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10화 (789/877)

“잠시 쉬자. 이 선생, 가서 배 채울 것 좀 사 와.”

문 열고 나간 강 주임은 다시 주인 모습으로 돌아와서 능연을 향해 웃어 보였다.

“우린 응급센터랑 달라서 대충 먹을 수밖에 없어.”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레드불이나 좀 사주세요.”

좌자전은 체면 차릴 생각도 없는 듯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예! 다른 분들은 뭐 필요한 거 없어요?”

“원하는 거 다 말하면? 살 능력은 되냐? 나도 너무 좋은 건 못 산다. 대충 알아서 사 와라. 소시지구이, 빵, 우유, 족발, 싸고 간단하게 배 채울 수 있는 거면 돼. 질보단 양이지. 서둘러 다녀와.”

강 주임이 웃으며 고함치자, 이량은 다시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가 아래 의사들에게 지시했다. 연문빈은 ‘질보다 양, 싸고 간단하게 배 채울 수 있는 거’라는 말을 쉴 새 없이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수술 실력이 떨어진다고 강 주임이 한소리했다면, 당연히 고개를 숙이고 못 들은 척했을 것이다. 실력으로야 강 주임 같은 1급 의사와 비교할 자격이 없으니까.

그러나 족발이 별로라는 말, 그저 싸고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라는 말은 언짢았다. 사실이 아닐뿐더러, 중상모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족발에 대한 적나라한 경멸, 괄시였다.

연문빈은 묵묵히 핸드폰을 꺼내서 ‘사랑하는 회사 사람들’ 톡방을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

- 다들 한 시간 쉬어. 족발, 조림 고기 잠시 판매 중지.

정규 휴식 시간인 건 맞지만, 보통 판매량도 그리 많지 않아서 아예 판매 중지하는 일은 드물었다.

- 사장님, 왜요?

조림 제품은 재고 처리가 문제인데?

연문빈은 핸드폰을 들고 대충 해명했다.

- 돼지고기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어. 족발은 더 오르고. 재고가 별로 없으니까 당분간 관망하자. 그래야 가격이 올라도 손해가 크지 않지.

- 아, 그렇군요!

- 역시, 사장님, 영명하십니다!

- 그럼 판매 중지 지지합니다!

줄지은 칭찬에, 연문빈은 흐뭇해하다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돼지고기, 족발 원가 다 오르는데 제품 가격은 그대로였네. 슬슬 가격 올릴 때도 되었네. 아무래도 지금 가격은 내 품격에 안 맞아.

강 주임은 휴게실에서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빛 속에서 에너지 보충하고는 입을 닦았다.

“능 선생, 대접이 이래서 미안해. 나가서 먹어야 하는데, 환자가 기다려서.”

“수술만 할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능연은 체면 차리지 않고 솔직히 대답했다.

“하하, 수술이야 늘 있지.”

“조금만 쉬고 수술실 가시죠.”

능연이 강 주임의 말을 잘랐다. 쉬자고 말한 것도 강 주임을 비롯한 다른 사람을 배려한 것이었다. 도구도 손질해야 하고, 수술에 참여하는 어시들도 에너지 보충, 정신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수술을 수천 번 해오면서 능연도 그런 경험이 쌓였다.

강 주임은 조금 감동했다. 능연이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그건 간담췌, 정형외과 수술일 뿐이고, 그동안의 공적으로 지금 실력을 대표할 수 없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물론 오늘 정맥 절취는 매우 잘했다. No-touch 기술도 대단한 것 같고. 그러나 이런 기술은 어찌 됐든 심장 이외의 문제이다. 심장외과 의사들에게 더 중요한 건 심장과 관련된 기술이었다. 따지고 보면 No-touch 스킬은 혈관외과 기술에 가까웠다.

어찌 됐든, 강 주임은 능연이 짧은 시간 안에 심장외과 기술을 해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설사 조금 배우더라도 제대로 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리고 미래에는…… 좌자전이 이미 똑똑히 말했듯이 능연은 외부 자원이 풍부한 상급 의사라 정말 배우자고 들면 굳이 강 주임에게 배울 필요가 없었다.

남은 건, 편하고 안 편하고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래서 강 주임은 아예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잘 지내든, 어렵게 지내든, 어차피 생활은 해야 하니까.

“전 이제 수술실에 가보겠습니다.”

능연은 멈칫했다가 다시 말했다.

“빨리 끝내면 일찍 쉴 수 있으니까요.”

강 주임이 잠시 머뭇거렸다.

“더 쉬지 않고?”

능연이 의아한 듯 상대를 바라봤다.

“저녁에 쉬면 되잖아요.”

“지금 쉬어둬야 저녁에 수술할 기운이 있지.”

강 주임은 자조하듯 웃음을 터트렸다.

“나이 들면 이래. 젊은 사람이랑 달라.”

“능 선생, 한 시간 쉬고 수술하자.”

좌자전이 저렇게 인간미 넘칠 줄은 몰랐던 연문빈은 좌자전과 강 주임을 번갈아 보다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깜빡했네. 좌 선생님, 강 주임님하고 나이 비슷하시죠.”

“나 좌 선생보다 젊거든!”

좌자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강 주임이 얼굴을 붉히며 고함쳤다.

“그렇죠?”

연문빈은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럼 한 시간 쉬세요. 전 수술실에 가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능연이 잠시 생각하다가 하는 말에 강 주임은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능연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수술실에 먼저 가서 준비하는 이런 행위는 수술 마무리와 마찬가지로 젊은 의사들이 경력을 쌓을 때 자주 하는 일이니까.

능연의 신분과 실력으로는 이런 일을 안 해도 되고,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능연이 신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여기까지 할 줄은 몰랐군. 진료과 초짜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6개월, 1년 버티면 실력이 적잖게 늘고, 2, 3년 버티면 그 김에 연구 쪽 스킬도 조금 배워가고 그러지.

당연히 능연더러 6개월, 1년 기다리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너 달 끌다가 가르치는 것도 괜찮은 절충안 같군.

강 주임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미소를 머금고 잠들었다. 그렇게 40분 동안 푹 자고, 5분 동안 완벽한 거품 목욕을 하고는 머리를 말리며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와 의사들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푸르고 파란 수술실에서 그를 기다렸다. 강 주임은 손부터 씻고 능연 곁으로 다가가 온화하게 말했다.

“그럼 능 선생이 어시 해.”

이제 더는 거절할 여력이 없었다.

능연은 흔쾌히 고개를 끄떡이고는 강 주임 곁에 서서 살며시 눈을 감고 정신 수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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