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 내용: 의사들이 감탄하게 만들어라. (8/3)
능연이 수술을 끝냈을 때, 퀘스트가 이미 8/3까지 넘어 있었고, 보물 상자도 두 개나 눈앞에 나타났다.
보물 상자는 일단 접어두고, 8/3이라는 애매한 완성도가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수술이 이미 끝났으니 감탄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능연은 눈 밑이 시커먼 연문빈을 바라보며 어시를 한 바퀴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위가우가 참관실에서 인사했다.
“능 선생,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능연은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의 주변엔 종종 몇 년 만에, 십몇 년 만에 나타나서 친밀하게 아는 척하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20년 전에 이사 간 하구 골목의 외사촌 형님의 사촌 여동생의 절친도 바람 좋고 햇살 좋은 오후 문앞에서 ‘능연’하고 큰 소리로 부른다.
어쩐지 능연이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자, 위가우는 저절로 얼굴이 조금 굳었다. 옆에 있던 일반외과 부주임은 내심 혀를 차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능 선생, 적 원사님 제자 위가우 선생이셔. 전에 만난 적 있지?”
위가우는 어색한 얼굴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능연은 머릿속에 인삼 베이비의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며 다시 ‘안녕하세요’ 하고는 수술 가운을 벗었다.
“와…….”
자제력이 약한 간호사는 벌써 기뻐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위가우는 할 말이 태산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고, 옆에 있는 의사들도 옷 벗는 능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등빨 좀 봐. 할 말이 없다. 몸매 진짜 좋다. 연문빈 좀 봐. 만날 헬스 해도 망아지가 말이 된 수준일 뿐이잖아.”
“능연하고 비교하면 재미없지. 저 근육 좀 봐. 라인 좀 보라고. 연문빈은 기껏해야 오리지, 백조는 못 돼.”
“연문빈은 옷 벗으면 양 같을걸? 옷 입으면 낙타 같고. 입이 너무 못생겼어.”
위가우는 사람들을 힐끔 훑어봤다.
운화병원은 참 비우호적이군. 대놓고 평가질이나 하고. 나는 앞잡이처럼 보이겠네?
“환자 더 있나요?”
능연이 장갑까지 벗고 수술복만 입은 채 상큼하게 서 있었다.
“어, 오늘은 없어요. 심장외과 수술은 없어요. 그게…… 심장외과 수술은 준비가 오래 걸려서 바로 들어오지 못하거든요.”
수술과 간호사가 떠듬떠듬 덧붙였다.
능연은 ‘음’ 하고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완성도가 8/3이라니, 일을 하다 만 것처럼 찜찜한 수치라서 확실히 아쉬웠다.
“그럼 슬관절경 환자라도 있는지 볼까요?”
능연의 아쉬워하는 모습에 간호사도 다급한 듯 물었지만, 능연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슬관절경으로는 안 돼요.”
슬관절경 실력도 지극히 뛰어나지만, 심장외과 수술과 달라서 동료의 칭찬을 얻기가 매우 힘들었다. 갑자기 슬관절경 수술 몇 건 한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동료의 칭찬을 얻을 가능성은 더 낮고.
위가우는 눈꺼풀까지 파르르 떨렸다. 부러웠다. 북경에서 아무리 대접받는다지만, 수술하고 싶다고 바로 수술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게다가 수술과 간호사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고. 그가 수술을 추가하려면 욕 안 먹으면 다행이고 준비 과정도 매우 복잡했다.
“강 주임님, 지금 수술 중이시죠?”
능연이 수술실 문을 밟고 나가면서 나지막이 묻는 말은 위가우는 제대로 듣지 못했고, 일반외과 주임은 ‘시발!’ 하고 예민하게 고함쳤다.
“왜 그러십니까?”
“아, 위 선생님은 모르는 일입니다. 휴, 우리 GS는 주임님이 꽉 잡고 계셔서 다행이지.”
일반외과 부주임은 동료의 비극에 덩달아 슬퍼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 주임님, 아무래도 못 버티겠네.”
면적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닌 참관실에선 의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바로 들렸다.
“원래 호흡기 달고 있던 수준이잖아. 능연이 심장 우회술도 이렇게 노련하게 하는데, 끝났지. 응급센터에서 심장 우회술만 하겠네. 안 봐도 비디오지.”
“곽 주임님 심장이 안 좋다던데.”
“누가 수술을 바로 배워서 바로 해. 게다가 황제 수술을 태자한테 맡긴다? 황제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거냐?”
“아이고, 말조심 좀 해라.”
“뭐가 무서워서.”
“안 무서워? 그럼 통화 버튼 누른다?”
“야, 이! 죽는다?”
위가우는 얼굴이 흐려져서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일반외과 부주임을 바라봤다.
“하아. 수술도 끝났으니까 일단 나가시죠.”
일반외과 부주임이 이마를 짚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위가우는 아무런 말 없이 따라 나와서 몇 발짝 걷다가 모르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GS는 수술 뺏길 걱정할 필요 없잖습니까?”
“알고 계셨어요? 좋은 일은 안 퍼지고 안 좋은 일만 천리 밖으로 퍼진다더니…….”
위가우는 입술을 머금은 채 양팔을 살며시 휘두르며 약재 냄새를 풍겼다.
“조금이요. 간담췌도 능연이 쥐락펴락한다면서요.”
“좀 그런 셈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GS도 먹힐 가능성 있어요. GS 수술은 응급에서 가로채기 쉽잖아요. 전엔 급성 충수염은 다 우리 거였는데, 아, 물론 우리도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위 수술도 요즘 좀 그런 추세고. OS 수술도 일부는 응급센터에서 하죠. 게다가 당일 수술도 한다니까요. 대놓고 환자 점거하는 거지.”
“심장외과도 응급센터가 먹겠다는 건가요?”
“예, 먹고 뜯고 씹겠답니다.”
“그걸 가만히 둬요?”
“가만 안 두면요? 곽 주임님이 부르짖는 대형 응급센터도 곧 실현될 판인데.”
일반외과 부주임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위가우는 갑자기 부러워졌다.
“그래서 곽종군과 능연 두 사람이 이제 심장외과 수술도 탐낸다는 말이죠? 이건 판이 큰데.”
“네네.”
일반외과 부주임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입을 삐죽였다.
“다 못나서 그런 거죠. 강 주임님 실력도 괜찮은 편인데 능연하고 비교했더니 할 말이 없어진 거니까요. 그러니까 능연이 심장외과를 제집처럼 활개 치고 다니죠. 보세요, 지금도 또 갔잖아요.”
“우리도 가봅시다.”
위가우는 껄껄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쓸데없이 태클 걸면 제가 강 주임님 편들 수 있잖아요.”
일반외과 부주임은 순간 마음이 동해서 걸음을 서두르며 위가우를 데리고 심장외과 수술실로 향했다.
그때, 강 주임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저온 침전, 빨리.”
“혈소판.”
“모자라면 빨리 가지고 와. 담요는?”
쩌렁쩌렁한 강 주임의 목소리는 그렇게 다급하진 않은데, 명령은 촉박하게 연달아 내려왔다. 어시 두 명은 끽소리도 없이 묵묵히 손을 놀렸다.
아직은 심장외과로서는 일반적인 상황이었지만, 간당간당했다. 이제 수술이 더 어려워지면, 주임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이다. 그 화를 받는 것도 어시의 직무라지만, 그런 직무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수술실에 있는 사람들은 수술이 순조롭길 묵묵히 빌었고, 강 주임 본인도 사실 내심 빌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묵묵히 기도하면서 쉴 새 없이 고함쳐댔다.
“그것도 제대로 못 해서 대동맥을 망쳐? 너 이 새끼, 대단하다. 아예 혈관을 꺼내지, 왜? 심장에 구멍 뚫으라고! 수술 그만하고 아예 영안실로 보내지? 응?”
퍼스트 어시는 끽소리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서른 넘었으니, 욕먹고 자란 지도 벌써 10년이고, 이 정도 호통에 얼굴이 붉어질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실수한 것도 맞았다. 실을 끊어먹거나 혈관 출혈을 일으키는 실수보다 대동맥을 건드린 실수가 더 심했다. 다행히 심장 수술이라 혈액이 충분해서 테이블 데스가 아니었지만, 아직 상황을 되돌리지 못했다.
피가 쉴 새 없이 흘렀고, 강 주임은 쉴 새 없이 욕을 해대면서도 속도는 전혀 늦어지지 않은 채 심장 패드를 들고 재빨리 쑤셔 넣었다. 그러나 그래도 피가 계속 흘렀다.
“땀.”
강 주임은 낙담하지 않고,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블랙홀 같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움직였다.
심장외과 수술은 바로 이런 리스크 높은 수술이다. 시간당 300cc 출혈량은 다른 수술에선 매우 많은 편이다. 심장외과 수술에서도 역시 적은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심장외과 의사가 받아들일 만하고, 치사량은 아니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일반외과나 정형외과와 달리 심장외과 의사는 심낭을 여는 거라서, 선택지는 딱 둘이었다. 수술을 완성하거나 수술 실패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쏜 화살을 되돌릴 길이 없듯이, 연 가슴도 되돌릴 길이 없었다. 웃으며 수술을 끝내고 환자를 병실 혹은 영안실로 보내는 것이 지칠 대로 지친 심장외과 의사가 할 일이었다.
“오늘은 애 데리러 못 가겠네.”
간호사 한 명이 고개를 빼고 보다가 평온하게 불평하는 말에 그래도 간호사들에겐 태도가 좋은 편인 강 주임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 오늘 거기 미녀들, 이 늙은이와 함께 밤까지 있어야겠다.”
“아이고, 미녀라고 진작 좀 말씀해 주시지. 그럼 애도 안 낳고 매일매일 주임님이랑 수술실에 있었을 텐데요.”
간호사는 허리를 흔들어 주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남편한테 메시지 보내야겠다.”
“우리 남편한테도 좀 보내줘.”
“난 시어머니한테 보내야 해. 아, 미치겠네.”
“그럼…… 나도 와이프한테 보고해야겠다.”
수술실에 있는 의료진들이 불평, 불만, 언짢은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사실 이미 익숙한 상황이었다.
판막 교체 수술은 정상이라면 퇴근 전에 어떻게든 끝나지만, 이런 쉽지 않은 수술이면 정상 퇴근은 둘째치고 퇴근할 수 있기만 해도 다행이었다. 물론, 이날 다음 스케줄도 모두 새로 배정해야 하고.
주마다 수술하고 날마다 일이 가득한 의료진이 이런 특수한 상황으로 추가 근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상생활이 수술이고, 툭하면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라 투덜거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퇴근 시간이라고 그냥 갈 수는 없으니, 수술실에 남은 사람은 자신의 휴식 시간과 가족 간의 유대감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영상의학과가 좋아. 시간 되면 재깍재깍 퇴근하잖아. 부러워서 침이 다 나온다.”
모든 이 대신 메시지를 보내고, 주임 대신 전화도 한 순회 간호사가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방사능 무서워서 안 갔더니. 휴우, 그게 뭐가 무섭다고.”
“이제 애도 낳았으니까 안 무섭지, 아가씨 땐 당연히 무섭지. 난 OS도 무서워서 안 갔는데.”
수술대 간호사도 역시 침을 흘리며 탄식하듯 말을 받았다. 심장외과와 비교하면 정형외과 보너스는 야근할 동기가 되니까.
어시와 간호사들의 스몰 토크로 수술실의 엄숙한 살기도 조금 줄어들었고, 강 주임의 표정도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다.
잘 꿰매지지 않아. 제길!
피가 안 멈춰. 제길!
혈압이 올라가면 드레인 양이 늘잖아. 제길!
어시가 조금 전 위치를 제대로 꿰매지 않아서 벌어진 눈앞의 상황이야 익숙하지만, 수습하자니 골치가 아팠다.
절개구를 늘려야 하나? 봉합을 다시 해? 한 번 봉합한 혈관은 매우 취약한데, 차라리 혈관 하나 다시 끌어다 봉합할까?
집 수도관이 터져서 바닥이 완전히 젖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바닥을 부서야 할지, 얼마나 부서야 할지, 깨진 파이프는 수리할지 교체할지, 수리하면 얼마나 수리할지, 교체하면 얼마나 들지, 다른 문제는 없을지, 고려해야 할 때였다.
심장외과 수술은 사실 더 복잡하고 더 위험해서 그렇지, 수도 파이프와 펌프를 고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강 주임이 반복해서 생각하는 사이, 에어타이트 도어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 주임님, 구경 좀 하러 왔습니다. 하하하.”
좌자전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듯 껄껄 웃으며 들어왔다. 강 주임은 멈칫해서 수술도 멈추고는 허리를 세우고 멍하니 좌자전을 보다가 뒤따라 들어오는 능연을 발견했다.
“소식 듣고 온 거야?”
“무슨 소식이요?”
좌자전이 되묻는 말에 강 주임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에 순회 간호사의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아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한 게 순회 간호사였으니, 소식을 퍼트렸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내통자였어! 집안의 불행이로세.
사실 강 주임은 묘하게 기뻤다. 수리공이 10시간 넘게 파이프 수리해도 못 고치고 있는데 회사에서 사람을 보내준 기분이랄까?
승복할 수 없긴 해도, 쪼오금 기쁘기는 했다.
하지만 기세로는 질 수 없지!
강 주임은 고개를 치켜들고 가슴을 펴고 냉랭하게 능연을 바라봤다.
“여긴 우리 심장외과 수술실이야.”
“출혈 얼마예요?”
능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정말로 그냥 궁금했다.
강 주임은 잠시 망설이다가, 냉랭한 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인 마취의는 강 주임이 두렵지도 않아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1,400입니다.”
“계속 나와요?”
“응. 한 번 제어했는데, 혈압이 올라서 출혈량도 늘었어요.”
“아. 그럼 젤라틴 스펀지 더 가지고 오세요. 인공 혈관도 있어야 해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지시를 내렸다. 순회 간호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차피 의심받은 김에 아예 물건을 가지러 갔다.
“여긴 우리…….”
“손부터 씻고 올게요.”
강 주임이 ‘흥’ 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여는데 능연이 그의 말을 자르고는 어느새 돌아서서 나갔다. 이런 도전적인 케이스엔 언제나 흥미를 느끼는 능연이니까.
강 주임은 태연하게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비슷한 일이 너무 많아서, 이제 더는 의아해하지도 않았다.
“강 주임님.”
그때, 위가우가 들어왔다.
“아, 위 선생, 왔나?”
“어떠세요? 잘 되어가요?”
위가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능연이 돌아오기 전에 강 주임을 도와 해결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강 주임의 마음은 더 평온해졌다.
“아니. 와서 좀 볼래?”
지금 강 주임은 수술복을 벗고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고 싶었다.
위가우는 강 주임 기분이 별로인 걸 알고 있었고, 강 주임도 위가우가 자기 기분이 별로라는 걸 알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위가우도 강 주임이 자기가 강 주임의 기분이 별로라는 걸 알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가우는 정말로 전혀 개의치 않았다.
능연에게 관심이 좀 있어서 그렇지, 위가우는 운화병원 심장외과 의사, 강 주임 같은 잡어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능연을 대할 때처럼 감정 동요가 없고, 평온한 마음으로 강 주임을 마주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인사하고는 자기 사고회로대로 질문을 던졌다.
“출혈은요?”
“1,400.”
이번엔 강 주임이 대답했다.
“얼마나 오래요?”
“수술 시작한 지 6시간이고, 출혈은 4시간?”
위가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 수술은 뇌수술과 달라서 순조롭든 아니든 대여섯 시간이 기본이었다. 잘된 수술도 두어 시간은 걸리고, 대형 수술은 네 시간이면 되지만, 문제가 생기면 두어 시간으로 해결할 수술이 아니었다.
주방에 수도를 다시 깔 때, 계획대로 문제없이 진행되면 여러 파이프를 갈아야 해도 긴 시간 걸리지 않지만, 누수, 압력 등등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계속 거즈 압박하신 겁니까?”
위가우는 바로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응.”
강 주임은 아무일 아닌 듯 무표정했고, 오히려 어시들이 부끄러워했다.
“거즈 압박으로 4시간에 1,400이면, 문합구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바늘땀이 너무 컸나 보네요.”
위가우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사고는 아니고 실수 정도지만, 나이 든 심장외과 서전으로서는 뒤처리를 고려해야 할 문제였다.
강 주임은 끙 소리를 낼 뿐, 대답하지 않았다.
“펠트 패드 썼습니다.”
퍼스트 어시가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위치가 안 좋아서 바쁘게 봉합하다가 실수했을 수도 있고, 다른 곳이 터졌을 수도 있습니다.”
“무턱대고 추측하지 말아요.”
수술실로 들어온 위가우의 목소리는 명확하게 엄숙해졌고, 명령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 다시 뜯긴 그렇고, 젤라틴 스펀지 있나요? 그리고 바이오겔은요?”
“가지러 갔어요.”
순회 간호사의 대답에 위가우는 바로 깨닫고 능연의 지시냐고 물었다.
“예. 능 선생님이 아까 지시 내렸어요.”
“빠르네.”
위가우는 입을 삐죽이며 잠시 더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혈 거즈는요? 흡수되는 거.”
거즈 지혈은 외과 수술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으로 이 뽑을 때도 거즈로 압박해서 지혈한다. 다시 꺼내야 한다는 게 가장 골치 아픈 점이고.
흡수되는 지혈 거즈는 좀더 첨단적이라, 거즈가 환자 몸 안에 남았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등 골치가 훨씬 줄어든다.
“가지고 올게요.”
순회 간호사는 강 주임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그제야 대답했다. 다들 어서 집에 가고 싶으니, 누군가 수술을 도와주겠다면, 강 주임 말고는 다들 내심 반겼다.
사실 강 주임도 묵인한 셈이고.
어차피 수술을 뺏기는 건 마찬가지니, 차라리 접대…… 아니 접대할 시간과 정력을 아껴서 멍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강 주임님, 흡수 거즈로 채우시죠.”
물건이 도착하자, 위가우는 다그치듯 강 주임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능연이 돌아올 테니, 손 씻으러 갈 생각도 없이 바로 강 주임을 조종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지혈은 배수관 누수와 마찬가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쉽고 모르는 사람은 할 줄 모르는 유형이라서, 위가우는 빠르게만 하면 몇 분 안에 끝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미 안에 잔뜩 들었어.”
“꺼내고 다시 채우죠.”
강 주임이 그제야 무뚝뚝하게 하는 말에 위가우는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혈압 체크 해.”
강 주임은 마취의에게 명령을 내리곤 거즈를 꺼내기 시작했다. 한 스텝을 바꾸려면 전체를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게 파이프 수리에서 골치 아픈 점이라 할 수 있다. 거즈를 다시 채우는 건 복잡할 것 없지만, 거즈를 꺼내는 순간 환자의 출혈이 무기력하게 심해지는 게 문제였다.
“괜찮습니다. 혈관 조심하고 거즈만 제대로 넣으면 돼요.”
강 주임은 위가우가 나지막이 중얼대는 대로 따랐다. 흠잡을 데 없는 실력을 갖춘 사람인 데다가, 배경도 특수한 의사니까.
흡수 지혈 거즈 한 트레이가 환자 배 안을 순식간에 채웠다.
“출혈량은요?”
“변화는 있네요. 총량이 1,500이지만.”
한참 곁을 지키던 위가우가 묻는 말에 마취의가 허탈한 듯 대답했다.
“그럼 패드 문젠데. 패드 봉합 문제일 수도 있고.”
위가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고, 강 주임은 언짢아졌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사실 강 주임도 패드 집어넣을 때 힘을 너무 썼거나 디테일을 놓쳤거나 했으면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 안 되면 패드 하나 더 깔아야죠.”
“환자가 못 견딜 수도 있어.”
강 주임이 한마디 했다. 어찌 됐든 자신의 환자라 위가우의 생각 하나로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때, 능연이 들어왔다. 위가우는 몸을 곧추세우며 그를 바라봤다. 한 사람은 수술실에, 다른 한 사람은 참관실에 있을 때와 기분이 확연히 달랐다.
위가우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능연은 이미 그를 힐끔 보고는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패드 다시 깔아야 하나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흡수 거즈도 채우고, 젤라틴도 되고. 바이오겔 뿌리고 닫을까 싶어요.”
위가우는 자신의 가장 담대한 계획을 바로 말했다. 능연이 이 중 하나를 채택하면 자신의 생각을 도용한 것이 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기분은 좋아질 테니까.
그러나 능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듣고는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다시 꿰매고 인공 혈관으로 감싸줘도 되죠.”
“이런 상황에서 다시 꿰매면, 바늘땀에서 피가 나올 수도 있어요.”
“잘 꿰매면 되죠.”
능연은 위가우의 동의가 필요 없으니, 바로 손짓해서 니들홀더를 건네받았다.
능연은 긴 설명 없이 환자의 상태가 괜찮은 것만 확인하고 바로 재봉합에 돌입했다.
운화병원 수술실에서는 집도의 자리만 점거하면, 쓸데없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위가우는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까 그가 제안한 방안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비교적 좋은 방안이었고,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놓친 것도 없어 보였다. 강 주임이 하던 이런저런 뒷수습보다 훨씬 완벽하고 성공률도 더 높아서 환자에게도 당연히 더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리스크는 있었다. 강 주임이 걱정한 것처럼, 다시 패드를 깐다는 건 이미 넣은 패드를 꺼내야 하고, 봉합선도 끊어내야 해서 환자가 대량 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고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표준적인 방법으로 그 스텝을 끝낼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약물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면 환자가 버틸 확률도 지대했고.
그에 반해 능연의 재봉합 방안은 위가우 눈에 리스크가 너무나 커 보였다. 물론 재봉합하면 대량 출혈 리스크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단단히 꿰매지 못할 확률이 너무나 높았다. 심지어 봉합 부위가 다시 뜯어질 수도 있고.
혈관이 얼마나 가는데, 재봉합하고 싶다고 재봉합이 되나.
그러나 능연의 수법을 보지 않고도 그의 표정만으로 어쩌면 정말로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전에도 그래 봤다는 듯이 매우 여유로운 상태인 걸 보면.
그 생각에 위가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더 생각하기도 싫었다. 생각할수록 황당하니까.
자신이 뭐라고, 뭐가 잘나서, 보통 의사들은 도전도 하지 않을 초고난도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실패해서 끌려나갈까 걱정도 되지 않나?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저렇게 간이 커도 돼? 체면 상관없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한 건가?
환자의 흉강 안은 여전히 시뻘겠다. 위가우는 힐끔 보고는 강 주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 주임은 이미 늙은 개똥벌레처럼 초월한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랬다. 패드를 다시 까는 작업은 강 주임에겐 해낼 수도 없고 할 엄두도 나지 않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주변 수습이나 하면서 어떻게든 수술을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랐고. 마찬가지로, 능연이 선택한 재봉합 역시 저기를 봉합하면 된다는 건 알지만 차마 봉합할 용기가 없는 곳으로, 여전히 해낼 수도 없고 할 엄두도 나지 않는 작업이었다.
그러니 강 주임에겐 위가우의 방안이나, 능연의 방안이나 별 차이가 없어서, 보기도, 생각하기도 싫었다.
능연의 방안은 차라리 자기가 직접 할 필요가 없어서 오히려 평온하고 홀가분했다.
위가우는 강 주임이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소용이냐며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한마디 해주려고 말을 고르며 물끄러미 능연을 바라봤다.
“석션. 퍼스트 어시, 집중.”
눈 깜짝할 사이, 능연은 흉강 안의 ‘파이프’를 쓸어 버리고는 태연하게 손목을 움직이면서 니들홀더의 각도를 바꿨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혈관에 바늘이 꽂혔다.
위가우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로 사고날까 걱정도 안 되냐? 이건 사고감인데?
그러나 사고는 없었다. 피가 튀지도, 혈관이 터지지도 않았고, 혈압도 별 변화 없었다.
위가우가 언짢은 기분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능연은 두 번째 바늘을 꽂았다. 특수 직종에 장시간 종사한 강 주임의 평온한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나, 뭘 본 거니.
혈관 봉합한 바늘땀 간격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능연이 대혈관을 살짝 비틀고 있었다. 혈관 문합한 곳의 봉합 포인트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강 주임은 확인을 바라는 듯 저도 모르게 위가우를 바라봤다. 위가우는 이미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건너뛰며 꿰매는군.”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강 주임은 갑자기 말문이 트인 듯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위가우는 정말 억지로 뺨을 실룩여 봤지만, 말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게 건너뛰며 꿰매고 안 꿰매고의 문제인가?
저렇게 해서 두 땀 만에 혈관을 잘 봉합하고 그 김에 아까 꿰맸던 땀 간격까지 정리할 수만 있다면, 춤을 추면서 꿰매라고 해도 할 수 있지.
“됐습니다. 이제 거즈 채워 볼게요.”
재빨리 한 땀 더 꿰맨 능연은 니들홀더를 내려놓으면서 거즈를 건네받아서 채우기 시작했다.
위가우와 강 주임은 누가 중풍 혈이라도 누른 것처럼 입과 눈이 삐딱해져서 능연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능연은 어느새 슉슉 거즈를 다 채웠다. 그에게 지혈은 이미 능수능란한 스킬이어서, 전동 메스로 열지혈 할 때는 레어, 미듐, 웰던, 마음에 드는 익힘 정도로 할 수도 있었다.
실력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위가우가 말한 방식대로 전에 봉합했던 부위를 다시 풀고 새로 봉합해서 지혈해야 한다. 대량 출혈만 버틸 수 있다면, 매우 안전하고 매우 타당한 처리 방안인 것도 맞고.
대량 출혈을 버틸 수 없거나, 실력이 안 되거나, 혹은 환자 상황이 너무 최악일 때는 강 주임 방법대로 뒷수습이나 하면서 최대한 출혈을 막고, 스며 나오는 피의 범위와 양을 제어한 다음 ICU로 보낸다. 환자 운이 좋고, 자아 회복 능력도 강하면 자연 치유되어서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능연에겐 그런 수술은 도전성이 너무 없었다. 차라리 바로 재봉합하는 게 오히려 환자에게도 더 좋고.
운이 안 좋고, 상태가 안 좋더라도 능연은 다시 재봉합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평소에는 능연이 이런 작업을 하는 걸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응급센터 의사들은 거친 사내가 대부분이었고, 수술도 거칠고 안목도 거칠어서 디테일을 챙길 여력도, 다른 사람의 디테일을 살필 여력도 없고, ‘기껏해야 이래도 살려내네, 쩐다!’ 정도였다.
그와 비교하면 심장외과 작은 고수 강 주임과 고수 위가우는 디테일을 매우 중시했다. 안목은 더 좋고. 그러니 능연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 똑똑히 아는 것이다.
다만 본 건 본 거고, 믿고 싶지 않을 뿐다.
“강 주임님, 나머지는 주임님이 하실래요?”
닫는 작업 직전까지 마친 능연이 손을 멈추고 강 주임을 바라보다가 일거리를 조금 주기로 결정 내리고 물었다. 강 주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어시나 마찬가지인 일거리를 이어받았다.
“위 선생님, 저 어땠어요?”
능연은 여전히 (8/3)에 멈춰있는 시스템 화면이 너무 괴로웠다. 위가우는 허리춤에 팔을 대고 씁쓸한 인생사 냄새를 풍기면서 고개를 숙인 채 마음을 다스린 다음에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은 편이야.”
- 퀘스트: 감탄스러워!
- 퀘스트 내용: 의사들이 감탄하게 만들어라. (9/3)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3
능연은 위가우를 향해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러 번 퀘스트를 완성해주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분도 꽤 괜찮은 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