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선생님, 우리 병원 다음 건강검진 언제예요?”
능연은 자연스럽게 그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쓸모없는 스킬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배울 수 있으니, 시스템 퀘스트는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본원 의사 수술하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확인된 증상이 만약 능연의 주력 수술이라 능연에게 수술받을 수 있다면, 본원 의료진으로서도 최고이자 필수의 선택일 것이고.
좌자전은 능연의 질문이 당연한 것도 같고 안 당연한 것도 같아서, 곧 생각을 포기하고 대답했다.
“1년에 한 번씩 하니까, 아직 몇 달 남았지.”
“당겨서 할 수 있나요?”
“당연히 안 되지. 돈만 드는 게 아니라 시간 문제도 있으니까.”
좌자전이 웃으며 나지막이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좌자전에게 미션을 주었다.
“그럼 신경 쓰고 있다가, 수술 필요한 사람 있으면 바로 나한테 보내주세요.”
“예압!”
좌자전은 재빨리 대답하고는 혹시 마연린 수술하면서 손맛을 느껴서 한 번 더 하고 싶은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마연린을 힐끔 봤다.
모든 의사가 이런 사이즈와 규격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음,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해부에 능숙한 임상의인데. 그러면 의사 거 자르는 느낌이 남달랐나?
좌자전은 능연의 의학 방면 기술과 판단을 매우 신뢰하고 심지어 숭배할 정도여서, 그런 생각이 생기자 저절로 적극적으로 되어서 사무실로 돌아간 후 연달아 몇 통이나 전화를 돌렸다.
“좌 선생, 정말로 능연 연습 상대를 찾으려는 거예요? 아니죠?”
좌자전이 전화하는 소리를 들은 주 선생은 더는 구석에 있지 못하고 나왔다.
“주 선생님, 아직 계셨어요?”
“나니까 묻는 거지, 다른 사람이라면 선생님이 멍청한 짓 하는 거 상대도 안 했을걸요?”
주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의사들은 사무실을 오고 가느라, 좌자전이 통화하는 걸 봤대도 줄곧 전화하고 있다는 것까지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나 주 선생은 사무실에 처박혀 있으니 듣다듣다 질릴 때까지 듣게 된 것이고.
좌자전은 히죽 웃으면서 머뭇머뭇 대답했다.
“아무래도 깊은 뜻이 있는 거 같아서.”
“깊은 뜻이요? 무슨 깊은 뜻? 반드시 동료 수술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음, 말하고 보니 느낌이 좀 있네. 일드에서 나올 법한 말투잖아. 네 목숨, 내가 구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뭐 이런 거.”
주 선생이 주절주절하는 말에 좌자전은 웃기만 하고 말없이 지켜보다가, 주 선생이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할 때 다시 입을 열었다.
“의학적으로 고려해서 그러는 거 같아서요.”
“무슨 고려요?”
주 선생이 믿지 않는 듯하자, 좌자전은 턱을 치켜들고 동굴 저음으로 대답했다.
“능 선생이 동료한테 감사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 같아요? 아니면 수술 자체에 관심 있어서 저러는 거 같아요?”
“그건…….”
주 선생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동료의 감사, 혹은 인정 이런 건 병원 의사라면 대부분 연연한다. 그러나 능연이라면…… 분명 그 대부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술과 의학상 고려라면? 능연은 오히려 그쪽에 가까운 게 맞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능연이 무슨 생각인 거 같은데요?”
주 선생은 잠시 사고방식을 바꿔서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사고회로를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좌자전은 한참 고민하다가 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기, 의사 거 자르는 게 유난히 손맛이 좋았던 게 아닐까요?”
“미쳤어요? 하하하하.”
주 선생은 정말로 웃음을 터트렸다. 의사 생활 오래 하면서, 환자 직업에 따라 수술하는 느낌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또 처음이었다. 아무리 발상을 바꿔도 그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운동선수는 근육이 탄탄하고 셰프는 지방이 많다 정도?
그 생각에 주 선생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그러고 보니 직업에 따라 수술 느낌이 다른 직업도 있긴 하네. 이것도 직업병에 속하나?
주 선생은 의료진을 수술한 경험이 정말 없긴 했다. 그래서 이런 면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하면 할수록 호기심이 생긴 주 선생은 저도 모르게 좌자전을 위아래로 살폈다.
“주 선생님,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마세요.”
“무슨 시선이요.”
좌자전이 담담하게 하는 말에 주 선생은 일단 부인했다.
“능 선생이 막 MRI 판독을 끝낸 표정이거든요.”
주 선생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까와 조금 다르게 웃어 보였다.
“적당한 환자 찾으면 저도 알려 주세요. 나도 해봐야지.”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동맹군 같은 말투로 물었다.
“선생님도 의사 거 자르는 손맛이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수부외과 수술이면 모를까.”
주 선생도 떠보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왠지 흥분됐다. 농땡이를 부리긴 해도, 임상할 때는 진지한 편이니까.
주 선생은 턱을 문지르며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며칠 전에 OS(정형외과) 갔을 때, 양승우가 허리를 붙들고 있던데. 위치로 보면 간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간암일지도 몰라요. OS 맨날 방사능 먹잖아요.”
“양 선생은 노는 거 좋아한다면서요. 어제 무리한 거 아니고요?”
“그건 그러네. 그럴 가능성도 있지.”
좌자전이 눈을 깜빡이며 하는 말에 주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은요? 걘 치질 있는데. 수술도 두 번 했을걸? 사천 사람이라 매운 것도 자주 먹을 텐데. 똥 쌀 때 분명 살기 싫을 거야.”
“세 번입니다. 두 달 전에 한 번 더 했어요.”
“또? 흠. 제거하면 완치된다는 거 다 거짓말이네.”
주 선생은 실망했다가 다시 사고회로를 개방했다.
“사실 의사들은 치질이 많잖아요.”
“여원이 이미 세 번은 싹 쓸었어요.”
“아…….”
좌자전이 다시 주 선생의 사고회로를 차단하자, 주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의사들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 환자 병 고치는 건 둘째치고, 본인이 병 덩어리야. 수술에, 입원에. 아, 내분비과 왕건생은요? 작년에 담낭염이었는데? 수술한다더니 시간이 없어서 소염하면서 버티던데. 정 안 되면 소가 식당에 데리고 가서 고기 한 번 먹고.”
좌자전은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주 선생을 바라봤다.
“진지할 때는 꽤 믿음직하네요, 주 선생님.”
“능 선생님, 우리 그이 인대……. 수술 끝나면 정상 생활할 수 있겠죠?”
영상의학과 백지가 능연 앞에 서서 긴장 가득한 얼굴로 MRI를 보며 물었다.
“백 선생님이 직접 필름 볼 줄 알면서, 뭘. 그래서 장 선생님이 정상 생활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좌자전이 껄껄 웃으며 받아쳤다. 주 선생과 모의한 소가 식당 투어가 시행되기도 전에 일반외과 의사가 농구 하다가 인대가 부러져서, 좌자전은 지금 기분이 꽤 괜찮은 편이었다.
인대 재건은 능연의 스트라이크 존이라서, 일반외과 초짜 주치의가 응급센터로 실려 왔을 때, 좌자전은 하마터면 뽀뽀할 뻔했다. 그러니 더욱 온화한 태도, 방정맞은 말투로 주치의 아내를 대했다.
외과 경험이 별로 없는 영상의학과 의사인 백지는 여전히 진지하기만 했다.
“능 선생님이 잘하잖아요. 적어도 정상 생활은 가능할 거 아니에요.”
다른 의사라면 분명 정형외과로 곧장 갔을 텐데, 응급센터로 남편을 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좌자전은 질문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리통이 다 흔들리도록 웃어 댔다.
“그야 정상 생활이란 정의가 뭐냐에 따라 다르죠. 그리고 백 선생님 조건이 높은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주변 사람들도 큭큭 웃으며 수술실의 여백을 채웠다. 백지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서 마취에 취해 있는 남편을 바라봤다.
“여보, 봤지? 당신이 이러고 있으니까 좌 선생님까지 당신 와이프 놀리잖아. 그러니까 꼭 나아야 해.”
“좌 선생님이 당신 정상 생활을 보장할 순 없잖아.”
수술대에 누운 장 선생도 실실 웃으며 대답하자, 다들 마음 놓고 낄낄 웃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모두 수술실에 완벽하게 녹아든 상태라, 크게 웃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좌자전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아하니 두 분 정상 생활 조건이 꽤 높은가 보네요. 젊은 사람은 다르네. 아이고, 그나저나, 장 선생 인대, 정말로 농구 하다 다친 거 맞아요? 다른 경기장 아니고?”
사람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풉 하고 웃었다.
그때, 준비를 마친 능연이 손을 흔들어 펜을 건네받고는 장 선생 다리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좌자전은 바로 입을 다물고 수다를 마친 후의 느긋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미는 등등 작은 심부름을 했다.
무릎 인대 재건술은 능연이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기술은 한때 운화병원 특수부가 해외에서 주력으로 홍보할 만큼 매우 뛰어났다.
정상급 병원으로서 외국 환자를 끌어들이는 건 각 항목 순위를 올리는 중요 수단인데, 다만 운화병원은 기껏해야 지역구 정상 병원이라 외국 환자 욕심은 나도 딱히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었다면 능연은 간 절제보다 외국 환자 수술하느라 정신없었을 것이고.
“운동 좋아해요?”
능연이 묻는 말에 좌자전이 바로 눈치를 주자, 장 선생이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 선생님, 저 농구 하는 거 좋아해서 그래도 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운동까지 하려면 리스크가 몇 배는 높아질 거예요.”
능연이 손을 놀리며 대답했다. 수술 전에 이미 설명한 내용이지만, 환자는 보통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
장 선생은 ‘네’ 하고 대답하고는 아내를 힐끔 보고는 능 선생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능 선생을 믿는 건 별 소용 없어요. 집도의 때문에 리스크가 줄어드는 게 아니니까요.”
“저도 알죠.”
좌자전이 상기시키는 말에 장 선생은 다시 가볍게 대답했다.
“보호자 의견은요?”
“없어요.”
좌자전이 돌아보며 다시 묻자, 백지가 바로 대답했다. 수술실 안에 서 있으니 상대적으로 마음이 진정되어서, 남편이 고른 방안이 제일 마음에 드는 방안이 아닐지라도 반대하지 않았다.
좌자전은 내심 안도했다. 부부가 화목하고 이성적인 이런 경우가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부부가 화목하긴 한데 비이성적인 경우가 가장 걱정이었다. 다 당신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하는 일마다 상대 느낌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능연은 좌자전처럼 그렇게 생각이 많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만 통일되면 그로서는 충분했다. 그리고 인대 재건술 자체는 그에게 복잡한 수술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웃고 떠드는 장 선생이 쪼오오오오금 방해된다는 정도?
마연린과 비교하면 장 선생은 낯선 편이지만, 같은 병원이고 자주 왕래하는 일반외과라서 능연도 자주 본 적 있는 의사였다.
그리고 인대 재건 수술은 포경 수술과 비교하면 훨씬 복잡하고 리스크도 더 컸다. 그래서 절개구 크기, 인대 고정, 합병증, 후유증 등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원래 세심한 성격이고 환자를 생각하면 당연히 정신 집중하지만, 평소에 하는 수술과 큰 차이를 두지는 않았다.
사람들 눈에도 능연은 일사불란하게 수술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좌자전은 다른 느낌이랄까. 하지만 기술이 부족해서 느끼는 것도 그리 깊지 않았다. 혹은 다른 날과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게 뭔지 아예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은 서서히 흘렀다. 백지가 언제 다가왔는지, 남편 곁에 서서 부분 마취 상태인 남편을 위로하고 있었다. 마취의도 저지하지 않았다.
요즘은 보호자 배석 수술을 진행하는 병원도 많아졌다. 국내에서 그럴 조건이 되는 수술은 당일 수술 정도, 그러니까 지금 장 선생이 받는 수술이었다.
마취의는 오히려 그 틈에 관찰하면서 이걸로 논문 하나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퀘스트: 의사의 수련
- 퀘스트 내용: 본원 의사 수술 세 번 할 것 (1/3)
- 퀘스트 보상: ‘초음파 심전도’ 판독 (마스터급)
능연이 수술 종료를 선포하자, 퀘스트 제시어가 튀어나왔다.
그때, 능연은 갑자기 시스템이 이번 퀘스트는 수술 성공을 요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수술만 하면 그만이고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보상을 주는 모양이었다.
능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수술 실패하면 화장실 실패하는 것보다 더 비참할 텐데. 그걸 세 번이나……. 초음파 심전도를 위로로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서 푹 쉬고, 재활은 최대한 빨리 시작해요.”
능연은 한마디 더 당부한 후에야 수술복 찢어내는 소리를 즐기면서 느긋하게 수술실에서 나왔다.
마무리하느라 바빴던 좌자전은 한참 후에 능연에게 보고하려고 사무실로 향했다.
“병원에 수술할 의사 더 있을까요?”
능연은 퀘스트 진도 (1/3)이 아무래도 불편했다. (2/3)은 되어야 마음이 편하지.
“당분간은 없어.”
“네.”
좌자전이 허탈하게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건 아니잖아.”
좌자전이 껄껄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고, 능연은 생각해 보더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진 않아요.”
“그럼 됐어, 됐어.”
좌자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의료진은 한정되어 있고, 주마다 진찰받는 의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 수술하는 것도 아니고 그중에 능연의 스트라이크 존에 맞는 의사는 더 드물 것이다.
“능 선생, 좀 쉬지그래? 적당한 환자 찾으면 알려줄게.”
“괜찮아요. 이틀 동안 병원에 있을 거니까, 있으면 알려주세요.”
“안 급하다며…….”
좌자전은 바로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보스가 야근까지 재촉하는 데다가, 바라는 건 신선한 동료라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새벽.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질 때, 전칠은 한 무리를 이끌고 운화병원 후문에 도착했다.
더 일찍 온 맥순은 산송장처럼 20분 정도 배회하다가,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조금 정신이 돌아와서 그쪽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
“사장님! 능 선생님 어제 밤새 수술했어요. 먹을 거랑 물 좀 보내드렸는데 별로 드시진 않았고요.”
맥순은 노련한 가이드처럼 빠른 리듬으로 지난밤 상황을 보고했다.
“앞으로 이틀 더 병원에 있을 생각이라던데?”
전칠이 화장을 깔끔하게 고친 후에야 차에서 내리면서 묻는 말에 맥순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또 서른 시간 정도 잠도 안 잤어요. 전 못 말리겠고요.”
“그 사람은 유난히 기운이 넘치더라.”
전칠은 생긋 웃으면서 먹는 건 잘 먹는지 물었다.
“네. 잘 먹는 편이에요. 죽도 두 그릇이나 먹고, 고기도, 과일이랑 채소도 꽤 챙겨 먹고요.”
맥순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뭐 먹더라고요. 규칙적이에요.”
“잘 먹으면 됐지. 우리 아빠도 젊어서 열심히 할 때는, 깨어있고 음식만 먹으면 가족들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
전칠은 어릴 때 일을 회상하며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아버지도 전엔 그러셨구나…….”
맥순은 부자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구나 싶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응. 우리 아빠, 나 어릴 때는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서 점심때까지 열심히 일하셨어.”
밤새 잠을 못 잔 맥순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저도 모르게 전칠의 말에 토를 달았다.
“새벽 때까지 열심히 하신 게 아니고요?”
“그럴 리가. 반나절 일하는 것만 해도 아빠 동년배 중에선 제일 열심히 일하는 건데.”
전칠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맥순은 그제야 완전히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 머리에 잡초 심었니? 열심히 사는 금수저랑 나 같은 촌년이랑 같겠어?
직장 속성을 완벽하게 회복한 맥순은 미소 지은 채 성실하고 믿을 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동년배 중에 최고면 대단한 거죠.”
“응, 물론 능연과 비교할 순 없지. 능 선생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부지런해.”
“그건 그래요.”
맥순은 속으로 두 사람을 비교 선상에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맥순이 속으로 사장에게 태클 거는 사이, 사람들은 곧 응급센터 건물에 도착했다. 이제 맥순과 친해진 당직 보안요원은 활짝 웃으며 전칠을 맞이하고 담배 한 상자 얻은 다음엔 온몸으로 ‘운수대통’이란 기운을 내뿜었다.
“주 셰프님, 이제 부탁드려요.”
전칠이 달리 재촉할 것도 없이 한마디만 해도 그녀와 함께 온 셰프들은 알아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 세월 전씨 가문에 근무한 셰프로서 아침에 몇십 명 식사 준비하는 건 일상적 업무였고, 다른 장소에서 요리하러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는 일도 흔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병원에 들어오는 건 드문 경우이긴 했다. 면 치대는 사람은 면 치대고, 접시 닦는 사람은 접시 닦고, 최소한의 교류만 하면서 최대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얀 요리사 옷을 입은 요리사 몇 명은 셰프 모자를 높이 쓰고 있어서, 설사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존재감을 죽이기 쉽지 않았다.
응급센터 의사와 간호사들은 바로 기뻐하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운리 사장님 오신 거죠? 오늘은 면인가?”
“치킨 수프 훈툰(중국식 만둣국)이래요.”
“치킨 수프 훈툰에 송로 들어가는 건 정말로 희귀한 건데!”
사람들은 입으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도 손은 놀지 않고 재빨리 톡 방에 정보를 공유했다. 볼일 있어서 나간 사람, 혹은 지각할 상황이던 응급센터 직원들은 속도를 올려 돌아왔다. 휴가 낸 사람은 어쩔 수 없었고. 그들로서는 차라리 몇 시간 더 자는 게 훨씬 즐거웠다.
능연이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소면 한 그릇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침 좀 준비했어요. 수프 여러 가지 준비했으니까, 따듯하게 먹어요.”
전칠은 자연스럽게 능연을 맞이하며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능연을 보면 정말로 기뻐서, 몇 시간 먼 긴 달려오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능연을 보는 순간, 전칠은 온몸이 짜릿해지고, 피부의 호흡도 바짝 긴장됐다. 능연 역시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같이 먹을래요?”
“응응.”
전칠은 능연과 나란히 앉아서 막 구운 빵을 꺼내 한입 먹고는 능연을 보고, 능연을 보고 한입 먹고…….
능연 역시 느긋하게 전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느릿느릿 소면, 죽, 계란 프라이, 소롱포(작은 대나무 찜기에 쪄낸 육즙이 진한 중국식 만두), 갈비찜, 생선찜, 대하구이, 채소볶음 등등…… 을 먹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능연의 시선이 다시 좌자전에게 향했다. 신나게 먹고 있던 좌자전은 활짝 웃고 있었다.
“음? 좌 선생이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전칠은 눈앞에 저 조림 달걀이 마음에 드는 편이라서 말투도 매우 부드러웠다.
“능 선생이…… 병원 의사한테 은혜를 베풀고 싶어 하는데, 제가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요.”
좌자전이 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전칠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자선 이벤트 하게요? 나 자선 재단 있는데.”
“아니요, 전칠 씨.”
좌자전은 서둘러 전칠의 말을 자르고 나지막이 설명했다.
“기술로 은혜를 베풀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병원 의료진 수술…….”
“그건 간단하죠.”
“간단해요?”
“쌍꺼풀 수술하면 되지.”
좌자전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래, 맞다! 쌍꺼풀 수술은 사람이라면 다 할 수 있지. 수술받고 싶어 하는 사람 한 트럭은 모으겠다. 게다가 사람은 눈이 둘이잖아?
사람은 눈이 둘이라고!
두 번 수술할 수 있어!
나도 눈이 두 갠걸!
“좌 선생님은 어떤 환자를 찾고 있었는데요?”
전칠은 안색이 확확 변하는 좌자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얼굴에 종양 생긴 사람이요. 마침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안면 종양 수술받으라고 했죠.”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찾는 게 쉽지가 않았었다.
“하나요?”
“응. 또 하나는 편도 제거 수술이요. 편도선염을 달고 사는 녀석.”
좌자전은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인류에겐 수술할 수 있는 눈이 두 개나 있고, 그것도 얼굴에 달려 있는데 뭐하러 파일을 뒤져댔는지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