술 들어오세용?”

심장외과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맑았다.

“그래, 그래! 정말로 우리 수술 들어온다!”

강 주임은 귀를 막을 기세로 고함쳤다.

“얼마나 더 물을래!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은 같아!”

“주임님, 아니죠? 능 선생이 우리랑 수술하다니, 걱정도 안 되십니까?”

자주 강 주임 어시 서는 주치의 이량이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걱정할 게 뭐가 있어서! 능연이 우리 수술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전에 심방 결손도 잘했잖아. 그래서 다들 보너스 좀 번 걸로 아는데? 아니야?”

“그게 미끼일까 봐 그러죠! 간담췌 좀 보세요. 지금 어떤 꼴인지 모르세요? 그 장안민, 매주 케이스 들고 응급센터로 가서 보고합니다. 능연이 고르고 남은 환자만 간담췌로 돌아가요. 하원정 주임은 이제 될 대로 돼라, 래요. 아예 진료과를 둘로 나눠서 이제 곧 분가할 것 같다고요.”

“곽 주임이나 능연이나, 그렇게 하진 않을 거야.”

강 주임이 단호하게 하는 말에, 겨우 말을 마치고 숨 좀 돌리던 이량은 미칠 것만 같았다.

“모르셔서 그런다고요! 하긴 알면 늑대를 집에 들이셨을까.”

자신이 저급한 수법에 넘어갔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강 주임은 한숨만 내쉬었다.

“화가 아니라 복이고, 혹시 화라고 해도 피할 수 없어. 우리 수술에 들어오겠다는데, 거절할 수 있어?”

“그럼요, 주임님은 하실 수 있죠.”

이량이 진지하게 대답하자, 강 주임은 숨이 턱 막혀서 부들대며 헛기침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린 할 일만 하면 돼. 다른 건 몰라도 능연의 지혈 스킬이 있는 한, 우리도 마음 놓고 수술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수술에 들어 온 것만으로 불안한데, 마음이 놓이긴요.”

“됐다. 나도 걱정 안 하는데, 왜 네가 그러냐.”

강 주임은 한마디로 압박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능연이 네 훅 잡아 주면 그걸로 몇 년은 자랑할 수 있어.”

이량이 퍼스트니까, 능연이 훅을 잡으면 이량 훅 잡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 생각에 이량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고, 심지어 기대도 됐다.

“갑자기 제 레벨이 좀 올라간 것 같네요.”

이량이 히죽 웃고는 머릿속으로 능연과 투샷 장면을 상상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심장외과 수술실.

이량은 평소처럼 15분 일찍 도착해서 모든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 체크했다.

수술실 문을 밟고 들어오는 낯선 얼굴들에 이량이 멈칫했다.

“누구……?”

“저는 한미라고 해요. 아르바이트생이요.”

한미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으로는 원감이라도 된 것처럼 수술실 각 구석을 살폈다. 심장 수술용 수술실은 한때 운화병원에서 가장 좋고, 고가의 수술실에, 최고급 층류 수술 설비가 완벽하고 소독은 1급 표준이라서 한미가 검사한다고 해도 트집 잡을 곳이 없었다.

그렇긴 해도 한미의 행동에 이량은 조금 부자연스러워졌다.

“그쪽은 또 누구?”

이량이 다른 낯선 얼굴들을 향해 물었다.

“운리 엔지니어입니다. 고화상 촬영 장비 설치한다고 해서요. 설치 막 끝났습니다.”

상대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알아서 문을 열고 나갔다. 이량은 그제야 무영등 사이에서 카메라를 발견했다.

“이딴 거는 대체 왜 하는 거야.”

“리플레이 해서 볼 수 있으니까.”

누군가 들어오며 하는 말에 고개를 돌렸더니, 마취과 부주임이었다.

“황 주임님? 주임님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이량은 그를 알지만, 상대는 이량을 몰랐다.

“능 선생이 수술한대서 내가 왔지. 싫은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삐쩍 마른 황 주임은 우선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서 그렇게 되물었고, 이량은 설사 싫어도 싫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황 주임도 그저 해본 말이라 그냥 웃어넘겼다.

“난 그냥 와 있는 거고, 작업은 소왕이 할 거야.”

이량은 속으로 그럴 거까지 있냐고 툴툴거렸지만, 겉으로는 실실 웃어 보였다.

잠시 후, 수간호사가 선임 간호사 둘을 데리고 헬퍼로 왔다며 들어왔다. 이량은 역시나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간호사에게 잘 보여야 할 군번이라, 웬만하면 눈 밖에 날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흐른 후, 능연이 팔을 치켜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능연과 1초 동안 시선을 주고받은 이량은 저절로 눈을 내리깔았다. 다른 사람이 지시할 것도 없이, 수간호사가 아까 데리고 왔던 간호사들이 알아서 능연의 수술복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이량은 능연이 직접 가지고 온 수술복을 특별히 주시했다. 같은 일회용 수술복이지만, 병원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고급이었다.

“강 주임님 제때 오실까요? 재촉 한 번 해주세요.”

좌자전이 능연 뒤에서 슉 하고 나타났다.

“아.”

이량이 머릿속으로 어휘를 조합하는 사이, 핸드폰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오늘 순회 간호사였다. 평소에도 이분이 당직할 때가 많은데, 오늘따라 그동안 만난 것 중에 가장 민첩했다.

“강 주임님 금방 오신답니다.”

이량은 두어 마디 만에 전화를 끊고 능연에게 설명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량을 향해 보통 미소를 지어 주었다. 좌자전은 자연스럽게 나서서 집도의 맞은편에 섰다.

“능 선생, 이쪽으로 오시죠.”

집도의 맞은편은 퍼스트인데!

이량은 반사적으로 앞으로 다가갔다.

“그게…….”

이량이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 힘드시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좌자전은 이량이 그렇게 하길 매우 바라는 얼굴로 이량을 바라봤다. 이량은 멈칫하고는 좌자전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강 주임님 혼자 능연과 맞서게 할 순 없어!

이량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동시에, 대의를 위해 치욕을 참는 비장한 마음이 되었다. 혼자 이 많은 의사와 간호사를 대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수술 중에 강 주임이 고립될 걸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었다.

좌자전이 유감이라는 듯 웃자, 이량은 묘하게 다급해졌고, 자리조차 잡지 못 하는 일은 없도록 재빨리 수술대 측면으로 가서 섰다.

수술실로 들어온 강 주임은 눈을 감고 정신 수양하는 능연, 그리고 훅 당길 준비 중인 이량을 보게 되었다.

“네가 왜 거기 서 있어?”

강 주임이 의아한 듯 묻자, 굴욕을 견디고 있던 이량은 순간 기뻐서 눈을 반짝이다가 다시 우울해졌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훅맨이라며? 훅맨 자리가 아닌데?

능연이 서 있는 자리를 본 강 주임은 좌자전을 향해 눈빛을 쏘았다.

좌자전은 강 주임의 눈빛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거칠거칠한 얼굴에 정직하고 무던한 미소를 지었다.

강 주임은 크흠, 하고 큰 소리로 헛기침하고는 다시 눈빛으로 좌자전에게 말을 걸었다.

능연이 훅맨 한다고 해서 내 수술실에 들여보낸 건데, 이런 식으로 말을 바꾸면, 바꾸면, 바꾸면…….

능연을 힐끔 본 강 주임은 압박이 장난이 아니어서, 순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렇게 젊은 의사가, 생긴 것도 잘생겨서는…… 왜 이렇게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건지.

솔직히 심장외과 과 주임인 강 주임은 병원에서 무서운 사람이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병원 윗선들, 예를 들면 곽종군 앞에서도 강하게 나갈 수 있었다. 이건 기술 업계에 태생적으로 따르는 복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강 주임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주치의 이량에게 향했다. 정의를 찾아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이량의 눈빛에 강 주임은 바로 상황을 똑똑하게 판단했다.

“이 선생, 우회술 자주 해서 플로도 잘 아니까, 오늘 훅은 자네가 잡아. 잘해 보라고.”

강 주임은 평소에 꼬다리 떼고 보너스 줄 때처럼 위로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량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플로도 잘 아니까 오늘은 훅을 잡아? 의사가 할 말이야? 수술하면서 섹드립 하는 건 몰라도, 논리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게다가 훅 잡는 데 잘해 볼 거까지 뭐가 있다고!

실습생도 하는 훅맨이잖아. 다시 말하면, 손만 있으면 하는 게 훅맨이라고. 능연이 훅 잡아 준다며! 어젯밤에 얼마나 기대한 줄 아십니까?

“예, 주임님.”

이량은 속으로만 부글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시작하지. 능 선생, 리듬 잘 따라오고.”

능연이 못 할까 봐, 혹은 손발 안 맞을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능연이 심방 결손 수술할 수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못 한다고 해도 간 수술 가능한 의사는 퍼스트 어시 정도는 여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능연 본인은 더 느긋했다. 이미 그랜드 마스터급 관상동맥 우회술을 획득해서, 기술만 따지면 강 주임보다 나을 게 분명했다. 자신감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그랬다. 강 주임이 관상동맥 우회술을 그랜드 마스터급으로 해낸다면, 아니 그랜드 마스터급은 됐고 마스터급만 됐어도 지금쯤 명성이 자자했을 것이다.

수술이란 건 비슷비슷한 상태에서 조금만 두드러져도 신세계가 펼쳐진다. 아무리 악랄한 병원과 윗선들도 실력이 뛰어난 의사는 최대한 배려한다. 다른 건 몰라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살려내니까.

하지만 강 주임 같은 작은 천재는, 한 서른 살까지 천재였고 그걸로 진료과 주임 자리를 얻게 된 후엔…… 그 후엔…… 뭐.

순회 간호사가 가장 먼저 나서서 수를 세기 시작했다. 구석에 서 있던 한미는 녹색 시트 위에 촤르륵 깔린 은백색 도구들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소독부터 하고 절개 시작할 거야.”

강 주임은 수술 전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다. 능연의 스킬이 괜찮은 건 알지만, 수술 전에 능연과 확인하고 싶었다. 만일 능연이 기분이 안 좋아서 성질을 부린다면? 기분이 좋아서 집도의 자리를 뺏으려고 한다면?

강 주임은 능연을 빤히 응시했다. 능연은 태연하게 소독액에 담가둔 거즈를 건네받아 한 손으로 타올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 환자 가슴을 닦기 시작했다.

“갑자기 능 선생님한테 수술받고 싶단 생각이 든다.”

견문이 넓은 수술실 간호사는 집도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알아서 판을 깔았고, 곁에 있던 순회 간호사도 바로 협조했다.

“능 선생님이 산부인과 수술하는 걸 본 적 없네요. 재미있을 텐데.”

“산부인과가 재미있다고?”

수술실 간호사들이 조잘대는 소리에, 강 주임은 눈을 흘겨보다가 끼어들기로 했다.

“그 이야기 들으니까 그게 생각나네. 저번에 노래방 가서 도우미 둘 불렀는데, 내가 뭘 하기도 전에 둘이…….”

“강 주임님, 능 선생님이 모처럼 우리 수술실에 오셨는데 섹드립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강 주임의 섹드립을 들어 본 게 분명한 어린 간호사가 냉큼 말을 잘랐다.

“불은 너희들이 먼저 질렀잖아.”

“괜히 불 지르셨다가 감당하실 순 있고요?”

강 주임이 어이없는 듯이 하는 말에 어린 간호사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주임은 헛기침하며 메스를 요구했다.

“집도의 기분은 케어 안 해 주냐.”

간호사들은 유부녀 눈빛으로 샐쭉 웃어 보였고, 강 주임은 자기가 분위기를 컨트롤 해낸 것처럼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절개할래?”

옜다, 하고 내주는 폐복보다 훨씬 큰 포상이었다. 보통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한 젊은 의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고. 물론 능연처럼 이미 능수능란한 다른 진료과 의사에게 넘기는 것도 매우 체면 생각해준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어시할게요.”

능연은 멈칫하고는 대답했다.

심장 수술의 위험성은 개복 수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서, 스킬을 얻긴 했지만, 몇 번 시도해 보고 나서 하고 싶었다.

강 주임은 능연이 체면 차리는 줄 알고 흡족한 듯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대충 선을 그리고 전동 메스를 건네받고 피하 조직을 층층이 분리하기 시작했다.

“전기톱.”

강 주임은 흉골 위치에서 새로운 도구를 요구했다. 전기톱을 사용하는 점이 심장외과와 일반외과의 가장 직관적인 차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배가 많이 나와도 개복할 땐 메스면 충분하고, 톱까지 사용하게 되면 환자나 보호자에게 매우 두려운 수술이 된다.

주치의 이량은 능연을 힐끔 보고는 그의 침착한 잘생긴 얼굴에 입을 삐죽이며 도구를 들고 고정할 준비를 했다. 능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지금은 개흉 과정과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고 싶었다.

수술이란, 집도의가 수다 떨 때, 집도의가 섹드립을 던질 때, 집도의가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때, 모두 다른 리듬으로 흘러간다.

능연은 실력은 이미 충분했고, 이제 현장 분위기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지금으로서는 모든 게 느긋하고 수월했다.

“전동 메스.”

강 주임은 손을 내밀면서 습관적으로 덧붙였다.

“이제 심낭 자를 준비한다.”

심낭막은 심장 표면을 덮은 막으로, 여기부터 심장이 시작된다. 전에 심방 결손 수술을 해 봐서 익숙한 능연은 느긋하게 어시를 맡았다.

능연의 협조 아래 순조로워진 강 주임도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능 선생, 혈관 뺄래?”

혈관을 빼겠냐는 말은 우회술 할 때 사용되는 혈관을 빼내는 것을 가리키며, 난도가 있어서 능연이 당연히 거절하리라 생각하고 그냥 물은 것이었다.

“예. 제가 할게요.”

능연이 바로 대답하는 말에 강 주임은 멈칫했다.

“아. 그래. 그럼 대복재정맥 해. 능 선생이 익숙한 구역이지?”

대복재정맥은 대퇴 정맥에서 발등 정맥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아킬레스건 보건술에서도 흔히 건드리는 부분이었다.

강 주임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능연이 순조롭게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혈관 이식은 혈관 봉합과 달라서 처음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강 주임은 그런 생각으로 능연 때문에 밸런스가 깨지지 않도록 속도를 늦췄다.

“대복재정맥 박리, 바로 시작합니다.”

능연은 새로운 자리를 잡아 환자 다리 위치로 가서 섰다. 그랜드 마스터급 대복재정맥 박리술로 지금 환자를 관찰하니 대복재정맥의 방향과 상태를 매우 쉽게 분석할 수 있었다.

물론 구체적인 위치는 전에 봤던 필름에 의지해야 한다.

모두 기초적인 스텝이긴 하지만, 자신의 첫 대복재정맥 박리술의 성공을 위해, 능연은 가상 인간을 꺼내 통 크게 3초를 사용해 그대로 메스로 그어 대복재정맥을 꺼낸 다음 탄력을 확인했다. 매우 거친 테스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스텝이 끝나자, 그제야 완전히 마음이 놓였다. 그랬다. 눈앞의 환자는 그의 실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매우 표준적인 정상 지구인이었다.

능연은 이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서전은 사실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호하지 않다. 그러나 메스를 쓸 땐 결단력이 강해진다. 어찌 됐든 수술은 해야 하니까, 결단력이 없으면 안 된다. 머뭇거린다고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정보가 더 많아서 상황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건 당연하다.

능연은 지금 상황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새로운 수술을 앞에 두었지만,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보통 익숙할 대로 익숙한 수술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제어력이라서, 매우 귀한 체험이었다. 새로운 수술에서 이런 느낌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니, 능연은 오늘 수술을 제대로 만끽해 보기로 했다.

“메스.”

능연은 손을 내밀어 전동 메스를 건네받았다. 뒤쪽의 초짜 의사가 의아한 듯 바라봤다. 능연이 아까 손을 휘두르는 동작이 매우 괴상해서, 그가 잘생기고, 또 명성이 자자한 의사가 아니었다면 굿이라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능 선생님, 아까 왜 허공에 손짓하신 건가요?”

지금은 함부로 말을 걸 때가 아니지만, 초짜 의사는 그래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염 구역 건드린 건 아니지?”

역시, 능연의 사고회로는 달랐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냥 특이한 동작 같아서. 그런데 보기는 또 좋고. 춤추는 것 같기도 했달까요?”

“춤이랑 상관없어.”

능연은 대답하면서 어느새 환자의 다리를 가르고 있었다. 환자의 일상생활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위치의 혈관을 골랐다.

어시 경험이 풍부한 심장외과 의사도 능연의 동작을 보고는 그가 매우 자신 있어 함을 깨달았다. 그 바람에 초짜 의사는 더 의아한 눈으로 능연을 바라보면서 잘생기면 움직임이 멋있을 뿐만 아니라 수술 자신감도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한 것 같아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 주임 곁에 서 있는 간호사들의 시선도 능연을 향했다.

“능 선생님, 동작이 정말 예뻤어요. 춤 잘 추세요?”

“춤이랑 외과 수술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수술에나 집중해.”

“예, 주임님. 수술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능 선생님이 우리 기구 쓰는 거 불편하실까 봐 물어본 거죠.”

강 주임이 언짢은 듯이 하는 말에 간호사는 대충 핑계를 대고 얼버무렸다. 강 주임도 할 말이 없었다. 수술이 순조롭지 않아서 기분이 엉망이 아닌 이상, 간호사를 욕하진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능연 핑계를 댔다.

“능 선생 수술 방해하지 말라고. 대복재가 아무리 굵어도 혈관이야. 신경하고 엮이면 큰일 난다고.”

“주임님, 겁주지 마세요. 주임님이랑 수술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그런 일이 뭐 얼마나 있었다고요.”

“그러게 말이에요.”

순회 간호사까지 거들었다.

“게다가 능 선생님 실력이 얼마나 좋은데요. 운은 또 얼마나 좋고. 그런 일이 생길 리 없어요.”

“별자리 책에도 나와 있어요. 잘생긴 사람은 운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강 주임은 어이가 없었지만, 기혼 여성들이 단결할 때는 말싸움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직속 상사도 못 건드리는 집단인데, 하물며 진료과에서 강 주임의 권위는 그렇게 높지 않으니 말이다.

“그 별자리 책에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는 안 나와 있고?”

강 주임이 고개를 젓고는 손을 놀리면서 물었다.

“밤에 수술하지 말래요. 행성이 이어질 땐 위급한 상황이 많다고요.”

“점심때도 안 돼요. 태양이 운세에 영향을 주니까요.”

“아침도 적당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럼 종일 안 되게?”

강 주임이 껄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차라리 대복재정맥이 신경에 부딪히는 쪽이 더 낫겠…….”

“부딪혔네요.”

능연은 집도의에게 수술 상황을 보고하듯이 대답했다.

“부딪혔다고?”

“예. 이 대복재정맥, 신경이랑 얽혀 있습니다.”

능연이 다시 확인해 주었다.

“시작하자마자 신경하고 엮이다니…….”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보던 강 주임의 눈에 혈관이 이미 줄줄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게 보였다. 혈관 박리는 쉽다면 쉽지만, 매우 세심한 작업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정맥 방향을 따라 혈관 외부를 갈라서 혈관을 드러낸 다음, 주변으로 갈라진 작은 혈관을 일일이 박리해야 한다. 그 핵심은 결찰을 잘해야 하는 것이고.

대복재정맥을 메인 도로라고 상상하면, 박리 과정은 분기 도로를 모두 봉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어렵진 않고, 초짜 주치의만 되어도 순조롭게 완성하지만, 속도까지 따지면 노련한 주임도 빠르면서도 잘하긴 어렵다.

아까는 이야기도 나눴고, 능연이 연습할 수 있도록 일부러 속도를 낮췄었다. 능연이 분명 혈관 채취를 순조롭게 완성할 것으로 믿기야 했지만, 이렇게 빨리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

“능 선생, 님 이건 어디서 배운 기술이신가?”

강 주임은 의문이 가득했다. 다른 병원에 가서 배워온 기술로 자기 집에서 영업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강 주임의 얼굴이 더 엄숙해졌다.

능연은 재빨리 신경을 분리했다. 환자의 수술 후 생활 퀄리티를 고려하면 신경을 남기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세심하게 조금씩 처리하기만 하면 남길 수 있고.

“No-touch 같습니다.”

강 주임은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고개를 돌렸는데 주치의 이량이 나지막이 하는 말에 그쪽을 바라봤다.

“뭐라고?”

소위 No-touch란 대복재정맥을 꺼내는 과정에서 대복재정맥을 건드리지 않고 그 주변 1cm 조직을 남기는 기술이었다. 정맥 손상을 줄이고 정맥 경련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체 혈관벽의 3층 세포 조직도 완전히 남길 수 있고, 이식 후 장기적 개통성도 보장할 수 있다.

문헌 자료와 비교하면, 정맥 브릿지의 장기적 개통성은 50%인데 No-touch 기술로 정맥 브릿지를 확보하면 85%까지 늘어나서 동맥 브릿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그러나 No-touch 기술은 매우 복잡했고, 운화병원 심장외과에서는 아직 전개하지 않은 비교적 첨단 기술이었다.

배워야 할지 말지 망설이던 기술을 능연이 손쉽게 사용하는 걸 본 강 주임은 몹시 당황했다.

No-touch 기술을 심장외과에서 전개하려면 전문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서야 할 사람은 강 주임 본인이고.

병원에 잘 아는 전문가를 모시고 와서 기술을 학습하면서 진료과에서도 추진할 계획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의 시간이 잘 맞지 않는 데다가 실험 물품을 살 경비, 그리고 전문가를 여러 번 초빙할 비용 때문에 힘겨워서 진행되지 않았었다.

어찌 됐든, 이 기술을 장악하지 못한 강 주임은 지금 유난히 엄숙한 표정으로 능연의 손놀림을 주시하고 있었다.

신기술 도전이다! 위험해, 위험!

곽종군, 일부러 스스로 심장병 만든 다음에 관련 기술을 배운 능연을 몰래 심장외과로 보내서 도발하며 손발을 짝짝 맞춰서 우리 심장외과를 꿀꺽하려는 거 아니겠지?

강 주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힐끔대며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 시선을 받은 주치의 이량 선생은 괜히 뜨끔해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는 곧 주임의 뜻을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지금 No-touch로 하는 거 맞아?”

“맞아요. 이 정도면 괜찮은가요?”

능연도 고개를 살짝 들어 확인하듯 물었다.

“그야…… 당연하지.”

이량은 입을 삐죽였다. 아니면 뭐, 정말 실력이 쩌십니다, 라고 해줘?

“그럼 됐네요.”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이량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일부러 저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능연은……. 이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능 선생, 어디서 배운 거야?”

강 주임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안 물어봤다가는 오늘 잠도 못 잘 것 같았다.

“음, 심장 우회술 배울 때 같이 딸려온 기술이랄까요?”

“심장 우회술까지 배우고 있단 말이야?”

강 주임은 마스크까지 달달 떨며 되물었다.

“예.”

“배워서 뭐 하려고? 간 절제도 많잖아. 그런데 심장 우회술은 왜? 그리고 아킬레스건 보건술도 있지 않아? 운동선수 수술로도 돈 많이 벌잖아.”

능연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곽 주임님 관상동맥 때문이죠. 좌 선생이 필름 보여드리지 않았나요?”

“봤지…….”

강 주임은 이럴 줄 알았으면 곽종군을 끌고 와서라도 전신 마취해서 바로 가슴을 열어 버릴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주치의 이량도 못 들어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지금부터 심장외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다고 해도, 몇 년은 걸리잖아. 곽 주임님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둘째치고,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의사들은 가까운 사람 수술하는 거 아니야.”

능연은 이량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의견을 내는 녀석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어떨 때는 아침에만 비슷한 질문을 열 개 가까이 받은 적도 있고. 능연은 대부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강 주임이 심호흡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필요하면 전문가 연결해 줄게. 안정 병원에도 심장 우회술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가 있다. 해마다 몇백 건씩 하는데, 성공률도 높아.”

“그것도 계획에 있긴 합니다.”

능연은 누가 보면 집도의인 줄 알 만큼 침착하게 수술했다. 물론 혈관 이식만 따지면 집도의가 맞지만.

그때, 좌자전이 웃으며 중재하듯 나섰다.

“강 주임님, 우리 곽 주임님 성격 잘 아시잖습니까. 상의부터 하고 초빙하셔야 할 겁니다. 그렇죠?”

“심장 우회술은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하니까요.”

“아이고, 주임님이 계시는데 조금 미뤄주실 수 있잖습니까. 나중에 결정하고 다시 말씀하시죠.”

“음. 그래도 의사가 어떤지 우리가 더 잘 알죠. 학회에, 응급 콜에, 아니면 아예 나올 수 없는 상황에. 그러니까 미리 약속 잡아야 해요.”

강 주임은 능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자기 수술에 집중했다. 능연이 대복재정맥 이식을 끝내기 전에 자기가 할 일을 마치고 싶었다.

No-touch 어쩌고는 할 줄 모르지만, 수술은 단순 스킬 하나로 하는 게 아니다. 사실 서전은 첨단 기술을 가진 평범한 의사보다 우수한 기본 내공을 훨씬 더 믿었다.

충수염 수술도 실력 있는 일반외과 의사가 작은 절개구로 수술하는 게, 평범한 의사가 복강경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한 경우가 더 많다.

강 주임은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무슨 일이 있어도 No-touch를 배워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러다가 조잡 대마왕 응급센터에서 No-touch 수술을 하는 걸, 정교 대마왕 심장외과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야말로 꼴사나우니까.

“정신 좀 차려.”

강 주임이 주치의 이량에게 자긴 이제 ‘진지하게’ 임하겠다고 선포하듯 한마디 했다.

“예, 주임님.”

바로 신중해져서 고분고분 대답한 이량은 곧바로 진지하게 고개를 숙이고 임했다.

그때, 능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헤파린.”

이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반사적으로 강 주임을 바라봤다. 헤파린은 대복재정맥을 세정하고 새는 곳이 없는지 확인할 때 쓰는 것이다. 대복재정맥이 몸 안에 있을 때는 당연히 정상이지만, 박리 과정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어찌 됐든 혈관이 터지는 건 수술 중에 별 큰일은 아니지만, 관상동맥 보조하는 데 쓰일 혈관이 파손되면 큰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량과 강 주임에겐 지금이 바로 큰 문제였다.

“아까 얽혔었던 신경은 분리했나?”

강 주임이 태연한 척 묻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까 말씀하셨을 때 바로 박리했습니다.”

“아까?”

강 주임은 박리해 낸 대복재정맥을 바라보며 물었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게 잔뜩 쌓여있는 것이 보기엔 좀 그래도 기술만은 확실했다.

강 주임은 반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한참 신나게 놀았는데, 다 놀고 자기는 이제야 숙제하려고 했더니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까 웃고 즐기는 사이 숙제를 끝낸 걸 발견한 느낌이었다.

“전 다음 스텝 진행하겠습니다.”

능연은 평탄하게 문합할 수 있도록 정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따 우회술을 시작하면 바로 쓸 수 있게끔.

강 주임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푹 숙이고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열중. 또 열중.

능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강 주임님, 대복재정맥 절취 끝냈습니다.”

“벌써?”

강 주임은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침착한 척 말을 이었다.

“빠르네.”

능연은 싱긋 웃어 보이고는, 결국 강 주임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했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피, 필요 없어.”

강 주임은 새벽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대복재정맥 절취 끝냈습니다.”

능연은 강 주임을 향해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자리에서 철수해서 양손을 들고 강 주임 옆으로 다가갔다.

“정말 괜찮아…….”

강 주임은 열이 40도까지 오른 모습으로 버텼다.

“네.”

능연은 고집부리지 않고 강 주임 옆에 서 있었다. 집도의의 손놀림이 비교적 잘 보이는, 배움이 필요한 의사가 자주 서는 자리였다. 맞은편에 서야 해서 거울로 보듯 봐야 하는 퍼스트와 달리 집도의 옆에 서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더 배우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

그랜드 마스터급 기술을 획득한 건 한 거고, 다른 의사가 우회술을 시행하는 걸 관찰하고 참고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적합한 교육 의지와 능력을 반드시 갖추고 있으리란 법은 없다.

능연은 이 기회에 심장 우회술을 참관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고난도 수술이고, 특히 실수 용납률이 낮고 시간에 대한 요구가 높은 체외 순환을 응용하는 기술이라서 강 주임의 조작을 보면서 그의 실수에서 ‘조언’을 얻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능 선생, 응급센터 닥터가 여기서 시간 보내는 거 좀 그렇지 않은가?”

자기가 능 선생에게 ‘조언’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강 주임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심장외과가 주요 목표라서요.”

강 주임은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항온 수술실인데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이 망할 놈의 세상. 나 같은 작은 천재는 어떻게 살라고.

좌자전이 마른기침을 하며 등 뒤에서 대답했다.

“능 선생이 하고 싶은 말은, 심장외과 항목 중 심장 우회 방면 기술을 익히는 게 주요 목표라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곽 주임님 상태가…….”

“허구한 날 대형 응급 같은 거나 고민하니까 심장이 그 모양이 되지.”

강 주임은 속도 터지고, 집도의 자리에 서 있다 보니 담낭이 세 배는 커진 기분이었다.

“대형 응급보다 토론을 더 중시하시죠.”

“그럼 주임님 좀 설득하지 그랬어요. 특히, 너, 능연, 곽 주임이 네 말은 들을지 모르잖아. 곽 주임님이 허구한 날 밖에서 욕하고 다니니까, 우리 운화병원 의사들이 밖에서 욕먹잖아.”

강 주임이 ‘아는 사람이 그러냐!’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곽종군이 밖에서 불벼락을 뿜지 않고 다니면, 강 주임뿐만 아니라 운화병원 응급센터를 제외한 모든 직원, 아니 능연을 제외한 모든 직원에게 좋을 테니까.

강 주임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능연을 곁눈질했다. 잘생긴 놈은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모르니까, 자신을 너무 믿고 가서 두드려 볼지도…….

“강 주임님, 관상동맥 아직이신가요?”

능연이 강 주임의 상상을 중단시키며 물었다.

심장외과 의사가 그랬다면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뭐랄까, 윗사람이 공들여 준비한 드립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하하 웃어 버린 기분이랄까.

이량이었다면 관상동맥이 터질 때까지 욕했을 것이다. 맞는 말이든 틀린 말이든, 집도의의 리듬과 상관없이 나불거린 말은 혼나야 한다.

그러나 능연을 혼낼 수는 없었다.

강 주임은 고개를 숙이고 유심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이식할 정맥, 절단면 넓어?”

“주변 조직도 있어서, 단순한 정맥 이식보다는 넓습니다.”

어찌 됐든 신기술이라, 자신이 익숙한 범위를 넘어 버렸다는 사실에 강 주임은 멈칫했다.

“No-touch 기술을 써서 이식 과정에도 영향이 미친 걸 깜빡했군. 이것 봐봐, 참지식은 실천에서 나온다니까. 이 수술을 직접 어시하지 않았으면 이런 문제가 있을 줄 알았겠어?”

“제가 할까요?”

옆에서 심심하게 서 있던 능연이 바로 제안하자, 강 주임은 생각도 하지 않고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됐어. 옆에서 보기만 해. 힘들게 그럴 거 없어.”

“할 일이 없어서 하나도 안 힘듭니다.”

능연이 싱긋 웃어 보이자, 곁에 있던 간호사는 가슴이 떨려서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이며 농담하듯 입을 열었다.

“주임님, 조금 전엔 능 선생님의 신기술을 칭찬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못하게 하세요.”

“뭘 안다고 끼어들어.”

강 주임은 간호사가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고 눈치를 준 다음에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능연도 급할 것 없이 옆에 서서 지켜보면서 강 주임의 동작을 따라 했다.

어느 서전에게나 이런 비슷한 습관이 있곤 한다. 큰 수술하기 전에 모의 동작을 해보는 것. 특히 난도 높은 동작일수록 수술 시간이 아닐 때 연습하는 일도 많다.

강 주임이 수술하는 모습을 보면서 맨손으로 연습하는 것도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강 주임은 절대로 능연을 바라보지 않고 수술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부하인 주치의 이량은 수시로 능연을 힐끔거렸다.

주요 임무가 훅맨인 주치의로서, 이량의 수술 부담은 그리 크지 않지만, 심적 부담은 쉴 새 없이 올라갔다. 하지만 능연이 수술을 지켜보면서 강 주임의 동작을 따라 하는 모습이 묘하게 우스웠다.

지금 심적 부담이 가장 큰 사람은 다름 아닌 강 주임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능연의 동작이 얼마나 정확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심지어 강 주임보다 동작이 깔끔할 때가 많았다. 조금만 간이 더 컸다면, 능연의 동작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 주임보다 깔끔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오늘 수술 영상을 다 같이 돌려 볼 때 강 주임 얼굴이 어떨지,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량은 순간 기대되기 시작했다.

“됐다. 거즈 체크해.”

드디어 수술의 주요 부분을 끝낸 강 주임은 부담감을 내려놓은 듯 미소 지었다.

“거즈 카운팅.”

두 간호사가 나서서 수를 세기 시작했다.

이량은 고개를 숙인 채 제 할 일을 했다. 지금 존재감을 드러냈다가, 나중에 회상할 때 자기만 떠올리면 화를 낼까 두려웠다.

“능 선생, 마무리할래?”

강 주임은 기분이 매우 좋아져서 포상을 던졌고, 어떤 부분인지 연연하지 않는 능연은 바로 대답했다.

“네.”

이량은 ‘주임님이 조금만 더 신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했다.

능연은 조용히 마무리 작업을 처리했다.

당연히 깔끔하게 처리했고, 강 주임과 다른 사람들은 놀라지 않고 침착한 표정이었다. 능연이 수술을 깔끔하게 하는 건 이미 공인된 사실이라서 우와우와, 떠들 일이 아니었다.

“능 선생 봉합은 정말 수준 높아.”

“그렇습니다.”

강 주임이 뮤지컬 보는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자, 이량이 바로 맞장구쳤다.

“음. 여기, 얇은 실을 쓴 것만 해도 대단하지. 잘 보고 배워둬. 능 선생이 이런 마무리 작업하는 거, 귀한 기회다.”

강 주임은 기분이 훨씬 좋아진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어찌 됐든 능연이 지금 자기 어시하고 있으니까.

“예.”

지금 강 주임 마음이 어떨지, 너무나 잘 짐작이 가는 이량은 기운 없이 웃어 보였다. 주임이란, 기분을 짐작하기 쉬운 동물이다. 사장의 고약한 심보를 직원은 바로 알아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오히려 가끔은 아부 열중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강 주임은 능연의 집중도가 부럽기까지 했다.

자기가 능연 수준만큼 하는지,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도 답이 없었다. 다른 사람 마무리까지 하는 건, 설사 다른 사람 진료과를 침입할 수 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 주임은 속으로 아미타불을 외웠다. 능연이 정말로 강해진다면, 자신의 작디작은 심장외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능 선생 실 정리 해줄 때도 조심해. 우리 심장외과 수준이 별로라는 소리 듣지 않게.”

강 주임은 자기가 들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자 자기가 역시 들떴었나 보다 생각했다.

능연이 너무 순종적으로 하라는 대로 해서 더 그랬다. 곽종군이었다면, 기술로 자기를 깔아뭉개려고 나섰을 건 말할 것도 없고, 실력이 발가락 털만큼도 못 미쳐도 코에서 김이 나올 정도로 욕을 해댈 사람이었다.

그 점을 떠올린 강 주임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이미 엎질러진 물, 깨진 바가지, 깨진 거울이었다. 어차피 진료과라는 게 하루 이틀로 될 일도 아니고, 자기가 걱정하고 고민해도 소용없었다. 하원정만 봐도 그랬다. 간담췌외과는 이미 없는 진료과나 마찬가지인데, 간담췌의 명성은 나날이 자자해지고, 환자 수, 수술량도 늘어갔다. 심지어 일반 의사들 수입까지 올랐다.

물론 하원정은 비참했다. 당당한 큰 주임이 진료과에서도 큰소리치지 못하고, 죽느니 못한 나날이 이어졌다. 다행히 능연이 진료과 내부 경제권까지는 장악하지 않아서, 그 바람에 하원정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도 못했다.

운화병원 같은 지역 정상급 삼갑병원 진료과 주임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지위 모두 편안했다. 비슷한 지위를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론적으로 같은 유형 삼갑병원은 스물 남짓 있고, 같은 유형 진료과는 기껏해야 백몇 개뿐이다. 그 백몇 개의 큰 주임들이 죽지 않는 이상 빈자리는 나오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던 강 주임은 기분까지 좋아졌다. 아마추어 10급 피아니스트인 관중이 아름다운 음악홀에 앉아서 세계급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는 기분이랄까.

잠시만, 세계급?

강 주임은 정신을 집중하고 능연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위로했다. 괜찮아, 설사 세계급이라도 해도 마무리 작업으로 이름 날릴 일은 없어.

“능 선생, 태도도 트집 잡을 게 없어. 봐봐, 솜씨도 그렇지만, 마무리하라고 하면 마무리하잖아.”

강 주임은 이량을 훈육할 겸 또 나지막이 평가했고, 이량은 속으로 ‘내 업무 태도가 어때서?’하며 꿍얼거렸다.

그러나 이량 씨는 겉으로는 말 잘 듣는 주치의답게 주임님의 말씀이 끝나자 공손하게 능연을 향해 물었다.

“능 선생, 케이스 정리되면 님한테도 한 부 보낼까?”

강 주임은 저도 모르게 부하를 힐끔 바라봤다. 진료과 차트가 돈 되는 건 아니지만, 호감 사려고 쓰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어쨌든 능연이 참여한 수술이라서, 이량이 능연에게 보여준다고 해도 안 될 건 없었다.

그래서 강 주임은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수많은 일을 고민했다.

능연은 감사 인사부터 하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급할 건 없습니다. 오늘, 내일 케이스, 다 정리되면 좌 선생님한테 한꺼번에 보내주시면 됩니다.”

“오늘, 내일 케이스를 다? 그건 좀 그렇지. 능 선생, 너도 생각 좀 해봐. 케이스는 함부로 외부에 굴리면 안 되는 진료과 정보라고.”

강 주임은 순간 안 되겠다는 듯 받아쳤다.

그러자 좌자전이 과감하게 나섰다.

“강 주임님, 능 선생 뜻은, 오늘, 내일 양일 동안 능 선생이 참여하는 케이스가 있으면 나중에 한꺼번에 보내면 된다는 말입니다. 능 선생이 참여한 케이스면 우리도 의견을 낼 수도 있고, 서로 다 좋지 않겠습니까?”

강 주임은 4.07초 침묵했다. 머리털이 다 솟구칠 정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그냥 화난 상태로 마음을 다스린 다음, 다시 3초 침묵한 후에야 온화한 말투로 물었다.

“케이스를 몇 개 더 참여하겠다고?”

“모레는 외부 수술 나가야 할지도 몰라서, 기껏해야 이틀입니다.”

좌자전이 먼저 나서서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대답했다.

“강 주임님, 싫으시면 다른 곳에 문의해야겠네요. 조금 아쉽지만…….”

좌자전은 강 주임을 빤히 바라봤고, 분노했던 강 주임의 눈빛은 해탈에서 평온으로 바뀌었다.

“그래 좀 아쉽네.”

강 주임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동의하면 뭐해. 능 선생은 심장외과 의사가 아니고 심장외과 수술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잖나. 게다가 능 선생 간 수술이 그렇게 뛰어난데, 굳이 뭐 하러 심장외과 수술을 배워.”

“곽 주임님 때문이죠.”

좌자전이 다시 상기시켰다.

“적당한 사람을 찾아서 수술하면 되죠. 자기 사람 수술을, 그것도 바로 배워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강 주임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능 선생이 다 알아서 할 겁니다. 어찌 됐든, 천재의 세상은 저는 모르니까요.”

“곽 주임은 병들어서까지 남을 괴롭혀.”

강 주임은 ‘나도 한때는 천재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곧 그런 중2병 대사는 집어삼키고 부적절한 솔직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수술실 안에 몇몇 머리통이 앞뒤로 움직였다.

아직 젊구나. 오늘 수술 녹화 중인데. 게다가 십중팔구, 곽 주임이 볼 텐데.

좌자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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