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26화 (805/877)

기자 하나가 카메라를 끼고 살그머니 문을 열었지만, 에어타이트 도어의 소리는 역시나 들렸다.

위가우는 얼굴을 찌푸렸다.

“수술실을 마음대로 드나드는구나.”

위가우가 꿍얼거렸다. 하지만 기자가 함부로 밉보일 상대도 아니고, 게다가 가겠다는데 잡을 수도 없고, 그럴 체면은 더 없었다.

그의 사형 공문산도 주변을 둘러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사람이 많이 빠졌는데?”

위가우는 머릿속에도 수술 생각으로 가득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수술 보러 오겠다고 와놓고, 끝나기도 전에 나가다니. 몇 시간짜리 수술도 못 기다릴 거면 뭐하러 먼 길을 왔대요.”

그때, 아까 가장 먼저 위가우와 인사했던 왕화명이 아직 수술실 안에 남아 있다가 묘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위 선생님, 나간 사람들만 먼 길 온 거 아닙니다. 우리도 먼 길 왔어요.”

한창 수술 중인 위가우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공문산은 잠시 기다려도 그가 대답하지 않자 자기가 서둘러 나섰다.

“왕 기자님, 창서성에서 오셨으면서 먼 길은 아니죠.”

“천 리는 됩니다.”

왕화명은 싱긋 웃어 보이면서 핸드폰을 흔들었다.

“사실 저 사람들 탓도 아니에요. 시간이 겹쳐서 어쩔 수 없잖아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공문산이 사제인 위가우보다 더 다급해 보였다. 체면 세워주러 온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자기 체면이 깎일 판이니까.

왕화명도 일부러 이야기해주고 두 사람의 반응을 살필 셈이어서, 아직 옆에 있는 사람들을 힐끔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운화병원에 오늘 무인공심폐 장치 수술한대요. 심장 뛰는 상태로 수술하는 그거요.”

“심장 박동 비정지?”

공문산은 자기가 다 놀라서 위가우를 돌아봤다.

“운화병원에서 이걸 한다고?”

위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쿨하게 대답했다.

“능연이 하는 거겠죠.”

“능연 선생이죠. 대단한 수술이라던데요?”

위가우는 싱긋 웃다가 결국 고개를 들어 왕화명을 바라봤다.

“왕 기자님, 능연을 잘 아시나 봐요?”

“창서성 스타인데 모를 리가요.”

왕화명은 두 사람의 표정에 긴말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쟁을 많이 봐왔으니, 소식만 살짝 흘리면 그만이었다.

“능연이 정말로 심장 박동 비정지를 한다고? 무슨 수술일까.”

“우회술이겠죠.”

공문산이 하는 말에 위가우가 으스스하게 대답했다.

“하는 거 봤어?”

“추측입니다.”

위가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 곽종군 주임이 그쪽 문제가 있나 봐요. 그리고 능연이 심장 쪽 손대더라고요.”

“바로 배워서 쓴다고?”

“네. 제가 알기론 그래요.”

공문산이 웃으며 하는 말에 위가우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하하하. 담낭이 아니라 심장이라고!”

공문산은 그렇게 웃어대다가, 사제의 표정에 덩달아 진지해졌다.

사제가 어떤 사람인지, 특별히 연구한 적도 있었다. 다 같은 적 원사 제자라고 해도 따지고 보면 위가우야말로 직계 제자이고, 적 원사가 자주 데리고 다니고 직접 불러서 수술을 친히 지도하는 애제자였다. 위가우 본인도 소년 천재, 젊은 인재의 표본이라서, 동문 사형제 눈치도 보지 않고 종종 무시하고 비꼬는 사람이었다.

그런 위가우가 지금 좀 다른 느낌으로 능연을 대하는 것 같았다.

“보통 심장 수술을 시작해서 혼자 하려면 1년도 모자랄 텐데. 곽종군 주임 수술을 한다고? 몇십 년 대가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공문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위가우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라 속으로 ‘네가 천재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고 생각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공문산은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사제의 고고함은 언제나 밖으로 드러나니까.

공문산은 내심 고개를 저으면서 겉으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무에서 시작해서 간 절제 배워서 이제 간 이식까지 하는 걸 내가 깜빡했구나.”

“간 이식이 조금 더 까다로워서 그렇지, 간 절제보다 더 어려운 건 아니에요.”

위가우가 간 이식 수술을 하는 이유는 운화병원에서 수술을 하기 위해서고, 그 수술의 난이도는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이 소식이 알려지면 센세이션이 일 거야.”

공문산이 헛웃음 지으며 하는 말에 위가우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수술에 몰두했다. 공문산도 지쳐서 왕화명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걸었다.

“아무튼 홍보,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료도 충분해졌어요.”

기자 하나가 촬영 장비를 짊어지며 말을 이었다.

“보통 독자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거든요. 다 쓰지도 못해요.”

공문산은 어이가 없어졌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 아직인데요.”

“괜찮아요. 충분해요.”

기자는 한마디 해놓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심장 쪽에도 가 봐야 해서요. 어쩔 수 없잖아요. 위에서 소식 듣고, 마침 운화에 있으니까 가보라고 해서요.”

“예, 그러세요.”

공문산은 매우 언짢아졌지만,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위가우는 더 언짢았다. 이제 간 수술 서막인 처리와 절제를 끝냈고, 아직 이식도 안 했는데…….

“가고 싶은 사람은 가세요.”

위가우는 역시나 젊은 패기를 부리며 콧방귀를 뀌었고, 공문산은 서둘러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다들 잠시만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보는 사람도 얼마 없어서 시야각도 더 잘 나오겠죠?”

“미안합니다. 저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아까는 미안해서 못 나가던 기자들도 이 틈에 물건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럼 저도 좀. 금방 다녀올게요.”

“어, 같이 가요!”

기자들은 그 분위기를 타고 다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문산이 초대해서 온 사람이지만, 지금까지 찍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자료는 충분했다. 게다가 위의 지시도 있으니 당연히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을 찍고 싶었다.

다급해진 공문산은 아예 잡으러 갔지만, 아무도 막지 못했다.

“이게…….”

순식간에 수술실이 텅 비자, 공문산은 자기 체면이 깎인 것 같아서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사형, 차라리 사형도 가보세요.”

위가우가 침착한 얼굴로 제의하자, 공문산은 잠시 생각하다가, 남아서 화풀이 상대가 되기는 싫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내가 가보고 올게. 가서 사람들도 좀 데리고 돌아오지 뭐.”

공문산은 자신감에 넘쳐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대단히 특출난 특기 없이 여러 방면에 두루두루 얕게 능한 공문산은 사단에서도 직권 없이 사무실 주임 겸 주석을 맡는 캐릭터였고, 일상 업무가 바로 매체 기자 상대하고, 손님맞이 하는 그런 일이라서, 심장외과 수술실 가기도 전에 여러 가지 계획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우리 병원 의사 아니시죠? 수술 보러 오셨나요?”

공문산은 복도 코너에서 간호사에게 붙잡혔다. 깐깐할 것 같은 40대로 보이는 간호사의 모습에, 공문사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평소처럼 대답했다.

“예. 북경에서 온…….”

“예약하셨나요?”

“운화병원 의사하고 연락하고 온 건데, 예약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한 번 확인해보세요. 지금 수술실 인원이 꽉 차서, 나오기 전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이 든 간호사는 예의 바르게, 그러나 융통성 없이 대답했다. 공문산은 잠시 망설이다가 현명하게 일반외과 관계자에게 전화하기로 했다. 심장외과 의사인 만큼, 심장외과가 얼마나 엄격한지 잘 알고 있었다. 참관은 참관이고, 인원 제한은 엄격히 관리해서,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아무리 해도 함부로 깰 수 없었다.

공문산은 핸드폰을 꺼내 들면서 목을 쭉 빼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수술실에서 나온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없는 사람도 있었다.

“함께 온 사람도 있는데, 이미 들어갔나요?”

“네. 의사하고 기자 몇 명이 나와서 들어갔어요. 간호사끼리 알아서 상의하고 바꾸기도 하거든요. 의사도 마찬가지예요. 수술 시간이 됐거나 하면 라이브 보러 가죠. 사실 선생님도 라이브로 보셔도 됩니다. 운리랑 히아신스 플랫폼에서 다 보실 수 있어요.”

“아, 그렇군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전화가 연결되자, 공문산은 이제 막 알게 된 운화병원 일반외과 관계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 너머 의사도 골치 아팠지만, 다행히 그냥 수술을 보는 거라 대단한 일은 아니라서, 잠시 기다리게 한 후에 곧 자리 하나 얻어 주었다.

그렇게 공문산이 문 앞에서 기다리며 슬슬 조바심이 나려고 할 때, 안에서 한 의사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듯 나오자 바로 대신 들어갔다.

그때, 능연의 수술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가까워졌다. 능연은 대동맥 안쪽에 한 구역을 격리하고는 수월하게 근단 혈관 문합 중이었다. 모르고 봤다면, 응급센터에서 어깨 꿰매는 것 같은 표정과 손놀림이었다. 사실 알고 봐도 어깨 꿰매는 것으로 느낄 정도였다.

근처에 있는 기자와 의사도 수술이 순조롭게 끝나길 기다렸다가 인터뷰하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웃고 떠들었다. 그러나 공문산은 그럴 수 없어서, 반쯤 굳은 채 수술 장면을 지켜봤다.

능연의 수술대는 수술 시야에 출혈이 거의 없었고 심장 표면도 거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였다. 의사인 공문산은 이것이 얼마나 뛰어난 외과 수술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뛰어난 외과 수술 상태란, 수술 결과를 포기하고 그냥 따라만 하려고 해도 따라 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수술 시야에 출혈이 없다는 건, 의사가 최대치로 수술 구역을 바로 관찰할 수 있다는 뜻이며, 조금만 피가 스며 나오고 이상이 생겨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심장 표면이 움직임 없는 상태는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고.

쉽게 알 수 있는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공심폐 장치를 사용하는 목적이 바로 심장을 거의 움직임 없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이 어려워서 인공심폐 장치를 사용하는 부작용, 비용을 감당하고 시행하는 것이고.

그런데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로 아무렇지 않게 심장 표면을 거의 움직임 없는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면 인공 심폐 장치의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다시 말하면, 능연의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은 환자에게 인공심폐 장치를 사용하는 수술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말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반올림해서 목숨 하나를 주는 수술이라고 할까.

우회 수술을 하러 운화병원에 왔더니, 원쁠원 행사를 하더라!

이걸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공문산은 그런 생각을 하며 능연에게 달려가 자기 가슴에 메스를 대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으로 가슴을 만졌다. 가슴을 만지면서 수술을 본다니, 조금 기괴하지만, 주변 상황도 비슷해서 공문산이 특이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가슴을 만지며 수술을 보는 기괴한 녀석들이 몇이나 있었으니까.

공문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능연의 수술에만 집중했다. 그 역시 적 원사 사단의 일원이었고, 위가우를 비롯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질이 훨씬 떨어지고 기술 발전도 느리지만, 업계를 통틀어서 보면 여전히 심장외과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인물이었다.

사형, 사제를 돕는 일에 시간을 아끼지 않은 이유가 바로 어느날, 무슨 일이 생기면 사형, 사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자기가 더 발전해서 능연 정도 된다면, 아니 80%만 되어도 사형, 사제의 도움도 필요 없겠지.

공문산은 저도 모르게 능연을 바라보다가 곧 다시 수술에 집중했다. 임상 기술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정수까지 터득하기 매우 어렵다. 사부가 자꾸 일부는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고대 기술처럼.

이렇게 보고 있다고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걸 공문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이제 사제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위가우가 체면 때문에 열심히 버티고 있다는 걸 공문산도 뻔히 알았다. 평소라면 사제와 함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농담하며 같이 놀아주겠지만, 능연의 수술을 보면서, 그가 대범하게 기술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공문산은 어린 애랑 노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딥 스티치(Deep Stitch)!”

능연은 혈관을 더 잘 노출할 수 있도록 견인선을 요구했고, 공문산은 보고만 있어도 손이 근질근질해서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다음 스텝을 떠올렸다.

“공 선생님,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기자 하나가 공문산 곁으로 다가왔다. 힐끔 봤더니, 간 이식 수술실에서 넘어온 기자였다. 공문산은 기자의 태연한 모습에 절로 화가 나서 입가를 부들거리며, 기자는 의사보다 더 염치없다고 생각하며 툴툴거렸다.

“공 선생님, 설명 좀 해주시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기자는 아예 공문산을 물고 늘어졌다.

“설명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냥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입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자의 목소리가 적은 편이 아니라서, 순간 사람들이 그쪽을 주시했다. 공문산을 뚫어져라 보지 않았지만, 슬쩍슬쩍 던져지는 시선에 공문산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인터뷰 안 합니다.”

공문산은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한 말씀만 해주세요. 아니면…… 한 말씀 하실 분?”

기사 쓰러 온 거지 수술 보러 온 게 아니라서, 기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장에 있던 의사들은 서로 얼굴을 살피다가 다들 목을 움츠렸다. 곰곰이 생각하면 보통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누가 가서 여 선생 좀 불러와요.”

함께 참관하는 의사들과 비교하면 이 수술의 상태와 난이도를 잘 모르는 편인 연문빈이 입을 열었다.

“제가 전화할게요.”

“됐습니다. 나 여기 있어요.”

순회 간호사가 핸드폰을 꺼내는데 여원이 한숨을 내쉬며 으스스하게 대답했다. 수술실 정중앙에서 폴짝 뛰었는데, 아니 까치발을 들었나? 아무튼, 아무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기자는 목을 빼고 바라보다가 이마를 문지르면서 유감이라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난 또, AI인 줄 알았네.”

“수술이 여기까지 진행됐는데, 아직도 설명이 필요하다니, 기자시군요.”

여원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아까 AI 발언한 기자를 힐끔 보면서 얼굴을 기억해놓은 다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예. 그렇죠. 수술이 촉박하게 진행되길래 그동안 질문을 못 하고 사진만 찍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의사분의 설명이 필요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보시는 부분부터 설명하죠. 의학 용어로 말하자면, 노출입니다. 이 수술에서 매우 중요한 스텝이죠. 심장 주변 혈관 등등 모두 인공심폐 장치를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훨씬 조심해야 합니다.”

여원은 아래 의사에게 받침대를 가지고 오라고 눈짓하고는 더 많이 가지고 오라고 다시 눈짓하며 올라가서는 어깨를 휘두르며 설명을 이었다.

“능 선생이 지금 쓰는 심장 고정기는 보시다시피 심장 끝에 두었습니다. 끝단을 노출하기 쉽거든요. 그리고 다른 부분을 노출하려면 다른 스킬이 필요합니다.”

여원은 멀리서 기구를 가리키며 계속 설명했다.

“심장 외막에 놓은 건 관상동맥 고정기입니다. 관련 구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안정성도 중요한 지표니까요. 봉합하다가 예기치 않은 흔들림이 발생하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기구를 많이 쓰는 것 같군요.”

“예. 맞아요. 심장을 멈추지 않는 수술은 어찌 보면 새 기계의 전쟁터입니다. 기계를 까다롭게 고릅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더 잘 사용하는지는 우리 임상의가 할 일입니다.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서 오늘 이 수준으로 수술하는 의사는 백 명도 안 될 겁니다.”

여원의 설명을 처음 들을 때만 해도 기대감이 줄어들었었다. 특히 기자들은 기계 사용법만 배우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전 세계 백 명이라는 호언장담에 뇌를 리셋했다.

“여 선생님, 그 말, 그대로 써도 됩니까?”

기자는 의문이 담긴 말투로 흥분해서 물었다. 여원이 뭐라고 대답하든, 이미 기삿거리는 나왔다!.

여원은 좌자전을 힐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쓰세요.”

“운화병원 심장외과 기술이 전 세계 백 위 안에 든다, 이렇게 해석해도 됩니까?”

“능 선생 수준의 의사가 전 세계에 백 명이 안 된다는 말입니까?”

“그럼 전국에서는요? 능 선생 기술이 몇 위입니까?”

기자들이 분분히 발언하는 소리에 수술실이 순간 떠들썩해지자, 좌자전이 목을 가다듬으며 나섰다.

“기자 여러분, 아직 수술 중입니다. 지금은 기자 간담회가 아니니 여원 선생의 설명부터 들으시지요. 수술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취재를 마친 기자분은 우선 나가서 밖에 휴게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오늘 인터뷰는 원래 그냥 조금 구미가 당기는 인터뷰일 뿐이었는데, 세계 백 위 같은 말이 나오니 다들 관심이 순간 폭발했다.

원래 운화병원과 인연이 있어서 좌자전과 여원이 누군지 아는 기자들은 두 사람이 헛소리하는 걸 아니라는 걸 잘 알아서 더 흥분했다.

똑똑한 기자는 아예 옆에 있는 의사를 붙들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지금 의사가 잔뜩 있어도, 지금이 아니라면 수술 끝나면 다들 사라질 사람들이었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여원은 입술을 핥으며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이 봉합사를 자주 당기는 걸 보셨을 겁니다. 고정과 노출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위험해지는 위험한 기술이죠. 하지만, 고정기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필요한 스텝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노출, 한 과정만으로도 이 수술은 매우 어려운 수술이라는 거죠.”

여원은 설명하면서 부러워졌다. 자기 사람이라 더 잘 안다고, 자기의 작은 손으로는 평생 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수준 높은 산부인과 수술은 꿈이라도 꿔봤어도, 정상급 심장외과 수술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여원이 심장외과 수술을 하는 건 남자가 애를 낳는 것처럼 요원한 일이었다. 과학 기술 발전으로 어느 날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은 분명 아니었다. 컵라면 먹듯이 쉬운 일이 되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데 남자는 아이 낳고 싶은 생각이 없을 수도 있지만, 여원은 고차원 수술을 매우 하고 싶었다.

솔직히 수술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구한다는 꿈을 꾸지 않는 서전도 있을까? 누구나 단순히 일자리, 수표, 제약회사 직원, 작은 권력, 큰 인맥, 죽어라 많은 출장 수술비, 끝도 없이 떨어지는 리베이트,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타이틀만 바라고 서전이 된 건 아니다.

아까 인터뷰를 거부했던 공문산도 정신이 몽롱해졌다. 여원이 세계 백 위를 언급하기 전엔, 그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원과 비교하면 심장외과 밥을 20년 먹은 공문산은 세계 심장외과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정확하게 인지했다. 단순히 임상 기술만 따지면, 여원이 말한 세계 백 위라는 것도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능연의 기술은 대체 몇 위일까?

다른 건 몰라도 수술 중 혈관 색, 옅은 분홍빛이 도는 혈관 색, 심지어 어렴풋이 하얀빛과 회색빛까지 도는 그 혈관 색만 해도 교과서 외에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의사가 가끔 우연히 무혈 수술 시야 수술을 하게 되면 재빨리 사진을 찍은 다음에 자기 논문이나 저서에 실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그런 수준이 되는 의사는 기본적으로 책을 낼 자격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보는 무혈 수술 시야는 바로 각종 도서에서나 나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의사는(여기서 정상적 의사란 세계 백 위 안에 드는 의사) 정상적인 상황에서 무혈 수술 시야 수술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순위가 앞으로 갈수록, 예를 들어 50위 혹은 30위라면 조금 더 확률이 높을 수 있어도, 그것도 2, 30%에 불과했다.

그런데 능연은 오늘 공개 수술에서 바로 무혈 수술 시야를 해냈다. 운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현재 수술 상황은 정말로 세계 백 위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걸 공문산은 잘 알고 있었다.

전 세계 심장외과 센터도 다 해야 몇십 개이고, 그중 유명한 건 열에서 스물 남짓이다. 그중에 무혈 수술 시야가 가능한 건 분명 대가 중의 대가일 것이고, 그런 의사는 어느 심장외과 센터에서나 기념물이다.

물론, 무혈 수술 시야가 다는 아니고, 여원이 말한 것처럼 노출, 그리고 그녀가 아직 거론하지 않은 봉합, 견인, 문합 등등에서 모두 최고, 일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점이 공문산을 더 할 말 없게 만들었다. 능연의 조작은 거의 모든 스텝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공문산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어찌 됐든 능연이 정상인이 아니다 싶었다. 이렇게까지 정상이 아닌 일에는 분명 뭔가가 있는 거야!

젊은 나이고, 심장외과에 전혀 이름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다니. 이게 정상일 수 있을까?

능연, 단 한 사람뿐이야.

공문산은 아무래도 능연이 약을 먹은 거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무슨 약을, 어떻게 먹은 것인지 모를 뿐이었다.

위가우의 수술 속도는 조금 떨어졌다. 물론, 처음부터 속도를 따질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됐든 다른 사람 본거지, 다른 사람 수술실에서 다른 사람의 의료진과 협력하면서 속도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속도가 느려진 건 사실 심리적 요인이 맞았다.

공문산이 나간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기자가 돌아오기는커녕 남은 사람도 핸드폰을 보더니 모두 줄행랑쳤다. 하필 분위기를 알아볼 심복 하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다 달아났어도, 수술실 간호사가 줄곧 보고 있으니 잡을 폼은 잡아야 해서 다급해진 티는 전혀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바람에, 위가우는 환자 배 안에 양손을 넣은 채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공문산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기자들은 뭐에 홀려 있는지, 갖가지 억측에 마음이 불안하기만 했다.

위가우는 솔직히 사형인 공문산의 실력이 그저 그렇긴 해도 안목은 있는데 능연의 수술에 빠져서 못 나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더 깊이 생각해 봐도, 설사 능연이 기술이 뛰어나고, 국내 일류, 세계 일류 수준에 든다고 쳐도 20여 년 경력의 공문산이 나오지 못할 정도의 수술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나도 적 원사보다 뛰어날까? 적 원사 직계 매 사형보다 뛰어날까?

매 사형은 국내, 해외를 누비며 은연중에 세계 일류 수준에 드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1, 2년 후엔 까치발 들면 세계 정상급 수준이라고 허세를 부려도 과하지 않을 것이고. 적 원사가 여든이 되기 전에 원사로 승진할지도 모르니, 그렇게 되면 한 사단에 원사가 둘이라는 휘황찬란한 결과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매 사형이 국내에 있을 때, 공문산이 자주 얼굴을 내밀었고, 매 사형의 수술 어시도 여러 번 섰었다. 공문산은 기회를 노리는 다른 사제들과 달리 세컨드든, 서드든 상관하지 않아서 편하기도 하고, 유용하기도 하고, 든든하게 집도의의 부담을 줄여주는 좋은 헬퍼였다. 게다가 자리다툼은 하지 않으면서, 아부 기술은 뛰어나서, 남 추켜세울 줄 모르는 오만형 천재 사제와 함께 어시 설 때도 집도의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켰다.

대단한 수술, 고첨단 임상 수술 등을 겪을 만큼 겪은 공문산이니, 능연 수술 하나 보느라 정신을 못 차려서 돌아오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그래, 능연이 망친 걸 도와주고 있는 거야!

그 생각에 위가우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공 사형이면 능연을 충분히 도와주지, 왜 안 돼?

20여 년 심장외과 경력은 능연의 나이보다 많잖아. 구원 수술 경험도 많고, 어린 사제들이 처음에 실수해서 피 터지게 욕먹을 때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준 것도 공 사형이었고.

경험이 스승이라고, 능연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심장외과 경험이 부족하면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지.

한 진료과마다 대대로 성장해온 도도한 천재들이 다른 진료과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심장외과 수술을 할 때는 눈물을 터트리는 때도 있지. 눈물을 흘려야 하면 흘려야지, 어째?

위가우는 순간 마음이 포근해졌다. 따지고 보면, 자신 역시 도도한 천재 사제였다. 비록 천재도가 높고 기술 성장도 빠른 데다가 적 원사가 예뻐해서 별로 욕먹지 않고 컸지만, 처음 수술 시작했을 땐 공 사형의 도움을 꽤 받았었다.

대신 말 잘해주고 분위기를 풀어 준 적은 부지기수였다.

그래, 어쩌면 능연한테 그런 은혜를 베풀고 있을지도 몰라.

위가우는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져서 수술 속도도 점점 올라갔다.

수술실에 기자는 줄었지만, 참관하는 의사, 특히 일반외과 의사는 꽤 많았고, 그런 모습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톡방에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위 선생 멘탈, 정말 강하다. 도장깨기 하러 왔는데, 기자들이 다 버리고 나갔는데도

아직 태연하게 계속하고 있어. 속도 좀 봐. 다시 마음 다잡았잖아.

일반외과에서 위가우를 초대한 건 그의 도장깨기를 도우려는 마음도 있지만, 어찌 됐든 진료과 경쟁이라 내심 자기 병원 능연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일반외과 의사들로서는 단순히 구경만 해도 재미있었고.

사실 이미 이야기를 꾸미는 의사들도 있었다.

-어쩌면 간이 다 쑤실 정도로 화가 나도 수술 중이라 나가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잖아.

-기자들 참 현실적이다. 그냥 가버리다니 말이야.

-떡밥이 좀 커야지.

-그건 그래. 나라도 갔겠다.

위가우는 의사들이 우다다다 메시지를 보내는 걸 힐끔 보고는 조금 더 기다리다가 사형에게서 정 연락이 없으면 그때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수술하는 사이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곧 운화병원 일반외과에서 이식할 간을 가지고 왔고, 위가우는 더욱 집중했다.

치익, 하고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공문산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사형, 왔어요?”

아까 감동이 아직 남아 있던 위가우가 재빨리 인사했다. 예상보다 늦었지만, 돌아온 걸 보니 안심되었다.

공문산은 매우 지친 모습으로 싱긋 웃어 보였다. 그의 모습을 힐끔 본 위가우는 그가 정말로 수술에 나섰던 건가 싶어졌다. 수술이 아니라면, 노래방에 갔을 리도 없고, 힘들 일이 없으니까.

“곧 끝납니다. 순조로운 편이네요.”

위가우는 목을 들어 근육을 잠시 풀어주었다. 수술이 길어지면 근육이 당기기 마련이었다.

물론, 이제 능연 쪽 상황을 말하라는 뜻이었다. 먼저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없어 보이게.

사제가 연달아 두 마디 하자, 공문산은 아무리 힘들어도 미소를 쥐어짜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능연 쪽도 순조로워.”

“실수는 없고요?”

위가우가 아까 했던 추측을 거슬러 되짚으며 묻는 말에 공문산은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실수가 있겠어!”

“하긴.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이라고 해도 어찌 됐든 관상동맥 우회술이니까요?”

위가우는 공문산의 말을 오해하긴 했어도, 관상동맥 우회술을 그렇게 판단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심장외과 실력자에게 허혈성 심장질환은 발병률이 높긴 해도 정말로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다.

공문산의 입가가 실룩였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며 뭐라고 덧붙여야 하는지 생각하는데 수술실 문이 다시 치익하고 열리더니 기자들이 몰려 들어왔다.

“자자자, 사진 좀 찍겠습니다.”

다시 돌아온 기자들은 흥분해서 카메라를 치켜들었고, 위가우는 미소 지으며 보기 좋은 포즈를 취했다.

위가우는 특별히 포즈를 연습했었다.

이런 건 고급 병원 고급 사단의 작은 우세 정도니까. 아는 사람이 많으니 작은 스킬을 조금만 코치 받으면 평소에도 자신 넘치게 쓸 수 있다.

위가우는 천생 팔다리가 길고, 중지의 손톱도 잘 갈아두어서 조금만 꺾으면 제 손목도 그을 수 있을 정도였고, 사단에선 그래도 화면발이 좋은 편이었다.

위가우는 기구를 바꾸거나, 혹은 봉합사를 자를 때, 기자들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잠시 멈춰주기도 했다.

위가우가 자기 병원에서 능숙하게 하던 것들이었고, 공문산도 매우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은 위가우의 미소를 보며 속으로 이따 능연의 수술을 뭐라고 묘사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공문산은 위가우를 너무나 잘 알았다. 혹은 적 원사 사단엔 모두 위가우 같은 고고한 천재형 선수뿐이라 언제나 하늘이 대장, 적 원사가 둘째, 매 사형이 나와 다투지만 않으면 내가 셋째, 이런 상태라고 해야 하나. 그런 위가우가 능연이 어떤 수술을 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다시 지금 사진 찍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자기에게 앙심을 품을까 봐 걱정이었다.

만에 하나 사제가 오늘의 머쓱한 장면을 떠올리게 되면, 그 머쓱한 현장에 있었던 자기가 목표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저기……. 기자 여러분, 사진 몇 장 더 찍고 오늘 참관은 마치겠습니다. 1분 더 드릴 테니, 지금 어서 찍으세요.”

공문산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지금 위가우의 기분이 좋긴 해도, 기자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을 어떻게 쓸지, 장담할 수 없었다.

능연이 수술을 너무 훌륭하게 했으니, 기자들의 태도와 생각에 변화가 생길 것이고, 비교하듯 기사를 써버리면 참으로 껄끄러운 상황이 되어 버린다.

위가우는 의외라는 듯 공문산을 바라보며 뜨거워졌던 마음이 빠르게 식어갔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수술에 집중했다.

공문산 역시 고개를 숙였다가, 버티고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기자들을 수술실 밖으로 몰아냈다.

여전히 수술실에 남은 의사들도 차츰 조용해졌다. 대부분 운화병원 일반외과 의사였고, 순수하게 초청 수술 구경 겸 간 이식 수술에 대한 관심으로 위가우의 수술을 보러 온 것이었다.

공문산이 기자를 내보내는 걸 보고 속으로는 추측했지만, 모르는 척했다.

위가우는 계속 아무런 말 없이 수술했고, 수술실 분위기가 점점 답답해졌다. 그렇게 한 시간이 더 흘러, 수술을 마친 위가우가 공문산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사람 없는 곳으로 향했다.

“무슨 상황입니까?”

“능연이 예상외의 수술을 했어.”

“예?”

“아주 잘했어. 그러니까 내 말은…….”

공문산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매 사형처럼 잘했어.”

“농담하십니까.”

위가우는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심장 비정지 수술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다고.”

공문산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도 그 문제를 생각했다. 이런 수술은 국내에서 수술량도 한정되어 있어서 폭발적인 효과가 나오기도 전에 유명세가 높아질 것이다.

위가우는 마음속 가득한 의문을 결국 한마디로 풀어냈다.

“매 사형하고 비교할 만해요?”

적 원사 사단에서 임상기술, 특히 허혈성 심장 질환 임상 기술은 매 사형이 의심할 여지 없이 일등이다. 아무래도 적 원사는 나이가 있어서 지도 수술이면 몰라도 전체 수술 완성도는 떨어졌다.

공문산은 모호하게 ‘응’ 하고 얼버무렸다.

“영상 있죠?”

위가우는 공문산에게 묻지 않기로 했다.

“가요.”

공문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위가우가 바로 걸음을 내디뎠다.

“위 선생님!”

아직 수술실 복도를 벗어나기도 전에 부르는 소리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향 주임님, 무슨 일이십니까?”

일반 외과 부주임 향지걸인 걸 본 위가우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축하합니다! 간 이식 수술은 외과수술 중 왕관 아닙니까.”

향지걸이 공수하며 축하 인사를 했다.

“외과수술 중에 왕관은 너무 많죠.”

위가우가 저도 모르게 툭 내뱉자, 향지걸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훌륭한 수술은 훌륭한 수술이죠. 수식어도 필요 없이 그냥 훌륭한 수술이요.”

“가면서 말씀하시죠.”

위가우는 알아서 앞장서서 운화병원 참관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위가우는 자기가 어느새 이 병원에 상당히 익숙해졌음을 깨달았다.

“아까 수술 다시 보려고요?”

향지걸은 예의 갖춰 묻고는 손짓했다.

“오늘 수술 영상 틀어. 위 선생, 아까 5번이었나요?”

직원들이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에 위가우가 고개를 저었다.

“능연 수술 보러 온 겁니다.”

“무슨 수술이요? 아, 예, 뭐. 그럼 그거 틀어.”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모니터 하나 더 틀고 수술 정보를 입력했다. 잠시 후, 두 모니터에 능연, 그리고 위가우의 수술이 나타났다.

위가우도 별말 없이 모니터를 주시했다. 직원은 2배속으로 틀어진 영상을 슉슉 조작해서 시작 부분으로 옮겼다.

사람들은 그렇게 두 모니터 앞에 서서 두 수술을 동시에 지켜봤다.

향지걸은 능연이 선을 그리는 것까지 지켜본 후에야 뒷북치며 입을 열었다.

“아, 능연 오늘 심장 수술했구나.”

“우회술입니다. 심장 박동 비정지. 복잡한 수술이라 선을 오래 그리더라고요. 넘기죠.”

공문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덧붙였다.

“모르셨습니까?”

“아침부터 수술하느라 정신이 없었네요.”

향지걸이 자조하듯 껄껄 웃었다.

“능연이 맨날 남의 수술을 해대서, 오늘은 누구 집 수술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공문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고려해보면 향지걸의 말이 틀린 곳이 없었다.

“능연 수술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심장 박동 비정지도 끝내주게 했나 봐요?”

향지걸은 깜짝 놀랐다가 혼잣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심장 박동 비정지 자체가 끝내주는 수술인데, 능연이 했으면 뭐, 그게 쇼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압니까.”

“바로 이렇게 영상 보러 오셨잖아요. 그럼 목적은 세 가지겠죠. 잘못을 찾거나, 쇼 구경, 그리고 배우려고.”

향지걸은 잘 안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데 배움이라는 항목은 왜 뺀 겁니까?”

“배움의 전제는 쇼 구경이잖아요.”

향지걸은 껄껄 웃으면서 위가우의 수술을 가리켰다.

“서로 쇼 교환하고 있네요.”

위가우의 서늘해진 얼굴에 미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모니터로 보니 자신의 수술은 ‘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고, 교육 재료로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공문산이 선 그리는 부분을 건너뛰라고 지시한 다음에 모니터에 나타난 능연의 수술은 ‘괜찮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비록 다른 수술이지만, 의사 눈에 수술 맥락은 여전히 잘 보였다. 적어도 시작 단계에는 그랬다. 그리고 프로의 눈으로 볼 때, 두 사람의 수준은 처음부터 차이가 났다.

위가우의 수술이 훌륭하다면, 능연의 수술은 시작 단계부터 화려하고 현란했다.

심장외과 수술은 원래부터 화려한 기술이었다.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은 더욱 현란하고 또 현란하고.

무혈 수술 시야! 무손상 봉합! 빠르고 정확한 혈관 문합! 능수능란한 개흉 박리……. 이렇게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기술 중에 하나만 다른 수술에 써도 현란한 기술이라고 할 만했다.

그리고 심장외과 수술에선 시간 단축에 유리하고, 손상을 줄이는 스킬은 그게 무엇이든 모두 큰 의미가 있다.

공문산은 힐끔 사제 위가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능연 이 녀석, 진짜 이상해. 하늘에서 스킬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거 같다니까.”

향지걸은 그 말을 듣고 운화병원 사람답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능연이 천재인 건 맞죠.”

위가우와 공문산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입을 삐죽였다.

우리가 천재 처음 보는 것 같냐?

“능 선생, 축하해.”

사람들 사이에서 강 주임도 능연에게 한마디 했다. 질투한다고 보이기 싫었지만, 정말로 질투가 나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강 주임은 시집와서 18년째 자식 하나 낳지 못한 큰 부인이 이제 막 들어온 여덟째 부인이 엉덩이를 살짝 흔들며 아들을 낳은 걸 보는 기분이었다. 자기는 코를 비틀어서 웃어 보일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웃어도 다른 사람 눈에는 가식처럼 보일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능연의 감정은 매우 평온했다. 매우 느낌이 좋은 수술이었지만, 의사로서는 그냥 평범한 하루일 뿐이었다.

총 수술 시간 3시간, 앞뒤 떼고 난 다음 선 그리는 것 같은 잡다한 시간까지 빼고 나면 겨우 한 시간 정도의 수술이라서 능연에겐 너무 짧게 느껴졌다.

그리고 능연으로서는 그것도 모두 단점이었다.

강 주임은 능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큰 부인이 여덟째 부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지금 능연이 뭐라도 할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심정인지 이야기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심장외과 주임은 아직 나라고! 아직 나 맞지?

강 주임은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 선생님이 환자 케어 하세요. 문제 생기면 이야기하고.”

수술 후 오더를 내리던 능연은 마침 강 주임이 보이자 한마디 더 덧붙였다.

“강 주임님한테 먼저 보고해도 되고.”

능연도 작은 문제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 운화병원 레이아웃에서 강 주임이 마침 가장 완벽한 필터이기도 하고.

강 주임의 경험이라면, 다시 가슴을 열어야 하는 일만 아니라면 대부분 수술 후 문제는 처리할 능력은 있을 것이다.

심장외과의 수술 후 문제는 매우 많아서, 주치의 이하 심장외과 의사는 매 순간 환자의 수술 후 상태를 주시해야 했다.

그러나 마연린을 비롯한 능 팀 사람들은 아직 심장 쪽으로는 그런 경험과 능력 모두 현저히 부족했다.

사실 다시 가슴을 열어야 한다고 해도 강 주임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강 주임이 개흉을 결정하고, 능연에게 통지하고 허락받은 다음 가슴을 열고 문제가 생기면 능연이 나서도 된다. 그게 이상적인 상황이고. 하지만 이건 모두 능연의 상상이었다.

강 주임은 능연의 말에 사람이 다 물음표 모양이 될 지경이었다.

“난 왜?”

“수술 후 문제 처리할 능력이 있으니까……요?”

능연은 경험으로 객관적 판단을 했고, 강 주임의 주관을 검증하려고 ‘요?’를 붙였다.

강 주임의 주관적 생각은 ‘미춰버리겠네!’였고, 눈과 코가 물음표 모양으로 뒤틀렸다.

“당연히 그럴 능력은 있지. 하지만 이건 수술 후 문제가 아니야.”

그는 지금 ‘나 살인 능력도 있는데, 한번 볼래?’라고 하고 싶었다.

“그럼 의학적 문제인가요?”

능연이 재빨리 묻는 말에 강 주임은 넋이 나가버렸다.

이게 의학적 문제냐? 문제는, 이 문제의 토론점이 의학이고 나발이고가 아니라는 것이잖아! 아예 화제가 잘못됐어. 알아?

“왜 나한테 보고하냐고!”

강 주임이 아예 대놓고 물었다.

“선생님이 처리하지 못하면 제가 하게요. 분급 진료(分級診療 : 환자 상태의 경중, 치료의 난이도 등에 따라 적합한 등급의 의료기관에서 진료하는 시스템을 의미. 우리나라의 1, 2, 3차 의료기관 진료 시스템과 흡사)요.”

“이게 분급 진료냐? 이게……?”

역시나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능연의 말에 강 주임은 목소리까지 덜덜 떨렸다.

좌자전은 강 주임이 미쳐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연문빈을 밀며 앞으로 나섰다.

“강 주임님, 진정하세요. 능 선생이 말을 이상하게 해서…….”

강 주임이 좌자전을 바라봤다. 좌자전은 그런 강 주임의 모습에 꺾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분급 진료란 1급에서 먼저 처리하고 안 되면 상급 의사에게 넘겨서 처리하는 거죠.”

강 주임은 능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빛으로 욕을 내뱉었다.

지금 내가 분급 진료의 뜻을 묻는 거냐?

강 주임은 고개를 돌려 좌자전을 바라봤다.

“그럼 좌 선생님이 정확하게 말씀해 보시죠.”

좌자전은 힘껏 헛기침했지만,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는 잘 알았다. 강 주임 체면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하필 능연은 사람 체면 세워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좌자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어찌 됐든 심장외과 환자니까, 강 주임님이 좀 도와주시면 좋겠다, 그런 뜻입니다.”

어떻게든 체면을 세워주는 좌자전의 모습에 강 주임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고 그 김에 받아들이며 입을 열었다.

“이 환자가 우리 심장외과 환자인가요?”

“그럼요. 수납부터 입원까지 모오두.”

능연의 일관적인 스타일이었다. 병상만 필요하지 병원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수술실만 내주면 수술비도 따지지 않았고.

강 주임은 콧방귀를 뀌며 더는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하기도 싫은 질문이 마음 저 밑에서 고개를 들었다. 하원정도 바로 이렇게 추락하기 시작한 거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강 주임은 그 의문을 억누르고 쉴 새 없이 자신을 설득했다.

난 그냥 치욕을 참으며 심장 박동 비정지 기술을 배우려는 것뿐이야.

이런 등급 수술은 전국에서 할 수 있는 심장센터가 많지 않은 건 둘째치고, 환자도 거의 없는 단계라서 연수받고 싶어도 길이 없고, 연습은 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운화병원 심장외과는 강 주임의 본거지였고, 적어도 지금은 아직 본거지라서 수술 얻거나 배울 생각이 있다면 훨씬 간단했다. 체면도 그렇게까지 구기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구길 체면, 다른 병원에 가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강 주임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능연은 강 주임이 허락만 하면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곽 주임님은요?”

능연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론적으로 이제 그는 곽 주임 수술을 할 능력과 준비가 다 되었다.

“도망가셨어.”

여원이 담담하게 능연의 물음에 대답했다.

“도망? 그게 무슨 말입니까?”

능연은 수술할 때보다 더 많은 의문이 생겼다.

“도망갔다는 건…….”

여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화해서 차를 부르고, 학회를 하나 예약한 다음 상대에게 표를 사라고 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셨어.”

수술실은 괴이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웃고 싶은 사람도 있었는데 결국 참았다.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학회에 참석할 상태가 아니신데. 게다가 수술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강 주임은 순간 기분이 좋아져서 발 밟힌 것처럼 입이 벌어졌다.

“능 선생이 그렇게 생각할 줄 알고 도망가신 모양이네.”

능연이 미간을 찌푸리자, 좌자전이 냉큼 입을 열었다.

“능 선생, 곽 주임님이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한가 봐. 님 진도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겠지. 좀 더 있다가 수술하고 싶은 마음, 이해해.”

“곽 주임님이 의사인데요.”

“의사니까 더 생각이 많지.”

“하지만 곽 주임님이 이렇게 감정 동요하면요, 예를 들어 학회에서 너무 흥분하면 위험해져요.”

능연이 강조하자 좌자전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미 도망가셨는걸.”

수술실에 있는 모두가 피식 미소 지었다.

그러자 능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잡아 와야겠네요.”

그 말에 사람들은 시커멓게 질린 얼굴로 물음표를 띄웠다.

“곽 주임님 어디에 있는지 찾았어요?”

수술 하나 더 하고 목욕도 하고 옷도 새로 갈아입은 다음 의국으로 돌아온 능연이 바로 물었다.

좌자전이 탁상을 두드리자, 임시로 도와주러 온 실습생들이 그제야 능연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여자 의사 하나가 가슴에 손을 대고 넋 나간 듯 입을 열었다.

“이제 범위는 좁아졌어요. 동삼환이요. 그런데 거기 호텔이 많아서 정확한 위치는 아직이에요.”

“얼마나 걸려?”

“그게……. 북경에 학회가 많아서. 참석하는 사람들도 호텔에 흩어져 있고요. 곽 주임님이 체크인도 안 하셔서 아직 조금 더 걸릴 거 같아요.”

실습생도 매우 고민되는 듯 대답했다. 능연은 좌자전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람 찾는 전문이 아니니까.”

좌자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그쪽 경찰 친구한테 연락했어. 늦으면 내일, 아니면 모레는 소식 있을 거야. 재촉하기도 좀 그렇잖아.”

“왜요?”

능연은 좌자전의 사고회로를 따르지 않았다.

“지금 곽 주임님 상태는 임계치예요. 시간 끌수록 위험해지고요.”

좌자전은 속으로 곽 주임이 불벼락 뿜어대는 걸 보면, 우리보다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능연이 요구하는 일은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썼다. 진작 그런 개념을 수립해둔 좌자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럼 친구 좀 재촉해 볼게. 그리고 학회 주최 측에도 연락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내 볼게. 곽 주임님이 아무래도 뒤쫓기는 경험이 많을 거라…….”

그 말에 옆에서 양다리를 뜯던 주 선생이 껄껄 웃었다.

“좌 선생님 안 되겠네. 곽 주임님이 나가자마자 뒷담이에요? 곽 주임님이 왜 자주 뒤를 밟히는데요. 앙?”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 선생을 바라보는 실습생의 모습에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은, 곽 주임님 군의관이었잖아. 그러니까 그런 경험 많을 거라는 뜻이지.”

“아 그렇지. 곽 주임님 군의관이었지. 요 며칠 너무 편했나 보다. 다 까먹었네”

주 선생이 거침없이 껄껄 웃어대는 모습에 그 자리에 있는 의사들도 자연스럽게 미소 지었다. 곽 주임이 없는 나날이라 다들 홀가분한 모양이었다.

그때, 능연이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늘 내가 바로 출발할게요.”

“오늘?”

사람들은 일제히 능연을 바라봤다. 주 선생은 놀라다가 이내 기뻐했다. 큰 호랑이가 떠났는데 작은 호랑이까지 떠나면 이제 봄날이 오는 것인가?

좌자전은 예민하게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아직 찾지도 못했는데 가서 뭐 해.”

“사람 찾는 건 나도 경험이 꽤 있어요.”

능연은 가볍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봤다.

“일단 듀티부터 다시 배정해야겠어요.”

“음?”

양다리를 뜯던 주 선생, 그리고 한창 웃고 있던 의사들은 갑자기 은근히 불안해졌다.

“응급센터 일상 업무는 그대로 하면 되는데, 수술 분배를 고려해야 하니까…….”

능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주 선생님이 매일 수술 두 건 더 하면 어때요? 수술은 선생님이 먼저 고르고.”

주 선생 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평범한 일반외과 혹은 정형외과 수술은 수월하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먼저 수술을 고라는 건 너무 부담가지 않을 수술을 고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주 선생은 이미 큰 부담을 느껴서 양다리도 뜯을 기운이 없어져서 목소리를 떨며 되물었다.

“매일 두 건? 매주 두 건이 아니고?”

“연 선생님이랑 좌 선생님도 갈 거예요. 연수의도 있지만, 아무래도 구멍이 생길 겁니다.”

능연은 문득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일주일만 버티시면 돼요.”

“그럼 14건인데”

주 선생은 평소에 한 달에도 그렇게 수술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능연은 흥정할 생각이 없었고 바로 좌자전을 바라봤다.

“트레이닝 캠프 인원도 조달하세요. 추가 근무할 수 있는 과 의사들도요.”

곽 주임이 자리에 없어서 이상할 정도로 흥분했었던 초짜 의사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능 선생, 다 추가 근무하라고 하면 못 버틸 거야. 다들 어느 정도는 쉬어야지.”

“그건 내가 돌아와서 바꿔주면 돼요.”

능연은 좌자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진료과 수술 배정은 원래 자신만의 사고방식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응급센터에 연수의만 60명이 넘었다. 일반 작은 진료과 다섯 배는 되는 인원이었고, 연수의 중에 원래 병원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운화병원 같은 지방 정상급 삼갑병원에 남고 싶어 했다. 하지만 결국 정직원 명의에 욕심 없는 의사만 남고, 다른 사람은 몇 년 일하다가 정직원 자리를 타고 흘러갔다.

능연은 지금 응급센터의 정직원 의사들이 모두 연수의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버티지 못하고 떠나도 그만이었다.

초짜 의사들은 능연의 말에 위협을 느꼈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협박이었다. 어찌 됐든 능연은 나중에 대체 근무해주겠다고 약속한 셈이라 저항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혼자서 여러 명, 심지어 열 몇 명을 대신하겠다는데 할 말이 뭐가 있을까.

“내일 아침 티켓 끊으세요. 내가 수술 몇 건 더하면 센터도 부담이 덜하겠죠.”

능연은 단호하게 좌자전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좌자전은 동의를 구하는 듯 주 선생을 비롯한 의사들을 바라봤다.

주 선생은 내키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음을 서두르다가 입을 열었다.

“됐다. 서포트하는 셈 치지, 뭐. 14건, 내가 먼저 고를 거야.”

주 선생이 격렬하게 반대할 줄 알았던 좌자전은 의아해졌다.

“그래서 곽 주임님을 어떻게 찾을 건데?”

좌자전은 다시 그 문제로 돌아갔다.

“전단지 돌리는 거죠. 집 나간 애들 찾는 것처럼.”

능연의 단호한 대답에 의국의 의사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봤다.

그게 다야?

“지금은 전단지 안 먹혀.”

“개인 경험으로는 효과 있었어요. 보통 전단지를 받으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거든요. 사람들은 퍼트리는 소식을 매우 좋거든요.”

능연은 고집을 부렸다.

“곽 주임님을 본 사람이 분명 나타날 거예요. 금방 찾을 수 있어요.”

주 선생은 우습기도 하고 화도 나서 온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전단지 하나로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거 같냐?”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단지 들고 있을 때 꽤 도움받았거든요.”

주 선생은 진지한 능연의 모습에 자기 입을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능 선생님 북경에 가요?”

전칠이 운화병원에 왔을 때 능연은 계속 수술실에 틀어박혀 있어서 참관실에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스피커로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고개를 들어 웃는 얼굴로 전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갈 생각이에요. 하지만 일단 복잡한 수술부터 몇 건 끝내야 해서 내일 갈 거예요.”

“열 몇 건입니다.”

왕가가 그렇게 고쳐주고는 하품을 했다.

“음. 14시간밖에 안 남았으니 서둘러야 11건 하겠네.”

능연은 속으로 계산하고는 더 바짝 정신을 차렸다.

진료과 병상 문제가 있으니 수술을 아껴서 했었다. 남은 시간은 출장 수술로 해소하고. 그리고 병원을 떠날 때는 계획을 잡고 병상을 다 채우고 가곤 했다. 이번엔 곽종군이 돌발 사고를 일으킨 바람에 그럴 수가 없어서 몰아치기로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능연은 스테미너 포션이 있어서 상관없지만, 정상인은 8시간 동안 집중하든, 수술 6건이든, 모두 매우 부담 가는 일이었다.

수술실에 한숨이 여기저기 터졌다.

“힘들면 알아서 쉬어요. 수술 두 건 더 하면 교대할 사람 올 거예요.”

능연은 모두의 상태를 관찰했다. 매우 긴장한 상태가 아니면 집도의는 주변 의사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살필 여력이 있는 편이었다. 능연은 둘째치고 평범한 병원의 평범한 집도의도 주변 사람들의 아부 퀄리티와 빈도로 믿을 만한 결론치를 얻을 수 있었다.

체력과 정신력이 충분한 어시는 적극적으로 집도의의 말에 호응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꾸미기도 했다. 반대로 체력이 떨어진 어시는 알아서 이야기하는 건 둘째치고 호응도 제대로 못 한다.

주임, 부주임들이 사람을 모집할 때 왜 유명 학교 졸업생을 좋아하느냐 하면, 유명 학교 졸업생이 팀플레이에 더 능해서 일뿐만 아니라 학습능력이 강해서이다. 집도의의 취향을 열심히 배우고 따르면서 더 빨리, 더 능숙하게 호응하는 데다가 하나면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신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임이 개그를 좋아하면 똑똑한 어시는 영리하게 그런 쪽 이야기를 모으고 발전시킨다. 자식이나 가정사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주임일 땐 가장 빠른 속도로 7 고모, 8 이모의 이름 등 자료를 외운다.

그리고 섹드립을 좋아하는 주임은……. 아니, 모든 주임은 섹드립을 좋아한다. 어쨌든 똑똑한 어시는 알아서 방과 후 수업으로 학식과 견문을 넓히며 풍부한 경험을 쌓는다.

그리고 능연의 수술팀에서는 능연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구성원들은 알아서 수다 떨며 자신을 달랬다.

그래서 사람들이 앓는 소리를 내도, 오히려 그렇게 앓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능연은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걱정하지 않았다.

“기운 내요. 이제 15분이면 끝나요.”

능연은 사람들 집중이 흐트러질까 봐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전칠은 미소 지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능연의 말이 끝나자 입을 열었다.

“마침 나도 북경에 가야 하는데, 같이 갈래요? 내 비행기로 가면 공항에 좀 늦게 가도 되니까 시간도 절약되고.”

전칠은 능연과 함께 다니는 걸 매우 좋아했다. 특히 비행기로. 아무래도 능연이 아무리 수술을 좋아해도 비행기에서 수술을 하지는 못하니까. 적어도 그녀의 비행기에서는 아직 할 수 없었다.

조금 큰 비행기를 사려고 고민 중인데, 간단한 수술실을 넣을지 말지는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다정하게 붙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고 좁은 비행기가 더 좋기도 했다.

능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개인 비행기가 좋죠. 음, 몇 시에 갈 건데요?”

“당신이 출발하고 싶은 시간에요.”

전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점심때 출발하면 어때요? 그럼 세 시간 정도 더 생기니까, 병세가 중한 환자 두 명 더 수술할 수 있겠네요.”

능연은 어느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모든 환자 수술을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환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그러면 위험도 낮아지고 수술 효율도 오르니까.

전칠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점심 먹고 출발해요. 비행기에서 먹는 밥은 땅에서 먹는 것보다 별로예요.”

능연도 당연히 동의했고, 전칠은 몇 마디 더 나누고는 신이 나서 전화 걸러 나갔다.

오후.

분홍색 제트기가 날렵하게 활주로로 들어섰다.

전칠은 잔에 든 샴페인을 단숨에 비우고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곽 주임님 찾는 거, 나도 도울게요.”

“일 하는 데 괜찮겠어요?”

“그럼요.”

“그럼 좋아요.”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칠이 더 활짝 웃었다.

“그래서 계획은요?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요?”

“전단지요.”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전단지 받고 도와주러 오는 열성적 행인을 관리해주면 될 거 같아요.”

“도와주러······ 오는 열성적 행인?”

전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사람을 관리까지 해야 해요?”

“북경은 대도시니까, 사람도 많을 거 아니에요? 관리 방안을 짜두는 게 좋을 거예요.”

능연은 이어서 자기 경험을 말해줬다.

“사실 사람이 별로 없더라도 적당한 관리 방안은 필요해요. 유용할 거예요. 효율적으로 시간도 절약되고요.”

전칠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왜 그러는지 멍한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음. 예를 들어서, 전에 친구가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도와준 적 있어요. 전단지를 뿌린 다음 열정적인 친구들이 300명이 도와줬죠. 하지만 그날은 못 찾았어요. 그래서 다음 날 범위를 확대해서 2차 홍보한 다음에 열정적인 친구가 2,000명이 되었어요. 그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사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사람이 많았는지도 몰랐고, 인원도 효율적으로 분배하지 못했죠. 어떤 곳은 친구들이 가득하고, 어떤 곳은 길 가던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였고.”

“대단하다!”

전칠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나도 그런 거 해본 적 있는데, 1, 2백 명만 모여도 대단한 거였거든요.”

슬슬 내릴 준비 하느라 휴대용 캐리어를 챙기던 연문빈도 한마디 하려다가 입을 삐죽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나 따위가 끼어들 내용이 아니야.

“내가 전화할게요.”

능연의 말을 듣고 완전히 몰입한 전칠은 생각하다가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우리 집안에 이런 비슷한 사회적 공익활동 하는 재단이 있어요. 이런 쪽을 잘 알 거예요. 참, 공항에서 바로 뿌릴까요? 곽 주임님도 비행기 타고 왔죠?”

“공항은 바로 CCTV 확인하면 되지.”

연문빈이 으스스하게 입을 열었다.

“합법인가요? 사회자원을 너무 낭비하는 거 아닐까요?”

능연이 그래도 되냐는 듯 묻자, 연문빈이 뜻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2,000명 열정적인 사람······. 됐다. 님이 하루에 긴 시간 수술하는 것만 해도 사회자원 조금은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사람 살리려고 하는 일이고.”

능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 이식 서명하신 분이니까, 어찌 됐든 사회공헌이기도 해.”

연문빈은 다시 한마디 덧붙이며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능연을 달랬다.

“혹시 이 사람 본 적 있나요?”

능연은 고가다리 아래 인도 옆에 서서 손에 컬러 전단지를 들고 행인에게 물었다.

고개 숙인 채 전단지를 받은 여자는 성가신 듯 웅얼거리더니, 전단지를 쥐고 쓰레기통을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전단지 박스에 앉은 연문빈이 지루한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어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고함치며 능연을 휙 돌아봤다. 능연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데뷔한 신인이에요? 프로그램 촬영?”

여자는 아우디 전조등처럼 눈을 반짝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닙니다. 정말로 사람 찾고 있어요. TV 프로그램도 아니고요. 능 선생님은 아이돌이 아니라 운화 시 운화병원 의사예요.”

그 말을 한 사람도 방금 전에 전단지를 받은 행인이었다. 그녀는 사장이 사람이 아니라는 광고 회사에서 8년 동안 인사, 홍보, 행정, 재무 업무를 맡아서 갑을 상대하고 빚 받는 데 능숙하다고 자칭하며, 1기 ‘곽 찾기 위원회’에서 승리해서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능연 곁에 서서 신(新)행인을 상대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지금 이 대사도 ‘곽 찾기 위원회’에서 상의해서 만든 말이었다. 능 선생이 일일이 설명하려면 너무 힘들 테니까 말이다.

신(新)행인 여자는 8년 경력을 힐끔 바라보고는 결국 능연의 얼굴에 시선을 두고서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한 듯 입을 열었다.

“아이돌이 아니고 의사라고요?”

“네.”

광고회사 경력 8년이 대답했다.

“왜 아이돌 안 해요?”

행인은 그렇게 물으면서 구겼던 전단지를 다시 펴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사람 찾기, 그리고 능 선생님한테 궁금한 게 있고 또 시간도 충분하다면 저쪽에 설명 팀이 있어요. 가서 들으세요. 끝나면 질문도 해도 돼요.”

경력 8년은 노련하게 새로 온 여자를 데리고 저쪽 공터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열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여자, 남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미소가 넘쳤고, 흥분한 기색으로 있다가 새로 온 사람을 보고는 박수까지 쳤다.

“됐다, 됐다. 16명이니까 시작할 수 있어.”

“좋아요. 그럼 정식으로 설명하죠.”

화이트보드 앞에 선 중년 대머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사장이 사람이 아닌 학원 네 곳에서 강사 생활해서 쓸데없는 걸 머릿속에 밀어 넣는 기술이 탁월했고, 바로 그 기술로 ‘곽 찾기 위원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일대일 설명 방식에서 소규모 클래스 방식으로 확장하며 ‘곽 찾기 팀’의 효율을 대대적으로 높였다.

4 학원 경력은 자신감에 넘쳐서 마이크 없이도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은 모두 열정적으로 사람을 도우려는 분들입니다. 시간이 없거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돌아가도 좋아요. 하지만 일단 팀에 합류한 이상, 팀장에게 이야기는 하고 가야 합니다. 팀장은 위원에게 보고하고요. 자, 가실 분 있나요?”

잠시 기다리다가 4 학원 경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동의하셨으니 계속하죠. 일단 우리 목표입니다. 목표는 바로 곽 찾기. 여기서 곽이란 말이죠, 사람입니다. 곽종군이라는 능 선생 상사입니다. 북경에 온 다음 실종됐어요. 자자, 사진입니다.”

4 학원 경력은 설명하면서 사진 더미를 사람들에게 건넸다.

“치매인가요? 전에 우리 할머니도 하루 종일 찾았는데.”

“정말 의사구나. 와, 대단하다.”

“이 치매 의사, 잃어버린 지 얼마나 오래됐나요? 경찰 신고는 했고요”

“능 선생이랑 사진 찍어도 돼요?”

사람들이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웅성거렸다. 그러나 4 학원 경력이 누군가. 사장이 사람이 아닌 학원 한 곳에서 일할 때 업무가 바로 강사 겸 영업이었고, 많을 때는 한 번에 학부모 세 팀은 상대했었다. 그 정도 강도면 흥분해서 달려드는 채권자 열 몇은 한 번에 처리할 내공이 쌓였다.

4 학원 경력은 일일이 대답했다. 열성적 행인은 다 비슷하게 열성적이라, 질문도 다 비슷해서 상대하기 쉬웠다.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오늘 찾아온 학부모가 누구든 질문 모드는 비슷했다. 문제도 예상을 벗어나기 어려웠고.

게다가 열성적 행인은 같은 목표, 같은 심미안이 있어서 차라리 더 쉬웠다.

4 학원 경력은 일할 때보다 훨씬 즐거운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오히려 지금 하는 일이 그가 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전칠 아가씨가 일당과 교통비를 지급한다고 하니 날아갈 것 같았다.

열성적 행인 한 클래스는 간단한 교육 후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거리 한 구역에서 잔뜩 씨를 뿌린 다음, 또 단체로 앞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이 일에 능숙해졌고, 효율도 대대적으로 올라갔다.

곽종군은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 호텔 복도에 오가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따분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위스키 잔을 흔들었다.

“오늘 관찰한 바로는 역시 서양 사람이 제일 염치없군. 호텔에 아예 술 마시러 온 사람도 있잖아. 공짜 술이라고 끝도 없이 마시네. 그래도 웃으면서 반겨야 하고······.”

그와 함께 있는 친구가 술잔을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많이 마셨거든. 심장병까지 걸렸으면서.”

“이것만 마시면 그만 마실 거다.”

곽종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홀짝였다. 어쩐지 바쁜 생활이 그리웠다. 머릿속엔 심지어 능연이 수술하는 장면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센터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따지고 보면 자신이 한 수술도 몇천 건이고, 자신의 손을 거쳐 간 환자는 더욱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갑자기 환자가 되어보니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작정 나온 다음에도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눈 딱 감고 수술할걸.”

곽종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능연은 다 좋은데 강하지 않아. 내 군의관 시절이었다면 바로 환자 낚아채서 주사 놓고 시작했을 텐데.”

“왜? 자유를 주는 것도 잘못이냐?”

구 군의관 친구가 웃음을 터트렸다.

“난 심장외과 수술을 모르니까.”

곽종군이 입을 삐죽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운동했는데.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았어. 건강검진은 또 얼마나 열심히 했게? 이 망할 심장놈.”

“사람 욕하면서 스트레스 풀었겠지. 하지만 욕할 때는? 정말 몸조심할 때도 됐다. 큰 문제 생긴다고.”

“이틀만 더 숨어 있다가.”

곽종군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긴장 좀 하라고 해. 능연도 수업받는 셈 쳐야지. 의사, 특히 주임급 되면 강하게 나갈 땐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평소에 수술, 수술밖에 몰라서 이런 걸 잘 몰라.”

곽종군은 흡족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홀짝 비웠다.

그의 맞은편, 어린 외국인들이 각자 핸드폰을 들고 곽종군을 힐끔 대면서 속닥거렸다.

어린 외국인이 호텔 라운지 직원을 불러서 핸드폰을 보여주고 그녀와 속닥댔다. 직원도 매우 진지하게 대답하며 때때로 곽종군 테이블을 바라봤고, 술을 좀 마신 곽종군은 반응이 좀 느렸지만, 함께 온 친구는 눈치채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호텔에서 사고 치고 싶지 않아서 곽종군을 끌어당겼다.

“곽 선생, 이만 들어가자.”

“뭐가 급해. 수술도 없고 학회도 없는데. 아, 학회 가야 하나?”

“학회 같은 소리 하네.”

곽종군이 눈을 번쩍이며 하는 말에 동료가 어이없는 듯 툭 내뱉었다.

“어제 여자애 울려놓고, 잊었냐? 나이도 들어서 그만 좀 꽥꽥대라.”

“서른다섯인데 무슨 여자애야. 환자 자궁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냈다잖아.”

곽종군은 술을 마시고도 이야기를 시작하니 여전히 조목조목 따져댔고, 머리도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너도 맨날 선 구명 후 치료를 외치면서 다른 사람이 그런 주장 하면 안 되냐?”

“후 치료랬지, 치료하지 말랬나. 아무리 응급이라고 남 자궁을 쉽게 들어내면 쓰나. 몇 마디 했다고 대드는 거 못 봤어? 그 버릇 못 고친다고.”

곽종군이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북경에서니까 그러고 말았지, 창서성이었으면 걔만 혼내? 걔 스승도 혼날 일이지.”

옛 친구는 한숨을 내쉬고 설득을 포기했다. 사실 곽종군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저 곽종군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다.

“북경에서는 그렇게 욕하면 안 돼. 같은 덩굴에서 나온 호박도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다고.”

“나도 안다. 그러니까 그 정도로 끝냈지.”

곽종군은 나도 적당히 할 줄 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요즘 의학 박사들은 하나같이 얼렁뚱땅이라니까. 학력, 아니면 자격, 그런 것만 좇으니까 그렇지. 박사 타이틀 가지고 있어 봐야 수의사보다 못해.”

“수의사 부분은 동의!”

옛 친구는 거기까지 말하고 곽종군을 끌고 나오면서 힐끔 외국인 무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술도 많이 마셨고, 가서 쉬자.”

“오후에 무슨 학회 있나?”

곽종군이 여운이 남는 듯 물었다.

“없어.”

“이 드넓은 북경에 적당한 학회도 없다니.”

곽종군은 말투까지 싸늘해졌다.

심심해!

“술이나 안 마셨으면 찾아보겠는데, 이렇게 마셨으니 가서 자라.”

구 군의관은 학회를 찾아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이놈은 툭하면 기관총을 들고 회의장을 뒤집을 듯 벼락을 뿜어대는데, 사실 그렇게 사람을 죽일 듯이 뿜어도 상관은 없지만, 문제는 술 먹고 뿜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저쪽에 외국인 무리, 모두 스물 남짓해 보이는데 러시아 사람 같기도 하고 무슨 일로 온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구 군의관은 조금 남은 군인의 안목으로 눈앞의 형국을 살펴보고는 그대로 곽종군을 끌고 라운지를 나왔다.

외국인들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따라 나왔다.

“곽이지?”

어린 외국인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까지 따라 들어오자, 구 군의관은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살폈지만, CCTV는 없었다.

“당신, 찾는 사람, 있다. 우리를, 따라와라.”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어린 외국인이 조금은 흉악한 얼굴과 기괴한 발음으로 하는 말에 구 군의관은 조금 긴장했다.

“우리? 왜지?”

“왜냐고?”

어린 외국인이 반복하더니 돌아서서 러시아어로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에 구 군의관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사실 간단한 러시아어는 단어 정도는 조금 알아들었다. 학교 다닐 때 러시아어를 제1 외국어로 고르는 학생이 많았을 때니까.

하지만 속도가 빠른 데다가, 오랜 시간 쓰지 않아서 안다고 해 봐야 겨우 ‘여자’, ‘기쁘다’, ‘자동차’ 같은 단어뿐이었다. 구 군의관은 혹시 납치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서 더 긴장했다.

“곽가야.”

구 군의관은 곽종군의 허리춤을 꼬집었다. 살짝 술이 들어간 곽종군은 간이 커져서 눈을 크게 뜨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곽종군이다. 너희는 누구냐.”

“맞아, 이 이름이야!”

진지하게 토론하던 어린 외국인들은 신이 나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곽종군이 구 군의관을 바라봤다.

“내가 말했지? 북경에서는 그렇게 거들먹대지 말라고.”

구 군의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상황 지켜보자.”

이야기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고, 어린 외국인들은 익숙하게 곽종군과 구 군의관을 데리고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러더니 또 매우 능숙하게 두 사람에게 두건을 씌우고 커튼도 내린 다음 빠르게 움직였다.

구 군의관은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났다.

“이 새끼, 내가 그랬잖냐.”

구 군의관은 욕하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 만나자마자 곤경에 빠뜨렸지만, 적어도 돈 사고 치는 것보다 나았다.

곽종군은 이제 술도 슬슬 깼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능연 수술 연습 상대나 되어줄걸.”

구 군의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곽종군은 주절주절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능연의 기술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을까 봐 걱정되어서 그랬지. 아무리 천재 의사라도 자주 해 봐야 늘지. 북경 치안이 이 지경일 줄은 몰랐네.”

“외국 애들 같은데.”

“외국 애들이면 뭐?”

곽종군이 고개를 저었다.

“외국 애들 기술도 우리 능연보단 못한데. 그냥 한 번 해볼걸. 아니면 능연이 앞으로도 주저했을 텐데. 내가 자길 못 믿는다고 생각하면 더 큰일인데.”

“네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마라. 너 놀러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구 군의관이 입을 삐죽였다.

“그럼 다행이지. 음, 다행이야.”

곽종군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승합차가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보아 교외로 빠지는 것 같았다. 죽진 않아도 고생은 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수술받고 싶어도 못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드디어 멈췄다.

차에 있던 어린 외국인들은 긴장한 채 차에서 내려 교섭하러 갔고, 곽종군은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고, 두건이 벗겨진 다음에야 두건이, 두건이 아닌, 꾀죄죄한 셰프 모자였음을 깨달았다.

“곽, 잘 가.”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어린 외국인이 얼마인지도 모를 초록초록한 달러 다발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곽종군은 드디어 당황해서 비틀비틀 차에서 내렸고, 다시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긴 복도를 지나 주변이 다시 밝아졌을 때, 곽종군은 마음의 준비를 이미 마치고 분노도 가득히 장전해 두었다.

학회에서 쓰면 적어도 진료과 주임 셋이 인생에 회의를 느끼게 할 수 있을 정도의 분노였다.

곽종군은 목을 풀어주고는 슬쩍 발목도 돌려주고 코어 근육에 힘을 주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잘생긴 얼굴에 그의 분노가 빠르게 녹았다.

“능연?”

곽종군은 너무 놀라서 혀가 다 튀어나올 정도였다.

“곽 주임님, 드디어 찾았네요.”

능연이 미소 지은 채 대답했다.

“곽 주임님, 찾아서 다행이지,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요.”

전칠 역시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휘저어 옆에 있는 수상한 남녀를 내보냈다.

곽종군이 준비한 ‘시발!’은 곧 다른 말로 바뀌었다.

“다음엔 그냥 경찰에 신고해.”

“곽 주임님. 능 선생도 주임님 걱정해서 그런 겁니다. 심장 문제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지만, 주임님은 혼자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안심할 수 있어야죠.”

좌자전이 틈을 봐서 나서서 해명했다. 제일 먼저 나서면 벼락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좌자전으로서는 벼락이 자기에게 떨어지는 게 능연에게 떨어지는 것보다 나았다. 물론 벼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제일 좋아서 곽종군이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한 사이에 서둘러 덧붙였다.

“종일 힘드셨죠? 일단 차라도 드실까요?”

“내가 알아서 왔다면 힘들지 않았겠지!”

곽종군이 전혀 반박점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반박했다. 좌전은 ‘예,예’ 하면서 대답했다.

“러시아 사람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잘 모르더라고요. 원래 헬기랑 롤스로이스 준비했는데 이렇게 모시고 올 줄 몰랐죠.”

“얼마나 준 거야.”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좌자전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외국인이라 조금 더 들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들 얼마든지 돈을 내려고 했으니까요.”

“돈 더 주면 용병도 구하겠다?”

곽종군이 좌자전을 노려봤다.

“살려두기 귀찮다고 죽여서 데리고 왔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역시 주임님이 여러모로 생각하시는군요.”

좌자전이 얼이 빠져서 하는 말에 곽종군이 한숨을 내쉬었다.

“경험담이니까 그렇지.”

그 말에 좌자전은 완전히 넋이 나가서 속으로 마흔쯤에 응급의학과 주임이 되셨다더니, 설마······.

“사람을 찾는 건 찾는 거고, 다음엔 좀 제대로 하자. 멀쩡했던 내 심장도 이번에 놀란 바람에 간당간당하겠어.”

구 군의관이 약간 불평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는 곽종군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래도 이런 제자 있어서 다행이네. 나였으면 밑에 애들이 누가 자리에 올라갈지부터 정하고 이야기하자 했을걸. 아이고,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걱정이다, 걱정이야.”

다른 사람 앓는 소리에 곽종군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자를 그렇게 길렀다니, 망했네, 망했어. 정 안 되면 우리 운화병원에서 두엇 보내줄 테니 그 안에서 고를랴?”

“꺼져.”

구 군의관이 곽종군을 슬쩍 밀었다.

“가서 너희 능연이랑 수술이나 해라.”

“너도 같이 할래? 우리 능연 수술 실력 정말 끝내주는데.”

곽종군이 진지하게 초대했다. 이제 죽을까 봐 두려운 시기는 지났는데, 죽을까 봐 두려운 생각은 되돌아왔다.

의사야말로 수술대 위의 제어할 수 없는 위험을 잘 아는 법이었다.

구 군의관은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능연을 살피기 시작했다.

“곽 주임님. 차부터 드세요.”

전칠이 생글생글 웃으며 나서자, 바로 누군가 티테이블을 밀고 나왔다. 크고 네모난 티테이블이 드넓은 대청에 놓여 있으니 바로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거기에 전칠의 포스까지 있어서 곽종군과 친구 모두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차 좀 마셔볼까.”

곽종군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곽 주임님, 가족하고는 상의하셨습니까?”

능연은 자연스럽게 곽종군 옆에 앉았다.

“그야 당연하지.”

능연이 수술 전 면담을 할 기세인 걸 보고 곽종군은 절레절레 손을 내저었다.

“난 마지막까지······. 어찌 됐든 내 수술 걱정은 하지 마. 돌아가면 내가 알아서 수술대로 올라갈게. 부축할 것도 없어. 하지만 가기 전에 학회는 끝내고 갈 거야. 정리할 일도 있고.”

능연은 ‘안 믿어요’라는 표정으로 곽종군을 바라봤다. 한때 이렇게 비슷한 약속을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모두가 반대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여학생은 보통 선생님에게 말하면 막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곽종군처럼 도망 경력이 있는 환자를 능연은 이제 믿기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계속 끌면 리스크만 높아집니다. 돌아가서 수술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능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일이 닥친 후에야 해결 방안을 찾지 말고 쾌도난마로 해결하는 게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여학생이 ‘매일 편지 쓸 거야!’라며 호언장담하는 경우, 이렇게 되면 포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매우 강렬한 마이너스 감정도 동반하기 때문에, 경험상 처음부터 거절하는 게 완곡한 방식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환상을 품을 수도 있으니 요거트도 다시는 주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곽종군을 북경에 남겨 두면 다시 도망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여겼다.

곽종군도 능연이 의심하는 걸 당연히 느꼈고, 저도 모르게 화를 냈다.

“날 못 믿는 거냐?”

“물론입니다.”

능연이 당연하다는 듯 곽종군을 바라봤다. 잡혀 온 사람을 어떻게 믿으라고.

곽종군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면서 능연이 원래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기 힘든 사람이었나 생각했다.

“설사 수술한대도 며칠은 걸리잖아.”

곽종군이 버둥대며 버텼다.

“난 택일 수술이지 응급 수술도 아니라서 급할 거 없어. 게다가 하던 일은 끝내야 할 거 아니야.”

능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북경에 있을게요.”

“아니야. 넌 병원에 돌아가. 난 내 할 일이 있고, 넌 네 할 일이 있지.”

능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사흘. 늦어도 닷새! 꼭 돌아갈게.”

곽종군이 입이 닳도록 설득했다.

“어차피 북경에서 할 일도 없잖아. 운화로 돌아가서 연습도 더 하고. 어때? 날 연습 상대로 삼을 수는 없잖아.”

곽종군은 이야기할수록 온몸이 쑤셨다. 능연도 조금 설득되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흘에서 닷새 드릴게요. 다른 의사가 옆에 있다면요.”

“여기 내 친구 많아.”

곽종군이 냉큼 대답하자, 능연이 구 군의관을 힐끔 보며 말을 이었다.

“연 선생님도 곽 주임님 옆에 있으세요. 연 선생님도 이제 CPR 능숙하거든요. 힘도 세고. 혹시 쓰러지셔도 바로 옮길 수 있고요.”

“그래, 그래, 그래.”

곽종군이 손을 휘휘 저었다. 듣기 거슬리는 말이지만, 일단 며칠 버는 게 중요했다.

“그럼 사흘만 더 기다리겠습니다. 사흘 후 같이 운화로 돌아가요.”

“응, 그래. 응? 넌 기다릴 필요 없다니까.”

곽종군이 힘껏 고개를 저었다.

“넌 운화에 돌아가. 수술 몇 건 더 하면 좋잖냐고.”

“동의합니다.”

능연은 곽종군이 웃기도 전에 바로 덧붙였다.

“북경에서 하면 돼요. 주임님 볼일 끝나면 같이 운화로 돌아갑니다.”

수술은 당연히 많이 해야 했다. 자신은 있지만, 임상 경험이 느는 걸 거절할 능연이 아니었다.

곽종군은 좋아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몰라서 좌자전을 바라보며 진지한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이 망할 생각, 너 좌자전이 낸 건 아니겠지?

좌자전은 곽종군의 눈빛을 읽은 듯 고분고분 대답했다.

“저 아닙니다. 능 선생이 지금 막 생각해냈을 걸요?”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해결 방안 아닌가요?”

능연이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고, 곽종군은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자기에게 호응해주지 않자 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능연,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니까. 이건 북경에서 출장 수술하는 거나 마찬가진데 게다가 한 번에 몇 건이나 하겠다니. 받아줄 병원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럴 필요…….”

“위가우 선생 찾아가면 되겠죠.”

“그게 무슨 뜻이야?”

능연이 갑자기 그 이름을 꺼내자, 곽종군은 생각을 포기했다.

“그냥 위 선생님도 우리 수술실 쓰니까, 우리도 같은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능연은 잠시 사고회로를 정리했다.

“교환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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