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21화 (800/877)

“시스템, 상자 열어.”

응급센터 수술실로 돌아온 능연은 3분 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는 후련한 얼굴로 거울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 ‘가상인간’ (마스터급)- 잔여 시간, 4시간.

- ‘가상인간’ (마스터급)- 잔여 시간, 4시간.

- 단일 항목 스킬북 : 무인공심폐 관상동맥 우회술(Off-Pump coronary artery bypass) (그랜드마스터급)

마지막 항목을 본 능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라던 게 나왔네.

무인공심폐 관상동맥 우회술의 줄임말은 OPCAB로, 정규 관상동맥 우회술(CABG)과 달리 인공심폐 장치 없이 심장 박동을 멈추지 않고 진행하는 방법이라 심장에 부담이 훨씬 덜하다.

컴퓨터를 재시작하지 않고 설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편하고 간단한 것처럼, 인체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먼저 혈액에 염증 개입이 줄어서 인공심폐 장치로 인한 염증 발생을 줄여준다. 심장외과에서 허구한 날 인공심폐 장치를 쓰는 것 같아도, 할 수만 있다면 쓰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심장외과에서는 최대한 인공심폐 장치를 쓰는 시간을 줄이려고 지나칠 정도로 수술 속도와 시간을 따진다. 심장외과의 발전 방향이기도 하고.

인공심폐 장치를 철저히 배제하는 기술은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의 결점이라면 적응증과 난도밖에 없다.

곽 주임은 OPCAB 적응증에 부합하는 상태니까 심방 박동 비정지로 수술하는 게 훨씬 나았다.

능연은 이제 머지않아 곽 주임을 수술대로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머리를 털며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곽 주임을 만날 때가 아니었다. 무인공심폐 관상동맥 우회술은 난도가 높은 수술이라서 능력을 증명하기 전에 말로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능연은 이제 오히려 느긋해졌다. 곽종군이 아직 촌각을 다툴 때도 아니었고, 또 한편으로 우회술이 필요한 환자가 바로 있으니 차근차근히 해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심장 수술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급해서 될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오늘 밤엔 늦었다. 환자와 보호자도 조율이 필요하고.

바로 수술대에 오를 수 있는 환자라면 소 사장 정도?

“요즘 소가 식당 분위기 어때요?”

의국으로 돌아온 능연은 바로 아무 연수의나 붙잡고 물었다. 능연을 본 연수의는 순간 어버어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곁에 있던 누군가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 며칠 전에 갔던 꼬칫집 있잖아. 만날 손 찢어지는 직원 기억나지?”

“아아. 기억나, 기억나. 내가 드레싱도 해줬어.”

“소 사장은요?”

연수의가 바로 생각난 듯 중얼거리자, 능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요즘 한동안 못 봤는데. 넘어졌다던가.”

“많이 다쳤대요?”

“소 사장치고는 아니지. 휠체어는 타고 있지만.”

능연은 잠시 그의 말을 곱씹어 보다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 사장의 상태로는 휠체어 정도는 심한 게 아니긴 했다. 다른 사람 감기 걸린 정도?

“능 선생, 저녁에 꼬치 먹으려고?”

능글맞은 연수의는 끌려가 포경 수술받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바로 야식 얻어먹으려고 엉겨 붙었다.

주임이나 부주임이 나이트 근무 의사에게 야식 사는 건 병원에서 흔히 있는 이벤트였다. 많이 버는 사람이 덜 버는 사람에게 고물 좀 떨어뜨려 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되는 것이고.

물론 상급 의사도 이런 식으로 밑의 의사 환심 사는 걸 좋아하고.

능연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좌 선생님 불러서 말씀하세요. 근무 인원 확실히 배정하고.”

“OK! 밤엔 사람이 남아도니까 문제없어.”

연수의는 재빨리 대답하고는 바로 좌자전에게 전화했다. 의국에 있던 사람들도 싱글벙글 정리하기 시작했다.

운화병원 응급실이 응급센터로 승격한 다음, 인원도 훨씬 늘었는데 업무량은 그리 많이 늘지 않았다. 혹은 곽종군이 대형 응급센터를 추구하며 확장한 바람에 응급센터 진료와 당직 인원이 충분해져서 전처럼 바쁘지 않은 부작용이 생겼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잠시 후, 차 두 대가 나타나자, 의사들은 룰루랄라 차에 올랐다.

한미는 여원을 붙들고 나지막이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다.

“많이 안 먹을게요. 그냥…….”

“같이 가. 어차피 진료과 돈 쓰는 건데.”

여원은 통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한미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똑똑히 봐왔고, 또 한편으로 자기를 찾아내는 녀석에겐 언제나 너그러운데 한미는 언제나 바로 찾아내서 여원은 그녀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한미는 감사 인사하고는 차에 올랐다. 정말로 여원이 고마웠다. 비록 여원이 항상 쓰레기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지만, 청소 일하는 한미에게는 오히려 그게 친근했다.

소가 식당.

휠체어를 밀고 나온 소 사장은 의사들의 이름을 바로 부를 정도로 친밀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어, 이 선생 왔어? 황 선생도 왔네. 꼬치 먹을 거야? 아, 왕 선생, 저번에 고마웠어.”

소 사장은 민첩하게 휠체어를 굴리면서 능연에게까지 다가갔다.

“능 선생, 오랜만이야. 반갑네. 뭐 먹을래? 토끼 구이 어때?”

“맛있어요?”

“되게 맛있는 건 아닌데, 특색은 있지.”

소 사장의 솔직한 대답에 능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냥 소고기랑 양고기 먹을래요.”

“오키요. 호 선생은 양고기 수프?”

연수의하고 인사를 나눈 소 사장은 한미를 보고 껄껄 웃으며 반겼다.

“한 선생도 왔구나. 뭐 좋아해?”

한미는 힐끔 능연을 살피고는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전 의사 아니에요. 아직은……. 그런데 저 아세요?”

“당연하지. 나 운화병원 자주 가. 새로 온 의사도 기껏해야 두어 달이면 날 만나지. 게다가 난 기억력도 좋거든.”

소 사장이 조금 뿌듯한 듯이 하는 말에 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의학과엔 지금 팀이 여러 개인데, 두어 달에 의사를 한 번씩 본다면, 3주에 한 번씩 응급센터에 가신단 말씀이세요?”

“어린 아가씨가 똑똑하네.”

소 사장은 대답 대신 껄껄 웃어 보였다.

“다음에 수술할 일 있으면 한 선생이 연습하면 되겠네. 실수하면 안 돼!”

한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소 사장이 돌아선 다음에 뒤늦게 흠칫했다. 그리곤 곧 뭐라고 말로 할 수 없는 작은 기대감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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