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잤더니 편안하네.”
위가우가 힘껏 기지개를 켜며 인삼으로 고아낸 늙은 고양이처럼 인삼 냄새를 폴폴 풍겼다.
주변을 살펴봤더니, 비즈니스 클래스의 큰 의자에 반도 안 찬 사람들은 다 자고 있었고, 사형인 공문산만 이어폰을 끼고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사형, 좀 쉬세요.”
위가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공문산을 두드렸고, 공문산은 할 수 없다는 듯 이어폰을 뺐다.
“무슨 이야기하고 싶은데?”
적 원사 사단의 대부분 천재는 위가우처럼 철이 없었다. 그런데 적 원사는 기술 연구와 임상 기술만 바라고 이런 부류의 천재가 철이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 없었다. 덕분에 공문산 같은 작은 천재의 업무량은 점점 늘고, 기분은 점점 더 울적해졌다.
하지만 대천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거리낄 게 없고, 작은 천재는 사단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천재를 잘 돌봐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혹은 공문산 같은 사람은 대천재들과 일반인의 커넥터, 완충액, 방화벽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각도를 바꿔서 생각하면, 대천재들이 EQ까지 폭발하면 작은 천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위가우는 공문산처럼 이런저런 걸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자다 깼고, 할 말이 있으면 했다.
“이번에 운화에 온 거요. 실패인 걸까요?”
공문산은 힐끔 위가우를 살피고는 진심으로 묻는 것 같은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외과 아니랄까 봐, 심장이 탄탄하기도 하지. 음, 속은 좁은가.
위가우는 공문산의 진지한 표정에 속으로 플러스를 주었다. 역시 사형은 진지한 사람이야. 진심으로 이해관계를 고민하고 있잖아?
잠시 후, 여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위가우의 모습에 공문산은 할 수 없이 재빨리 생각하고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이번 수술 자체가 중대한 의미가 있어서 성패를 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판단 지표도 없잖아. 수술을 지켜본 사람이 판단 기준이 되겠어? 우리 수술 전반부랑 후반부는 참관이 많았잖아. 하지만 이런 절대치로 평가하는 건 아니라고 봐.”
“능연 수술이 우리보다 먼저 끝났잖아요. 총 참관수가 변했을 거예요. 게다가 능연 생중계가 더 많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능연이 유명세는 있지만, 우린 있는 대로 이야기해야지. 능연이 너무 잘생겨서 생중계 틀어도 유리해. 이건 비교할 수가 없어.”
“그죠. 그건 그렇죠.”
위가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비전문적인 평가 체계에서 능연이 너무 유리해. 게다가 우리는 운화병원에서 수술했잖아. 이건 전문적이든 비전문적이든 평가 면에서 능연이 다 유리하지.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잖아.”
여기까지 이야기한 공문산은 땀을 닦았다.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든 둥글게둥글게 해결한 느낌이었다.
위가우는 미심쩍은 게 남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는 분명 있었다.
운화병원에서 수술하는 걸 결정한 건 위가우지만, 얼굴이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줄은 정말 몰랐다.
“문제는 수술 끝나자마자 튀었다는 거죠.”
위가우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뒤로 눕혔다.
“그러게. 홈그라운드인데 수술 끝나자마자 수술 총결도 하기 전에 사라지다니. 그건 아니지.”
공문산은 양심에 찔리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이제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능연이 한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 잘하긴 했는데, 우린 심장외과 의사잖아. 우회술은 기껏해야 대중적이라서 고난도 이런 단어로 형용하기엔 좀 멀지 않았나? 이런 건 짚어 줘야지.”
공문산은 양심 없이 분석한 결과를 내뱉으며 온 힘을 다해 방울을 흔들었다.
“네가 한 간 이식 수술은 우리가 이야기할 것도 없이 간담췌 정상급 수술이잖아. 예전 같으면 일반외과 정상급 수술이야. 간 이식으로 우회술을 비교한다? 남이 들으면 우리가 괴롭힌다고 욕먹어.”
위가우는 싱긋 웃으면서 더 진한 인삼 냄새를 풍기면서 더 뒤로 누웠고, 공문산은 위가우 기분이 좋아졌음을 깨달았다.
양심이 손상됐지만, 사제의 존엄을 지켰고, 사제의 자신감도 회복했고, 사제의 자존감도 올라갔으니 앞으로 사제가 수술할 때 여전히 자신감이 넘치겠지…….
“이제 곧 착륙합니다. 전자기기와 테이블을 치워주세요.”
스튜어디스가 공문산의 생각을 자르며 나타났다.
“잠시만요.”
공문산은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다시 양심을 꺼내 노트북 안의 연설 원고를 보충했다.
위가우는 히죽 웃으면서 유난히 그윽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머릿속에도 계속 생각이 맴돌았다.
“다음 홈그라운드 수술은 신중해야겠어요. 그리고 우리도 심장 박동 비정지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심장외과 출신인 위가우에게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는 기술 노선 문제라서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다.
다행히 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위가우는 눈을 감고 잠시 쉬다가 비행기가 착륙하자 정신도 맑아진 상태로 다시 눈을 떴다.
공문산은 조금 부러워하며 싱긋 웃었다. 사단에 대천재는 다 이랬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이길 수 있으면 이기고, 이길 수 없으면 단호한 신념, 기술로 무턱대고 덤비면 그만이었다.
중국인은 원래 천재에게 지극히 너그러웠다. 천재들이 최고의 정치적, 경제적 대우를 받으란 법은 없지만, 정상급 시행착오 자격과 무한한 관용의 기회를 얻는다. 대천재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비옥한 토양이 된다. 특히 동시대 다른 민족, 국가와 비교하면 훨씬 더 큰 장점이고.
병원 실습생은 밥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벌지만, 진료과 주임 혹은 교수급이 되면 매해 수입만으로 평범한 사람은 인생의 반을 벌어야 할 정도를 모을 수 있다. 원사 급이 되면 돈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변한다.
위가우 같은 젊은 의사는 탁월한 재능을 일찍 드러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차트를 쓰고 다른 사람 배달 주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문산이 핸드폰을 꺼내 비행 모드를 해제하자, 메시지가 우르르 들어왔다. 공문산 역시 익숙한 듯 간편 메시지로 확인했다.
순간, 공문산이 손을 떨기 시작했다. 그는 당장에라도 놀란 고함을 전하고 싶은 표정으로 위가우 바라봤다.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들이 ‘대왕, 큰일 났어!’ 하고 외치는 게 정말로 정보와 놀란 마음, 그리고 책임감과 걱정을 전달하는 것임을 이해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왜 그래요?”
위가우가 자기 캐리어를 꺼내고는 공문산을 바라봤다.
“능 선생이 우리 병원에 왔대.”
공문산은 본진이 털리는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능연이…… 왜요?”
위가우는 캐리어도 챙기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심각한 표정이었다.
공문산은 위가우의 캐리어를 들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병원에서 수술 몇 건 할 거라더라.”
공문산이 ‘거라더라’라고 말하면 대부분 확정이라, 위가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말이 돼요? 보스가 허락했다고요?”
그래도 공공장소인 걸 알고 있어서 적 원사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지금은 카더라야, 카더라. 누가 보스한테 능연 수술 영상을 보냈는데, 매우 좋아하셨다는 카더라.”
“말도 안 돼. 보스가 장난도 아니고, 영상을 보내고 싶다고 보내고, 그걸 또 보란다고 보셨다고요?”
툴툴대던 위가우는 공문산의 ‘네가 더 잘 알 텐데!’ 하는 표정에 정말로 깨달아 버렸다.
분명 중요한 사람이 보낸 영상이겠지. 그 중요한 사람이 누군지 알 길은 없어도. 하지만 능연의 지금 지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병원으로 가요.”
비행기에서 내린 후, 위가우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뒤따라 차에 올라탄 공문산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위가우의 모습에 나지막이 달랬다.
“원사님도 그냥 궁금해서 수술 몇 개 시켜 보는 걸 거야. 별일 아니라고.”
“수술하는 거 자체가 별일이죠. 병원에서 수술이 가장 큰 일 아니냐고요. 됐어요. 그만 얘기해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위가우가 손을 휘휘 저었다.
“일단 진정해. 내가 무슨 상황인지 더 알아볼게.”
공문산은 위가우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적 원사는 언제나 그들의 롤 모델이었고, 위가우에겐 말할 것도 없이 잘해주었다. 직접 데리고 전국 로드쇼 하듯 출장 수술하면서 위가우의 길을 깔아 주었다. 이런 사제의 정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드문 일이고, 의학계 체계에서나 소수 존재한다 할 만했다.
그러나 공문산이 보는 적 원사와 위가우가 보는 적 원사는 확연하게 달랐다. 공문산 눈에 적 원사는 엄격하고 신속하며, 대담하고 과감했다. 새로운 영역에 거대한 자금을 들이는 것도 겁내지 않고, 수단을 사용해 경쟁 상대를 없애는 것에 인색하지도 않다.
공문산이 보는 적 원사는 위가우 같은 천재 제자가 본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는 흉악하고 위압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문산은 심지어 적 원사가 능연 수술 영상을 볼 때 지었을 표정도 상상할 수 있었다. 느긋하게 보다가 심각해졌다가 나중에 엄마 미소를 지었겠지.
능연이 심장외과 쪽에서 발전하고 심장외과 수술로 출세하고, 국내외에 이름을 떨치고 싶다면 적 원사라는 관문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 면으로 보면 능연이 정말 공문산의 사제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한 공문산은 소름이 쫙 끼쳤다. 적 원사 사단에 다른 병원에서 성장한 천재 의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줄곧 사단에 남아 있는 사람도, 몇 년만 있다가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 됐든 모두 적 원사의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공문산은 가장 먼저 능연 곁에 있는 좌자전을 떠올렸다.
“가우야, 병원 도착하면 난 상황 좀 볼게. 너 매 사형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래?”
공문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네.”
한 시간 후.
위가우와 공문산은 바로 입원 병동까지 들어가서 크고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리자마자 수술 참관실 앞은 이미 매 사형이 오는 날처럼 떠들썩했다.
위가우는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성큼성큼 걸었다. 다리가 당길 지경인 걸 신경 쓸 사이도 없이 껄껄 웃는 적 원사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렸다.
“지난번에 능연을 봤을 땐 몰랐는데, 다시 만나 보니 말이야, 젊은 사람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하네.”
적 원사가 남을 칭찬할 때는 언제나 목소리도 높았고, 특히 젊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걸 좋아했다. 특히 본원에 있을 때, 적 원사의 이런 칭찬을 들으면 위가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해하며 좋아했었다.
물론 이번은 예외고.
다른 병원 사람 칭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게다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잖아.
참관실 안에 있는 곽종군은 전혀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침 적 원사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자 싸울 듯이 격렬하게 웃어 보였다.
“성장 속도만 따지면 우리 능연은 절대로 지지 않죠. 적 원사님은 둘째치고, 같은 의국, 같은 수술실에 맨날 있는 우리도 능연이 언제 이런 걸 배운 건지 모릅니다.”
“보통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하려면 천재 의사도 5, 6년은 트레이닝 해야 해. 이미 수술에 능수능란한 그런 의사 말이야. 처음부터 배우려면 10년은 당연히 걸리지.”
적 원사는 감탄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능 선생 지금 기술은……. 음, 천재는 천재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그건 말할 것 없고, 지금 보여준 것만으로 보면 운화병원에선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 정도야.”
마침 들어오다가 곽종군이 멍하니 있는 걸 본 위가우는 속으로 어서 화를 내라고 재촉했다.
이대로 운화병원의 위세를 떨어뜨리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적 원사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심장외과는 다른 건 몰라도 다방면으로 서포트 해줘야 해. 국내 유명 심장외과는 기본적으로 다 센터로 승급했잖아. 왜 그렇겠어? 크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으니까!”
“저희도 지금은 응급센터입니다.”
곽종군은 적 원사가 원사인 걸 봐서 일단 벼락치기 전에 거리 테스트할 셈으로 가볍게 던졌다.
“응급은 응급이지. 심장외과 실력이 어떤지 내가 아직 모르니, 차라리 능연을 우리 심장센터에 한동안 두는 게…….”
적 원사의 말투가 점점 부드러워지자, 위가우와 공문산은 허탈하고 초조해져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저 말투, 저 내용, 두 사람 모두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좋은 말로 하자면, 적 원사는 재능 있는 사람을 목숨처럼 아끼는 성격이었다. 국내에 조금이라도 싹이 보이는 새싹이 있으면 매우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해 왔다. 그게 적 원사 사단이 나날이 강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적 원사 사단의 도태율도 기이할 정도로 높았다. 수페리얼 하게 대단한 잠재력이 있어 보이던 의사도 적 원사의 리듬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거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면 그대로 침몰해 버린다.
여기서 입을 열 수만 있다면, 위가우는 정말로 나가서 곽종군을 붙잡고 잘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때, 곽종군이 갑자기 껄껄 웃었다.
“일단 제가 수술대에서 살아서 내려와야 내 집도의 거취를 결정하지요. 하하하.”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 사이, 공문산은 위가우를 슬쩍 앞으로 밀었다. 이런 때 그나마 끼어들 수 있는 것도 위가우뿐이었다.
위가우는 입술을 핥으며 나와서는 따라 웃었다.
“곽 주임님, 차라리 적 원사님한테 수술받으시죠. 그럼 가슴 열고 매일 즐겁게 보낼 수 있으실 텐데요.” (*역주 : 開心에 ‘가슴을 열다’와 ‘기쁘다/즐겁다’ 의미가 있습니다.)
“가우 왔나.”
위가우를 본 적 원사는 여전히 미소는 가득했지만,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능연이 심장 수술하는 거, 봤지? 아는 사람 수술한다는 거, 이건 격려해 줘야 해. 난 이제 늙어서 안 되지. 물론 곽 주임이 바란다면 들어가서 도와는 줄 수 있어.”
원하던 반응이 아니자, 위가우는 입을 삐죽이면서 아예 대놓고 물었다.
“능연이 갑자기 왜 우리 병원에서 수술하는 겁니까? 도장 깨기는 아니겠죠?”
그러자 맥순이 바로 앞으로 나섰다.
“적 원사님이랑 연락됐는데, 마침 공익 프로젝트가 있다길래 함께 하려고 온 거예요.”
“공익 프로젝트?”
“빈곤 지역 무료 수술이요. 기본적인 수술 소모재 비용만 받고요. 어떤 지역은 국가 보조금도 나와요.”
운리가 발전함에 따라 맥순이 접하는 정보 범위도 대대적으로 넓어져서 능연이 필요한 수술 루트를 쉽게 찾아냈다.
비슷한 수술을 한 적 있는 위가우도 바로 정식 루트라는 걸 깨닫고 저도 모르게 적 원사를 바라봤다. 문제는 결국 이것이었다. 적 원사가 왜 능연이 본원에서 수술하는 걸 허락했냐는 것. 아무리 공익 프로젝트라고 해도.
위가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은 적 원사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도장 깨기인들 무서울 것 없지. 심장외과 영역에서의 경쟁은, 나는 찬성이야.”
방 안에 있는 본원 의사들은 모두 가슴이 철렁했다.
적 원사는 몇 마디 더 하고 이 사람 어깨도 두드리고 저 사람을 향해 웃어 보이며 사교성 좋아 보이는 모습을 한바탕 보여주고는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곁에 있는 병원 다른 진료과 주임들, 그리고 병원 밖에서 온 상급 의사, 교수와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니터에서 능연이 심장을 해부하는 것을 화기애애하게 지켜봤다. 마치 회사 전체 직원이 모여서 멋진 MC, 각양각색의 연기자, 그리고 노련한 관중이 있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아무도 죽지 않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곽종군은 이곳에서 유일한 외부 상급 의사는 아니었다.
“재미있군.”
곽종군이 곁에 있는 좌자전에 조금 감탄, 조금 무시, 쪼쪼금 자신감 있는 말투로 말했다. 좌자전은 괜히 곽종군을 자극했다가 이상한 결과를 유발할까 봐, 순수하고 비굴하게 웃기만 하고 별말은 하지 않았다.
위가우도 공문산을 끌고 참관실 뒤에 앉았다. 병원 의사의 출장은 매우 흔한 일이고, 조금만 유명한 의사라도 매주 학회 7개쯤 초청받는 건 다반사였다. 그래서 출장 좀 멀리 다녀왔다고 딱히 따듯한 환대를 받는 일은 없고 그냥 집에 왔구나 하고 여겨진다.
빈도로 따지면, 어떤 의사들은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출장을 더 많이 가기도 한다.
위가우는 그다지 주목받지 않은 틈을 타서 재빨리 공문산에게 물었다.
“어쩌죠?”
이미 혼란스러워진 공문산은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뭘 어째. 그냥 능연이 뭘 어쩌겠어, 하고 생각해. 우리 병원에 올 리도 없고, 보스는 원래 여기저기 두들겨 보는 사람이잖아. 게다가 설사 능연이 온대도 뭔 상관이야.”
위가우는 이럴 때 또 천재 IQ를 발동해서는 목소리를 깔았다.
“그건 아직 보스가 능연 수술을 보기 전 얘기죠.”
“그게 무슨 말이야?”
“수술을 현장 수술로 보는 게 얼마나 달라요. 만약…….”
위가우는 말을 끝내지도 않고 피식 웃었다.
“능연이 우리 사단에 들어오게 되면 경쟁해야 하고, 들어오지 않는다면…… 도장 깨기가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 말에 공문산의 IQ 창고가 완전히 다운됐다. 그리고는 그제야 위가우의 말을 드디어 알아듣고는 ‘설마’ 하고 중얼거렸다.
“능연 수술을 안 봤을 때나 설마겠죠.”
위가우가 입을 삐죽였다. 그가 왜 능연과의 비교에 집착하느냐, 바로 자신의 천재 계수가 능연보다 높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번번이 비교하면서, 위가우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능연의 천재 계수가 적어도 자신의 80, 혹은 90%는 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천재가 스스로 심장외과까지 건드린다? 적 원사는 그걸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공문산은 여전히 설마 하는 눈치였다.
“이미 능연 수술 영상 보셨잖아. 아까 말씀하시는 거 보면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던데. 물론 영상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서 네 말은…….”
사실 공문산은 자기를 못 믿는 것뿐이었다. 의사가 다른 의사 수술 영상을 본다는 건 코치가 축구선수 시합 영상 혹은 훈련 영상을 보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기껏해야 우수에서 조금 떨어지는 평가를 준다.
의사의 진정한 가치, 진정한 기술은 역시 현장에서 수술 과정 전체를 봐야 확인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적 원사는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일단 마음이 기울면 반드시 현장에 갈 사람이었다.
공문산은 저도 모르게 앞줄에 있는 적 원사를 바라봤다. 적 원사는 여전히 능연의 수술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웃고 떠들고 있었다. 사실 그랬고.
적 원사는 너무나 많은 천재를 봐왔다. 기준을 조금 낮게 잡으면, 심장외과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의대, 실습생, 훈련의 시절, 심지어 주치의가 되기 전에도 이미 ‘천재’라는 두 글자를 이마에 써 붙일 의사가 가득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의사들은 학생 시절부터 기본적으로 학원에서 천재 혹은 작은 천재는 되고, 정상적인 가족 계보에서 IQ 유전자 변이형 천재는 아니더라도 엄친아 모델 정도는 된다.
하지만 적 원사 눈엔 국내 명문대생, 하버드 혹은 존스 홉킨스 대학생이라는 신분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장관하는 심장외과 사단은 중국 최고라고 자신하니까. 이런 사단, 이런 전승, 이런 기회는 원래 모두 천재를 위해 준비한 것이니 천재만이 합류할 자격이 있으니까.
능연의 수술 영상은 가히 천재라고 칭할 수준이지만, 그게 반짝 빛나는 한순간인지, 아니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인지, 아니면 공들여 편집한 영상인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적 원사는 그걸 유심히 따져볼 생각도 없고, 사람이나 한번 만나보고 또 가능한 한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영상 속 능연의 수술에 대한 대접은 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드문 것도 아니었다. 적 원사는 이제 거의 수술을 하지 않았고, 바쁜 일상, 회의와 각종 활동 후 소일거리처럼 젊은 사람들의 수술을 봤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빠져들었다.
근래 점점 사교활동에 능해진 적 원사가 말 수가 점점 작아지고, 목소리도 점점 혼잣말에 가까워졌다. 그의 시선은 이제 모니터에 더 오래 머물렀고, 정신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치 축구 경기, 게임 생중계를 보던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몰입하는 것처럼.
위가우는 적 원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좌우로 목 흔들기가 나타난 걸 보고 잠시 기뻐했다.
“또 시작이네.”
“그러네. 역시 사제 네 판단이 정확하다.”
공문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감을 보면 좋아하는 적 원사는 항상 같은 식이었다.
하지만 위가우의 미소는 바로 사라졌다.
“이런 거 정확하면 뭐 해요.”
“넌 너한테 너무 엄격해. 우리도 수술 볼 거야?”
“아니요.”
위가우는 공문산을 힐끔 보며 물었다.
“보스가 현장에 가서 볼 거 같아요?”
“아까 네가 말 안 했을 땐 몰랐는데…… 지금 상태로 보면 못 참고 가실 거 같은데?”
공문산은 그 와중에도 은근히 위가우를 추켜세웠다. 적 원사는 너무 먼 존재라, 위가우 같은 사제를 통해서 겨우 살필 수 있었다.
위가우도 기분이 조금 풀려서 더는 말없이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적 원사가 역시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실에 가 봐야겠군.”
그는 바로 기세등등한 무리를 이끌고 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난 차트 쓰러 갑니다.”
위가우는 더 보기도 싫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 안 보려고?”
“적 원사님이 뭐라고 하실지 다 보이는데 보긴 뭘 봐요.”
위가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국으로 돌아가 며칠 출장으로 비운 자리를 채웠다. 공문산은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참관실로 돌아갔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도 특별한 소식은 없었다.
위가우는 묻기도 귀찮은 듯 타닥타닥 글을 입력했다.
이 시간이면 능연이 아니라 사단의 초짜 의사도 수술을 마칠 시간인데 여전히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빡빡한 수술과 침묵하는 적 원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 수술을 할 가능성이 크겠군.
이런 빈도는 적 원사의 사단에선 드문 일이니, 또 능연의 편의를 봐준 것이리라.
띠리링. 핸드폰 벨이 울려서 뒤집어 보니, 공문산이었다.
“두 번째 수술 시작했어요?”
“세 번째야.”
위가우가 먼저 물었지만, 공문산의 대답에 하마터면 방어벽이 무너질 뻔했다. 위가우는 고개를 저으며 겨우 웃어 보였다.
“빠르네요.”
“응. 적 원사님 완전히 빠졌어. 적 원사님이 저녁 식사 사신대. 시간 내서 와라.”
“네. 어디로요? 병원 식당? 아니면 하진로?”
본원 식당도 괜찮은 편이지만 하진로에 고급 식당이 많았고, 적 원사는 손님의 중요도에 따라 장소를 정했다.
공문사는 웅얼거리다가 겨우 대답했다.
“둘 다 아니야.”
“둘 다 아니라고요? 그럼 어디?”
“집에서 먹자고 하셨어.”
“집으로 초대하셨다고요?”
위가우가 헛웃음 지으며 묻는 말에 공문산은 위가우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수술이니까.”
적 원사 집이 있는 동네는 숲도 있고 주변 공원과 생활 시설도 잘 갖춰져서, 사는 느낌 나는 곳이었다.
공문산은 운전하고 와서 사제들이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시 올라오길 기다리면서 조금 멍하게 3동 3라인 문패를 바라봤다.
“적 원사님 이런 곳에 사셨군요.”
사제 하나가 ‘용이 이런 곳에 사는구나!’ 하는 듯한 말투로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응. 북경에 계실 땐 거의 여기 계시지.”
“원사니까요.”
사제가 다시 감탄했다. 용이다!
한때 용 소굴을 보고 비슷하게 감탄했었던 공문산도 지금 사제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어서 웃어 보였다.
“적 원사님 시절 원사들은 이 정도도 대단한 편이지. 어찌 됐든 북경이잖아. 게다가 이런 걸 따지는 분도 아니고. 정말로 대단한 건 사실 원사가 아니라 준원사 급이지.”
“왜요?”
궁금한 듯 묻는 사제의 모습에 공문산은 갑자기 적 원사 집 아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여긴 지하 주차장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불편해. 하지만 옛날 집이니까 어쩔 수 없지.”
“능연은 하구라는 곳에 산다는 거 같던데.”
같이 온 위가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툭 한마디 했다.
“맞아. 아직 거기 살걸? 하구 진료소? 가업이라더라.”
같은 차로 온 사람들 모두 조금 침착해졌다.
“능연은 출장 수술도 자주 한다면서요. 그런데도 캥거루족처럼 부모 집에 살아요?”
“능연이 너희들이 뭐라고 부르든 신경 쓸 것 같으냐?”
“아무리 잘생겼대도…….”
“잘생기면 다야.”
곁에 있던 나이가 많은 사형이 사제의 말을 자르고는 머쓱하지 않도록 말을 이었다.
“왕 선생, 너 요즘 선본다며? 선이라는 게 평가받는 거잖아. 능연은……. 아 참, 적 원사님한테 손녀 둘 있을걸? 본 적 있어?”
왕 선생은 먹이에 이끌린 짚신벌레처럼 바로 머리를 굴리며 물었다.
“예뻐요?”
“음, 적 원사님이랑 좀 닮았어.”
“하.”
왕 선생은 바로 머릿속으로 용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다리시겠다. 어서 올라가자.”
공문산이 손뼉을 짝짝 쳤다. 다들 일 도우러 온 것이었다. 집에 초대한다고 해서 적 원사가 직접 요리를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가자. 가족도 데리고 왔어야 하는데.”
나이 더 많은 사형이 살짝 흥분한 느낌을 드러냈다. 사단에 들어 온 지 10년째인데 적 원사 집은 처음이었고, 어쩐지 사단에서 지위가 높아진 느낌이었다.
물론 적 원사가 능연을 초대하면서, 사단 구성원 모두를 초대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골라서인지 능연과 비슷한 나이대의 의사가 초대받았지만, 어찌 됐든 그 나이대 의사라도 다 온 것도 아니고.
그는 무슨 이유로 적 원사 집에 왔든, 2, 3년 지나면 오늘의 사소한 일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당당하게 적 원사 집 문지방을 넘은 사람 중 하나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력은 적어도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 앞에서 폼 잡을 정도는 될 테니까.
“원사님 댁은 6층이야.”
공문산도 사실 처음이지만, 엘리베이터에 탄 후로는 그래도 침착한 편이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매무새를 정리하며 준비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을 두드렸다. 맨 앞에 선 나이 많은 사형은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평범한 거실에 이미 애피타이저, 음료와 술이 가득했다.
“능 선생 왔나?”
적 원사가 셔츠 차림으로 책 한 권 끼고 나오자, 나이 많은 사형이 서둘러 웃음 지어 보였다.
“원사님!”
“어, 저기…….”
“원사님!”
적 원사가 살짝 생각에 잠긴 상태가 됐을 때, 위가우와 공문산도 안으로 들어왔다.
“아, 위 선생, 왔나.”
위가우를 본 적 원사는 바로 웃어 보이고는 위가우 뒤를 힐끔 보고며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능연은? 같이 오지 않았나?”
위가우는 속으로 ‘정신이 없으신가’ 하고 생각하며 웃어 보였다.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요.”
“아, 아. 젊은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고 소통해야지. 이번에 알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자주 연락도 하고 그래.”
위가우는 인삼 냄새 풍기며 웃어 보이고는 슬쩍 공문산을 앞으로 밀었다.
“그게…… 앞으로 자주 연락하겠습니다.”
할 수 없이 공문산이 대신 대답했다.
“능연하고 가깝게 지내면 좋을 거야. 특히, 위 선생, 능연한테 많이 배워.”
위가우는 속으로 자주 ‘가우’라고 불러주시더니, 집에까지 왔는데 왜 위 선생이라고 부르냐고 꿍얼거렸다.
“능연이 싫달까 봐 걱정이죠.”
위가우는 그렇게 한마디 하고는 못 참겠다는 듯 덧붙였다.
“능연 기술이 매 사형보다 뛰어나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건 몇 년 더 지켜봐야 알지.”
많은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의자라도 놓는 척 허리를 굽히던 사제는 저절로 멍해졌다.
“설마요. 정말로 매 사형하고 비교가 된단 말씀이십니까?”
공문산도 멈칫하고는 서둘러 위가우를 바라봤다. 위가우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멘탈을 관리했다. 어떻게 해야 능연이 내 천재도 90%인 동시에 매 사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올림피아드 수학 천재였던 위가우는 재빨리 분석했다. 능연이 내 90% 성공도고, 아니 95%일 때 내가 매 사형의 95% 성공도라면 능연이 매사형 90%가 되는 거군. 완벽해!
그런 생각이 바닥에 깔리자, 위가우는 다시 자신감이 생겨서 침착하게 적 원사를 바라봤다. 적 원사는 제자들의 감정 상태에 매우 만족했다.
암, 심장외과 의사는 이 정도 압박은 견딜 만큼 심장이 커야지.
“심장외과는 범위가 너무 넓지. 내가 아는 바로는 능연은 우회술에 능통한 것 같더군. 심방 간막도 했고. 하지만 다른 쪽은 손대지 않았어.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능연은 우리 사단에서 키운 인재보다 폭이 좁지. 하지만 깊이는…….”
사람들은 목을 빼고 적 원사의 말을 기다렸다. 적 원사는 잠시 더 생각하다가 싱긋 웃었다.
“지금은 아직 모르겠군. 수술 몇 건으로는 모르지.”
공문산은 안도하며 힐끔 위가우를 바라봤다.
“그럼 능 선생은 특정 수술 방식에 정통한 그런 의사에 가깝네요.”
“전에 간 수술하지 않았어요?”
“심장외과 쪽 말이야.”
사제가 지금 할 소리가 아닌 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공문산이 냉큼 덧붙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능연은 아직입니까? 초대받았으면 일찍 일찍 와야지.”
“아직 수술 중이라, 곧 끝나겠지. 나도 한때는 시간만 있으면 수술했지. 젊을 땐 밥을 먹어도 수술실에서 먹어야 맛있었어.”
공문산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수술실에서 전동 메스를 쓰는데요. 시대가 변했다고요.
“능연하고 통화하셨어요? 곧 끝날 거라고 하셔서…….”
위가우가 짚이는 게 있어서 물었다.
“아, 톡 보냈지. 전화하면 방해되잖아.”
“아, 그러셨구나…….”
적 원사가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위가우는 심각해진 얼굴로 공문산을 바라봤다. 적 원사가 능연하고 위챗을 추가해? 위챗은 전화번호보다 위협적인데. 사진, 영상, 심지어 영상 통화도 가능하잖아.
그게 무슨 의미냐면, 환자, 케이스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참, TV 켜지. 능연 수술 영상 틀고 밥 먹으면서 보자고. 이야깃거리도 되고 좋잖아.”
적 원사가 껄껄 웃으며 다시 ‘라떼는’을 시전했다.
“옛날에 처음 큰돈 벌었을 때 바로 비디오 레코더를 샀지. 레코더 사면 테이프 두 개 줬는데,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수술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몰라.”
“그럼 오늘 능연 수술 영상을 제대로 봐야겠는걸요.”
위가우는 심각한 얼굴로 TV 리모컨 파워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된 이상 큰소리 대마왕이 되고 싶지 않아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전칠을 데리고 적 원사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미남과 미녀를 발견한 공문산은 조금 멍해졌다. 적 원사가 사단 내 의사를 집에 초대할 때 아무도 가족을 데리고 온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함께 서 있는 능연과 전칠의 투샷이 주는 압박감은 너무 강렬했다.
공문산은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머릿속으로 긴 시간 쓰지 않았던 단어들을 잔뜩 떠올렸다. 특히 성형외과 실습 시절 자주 듣던 황금 분할선, 등각 나선, 피보나치 수열 같은 단어가 절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적 원사님.”
“원사님, 안녕하세요. 댁에 처음 오는 거라 선물을 가지고 왔어요. 시가 좋아하신다길래, 아버지 시가룸에서 가지고 온 거예요.”
전칠이 스탠다드한 미소를 짓자,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알아서 시가 박스를 건넸다.
아버지 시가룸에서 가지고 왔다 운운은 당연히 대충 둘러댄 것이었다. 골동품 할 때 이야기를 더 해서 선물의 가치를 올리는 것처럼. 하지만 시가 자체는 상당히 괜찮은 물건이었고, 못해도 몇천 위안이라 이 자리에 있는 의사 기준으로 가치든 가격이든 내놓을 만한 물건이었다.
적 원사도 매우 기뻐했다.
“하나밖에 없는 작은 취향인데 그것까지 알려졌군.”
“원사님 이야기야 뭐든 이야깃거리가 되죠.”
적 원사는 33%는 분위기를 맞추려고, 88%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직접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이미 식당이 된 거실 정면의 커다란 TV엔 시뻘건 수술 현장 고해상도 영상이 나오고 있었고, 전칠은 그저 힐끔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리며 웃어 보였다.
“능 선생 수술인가요?”
“그렇지.”
적 원사는 싱긋 웃으면서 TV를 등진 의자를 꺼내며 신사다운 면모를 보였다.
“여성 분은 이쪽으로 앉지.”
“감사해요.”
전칠도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식사 시간인데 TV를 계속 보고 있자면 싫을 것 같았다.
다른 의사들은 그렇게 따지지 않았다. 특히 심장외과 의사는 평소에 수술하다가 밖에 나가서 밥 먹으면서 수술 장면을 지켜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게다가 밥은 배달 음식이고.
굳이 식사에 지장을 준다면 차라리 전칠의 얼굴이 더 문제였다. 그 자리에 있는 나이가 가장 어린 사제는 벌써 얼굴이 조금 빨개져서 맥주 반 캔을 비우고서야 겨우 가릴 수 있었다.
“능연은 내 옆에 앉게. 오늘 화제가 능 선생 수술 위주일 테니 말이야.”
적 원사도 껄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홈파티란 보통 덜 총애받는 제자가 일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나이가 더 많은 사형이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요리 솜씨를 뽐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 한 것처럼.
“그럼 오늘 주제는 허혈성 심장 질환이겠네요.”
위가우가 심드렁하게 한마디했다.
현대인의 생활 습관 문제로 허혈성 심장 질환은 상대적으로 자주 보는 심장 질환이다. 관상동맥 경화가 유발한 관상동맥 바이패스 이식술, 급성 심근경색 후 심근 재혈관화, 허혈성 승모판 폐쇄부전 등등 모두 허혈성 심장 질환의 범주에 든다.
하지만 학술적인 각도에서 보면, 흔한 것은 종종 무시 체인의 하층에 있게 된다. 심장외과 특성상, 허혈성 심장 질환은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지만, 학술 토론에선 진부하고 흔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위가우가 능연이 허혈성 심장 질환밖에 모른다고 은근 비아냥거리는 것이고.
어찌 됐든 심장외과 범주에서 각종 선천성 심장 질환, 심장 판막 질환, 대혈관 질환, 부정맥 외과 처리 등 연구할 만한 무수한 항목이 있고, 궁극의 해결 방안이라고 불리는 심장 이식과 폐 이식 수술은 격조만 따져도 허혈성 심장 질환이 덤빌 수 없는 종류였다.
이런 은근한 언어 공격은 외부인은 전혀 모르지만, 업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아들었다. 지식인이 가득한 병원에서, 곽종군 이외의 대다수 의사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적 원사 역시 자기 부하의 말투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웃어 보였다.
“그럼 허혈성 심장 질환으로 하지.”
위가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작은 승리도 승리니까.
능연은 여전히 태연했다. 이런 궁중 암투식 대화 방식은 진작 자동 차단하는 데다가 생활에 영향도 받지 않았다. 즉, 본인은 궁에서 꽤 지위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능연은 자연스럽게 위가우를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까?”
위가우는 기세가 조금 밀려서 능연을 빤히 바라봤다.
말투가 왜 그래. 내가 네 부하냐?
하지만 능연의 얼굴은 더 평온해졌다. 능연 앞에서 넋을 잃는 사람은 너무나 많아서, 위가우 같은 사람은 이상할 것도 없었다. 냄새가 좀 희한해서 그렇지.
“그럼 나부터 이야기하지.”
위가우도 그리 오래 넋을 놓고 있진 않았다. 적 원사가 보고 있는걸.
그는 바로 단어를 조합하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영상에서 보는 대로, 능 선생이 지금 승동맥을 처리하고 있지. 처리 수법을 보면 능 선생이 수술전 준비를 아주 잘했다는 걸 알 수 있어. 식도 초음파를 미리 한 모양이지? 수술 과정에서 능 선생이 위치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더라고. 게다가 수술 중에 표면 초음파도 하지 않았고.”
위가우는 감탄하는 듯 거기까지 말하고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조금 음흉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 뉴스에서도 나오듯이, 대동맥 표면 초음파는 매우 필요해. 로젠버거(Rosenberger)와 동료가 환자 6,000명 대동맥 표면 초음파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중 4% 환자에서 대동맥 병변을 발견해내고 수술방식을 바꿨어. 수술 후 신경 시스템 합병증을 당연히 줄여주겠지. 이런 점에서 보면, 난 말이야, 능 선생이 영상 기술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들 진지하게 위가우의 연설을 들으면서 개중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그가 능연 태클을 걸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럴 근거가 있으니 찬성할 만했다.
위가우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능연에게로 향했다. 적 원사의 두 손녀마저 주방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능연의 얼굴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평소 태도, 평소 말 속도로 입을 열었다.
“일리는 있네요.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표면 초음파가 좋긴 하지만,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봐.”
위가우는 속으로 ‘그래, 헛소리할 기회 줄게.’ 하고 생각했다.
능연은 빠르게 진전되는 TV 속 진도를 슬쩍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수술 전에 MRI 했거든요.”
위가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야 다 하지. 표면 초음파로 못 잡고 MRI로 잡는 게 뭐가 있는데? 택일 수술에선 다 쓴다고.”
“많죠.”
능연은 싱긋 웃으면서 팀원에게 설명하는 말투로 말했다.
“우선 강화 부위가 투벽성인지, 심내막 아래에 있는지부터요. 다음은 관상동맥 병변 혈관 변형 분포 구역도 알아낼 수 있고, 진구성 심장 경색 상태 등등도요.”
사정을 잘 모르는 의사는 벌써 놀랐고, 그중 하나는 위가우의 기분을 살필 겨를도 없이 바로 놀라서 고함쳤다.
“운화병원에 그런 영상 고수가 있다고? MRI 판독 전문가가 있어? 이름이 뭔데?”
“제가 직접 판독합니다.”
“너…….”
능연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이쪽 의사는 적 원사를 힐끔 보고는 다시 능연을 바라봤을 때 표정도 달라져 있었다.
“님이 영상 마스터였구나.”
“나도 MRI 판독하는데 능 선생이랑 비교할 수 없겠는데.”
“요즘은 우회술 하려면 이렇게 장벽이 높아?”
식탁 양측에서 열정적으로 토론하기 시작했는데 위가우는 갑자기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전에 확장형 심근 병변 케이스 때, MRI 자주 썼지. 나중에 황 주임님 은퇴하고는 별로 안 쓰게 됐지만.”
아까 능연을 영상 마스터라고 했던 조고봉은 사단에서 중견급이었다. 즉 천재적 기대는 실현했는데 초월하지 못한 중년 의사였다.
그때, 공문산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황 주임 복직하신 지 오래되지 않았나.”
“황 주임님이 복직해도 9-5라, 시간이 안 맞아. 게다가 남한테 기대기만 해선 안 되지. 항상 영상의학과에 기댈 수는 없으니, 그러면 초음파밖에 없지. 솔직히 초음파도 나쁘지 않아. 나는 확장형 심근 질환 할 때는 황 주임님이 좀 그립기도 해.”
“황 주임 기술이야 할 말이 없지. 후계자가 없는 것도 확실히 문제였고.”
적 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 하나를 꺼내 적으며 말을 이었다.
“스카우트할 영상 마스터 없는지 봐야겠군.”
“능 선생이 오면 다 해결되겠네요.”
조고봉이 웃으며 받아쳤다.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라 이번 홈파티의 목적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 원사가 고개를 저었다.
“능연은 큰일 할 사람이라 프로젝트 진행하든 임상을 하든 시간이 귀한데 남 영상 봐줄 시간이 어디 있나.”
식탁에 앉은 의사들은 일제히 능연을 바라봤다.
이건 조건을 제시하는 셈이었다. 병원 의사들로서 프로젝트도 있고 임상도 있으면 다 가진 것이다. 부족한 게 있으면 제약회사 직원을 불러 채우면 되고, 가질 거 다 가진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경 병원 의사의 대우가 보편적으로 지방 병원 의사보다 못하다고 해도, 프로젝트가 추가되는 그날부터 역전된다.
조고봉도 할 말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네요. 제가 과했네요. 능 선생처럼 알아서 MRI 보는 의사가 부럽네요.”
“너도 배우면 되지.”
“왜 안 배우세요.”
능연과 적 원사 두 사람이 비슷한 내용, 조금 다른 말투로 거의 동시에 한마디 했다. 이중으로 타격받은 조고봉은 속으로 ‘시간이 있고, 배운다고 잘할 수 있으면, 그래서 영상의학과 돼지보다 더 잘하게 되면……. 감히 이런 상상을 해도 될까.’ 하고 생각했다.
“능연, 자네는 MRI가 초음파보다 낫다고 생각하나?”
적 원사가 다시 대화를 주도하며 질문을 던지고는 계속 말했다.
“지금 업계에서는 초음파를 잘 안 쓰는 추세지.”
“초음파도 괜찮죠. 수술 중 초음파를 대신할 순 없으니까요.”
능연은 우선 결론부터 짓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수술 전 준비는 MRI가 더 효과적입니다. 특히 수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서 저는 더 선호합니다. 둘 다 같이 쓰면 되니까 굳이 대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정보를 제공하니까요.”
의사들은 쓴웃음을 지었고, 조고봉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MRI는 거의 귀족들 스포츠 같아서, 기술 없고, 병원 내 인맥 없으면 MRI 보기가 쉽지 않아.”
“확실히 어렵긴 하죠.”
능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 그랬다. 능연을 포함한 의사 모두 병원의 현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많지도 않은 MRI 판독 가능한 의사 중에 심장외과 수술에 쓰일 정도로 판독하고 자세한 디테일을 제공할 수 있는 의사는 더 드물었다. 그리고 그런 의사는 죽을 정도로 바빠서 시간 내서 판독하고 또 설명까지 해주는 사람은 더 드물어진다.
사람을 더 많이 모집하고, 스카우트하고 어쩌고도 다 의미가 없다.
중국의 MRI 사용량은 이미 매우 많다. 많은 병원에서 몇천만 위안이나 하는 MRI 기계를 한 번 사면 네다섯 대 사는데, 원래 있던 기기까지 합하면 일선 도시 삼갑병원엔 평균 10대까지 가지고 있는 곳도 있다.
그래도 많다, 비싸다 타박할 것도 없다. 진료받으러 온 환자가 MRI 한 번 찍으려면 한 주, 심지어 한 달을 기다려야 해서 고향인 작은 도시로 일부러 돌아가서 MRI를 찍고 돌아올 때도 많다.
물론 바뀐 것도 매우 많다. 환자들은 의사들이 돈 벌려고 아무 검사나 할까 봐 걱정하는데, 큰 병원일수록 불가능하다. 병원 임상검사과, 영상의학과는 진작 과부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진료과에서 무턱대고 검사 오더 내렸다가 엄마도 몰라볼 정도로 혼쭐나기 때문이다.
물론 큰 병원으로 갈수록 검사가 더 많아진다고 환자들도 말한다. 아마도 큰 병원 의사가 더 꼼꼼히 문제를 체크하고 큰 병원으로 가는 환자일수록 병세가 위중해서 이런 결과가 벌어지는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의사의 진단 책략도 사실 변화하고 있다. MRI, CT 오더를 덜 내려서 결과 나오길 기다릴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그런 점에서 전 세계 의료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 여기서 대동맥 표면 초음파 쓰네요.”
나이가 가장 어린 사제가 와인잔을 들고 흔들면서 말을 꺼냈다. TV의 화면에서 능연이 수술 중 대동맥 표면 초음파 기기를 쓰는 장면이 나왔다.
위가우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능연이 수술하는 모습도 여러 번 봤고, 능연이 수술 중에 표면 초음파를 쓰는 것도 본 적 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능연이 수술을 충분히 잘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충분히 잘하는 능연의 수술 스킬은 임상적 평가고, 오늘 토론 방향은 학술적 문제였다.
덕분에 위가우가 다시 큰소리칠 기회가 생겼다. 그게 자신의 원천이기도 하고.
임상 조작에는 각종 제한이 있다. 제한된 시간, 완벽한 상태일 수 없는 수술 기구, 동료 간 협력 상태, 그리고 환자의 생리 상태 또 정신 상태, 모두 수술 흐름에 영향을 준다.
학술적 조건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각 데이터의 여러 통계, 데이터 처리에서 ‘오차’들을 없앨 수 있으니 조건이 높은 건 필연적이었다.
학술회의 참여자들은 보통 여러 수술을 모아 결론을 낸 논문을 들고나온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물론 위가우는 지금 이의를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까 큰소리는 치자마자 사그라졌지만, 지금은 다시 바짝 정신을 차리고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 역시 모니터 속 능연의 동작을 주시했다.
“인제 보니 사실 능 선생도 수술 중 초음파를 자주 사용하네. 표준적이야.”
“몇 년 전에 미국 갔을 때, 미국 큰 병원에서도 수술 중 초음파를 밀고 있더라고. 운화병원이 신기술을 이렇게 빨리 따라잡을 줄은 몰랐네.”
“오, 이 부분 좋다.”
사람들의 평가는 자수 바늘처럼 위가우의 입을 한 땀, 한 땀 꿰맸다. 위가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동 차단하고 모니터를 빤히 보며 머리로는 미친 듯이 정보를 필터링했다.
“문제없네.”
“문제없군!”
“문제 없…… 는 게 아니라, 능연,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동작을 저렇게 표준적으로 움직이는 거 힘들지도 않아?”
와인잔을 들고 식탁의 학술적 분위기가 사라지길 오래 기다렸던 전칠은 그제야 걱정되는 듯 물었다.
“위 선생님, 얼굴 빨개지셨어요. 술 그만 드세요.”
전칠은 이 자리에서 능연을 가장 심하게 질투하는 사람이 바로 위가우라는 걸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안 그래도 TV 화면 때문에 이미 머리가 어질한데, 전칠이 그런 말까지 하니, 위가우는 순간 얼굴이 더 뻘게졌다.
“난 술 안 마셨습니다.”
“그럼 수술 보다가 빨개지신 거예요?”
전칠이 웃음을 터트렸다.
“의사들 정말 재미있네요. 수술이 정말로 그렇게 재미있어요?”
그녀는 진심으로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위가우는 화가 나서 빨개진 거라고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더 붉어졌다.
“전칠 씨, 잔 채워드릴게요.”
공문산이 서둘러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감사해요.”
전칠도 정말로 위가우를 두들겨 팰 생각은 없어서 살짝 찌른 거로 만족하고 잔을 들어 보였다.
식사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졌고, 사람들은 또 나지막이 대동맥 초음파가 국내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이야기하며 비교하기 시작했다.
전칠은 운리 다음 사업 발전 포인트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기억하기 시작했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면 외국 회사 한두 개 사는 게 더 나을 것도 같고.
적 원사는 자기 집 식탁이라고 점점 편하게 행동했다. 슬리퍼를 신은 채 한참 이야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한 다리를 의자 위로 꼬고 앉았다가 잠시 후에 알아차리고는 싱긋 웃으며 그 김에 다리를 내리치며 생각난 듯 말했다.
“오늘 기분이 좋으니까 좋은 술 대접하지.”
그러면서 안으로 들어가 와인 하나를 더 꺼내 왔다.
“음, 당직은 마시지 말고, 나머지는 알아서 마시게.”
적 원사는 술은 권하지 않고 그저 손녀들에게 술을 따르라고 시켰다. 적 원사의 두 손녀는 원래 이런 잡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오늘은 능연이 있으니 둘 다 매우 정숙한 척했다. 하나는 우아하게 오프너를 쓰고, 하나는 적극적으로 디켄터를 꺼내는 모습에 의사들은 놀라서 소름이 다 끼쳤다.
“우리 병원에서 수술 중 초음파를 제일 먼저 썼지. 내가 그 첫 번째 기계를 들여온 사람이고. 그때 당시 천만 위안은 했어.”
다시 자리에 앉은 적 원사는 노리는 바가 있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올해까지 수술 중 표면 초음파에 투자한 것만 해도 국내 3등 안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걸.”
“우리 심장센터가 1등일 겁니다.”
한참 말이 없던 조고봉은 잘 아는 분야라서 자부심 넘치는 모습으로 바로 한마디 했다. 적 원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한 만큼 돌아온다고들 하는데, 첨단 치료는 사실 돈 버는 게 불가능해. 너무 심각하게 손해 보지만 않아도 괜찮지. 우리만 봐도, 수입만 따지려면 수천만 위안 써서 설비 구매할 필요가 전혀 없어. 그렇다고 의료 서비스 비용이 오르는 건 아니니까, 원래 있는 기기를 쓰는 게 돈은 더 벌지. 안 그런가?”
사람들은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표면 초음파는 그래도 성공한 기술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성공할지 아닐지도 몰랐어. 대부분은 결국 실패한 기술이 많은데 따라야 하나 말아야 하냐 이거지. 사실 결국은 따라가야지. 안 그랬다가 몇 년 뒤에 성공했을 때 따라가려면 늦으니까.”
적 원사는 그렇게 말해놓고 한숨을 내쉬고는 능연을 향해 말했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최신, 최고 기술은 언제나 최고 의료 기관에서 시작한다는 말이지. 우리처럼 수입 이윤으로 먹고사는 게 아닌 병원 말일세. 그런데 운화병원 같은 지방 병원은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하고 이윤이 높아도 신기술 투자는 우리랑 비교할 수가 없지. 안 그런가?”
적 원사의 시선이 능연에게 고정되었다.
“이론적으로 그렇죠.”
능연이 그의 말에 동의하자, 적 원사가 바로 웃었다.
“현실이 그래. 세계적인 큰 병원을 보게. 뉴욕 장로교 병원, 일본 도쿄대학 부속 병원, 토론토 종합 병원, 베를린 국립 대학병원, 파리 피티에 살페트리에트 병원 등등, 정상급 병원은 다 적자잖아. 왜겠어? 신기술 탐색하려면 그게 다 돈이거든. 블랙홀이라고. 메이요는 흑자라지만, 사실 상황이 특수해서 그래. 1등이라는 자리로 밖으로는 전 세계 부자들 돈 끌어모으고, 안으로는 직원 임금 삭감하고, 노벨상 수상자도 십만 달러 연봉이 평균이잖아. 그걸 따라 할 수 있냐 없냐는 접어두고, 노벨상 학자가 세계 2등 병원에서 18만 달러만 받고 일할 리 없다는 거지.”
능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새로운 지식이었다. 병원과 의학센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고작 스물 몇 살인 그로서는 별로 개념이 없었다.
오히려 전칠이 눈을 빛내며 들었다.
“노벨상 학자도 겨우 18만 달러라고요? 그걸로 생활이 돼요?”
“메이요는 미국 평균 임금으로 지불하니까, 18만 정도일 걸세. 어쩌면 15?”
적 원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학자는 별로 돈을 안 쓰니까.”
“그러니까 능 선생 말고도 순수하게 이상만으로 생활하는 의사가 많다는 거네요?”
전칠이 감탄하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나이가 가장 어린 사제가 하하 웃으며 느끼는 바가 있는 듯 입을 열었다.
“의사는 먹여 살릴 가족만 없으면 바람만 먹고도 사니까요.”
의사들은 적 원사의 눈치를 살피며 엄숙, 근엄,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메이요 우회술은 어떻습니까? 원사님은 세계 최고 심장 전문 병원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능연이 묻는 말에 적 원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론 95년부터 의 심장 전문 순위는 클리블랜드 센터가 줄곧 1등이었네.”
“원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임상 기술 순위를 묻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네.”
적 원사는 능연의 의도를 짐작하고는 계속 말했다.
“세계 첫 관상동맥 조영술, 관상동맥 우회술, 모두 클리블랜드에서 했지.”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물었다.
“그쪽 의사 수술 보신 적 있습니까? 제가 하는 것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 말에 다들 식사도 하지 않고 능연을 바라봤고, 위가우는 의아함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와 서공 중 누가 더 잘생겼느냐, 냐?”(*)
젊은 의사들은 고개를 숙이고 웃기 시작했다. 적 원사는 웃지 않고 제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곽 주임은 참 운도 좋군. 어느 날 내가 병들었을 때, 내 제자들이 이런 말을 할 용기가 있고,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적 원사는 다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임상 기술만 따지면 적어도 펠릭스 교수, 그리도 켈렌이라는 의사가 있는데 총체적으로 더 잘하지. 심장 박동 비정지 우회술을 긴 시간 연구한 사람들이거든. 수술 한 건으로 말하긴 어려워도,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대처 방법이 더 많을 걸세.”
의사가 이 정도쯤 되면 전투기 조종사처럼 정상적인 이착륙 혹은 작전 훈련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아도 위기 상황에서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능연도 그의 분석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적 원사의 이런 대답을 매우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답을 얻은 능연은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그분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요? 둘 중 한 명도 괜찮습니다.”
“뭘 하려고?”
“가능하면 운화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으면 제일 좋고요. 곽 주임님 수술 말고요. 같은 날 다른 사람 수술이요. 그러면 제가 곽 주임님 수술하다가 혹시 순조롭지 않으면 도움 청할 수 있으니까요.”
능연은 매우 이상적인 요구라고 생각했다. 곽종군의 안전과 치료 방면으로 생각하면 세계 정상급 요구이고.
외부에서 의사를 불러오는 것보다 능연이 직접 집도하는 게 더 세심할 거고, 곽종군의 상황도 더 잘 알아서 수술 진행에 더 유리할 것이다. 그러면 수술 후 회복도 더 유리할 것이고.
그리고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외부 의사가 보호막 역할을 해줄 것이다. 완전히 책임질 수 있든 없든, 적어도 기술 서포트와 대량의 정보는 줄 수 있을 테니, 혹시 모를 일이 생겼을 때 최고의 안전 벨브가 될 것이다.
“둘 중 하나라면 가능성이 있지. 하지만 수술 시간은 상대의 요구대로 해야 할 걸.”
적 원사의 대답은 사람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시원스러웠다. 능연 역시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일주일 이내면 좋겠습니다. 늦어도 열흘.”
“그러지.”
적 원사가 다시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공문산이 나약하게 입을 열었다.
“매 사형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펠릭스나 켈렌이 와준다면 필요 없어.”
적 원사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적원사 집 초대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능연이 수술 두 번 할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우르르 인사하고 집에서 나왔다.
나이 많은 사형은 알아서 남아서 뒷정리했고, 공문산은 앞장서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사형들 차 찾아주고 했다.
위가우는 말없이 대부대를 따랐는데,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더 진해져서 주변에 점점 사람이 더 줄어들었다.
“능 선생, 전칠 씨. 차 어디에 두셨습니까?”
“기사 불렀어요.”
공문산이 예의 바르게 묻는 모습에 전칠이 미소 지어 주었다.
“전화 거는 거 못 봤는데요?”
불쑥 내뱉은 막내 사제는 얼굴이 순간 붉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걸 들켰겠다고 생각하며 아차 했다. 그런데 막내 사제가 뭐라고 생각하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의 표정도, 행동도 변하지 않았다.
“전용 호출기가 있어요. 누르기만 하면 바로 기사님께 연락이 가죠.”
“그런 게 다 있어요?”
막내 사제가 놀라는 사이, 롤스로이스가 오는 모습이 보여서 순간 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럼 먼저 가 볼게요.”
전칠이 모두를 향해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일반인 앞에서 롤스로이스를 탈 때 좀 귀엽게 보이면 질투심을 줄일 수 있다고 매너 선생님한테 배운 작은 스킬이었다.
능연은 멋지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저기에서 질투를 가득 모으는 스타일이라 롤스로이스를 타든 말든 어차피 같았다.
온몸에 금테를 두른 롤스로이스는 조용히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저 기생오라비 같은!”
막내 사제는 백라이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힘껏 내뱉었다. 아까부터 표정이 이상하던 위가우를 포함해서 아무도 그 말에 동조하지 않고 말이 없었다.
이제 겨우 클리블랜드 센터 교수, 능연 그리고 매 사형 같은 급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온 데다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능연을 기생오라비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다들 그 정도 염치는 있었다.
그때 막내 사제 뒤에서 으스스한 목소리가 들렸다.
“뽀얗긴 하죠.”
“아, 원……. 아가씨.”
바로 뒤돌아본 막내 사제는 하마터면 사람을 착각할 뻔했다. 사실 적 원사의 생김새는 남자로선 합격선 정도였다. 네모난 얼굴, 큰 이마, 두꺼운 턱, 귓불도 튼실하고, 콧방울도 넓고……. 하지만 손녀가 그런 얼굴이니 아무래도 과유불급이었다. 고추를 너무 많은 훠궈랄까. 손님들이 마지막까지 버티지 못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해서 아름다운 식사 분위기라고는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하지만 햇빛을 못 봐서 하얀 의사들이랑 달라요. 광도 나고, 수분도 충분하고, 조명만 잘 받으면 투명하게 빛나기까지 하죠.”
적 원사 손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조금 전 자기가 한 말을 메모장에 입력하고는 그제야 안도하며 웃어 보였다.
“능 선생은 영감도 주네요. 참 좋다.”
“영감을 준다는 건 저도 동의합니다.”
막내 사제는 제 손에 들린 마츠다 차 키를 내려다보며 새 차 살 때는 반드시 자기 힘으로 고급 세단 계약금은 벌겠다고 다짐했다.
“가서 일이나 하자.”
위가우는 차에 타기 전에 한마디하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보스가 클리블랜드 의사를 초청한다고 했으니, 자료 준비해야지. 괜히 나중에 보자고 했을 때 못 찾아서 허둥대지 않도록, 우리가 몇 년 동안 했던 수술도 정리해두는 게 좋을 거야.”
“맞아. 두 의사 논문도 미리 봐두는 게 좋겠지. 나중에 정리해서 톡에 올려둘게.”
공문산 역시 한마디 덧붙였다.
“예.”
다들 평온했다. 허스키가 집안을 한 시간 뜯어놓은 것보다 업무량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의사 생활 오래 하다 보니 다 적응한 상태였다.
** 추기(鄒忌)의 간언
제나라 재상 중에 추기(鄒忌)라는 사람이 있었다. 키도 크고 인물도 출중했던 추기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나라에서 이름난 미남인 서공(徐公)과 외모를 비교하는 버릇이 있었다. 부인, 첩,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와 서공 중 누가 더 잘생겼소.” 하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어찌 서공이 당신과 비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훨씬 준수하죠.”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서공이 추기의 집을 찾아왔다. 절세미남인 서공을 본 추기는 자신이 그보다 못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아내가 나를 더 준수하다고 한 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첩이 나를 추켜세우는 것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며, 손님이 내가 더 잘 생겼다고 한 것은 나에게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구나.”
그 이후로 추기는 곧바로 제위왕에게 달려가 이렇게 간언했다.
“모든 사람들이 제가 서공보다 준수하다고 얘기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나라는 땅이 천 리나 되고 성곽이 120개나 되는 대국입니다. 후궁들은 왕을 사랑하고, 조정의 대신들은 왕에게 잘 보이려고만 하기 때문에 왕께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추기의 충언을 들은 제위왕은 곧바로 “오늘부터 직접 과인의 과오를 지적하는 자는 ‘상급의 상’을 받을 수 있고, 글을 올려서 과인의 과오에 대해 직간하는 자는 ‘중급의 상’을 받을 것이며, 길거리에서 과인의 과오에 비판을 하는 자는 ‘하급의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조서를 반포했다.
그러자 갑자기 왕궁의 정문에 진언을 하려는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그런 행렬은 수개월 동안 이어졌고, 그 간언은 제위왕이 나라를 잘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능연은 롤스로이스 안에서 눈을 감고 쉬면서 전칠이 조잘조잘 요즘에 있었던 일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었다.
그는 롤스로이스의 조용한 실내, 편안한 시트 촉감을 매우 좋아했다. 차에 있으면 물 안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귓가의 소음이 편안했다.
전칠도 지금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한 손으로 능연의 손을 잡고 있었다.
집안에도 차만 타면 자거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유형이 많아서 진작 이런 분위기에 익숙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참 재잘대던 전칠은 곧 병원에 도착할 때쯤 물었다.
“능 선생, 무슨 생각해요?”
“곽 주임님 심장 구조 복기하고 있었어요.”
‘가상인간 스캔’을 포함해서 해야 할 검사는 다 끝낸 상태였다. 이제 능연은 가상인간 사용 시간만 조금 할애하면 언제 어느 때든 꺼내 분석할 수 있었다.
전칠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이제 곽 주임님 운에 달렸어요.”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문제없을 거예요.”
“수술 중에 생길 수 있는 의외의 상황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리스크가 없다고 보장할 순 없죠.”
능연도 진작 비슷한 문제를 고려해 보았었다. 그래서 리스크를 줄이려고 클리브랜드 전문가까지 초청할 생각을 한 것이고.
아무튼, 이 정도면 능연으로서는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한 셈이었다. 능연도 조금 허탈해하며 간 내 담관 결석이었다면 더 자신 있을 테니 좋았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천 건 가까운 수술 경험은 장난이 아니니까. 그에 반해 우회술 경험은 너무 적고.
그 생각에 능연은 전칠을 바라봤다.
“수술하러 가야겠어요.”
“응? 오늘도요? 좀 쉬어야죠. 적 원사 팀도 오늘은 쉬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해야죠. 남은 병상도 얼마 없을 텐데, 내일 수술 배정하면 수술 별로 못 받아요.”
능연의 매우 논리적인 말에 전칠도 일리 있다고 생각하며 바로 응원했다.
“그럼 어서 가봐요. 아, 내일 운리에서 회의 하나 소집해서 적 원사님 모셔갈게요. 팀원을 다 불러갈 수 없겠지만, 화력을 분산시킬 순 있을 거예요.”
“그것도 좋죠.”
능연도 전혀 마다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
“잠시만요, 그럼 회의 제목 하나 찾아서 줄게요. 적 원사님이 끌릴 만한 거로.”
“좋아요, 좋아요.”
전칠은 바로 루이비통 노트를 꺼내며 능연에겐 몽블랑을 건네며 그와 함께 차에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는 병원 지하 주차장에서 작은 기척도 내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서 있었다.
“왜 북경 병원 슬리퍼가 우리 병원 거보다 편한 거 같지.”
연문빈은 껍질이라도 벗길 기세로 힘껏 힘을 주어 슬리퍼로 바닥을 문질렀다.
“우린 깨끗이 빨아 신어서 그런가?”
능연 같은 대빵 앞에선 당연히 공손한 공문산도 다른 사람 속 긁는 기술은 훌륭한 편이었다. 연문빈은 히죽 웃고는 무시하는 표정이 가득한 공문산을 힐끔 바라봤다.
“관찰력이랑 판단력, 모두 좀 문제 있는 거 아니세요?”
“인신공격입니까?”
공문산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아무리 네가 돈을 더 잘 벌고, 족발 가게도 규모가 크고, 몸도 건장하고, 젊은 나이에 출세했고, 실력 있는 팀장 밑에 있어서 나보다 잘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 무시하는 건 아니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좌자전도 순간 울컥해서 바로 나서서 껄껄 웃으며 끼어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우리 슬리퍼랑 달리 여기 슬리퍼가 분명 더 편하긴 하네요. 하지만 공 선생님, 한 가지는 틀리셨습니다.”
“뭐죠?”
공문산도 싸우고 싶진 않아서 마음을 다스렸다.
“우리도 슬리퍼 잘 세탁합니다. 병원 감염 관리 면에서는 우리 병원 원감과는 능 선생을 제일 무서워하거든요.”
좌자전은 작은 농담을 하며 자기도 웃어 보였다. 공문산도 피식 웃자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수술 보러 가십니까?”
“그래야지 어쩝니까. 수술을 다 가져가서 우린 보기만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좌자전이 새삼 인사하듯 묻자 공문산이 허탈한 듯 대답했다. 위가우야 여전히 수술이 있지만, 공문산 같은 약체 주치의는 원래도 평범한 수술량이라 환자 경쟁이 치열해지면 당연히 수술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너무 익숙한 좌자전도 싱긋 웃어 보이며 동정심 하나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수술 보는 것도 실력 향상에 도움 되니까 손해 볼 건 없죠.”
“이번 달엔 보너스가 몇천 위안이나 줄게 생겼습니다. 어, 곽 주임님 또 오셨네”
공문산이 꿍얼거리다가 힐끔 옆을 보고는 하는 말에 좌자전, 연문빈 모두 경계했다. 하지만 두리번거리는 대신 모두 할 일에 집중했다.
곽 주임은 지금 ‘나 곽 주임은 없는 셈 쳐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곽 주임은 사람 혼낼 때 매우 사나운 사람이었다. 특히 사람을 사납게 혼낼 때는 더더욱.
곽 주임은 욕 기술 수십 년 경험으로, 학회에서 초면인 낯선 의사도 상대가 인생에 대해 회의감이 들 정도로 욕을 하고, 그 욕 먹은 의사가 결국 자기 부하한테 화풀이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평소에 자기 식구 욕할 때는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 부하들이 다 그만두면 외로워질 것이고, 일할 사람이 없어서 학회에 갈 시간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엔 그런 것 따지지 않고 불벼락을 뿜어댔고, 불벼락 뿜는 시간이 짧다고 강도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사적인 경험을 총결해서 빠르게 이런 결론을 얻어냈다.
곽 주임을 모른 척하면 화를 면할 수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좌자전 등은 서로 빠르게 살피고 혼날 만한 일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그냥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벌거숭이 왕이군.”
“더 크게 이야기하시죠, 왜.”
공문산이 실실 웃으며 하는 말에 연문빈이 공문산을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더 크게 이야기하셔도 우린 못 들은 척할게요.”
“그리곤 바로 돌아서서 가시면 됩니다.”
좌자전도 계획의 일부분을 보충해주었다. 한 방 먹은 공문산도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고 오히려 껄껄 웃었다.
“됐습니다. 여러분도 참 힘들겠네요. 이런 주임님 모시는 거 쉽지 않잖아요.”
“모시기 쉬운 주임도 있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좌자전이 경험자의 말투로 하는 말에 공문산은 마음에 와닿은 표정을 지었다. 좌자전은 혁명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는 듯 곽종군이 사라진 방향을 힐끔 보고는 덧붙였다.
“난 가서 잠시 눈붙이려고. 이제 누구 차례지?”
“저요. 제가 보고 있을게요.”
연문빈이 하품하며 하는 말에 공문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곽 주임님을…… 지켜본다고? 자기 주임을 돌아가며 지켜본단 말입니까?”
“여기선 안 그래요?”
좌자전 역시 놀라서 묻고는 의아하고 실망한 표정으로 공문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리고 그리던 더블베드가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공문산은 어리둥절하다가 좌자전이 멀리 사라진 후에야 겨우 의문 가득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주임을 몰래 지켜본다고요?”
연문빈이 당연히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공문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음, 좌 선생님은 경험이 풍부하니까, 정말로 비결을 슬쩍 흘려준 걸 수도 있겠네. 그래, 곽종군 같이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도 다 길들이는 좌 선생님이니까.”
공문산은 그 생각에 다시 연문빈에게 물었다.
“그럼 24시간 지켜봅니까? 아니면 병원에서만?”
“실시간 체크가 가능하겠어요? 다들 할 일도 있는데. 그리고 너무 깊게 생각할 거 없어요, 좌 선생님도 그냥 하는 소리였으니까.”
“내가 따라 할까 봐 그렇게 말하는 거죠?”
공문산이 웃으며 하는 말에 연문빈은 눈이 찢어질세라 부릅떴다. 공문산은 정답을 맞췄다고 생각하며 껄껄 웃고는 손가락질했다.
“운화 사람들은 이런 짓 하는구나.”
공문산은 싱글벙글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에 미친 듯이 메시지를 입력했다. 능팀에서 좌자전의 ‘권세’를 실감한 후, 공문산은 자신의 직업 인생에 새로운 생각과 방향이 생겼다.
적 원사님을 마크하면 앞으로 팀원들이 편해질지도 모르잖아!
곽종군은 부모도 모른 척할 무정한 발걸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사실 정말로 부모도 모른 척해야 할 상태여서 일부러 가장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 돼지 잡을 눈빛을 쏘아줄 태세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없는 셈 쳐라’ 지령을 받은 사람들은 능연을 포함해서 정말로 모두 곽종군을 없는 존재로 쳤다. 그리고 다른 의료진은 곽종군이든 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능연이 미친 듯이 수술을 하는 상황이라 주변 사람들도 압박이 커서 누가 수술을 보는지 같은 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차피 북경에서 할 일도 없는 곽종군은 매우 흡족해하며 아침부터 능연의 수술을 따라다니며 보고 있었다.
처음엔 사실 적응되지 않았었다. 그는 응급실 생활이 익숙하고 좋아서 수술 몇 건 연달아 보는 건 그래도 괜찮지만, 너무 많아지니 좀 지겨워졌다.
하지만 능연의 수술은 정말로 볼 만한데다가 안정적인 성공률이 있어서 곽종군도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다.
순조로운 수술 한 건, 두 건, 그렇게 성공한 수술 열 몇 건이 모이는 동안, 말로 설명하지 못할 조마조마한 마음도 차츰 평온해졌다.
절개. 박리. 봉합.
심장 수술을 할 줄 모르는 곽종군도 능연을 따라 여러 수술을 본 다음 갑자기 자기가 우회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능 선생님.”
곽종군 곁에 서 있던 어린 간호사가 잠시 수술이 멈춘 타이밍에 능연을 불렀다. 곽종군이 고개를 돌렸더니, 역시 수술 여러 건 구경한 간호사인지 낯이 좀 익었다.
“음. 무슨 일이죠?”
“어, 선생님이 모레 집도 예정인 우회술 받아야 하는 친척이 있는데요, 저희 가족이 선생님 식사 대접 하고 싶다고 해서요. 괜찮으시겠어요?”
어린 간호사는 나지막이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덧붙였다.
“거절하시는 거 저도 아는데요, 가족이 너무 고집을 부려서…….”
그녀의 말이 끝나자 곁에 있던 간호사도 얼른 덧붙였다.
“곡 간호사네 집안, 안휘 명문가지? 청나라 때 휘상(徽商: 명, 청 시대 안휘성 휘주부 지역의 상인, 상인 집단의 총칭) 유명 식당에서 주방장이셨다고, 그지?”
(안휘 요리 : 중국 팔대 요리의 하나. 중국 중부에 위치한 안휘성은 바다에 접해 있지 않고 산과 강이 많아 산나물, 버섯, 민물고기 등 식재를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요리사셨어. 하지만 쏘가리 요리는 정말 끝내줘요. 증조할아버지가 전수하신 건데, 할아버지가 정말 잘 만드세요. 직접 요리하고 싶다고…….”
“누구 한 사람 초대해도 되나요?”
“그럼요!”
능연이 묻는 말에 곡 간호사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점심으로 하죠. 전칠 씨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능연은 지능형 개인 비서의 호칭 따위를 부를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여원이 능연의 핸드폰을 꺼내 비번을 입력해서 전화를 걸었다.
곡 간호사 역시 서둘러 준비할 수 있도록 가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곽종군은 자기가 계속 ‘나 없는 셈 쳐라’ 모드에 계속 있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 망설이며 얼굴을 문질렀다.
곡 간호사의 온 가족은 안휘 요리 식당을 운영했다. 여기서 온 가족이란 통틀어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온 가족이 식당을 운영한다는 뜻이었다. 큰아버지는 동성에서, 아버지는 서성에서, 고모는 결혼한 다음 올림픽촌 근처에 40평짜리 작은 식당을 열었고,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4, 50평짜리 옛 가게를 포함하면, 각지에 퍼져 있어서 그렇지, 거의 200평 규모의 식당이었다.
능연은 시간보다 일찍 곡 간호사의 할아버지 가게에 도착했다.
<곡씨 쏘가리-정통 안휘 요리 전문점>
능연은 입구에 잠시 서서 작은 간판을 바라보고는 이대로 들어가기 아쉬운 듯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나왔더니, 양기 가득한 건강한 사람을 보는 게 좋았다.
물론 굳이 고르라고 하면 병원에 처박혀 있는 시간을 선택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진료소에서 자라서 병원에 있는 게 괴롭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가끔 이렇게 나와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운화에서 북경으로 오는 것보다 병원에서 식당으로 가는 것이 환경적으로 오히려 더 여행 느낌이 났다.
“능 선생님 어서 들어가서 앉으세요.”
미리 와서 준비 중이던 곡 간호사가 능연을 보자마자 바로 나와서 인사했다.
“잠깐 밖에 좀 있을게요.”
능연은 바로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곡 간호사는 능연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고, 능연 곁으로 가고 싶은데 어색해서 그러지는 못하고 수줍은 듯 웃어 보였다.
“그럼 안에서 기다릴게요. 식사 준비 다 되어 있어요.”
“너무 복잡하게 차리지 마세요. 빨리 먹을 수 있게.”
능연의 두 가지 요구에 곡 간호사는 재빨리 대답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간 후에 살짝 후회했다.
좀 뻔뻔하게 밖에 있을걸. 능 선생님이랑 나란히 서 있을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닌데. 특히 길에 서 있으면 다른 건 몰라도 주변 이웃 아주머니들이 별별 난쟁이 똥자루를 들이대지 않게 내가 평소에 어떤 남자들을 접촉하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을 텐데.
“이 능 선생이라는 분, 가까이에서 보니 더 잘생겼구나. 의사 같지 않아. 정말로 너희 병원 최고 의사시냐?”
할아버지 곡홍진 씨는 주방장을 했던 사람이라 언제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서 밖으로 마중 나가지는 않았다.
“그럼요. 당연하죠.”
곡 간호사도 이럴 때 조금도 주저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아서 바로 대답했다.
“적 원사님이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원사님은 벌써 일흔 넘어서 수술 집도량이 많이 줄고 손도 아무래도 둔해졌죠. 게다가 큰아버지 증상이 난치병도 아니라 그냥 표준적인 우회술이거든요. 능 선생님이 요즘 하루에 10건도 하는 수술이에요. 그게 어떤 건지 아세요?”
“어떤 건데?”
곡홍진이 호응하며 되물었다. 자기만 같은 의문을 품은 게 아니고 집안 다른 사람 모두 들어야 할 이야기였다.
큰아버지 자식을 포함해서 친척 몇 명도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여러분이 매일 10 테이블 요리 준비하는 거나 같아요. 게다가 모두 저녁 타임이라고요.”
“오!”
“정말?”
“힘들어서 죽을 텐데?”
매우 명확한 예를 들어주자, 곡가 사람들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
“정말이에요.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고요. 그러니까 평범한 의사들은 주에 열 건, 스무 건 정도만 하죠. 요리사들이 하루에 한두 테이블 요리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에요. 서른 건 수술하는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9, 10시까지 야근하다가 퇴근해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밥을 꽉 채워서 요리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10 테이블 요리를 해내는 주방장도 없지.”
곁에 있던 고모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능 선생님이 전국 최고라는 거예요. 국내에 능 선생님 하나뿐이에요.”
“그 너희 병원 매 선생님은 어떠냐?”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화제에 관심이 많았다. 곡 간호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비교할 만한 자료가 없어서 그건 저도 뭐라고 말할 수 없네요.”
“그래도 전국 2등, 3등은 되겠지.”
간호사의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적어도요.”
곡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매 선생님은 지금 외국에 계시고, 능 선생님도 기껏해야 최근에나 북경에 있어요. 게다가 요즘 연달아 며칠 동안 수술하고 있고요. 거의 병원에서 나가지도 않아요. 지난번에 나간 것도 적 원사님이 집으로 초대해서 간 거였고요.”
“그래 알았다! 네가 망신살 일은 없도록 하마!”
곡홍진이 숨을 크게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휘 요리는 방대하고 정교함이 깊지만, 다른 건 몰라도 쏘가리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절대로 안 진다.”
“그렇죠.”
“그건 분명 문제없죠.”
“아버지 지난겨울에 세 통 절이셨죠? 아무거나 꺼내도 웬만한 사람은 둘이 먹고 하나 죽어도 모를 겁니다.”
할아버지의 삭힌 쏘가리엔 곡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만했다. 각종 절임 음식 중에 쏘가리 역시 디테일이 중요한 음식이었고, 물 없이 절이면 물로 절인 것보다 식감이 좋고, 겨울 절임이 봄가을보다 예쁘게 만들어진다. 18개월짜리 쏘가리가 10개월 쏘가리보다 더 맛이 좋은 데다가 고춧가루, 생선을 담는 통, 뒤집어 주는 빈도와 수법 모두 까다로워서,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 아니면 기껏해야 80% 흉내나 낼까, 같은 수준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집에서 만들려면 공정이 복잡하고 퀄리티 유지가 힘든 건 둘째치고, 큰 호텔에서도 기성품을 구매하지, 직접 만들려면 첫 번째 순서인 생선 고르기부터 인력, 정신력 소모되어서 유지하기 어렵다.
전문적으로 쏘가리 절이는 업체에서도 원가 문제로 좋은 생선만 골라서 매일 매일 손으로 뒤집고 좋은 재료 쓰기도 어렵다. 사실 사업 유지, 자금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서 심지어 겨울 건식 절임을 하지 않았고, 절임에 쓰는 나무통 등등은 더욱 까다롭게 고르지 못한다.
“그럼 주방에 가서 준비하마.”
할아버지는 이제 정보는 충분해졌다고 생각하며 입구에 서 있는 능연을 바라봤다. 그때, 3인승 볼보가 작은 가게 앞에 섰다.
단순한 블랙 & 화이트 알마니 수타를 입은 전칠이 직접 문을 열고 내려서 가볍고 생기 넘치는 걸음으로 능연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렸죠?”
기분 좋게 능연의 팔짱을 끼고 거절당하지 않은 전칠은 순간 환하게 웃어 보였다.
“별로요.”
능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전칠은 기분이 더 좋아져서 고개를 들어 곡씨네 작은 가게를 바라봤더니 촌스러운 인테리어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칠 씨.”
곡 간호사가 다시 밖으로 나와 웃는 얼굴로 소개했다.
“저희 할아버지가 30년째 운영하시는 가게예요. 인테리어는 바꾼 적 없지만, 매일매일 청소하고 청결을 유지해요.”
“30년 동안 인테리어 바꾸지 않은 가게라니, 느낌 있네요”
전칠이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곡 간호사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잘 모르지만, 이런저런 가게를 다녀보고는 할아버지의 작은 가게로 능연을 접대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칠이 인정해주니 더 자신감이 생겼고.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고, 능연과 전칠이 안으로 들어간 다음 곡 간호사는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
곡홍진은 주방에서 18반무예를 동원해서 열심히 조리하기 시작했다.
안휘 요리는 중국 8대 요리 중 한 계열인데 지금은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휘주 상단을 따라 흥했고, 휘주 상단의 지위가 떨어짐에 따라 존재감도 쉴 새 없이 줄어들었다.
곡홍진이 젊을 때는 전문 안휘 요리집에서 국자를 잡았지만, 식당이 문을 닫은 후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솜씨가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특히 가장 자신 있는 쏘가리를 요리할 방법은 무수히 가지고 있었다.
곡가 사람들은 아직 요리가 나오지 않은 틈을 타서 인사를 나누다가 수술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특히 큰아버지 자식들은 긴장한 얼굴로 능연을 바라봤다.
“그려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능연은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했다. 수술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아무리 수술 전 면담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해도 환자 보호자를 상대하는 요령이 생겼다.
이야기로 하는 것보다 스케치 기술을 활용하는 게 설득력이 더 있었다.
여원은 큰 가방에서 재빨리 화이트보드와 종이를 꺼내 제자리에 놓았다. 곡가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여원의 존재에 의아해하기도 전에, 능연이 슥슥 비대한 심장 그림을 그려냈다.
“곡 선생님 심장은 지금 이런 상태입니다. 음, 아마도 어제 9시쯤 좌우 형태일 겁니다. 이걸로 예를 들죠.”
능연은 완전히 사실화된 심장을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곡가 사람들은 순간 놀라움에 빠졌다. 10%는 능연이 설명하는 내용, 그리고 90%가 능연의 그림 솜씨 때문이었다.
일반인에게 현장에서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감각적 자극은 뭐라고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비법으로 만든 삭힌 쏘가리입니다.”
곡가 노인이 직접 삭힌 쏘가리를 식탁에 올렸다. 다른 요리도 같이 했지만, 메인 요리는 삭힌 쏘가리였고, 간장, 홍소, 매운맛 세 가지로 만들었다.
“나는 건염으로 쏘가리를 삭힙니다. 습염보다 더 맛이 풍부하고 식감도 더 야들해요. 능 선생, 한 번 드셔 보세요.”
능연은 펜을 거두고 화이트보드 위 종이를 꺼내곤 잠시 생각하다가 곁에 있는 곡가 사람에게 넘겼다.
“기본적인 수술 스텝, 방안 모두 여기 있습니다. 다른 의사에게 보이고 물어보시면 상세하게 설명해 줄 겁니다.”
“예, 예.”
곡가 사람들이야 당연히 수술 내용을 모르지만, 능연이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했으니 알아듣는 데 별문제 없었다. 게다가 그들에겐 능연의 태도가 더 중요했다. 집도의가 자신 넘치는 데다가 상세하게 설명도 해주니 벌써 기분이 편안했다.
곡 간호사는 더욱 편안해져서 면도 선다는 생각에 재빨리 능연과 전칠에게 그릇을 건네고 차 준비도 했다.
능연은 체면 차리지 않고 생선 배 쪽을 집어 입에 넣었다. 살며시 찌푸리던 얼굴로 곧 다시 펴졌다. 곡홍진의 표정도 같이 풀렸다. 삭힌 쏘가리 요리를 해오면서 손님이 코를 찡그리며 맛도 보려 들지 않는 게 제일 두려웠다. 보통 한 입만 먹어보면 이 삭힌 냄새를 좋아하게 되니 말이다.
“야들야들하네요.”
능연이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었다. 정말로 맛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원래 음식은 정성이라는 주의의 성격이었고, 어릴 때 부친 능결죽 씨가 대충 만드는 조악한 밥을 자주 먹긴 했어도, 시간과 정성이 잔뜩 들어가는 삭힌 쏘가리 같은 음식, 그리고 정성 들여 조리한 음식엔 언제나 지대한 호감을 표현하곤 했다.
게다가 삭힌 쏘가리가 처음은 아니어서 삭힌 냄새의 한계를 넘은 이후 유심히 비교해 본 결과, 오늘의 삭힌 쏘가리는 그동안 먹어본 것 중에 과연 최고였다.
삭힌 냄새도 취두부 냄새와 마찬가지로 역한 느낌보다는 야들야들한 식감이 오히려 부각되었다.
전칠 역시 활짝 웃어 보였다.
“정말 쫄깃쫄깃하고 야들야들하네요. 20일은 절였겠네요. 겨울이라 온도도 잘 제어했고. 정말 공들여서 만드셨네요.”
전칠이 이렇게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일 줄 몰랐던 곡홍진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전철 씨가 요점을 말씀해 주셨네요. 삭힌 쏘가리 만들기 어려운 점이 바로 살을 야들야들하게 하면서 쫄깃쫄깃하게 하는 겁니다. 숙성 스테이크랑 비슷하죠.”
“아? 그래요? 어째서죠?”
능연은 다시 한 조각 집어 올려 입에 넣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삭힌 쏘가리와 숙성 스테이크 모두 적당한 온도에서 미생물 발효를 거치는 방식입니다. 음식에 풍부한 맛과 식감이 생기거든요. 서양인이 야들야들한 고기를 먹기 위해 고기를 냄새가 날 때까지 방치해서 중국 유학생들이 보기만 해도 얼굴을 찌푸린다잖아요. 반대로 서양인은 우리 삭힌 쏘가리 냄새 맡으면 얼굴 찌푸리거든요.”
“그래도 먹을 사람은 먹죠.”
딸이 웃으며 하는 말에 곡홍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숙성 고기의 관건은 고기를 어떻게 야들야들하게 하냐에 있지. 천금으로도 살 수 없는 기술이야. 게다가 부패해서 변질하기 전까지는 숙성을 길게 하면 할수록 좋지. 시장에서 건식 숙성된 소고기 가격은 습식 숙성 가격보다 서너 배는 되거든. 우리 쏘가리도 건염, 습염으로 구분하고 봄가을에 습염으로 만들면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겨울엔 건염으로 하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리고. 전칠 씨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잘 알고 계시는 거야.”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라는 그림이 바로 배 가른 소를 지하 창고에 걸고 숙성하는 그림이죠.”
“서양인의 건식 숙성법은 고기 30%는 버려야 해서 너무 낭비랍니다. 우리가 그랬다가는 사치스럽기 짝이 없다고 욕먹지요.”
곡홍진은 점점 흥이 나서 자기네 장점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우리 삭힌 쏘가리는 다릅니다. 버리는 부분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계절 제한을 많이 받죠. 서양인은 고기 절일 때처럼 전문 숙성실, 항온항습 이런 거 다 갖추지만 다 소용없습니다. 국내 삭힌 쏘가리는 검염, 습염 가격 차이를 줄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소비자, 아니 호텔 식당에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죠. 오히려 어느 계절이든 습염으로 하는 삭힌 쏘가리 메이커도 있습니다.”
“시간도 돈도 절약되니까요.”
“그렇죠. 우리처럼 겨울에 건염하는 데다가 건염으로만 만드는 식당은 점점 줄어요. 가게를 작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생선 사놓고 절여 놓는 시간이 일 년은 걸리니까요. 일 년 동안 돈이 안 도니 결국 많이 사놓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
곡홍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큰아들 놈이 자꾸 크게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얼마 전부터 습염도 시작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이제는 수술까지 하게 되어서……. 수술 끝나고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을 너무 심하게 하면 안 됩니다. 무거운 것도 들면 안 되고, 작업 시간도 너무 길면 안 됩니다.”
능연이 하는 말에 곡홍진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사서 일하고 관리만 하면 10년도 문제없습니다.”
능연의 한마디에 곡가 사람들의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관리만 하는 것도 괜찮지.”
“그럼 노는 것보다야 일만 할 수 있다면 좋지.”
“10년 더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하고도 비슷하지 뭐.”
곡가 사람들은 속닥속닥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능연의 의사를 확인하는 듯 그를 힐끔 바라봤다.
곡 간호사가 있어서 이미 상황을 파악한 곡가 사람들은 큰아버지 예후에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능연의 대답은 이미 그들이 상상한 최고의 예후보다 더 좋았다.
“자자, 드세요, 드세요.”
곡홍진은 다시 기뻐하며 식사하라고 재촉했다. 능연은 웃어 보이고는 체면 차리지 않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렇게 몇 조각 연달아 먹은 능연은 함께 쓰는 젓가락으로 아직 건드리지 않은 생선에서 크게 한 조각 집어 자신만만하게 전칠에게 내밀었다.
“내 판단으로는 이 부위 맛이 제일 좋을 거예요. 검증해 보세요.”
전칠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가시를 빼고 생선을 입에 넣고는 저도 모르게 능연의 팔을 잡고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요.”
능연 역시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칠은 살며시 팔을 흔들며 행복하고 흡족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잘생긴 것도 그렇지만, 능연의 정확한 판단력이 너무 좋았다.
“이게 바로 삭힌 쏘가리 명인의 적장자의 심장이구나.”
받침대 세 개로 탄탄하게 고정된 삼각형 위에 선 여원은 또렷한 수술 시야를 들여다보고는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능연은 그녀가 사진 찍기를 기다렸다 고개를 끄덕였다.
“비교적 전형적인 허혈성 심장 질환입니다. 책에 참고자료로 쓸 만해요.”
여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메라에 찍힌 사진이 문제없는 걸 확인한 후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생선을 먹어도 동맥 경화는 온다는 뜻이지.”
“생선 집 작은 주인이잖아. 생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지 생선 먹는 게 안 좋은 게 아니야.”
곡가에서 밥을 얻어먹지 못한 연문빈은 불만이 가득했다. 평범한 삭힌 쏘가리라면 특별할 것도 없지만, 전칠 아가씨가 감정하고 ‘맛있다’고 평가한 삭힌 쏘가리라니, 역시 먹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전가 요식업 그룹 어쩌고에서 사들이기 전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그 생각에 연문빈은 갑자기 진저리를 쳤다. 전가 요식업 그룹에서 내 족발집을 사들이면 어쩌지?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살 생각 있었으면 진작 샀겠지 싶었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다시 진저리를 쳤다.
왜 내 족발집을 안 사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체면 때문에? 가격?
받침대에서 폴짝 내려온 여원은 터덜터덜 직접 받침대를 들고 구석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연문빈이 파르르 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연문빈, 어디 안 좋아? 몸 안 좋으면 그냥 일찍 가서 쉬지그래?”
북경에 있으니 수술 기회가 더 줄어든 여원은 할 일이라곤 사진 찍는 것밖에 없는데 이런 연문빈의 모습을 보니 더 화가 났다.
연문빈의 수술 재능이 그녀보다 좋으니 아무래도 기회가 더 많았다. 물론 운화병원 의사들 대부분이 여원보다 수술 재능이 뛰어났다.
연문빈은 흥흥거리며 전씨 가족의 구매 문제에서 빠져나와 단호하게 대답했다.
“몸상태 매우 좋거든? 쉴 필요 없어.”
“그런데 왜 파르르 떨어.”
여원은 그렇게 말하다가 저절로 고개를 저었다.
“또 가슴 키우러 갔냐? 으, 징그러워.”
“징그럽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연문빈은 어제 가슴 트레이닝은 안 했지만, 화가 나서 가슴 근육이 불끈거렸다.
“남자가 가슴을 이렇게 키워서 뭐 하냐. 이러다가 심근 경색이라도 생기면 의사가 가슴 열기도 얼마나 힘들겠어. 능 선생한테 한번 물어봐라.”
여원이 입을 삐죽이며 하는 말에 고개를 든 능연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 선생님 가슴 열 일 있으면 가슴 근육 때문에 힘들긴 할 거예요.”
“그렇지? 그것 봐봐.”
여원이 팔을 허리춤에 대고 낄낄 웃자, 연문빈이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가슴 큰 게 잘못이야?”
“남자가 가슴 크면 대머리 될 가능성 크대요.”
오늘 수술에 들어온 왕가가 자연스럽게 연문빈에게 한마디 했다. 연문빈이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의사들이 벌써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렇게 웃고, 긁고, 대화하는 사이 우회술도 거의 끝나갔다. 구석에 서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척하던 곽종군도 하품하며 지켜봤다.
수술은 운전과 비슷해서 배우기 전까지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지만, 정말로 할 줄 알게 되면 피로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같은 수술, 같은 흐름, 보는 건 둘째치고 하는 사람도 무료해지기 마련이다.
곽종군은 초반엔 그래도 진지하게 봤지만, 오늘까지 스물 몇 건이나 수술을 보다 보니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제 능연이 수술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하는지도 깨달았다.
운화병원에 있을 때도 능연 수술의 안정성이 높은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데이터와 리포트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가끔 능연의 수술도 보지만, 평균 주에 한 번만 봐도 다른 의사의 10배는 될 정도로 굉장히 높은 빈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인 숫자 데이터, 리포트도 감성적 인지를 이길 수 없었다.
연달아 능연의 수술을 여러 건 지켜보고, 가장 처음에 한 환자의 예후까지 확인하고 나니, 아무리 곽종군이라고 해도 능연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단순히 의술이 뛰어난 문제가 아니었다. 의술이 뛰어난 의사는 많다. 하지만 의사는 대부분 기복이라는 게 있다.
능연처럼 이렇게 모든 수술을 비슷비슷하게 평온하게 하는 걸 보면, 곽종군도 환자 상태가 다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묘한 혼란에 3초 정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게 가장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남자가 쓰레기 주우러 나갈 때, 어느 날 500위안을 줍게 되면 대단한 능력자라서 와이프도 격려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 500위안을 주워오면 이제 500위안 문제가 아니라, 와이프는 이놈, 밖에 돈 숨긴 게 분명하다고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다.
“능연, 다른 일 없으면 내일 운화로 돌아가자.”
곽종군이 부존재 상태를 스스로 해제하며 하는 말에 능연은 잠시 주저했다.
“아직 빈 침상이 열 개 정도 있을 텐데요.”
병상은 유동적이라 들어오고 나가고, 병상 열 개 채우는 것은 꽤 귀한 기회였다. 그것도 적 원사 사단이 그만한 능력이 있어서 그만한 환자를 모으는 것이고. 뭐, 거의 다 차가지만.
곽종군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뭐 아깝다고 그래. 운화병원 병상이 텅 비어 있는데. 가면 다 자네 거야.”
연수의들이 많아서 간단한 수술로 병상을 꽉 채울 수 있으니, 사실 운화병원 병상이 정말로 비어 있을 리는 없었다.
능연의 수술 스케줄을 터치하지 않는 곽종군이 두 번이나 돌아가자고 제안하자, 능연은 저절로 안 좋은 생각이 들어서 곽종군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왜 그러세요. 심장이 안 좋으세요?”
“아니, 멀쩡해. 아직 버틸 수 있어.”
능연이 오해했음을 깨달은 곽종군은 바로 대답했다.
“그럼 며칠 더 있다가 하죠. 클리블랜드에서 의사가 온 다음에 수술하면 좀 더 안전합니다.”
“자네 수술 안정성은 이미 충분하네.”
“저도 알아요.”
능연은 곽종군이 웃으며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험 하나 더 해둘 필요는 있죠.”
다른 의사였다면 그 자리에 있는 의사 모두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능연이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당연하게도 느껴졌다.
곽종군은 그에 조금 혹해서 웃어 보였다.
“그래, 그 사람들 기다리는 건 찬성이지. 다른 건 몰라도 새로운 방식, 새로운 사고가 있을 테니까. 다들 안목을 키울 필요도 있고. 하지만 돌아가자고 하는 건 행정 때문이야.”
“행정이요?”
“만일…… 만일 말이야, 갑자기 내가 죽게 되면, 병원에서 진정한 타이틀이 없으면 자네가 곤란해져. 알지?”
곽종군은 잠시 기다리다가 능연과 표정이 심각해진 여원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응급센터에 사실 주임 두엇 더 둬도 되는데 줄곧 그러지 않았어. 자네의 파격 대우가 심하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수술하기 전에 확정해 둬야겠네.”
병원, 특히 진료과 내부에서 계급으로 사람 누르는 현상은 지극히 심각하다. 유명 의사라도,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는 이상 상급 의사는 무수한 방법으로 인생에 회의를 가질 만큼 짓누를 수 있다.
무수한 피눈물으로 검증된 훈련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어느 전국 유명 의학 교수가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일이 바로 젊었을 때 병원에서 주임 자리를 맡겼을 때 나이 더 많은 의사한테 양보했다가 상대한테 12년 짓눌린 적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 것처럼.
곽종군은 자기가 없어지면 병원 혹은 응급센터에서 이상한 짓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능연에게 사전에 타이틀을 만들어 주는 게 더 마음이 놓인다고 생각했다.
곽종군의 걱정은 순식간에 수술실 안에 있는 능팀 팀원에게도 전염되었다. 곽종군이 테이블 데스할 일이야 걱정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큰 수술이고 아무리 잘해도 쉴 시간이 필요한데 그 사이에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주임님부터 가시면 될 거 같아요.”
능연은 양보할 뜻 없이 의외의 말을 했다.
“아니 그게…….”
“관직을 얻기 위해 뭐 좀 하라는 말씀이잖아요. 전 그런 거 잘 못 하지만, 주임님이 하시는 건 찬성입니다.”
곽종군은 입을 달싹이다가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아직 응급센터 주임이잖아. 기껏해야 부주임, 혹은 주임밖에 못 줘.”
“예. 그것도 괜찮습니다.”
“흠.”
능연의 성격으로 거절할까 봐 걱정이던 곽종군은 흔쾌하게 대답하는 모습에 오히려 온몸이 뻣뻣해졌다.
“내가 대신 해주다가 지쳐서 원장실에서 쓰러질까 봐 걱정은 안 되고?”
“음. 주임님이 원장실에서 수술실로 가서 수술 준비할 때쯤이면 저도 운화에 도착했을 겁니다. 전씨 가문 헬기가 요 며칠 계속 대기 중이거든요.”
“그래그래.”
곽종운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원장실에서 심근 경색 일어나서 수술실로 가면서도 원장 손 붙들고 놓지 않으면 자네 부주임 자리도 떨어지겠지.”
곽종군은 자기 왼쪽 가슴을 만지며 웃었다. 손오공이 여의봉, 저팔계가 갈퀴, 백룡이 안장을 얻은 것 같은 미소였다.
“정원이고 인가신청이고 나발이고. 우리 능연은 주임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계속 이렇게 이래도 안 된다, 저래도 안 된다, 하면 이건 다른 사람 능력 시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식충이 짓이지!”
곽종군은 얼굴이 회의 테이블에 거의 붙을 정도로 서서 손으로 테이블을 붙잡고 있었다. 원무 회의에 참석한 윗선들은 바퀴벌레를 먹다가 바퀴벌레를 빼내고 싶은데 징그러워서 건들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역시 주 부원장이 목을 가다듬으며 나섰다.
“곽 주임, 좋게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누구 하나 잡을 듯이 이야기할 필요 있어요?”
“내가 뭐가 무서워서요. 심장 수술 받을 사람이, 누가 날 어쩌기라도 할까 봐 무서울까요? 누가 날 어쩔 생각이라면 그 사무실에서 심근경색으로 드러눕죠, 뭐.”
곽종군은 두려울 것 없다고 외치며, 위협에 또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는 늘 그랬다. 예전에도 ‘난 어차피 이제 승진할 필요도 없고’라는 것을 이용했는데, 이제는 심근경색까지 있으니 제어권을 얻은 것마냥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쏟아내며 짜릿해했다.
심장이 은근히 아픈 느낌만 아니면 수술을 조금 더 미뤄서 이 도덕적 전략적 고지를 조금 더 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환자니까, 내가 법이지!
심장 수술을 결정한 이래, 곽종군은 전에 없는 힘을 쥔 기분이었다. 물론 전에도 매우 파워가 있었는데 지금은 더 충분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주고 싶어도 절차대로 해야지. 그냥 줄 수 있어?”
다른 부원장이 그 틈에 끼어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곽 주임, 우리 다 의사 아닌가. 우회술은 이제 발전할 대로 한 수술이야. 위험하긴 해도 죽네 사네 할 수술은 아니라는 거지.”
“죽고 사는 걸 왜 부원장님이 결정합니까? 됐고, 어찌 됐든 다들 뭐라고 하든, 능연의 타이틀은 반드시 내 수술 전에 확정해야 합니다.”
“확정 안 하면? 수술 안 하겠다는 건가?”
부원장이 싸늘하게 묻는 말에 곽종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요. 정말로 확정 안 되면 고분고분 수술받으러 가야죠. 아무런 대책도 남기지 않고, 규정에 안 맞는 건 하나도 하지 않고, 위에서 내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고, 내 설비, 내 응급센터를 어떻게 굴리든 내버려둬야죠!”
“곽 주임, 그런 소리 좀 하지 말고.”
주 원장이 그렇게 말하고는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 방법을 생각해야지. 그럼 되잖아. 안 그래요?”
부원장은 얼굴을 구긴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곽종군을 미친 사람 보듯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한 자는 넋 나간 자가 무섭고, 넋 나간 자는 목숨 거는 사람이 무섭다고, 그는 기껏해야 강한 레벨이지, 곽종군의 경지엔 도저히 닿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원장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차근차근해야지. 곽 주임, 일단 생각을 이야기해 보게. 어떻게 하면 좋겠나?”
곽종군은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원장님이 나서주신다면 떼놓은 당상이죠.”
“그래도 절차는 있어야지.”
원장은 융통성 없이 이야기하긴 해도 결국 뜻은 동의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응급센터에 주임 혹은 부주임 의사 하나 는다고 그들에게 영향이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능연이 그 자리에 오르면 몇 년 만에 그들 모두를 위협할 것이다. 반대로, 병원의 일원으로서 능연 같은 의사가 있는 건 총체적으로 실보다 득이 많아서 과격하게 반대하는 사람 역시 없었다.
몇 마디가 오간 후, 다들 다음 의제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곽종군만 여전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했다.
이런 파격 대우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깃털처럼 많았다. 솔직히 수술해야 하는 것만 아니면 어차피 몇 년만 있으면 능연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자리라서, 곽종군도 이렇게까지 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다릴 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곽종군은 곧장 주 부원장 사무실로 달려갔다. 행정상 절차는 주 부원장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그렇게 사흘 동안, 곽종군은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일은 효율이 중요해서, 누구는 얼마나 오래 매달렸네 어쩌고 하지만, 정말로 결과를 내는 사람은 보통 며칠 만에 결정을 내곤 하는 법이다.
곽종군은 자기가 직접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면서도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진료과 주임이 된 후로 더 올라가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다. 하지만 능연을 위해서 뛰는 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심지어 당연하고, 거기에 비장하기까지 했다.
“난 곧 수술대에 올라야 할 사람이야.”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의사 아닙니까. 수술대 앞에서 수다 떨고, 의사랑 뭐 먹고 싶다 이야기하던 환자가 순식간에 영안실로 가는 일이 얼마나 많냐고요. 심장 수술은 칼 한 번 잘못 놀리면 목숨이 날아가는 수술입니다. 사후 처리를 안 해두고 마음이 놓이겠습니까?”
아무리 잔혹하고 무정한 관리 인사도 곽종군의 ‘유언’에 어느 정도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그렇게 주말까지 진행하다가 능연이 운화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곽종군도 이미 돼지 잡아 놓고, 양도 잡아 놓고, 완자도 빚어놓고, 생선도 절여 놓고, 이제 밥만 지어서 상에 올리면 될 정도로 준비를 끝내 놓았다.
곽종군은 심지어 사람을 거느리고 병원 입구에서 능연을 마중했다.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였고, 또 진료과 다른 사람들에게 능연의 특수성을 증명하려는 의도가 그다음이었다.
응급센터에 원래 있던 주임과 부주임 의사까지 합하면 총 열 명 정도였다. 곽종군이 자리에 오른 다음 새로 뽑은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생각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곽종군은 집에 있던 사람들까지 일부러 불러서 입구에 세웠다.
“능연이 도착하면 이제 나도 입원해서 준비해야지. 수술을 어떻게 할지, 수술 후 얼마나 걸릴지, 지금은 알 수 없지. 아마 몇 달은 걸리겠지? 그동안 다른 건 몰라도 능 팀 일은 다들 잘 서포트 하라고.”
사람들은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죽음을 맞이한 호랑이가 가장 사납듯이,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 큰 호랑이도 비슷하게 사나우니까.
지금 운화병원 전체가 곽종군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후유증이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응급센터 의사들은 당연히 더 그랬다.
“능연이 12시 반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이제 곧 올 거야. 차 막히는지 한 번 물어봐.”
시간이 거의 되자, 곽종군이 고개를 숙여 좌자전에게 지시했다. 좌자전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헬리콥터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병원 앞 공터에 착륙했다.
거센 바람에 능연의 옷자락이 펄럭이고, 그의 머리카락도 파도처럼 흩날렸다.
“쟬 모르는 사람은 톱스타가 강림한 줄 알겠네.”
곽종군이 웃으며 툭 내뱉고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허공에서 휘저었다. 능연은 성큼성큼 뛰어오며 곽 주임을 향해 인사했다.
“몸은 어떠세요? 수술 준비는 끝나셨어요?”
곽종군은 허풍 떨 준비로 가득했었는데 일단 그것부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됐네.”
“그럼 준비하죠. 두 미국 의사 비행기도 곧 떨어질 겁니다. 도착하면 바로 수술할 수 있게 준비해 둬야죠.”
능연은 사방에 있는 주임과 부주임 의사들을 향해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감히 큰 호랑이에게 메스를 대는 사람이니, 존경할 만했다.
“도 주임, 나 수술하러 간다. 진료과 부탁하네.”
곽종군이 도 주임의 손을 잡고 아쉬운 듯 인사했다. 도 주임은 곧 퇴직할 사람이고, 주임 권력 다툼에 제일 관심 없는 사람이라 곽종군이 제일 믿는 사람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어도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가셔. 별일 아닌 건 최대한 내가 처리하고, 어려운 건 다 같이 상의해서 처리할 테니까.”
도 주임 역시 생각 많은 얼굴로 대답했다.
도 주임이 농담하자 곽종군은 농담인 걸 알고 눈을 흘기면서 도 주임의 손을 힘껏 두드리며 희망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도 주임이야 내가 믿지.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하고 어려운 건 나한테 전화하거나 아니면 능연한테 가. 정 안 되면 좌자전하고 이야기해 보고. 다수결 같은 거로 하지 말고.”
늘 하던 대로 하겠다고 이야기던 도 주임은 곽종군의 말에 바로 알아듣고 웃어 보였다.
“응, 알겠네. 능연 서포트 잘해줄게.”
“응. 그러면 돼. 능연은 실력이 괜찮으니까, 그걸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지. 능연이 응급센터에서 자리 잡은 게 얼마나 귀한 일이야. 우리 진료과에도 이득이 많잖아. 안 그래? 반대하는 사람은 분명 의도가 불순하고 쿠데타 일으키려는 야심가야. 차라리 진료과가 분열된대도 그런 놈은 봐주면 안 되지.”
곽종군이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진료과 권력의 균형이 깨질 때 나타나는 가장 강렬한 결과가 바로 진료과 분열이었다.
곽종군이 진료과가 나뉘는 것도 받아들이겠다는 것만 봐도 그의 결심을 알 수 있었다.
도 주임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곽종군의 손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래, 이해했네.”
“뭐 바라는 건 없고?”
곽종군이 물끄러미 도 주임의 눈을 바라봤다. 은퇴를 앞둔 주임 의사 역시 자신의 계산이 있을 테니까. 높은 월급으로 재취직시킬 것이 가장 전형적이고, 몇 년은 사무실을 남겨 둘 것, 심지어 전에 하던 프로젝트 유지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 주임은 눈물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응, 이 손 놔.”
“두 주임, 나 없을 때 신경 잘 써라.”
한 바퀴 돌다가 이제 막 수술실에서 나오는 두 부주임을 찾아낸 곽종군은 또 그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수술하면 언제 깨어날지 몰라. ICU에서 언제 나올지도, 또 침대에선 언제 내려올지도, 아니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내가 없어도 응급센터 업무는 잘 돌아가야 한다고.”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병원에 계시든 요양하시든 제 일은 반드시 지금처럼 똑같이 잘 해내겠습니다.”
두 부주임도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는 곽종군의 논문 왕자로 한 달에 작은 논문 열 개는 쓱쓱 써내는 인물이고, 밑에 괜찮은 수하도 몇몇 데리고 있어서 진료과에서 중책을 맡을 만한 사람이라, 곽종군이 중시하고 자리를 잡아 주려고 하는 상급 의사였다.
곽종군도 그의 태도에 흡족해하며 그의 손을 두드리며 변함없이 슬픈 노선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나 좀 좋아지면 술 한잔 하자. 물론 평생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심장 수술이잖아. 아무리 능연이 한다고 해도 결과가 어떨지 모르니까…….”
“능 선생이 하는 건데 당연히 문제없죠. 북경에서 한 수술도 결과가 매우 좋다더라고요.”
“능연 기술이야 할 말 없지. 내가 막아서 그렇지, 적 원사가 진작에 빼갔을걸. 수술이야 안심하지.”
곽종군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잘 알잖아. 수술이라는 게 의사가 아무리 잘해도 실패할 확률 있다는 거. 그러니까 나는 뒷일도 다 생각해두고 싶은 거지. 수술이 어떻게 되든 우리 운화병원 응급센터 간판은 지금처럼 저 높이 걸려 있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다들 자기 자리 잘 지키고, 응급센터 운영 돕고, 능연이 이 시기를 지날 수 있도록 해줘야지.”
곽종군이 구구절절 하는 말에 두 부주임은 호응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예예, 안심하십시오…….”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 놓이네.”
곽종군은 다시 두 부주임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돌아서서 다른 의사에게 향했다.
응급센터는 근래 몇 년 동안 규모도 꽤 늘어서, 의사 약 백 명 중에 부주임, 주임급 의사, 고 연차 의사, 그리고 인맥과 성격이 비교적 특수한 의사도 있었다.
곽종군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일일이 돌아다니며 한마디씩 나누었다. 곽종군이 그렇게 당부하고 돌아다니자 응급센터 분위기도 차츰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다들 자기도 모르게 안 좋은 연상을 하게 되었다.
곽종군은 여전히 하나씩 붙잡고 한마디씩 했다.
“정배, 너도 이제 곧 주치의지? 열심히 하고, 능연한테 잘 좀 배우고.”
곽종군은 선임 레지던트 정배 곁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찾아오거나 능연한테 가고, 열심히 해.”
곽종군은 다시 당부하고 계속 앞으로 향했다.
“조낙의, 요즘도 와이프 가방 잘 사주냐? 돈은 좀 모았고? 앞으로 능연은 수술에 집중할 일이 많을 거야. 하지만 너희들도 태만하면 안 돼. 대형 응급은 내 대형 응급이 아니라 모두의 대형 응급이라고. 잘 좀 하고. 열심히 하고.”
곽종군은 선임 주치의 조낙의 곁을 지나며 또 한바탕 훈계를 해댔다. 조낙의가 착한 아이 코스프레로 고개를 끄덕이자, 곽종군도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앞으로 향했다.
주 선생이 갑자기 옆에서 나타나더니 고분고분 곽종군의 오른편, 즉 곽종군이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리기 좋은 위치로 가서 섰다.
곽종군은 주 선생을 바라봤다. 주 선생도 곽종군을 바라봤다. 곽종군이 한숨을 내쉬자, 주 선생은 천금을 줘도 바뀌지 않을 탕아의 눈빛을 반짝이며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주 선생아.”
곽종군이 천천히 입을 열자, 주 선생도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했다.
“네, 주임님.”
곽종군은 주 선생이 바라보는 가운데 평소처럼 입을 열었다.
“내가 없을 때 말이다.”
“넵.”
“뱃살 좀 줄이고, 살 좀 빼라.”
곽종군은 주 선생의 배를 두드리며 그를 지나쳤다.
오후.
멀리 클리블랜드에서 온 의사 둘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팀원을 이끌고 운화병원 응급센터 1번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두 사람이 한 팀을 공유하며 비용을 절감했지만, 기세는 대단했다. 외국인 다섯 명 중에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고, 키 큰 사람 작은 사람도 있어서 꽤 외국물 느낌이 났다.
응급센터 의사들뿐만 아니라, 운화병원 의사, 심지어 운화 시 의학계 사람 중 반이 이번 수술을 참관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외국 의사에 대한 관심도가 대대적으로 떨어져서, 유명 병원 유명 의사가 아니면 이렇게 능동적으로 모이지도 않는다. 보통 같은 영역에서나 이목을 끌지, 그다지 주목하지 않게 되는데, 클리블랜드 센터의 서전은 운화 시를 폭발하게 했다.
이건 경비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모여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참관실에 있던 의사들은 클리블랜드 의사가 메스를 드는 순간 참관실이 떠들썩해질 정도로 흥분했다.
그와 동시에, 능연도 곽종군을 수술대에 올렸다.
운리 엔지니어 둘이 2번 수술실에서 라인 연결하는 등 다각도 연합 촬영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점점 바람만 드는 의학 학회를 만족시키기 위해 운리에서 새로 개발한 모드였다. 지금 의사들은 모두 자기를 중심, 세기의 천재라고 생각하며 누가 자기 수술 라이브를 봐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사람이 많이 들어오지 않으면 일단 카메라와 모니터가 부족한 것 아닌가부터 의심하고.
그런 이유로, 운리는 최신 9분할 모드 촬영 시스템에 수시로 그중 한 화면에 진입하여 의사의 기술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투자 개발했다. 하지만 그 효과가 너무 탁월해서, 의사들이 테스트해 본 후로 이 시스템은 출시되자마자 2선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능연은 자기 기술이 드러나는 걸 절대로 회피하지 않고, 9분할 모니터든 초고해상도 영상이든 부적절한 화면이 찍히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굳이 복잡한 걸 따지자면 운리에서 전문 인력을 보내 시스템 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언제나 제약회사 인력을 마음껏 쓰니 별문제 아니었다.
“능연, 이렇게 카메라가 많은데, 긴장되지 않겠나?”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운 곽종군은 살짝 걱정스러워졌다. 수술대가 이렇게 차가워서 뼈까지 시리다는 생각만 들었다.
능연은 몇 시간 전에 찍은 MRI를 들여다보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내 말은, 괜히 이런 부담 늘릴 거 없이 평소처럼 수술하면 된다는 거지.”
곽종군이 다시 강조했다.
“이게 평소 수술입니다.”
능연이 주변 카메라를 훑어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카메라 각도가 다 달라서 수술실 안에 설치하는 게 관리하기 쉽거든요.”
곽종군은 그제야 능연이 수술할 때마다 언제나 관중이 붙고, 쉴 새 없이 능연과 능연의 수술 장면을 찍는다는 걸 떠올렸다. 사실 수술실 안엔 지금도 여전히 핸드폰을 든 ‘관중’이 있었다. 다들 응급센터 내부가 아닌 다른 진료과 또는 보조 진료과 사람이라서 응급센터 순회 간호사들이 웬만해선 그들을 가장 늦게 내쫓았다.
그래서 그녀(그)들은 언제나 완벽한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찍은 영상을 ‘능연 투척 단톡’ 혹은 ‘히아신스 게시판’ 같은 곳에 대방출했다.
곽종군이 흠흠대며 말을 이었다.
“운리 방송 시스템은 좀 특별하니까, 나는 자네가 걱정되어서…….”
“마취했어요? 주임님 기침하시는데?”
능연은 매우 경계하며 소가복에게 물었다. 오늘 마취의는 하나는 메인 작업할 장년 선임 주치의, 마취과 주임 하나, 소가복 한 마리까지 셋이나 있었다. 소가복은 그 때문에 의자를 네 개 받아왔고, 지금은 만족스럽게 옆에 앉아서 미소 지은 채 곽 주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해서 바로 반응 오진 않을 거야. 주임님, 느낌 어떠세요?”
“느낌 없어. 그냥 목 가다듬은 거다.”
“곽 주임, 생각 많이 하지 말고 그냥 착한 환자나 해.”
곽종군이 어이없어하며 하는 말에 마취과 주임도 한마디 했다. 평소 회의할 땐 곽종군이 마취과 주임보다 훨씬 사나워도, 수술실에 들어오면 환자의 심리를 잘 아는 의사가 훨씬 유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소가복도 지금은 곽종군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다리로 의자를 지킬 필요도 없었다. 곽 주임이 수술대 위에 있는데 누가 감히 마취의의 의자를 뺏어간다고.
“나야말로 능연이 생각이 많질 않길 바라는 거지.”
곽종군은 무영등 아래 누워있자니 괴로워져서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능연이 아는 사람 수술한 건 알지만, 심리적 부담을 늘릴 필요가 있냐는 말이야. 카메라가 이렇게 많은데 괴롭지도 않아? 네 행위와 동작을 모두 확대해서 보여주는데?”
“이미 습관 되어서 괜찮습니다.”
능연은 곽 환자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특별히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제가 뭘 하든 다들 모여서 구경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내쫓는다고 최선의 결과가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곽종군은 멍해졌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능연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고 생각했다.
“정 걱정되시면, 제가 아는 사람 수술하는 영상 다시 보셔도 됩니다.”
능연은 평소엔 이렇게까지 하지 않지만, 수술실에서는 최대한 환자 편의를 봐주는 편이었다.
“아는 사람 수술 영상?”
곽종군이 얼떨떨하게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모든 이가 저도 모르게 마연린을 바라봤고, 마연린은 온몸의 구멍 10개에 저절로 경련이 왔다.
“왜, 왜 날 보는 거야.”
본인에게도 안 들릴 목소리였다. 다행히 곽종군이 이미 고개를 돌리며 안 본다고 혀를 찼고, 마연린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졸도할 뻔한 상황에서 벗어나 한숨을 내쉬었다.
“능 선생, 옆 수술 가서 외국 의사하고 인사 좀 나눠야 하지 않겠어?”
좌자전이 한마디 물었다. 클리블랜드 센터 의사가 운화까지 왔는데, 접대는 해야 했다. 옆 참관실에 각 병원 대빵, 소빵이 몰려든 것만 해도 외국 의사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좌자전은 인간관계 면에서 고려해도 능연이 가서 얼굴은 비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상대를 써야 할 때가 오면 얼굴이라도 본 쪽이 훨씬 나으니까.
그러나 능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린 우리 할 일만 잘하면 됩니다. 어차피 안전밸브라서, 그렇게 관심 가질 것 없어요.”
좌자전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바로 옆인데, 인사 한번 하는 게 힘들지도 않잖아. 혹시라도…….”
곽종군이 바로 앞에 누워있어서 자세히 말하기도 그랬다. 그러자 곽종군이 웃으며 대신 말을 이었다.
“혹시 내 상황이 안 좋아서 불러야 할 때가 와도 그편이 부탁하기 좋다는 거지? 그렇지?”
좌자전은 머쓱한 듯 씨익 웃어 보였다. 하지만 능연은 맑은 정신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 때문이라면 더 그럴 필요 없어요.”
“하지만 능 선생이 모셔온 건데…….”
“주임님 수술에 제가 혼자 처리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기면, 주임님 증상도 세계급이란 뜻입니다. 그런 희귀 케이스면 그쪽에서 수술하게 해달라고 부탁할걸요?”
능연의 말투는 더할 나위 없이 자신감이 넘쳤고, 곽종군과 좌자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묘하게 그 자신감에 동화됐다. 사실 험한 말을 수도 없이 내뱉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말에 더 안심이 됐다.
수술실 밖의 능연은 이런저런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수술실 안에 있는 능연은 온몸으로 믿음직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이때를 틈타서 모니터 기기를 훑어본 능연은 곽종군의 혈압, 심박 모두 안정적인 걸 확인하고 안심하며 소가복에게 사인을 보냈다. 소가복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눈빛으로 화답하고는 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주임, 주치의 앞에서 소가복의 가치가 마음껏 발휘되었다.
운리 엔지니어 두 사람은 진작 카메라 설치를 끝내고 나갔고, 연문빈, 마연린 그리고 여원도 비닐봉투를 잔뜩 가지런히 잘라서 카메라 위에 씌웠다.
“곽 주임, 느낌 어때?”
마취과 주임이 싱글벙글 핸드폰을 들고 곽종군에게 물었다.
“이놈이…… 나…….”
곽종군의 눈이 저절로 감기자, 마취과 주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체크했다. 그리고 한참 만에 확인을 끝낸 후 능연을 바라봤다.
“우리 쪽 OK.”
능연은 체외순환 팀, 외과팀 그리고 간호사 팀을 바라봤다. 오늘 수술은 심장 박동 비정지 방식이지만, 혹시 의외의 상황이 생기면 상황을 벌 수 있도록 체외순환 팀은 있어야 했다.
모두가 준비됐다고 대답하자,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 박동 비정지 바이패스 이식 수술, 시작합니다.”
능연의 명령에 카메라가 일제히 불을 밝혔고, 수술실의 모든 설비도 작업 모드로 돌입했다.
참관실.
육군 병원에서 온 유 주임이 맨 앞줄에 앉아 있고, 그와 함께 온 운화 시 유명 진료과 주임이 오른쪽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엔 하원정을 비롯한 운화병원 주임들이 앉아 있었다.
모든 이가 클리브랜드 쪽 수술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사실 능연과 곽종군의 수술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다만 그쪽 수술실엔 인원 제한이 있어서 모두 이쪽에 앉아 있었다.
참관실에도 들어오지 못한 의사는 라이브를 보러 갔고.
물론 운화병원 원장과 육군 병원 원장은 수술에 관심 있어도 지금은 중계로 볼 수밖에 없었다. 병원까지 와서 참관하면 운화병원에서 접대하기도 골치 아프고, 본인들도 껄끄러우니 말이다.
“운화에 얼마나 있을 거래요? 우리도 좀 만나볼 수 있나?”
육군 병원 심장외과 주임이 일사불란하게 준비 중인 외국 팀을 바라보며 살짝 탐이 나서 곁에 있는 유 주임에게 물었다.
“유 주임님, 운화병원하고 사이 좋으시죠? 작업 좀 해주시죠?”
유 주임이 웃으며 힐끔 그를 바라봤다.
“누구한테 작업하라고? 곽 주임?”
“아, 미리 이야기했어야 하는구나.”
육군 병원 심장외과 주임이 바로 알아차리고 머리를 긁적이자 유 주임이 입을 삐죽였다.
“내가 어디 그럴 주제가 되어야지. 해보고 싶으면 알아서 해.”
그러자 심장외과 주임이 히죽 웃으며 바로 감탄조로 전환해서 중얼거렸다.
“펠릭스는 그래도 작년에 한 번 만나서 이야기도 두어 마디 주고받았어요. 국내로 부르기 힘들었을 텐데, 이왕 온 거, 우리 병원에도 와서 이 김에……. 뭐 이 김에 수술 한 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정도 비용은 우리도 낼 수 있잖아요?”
“허허. 그야 자네한테 달렸겠지.”
어차피 허락하느냐 마느냐는 병원 윗선 문제고, 유 주임은 육군 병원 심장외과 수준으로 윗선 본인이 심장이 찔려서 망가지지 않는 이상 심장외과에 큰돈을 들이지 않으리라 여겼다.
육군 병원 심장외과 주임도 그 점을 잘 알아서, 그저 따라 웃었다.
“사실 저 하나 때문에 이 일을 추진하려는 것도 아니죠.”
“아, 그래?”
유 주임은 별 흥미 없는 모습으로 모니터를 주시했고, 심장외과 주임은 열심히 설득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가 점점 강해지잖아요. 심장외과까지 건드는데, 우리도 대비책으로 클리블랜드하고 접촉하면 좋잖아요. 성 안에 병원이 딱 세 개인데 이러다가 운화병원 응급센터가 우리 올라타고 가겠어요.”
“일단 수술이나 보자고.”
유 주임은 또 싱긋 웃기만 했다.
아래 수술실엔 외국 의사가 초록 수술복을 둘둘 마르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심장 박동 비정지 우회술이고, 두 사람이 공유하는 팀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지만, 이런 세계급 난도의 수술을 하려면 그래도 여전히 신중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준비 작업만 봐도 심장외과 주임은 뜨끔해졌다. 그는 곁눈으로 유 주임을 살피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했다.
유 주임은 모르는 척했다. 그는 육군 병원의 응급의학과 주임이고, 같은 성 탑 3인 운화병원 응급센터가 자기네를 찍어 내리는 걸 같은 병원 심장외과 주임보다 리얼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과거 2년 동안 의사 모집, 실습생 경향, 연수의 선택,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환자들의 생각 및 의학계 내부의 각종 서열, 모두 유 주임이 바라지 않는 결과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옆에 있는 심장외과 주임이 무슨 생각을 하든 내버려 두고 싶었다.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간단하고 얼마나 무료한가.
“능연도 시작했습니다.”
참관실 안에 있는 의사가 한마디 하자, 의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세를 가다듬었다. 사실 외국 의사 수술을 보러 온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능연과 곽종군의 수술을 보고 싶은데 자리가 없어서 이쪽으로 모였다.
어찌 됐든 외국 의사 수술은 어디서든 볼 수 있고 능연의 수술도 희귀한 건 아닌데, 곽종군 수술은 유일한 수술이니까 말이다.
참관실 맨 앞의 모니터가 깜빡이더니, 모니터 두 개 중 하나씩은 2번 수술방으로 전환됐다. 모두 운리 시스템이었다.
“9분할이구나.”
해당 시스템을 사용한 적 있는 의사는 벌써 껄껄 웃고 있었다. 전방위 무 사각 수술 녹화 과정은 설계 당시엔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생긴 후에는 다들 반기지 않았다.
전방위 수술 녹화를 진행하기 전엔 절대다수의 의사가 자기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내가 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 아마추어 축구선수처럼.
하지만 백만 분의 일의 천재의 활약을 본 후, 자신의 활약을 보면 대부분 못 견딘다는 건 사실로 증명되었다. 의사들은 수많은 트레이닝 끝에 겨우 수술대에 설 자격을 얻지만, 현실에서는 작은 천재 의사도 그저 ‘쓸 만한’ 수준이었다.
설사 4, 50대가 되어서 수천 건 수술을 해도, 작은 천재 의사들의 실력은 여전히 그냥저냥 평균 정도여서 최고의 선택과는 큰 차이가 있고, 잘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시간으로 계산하는 수술에서 동작은 수백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프로 축구선수의 여러 동작과 마찬가지로 목적을 달성하는 동작은 수천, 수만 가지로 변화할 수 있는데 정말 실용적이고 또 보기도 좋은 건 손에 꼽히고 꼽힌다. 대부분 의사는 프로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시작할 때 갖추지 못한 여러 가지 스킬과 동작은 평생 갖추지 못한다.
전방위 무 사각 녹화 영상은 그 점을 증명해줄 뿐이었다. 특히 수술 조작 이외의 부분은 더 모두의 기대를 벗어났다. 아름다운 동작이라도 천편일률적으로 나오고, 못난 동작은 천기백괴(千奇百怪)하게 나올 뿐이라, 운리 9분할 모니터 시스템이 단기간에 의사의 본전을 축내는 웃기는 기술이 되어 버린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설사 능연이라도……. 설사 그라도…….
참관실은 묘하게 조용해졌다.
“제길. 돌아가서 척추 표본으로 저 자세 맞춰 봐야겠다. 저기 누구냐, 저거 캡처 가능하지? 하나 보내 봐.”
정형외과 주임이 나오는 대로 지시하자, ‘저기 누구’로 불린 제약회사 직원이 바로 대답하고는 정성스럽게 메모했다.
반응이 좀 느린 의사들도 그제야 손짓했다.
“거기, 난 이 목 부분이 좋아.”
“허리 숙이는 부분, 캡처 정리해서 메일 좀 보내고.”
“거기, 허리.”
제약회사 직원들은 미친 듯이 기록했고, 나이가 좀 많은 주임들은 껄끄러운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아니 무슨 수술을 이렇게 봐.”
심장외과 주임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우린 잘 모르잖아. 그냥 구경 온 거니까, 이참에 곽종군 심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거지.”
유 주임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심장외과 주임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미처 뭐라고 하기 전에 옆에서 누군가 물었다.
“양 주임님, 양측 진도 비슷한가요?”
심장외과 양 주임은 멈칫하고는 다시 아래 수술실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또 모니터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그렇습니다.”
“저기, 잘 됐다, 시간 좀 기록하지.”
벌써 웃으면서 고함치는 걸 보면 구경을 해도 일이 커지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양쪽 환자 상태가 다르긴 한데…….”
양 주임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계속하지 않았다. 양쪽 수술 상황은 당연히 달랐고, 다들 의사니까 그 점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의사라서, 설사 상황이 다른 수술이라고 해도 수술 시간과 퀄리티는 여전히 비교할 만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양 주임은 살며시 얼굴을 찌푸리며 집중하고 입을 다물었고, 능연이 감히 펠릭스와 켈렌과 비슷한 수술을 하다니, 비교되면 어쩌나 걱정도 안 되나, 하는 생각부터 했다.
9분할로 보는 능연은 더욱 드라마 주인공 같아 보였다. 수술복과 수술 가운까지 다른 의사들보다 하얘서 더욱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성립 신경외과 큰 주임은 마흔 넘은 엘리트 여성인데, 안절부절못하며 바로 손을 내밀었다.
“저기, 9분할 화면 리모콘 어디 있지?”
그녀의 말에 옆에 있는 사람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짓거나, 큰 깨달음을 얻은 척했다.
“동 주임님, 역시 빠르시네요.”
옆에 있는 여자 의사 하나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동 주임은 깔깔 웃으며 긴말하기 귀찮다는 듯 리모콘을 건네받자 바로 화면을 바꾸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참관실의 모니터에 능연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각도였다.
일반 수술실 영상은 수술 시야 범위 외에는 기껏해야 손동작을 주시한다. 얼굴이나 어시까지 찍는 것만 해도 광범위 촬영이라 할 만한데, 누가 수술자 등까지 관심을 줄까.
그러나 등 뒤에서 보는 세계는 확실히 남달랐다. 능연의 척추 모양은 지극히 아름다웠고, 대부분 허리를 곧추세우고 움직이며 가끔 힘을 줄 때마다 유난히 힘이 넘쳐 보여서 옥처럼 고운 선비라는 표현이 절대로 과언이 아니었다.
동 주임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 의사들에게 말했다.
“나 학교 다닐 때, 수술할 때 자세를 주의하고 배워야 한다고 교수님이 그러셨거든. 자세가 좋은 의사는 수술 몇 시간 하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이는데, 자세가 안 좋으면 두 시간 해도 허리랑 등이 쑤시니까. 이 차이가 크지.”
신경외과 수술은 보통 두 자릿수 시간 동안 수술해서 확실히 자세 문제의 영향이 컸다.
그 자리에 있는 의사들은 웃는 듯 마는 듯, 동 주임이 하고자 하는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른 병원 의사 중에 동 주임의 말에 찬성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녀의 말이 끝나자,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바로 운리의 ‘저기’를 향해 물었다.
“분할 화면 다 따로 볼 수 있어요?”
참관실 앞의 벽에 주르륵 붙어 있는 모니터 중 절반이 옆 수술실 수술 화면이었는데, 다 같은 화면이었다.
“될 겁니다. 조절은 해야 하지만요.”
운리의 ‘저기’는 잠시 주저하다가 바로 핸드폰을 꺼내 사람을 불렀다.
다른 전자 제품 판매사 혹은 대형 매장에서 파는 기기는 아무리 제품 기능이 복잡해도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약회사 제품은 확연히 달랐다. 비싼 제약 설비 중에 절반은 이익 재분배를 위해서 사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의사가 내켜서 산다. 제품에 비슷한 기능이 없는 건 둘째치고, 아예 그런 기능이 없어도 의사들이 강력하게 요구하면 대단한 제약회사는 7, 80% 기능을 개선한다.
잠시 후, 오렌지 점퍼를 입은 엔지니어가 모니터 리모컨을 다시 나눠주는 등 작업을 했다.
동 주임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 모니터 화면을 다 바꾼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자세를 배우는 게 사실 제일 힘들지. 각종 학회에서 보는 수술 영상, 논문, 영상 자료를 다 봐도 자세 문제를 거론하는 건 없어. 수술 때 자세가 좋아야 해. 그러려면 사부가 일대일로 조금씩 교정해 줘야 하고.”
“그래도 능 선생 수술 자세를 배우기는 힘들겠는데.”
다른 여자 주임도 동의하는 말투로 동 주임에게 호응하면서 각도를 능연 맞은편으로 조절했다. 수술대를 멀리서 잡은 그 각도에서는 능연의 정교하고 세밀한 수부 동작과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능연의 집이 대대로 의사래. 하구 진료소라던가? 거기서 기술을 배웠겠지.”
여자 주임은 관심 없는 듯 동 주임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능연의 얼굴을 보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기술을 알아보는 척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동 주임도 바로 알아듣고 입을 삐죽이며 하려던 말을 삼켰다.
다른 의사들도 대화할 의지가 줄어들어서 각자 이런저런 생각 하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제 연다.”
양 주임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누구보다 양 주임은 같은 분야라 능연의 수술 시간 같은 디테일에 관심이 더 많았다.
유 주임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곽 주임 심장도 뻘건 줄은 몰랐군.”
양 주임은 그 말을 받아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의사들이 이심전심으로 참관실 아래를 내려다봤다. 클리블랜드에서 온 심장 팀은 펠릭스와 켈렌 두 심장외과 의사를 포함해서 인원이 넘치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 팀은 아직 심장을 열기까지 조금 남아 있었다.
“뭐, 시합은 아니니까.”
의사 하나가 일어났다가 개의치 않는 듯 한마디 했다. 양 주임은 설명할 생각도 없어서 껄껄 웃기만 했다.
심장은 다른 수술과 달라서, 한 땀 한 땀, 모두 제대로 확인하고 정확히 판단한 다음에야 손을 놀릴 수 있다. 아니면 수술 퀄리티 문제가 아니라 테이블 데스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하게 신중하면 심장 질환 환자가 버티지 못한다. 그러니 관건은 모두 리듬에 있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최대한 수술을 자기 리듬으로 끌어들이는 건 모든 심장외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 시간은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더 클로즈업 할 수 있나.”
양 주임은 리모컨을 들고 있는 의사 곁으로 다가갔다. 이때, 능연이 곽종군 심장에 바늘을 꽂았다.
서서히 뛰는 심장이 지극히 짧은 순간에 능연의 조심스러운 손길 아래 억압되었다.
“매우 능숙하네.”
유 주임 역시 숨을 죽이고 모니터를 보다가, 능연이 잠시 동작을 멈추자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다급하게 대화 상대를 찾았다.
양 주임이 느리게,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해?”
유 주임이 양 주임을 바라봤다. 수술 전까지만 해도 클리블랜드 의사를 접촉해서 운화병원 응급센터에 대적하자던 양 주임은 가까스로 얼굴 근육을 움직이더니 좌우를 둘러봤다.
“아니 그나저나, 운화병원 심외 강 주임은 왜 안 보이지?”
참관실 좌측 둘째 줄에 앉아 있던 하원정은 뇌액과 혈액 모두 서서히 들끓었다. 그는 지금 사람들이 모두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온몸이 다 뜨거워지는데, 그렇다고 화력이 아예 벌떡 일어나 피해버릴 정도는 또 아니라서, 다 보는 앞에서 약불로 끓여지는 죽이 된 느낌이었다.
차라리 육군 병원 심장외과 주임의 말을 못 들었으면 했다. 시간을 거스를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귀를 쫑긋하고 다른 병원 주임들의 대화를 엿듣지 않겠다고.
육군 병원 심장외과 주임을 비롯해서, 그들이 본원 심장외과 강 주임을 그저 호기심으로 거론했고, 존재감이 조금밖에 없는 하원정을 의식하거나 하원정을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육군 병원 양씨 성을 가진 외과 주임, 정말 악랄하네! 강 주임은 왜 물어? 심장이라도 열어달라고 하게?
그래, 지금 병원에서 심장외과 의사라면 마땅히 관심 가질 외국인 수술을 하고 있지. 그렇다고 심장외과 주임이 꼭 관심 가져야 한다는 법이 있나?
그래,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와 함께 수술하는 의사는 응급센터 의사고, 수술도 응급센터 구역에서 하지만, 심장외과 수술은 심장외과 수술실에서만 해야 한다는 법이 있나?
간담췌 외과 주임은 쉬면 안 되……, 아니, 심장외과 주임은 쉬면 안 되나?
하원정은 얼굴을 찌푸리며 속으로 암암리에 결심했다. 치욕을 견디는 여정을 끝내야만 한다고. 언제 기회를 봐서 능연을 이겨서 자신을 증명하고 잃어버린 것을 몽땅 되찾겠다고.
“강 주임님 오셨을 텐데, 능연 수술실에 있는 거 아닌가?”
뒤에 있는 사람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클로즈업 좀 해 볼까?”
이럴 때 꼭 누군가는 흥미진진하게 받아쳤다.
“아주 남 일이라고 불구경 났지.”
정형외과 주임이 콧방귀를 뀌며 하는 말에 한 소리 들은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하’ 하고 웃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OS에서 뭘 걱정해. 능연이 다시 OS로 돌아갈 리도 없고.”
“돈 버는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정형외과 주임이 입을 삐죽였다. 기술 무시 체인에서 정형외과는 바닥에 있지만, 돈을 제일 잘 버는 진료과 중 하나인 정형외과는 이런 문제 앞에서 ‘우린 돈이 넘쳐!’로 맞받아치곤 했다.
하지만 오늘 참관실에 있는 주임들도 돈 걱정할 분들은 아니어서, 그런 정형외과 주임을 비웃듯 대답했다.
“능연, 방사능 싫은가 보지.”
“능연이 돈 걱정을 왜 해.”
“수술을 저 정도로 하는데 돈이 어디서든 안 생길까 봐.”
“의사 생활하려면 조만간 우회술 받아야 할 텐데, 돈 많이 벌어서 능 선생한테 수술비 내야지.”
사람들이 웃으며 떠들어댔다. 어찌 됐든 능연의 침입 목표가 심장외과로 바뀐 다음, 다른 진료과들은 압박이 줄었고, 이미 침략받은 진료과를 제외하고 다른 과는 통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원정과 정형외과 주임은 동시에 끙 소리를 냈다.
“곽 주임님 혈관 퀄리티 엉망이네.”
그때 누군가가 하는 말에 하원정을 비롯한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다.
“능연이 훨씬 빠른 거 맞지?”
유 주임이 하는 말에 양 주임은 불안한 듯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아래에 있는 펠릭스 일행은 이제 겨우 정식으로 심장을 열고 있는데 능연의 수술은 핵심 부분에 돌입했으니 안목 있는 사람은 바로 알아볼 정도로 속도 차이가 명확했다.
능연의 수술만 보면 느낀 바가 많지 않을 수 있는데, 세계 최강 클리블랜드 의사라는 비교 대상이 있으니 능연의 막강한 기술이 더 잘 드러났다.
“저기 아래 팀이 서툰 팀인 건 아니겠지?”
모 주임이 신기한 발상으로 묻는 말에 양 주임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펠릭스 교수, 켈렌 교수 모두 제가 만난 적 있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두 팀이에요.”
“두 팀? 다섯 명인데요?”
“출장 수술에 쉐어 하는 팀이요.”
“거참 인색하네.”
“비즈니스 티켓값도 무시 못하니까요.”
양 주임은 그 말을 해놓고 저절로 기괴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수술이 끝나면 이제 비즈니스 국제선을 타고 가는 건 잘못하면 능연과 그의 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비교하면 능연이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란 소린가. 양 주임님, 설명 좀 더 해주시죠.”
의사가 한자리에 있을 땐, 진료과가 다르면 아무리 거물 의사라고 해도 전문적인 이야기는 쉽게 하지 못했다.
양 주임은 목을 몇 번 움직이고는 머쓱한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짧은 그 한마디에 하원정은 공감하는 마음이 들어서 휙 고개를 돌렸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란 말을 자주 생각하곤 했다.
“어찌 됐든 능연이 허투루 하는 건 아니죠?”
하원정은 자기가 늘 생각하고 도출한 결과로 다른 사람 대신 간단하게 결론을 지어 주었고, 양 주임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심장 박동 비정지 수술이니까 허투루 할 수 없죠. 저렇게 술술 하는 것만 봐도 오히려 대단합니다.”
“수술 퀄리티는요?”
다른 누군가가 묻는 말에 양 주임이 대답하려는데 옆에 있던 유 주임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수술대에 곽종군이 있는데, 능연이 얼마나 공들이겠어. 가장 좋은 방안을 선택했겠지. 그 점에서는 절대적으로 능연을 믿네.”
사람들은 저절로 조용해졌고, 몇 초 후에 하원정이 으스스하게 입을 열었다.
“클리블랜드 의사까지 초청해놓고 직접 수술하는 걸 보면, 능연이 자기 기술이 상대보다 낫다고 자신한다는 거겠죠?”
하원정의 말에 담긴 너무나 많은 의미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의사가 침묵에 빠졌다. 하원정은 사실 더 멀리 보고 있었다. 능연이 심장외과 수술을 이렇게까지 잘한다면 심장외과 쪽 안목도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안목이 강한데 클리블랜드 의사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가 한다는 건 많은 걸 의미했다.
“조금 무섭네.”
외부 병원 주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유 주임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심장 수술이라 봐야 겨우 백몇 건 했다던데, 대체 어디서 자신감이 생겼을까.”
수술 백몇 건이라면 적은 것 같지 않지만, 사실 겨우 입문급이고 기껏해야 작은 스킬 키울 정도였다. 게임 백 번, 농구 백 번 해봐야 정통하려면 멀었고, 정말로 실력을 향상하려면 천 단위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적 원사님도 능연의 방안을 찬성했죠?”
하원정은 빤히 알면서 그렇게 물었고, 양 주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원정이 물을 때마다 양 주임은 불안했다. 하필 하원정이 핵심을 콕콕 찔러대니…….
양 주임은 갑자기 강 주임이 이 자리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심장외과 주치의 이량은 핸드폰을 들고 빠르게 계단으로 올라갔다.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잠시 서서 핸드폰을 보며 숨을 골랐다. 그리곤 숨이 골라지면 바로 심호흡하고 한 층 올라가서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핸드폰의 라이브 영상 화질이 아주 좋아서 작은 화면으로도 수술 디테일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실리카겔이 안정적이고 힘차게 곽종군의 심장 끝을 붙들고 살며시 들어 올려 타겟 혈관을 드러내는 동시에 심장이 수축하지 않도록 도왔다.
수술은 지금 결정적 부분이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어서, 이량은 몇 초 더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위로 뛰어 올라갔다.
“곽 주임님 심장은 정상 심장으로 보이는데, 그걸 맨날 불벼락 뿜는 데나 쓰고, 아깝다, 아까워.”
이량은 마지막 두 층을 단숨에 올라가서 헐떡대며 꼭대기 층의 문을 열었다.
“강 주임님, 여기 계셨네요. 드디어 찾았다.”
이량은 힘들어서 목이 다 타들어 갔다. 하지만 한창 붐빌 때는 엘리베이터가 지하철보다 더 꽉 차서 계단이 더 빠르니 어쩔 수 없었다.
계단 입구 쪽과 등을 진 채 옥상 난간에 기대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강 주임의 손에 시가가 들려 있었고 발치엔 콜라가 놓여 있었다. 이량은 강 주임이 시가를 피우고 단 음료를 마시고 있는 걸 보면 이성을 잃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
“설득하지 마. 다 듣기 싫으니까.”
강 주임이 시가를 빨아당기면서 실의에 빠진 모습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클리블랜드 심장외과라니. 상상도 못 했다, 나는. 그런데 적 원사의 힘을 빌리기까지 하다니. 하, 적 원사라니. 상상도 못 했어. 학회에서 인사 한 번 드리고, 얼굴 내미는 것도 얼마나 힘드냐. 저번에 원사님이 위가우 데리고 왔을 때 다 양보했는데. 솔직히 내가 무슨 권력이나 돈에 목숨 거는 것도 아니고, 우리 심장외과는 내가 손으로 하나하나 키운 거잖아. 너희도 내 사제가 아닌데 내가 직접 스카우트해서 온 거고. 내가 직책만 걸어 놓는 사람이 될 수 없잖아. 좋은 말 듣자고 너희를 버릴 수도 없고.”
“주임님!”
이량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강 주임의 말을 잘랐다.
“어제 수술한 환자요, 상태가 안 좋습니다. 흉통도 호소하고요.”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작은 주치의 이량은 억울했다.
“톡 보냈어야지.”
“보냈죠. 못 보신 거 아니에요?”
이량은 억울하고 고분고분했다. 강 주임은 핸드폰을 꺼내 힐끔 바라봤다. 능연의 소식 천지여서, 언짢아져서 다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알았다. 어서 가자. 다음에 이런 재수술 환자 있으면 미루지 말고 바로 이야기해. 정 안 되면 바로 수술실로 보내고.”
“예. 지금 수술실에 있습니다.”
이량이 서둘러 하는 말에 강 주임은 힐끔 보고는 그럼 수술실로 가자고 생각했다. 더 묻기도 싫어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가다가 갑자기 지금 이렇게 수술실로 들어가면 능연과 클리블랜드 센터 의사와 시간이 겹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강 주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택일 수술이라면 몰라도 재수술 심장외과 환자는 시간을 고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계단 난간을 붙잡고 심장외과 수술실로 미친 듯이 달려왔더니 환자는 이미 수술실에 있었고, 체외순환 팀도 옆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 주임은 심전도를 재빨리 살피고 차트를 읽은 다음 머릿속으로 빠르게 대응 방안을 생각하며 기분을 회복했다. 꽤 까다로운 돌발 증상이지만, 대응할 수 없는 건 아니고 강 주임 인생에서 비슷한 케이스를 몇 번이나 본 경우였다.
그는 착착 지시를 내리고는 손을 들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심장외과 의사들에게 지금 강 주임은 충분히 엄숙하고 진지했다. 평소에 이런 강 주임 앞에서 심장외과 의사들은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일한다.
하지만 오늘은 누군가 범죄집단의 염탐꾼처럼 리모컨으로 몰래 수술실 모니터를 켰다. 능연의 얼굴이 사람들의 시선을 차지하자, 강 주임은 볼을 실룩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심장외과 의사 혹은 여자 의사가 능연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니까. 남자 의사가 강 주임에게 혼날 각오를 무릅쓰고 능연을 봐야겠다면 강 주임도 따지고 싶지 않았고.
사실 수술실에 들어왔을 때, 능연과 비교될 것을 이미 각오했다. 처음도 아니었고, 다시 한번 비교당해도 상관도 없었다. 그냥 주목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뿐이지 뭐.
“클리블랜드 수술도 틀어.”
강 주임은 그렇게 명령하고 수술대로 향했다.
선 그리고, 절개하고, 심장 드러내고. 재수술 환자 모시는 것도 여전히 땀이 줄줄 날 정도로 힘들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쉴 새 없이 감탄하고 한숨 쉬는 소리도 들렸다. 양쪽 모니터를 보면서 내는 소리란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강 주임 본인도 사실 궁금해서, 인공 심폐기를 환자에게 연결한 후 체외순환 개입하는 틈을 타서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능연이 엄숙한 얼굴로 곽종군 가슴을 닫는 부분이었다.
“죽었어?”
강 주임은 바로 그 생각부터 떠올랐다. 그걸 바라고 있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문제였다. 환자가 죽은 게 아닌 이상 어떻게 이 시간에 끝날 수가 있어?
“아니요.”
이량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수술 끝났습니다. 순조로웠던 모양이에요.”
“응?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강 주임은 의아한 듯 모니터를 바라봤다. 능연은 같은 수술을 백 번, 천 번은 한 사람처럼 별로 흥분하지 않은 얼굴로 차분하게 직접 가슴을 닫았다.
이량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냥 보고 있는 사이에 능연이 수술을 끝냈더라고요.”
“사고는 없었고?”
강 주임은 정말 의외라고 생각했다. 충수염 수술에서도 별별 희한한 상황이 생기는데, 심장 우회술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수순 아닌가?
하지만 이량은 고개를 내저었다.
“준비를 엄청 했나 봐요. 내내 무혈 수술에 가까웠고 피할 수 있는 작은 혈관은 다 피하고, 해부도 특히 명확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진심으로 우러나서 하는 말이었다.
“그래, 우리도 할 일 하자.”
강 주임은 고개를 숙인 채 환자를 내려다보며 지금을 즐기자는 생각을 정리했다.
“다했어?”
“이러면 곽 주임이 못 죽겠는데.”
참관실 의사들은 클리블랜드 팀 수술을 보면서 입으로는 모니터 중계 내용을 떠들어댔다.
하원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지금 기분이 무슨 마음인지 알 수도 없고, 그저 스스로 위로하고 남도 위로하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곽 주임님은 한동안 푹 쉬셔야겠네요.”
“그건 그러네요. 일 년은 푹 쉬어야 할걸.”
일반외과 부주임은 벌써 웃고 있었다.
곽종군의 대형 응급센터 전략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건 역시 일반외과였다. 작은 수술은 응급센터에서 해치우는 바람에 하마터면 일반외과 병동이 텅 빌 뻔했다. 다행히 운화병원에 환자가 너무 많아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비록 곽종군이 없다고 응급센터 전략에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곽종군의 불벼락이 없으면 일반외과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다. 병원의 진료과 관계도 긍정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의사들이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든 푹 쉬면 좋죠.”
“사실 이 김에 은퇴도 괜찮지 않나.”
“환자들은 살아남으면 인생관이 바뀌더라고. 곽 주임도 죽다 산 거나 마찬가진데, 나중에 전처럼 그렇게 목숨 걸지 말고 욕도 그만하라고 다들 같이 설득해 보자고. 그러다가 심장이 남아나겠냔 말이지.”
의사들은 곽종군의 수술이 성공한 것이 기쁜 얼굴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댔다.
“여기 수술도 끝났네요.”
양 주임이 자리에서 일어나 힐끔 아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심장외과 의사다 보니, 1번 수술실에서 진행한 수술도 인상이 깊었다.
세계 정상급 수준을 대표하는 클리블랜드 심장센터에서 온 두 의사 모두 최고의 심장 의사였다. 그들의 수술은 운화가 아니라 클리블랜드 내부에서 한다고 해도 매일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볼 정도였다.
세계 정상급 병원엔 흔한 현상으로, 메이요, 해방군 총의원 등등 정상급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땐 세계 각지에서 연수생들이 줄을 서서 참관한다.
하지만 능연과 곽종군 때문에 이번엔 클리블랜드도 조금 냉대를 받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의사는 곽종군이 살아난 것이야말로 관심 포인트였다. 거기에 비하면 세계 정상급 의사의 기술은…….
“스피커 켤 테니 다들 박수 쳐 주세요.”
참관실로 온 좌자전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마치길 묵묵히 기다렸다가 앞으로 나서서 손뼉을 쳤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자, 좌자전은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는 스피커를 눌렀다. 스피커에서 미세하게 ‘삐삐’ 소리가 나며 연결됐음을 알렸다.
좌자전은 마이크 앞에 심각한 얼굴로 섰다.
그렇게 3초가 지나고, 5초가 지나고, 10초가 지났다. 뒤에 있던 의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 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말을 해!”
좌자전은 그제야 흠흠 대며 ‘땡큐!’ 하고 입을 열고는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 참관실 의사는 멈칫하다가 따라 박수 쳤다.
“Thank you, Thank you.”
신사의 품격이 넘치는 펠릭스가 호응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켈렌이 나서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자, 좌자전은 망연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영어 못 하나?”
유 주임이 남을 민망하게 할 만한 말을 가볍게 던지자, 좌자전이 머쓱한 듯 웃어 보였다.
“엉망이라서요.”
“괜찮아. 나도 못 해.”
유 주임은 껄껄 웃으며 주먹으로 허리를 툭툭 쳤다.
“곽은? ICU?”
“네.”
“그래, 그럼 난 내일 다시 오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유 주임은 펠릭스와 켈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Stepping-stone.”
좌자전은 멈칫하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 자리에서 가장 낯익은 하원정을 바라봤다.
“유 주임님이 뭐라고 하신 겁니까?”
하원정은 물끄러미 좌자전을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디딤돌.”
“아!”
좌자전은 다시 하원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전 인사 좀 하러 가겠습니다.”
좌자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원정은 속으로 의심했다.
저 새끼, 일부러 날 찍은 건가?
좌자전은 재빨리 내려가서 마침 수술실 앞에 서 있는 훈련의 하나 붙잡고 영어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통역 가능해?”
훈련의는 멈칫하더니 바로 흥분해서 대답했다.
“네! 박사 때 학회에서 영어로 발표도 했습니다. 자원봉사도 했고 통역 경험도 있습니다.”
“OK. 따라와.”
인공 번역기를 얻는 좌자전은 계속 수술실 앞에서 대기했다. 곧 수술실 문이 열리고 펠릭스와 켈렌이 함께 나왔다.
짝짝짝. 좌자전은 힘껏 박수 치며 인사했다.
“두 분 순조롭게 수술 마치신 걸 축하드립니다.”
긴말하지 않아도 임시로 통역사가 된 훈련의가 냉큼 나서서 통역했다. 펠릭스는 예의 바른 모습으로 듣다가 바로 대답했다.
“환자는 바로 ICU에 보내야 합니다. 자크가 함께 갈 겁니다.”
그로서는 평소에 하는 비싼 출장수술일뿐이라 길게 인사치레를 주고받을 생각은 없었다. 해야 할 말을 한 펠릭스는 바로 옷을 갈아입으러 갔고, 켈렌도 공적인 미소를 지어 주고 사라졌다.
다른 클리블랜드 의사도 별말 없이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훈련의의 통역 가치가 크게 꺾였다.
훈련의는 언짢은 얼굴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거들먹거리기는. 능 선생보다 수술도 느리고 예후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어차피 만일에 대비하려고 부른 건데 뭐.”
“그러니까 뭐한 것도 없잖아요.”
“그게 다행인 거지. 보험금 받을 생각에 보험 드는 건 아니니…….”
좌자전은 문득 말을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긴 보험 한 번으로 따지면 비싸긴 했지.”
“그러니까요. 클리블랜드 센터에 거기에 펠릭스 선생이니까……. 뭐 어쨌든 능 선생이 펠릭스보다 빠를 줄은 몰랐네요.”
훈련의는 한참 이야기하다가 현명하게 화제를 돌렸다.
“맞는 말이지.”
좌자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인정받을 줄 몰랐던 훈련의는 왜 인정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아졌다.
“네가 따라가서 예후가 어떤지 지켜봐. 기회 되면 능 선생이 한 수술 이야기도 좀 해주고.”
“구체적으로 어떤 거요?”
훈련의가 멈칫하며 물었다.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는데?”
좌자전은 의문이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훈련의가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하라고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얼마 없긴 했다.
좌자전도 별말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건 바로 돌에서 기름을 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돌 값은 이미 냈고, 착즙기도 그저 훈련의라서 결과가 나오든 말든, 별로 상관없었다.
ICU.
몇 사람이 문 앞에 줄을 서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덕분에 ICU의 외로운 조명도 오늘은 외로움이 덜한 듯했다.
좌자전의 지령을 직접 받은 훈련의는 몸 상태도 정신도 괜찮은 편이라 입구에서 밝게 물었다.
“지금 들어가도 돼?”
“뭐 하실 건데요?”
“곽 주임님 좀 보려고.”
외국인이 수술한 환자도 보고 싶었지만, 거기까지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등록을 담당한 사람은 새로 온 실습생이라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고는 사진에서 봤던 주임이 아닌 걸 확인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곽 주임님은 줄 서셔야 해요. 사인부터 하시고요.”
아예 ‘곽종군’이라고 적혀 있는 노트에 훈련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
“그건 대기할지 말지에 달렸어요. 싫으면 내일 들어가셔야 해요. 좋으면 앞에 예약한 사람이 안 오면 전화 드릴 거예요. 15분 안에 오셔야 하고요, 동시에 여러 사람한테 연락할 거라 선착순이에요. 늦으면 허탕 칠 각오하셔야 하고요.”
이미 여러 번 같은 대답을 한 실습생은 다른 질문이 오기 전에 바로 덧붙였다.
“아마 퇴근 전엔 들어가실 거예요.”
“와, 오버다. 환자가 안에 있어도 못 들어가?”
“환자가 있으시면 절차대로 신청해서 들어가면 되고요. 곽 주임님은 단독 ICU에 계셔서 등록 안 하면 못 만나요.”
“아니 난 곽 주임님 만나러 온 거라니까.”
“누군 아닌 줄 아냐.”
훈련의가 어이없어서 하는 말에 맨 뒤에 서 있는 어느 과 의사인지 모를 중년 의사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훈련의를 힐끔 보며 한마디 했다.
쯧, 요즘 것들은 참 건방지네. 나이도 어린데 특권 의식이 몸에 아주 뱄네.
“의사가 되어서도 ICU 들어갈 때 줄 서야 하다니.”
“한 시간 줄 서면 곽 주임님 거시기 볼 수 있는데, 안 보겠냐?”
그 중년 의사가 계속 핸드폰을 만지며 평온하게 줄 서서 기다렸다.
“곽…… 주임님…… 거시기…….”
정말로 이런 전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너도 궁금하잖아. 언제나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중년 의사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ICU 환자는 보통 큰 환자복 한 사이즈뿐이라, 맞는 사이즈가 없으면 전라를 노출할 때도 있다. 보통 환자라면 의사들이 조심하겠지만, 곽종군 같은 본원 의사라면 다들 이 기회에 구경하려 들 것이다.
훈련의는 그 의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곽종군의 거시기를 볼 기회가 있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평론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을 듯했다.
“그런데 줄까지 설 거 있나요? 나중에 와서 보면 되지.”
“그러다가 며칠 뒤에 일반 병실로 가면 어쩌라고.”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가요. 우회술인데, 아무리 박동 비정지라고 해도 보통 ICU에서 일주일은 있어야 하는데요.”
“능연이 한 곽 주임님 수술인데, 보통이겠냐?”
되묻는 말에 훈련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 능연이 곽 주임님 수술을 한 건데 일반적일 리가 없지.
다시 능연의 수술을 떠올려 봐도 전체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어떤 면으로 봐도 수술은 매우 순조로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동안 능연이 했던 우회술 환자 중에 예후가 좋으면 이삼일 만에 ICU에서 나간 환자도 있었다.
이삼일이라면 서두르지 않으면 곽종군과 그의…… 몸을 정말로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훈련의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마터면 구렁텅이에 빠질 뻔했네. 곽 주임님 몸이 뭐 볼 거 있다고.
“그럼 줄 설게.”
훈련의는 고개를 숙이고 사인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더니 푸른 눈 노란 머리 의사가 ICU에서 나왔다. 아까 들었던 자크였다.
“닥터 자크, 고생하셨습니다. ICU 괜찮던가요? 환자는 좀 어떻습니까? 아, 참 저는 응급센터 의사입니다.”
더듬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요점은 잘 전달했다.
운화병원 같은 정상급 삼갑병원에서 배경 없이도 병원에 남아 있는 젊은 의사는 기본적으로 실력은 갖춘 편이다. 영어를 잘한다는 스킬은 십 년 전이었다면 병원에 남을 만한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발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자크는 잘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은 ICU입니다. 제가 매일 환자 체크하러 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큰돈 받고 온 것이고, 출장 수술 겸 수술 배우는 일로 여기고 있어서 자기 환자를 매우 중시했고 지금도 예후를 직접 관리했다.
훈련의는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은 아니고요, 상황이 궁금해서요. 우리 병원 능 선생도 박동 지정지 수술했거든요.”
“아.”
자크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능 선생은 우리 국내에서는 대단한 심장외과 의사입니다.”
“아.”
몇 마디 더 해도 외국 의사가 멍청이처럼 반응이 없자, 훈련의는 조금 더 자극하기로 하고는 잠시 더 생각하다가 집중해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수술이 더 빨랐습니다.”
자크는 멈칫하고 훈련의를 잠시 바라보다가 웃어 보였다.
“빠를 수도 있죠.”
“10분 이상입니다.”
자크는 웃으며 계속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말도 안 됩니다.”
훈련의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며 바로 대답했다.
“영상 있습니다.”
그리고는 사이트와 정보가 담긴 명함을 자크에게 건넸다. 자크는 명함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훈련의를 바라봤다.
“그 의사가 누구라고요?”
“능연입니다. 능연, 능 선생.”
“본인?”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자크는 잠시 더 그를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사라졌다.
“능 선생 수술 환자는 곽종군입니다.”
훈련의는 뒤에서 한마디 더 고함쳤다. 좌자전이 친히 내린 임무라 정말로 잘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자크는 별로 영향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훈련의보다 나이가 많았고, 같은 레지던트지만 클리블랜드 의사라는 자부심은 남달랐다.
자크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훈련의는 조금 실망하며 터덜터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30분 후, 자크는 펠릭스, 켈렌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다들 편안한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클리블랜드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면 운화 출장 수술은 아무래도 수월했다. 특히 오늘처럼 순조로운 수술은 더욱.
자크 역시 아까 있었던 일을 두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았고, 안으로 들어가서 하던 대로 검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치고 나가려다가, 자크가 ICU 의사를 붙잡고 곽종군이라는 환자가 있는지 물었다.
“곽 주임님 병상은 안쪽에 있습니다.”
ICU 의사가 안쪽 칸막이를 가리켰다.
운화병원 응급센터엔 지금 응급센터 ICU가 따로 있지만, 설비 조건은 구 ICU가 더 좋아서 곽종군도 이곳으로 들어왔다.
곽종군은 지금 각종 기기에 둘러싸여 온몸에 줄을 꽂고 처참한 모습으로 있었다. 펠릭스가 자크에게 눈짓했다.
세계 정상급 심장외과 의사인 펠릭스는 사실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사실 외과 의사는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 많아서, 누가 자기보다 수술을 빨리했다고 해서 자기 기술이 더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상대가 조금 더 떨어진다는 것만 확인하면 됐다.
레지던트인 자크도 펠릭스의 기술을 증명하는 것을 돕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중국 출장 수술 의사와 비교하면 글로벌 노선을 걷는 펠릭스 등이 희한한 환자와 희한한 병원을 만날 가능성이 커서, 종종 펠릭스 대신 자크가 나서곤 했다.
보통 자크면 충분했다. 대부분 나라의 의사는 자기 구역에서는 거들먹거리지만, 세계 제일인 클리블랜드 심장센터와 비교하면 거기 레지던트보다 못한 경우가 많으니까.
펠릭스와 자크는 이런 부분을 꽤 좋아해서, 오늘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자크는 심지어 아까 훈련의에게 받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지도 않았다. 귀중한 시간을 거기에 낭비할 여유가 없으니까.
환자 수술 결과가 어떤지는 현장에서 한번 쓱 보기만 해도 판단할 자신이 있었다. 자크는 유심히 곽종군을 관찰하고는 주변 기기의 수치까지 보고서야 의심스러운 얼굴로 ICU 의사를 바라봤다.
“정말로 오늘 들어온 환자입니까? 확실해요?”
“물론입니다. 겨우 10분 일찍 들어왔어요.”
“음…….”
ICU 의사의 확신에 찬 대답에 자크는 입을 다물었다.
환자 예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매우 많아서 깊게 파고들자면 논문도 쓸 수 있다.
“이 환자 아는 사람입니까? 본원 의사?”
자크는 주변에 곽종군을 살피러 온 의사들을 바라봤고,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들어온 환자라고요?”
자크가 다시 묻는 말에 사람들은 눈빛을 주고받고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자크는 고개를 숙여 삼출액과 모니터 데이터를 다시 한번 체크하고는 어두운 얼굴로 팀원에게 돌아갔다.
“회복이 좋은 편입니다.”
자크는 펠릭스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체질 문제일 수도 있죠.”
펠릭스도 다가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방식은 자크와 달랐다. 펠릭스는 심지어 ICU 의사에게 심전도와 혈액 분석까지 요구해서 초음파 사진도 몇 장이나 보고 나서야 뒤로 물러나며 줄곧 통역하던 의사에게 물었다.
“이분 차트 좀 볼 수 있을까요?”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 통역 역시 박사인 훈련의였다. 최근 2년 동안 운화병원의 명성이 높아져서, 영상의학과 같은 사람 구하기 힘든 진료과나 기준을 낮추지, 웬만한 부분은 석사도 잘 모집하지 않았다.
펠릭스는 예의 바르게 한쪽에 서서 곽종군을 묵묵히 관찰했다.
“패드로 보여드려도 될까요?”
통역은 빠르게 차트를 받아서 펠릭스에게 전했다.
“나도 하나 줘요.”
서른 남짓한 켈렌은 살짝 주름도 보이고 제법 경험 있는 임상의였다. 클리블랜드 센터 같은 곳에는 주치의가 되는 게 임상 의사로서 최고봉이었다. 그들의 외과 주임은 관리직이고, 교수나 부교수 같은 타이틀은 과학 연구 실력에 달린 것이라 능력, 정력, 관심이 있다고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수입이 더 오르는 것도 아닌 이상, 켈렌이나 펠릭스 같은 주치의는 보통 임상의에 머무르길 선택한다.
펠릭스와 켈렌 두 사람은 각자 패드를 끼고 조용히 읽어 보다가 곧 통역을 불러 나지막이 물었다.
차트는 대부분 영어로 표기되어 있어서, 두 사람이 읽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보통 차트였다면 이 검사 결과만 봐도 두 사람은 초기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읽을수록 점점 흥미가 생겨 자발적으로 더 꼼꼼하게 읽었다.
통역하는 박사는 조금 골치 아팠지만,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차트 정리 참 깔끔하네요.”
켈렌이 갑자기 하는 말에 박사가 살며시 한숨을 내쉬며 웃어 보였다.
“능 선생이 직접 쓴 차트입니다. 표본이죠, 표본.”
“이 차트 하나로도 능 선생이라는 의사 실력이 괜찮은 걸 알 수 있군요.”
켈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펠릭스는 수하인 자크에게 물었다.
“수술 영상 있다고 했나?”
“네. 사이트 하나 주더라고요. 찾아야 하는데, 보시겠어요?”
“이따 보자.”
“나한테도 사이트 보내.”
켈렌은 함께 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크는 재빨리 대답하고는 바로 덧붙였다.
“비밀번호 있더라고요. 이따 함께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갑자기 ‘능……’, ‘능XX’ 같은 반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 환자 주치의가 온 겁니까?”
켈론은 잠시 듣다가 통역에게 물었다.
“그럴 겁니다. 이렇게 환영받을 사람은 능 선생밖에 없으니까요.”
통역이 쓴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ICU 의사와 간호사들이 다들 능연을 향해 인사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설명을 들을 필요 없이 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공중에 퍼지는 ‘능!’ ‘능!’ ‘능!’ 소리는 절대로 원장 이하 의사가 경험할 수 없는 대우였다. 펠릭스와 켈렌 모두 심각해졌다.
의사가 존경받는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의술과 의덕. 의술은 의덕의 기본이고, 의덕은 의술의 승화였다.
그런데 클리블랜드 심장센터 같은 곳에서도 탁월한 의술과 고도의 의덕을 갖춰도 이런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단체로 받지는 못한다.
지금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능연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 말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펠릭스는 도전받을 준비가 끝난 수사자처럼 살짝 고개를 들었다. 켈렌도 지지 않고 가슴을 활짝 폈다. 그녀가 의사가 되겠다고 결정한 날부터, 세계급과 맞설 준비를 끝냈었다.
“고생했어요.”
문을 지나온 능연은 양쪽에 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인사하고는 펠릭스와 켈렌을 향해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세계 정상급 의학센터에서 온 정상급 임상 의사는 능연 앞에서 사고회로가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의사가 존경받는 이유는 단 두 가지여야만 하는 거 아냐?
“상황 어때요?”
능연은 표준적인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외국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곽종군 침대로 곧장 다가갔다.
영어가 서툴러서 줄곧 구석에 숨어 있던 마연린과 소가복도 드디어 나왔고, 마연린이 입을 열었다.
“수치 모두 정상. 환자 사지 움직여 줬고, 이제 깨어나시면 신체 운동 능력 회복 진행할 거야.”
그는 펠릭스와 켈렌이 이미 대부분 확인한 각종 리포트들을 능연에게 건넸다. 펠릭스와 켈렌도 능연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기다리며 능연을 주시했다. ICU 의사와 간호사들도 그 묘한 긴장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의사가 여러 외국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한다? 당연히 신중하고 또 신중하겠지!
다들 암암리에 능연이 깊은 감탄을 자아내고, 귀가 번쩍 뜨일 말을 해주길 기대했다.
마연린은 더욱 가슴을 활짝 펴고 능연 맞은편에 선 펠릭스와 켈렌을 바라봤다. 아까 두 사람의 덤덤한 표정을 이미 봤었다. 곽 주임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 수술이었는지, 마연린은 깊은 감회가 있었다. 이제 기회가 왔으니, 능연에 빙의해서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온 전문가와 정면으로 맞서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때, 능연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음. 그러면 되겠네요.”
말을 마친 능연은 파일 처리하라고 리포트를 다시 마연린에게 돌려주었다. 마연린과 ICU 의사들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보며 눈코입으로 ‘이게 다야?’를 표현했다.
능연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자기 수술에 자신 있었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장시간 준비한 수술도 처음이었다. 결과도 신기할 정도로 좋았고.
그랜드마스터급 심장 우회술이든 심장 박동 비정지 우회술이든, 가상 인간의 보조하에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검사와 준비와 함께 최고의 수술 결과와 예후를 얻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능연은 지금 어떤 의미로는 그저 문병 왔다는 생각으로 ICU에 왔다. 해야 할 건 수술 전, 수술 중에 다 했다. 지금도 물론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이제 능연이 할 필요는 없었다.
ICU 의사가 현재 상태에 근거해서 표준적인 피드백을 할 것이고, 곽종군처럼 안정적인 환자는 ICU 의사가 누구라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모든 리포트를 확인한 능연은 곽종군 상태를 다시 체크하고 외국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바로 돌아섰다. 보험은 필요하지만, 기간이 지난 보험은 폐지나 마찬가지라서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켈렌과 펠릭스도 매우 의외라고 생각했다. 능연이 무슨 대단한 말을 할지 기다리며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둔 상태였다.
사실 전 세계 각국을 돌며 자주 출장 수술을 해와서, 각 국가 의사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제3 세계 의사들은 자신의 활약을 매우 신경 쓰고, 어떻게든 정상급 병원에서 온 정상급 의사에게 어필하려고 들었다.
켈렌과 펠릭스 모두 그런 의사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런 상황에 매우 능통했다.
순위가 낮거나 아예 순위에 없는 병원의 의사는 다른 사람보다 실력이 낮고 기술이 떨어진다고 해서 단순히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능연은 그런 약체 국가와 약체 병원의 약체 의사와 조금 다른 태도를 보였지만, 이상할 건 없었다. 어찌 됐든 약체 의사보단 강하니까. 그것도 많이, 많이.
켈렌은 저도 모르고 능연을 뒤따라갔다.
“다른 오더는 없나요?”
“무슨 오더요?”
능연이 걸음을 멈췄다. 지난 보험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연장한다면 계속 써도 상관없었다. 어찌 됐든 곽종군의 목숨과 달린 일이니까 말이다.
켈렌이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지시하려고 환자 보러 온 거 아닌가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그녀의 말투는 R 발음이 매우 강렬했고, 기세도 등등했다.
“지금 환자 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설령 약을 바꾼다고 해도 한동안 관찰해야 하고요.”
능연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확인하며 물었다.
“왜 다른 오더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바로 그 말을 기다렸던 켈렌은 미소를 지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약을 너무 소심하게 써요. 약을 늘려야 한다고요.”
능연은 안도하며 ‘아’ 하고 대답하고는 ‘그렇군요’하고 덧붙였다.
“그래도 바꿀 생각 없다는 거죠?”
켈렌은 바로 능연의 생각을 읽었다. 잘생긴 남자의 표정은 원래 알기 쉬운 데다가 육감이 매우 예민해지니까.
능연 역시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했다. 그래서 정색한 얼굴로도 매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 경험이니까요.”
“개인 경험? 그게 무슨 말이죠?”
“수술이 순조롭고, 손상도 적었습니다. 그래서 약을 덜 써도 되죠. 예후도 더 좋을 거고요.”
능연은 졸업한 후로 지금까지 꽤 많은 시간을 영어 공부에 썼고, 유창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이야기하면서 걸음을 옮긴 능연은 어느새 ICU 입구까지 다가갔다. 켈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술이 순조롭다고 생각해도 그게 꼭 환자의 손상이 적은 건 아니에요. 그런 이유로 약을 적게 쓸 순 없다고요. 게다가 지금보다 다섯 배는 더 써도 예후는 좋을 거예요.”
능연이 의아한 듯 켈렌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쪽 수술은 동맥 차단하고 카테터 넣을 때 혈관 내막 손상이 명확했어요. 또 타겟 혈관 선택도 문제였고. 수술 시간도 상대적으로 길었으니 약의 양을 늘리는 게 맞습니다.”
능연은 수술을 마친 후 켈렌과 펠릭스의 수술 영상을 봤었다. 어찌 됐든 정상급 심장외과 의사라서, 그들이 어떻게 수술했는지 궁금했다.
켈렌은 한참 멍하니 있다가, 능연의 표정과 지금 했던 말을 매치해 보고 그제야 지금 그가 그녀와 펠릭스의 수술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평소라면 조금 더 이성적이었겠지만, 능연이 이런 식으로 말하니 바로 화가 치밀었다.
“잘생겼다고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되는 줄 알아요? 어디서 허풍을 떠는 거야! 사람 잘못 봤다고요!”
“영상 다시 보셔도 됩니다.”
능연은 논쟁하기 싫어서, 양옆으로 웃어 주고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ICU 간호사들이 자연스럽게 나와서 켈렌을 막아 주었다.
“켈렌, 이만 돌아가자.”
펠릭스도 싸움이 일어날까 걱정되어서 서둘러 그녀를 설득했다.
“설득할 거예요!”
켈렌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단 가서 영상부터 보자. 영상 보고 나서 이야기하면 되잖아.”
펠릭스는 자크에게 눈짓하고는 재빨리 켈렌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잘생긴 남자는 다 그래요? 다 저렇게 맹목적인 자신감에 넘치냐고. 영상 보라니, 에고마니아(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야?”
켈렌은 ICU에서 나와서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이 보면 몰라? 중국 의사는 대학 졸업하고 의대 가는 게 아니라서 젊은 나이에 바로 수술 시작해. 운이 좋아서 첨단 수술 좀 배우면 저렇게 잘난 척하고 우쭐거린다고.”
나이가 좀 많은 펠릭스가 웃으며 말리자 켈렌이 눈을 흘겼다.
“질투 나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왜 심장외과 젊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박동 비정지 수술 연습하겠어. 비정지 수술은 신기술도 많고, 새 기기도 많고, 몇 년 있으면 새로운 출발선에서 비교하게 되잖아. 저렇게 젊다고 자신 넘치고 우쭐대는 사람 많이 봐왔어.”
“후우. 당신 잘생긴 사람의 심리를 몰라요.”
켈렌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펠릭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가리켰다.
“내, 내가 잘생기지 않았다는 말이야? 난 치어리더랑 결혼한 사람이야. 병원에서 환자들이 얼마나 잘생겼다고 하는 줄 알아? 간호사들이 얼마나 내 수술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켈렌은 능연을 보고 다시 펠릭스를 보자니 인내심이 줄어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와이프는 당신 돈 때문에 잘생겼다고 하는 거고, 환자는 수술 잘하라고 하는 거고, 간호사는 당신이 욕할까 봐 그러는 거라고! 동료나 상사가 잘생겼다고 한 적 있어요?”
펠릭스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아까 그 닥터 능은 정말로 잘생겼어요. 당신이 그의 10%만큼만 생겼더라도 내가 말을 안 해요!”
펠릭스는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다.
“됐어. 이제 영상 보러 갈까요?”
켈렌은 이야기할 기분도 없어지고 이제 연구자의 세계로 완전히 돌입했다. 펠릭스는 넋이 나간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켈렌을 따라 별도의 회의실로 들어갔다. 어쩐지 익숙한 장면이라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에 레지던트가 되기 전엔 이랬던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추구하고, 내가 얻은 것은 모두 의학이야. 치어리더, 스타 환자, 귀여운 간호사 다 무슨 소용이야. 의학의 미, 의학의 묘야말로 진짜지!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능연의 수술 장면이 어느새 펼쳐지고 있었다. 펠릭스는 온 세상이 자신을 향해 있는 것 같아서 싱긋 웃으며 지금 자신이 깨달은 새로운 수확, 새로운 생각, 새로운 인식을 켈렌에게 공유해주려고 했다.
그때, 켈렌이 영상을 빨리 감기 해서 1/3 진도 부분까지 돌려버렸다. 수술이 차츰 절정에 들어가고 의사도 최고로 몰입할 부분이었다. 능연 역시 분명 몰입하고 있었고.
단순히 몰입이 아니라, 그 순간의 능연은 사실 장시간 연습을 거치고, 모든 수술 준비를 마친 데다가 가상 인간도 아낌없이 쓴, 몰입 중의 최고 몰입 상태였다.
순조로운 동작, 익숙한 해부, 선명한 노선, 막강한 수술 제어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여주는 무혈 시야.
펠릭스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켈렌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두 사람은 모두 무수한 의문이 생겼다.
Fxxxxxxxxxck me!
“이게 닥터 능 수술이야?”
펠릭스의 목소리엔 의문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이 세상에서 심장외과 수술의 극한에 대해 누가 가장 잘 아느냐를 따지면 펠릭스는 절대로 상위에 있을 사람이다. 심지어 클리블랜드 센터 외과 주임이 나와도 그와 논박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일선 임상 의사고, 그런 그의 명성은 바로 성공한 수술을 쉴 새 없이 해오면서 쌓은 것이었다. 밤낮없이 진행한 수술이 쌓여 경험이 되었고, 매일매일 읽고 관찰하며 안목을 키웠다.
그런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수술은 그 모든 것에 도전하고 있었다. 기술의 극한을 넘어선 수술…….
중국 의사들은 오늘 수술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지만, 펠릭스의 생각은 단 하나.
“말도 안 돼! 이거 장난이지? 누구야, 이런 일을 꾸민 게. 탐? 루이스?”
“그 사람들이 이런 수술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켈렌 역시 마찬가지로 속이 뒤숭숭했다. 그녀는 경험도 실력도 펠릭스보다 뒤떨어졌다. 켈렌도 그 점을 인정했다. 두 사람은 열 살 차이가 나고, 수술 경험도 10년 정도 차이 났다. 켈렌이 아무리 더 노력해도, 마찬가지로 노력해 온 사람의 성과를 시간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목과 인식은 그렇게 차이 나지 않아서, 그녀 역시 이건 말도 안 되는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펠릭스가 한 말엔 1%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술로 장난칠 사람이 어디 있어요.”
켈렌은 펠릭스를 힐끔 보고는 바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게다가 탐과 루이스가 이럴 실력이 있냐고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영상 편집?”
펠릭스가 혹시나 하고 물었다. 수술보다는 자기가 모르는 영역으로 눈앞에 벌어진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켈렌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능 선생이 한 거라고 믿어요. ‘선생’, 닥터 능을 이렇게 부르던데, 의사라는 뜻인가요?”
이번엔 통역에게 물은 말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이미 얼이 빠져 있던 통역은 잠시 멈칫한 후에야 대답했다.
“아, 닥터는 ‘의사’입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영상은 편집된 게 아닙니다. 막 끝난 수술이고, 수술을 참관한 사람도 많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아니에요. 펠릭스가 헛소리한 거예요. 닥터 능이 잘생긴 걸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수술이 가능하다는 걸 이해할 수 없는 거죠.”
이미 정신을 차린 켈렌은 아무렇지 않게 펠릭스를 한 방 먹였다. 지금 그녀는 기분을 풀 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상태였다.
이미 세상이 무너진 펠릭스 역시 그랬고. 펠릭스는 절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문제야. 여기, 그래 바로 여기. 혈관 처리하는 것 좀 보라고. 이 봉합……. 봉합…….”
펠릭스는 이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도 몰랐다. IQ를 모두 의학에 쏟아왔던 그는 지금 어휘력이 매우 부족했다.
켈렌 역시 언어를 조합할 틈이 없었다. 혈관 봉합에 대해 평가하려고 하는데 모니터 안의 화면 포커스가 어느새 심장으로 돌아갔다.
“다시 보려고요?”
“다시 봐야지.”
펠릭스는 암사자에게 포위된 수사자처럼 망연하지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들은?”
육군 병원 심장외과 양 주임은 뒷짐을 진 채 초조하고 다급하게 응급센터 구역을 누볐다.
루쉰이 ‘형제에게 있는 건 나도 다 있다.’는 말을 했다.
창서성 탑 3 삼갑병원인 성립 병원, 육군 병원, 운화 병원은 이복형제 셋이 끝도 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심장외과 영역에서 육군 병원이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운화 병원이 심장외과를 진작 포기했었는데, 육군 병원 심장외과의 최대의 적이 응급의학과에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나오자마자 큰형님 될 태세로.
물론, 지금 마음이 가장 복잡한 건 역시 강 주임일 것이다. 하지만 양 주임으로서야 강 주임이 죽든 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자기가 연루된 게 분통 터질 뿐.
응급센터를 한 바퀴 돌아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 얼쩡대려는 때에 주 선생이 그를 막아섰다.
“여기 없습니다.”
전부터 양 주임을 알고 있던 주 선생은 그를 살짝 막으며 곽 주임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불벼락이 있었을 때 아무도 감히 이렇게 응급센터에 얼쩡거리지 못했는데.
“없어? 흥, 다 찾아 봤거든? 그냥 인사나 하고 혹시 식사라도 할 수 있을까 해서 온 거니까 일부러 숨길 것 없어.”
“숨긴 적 없습니다. 호텔로 돌아갔을걸요?”
“밖에서 지키고 있거든? 사람이고 차고 나가지 않았어. 음, 퇴근 시간 됐으니 호텔로 돌아갈 때도 됐겠군. 그럼 좀 기다리지 뭐.”
양 주임은 제 할 말만 하고 너스스테이션 앞으로 돌아가 주저앉았다. 확장한 운화 병원 응급센터에서 앉을 곳 하나는 당연히 있었다.
주 선생은 한마디 하고 싶은 걸 참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곽 주임님이 계신다면 응급센터에 남아 있기는커녕 집에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실 텐데.
“우리 응급센터는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고 할 일이 끝도 없는데 굳이 와서는 일을 보태시네.”
주 선생은 곁에 있는 레지던트에게 꿍얼거리고는 한바탕 잔소리하고 다시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평온하게 클립 영상을 시청했다.
양 주임은 긴말 없이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곽 주임이 아직 죽은 건 아니라서 너무 심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에서 온 팀과 관계는 맺고 싶었다. 아까 유 주임이 말했던 것처럼 조금 인정이라도 베풀어두기만 해도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국내이고 운화 병원이니까 그나마 얼굴 내밀고 비벼볼 수라도 있지, 운화를 벗어나면 북경에서 열리는 국제 학회 같은 곳에서 클리블랜드 센터의 대능력자를 초청하려 해도, 그들은 운화 모 병원에서 온 심장외과 주임을 정면으로 바라봐 주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럴 때 유 주임이 도와주지 않는 것이 유일한 유감이었다. 유 주임이 도와줬다면 바로 능연이 나서서 체면을 좀 세워줬을 것이고, 클리블랜드 센터와 협력하거나 자기나 자기 사람을 클리블랜드로 보내 연수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을 텐데.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응급센터에 환자가 오고 또 왔다.
양 주임은 질리도록 핸드폰을 만지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좌불안석하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이네요. 버섯 불고기예요.”
주 선생이 도시락을 들고 와 양 주임에게 내밀었다.
“아, 땡큐.”
양 주임도 체면 차리지 않고 바로 받아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능 선생은? 같이 있어?”
“능 선생은 주임님 지키고 있죠.”
“아…….”
양 주임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긴말하지 않았다. 주 선생도 자리를 잡고 앉았고, 둘은 마주 앉아 서로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 선생은 빨리 먹고 일어나려고 정신없이 움직였고, 양 주임은 초식동물처럼 기운 없이 느릿느릿 젓가락을 움직였다.
쿵. 회의실 문이 힘껏 열리더니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양 주임은 바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 선생은 공공물건을 부수다니, 안 되지 않냐고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선임 주치의 이상이 아니면 혼내 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더니, 켈렌, 펠릭스, 자크 등 클리블랜드 의사 다섯 명이 휘청휘청 나오고 있었다.
넘어질 것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다들 발걸음에 힘이 없이 얼굴도 시퍼레져 있었다.
양 주임은 기쁘고 또 놀라서는 벌떡 일어나 영어로 고함쳤다.
“닥터 켈렌, 닥터 펠릭스, 닥터 자크……!”
그는 친한 옛 친구를 부르듯 연달아 다섯 의사의 이름을 불렀다. 펠릭스들은 이름을 불린 강시처럼 멍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쯧쯧쯧. 외국 의사 이름을 다섯 명이나 다 기억하셨네. 흑인 이름까지 기억하셨어요?”
“자네 그거 인종차별이다.”
“저 흑인은 체외순환사예요.”
“클리블랜드 센터의 체외순환사지. 세계 정상급 심장센터라고. 알지? 개라고 해도 그 개 주인의 이름을 기억해둬야 해.”
줄곧 입을 삐죽거리던 주 선생도 그 말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쪽을 향해 인사했다.
“닥터 펠릭스! 닥터 켈렌!”
펠릭스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멍한 눈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왜 실연이라도 당한 꼴들이야.”
“저거 영화에선 강시 바이러스 첫 발현 현상인데.”
“뭔 헛소리야. 좋은 생각 좀 해. 외국 의사들은 서로 관계가 복잡하다던데, 몰래 딸이라도 쳤겠지.”
“5P요?”
주 선생은 동공이 다 커졌다.
“5P를 어떻게! 그런 첨단 경험이 있으면 좀 전수해주지. 아니면 양 주임님이 경험이 있어서 바로 아신 건가요?”
“뭔 헛소리냐고. 그래 바이러스일지도 모르겠다.”
양 주임은 습관적으로 손을 저으며 이미 넋이 나간 나이 어린 실습생을 불렀다.
“가서 부축 좀 해. 대체 뭘 했길래 걸음도 못 걷는 거야.”
“네네!”
실습생은 할 일이 있었지만, 의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했다.
부축을 받은 펠릭스는 휘청이던 다리도 중심을 잡았고 다시 양 주임과 주 선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의실에서 뭘 하셨습니까?”
주 선생이 싱긋 웃으며 영어로 물었다. 조금 조심스럽게.
“영상 봤어요.”
켈렌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주 선생과 양 선생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평범하지 않은 영상이었어요.”
켈렌이 감탄하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영상을 같이 보셨군요.”
양 주임은 매우 좋은 태도로 그렇게 물었다.
“예. 이런 영상은 처음이었습니다.”
정신을 좀 차린 펠릭스의 눈빛이 그윽해졌다.
“나도야.”
켈렌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주 선생은 중국어로 역시 외국인은 못 하는 말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닐 수도 있잖아. 더 물어봐봐.”
“무슨 영상 보셨어요?”
양 주임이 심각한 얼굴로 하는 말에 주 선생이 다시 물었다. 켈렌과 펠릭스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
“능연 영상이요.”
그 말에 양 주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도록 놀랐다.
“능연이 그런 것도 찍어?!”
복잡한 심경으로 펠릭스 일행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눈 양 주임은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사실 처음에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전화번호 등 정보도 교환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돈독한 사교 관계를 맺었으니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 외국인들의 기분 또 왜 그런 기분인지를 알게 되자, 양 주임은 기분이 더 엉망이 되었다.
능연의 심장외과 쪽 실력은 이제 단순하게 하늘을 찌른다,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창서성 내 심장외과 순위도 크게 뒤흔들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양 주임은 머리에서 땀이 다 흘렀다.
“닥터 능은 어디 있습니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츰 마음을 안정한 펠릭스도 구체적인 일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못 봤습니다. 퇴근 시간이라 집에 갔을지도 모르죠.”
주 선생이 능연의 위치를 흘릴 리도 없고, 대충 대답하고 넘겼다. 펠릭스는 얼굴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닥터 능과 만날 수 있게 시간 좀 잡아 주실 수 있나요?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그럼요. 전해드리겠습니다.”
주 선생은 웃는 얼굴로 외국인들을 배웅했다. 펠릭스 일행은 마음은 회복했지만, 5P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은 여전했다. 특히 뇌와 정서가 크게 흔들려서 몹시 피곤했다.
눈으로 사람들을 배웅한 양 주임은 주 선생이 돌아오자 바로 물었다.
“능 선생 지금 곽 주임 옆에 있다며?”
“능 선생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 사람한테 다 알려줬다간, 팬한테 둘러싸여서 일도 못 하게요?”
주 선생이 콧방귀 뀌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오, 그럼 나는 보안 등급이 높은 거네?”
양 주임이 순간 기뻐하며 묻자, 주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세도 있으신데, 설사 능 선생이 어디에 있는지 아셔도 빨리 가지도 못하시잖아요. 팬 중에서도 게으른 유형이랄까.”
양 주임은 바로 눈을 흘겼다.
아무리 내 주변이 꿈쩍거리기도 싫어하는 중노인네뿐이라고 해도 젊은 홍안지기 하나 없을까. 아니다. 홍안지기가 능연 팬이 되면 더 최악이겠지.
양 주임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주 선생은 하품 한 번 하고 다시 숨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능연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한 건 주 선생에겐 별 타격 없었다. 병원은 원래 천재 생산에 능한 곳이고, 주 선생 곁에서 일어난 천재도 부지기수였다. 다들 능연처럼 실습생, 훈련의 시절에, 그것도 주 선생이 양보한 기회를 즐겁게 가져갔고 곧 빠른 속도로 실력을 향상하여 높이 올라갔다. 물론, 높이 올라간 속도는 능연하고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그러나 주 선생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응급의학과은 1년 전부터 이미 능연이 2인자가 되었고, 지금 곽 주임 수술이 끝내주게 잘 되었다는 건 능연이 여전히 2인자라는 뜻이었다. 주 선생은 농땡이만 칠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펠릭스 일행은 일찍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왔다. ICU에 가보니 오가는 의사들이 눈에 띄게 노령화했다.
의문을 품은 채 ICU에 들어간 그들은 맨 안쪽 방에 이미 누가 와 있는 걸 발견했다.
“저쪽이 닥터 능 환자던가?”
“응. 그럴 거예요.”
펠릭스가 확인차 묻는 말에 켈렌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그녀와 펠릭스가 수술한 환자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회복 속도는 수술과 관련 있지만, 환자 본인 상태도 관련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대체 무슨 원인 때문인지 다들 짐작했다.
좌자전이 방 안에서 입술을 뻐끔대며 ‘외국인이 왔다’고 알리자 능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만 했다. 쓸모없는 보험증서 대하듯이.
곽종군은 아직 말을 할 수 없는지 웅얼댔고, 좌자전은 이해심 많은 얼굴로 웃으며 설명했다.
“그 클리블랜드 센터에서 온 의사요. 능 선생 수술, 그러니까 주임님 수술 때문에 준비했죠. 현장에서 무슨 문제가 날까 봐요. 다행히 쓸 일은 없었죠. 주임님 수술 매우 순조로웠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곽종군은 말 참 잘한다는 눈빛으로 좌자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바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아마 능 선생 수술을 본 거 같아요. 음, 그러니까 바로 주임님 수술이요. 그랬으니까 뭐 물어보고 싶은 게 많겠죠.”
곽종군은 말 참 잘한다는 눈빛을 유지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좌자전은 어쩐지 속이 느끼해져서 바로 간병인에게 손짓했다.
“주임님이 좀 불편해 보이시네요. 면도 좀 해드리세요.”
“제가 할게요.”
한때 간병인 생활을 했었던 한미가 혼란스러운 틈에 ICU에 들어온 김에 나서자, 좌자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종군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면도가 필요한 게 아니야!
좌자전은 모른 척하며 재촉했다.
“급해 보이시네, 서둘러. 주임님, 수술 이야기 자세히 해드릴 테니 좀 기다리세요.”
곽종군은 할 수 없이 조용해져서 계속해서 눈빛으로 좌자전에게 물었다. 좌자전은 혼자 슬쩍 웃고는 입을 열었다.
“왜 안 돌아가고 남아 있는지 궁금하신 거죠?”
곽종군이 눈을 깜빡였다.
“멀리 온 김에 하루 이틀 있을 수도 있죠. 게다가 오늘은 수술 바로 다음 날 아닙니까. 가더라도 저녁에 가죠. 그 전에 한 번 와 보는 것도 당연합니다”
곽종군은 빠르게 눈을 깜빡이고는 눈꺼풀이 굳은 듯이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좌자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미소 지은 채 곽종군을 바라보며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사실 좌자전은 지금 곽종군의 머릿속 상태를 조금 상상할 수 있었다. 진정한 브레인스톰 아니겠어?
수술 전에 얼마나 기세등등했냔 말이다. 왼손으로 원장 책상을 내리쳤고, 오른손으로 상무 부원장의 책상을 내리쳤고, 양손으로 원무 위원회 회의 테이블을 내리쳤고, 팔꿈치로 모든 원무 위원의 목을 졸랐었다.
심장외과, 의교과 혹은 수술과, 마취과도 이틀 전에 내키는 대로 짓밟았었다.
곽종군은 회복하고 다시 돌아오면 병원은 그가 젊었을 때 모습으로 돌아가 있을 거라고 계획했을 것이다. 그가 부렸던 짜증, 분노, 횡포는 모두 시간읜 흐름에 따라 그리움, 동정으로 발효하여 차츰 귀여움으로 변할 것이라고.
시간 말이다. 그런데 그 시간에 문제가 생겼다. 발효 시간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우 간호사님 아직 계시네요. 그렇게 우리가 마음 놓이지 않으세요?”
교대하러 온 ICU 간호사가 응급센터 우 간호사에게 인사했다.
우 간호사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언제나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에 열중하며 기술을 연마했다. 그렇게 지금은 응급센터에서 최고로 완벽한 간호사가 되었고, 그런 이유로 ICU에 와서 곽 주임을 케어하게 됐다.
물론 주요 업무는 그래도 ICU 간호사가 하고 우 간호사는 협력하며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한편으로 곽종군도 아는 얼굴이 더 편할 것이고.
하지만 ICU 간호사들은 역시 다른 진료과 간호사가 오는 게 좋을 리 없지만, 곽종군과 능연 조합이라 선택의 여지를 준 것이었다.
마흔 넘은 우 간호사는 간호사 중엔 시어머니뻘이라 ICU 어린 간호사들보다 심리적 우세가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다.
“부담 줄여주려고 온 거지. 곽 주임님이 여기서 돌아가셔도 너희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게.”
ICU 간호사는 말문이 턱 막혀서 데이터들을 기억해 둔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곽 주임님 부담이 커지잖아요.”
“우리 주임님이야 군의관 출신이잖아. 이 정도 부담쯤이야. 주임님, 오늘은 좀 편안해지셨죠?”
곽 주임은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호수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편하면 뭐 하고, 안 편하면 뭐 해…….”
생에 미련이 없는 것 같은, 활기 없는 철학적 대사였다. ICU 간호사는 눈을 깜빡이고는 재빨리 할 일을 마치고 사라졌다.
우 간호사도 조금 얼떨떨해져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안 편하면 약 먹고, 편해지면 ICU에서 나가는 거죠. 그리고 빨리 퇴원하고. 아이고,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아까 그냥 쟤들한테 한소리 하려고 그런 거예요. 수술 엄청나게 성공했어요. 이런 상태로는 돌아가시고 싶어도 못 돌아가세요.”
“죽고 싶어도 못 죽는구나.”
곽종군이 한숨을 내쉬자, 우 간호사는 시퍼레진 곽종군의 표정을 잠시 보며 고민했다.
“기분 안 좋으시면, 어떻게든 사모님하고 들어오실 수 있도록 해드릴까요?”
그저 ‘절망보다 더한 슬픔은 없다’ 상태였던 곽종군은 갑자기 표정이 굳더니 몇 초 후 미간이 서서히 그리고 단호하게 찌푸려졌다.
“아이고, 아이고고!.”
“왜요, 왜 그러세요.”
우 간호사는 갑자기 긴장하며 양쪽에 모니터링 기기를 살폈다.
“아파.”
곽종군은 진단할 수 없는 답을 간단하게 내뱉었다.
“진통제 드려야 하는지, 선생님 불러올게요.”
“됐어.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아. 그냥 앓게 내버려 둬.”
곽종군은 단호하게 우 간호사를 말렸다. 괜히 의사를 불러오면 아픈 척하기 힘들어지니까.
우 간호사는 영문을 알 수 없어져서, 저도 모르게 감탄하는 눈빛으로 곽종군을 바라봤다.
“역시 곽 주임님 대단하세요. 이렇게 큰 수술 하고도 참으시다니. 어제 환자 하나는 양팔, 양다리 부러졌을 뿐인데 어찌나 울고불고 난리던지.”
곽종군은 우 간호사가 원래 아부 실력이 이렇게 별로였는지, 아니면 내가 곧 죽을 거 같아서 아부할 생각도 없어진 건지 떠올려 보며 우 간호사를 주시했다.
“주임님, 주무실 수 있으면 좀 더 주무세요. 푹 쉬어야 수술한 자리 빨리 낫죠.”
우 간호사가 호의로 다시 한마디 하자, 곽종군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웃다 보니 온몸이 다 괴로워졌다.
상처가 낫는 건 좋은데, 며칠 전 뿜은 불벼락에 고장 난 사람들은 어떻게 마주해야 좋을지 몰랐다.
차라리 정말 ICU에 계속 있을까. 적어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니까 며칠은 안심하고 있을 수 있을 텐데. 마음 편하게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마음 편하게 시간도 보내고, 마음 편하게 잠도 자고······.
“구 선생님!”
곽종군의 상태가 이상하자, 우 간호사는 바로 의사를 불렀다. 검사하라고 몸을 맡기고 가지런히 누운 곽종군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능연과 외국인들이 다시 나타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능······연.”
곽종군이 힘겹게 부르자 능연이 바로 다가갔다.
“주임님, 어떠세요? 불편한 데 있으세요?”
곽종군은 쓴웃음 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온몸이 불편해······. 하지만 괜찮을 거야.”
그도 의사라서 수술 후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ICU 의사도 다가왔다.
“오늘 상태 다 좋아요. 그럼 말씀 나누시고, 무슨 일 있으면 부르세요.”
ICU 의사가 사라진 다음, 곽종군은 능연을 향해 웃어 보였다.
“우리 과, 잘 되고 있지?”
“예.”
“주 부원장님도 한 번 들렀다 가셨고요. 간호사, 실습생, 훈련의 그리고 연수생들 모두 능 선생 서포트하고 있습니다. 다른 의사들도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고요. 큰 변화 없습니다.”
함께 온 좌자전이 옆에서 덧붙였다. 능연의 대답보다 훨씬 정보가 많았다.
병원 내부의 주요 권력과 이권은 사실 모두 부주임 의사 이상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응급센터는 곽종군과 몇몇 팀장이 가장 큰 권력과 이권을 가지고 있었다. 곽 주임이 입원한 후, 바로 반역을 꾸미지 않은 것만 봐도 곽 주임이 힘을 잘 분배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레지던트 이하 초짜 의사와 간호사들은 능연 밑에서 일하는 걸 더 좋아했다. 능연은 수술도 많이 하고, 돈도 밝히지 않아서 모두의 복지와 보너스가 늘어나니 당연히 매우 만족해했다.
겨우 시작 며칠의 상황이지만, 좌자전과 곽종군에게는 가장 위험한 며칠로 느껴졌을 것이다.
곽종군은 조금 안도하고는 외국인들이 거슬리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아직 있는 거야.”
“능 선생이랑 이야기 나누러 왔대요. 곧 손들걸요.”
“응?”
“능 선생이 그쪽 수술 문제점을 지적했거든요.”
좌자전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받아들이지 못하긴 하는데, 말로 이길 수 없으니 자기네 환자랑 주임님 예후 비교하러 왔습니다.”
곽종군의 얼굴이 시커메졌다. 며칠 자리를 비웠다고, 이제 도구로 전락한 거냐?
좌자전은 여전히 미소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까 한 번 살폈는데, 주임님 상태가 그쪽 환자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루만 더 지켜보고 내일이면 일반 병실로 가셔도 된답니다.”
“안 가.”
곽종군이 이를 갈며 하는 말에 좌자전은 멈칫하고는 일반적인 미소로 바꿔 지었다.
“그러셔도 되고요. ICU에 계셔도 됩니다.”
“비교하고 싶으면 수술 더 해서 비교해야지.”
곽종군은 이제 말하기가 조금 편해져서 조금 길게 말해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다만 정신적으로 부담이 조금 컸다.
“병상 아까워서 그러죠. 능 선생은 저 사람들이 이해하든 말든 아랑곳도 안 할걸요? 하지만 뭐 어쨌든, 주 선생이 빈 침대 몇 개 만들어내서, 오늘 오후에 수술 같이 할 겁니다.”
“무슨 수술?”
“TS요.”
곽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흉부외과는 운화 병원에서 중급 규모였고, 심장외과와 조금 관련도 있어서 압박하기 괜찮은 수술이었다.
곽종군은 가까스로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왜 심장외과로 안 하고.”
“아이고 참, 심장외과 병상은 능 선생이 자기가 쓰려고 하죠.”
“곽 선생!”
켈렌, 펠릭스 등 다섯 외국인은 자기 환자를 대충 살핀 다음 쭈뼛쭈뼛 곽 주임 쪽으로 왔다.
두 주치의가 간단한 검사를 한 후, 펠릭스가 통역을 통해 말을 전했다.
“곽 주임님, 축하합니다. 잘 회복하고 있네요. 수술도 매우 순조로웠나 봅니다.”
“음.”
곽종군은 외국인만 보면 들러붙는 사람이 아닌 터라, 환자복 안이 나체만 아니었다면 활개를 펴고 누웠을 정도로 편안하게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간단한 검사 좀 하겠습니다.”
펠릭스가 바로 앞으로 나섰다. 곽종군도 반항할 여지도 없이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펠릭스 정도 되는 외과 의사는 보통 ICU까지 와서 회진할 필요가 없고 대부분 원격으로 교류만 한다.
의사가 오더를 내리고 환자가 수액 맞고 주사 맞는 건, 납치범과 인질의 관계와 조금 비슷하다. 켈렌과 펠릭스 같은 의사는 고급 납치범이라 직접 감옥에 가서 인질과 대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곽종군에게는 관심이 많아서 다들 상의한 듯이 각자 설비를 한두 대씩 맡아서 살폈다. 데이터뿐만 아니라 설비의 상태, 연결 상태, 브랜드 아이템 등등까지 살폈다.
“기계 고장 나지 않게 조심합시다.”
건강했을 때 같으면 바로 욕했을 텐데, 곽종군은 지금은 멍청하게 웃기만 했다.
“그럴 일 없습니다. 다 새것이네요.”
“물론이지. 수술 전에 능연이 싹 다 바꿨는데.”
곽종군은 뿌듯하게 웃으면서 말하고는, 길게 말한 바람에 숨을 좀 헐떡이면서 지친 듯이 다시 바로 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미소는 머금고 있었다.
몸이 좋아진 걸 명확하게 느낄 수 있어서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능연이 계속 집도하고, 심장 수술도 다시 배우고, 계속해서 연습하고 제약회사하고 소통해서 설비 바꾸고, ICU 설비까지 업데이트하면······.
곽종군은 기운만 있으면 펠릭스 일행을 붙잡고 제대로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자랑할 필요도 없이 펠릭스 일행은 이미 의문이 가득했다.
수술이 끝난 다음 날엔 그래도 목을 빳빳하게 치켜들고 능연의 수술을 내려다봤다면, 이틀이라는 발효 시간을 거친 후 지금은 능연의 수술과 자신들의 수술에 대한 더 똑똑하고 더 많은 인식이 생겼다. 동시에 떠오른 의문점도 더 많아졌다.
켈렌은 각종 검사를 마친 후 못 참겠다는 듯 먼저 물었다.
“수술 내내 순환이랑 심근 수축을 체크했다고 그랬죠? 보통 전하행지(anterior descending branch: 관상동맥 앞쪽에 갈라져 나온 주요 부분) 문합할 때나 잠시 그렇게 해요. 내내 체크하다니,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아요.”
능연은 의학 방면 질문엔 벽을 치지 않고 질문받은 건 반드시 대답하는 편이었다. 그런 면에선 아직도 학생 같은 면이 있었다.
지금 역시 켈렌의 질문에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게임할 때, 움직일 때도 스몰 맵을 수시로 주시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갑자기 의학에서 게임으로 이야기가 튀자, 통역사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그때, 여원이 생각지도 못한 구석에서 튀어나와 영어로 입을 열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운전할 때, 룸미러 계속 봐야 하죠?”
켈렌은 같은 여자인 여원은 거들떠보기도 싫은 듯 여우가 작은 다람쥐를 바라보는 표정을 지었다.
“우회술을 지금 운전이랑 비교하는 거예요? 우회술이 얼마나 복잡한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데······.”
“그쪽이 능 선생이 우회술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거겠죠.”
여원은 정기 간행물에나 이름을 올리는 사람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능연을 옹호했다.
“지금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어요?”
켈렌은 너무 놀란 나머지, 표정을 관리하지도 못했다. 켈렌은 클리블랜드 심장센터의 주치의고, 학술적으로는 경쟁자 혹은 더 훌륭한 사람이 많겠지만, 임상 의학 쪽으로는 기본적으로 이미 심장외과 정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적 원사를 통해 큰돈을 들여 모셔와 보험으로 쓴 것이고.
능연을 대할 때는 그래도 수술 영상도 있고 어느 정도 겸손하고 동등하게 대할 수 있지만, 여원을 대할 때는 그다지 인내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원 같은 의사는 클리블랜드 센터에서 실습생이 될 기회도 있을까 말까였다. 그런데 여원의 경력으로는 클리블랜드 센터로 연수 가기엔 부족할지 몰라도, 능연 밑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견문을 넓힌 건 사실이라서 능력자만 보면 납작 엎드리는 그런 시기는 진작 벗어났다.
여원은 원사는 아닌 켈렌 같은 의사에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되물었다.
“그래서, 이해했어요?”
켈렌은 머리가 텅 비어 하마터면 하원정화(化)될 뻔했다. 곁에 있던 펠릭스는 웃음을 참으며 쿡 소리를 냈고, 화풀이할 곳이 생긴 켈렌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이해했어요?”
펠릭스 역시 잠시 하원정화 했다가 곧 표정이 엄숙해졌다. 그 자리에 있는 외국 의사와 중국 의사 모두 펠릭스를 바라봤다. 지금 현장에서 곽종군을 제외하면 경력이 가장 긴 의사였고, 이론적으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의사였다.
갑자기 납치당한 펠릭스는 재빨리 머리를 굴린 후에 깊이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심장 우회술은 아르헨티나에서 발전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수술은 태생적으로 제3 세계 국가에서 연구하고 발전하기 유리한 것 같군요. 닥터 능의 수술 효과가 매우 두드러지고, 기술 쪽도 매우 잘 나타낸 것도 이상할 것이 없어요······.”
간단한 몇 마디로 펠릭스는 다시 목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와 켈렌을 비롯한 사람들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렸다. 기술이라는 건 감추기 매우 어려운 것이니까.
침대에 누워있던 곽종군이 짐짓 헛기침하며 능연을 불렀다.
“능연······. 자네가······ 사용한 기술을 말 좀 해보게.”“새로운 기술을 쓴 게 아니라서 딱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없다고?”
“없습니다.”
펠릭스와 켈렌이 동시에 돌아보며 묻는 말에 능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말도 안 돼······.”
동시에 입을 연 펠릭스와 켈렌은 다시 동시에 입을 닫고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수술 전 과정 영상을 모두 본 둘은 재빨리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고는 얼굴을 찌푸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 후, 켈렌이 능연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정말로 독특한 기술을 채용하지 않았다고요? 왜죠?”
“이미 성숙한 기술이 더 안정적이니까요.”
능연은 의아한 듯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번 수술 목적은 혁신이 아닙니다.”
여원은 까치발을 들며 진지하게 말했다.
“능 선생은 곽 주임님 수술하려고 일부러 심장외과 수술을 배운 겁니다. 특히 우회술을요.”
켈렌과 펠릭스는 철저히 할 말을 잃었다. 여원은 두 사람의 표정에 드디어 뿌듯해졌다.
“당신들은 능 선생의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 말을 할 때, 여원은 자기 기술까지 승화한 느낌이 들면서, 절세 소장품을 찾아냈을 때와 버금가는 짜릿함을 느꼈다.
“능 선생, 가시죠.”
펠릭스는 수술 통로 안에서 양손을 가슴 쪽에 치켜들고 능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켈렌을 향해서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켈렌.”
“펠릭스, 닥터 능.”
켈렌 역시 손을 치켜들고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능연도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인사하고 옆 수술실로 들어갔다. 펠릭스는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마지막으로 3번 수술실로 들어갔다.
펠릭스와 켈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그들과 능연 각자 수술실에서 동시에 우회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무도 시합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병원과 환자도 수술로 시합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고.
하지만 수술실에 들어가는 찰나, 펠릭스와 켈렌은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을 내쉬면서 직업 존엄과 자존심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존엄이란, 계속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현실 사회는 도박장과 달리, 도박에 참여한 사람은 운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펠릭스와 켈렌도 능연의 기술은 인정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수많은 의문은 여전했다. 서전이라는 품종은 대부분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능연처럼 뛰어난 수준의 의사는 어떤 계기로든 두각을 드러낼 때가 온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이.
물론 갑자기 툭 튀어나온 명의도 있지만, 대개 혁신적 임상 기술 발명 때문이지 학습과 전통을 계승한 성숙한 기술 때문이 아니다.
이 외국 의사들은 심지어 중국 사람이 환자 선택 등 방면에 손을 썼을까 봐, 오늘 수술 전에 특별히 준비하고 검사까지 했었다.
심지어 자국에서 어시까지 불러서 모두 공평하게 어시 둘의 서포트를 받으며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운화 병원 내부적으로도 기꺼이 두 외국 의사의 지시하에 공평, 공정하게 조정해 주었다.
심장외과 의사 셋이 동시에 심장 우회술 세 건을 진행한다는 규모와 강도 때문에 마취과 의사가 모두 출동했고, 덕분에 간담췌, 소화기 외과의 일상 수술이 다 뒤로 밀렸다.
하지만 운화 병원 윗선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세 심장외과 의사의 정상급 대결, 비록 공식 기관과 민간 조직에서 아무도 이 일을 지지하지 않지만, 분명 매우 드물고 귀한 기회였다.
심지어 운화 병원 윗선 눈엔 능연이 이런 대결에 끼어들 수 있는 것만 해도 매우 대단하게 보였다. 여원 혹은 적 원사 사단의 보고가 있어도 그들의 심리적 열세를 보완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은 자신만 설득되어서 될 일이 아니라, 학계 전체가 설득되어야 소용 있다고 판단한 병원 윗선들은 사실 펠릭스 일행이 제안한 동시 수술 방안을 매우 지지했다. 시합이라는 단어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지만, 기세와 형태는 이미 시합이었다.
수술실 안에 있는 연문빈과 사람들도 준비를 충분히 한 모습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능연은 그들의 태도에 꽤 흡족해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달라진 거 있어요?”
“수술 판단이랑 거의 일치해.”
오늘은 아예 마취의 소가복 옆에 앉아 있던 여원이 보고해야 할 때가 오자 그제야 의자에서 내려와 약물 등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능연은 평소와 다름없이 설명을 들으면서 MRI를 판독했다.
수술실 안에서 능연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능연이 운화 병원에 들어온 지 고작 3년 정도지만, 기술적 권위는 진작에 세운 후였다.
다른 의사였다면, 능연과 나이가 비슷한 의사는 둘째치고 평범한 주치의도 수술실에 들어와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두 팔을 치켜든 채 영상 리포트를 보거나 하면 간호사들이 가장 먼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욕을 해댈 것이다. 그러다가 마취의가 자다 깨거나 하면 같이 욕할 것이고.
다들 퇴근이 급급한 직장인이라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 하지만 능연 앞에선 아무리 개성 넘치는 직장인이라도 고분고분해진다.
여원 역시 그랬고, 고분고분 상황을 설명한 다음 다시 고분고분 의자로 돌아가서 두 다리를 흔들어대며 수술 시작하길 기다렸다.
오늘도 역시나 수술대에 끼어들 자격은 없었지만, 논문 소재 수집을 위해 마찬가지로 수술실에 필요했다.
“시작하죠.”
능연은 환자 앞으로 가서 섰다. 환자도 심장외과에서 넘어왔다. 강 주임 진료 때 받은 환자인데, 이런 상황이니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펠릭스와 켈렌이 공개적으로 환자를 받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풀 화면 카메라도 돌아가고 있어.”
재빨리 제자리로 간 연문빈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누가 보는데요?”
능연이 담담하게 물었다. 연문빈은 이렇게 대놓고 물어도 되나, 싶다가 멈칫하고는 곧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모든 이가?”
“정확히요.”
“음, 어디에 방송되냐면, 우리 병원, 성립, 육군 병원…….”
연문빈이 주절주절 늘어놓자, 능연이 ‘아!’ 하고 연문빈의 말을 자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평소랑 똑같잖아요. 그런데 왜 모두라고 하세요?”
연문빈은 속으로 못 살겠다고 꿍얼거리며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능 주임님, 내가 잘못했다.”
능연이 다시 심사하는 눈빛으로 연문빈을 바라봤고, 연문빈은 묘하게 당황해서 허둥지둥 덧붙였다.
“오늘 아침에 공문 내려왔잖아. 그래서 다 같이 상의해서 이번 수술부터 주임님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능연은 고개를 저으며 펜을 받아서 환자 몸에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님은 이렇게 부르는 거 싫어?”
연문빈이 나직이 묻자, 능연은 별 설명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지금처럼 능 선생이라고 불러?”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메스를 건네받아 절개하기 시작했다. 신선한 혈액이 환자 몸에서 흘렀고, 모두의 긴장감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뭐랬어. 주임 같은 호칭으로 안 불러도 된댔지. 촌스럽잖아. 마연린은 멍청해서 그래.”
여원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면서 조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시할 필요도 없어 심심한 김에 가볍게 마연린을 팔아버렸다.
세컨 어시 자리에 선 마연린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제야 좌자전이 이런 아부 기회를 왜 잡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아니 나는 그냥, 명확하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출장 수술 나가는 다른 팀은 주임이잖아.”
마연린이 힐끔 능연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
“우리 능 선생이 주임이라는 타이틀이 왜 필요해. 어쨌든, 교수인데.”
“그래도…… 되죠…….”
여원의 말에 마연린이 나약하게 대답했다.
“마취 안정시키죠.”
능연은 잠시 손을 멈추고 마연린을 바라봤다.
“복습할게요. OPCAB 수술 배제 조건 말씀해 보세요.”
능연 밑에 있는 외과의는 서양식 외과 체제와 은근히 비슷했다. 물론 심장 수술은 외국에서는 모두 전문 교육을 받는 기술이라서 하급 의사들에겐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당연히 접하는 지식이 더 많아져서 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고, 폐단은 학습 부담이 대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움을 추구하는 중학생 혹은 대학생과 달리, 병원에 들어온 젊은 의사들은 학습 부담과 미래의 성과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있다.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결과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이 시대에, 열심히 하면 결과가 돌아오는 데다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쉽게 포기할 사람은 없었다.
마연린 역시 잠시 멈칫하다가 곧 미친 듯이 기억을 더듬으며 외운 것을 읊기 시작했다.
“배제 조건은 최근 심근경색 이력, 좌심실 기능 장애, 경·중도 대동맥 혹은 승모판 역류…….”
여원은 메기처럼 버둥거리는 마연린을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여 선생님, 하대정맥 주변 해부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세요.”
능연이 갑자기 던진 질문에 여원은 흠칫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느 방면 말씀이신지…….”
“아는 대로 다요.”
여원의 얼굴은 순간 찡그려졌고, 곁에 있는 소가복의 얼굴엔 꽃이 폈다.
여원이 더듬더듬 대답하는 소리가 다시 수술실에 퍼졌고, 카메라 때문에 주저하던 어시와 간호사들은 순간 흥분하고 긴장했다.
그리고 수술실 밖에서 모니터로 지켜보던 이 장면을 바라보던 의사들은 순간 짧은 침묵에 잠겼다.
이 사람들의 타이틀과 교육식 수술, 어쩐지 안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능연, 수술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닌가?”
운화 병원 고위층 몇이 회의실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금인 병원 고위층이 이렇게 모이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라, 같이 모여 능연의 수술을 보는 만큼 감탄할 만한 장면을 보길 바랐다.
두 클리블랜드 의사를 이길 수 있다면, 이 건물에 있는 모두에게 지극히 좋은 일이었다. 그 클리블랜드 의사 둘을 제외하고는.
그런데 모니터 안의 능연은 이 수술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부하들이 더듬대며 틀린 답을 내놓자, 오히려 이 윗분들이 초조해져서는 아예 대신 대답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주 부원장이 우아하게 잔을 들고 차를 홀짝였다.
“능 선생은 원래 직설적인 사람입니다. 오늘 수술이 특수하다고 알려주지도 않았지?”
고위층들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니까 모르지. 팀원 교육시키는 것도 당연하고.”
주 부원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어차피 훈련된 팀이라서 수술은 능숙하게 합니다. 평소처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귀띔이라도 했어야지. 기자들도 불러왔는데, 왜 아무도 능연에게 알리지 않았지?”
원장이 빤히 보며 묻자, 주 부원장은 조금 껄끄러워져서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그런 건 곽 주임이 하니까요. 곽 주임이 없으니 다들 주제넘을까 봐 몸 사린 거겠죠.”
“이게 왜 주제넘은 일이야, 나쁜 일도 아닌데. 일부러 대규모 매체 기자들을 불렀는데”
“저한테 시키지 마세요. 능연은 자기 리듬이 있는 사람이에요.”
“큰일도 아니구먼. 그냥 이야기 좀 하라는 건데 뭘.”
주 부원장이 말려들기 싫어 바로 거절하자, 원장이 빙긋이 웃으며 설득했다. 주 부원장 역시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주 부원장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원장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윈윈할 일인데, 이런 기회를 놓치면 얼마나 아깝냔 말이지.”
부원장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병원은 원래 이런 곳이다. 대부분 정부에서 신임하는 의사를 원장에 세우기 때문에, 원장이라고 해서 모두 경력, 인맥이 두텁지는 않게 된다.
그리고 부원장들 역시 원장 엉덩이를 쫓으며 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정부 쪽에 줄이 별로 없어서 평생 병원 원장 자리와 인연이 없어서 한 해, 한 해, 해나갈 뿐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부원장들이 원장보다 병원의 의사와 진료과에 더 관심이 많다. 진료과 주임 앞에서 큰소리칠 수 있거나 혹은 진료과 주임이 말을 듣게 하는 부원장만이 병원에서 오래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많은 병원의 진료과 주임이 부원장 자리를 겸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들 진료과를 기본으로 여기고 있어서, 주임들은 차라리 평생 진료과 주임 자리에 있을지언정 뿌리도 없는 부원장 자리에 오르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능연에게 이야기를 할 수는 있어도,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내 말이라면 능연이 무조건 들어!’라고 장담하지 못했다. 게다가 능연이 말을 듣지 않아도 제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다른 의사와 달리 능연은 꼬투리 잡힐 일이 드물고 드물었다.
원장은 화도 나고 우습기도 해서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곽 주임이 어서 돌아와야겠군.”
곽종군이 테이블을 내리치긴 해도, 말을 들을 땐 잘 들었지.
“맞아요. 능연과 관련된 일은 곽 주임이 제일 낫죠. ICU에서 나오면 그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이번에 좀 아깝게 됐군.”
주 부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원장은 아쉬운 듯 모니터를 바라봤다. 기자들 인터뷰와 클리블랜드에서 온 의사들과 비교는 또 다른 문제였다. 펠릭스와 켈렌이 승부욕을 발동한 모처럼의 기회가 다시 오리란 법이 없었다. 일부러 꾸미려고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고.
원장 입장에서는 운화 병원에 클리블랜드 의사에 버금가는 심장 우회술 기술을 가진 의사가 있다는 것만 알려지면 앞으로 장점이 끝도 없이 펼쳐질 게 보였다.
주 부원장은 그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능연이 우리 병원에 들어 온 지 얼마나 됐다고요. 이런 리듬이면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원장은 콧소리를 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리듬, 다들 그 점을 가장 신경 썼다. 능연은 3년이라는 시간 만에 심장 우회술을 해냈다. 일반적인 교육 체제에서는 나타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만, 능연이 항상 불가능해 보이는 유명인과 연결될 때마다 놀라움이 배가 될 뿐이다.
“그렇다고 오늘 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부원장 하나가 아예 이기고 진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능연의 움직임 좀 보세요. 동작이 빠르지 않은 것만 보지 말고, 쉴 새 없이 지도하면서도 외국 의사 진도랑 비슷합니다.”
“켈렌보다는 빠른 것도 같군.”
비교를 시작하니 누군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니, 능연의 진도가 더 빠른 것 같군. 흠, 예상 밖일세.”
원장은 순간 감정이 고조됐다.
“어찌 됐든 능연 기술이 더 낫습니다.”
옆에 있던 부원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심장 수술은 한 걸음에 세 걸음을 내다봅니다. 실력이 아니면 이렇게 순조로울 수도 없어요.”
원장도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해석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능연 실력이 펠릭스보다 낫고, 켈렌보단 확실히 뛰어나네.”
심장외과 회의실에도 의사 몇이 몰래 보고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커튼도 슬라이드를 본다는 이유로 꼼꼼히 내려 있어서, 공기가 통하지 않는 회의실에서 다들 탁한 공기를 마시며 끽 소리도 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 내공이지, 뭐.”
“맞아. 켈렌도 사실 의식하고 속도를 내고 있어. 움직임 봐봐, 빠른 길을 택하고 있어. 하지만 소용없겠어. 심장 위치 바꾸는 것도 시간이 저렇게 오래 걸리니, 뭐.”
“말이 쉽지, 자넨 얼마나 걸리나? 지난번에 10분 만에 겨우 거즈 댄 게 누구더라?”
“8분이거든!”
“10분이거든!”
“8…….”
“그만 좀 해.”
이량이 두 주치의의 논쟁을 자르며 입을 삐죽였다.
“10분이든 8분이든, 능연이 우리 수술을 가로채는 게 문제지. 이러다가 능연 부하들까지 우리 수술하겠다고 나서겠다.”
“그러진 않을걸. 연문빈은 수부외과 수술로 이름 좀 날리고 있어서 설사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대도 그렇게 빠르진 않을 거야. 기껏해야 손 좀 대고 말겠지.”
이량은 지금 그게 그 말이냐는 눈빛으로 주치의를 힐끔 바라봤다.
하지만 작은 방에 함께 틀어박혀 있는 의사들은 이미 허탈해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 큰 나무가 있으면 좋잖아. 연문빈 훈련의 시절에 나는 벌써 수술 시작했는데, 이제 누구는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잖아. 몇 년 지나면 특별 명단에도 오르겠다.”
“그렇게 빠르기야 하겠냐. 게다가 수부외과는 돈도 못 벌어서 우리 심장외과보다 나을 것도 없어.”
“그래도 심장외과보다 듣기는 좋잖아.”
“어렵고 듣기 좋은 거 고를 거면 간 쪽으로 가겠다. 돈은 벌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어렵고 돈도 못 버는 과라는 거네.”
그 이야기에 다들 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심장외과 의사들은 생활이 편치 않은데, 운화 병원처럼 대충 굴러가는 심장외과는 더 편치 않았다.
“사실…….”
의사 하나가 모니터 속의 능연을 바라보며 말꼬리를 길게 늘이자, 다른 의사가 기대에 가득 차 한참 기다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실 뭐?”
“별건 아니고, 사실 능연이 심장 우회술을 잘하는 게 뭐가 대수일까 싶어서. 우리 순위에 영향이라도 주냐?”
“그러네.”
“일리 있어.”
사람들이 히죽대며 마음을 다스리는 사이, 모니터 너머 능연의 수술이 곧 끝나갔다. 그리고 15분쯤 뒤에야 펠릭스의 수술이 끝났고, 켈렌은 펠릭스보다 적어도 10분은 더 걸렸다.
시간이 다는 아니지만, 심장외과에서는 시간이 80% 정도는 실력을 나타낸다.
“됐다. 가자.”
이량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 주임의 심복인 그는 오늘 수술 결과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심장외과 지위가 낮아지는 걸 본 데다가 한편으론 운화 병원 심장외과가 올라간 걸 보았다.
능연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좋다, 싫다가 아니지만, 자기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대에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량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저도 모르게 계단을 내려가 통로를 지나 응급센터에 도착했다. 뒤이어 이량은 앞에서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는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이 새끼가.”
이량은 화가 나서 사제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네가 감히 나보다 먼저 투항하러 와?”
펠릭스는 고개를 치켜들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이 매우 순조로웠다. 혼신을 다해 움직였고, 준비도 충분했던 데다가 운도 괜찮아서 수개월 동안 가장 순조로운 수술을 마친 느낌이었다.
펠릭스는 지금 무적의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자신이 없었으면 심장외과 의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능연의 수술 실력이 대단하지만, 모든 수술을 이렇게 순조롭게 할 순 없을 것이라 여겼다. 동 시간에 진행한 수술 세 건 중에 자기처럼 이토록 순조롭고 수월한 수술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펠릭스는 장비를 벗어 던진 후 고개도 돌아보지 않고 샤워실로 향했다. 땀 냄새를 깨끗하게 씻어낸 다음 상쾌한 기분으로 능연이 찬사를 던지며 패배를 인정하는 걸 맞이하고 싶었다.
“닥터 펠릭스!”
펠릭스는 샤워실 입구에서 예상치 못하게 능연과 조우했다. 막 샤워를 마친 능연은 더 상큼하고 더 멋져 보였다.
능연은 기분이 좋은 듯이 펠릭스를 보자마자 바로 인사했다. 바로 수술실에 갈 생각도 없는 듯했다. 펠릭스 역시 기분 좋게 능연에게 ‘Hi!.’ 하고 인사한 다음 샤워실에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뭐지? 왜 능연이 여기? 게다가 샤워를 이미 마쳤어?
펠릭스는 바로 ‘날 속인 건가?’ 하고 생각했다. 갑자기 대학 시절, 몇 명이서 시체 보관실에서 야식 먹기로 약속했다가 가장 간 큰 아이를 방 안에 가둬놓고 겁쟁이들이 문밖에서 비웃던 일이 떠올랐다.
펠릭스는 화가 치밀어서 바로 뒤돌아 능연 곁으로 다가가 고함쳤다.
“이건 수술이라고! 친구들끼리 하는 게임이 아니란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능연은 펠릭스를 힐끔 보고는 계속 앞으로 향했다. 주변엔 항상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고, 처음엔 대답해 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한 대답만 돌아오다 보니 이제 기본적으로 이런 일엔 면역이 된 상태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할 것!
정상인이면 높은 확률로 다시 묻지만, 다시 묻지 않는 사람은 좀 모자라거나, 아니면 모자란 말을 하고 있는 거라서 상대할 필요가 없다.
펠릭스는 순간 뇌가 다운됐지만, 빠른 속도로 정상이 되었다. 심장 안의 중소형 혈액 펌프가 빠르게 신축했고, 눈앞이 번쩍 뜨였다. 그는 말투를 바꿔서 다시 말을 꺼냈다.
“왜 여기 있어요? 수술은?”
“다 했어요.”
능연은 빙빙 돌릴 이유가 없어서 담담하게 펠릭스를 바라봤다.
“그쪽 수술은요?”
펠릭스는 능연이 은근히 비꼬는 건가 싶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심호흡하고는 말을 이었다.
“막 끝났습니다. 수술 시간 1시간 25분.”
작업 준비와 가슴을 닫는 등 후속 작업을 제외한 순수한 수술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 문헌, 리포트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속도였다.
능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잘하셨네요.”
다만 펠릭스의 귀엔 윗사람의 칭찬처럼 들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능연은 정말로 그런 의미로 이야기했으니까.
클리블랜드 명성 때문에 적 원사를 통해 클리블랜드 사람을 초청했고, 한편으로 자기 우회술 기술에 자신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곽 주임 수술 후, 능연은 정신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승화한 느낌이었다. 원래도 기술 등급은 펠릭스 일행보다 높아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내가 더 낫다는 태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펠릭스와 한두 번 접촉하는 것도 아니라서, 자기가 펠릭스를 지도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도 확신했고. 그렇다면 스승의 마인드로 ‘Very Good!’이라고 칭찬해 줘도 무리는 없지 않나?
펠릭스는 점점 평정심을 잃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북미에선 지존인 나, 닐 W 펠릭스를 감히 하찮은 동양인 의사가 가르치려 들어?
펠릭스는 심호흡하고 제대로 혼내주려고 말을 고르며 능연을 바라봤다. 그때, 능연은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전하행지 처리할 때 좀 느리더라고요. 그때 상황이라면 카트 교수의 기술을 택해도 됐을 텐데.”
만반의 준비를 끝냈던 펠릭스는 순간 멈칫했다.
어쩐지…… 일리가 있어!
아직 샤워도 못 한 펠릭스는 초조한 듯 몸을 문질러댔다. 뭐가 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처럼 있는 듯 아닌 듯했다.
“카트 교수의 방법…… 을 써도 되지만……. 하지만……. 하지만…….”
펠릭스는 순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을 좀 가져요. 모험할 만하잖아요. 설사 실패해도 크게 해될 건 없어요.”
현실은 게임이 아니라서, 매번 모험할 때마다 리스크와 이익이 비례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리스크가 낮고 이득이 높은 방안은 의사들의 선택 리스트에 종종 나타난다.
펠릭스도 이유가 있어서 선택하지 않았고, 틀린 것도 아니었다. 수술 중에 최고로 좋은 방안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주식 할 때 언제나 최저점에서 사서 최고점에서 팔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차트를 살피고 전체 흐름을 읽어 다시 도전할 시기니까 당연히 갈고 닦아 완벽을 도모할 때였다.
펠릭스는 아무런 말 없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당신은 수술할 때 그런 걸 떠올리면서 합니까?”
“가설이니까 고민할 필요 없죠.”
능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본인이라면 떠올렸다는 거잖아요. 그죠?”
펠릭스는 원하는 게 있으면 체면도 버릴 수 있는 외과의라는 동물을 너무나 잘 알았다. 능연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건 구체적으로 닥쳐 봐야 확실히 대답할 수 있겠는데요. 음, 그래요, 생각해 냈을 겁니다. 아니, 확실합니다.”
펠릭스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해야 좋을지 몰라서 할 말이 없었다.
“능연 선생, 수술 시간은요?”
펠릭스는 방향을 바꿔서 질문했다.
“1시간 10분?”
펠릭스는 손가락을 꼽아 계산해 보고는 정말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꽤 잘했어요.”
능연이 다시 한 번 칭찬했다.
펠릭스는 기분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비트코인으로 크게 잃은, 그런 엉망진창 말이다.
“걸어, 걸어. 3인치 더 위로! 3인치가 얼마인지 몰라?”
“잘 들어! 빨리 움직이고!”
“됐어. 이쪽은 거의 다 됐으니까 빨리 따라와.”
여원은 운화 병원 응급센터 후문에서 제약회사 직원들을 이끌고 바삐 움직이느라 목도 쉬고 팔다리도 줄어들었다.
어디에서 온 건지 모를 광고 회사와 시공팀도 눈을 부릅뜨고 바삐 움직였다.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플랜카드, 포스터를 걸어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요구하는 건 많아서 제약회사와 병원에서 사는 밥이 아니었다면, 돈을 준대도 하기 싫었다.
여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대면서 담배 피우고 있는 작업자 둘을 재촉하고 작업반장도 위협했다.
“빠듯한 시간까지 고려해서 페이 계산한 거라고요. 계속 지체하면 바로 사람 바꿔 버릴 거예요. 돈도 못 받아요, 그럼!”
“세 번째 하시는 말씀입니다.”
작업반장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면서 작고 귀여운 여원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까진 반드시 끝낼 테니까, 진정하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쪽에서는 절대로 문제 생기면 안 돼요!”
여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는 물 한 모금 마시고는 쉰 셈 치고 바로 바람을 몰고 여기저기 순시하러 사라졌다.
여원의 모습이 사라지자, 제약회사 직원이 냉큼 작업반장에게 사과했다.
“정말 죄송해요. 오늘 너무 바빠서, 다들 급해서 그래요. 오늘 야근한 건 나중에 야근비 계산해 드릴게요.”
“예, 그 말씀도 세 번째네요.”
작업반장은 못 믿겠다는 듯 입을 삐죽이며 투덜댔다.
“병원 안에서 담배도 못 피우게 해서 일할 기운도 없습니다.”
“조금만 버텨 주세요. 힘내세요.”
제약회사 직원은 그렇게 달래고는 레드불 몇 캔을 내밀었다. 작업반장은 캔을 따서 바로 마시고는, 숨 돌린 다음 옆에 있는 에피프레넘 잎을 돌돌 말아 코에 대고 킁킁대면서 작업자들을 재촉했다.
“어차피 끝내야 할 일인데 다들 힘내자고. 빨리 끝내고 빨리 돌아가자.”
“일 끝내고 살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들 마흔, 쉰은 된 작업자들이라 그렇게 꿍얼거리면서 에피프레넘 잎을 킁킁대며 사라졌다. 제약회사 직원은 작업자 심기 건드릴까 걱정, 의사가 들을까 걱정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여원은 작업자들이 불평하는 건 신경 쓰지 않고 뒷짐을 진 채 지나쳤다. 지금은 그저 일을 잘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오늘은 곽종군이 ICU에서 나오는 날이자 클리블랜드 의사가 국내에 온 지 사흘 차였다. 팀원은 모두 돌아갔는데, 펠릭스와 켈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능연과 수술 몇 건을 더 하겠다고 모두 남은 것이 의외였다.
상황이 이러니, 병원 고위층은 ‘야생 원숭이가 우리 집 정원에 들어 온 것으로도 입장료 벌 수 있다!’는 마인드로 재빠르게 ‘심장 박동 비정지 바이패스 이식술 토론회’를 주최하기로 했다. 그것도 전국적으로.
비록 시간이 너무 빡빡해서 대부분의 귀인이 시간을 내지 못했지만, 북경의 적 원사만 동의하면 토론회 규모나 주요 귀빈 모두 있는 셈이라, 참관인이 누구냐는 병원 고위층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여원이 가장 신경 썼다. 심장외과는 격조가 높은 데다가 논문을 거의 무한대로 쓸 수 있어서, 어차피 이물질 제거 수술 말고 다른 재능이 없는 여원으로서는 능연이 심장외과 쪽으로 발전하는 것도 매우 좋았다.
어찌 됐든 심장외과가 돈이 안 되는 것도 국내 사정일 뿐이고 능연이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로 발전한다면 그런 모든 제약이 다 사라질 테니까.
제일 중요한 건, 여원이 마음속 깊이 심장외과 수술을 더 인정한다는 사실이었다.
여원은 9시까지 바쁘게 움직이다가, 알람 소리를 듣고 서둘러 ICU로 달려갔다. 지금 ICU 밖에 벌써 의사가 가득했다. 곽종군을 걱정하는 의료진도 있고, 곽종군을 걱정하지 않은 걸 곽종군이 알까 봐 걱정하는 의료진도 있었다. 물론 맨 앞은 곽종군의 처자식과 친척들이었다.
그동안 곽종군의 처자식은 시간을 나눠서 문병 왔고, 오늘에야 다 함께 ICU 입구에 모였다.
곽종군이 휠체어를 타고 ICU에서 나오자, 다들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정숙하게 생긴 곽 부인은 눈물 가득한 얼굴로 곽종군의 손을 잡고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이제 괜찮아.”
곽종군은 부인의 손을 토닥이고는 문 앞에 가득 서 있는 사람들을 감동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휠체어에 기대며 나지막이 물었다.
“능연은?”
“능 선생은 아침에 결과 리포트 보고 상태가 좋으시다면서 수술하러 갔습니다. 외국 의사들이 오늘도 수술하자고 해서요. 창서성 심장외과 의사들도 꽤 많이 불렀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심장 우회술 학회도 꽤 규모가 크고요.”
좌자전이 담요를 다시 덮어주며 설명했다.
창서성에서 운화 병원의 영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운화 병원 심장외과가 약체라고 해도 운화 병원에서 약한 거고, 창서성 심장외과가 전체적으로 약체인 상황에서는 강한 편이라서, 강한 쪽이 부르면 약한 놈은 싫든 좋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곽종군은 안심되는 듯 껄껄 웃었다.
“그럼 내 심장이 효과를 발휘한 거네.”
좌자전이 대답하기도 전에 곽 부인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심장을 바꾸면 효과가 더 크겠죠?”
“심장 바꾸면 20년은 더 살 텐데?”
곽종군은 뻔뻔하게 대답하고는 바로 ‘내 몸이 안 좋아’ 전술을 쓰며 뒤로 기대며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여보, 왜 그래요.”
곽 부인은 바로 긴장했고, 아들도 달려왔다.
“힘들어.”
곽종군은 힘겹게 심장 쪽으로 손을 뻗다가 또 툭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아들은 완전히 다급해졌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고 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이 되었다. 아버지가 간악한 건 알지만, ICU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심장병 환자인 척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ICU에 며칠 더 계시지, 뭐 하러 일찍 나오셨어요.”
곽종군은 온 힘을 다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힘도 없고, 많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배불리 먹은 코알라처럼 귀엽게 까딱였다. 그 모습에 아들은 마음이 약해져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저희한테 맡기세요.”
좌자전은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섰다. 아들이 곁에 없어서 요즘엔 안 써서 그렇지, 전엔 그 역시 썼던 방법이었다.
아들이 옆에 없다는 생각에 좌자전도 눈시울을 붉히며 휠체어를 밀고 사라졌다. 곽종군 아들은 넋이 나가서 덜덜 떨며 핸드폰을 꺼내 이틀 더 휴가를 내야겠다고 상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모님, 이제 가족분은 안 오셔도 됩니다.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좌자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곽 부인을 막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닫히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곽종군은 살짝 자세를 가다듬고 생각이 많은 듯 입을 열었다.
“요거 먹히네.”
“사모님 놀라시겠어요.”
“아니야. 전쟁 준비 업무를 하던 사람이라, 놀라도 나 때문엔 안 놀라. 참, 놀라서 심장에 문제 생기면 능연한테 수술받으면 되겠네.”
곽종군이 뿌듯한 듯 웃어 보이자, 좌자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사모님 대신 감사드립니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복도에 하얀 가운 차림의 의사들이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환자 몇 명이 수액 렉을 밀며 멍하니 앞을 바라본 채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하원정은 비상구를 힘껏 밀고 나와 사람 없는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곽 주임 심부전이야?”
전화 너머에선 아무런 말이 없다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떡 떨어지길 기다리냐?”
“아니야?”
하원정은 조금 실망했다.
“응, 산소마스크 쓰고도 욕하고 있어.”
“일부러 그러는 거?”
“응. 다 알고 있는데. 넌 몰랐어?”
하원정은 멍하니 있다가 다시 물었다.
“다? 얼마나?”
전화 너머 친구도 정보가 많이 담긴 이 대화에 잠시 멍해졌다.
“소식이 좀 빠른 제약회사 직원은 다 알 테니 곧 온 병원이 알게 되겠지? 가족만 모르지, 뭐.”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들렸다.
“이제 너도 알았으니까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마.”
“그게 되겠냐? 휴…….”
하원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그는 소식통이었고, 이런 소식은 오히려 그가 친구에게 전했었다. 상대는 그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좋게, 좋게 생각해. 능연이 이제 간 절제 덜 하잖아. 앞으로 네 기회가 많아지겠지.”
“걔가 더 빨리 해대서 그렇지. 게다가 장안민까지 하기 시작해서 병상도 모자란다.”
외과의 실제 조작 난도는 지극히 높다. 실제로 조작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관건 포인트가 너무나 많아서 공부에 능한 의사들이 간단하게 자아 향상을 할 수 없게 하는 동시에 배우는 데 드는 자본도 대대적으로 올라간다. 한편, 수술은 어찌 됐든 사람 상대라서, 수술에 참여하는 부담과 책임감 모두 막중해서 기회 자본이 또 지극히 높아진다.
다른 업계에서는 마음 모질게 먹고 몸을 낮추면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외과는 마음도 모질게 먹고 몸을 낮추는 건 그저 기술을 배우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일 뿐이다. 그래서 많은 병원의 평범한 외과의는 성장하려면 십여 년은 필요하고, 모질지 못하고 허리를 숙이지 못하는 사람은 20년 일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 모든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훌륭한 해결 방법이 있다. 좋은 사부.
좋은 스승이 있으면, 관건 포인트를 전수해주고 많은 정보도 제공해서 일단 평균치부터 넘고 시작한다. 또 수술하다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거나 막히면 스승이 달려와 도와줄 수도 있다. 게다가 막강한 의사일수록 과감하게 제자를 굴린다.
특히 기술을 매우 훌륭하게 터득한 의사들은 자신과 제자 그리고 환자 사이의 기술 경계가 어딘지 잘 알고 있어서 막강한 두둔 세력이 될 수 있다.
북경 정상급 병원의 유명 학교 출신 의사들이 인테리어 업자보다 돈도 못 버는데 자원해서 매일매일 거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견디는 이유가 뭘까?
조금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모든 자신의 자산을 병원에 두고 병원에서 높은 ‘재테크’로 리워드 받는다. 이런 의사들은 정상급 병원의 정상급 교수 밑에서 1년을 더 일할수록 ‘재테크’로 100%, 200%, 심지어 1,000%의 수익을 얻는다.
그래서 다들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도저히 버틸 수 없어지면 그제야 그 정상급 병원과 정상급 교수를 벗어나 자신의 투자를 환매한다.
운화 병원은 원래 그저 지역 정상급 병원인데, 유명 학교 출신 학생들이 ‘재테크’하러 온다. 지금은 능연까지 있어서 수익이 순간 폭발했다.
장안민 같은 주치의에서 시작한 의사는 처음부터 본전이 많았던 이유로 지금 자본이 꽤 탄탄해졌다.
이런 것에 대해 하원정은 속수무책이었고, 친구는 더 속수무책이었다.
몇 마디 서로 위로하고 전화를 끊은 하원정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종탑 안의 에피프레넘을 잠시 바라보다가 의연하게 응급센터로 향했다.
응급센터, 병실 구역.
곽종군은 독립 병실 안에서 껄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서 가족들은 곽종군이 굳은 얼굴로 다 쫓아냈고, 이제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 찾아온 의료진만 병실에 들어 올 수 있었다.
하원정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복도로 들어서서 거의 병실 앞에 와서야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심장외과 강 주임임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멈춰 섰다.
“강 주임.”
하원정이 ‘시간도 지체했고, 걸음도 느렸는데, 강 주임이 지금 오는 걸 보면 나보다 소식을 늦게 들었다는 뜻이군.’ 하고 생각하며 인사했다.
“하 주임.”
강 주임 역시 ‘신세 한탄을 오래 한 데다가 걸음도 느렸는데 하 주임이 나보다 소식을 늦게 들었다는 뜻이군.’ 하고 생각하며 인사했다.
“하하하.”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먼저 들어가요, 강 주임.”
“하 주임부터 들어가요.”
“그럼 같이 들어갑시다.”
두 사람은 절친처럼 팔짱을 끼고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강 주임과 하 주임을 바라봤다. 모든 이의 머릿속에 ‘능연, 정말 쩐다!’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강 주임과 하 주임은 형식적인 인사만 남기고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가려고 하는데 의교과 뇌 주임이 허둥지둥 들어왔다.
“원장님 오셔.”
뇌 주임이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삼갑 병원에서 원장은 부원장보다 훨씬 직권, 지위가 높아서, 병원 안에 있는 의료진은 순간 우왕좌왕했다.
“언제요?”
“1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셨을걸.”
뇌 주임이 그다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하는 말에 곽종군의 얼굴이 순간 흐려졌다. 죄를 물으러 온 거면 어쩌지.
제대로 생각하기도 전에 원장이 이미 사람들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곽 주임, 저승 문에서 돌아왔나?”
원장의 미소에 조금의 위안, 조금의 부드러움, 조금의 포악함이 담겨 있었다. 곽종군은 손으로 천천히 심장을 가리켰다.
“심전도 보니까 잘 회복하고 있군. 이러니 ICU에서 일찍 나왔지.”
원장은 하하 웃으며 모니터 기기를 힐끔 살폈다. 미국 CIA에서 쓰는 거짓말 탐지기보다 백 배는 비싼 운화 병원 1인실 모니터링 기기가 실시간으로 곽종군의 감정 변화를 드러내 주었다.
곽종군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며칠 전엔 테이블을 내리쳤고고, 오늘은 심부전인 척 심장을 부여잡을, 역시나 모니터링 기기에 연결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시트에 문지르며 열심히 입을 열었다.
“아, 아직입니다.”
“아직이라고?”
원장이 못 믿겠다는 표정에 곽종군은 간절하게 대답했다.
“아직 저승 문을 벗어나지 못했다고요.”
운화병원 응급센터, 1인실.
조용한 가운데, 모니터에서 삐이삐이 소리만이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고 있었다.
곽종군의 오줌주머니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허리를 숙이면, 마실 수도 없고 땅에 물을 주는 데 쓸 수도 없는 산사태 때의 샘처럼 누런 물줄기가 위에서 흐르는 걸 볼 수 있었다.
“곽 주임, 건강 잘 챙기게. 능연이 이제 막 우리 센터 부주임이 되었으니, 아직은 자네가 옆에서 잘 돌봐야 한다고.”
원장이 예전에 진료과 재정비할 때만큼 엄숙한 표정으로 하는 말에 곽종군은 두드러기가 생길 것 같아서 냉큼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제 심장 문제는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지 모르는걸요. 시간이 좀 필요할지도……. 타지에 가서 요양하다 오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린 의사 아닌가. 병이 생기면 고치고, 고쳤으면 일해야지. 은퇴한 후에 얼마든지 푹 쉴 수 있는데 안 그런가?”
원장은 콧방귀 뀌며 곽종군의 도주로를 차단했다.
“며칠 더 쉬고, 괜찮다 싶을 때 돌아오면 되네. 무리는 하지 말고.”
“제 말은, 능연이 부주임이 된 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지금 능 팀을 잘 꾸리고 있어요. 윗선에서 잘 봐주기만 하면 제가 따로 돌볼 것도 없습니다.”
곽종군은 정말로 출근하기 싫었다. 심지어 운화병원에 계속 입원해 있고 싶지도 않았다. 이렇게 빨리 회복할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땐 정말로 중병이라고 생각하고 윗선들을 너무 몰아세웠다.
원장은 미소 지은 채 곽종군의 오줌주머니가 반이 찰 때까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너무 젊어서 그렇지. 너무 높게 파격 승진시켰으니 다들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응급센터는 자네가 처리해야지.”
진료과의 일반 의사는 쪼기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정상적인 업무 배정은 보통 의사들은 명령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월말, 월초에 페이 계산하고 보너스 배분할 때는 의사들도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게 된다. 특히 정직원인 의사는 어차피 직업을 잃을 걱정이 없으니 당연히 자신 있게 각종 이익을 쟁취하려 들고, 돈만 보고 몰려든 연수의는 정직원도 아니라서 페이나 보너스 등 문제가 생기면 바로 폭발한다.
그리고 진료과 내 관리직, 특히 치료팀 관리직은 원래 크나큰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자리라서 조금만 변동이 생기면 큰 파동이 생기게 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곽종군 같은 진료과 주임이 잠시 진료과를 비우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곽종군은 혹시라도 자기가 죽은 다음 능연이 심하게 몰릴까 봐 반드시 부주임 타이틀을 줘야 한다고 우겼고 원장도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장도 비슷한 걱정은 했다. 능연이 핍박받다가 다른 병원으로 가버리면 어쩌라고!
다만 다른 점은, 원장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고, 곽종군은 테이블을 내리치며 고함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들고나왔던 ‘난 이제 곧 죽어!’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책임도 당연히 져야 했다.
“제 몸이 말입니다, 후우!”
곽종군은 이번에도 가슴을 부여잡고 리얼하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슬쩍슬쩍 원장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 완전히 회복할지도 모르고요.”
“우린 의사 아닌가. 병을 고친 것만 해도 대단하지, 어떻게 완전히 회복해. 가슴을 연 사람이 어떻게 완벽하게 회복한다고!”
원장이 손을 휘휘 저으며 하는 말에 곽종군은 눈을 깜빡였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한다고 콕 집어 말하는 거지? 이렇게까지 말한다고?
다시 원장을 바라보니, 엄숙한 표정, 사나운 눈빛…….
하나도 안 무섭거든!
윗선이 언짢아할 일을 그동안 적잖게 해왔다. 다만 너무 많이 뿜어대니, 윗선의 역치(閾値)도 높아져서 언짢아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그리고 불벼락을 뿜어대는 것 외에도 곽종군은 사람을 언짢게 할 수많은 일을 해와서, 원장의 표정과 눈빛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물론 표면적으로야 곽종군도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벼락을 뿜었을 때를 속으로 쉴 새 없이 회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사납다고 생각하겠지만, 곽종군은 대부분 이런저런 유감이 남았다. 특히 제대로 뿜을 걸 하고 특히 후회하는 적도 많았다.
원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곽종군의 초췌한 표정, 그리고 피와 피 오줌을 흘리는 걸 보고 그제야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원정, 강 주임은 신이 나서 지켜봤고.
“알았네. 난 능연 수술 더 보러 가겠네. 그 외국인들이 계속 달라붙어서 수술한다더군.”
원장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어찌 됐든 능연의 놀라운 능력 때문에 곽 주임을 이 정도에서 봐주기로 했다.
능연이 간 절제만 할 때는 명확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적 원사가 큰돈을 들여 모셔온 펠릭스와 켈런이 있으니 능연의 세계 정상급 심장 우회술에 확신이 섰다. 아무리 능연이 심장외과 쪽에서 고작 심장 우회술 실력을 보인 것이라고 해도, 원장에겐 그 ‘고작’ 심장 우회술로도 충분했다.
곽종군은 이번엔 진지하게 노력해서 몸을 움직여 봤지만, 개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저도 라이브로 볼 수 있게 좀 해주십시오.”
“수술 막 끝냈으니 쉬는 게 눈에도 좋네. TV는 좀 나아지면 보고.”
곽종군이 입을 내밀며 하는 말에 원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곁에 있는 수간호사를 바라봤다.
“곽 주임 병실엔 라이브 금지, TV 금지, 핸드폰 금지, 책 금지…….”
곽종군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원장님, 우린 의사 아닙니까.”
“의사니까 눈을 잘 지켜야지.”
원장은 턱을 치켜들어 보이고는 다시 진지하게 수간호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 자네 곽 주임을 위해서 하는 말일세. 간호부에서 할 일, 제대로 하고, 내 허락 없이는 아까 말한 것들, 곽 주임 병실에서 보이면 안 돼. 알겠나?”
“네.”
‘아까 말한 것’들을 ‘오락거리 전체’로 바로 이해한 수간호사는 원장이 일부러 골탕먹이려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재빨리 대답했다. 곽종군이 한 짓이 있으니, 이 정도 벌이야 술자리에서 술 석 잔 벌주로 마시는 것과 다름없었다.
속이 좀 풀린 원장은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사람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수술실로 향했다.
“닥터 펠릭스, 기구 괜찮으신가요?”
“설비는 사용하기 괜찮으시고요?”
“우리 젊은 의사들, 어시로 괜찮습니까? 영어가 좀 별로죠?”
수술실로 출동한 원장은 당연하단 듯이 알뜰살뜰 보살폈다. 그것도 매우 표준적인 미국식 영어로.
회의실에 숨어 라이브를 보면서 이미 충분히 펠릭스와 켈런을 파악한지라 지금은 기대가 더 커진 상태였다.
운화병원 같은 지역 정상급 병원이 세계 정상급 병원, 특히 전문 진료과와 접촉하는 건 발전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항상 북경의 특급 병원에서 남긴 찌꺼기만 먹어서는 그들처럼 몸집을 부풀릴 수가 없다.
펠릭스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수술을 진행하며 대화하듯 입을 열었다.
“시스템이 괜찮군요. 엉망인 곳도 가봤지만, 수술에 영향은 주지 않아요. 수술 성공률은 물론이고요. 심장 수술하는 데 조건이 매우 까다로울 것으로 다들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좋은 예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아르헨티나같이 조건이 안 좋은 곳과 비교당한 원장은 조금 어이없었지만, 조금 자조하듯 대답했다.
“우리 심장 센터는 한동안 업데이트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설비, 기구 도입을 고려해 봐야겠어요.”
“운화병원 심장외과는 센터라고 할 수 없죠.”
펠릭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심장 센터를 세우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매우 비쌀 겁니다. 게다가 해마다 지출도 많고요. 아무리 능연이 있어도 불가능할 텐데…….”
원장은 속으로 좀 돌려 말하면 안 되냐, 생각했다. 그러나 솔직한 중국인보다 솔직한 미국인이 더 받아들이기 쉬워서 그냥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우린 능연이 있잖습니까. 게다가 능연 같은 젊은 의사도 많습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에 연수 보내면 우리 병원 심장외과의 미래 주축 의사가 될지도 모르지요.”
그 말에 수술실에 있는 젊은 의사는 대부분 눈을 활활 빛내며 펠릭스를 바라봤다. 원장은 펠릭스를 바라보지 않는 의사들을 기억해 두었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모양이니 연수 가도 고생할 것이고, 미래의 주축 의사가 될 수 없을 테니까. 잘못하면 미래도 없고.
펠릭스 역시 원장의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미국식 강조 어투로 말했으니까.
펠릭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원장을 바라봤다.
“중국 심장외과는 심하게 마이너스라고 들었습니다.”
“영원한 마이너스는 없죠.”
원장은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중국 경제 발전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참, 참관할 만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만…….”
“능 선생 수술이면 됩니다.”
펠릭스는 참관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한참 뒤에 다시 덧붙였다.
“게다가 난 중국 심장외과 발전을 비관적으로 봅니다.”
“음?”
“심장외과가 발전하려면 경제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결론은 짓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소아 심장 기형 환자 수는 빈곤하고 낙후한 곳일수록 나타나죠. 대부분의 곳에서는 임신 기간 선별 검사에서 그런 질환을 거의 없애 버리니까요.”
“그럼 빈곤하고 낙후한 곳에 가서 수술하면 됩니다. 중국은 아직 그런 지역이 많거든요.”
“그럼 계속 마이너스죠.”
“버틸 수 있습니다.”
원장은 담담하게 대답하는 동시에 속으로 묵묵히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돈 버는 병원이 될 건지, 돈을 못 버는 병원이 될 건지, 병원 관리자로서는 언제나 염려스러운 화제였다. 그러나 한 병원의 원장으로서, 지금 이 순간 중국에서는 병원이 돈을 벌지 말지, 선택할 자격과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충분한 이유도 있고.
재정 자유는 진작 얻었고, 벼슬길에 큰 생각도 없고, 병원 내부 인사 문제 역시 꽉 잡고 있었고. 이런 상황이라 상급 주관 부문에서 개입하지 않는 한, 정치적 선택을 만들어낼 행정 수단이 얼마든지 있었다. 특히 함부로 정치 구호를 꺼내 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는.
펠릭스는 원장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조금 놀랐다. 미국 병원 원장은 밑져도 상관없다는 말을 쉽게 하려 들지 않는다.
“클리블랜드에 외국 연수의 정원이 많죠. 관심 있다면 도전해 보세요. 저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펠릭스는 자신의 귀한 시간도 조금 내줄 수 있다고 마음을 열었고, 원장은 바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닥터 펠릭스.”
물론 더 많은 걸 원하지만, 지금은 급하게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
펠릭스 역시 기뻐하며 수술 속도를 살짝 올렸다.
“난 이제 곧 메인 부분 시작합니다. 능연은 어떻게 접근했었죠?”
펠릭스는 살짝 자리를 이동했다. 그는 능연의 수술을 배우려고 이곳에서 수술 중이었다. 세세히는 배우지 못해도 어느 정도 참고하는 건 가능할 테니.
원장은 껄껄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고는 펠릭스 팀이 영상과 어시의 힌트를 받으며 열심히 따라 하는 걸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펠릭스의 수술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수시로 멈춰서 고민한 다음 다시 손을 놀렸다. 그렇다고 해도 수술실에서 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세계 정상급 심장외과의인 펠릭스의 기술은 강 주임보다 훨씬 훌륭했고, 브랜드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아무리 그가 대놓고 능연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말해도, 참관하는 의사로는 다 가져가지도 못할 만큼 배울 것이 넘쳐났다.
아는 게 많을수록 두려움이 더 커지는 법이라고, 정물화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나 유화를 무시하고, 펜글씨도 못 쓰는 사람이나 캘리그라피에 의견을 낸다. 그리고 삼류 대학을 가까스로 졸업한 사람이나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를 멸시하고.
원장은 펠릭스가 수술을 끝내길 기다렸다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펠릭스는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
“능 선생 수술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는 수술복을 벗고 나가려고 하자, 곁에 있던 뇌 주임이 서둘러 대답했다.
“닥터 펠릭스, 능 선생은 오늘 수술이 없습니다.”
“말도 안 돼. 능 선생 수술을 며칠이나 지켜봤는데 쉬는 날이 거의 없던데요.”
펠릭스는 능연이 달리는 걸 전혀 의외로 여기지 않았다. 장시간 투자 없이 저렇게 강한 실력이 생길 리가 없잖은가. 게다가 미국 병원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열심히 하는 건 당연했다. 주에 110시간에서 130시간 일하는 의사도 많았고, 그 바람에 각종 노조에서 제한 법령을 제출하기도 했다.
곽 주임은 허탈한 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연달아 수술을 얼마나 해댔습니까. ICU, 특별 병동까지 다 차서 능 선생이 수술하고 싶어도 병상이 없습니다.”
사실 펠릭스와 켈런이 없어도 능연이 병상을 다 채웠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출장 수술을 가도 됐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온 병원이 다 아는 사실이라도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었다.
펠릭스는 바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요 며칠 진행한 케이스를 능 선생과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원장의 저녁 식사 초대엔 당연히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뇌 주임도 말리지 못하고 펠릭스 꽁무니를 쫓아갔고, 펠릭스는 휴게실에서 능연을 찾아냈다.
“능 선생, 케이스 토론할 시간 됩니까?”
펠릭스는 늦게 학교에 들어간 초등학생처럼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다.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능연은 앉은 채 신발을 신으며 펠릭스를 올려다봤다.
“제가 신발 끈 묶어 드릴게요.”
실습 간호사가 못 참겠다는 듯 슝 하고 능연 곁으로 다가가 눈높이에 맞게 쭈그리고 앉았다.
“얘 좀 데리고 나가.”
마침 지나가던 나이 많은 간호사가 손을 휘두르자, 다들 우르르 나와서 실습 간호사를 끌고 갔다.
펠릭스는 숨을 고르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수술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생각을 좀 교류하고 싶습니다.”
“집에 가려던 참이에요. 차 타고 가면서 이야기하시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결론은 언제나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방안이었다. 펠릭스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연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늦추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능연과 함께 걸었다.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펠릭스도 사실 괜찮은 편이지. 돈도 좀 있을 거고.”
“따로 보면 잘 생겼어.”
“그러니까요. 능 선생님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그렇지. 음, 이 시간에 같이 나가다니, 같이 식사하려는 건가? 게다가 집에 가서 먹다니. 이거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맞아! 아무리 남자라도……. 외국 남자는 다 변태라던데? 같이 가서 능 선생님 보호해야겠어!”
“하구 진료소에 가는 거예요? 와,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간호사들은 웅성대며 사라졌지만, 원장의 얼굴엔 조금 변화가 일어났다.
“맞다, 참. 능연네 집이 진료소지.”
펠릭스는 능연과 200m 떨어진 거리에서 조금 흥분된 기분으로 그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보폭마다 접난 잎 18개 정도 길이를 유지하며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산책하는 듯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는 동시에 오랜 시간 수술로 굳은 근육도 늘려주었다.
지금 펠릭스는 중국 노인네와는 다른 미국 노인네 같은 모습이었다.
텅 빈 주차장의 공기가 서늘하고 청량했다. 힘껏 숨을 들이마셨더니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편안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막 주치의가 되었을 때나 이렇게 순수하게 기술을 추구했던 것 같았다.
그때는 수입도 별로 없었지만, 심하진 않아서 생활 퀄리티를 무난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는 가정도 안정적이었고, 아이들도 귀여운 시절이라 온 마음을 다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정신력도 체력도 절정기였고, 마음을 다잡고 오로지 임상 의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찬란하면서 단순한 날들이었다. 펠릭스는 자랑스럽기도 그립기도 하면서 그런 날이 다시 한번 더 오길 바랐다.
한참 걷던 펠릭스는 더욱 흥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능 선생, 능 선생은 모르겠지만, 의대 다닐 때 매일 이렇게 걸어서 주차장에 갔어요. 우리 학교 주차장이랑 여기 주차장 비슷하게 이렇게 넓은 주차장이었죠. 그땐 주차장에 가는 길이 하루 중에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죠. 능 선생은요? 어떤 때 가장 자유롭고 편안합니까?”
능연은 의아한 듯 펠릭스를 바라봤다.
“당연히 수술실이죠.”
펠릭스는 잠시 멈칫하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 막 수술 시작했고, 아직 레지던트라서 수술실이 자유롭지 않지 않습니까.”
능연은 잠시 생각하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이 제일 자유롭습니다.”
“집도의가 아니라도요?”
펠릭스는 믿기지 않았다. 지금 그는 중국 병원의 일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했고, 중국 수술실의 어시는 미국 수술실 어시보다 지위가 낮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레지던트 시절에 어시할 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 교수가 어시하다가 교수에게 걷어차이는 것도 영상으로 봤었다. 미국 의료 시스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능연은 이번에도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대답했다.
“집도의가 아니라도요.”
“욕먹을 때도요?”
“욕을 왜 먹습니까?”
펠릭스는 잠시 멍해져서 물끄러미 능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레지던트 시절에 욕먹은 적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왜죠? 아무리 당신이라도, 아무리 집도의 성격이 좋아도 멘탈이 나가서 욕 나올 때가 있잖아요. 정말, 욕먹은 적 없어요?”
집도의가 화나면 욕하는 건 중국이든 외국이든 같았다. 사실 중국 외과의도 서양 기술을 배운 것이고 협화 병원 전통도 다 미국에서 배운 것이다. 단지 욕할 때 영어를 얼마나 쓰느냐, 우아하냐 쌍욕을 쓰냐의 차이랄까.
그런데 능연의 경험은 확실히 남과 달랐다. 능연은 잠시 떠올려보고는 대답했다.
“저는 레지던트 때부터 대부분 집도했습니다.”
“왜죠?”
펠릭스는 더욱 의아해졌고, 능연은 이 외국인 참 이상한 걸 묻는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예의 갖춰 대답했다.
“제 수술 효과가 좋아서, 그런 이유겠죠?”
능연은 심층 분석해줄 생각이 없어서 걸음을 서두르면서 주머니 안에 있는 키를 눌렀고, 반짝반짝 빛나는 제타가 바로 소리를 냈다. 펠릭스가 여전히 뒤에서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능연은 어느새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서 주변을 유심히 살핀 다음 만족한 듯 안전 벨트를 맸다.
그의 제타는 원래 이렇게 반짝이지 않은데, 운리 제약회사에서 준비해준 세차장에서 완벽하게 정비한 후 더 예뻐져서 능연도 요즘엔 운전을 꽤 즐겼다.
엔진이 서서히 시동이 걸려 웅웅 소리를 냈다. 능연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에게 수술실이 가장 편한 곳이었지만, 자동차 안의 환경도 매우 청결하다고 여겼다. 번잡한 사무도 없고, 오고 가는 어시들도 없고, 수시로 수작을 거는 여자들도 없고, 어느 모로 봐도 편하고 자유로운 곳이었다.
차에 올라타서 문을 닫은 펠릭스는 차 안을 훑어보고는 놀란 듯이 능연을 바라봤다.
“이게 당신 차인가요?”
“네.”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펠릭스는 동정의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중국 의사는 역시 돈을 많이 못 버는 모양이군.”
능연은 대답하지 않았고, 펠릭스도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라서 그냥 웃음을 터트리고는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나도 처음에 의사가 됐을 땐 낡은 일본 차를 몰았어요. 젊을 땐 구형 차 타는 것도 나쁘지 않죠.”
능연은 펠릭스가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모습에 별로 상대하지 않고 계속 운전했다. 낡은 제타를 운전하는 능연의 모습에 순간 그도 인간이구나 싶어서 펠릭스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펠릭스는 그제야 시간이 나서 켈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능연은 하구 진료소 후문에 차를 댔다. 새로 리모델링한 하구 진료소는 모던한 분위기가 나서 오래된 하구 골목에서 독특한 느낌이 났다.
펠릭스는 감상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꽤 괜찮은 건물이군요. 여기가 중국의 개인 진료소인가요?”
병원 표식을 보고 묻는 말이었다.
“우리 진료소입니다.”
“우리 진료소요? 당신 집에서 운영합니까?”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거대한 그림자가 정원에서 달려 나왔다.
“연아! 왔구나!”
능연을 보며 자란 간호사 연자는 해탈한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너 찾아온 손님이 많다고! 이러다가 진료소 망하겠다!”
“아, 들어가 볼게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아서 진료실에 가서 앉았고, 그걸 본 골목 사람들은 바로 달려갔다.
“능연, 며칠 만에 집에 온 거냐. 좀 쉬엄쉬엄해라.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 간이 안 좋은 아줌마 친척이 있거든?”
능연은 유씨 아주머니가 마음 아픈 듯 당부하고는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을 느긋하게 들어 주었다. 능가 진료소는 능연이 수준이 높아진 다음 더 많은 신뢰를 받아서 그렇지, 삼대 동안 이런 식으로 골목 장사를 했다.
이런 골목 진료는 문제를 얼마나 해결하느냐, 사람을 얼마나 살리느냐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더 중요했다. 유씨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 옆에 있는 이씨 아주머니, 왕씨 아주머니까지 마음을 놓으니까.
능결죽과 도평도 소식을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도평은 다정하게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싱글벙글 차를 들고나와 진료 테이블 옆에 서서 능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님에게 차를 대접했다.
능결죽은 주방으로 들어가 우당탕탕 죽을 끌이고 음식 준비를 했다. 연자는 다시 쿵쿵쿵쿵 달려 나가서 우두커니 서 있는 펠릭스에게 다가갔다.
“진료받으러 왔나요?”
펠릭스는 자기보다 두 배는 뚱뚱한 연자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손짓, 발짓하면서 영어로 대답했다.
“전 중국말을 못 합니다.”
“누가 통역 좀 해 봐.”
연자가 손을 휘두르자, 골목에 사는 착안 아이가 바로 추천받아서 나왔다.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16살 소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동네에서 창피할 일을 할 수 없었고, 간절하게 소통을 원하는 펠릭스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물었다.
“뭐라고 물어봐요?”
“음,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
연자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을 가다듬고 턱을 치켜들었다.
“What’s your problem?”
펠릭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연자의 거대한 체구와 사나운 표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곳이 바로 중국의 할렘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닥터 펠릭스는 미국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의사입니다.”
능연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김에 펠릭스도 곤경에서 구해주었다. 연자 아주머니 곁에서 도망 나오는 펠릭스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 능 선생과 함께 온 겁니다.”
연자에게 총이 없는 건 알지만, 한 대만 맞아도 뼈가 부러지지는 않아도 며칠은 근육통을 느낄 것 같아 두려웠다.
펠릭스는 힘겹게 침을 삼키고는 온순하게 능연 뒤로 가서 서서 중얼거렸다.
“능 선생, 강한 의지력이 있더라니…….”
그는 지금 어릴 때 흑인 친구와 함께 대마 사러 갔을 때처럼 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시하는 건 아니고요. 나는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을 매우 대단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출발선이 조금 높았다면 지금쯤 아마도…….”
펠릭스는 열심히 해명했지만, 해명할수록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능연은 어떤 의미로는 이미 외과의로서 정상에 오른 사람이었다.
현대 의학 발전은 두루두루 넓은 것보다 한 우물 파는 걸 중시한다. 특히 외과학에서는 어느 수술 방식에서 최고가 된 의사는 최고의 의사로 불린다. 현대 병원은 한 수술에서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의사가 매일 쉴 새 없이 수술할 같은 증상 환자를 얼마든지 모을 능력이 있다. 더 많은 걸 원한다면, 정상 자리에 있는 정상급 의사가 조금만 시간을 내서 과학 연구에 투자하면 바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어느 의사든 한 가지 수술을 정상급으로 하고 절묘한 수준에 이르면 다른 의사에게 가르쳐 줄 것이 차고 넘친다.
능연은 지금 심장외과 방면 기술이 약한 편이지만, 심장 우회술은 거의 정상 수준에 이르렀다. 능연보다 더 뛰어난 심장 우회술 스킬을 갖춘 외과의가 있을지, 펠릭스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동안 익숙했던 화술로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어졌다.
능연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 펠릭스의 공손한 태도에 관심도 없고, 그의 오해를 풀어줄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골목 사람들은 다급해져서 하나같이 16살 소년을 바라보며 외국인이 무슨 말을 하는 중인지 물었다. 소년은 미래 십수 년의 배우자 선택권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면서 펠릭스가 했던 말을 되짚어 보고는 아는 단어를 골라 느릿느릿 대답했다.
“우리가 좀 Low 하대요. 하층민이라는 거죠. 그리고 능연 선생은 Very good이라는 등등?”
“좀 맞아야겠네!”
골목 사람들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해서는 펠릭스를 노려보며 ‘파출소만 아니었다면 당장 엄마, 아빠 부르게 패줄 테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펠릭스는 두 다리가 다 달달 떨렸다.
“아들, 죽 먹자.”
능결죽 씨가 고기죽을 들고나오자 골목 사람들도 알아서 비켜주었다. 다들 큰 병은 없고 고질병만 가득한 중년들이고, 어차피 다들 마음이나 조금 놓으려고 능연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라서 밥 먹는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놓아주었다.
자주 마사지 받는 사람이나 나와서 몇 마디 더 물었고, 능연이 대답할 것도 없이 연자가 알아서 나와서 설명했다.
능연은 따듯한 죽을 먹으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펠릭스 선생님 죽 드실래요?”
“그러죠.”
펠릭스는 하구 진료소 같은 곳에서는 주인의 대접을 거절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자기 죽을 먹어주는 게 기분 좋은 능결죽은 껄껄 웃으며 그에게 죽을 건넸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호호 불어서 드세요. 우리 능가 죽 역사도 몇십 년은 됐습니다. 진료소가 생겼을 때부터 죽을 즐겨 먹었거든요.”
펠릭스는 통역하라는 듯 소년을 바라봤고, 점점 궤도에 오른 16살 소년은 잠시 생각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Be careful. Drink.”
그 말은 펠릭스에겐 ‘너 이 새끼 조심해. 죽이나 처먹고!’로 들렸다.
펠릭스는 진지하게 재빨리 죽을 먹기 시작했다. 흑인 대빵의 당뇨병 걸린 오줌이라도 마시는 듯 내분비 실조의 달콤함, 사회 압박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능결죽은 조금 기뻐져서 골목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보라고요. 외국인도 내 죽 좋아하잖아.”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펠릭스는 고분고분 협조하며 잘 보이려는 듯 말을 꺼냈다.
“능 선생 아버지시죠? 이 진료소 운영자십니까?”
자기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라서, 능연은 소년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통역했다. 능결죽은 껄껄 웃으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내가 운영하는 게 아니라, 진료소가 내 거라고 이야기해줘.”
능연이 그대로 통역하자, 펠릭스는 멈칫하더니 진료소를 둘러봤다.
“이런 진료소 하나 짓는 데 돈 많이 들겠죠?”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바로 대답했다.
“백만 달러는 필요하죠.”
“그렇게나요?”
펠릭스는 놀라서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수술도 합니까?”
“물론이죠. 외과 수술, 성형외과 수술 중입니다.”
“성형외과?”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펠릭스는 그제야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여기가 중국 빈민촌은 아니군요.”
할렘가에도 무료 진료소는 있지만, 기껏해야 낙태 수술이지 성형 수술은 하지 않았다. 펠릭스는 다시 하구 진료소의 외관을 둘러보면서 능연이 더 부러운 듯 바라봤다.
“그러니까 능 선생은 물려받을 백만 달러 가치 진료소가 있는 거네요? 나라면 이 진료소를 전문 심장 우회술 진료소로 만들겠네요. 중국은 가능하지 않나요?”
“모르겠네요.”
능연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병원과 진료소의 관리상 어려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자기 진료소에서 심장 우회술을 하는 게 더 좋을 거란 생각은 없었다. 돈 벌고 말고는 처음부터 고려 범위가 아니었고.
“나라면 말이지……. 나라면 말이지…….”
펠릭스는 중얼거리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능연의 조건이 너무 좋아서 뭐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몰랐다.
“뭐라는 거야?”
능결죽은 혼자 중얼거리는 펠릭스를 힐끔 바라보고는 아들에게 죽을 더 떠주면서 궁금한 듯 물었다.
“몰라요. 혼잣말이에요.”
“좀 멍청해 보이네. 옷차림은 멀쩡해 보이는데 병이라도 있나?”
능연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능결죽은 유감이라는 듯 대답했다.
“병은 없어요.”
“그럼 그냥 멍청한 거네. 그럼 정식 의사인가?”
“네.”
“진료라도 보라고 할까?”
능결죽은 자신의 작은 진료소를 매우 아끼고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하구 같은 작은 동네에서 외국인이 진료 보면 개뿔 소용없긴 해도 어찌 됐든 명성은 얻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외국 영어 강사를 초빙하면 학생이 스무 명은 느는 것처럼!
능연도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하구 주민들이 큰 병은 없는 것 같아도 정말로 전문적인 의사가 심장 방면 문제를 케어해주면 평균 수명은 조금 늘 테니까.
“아버지가 펠릭스 선생님이 며칠 진료해 주면 어떨까 묻는데, 생각 있으세요?”
“의료 자문은 할 수 있지만, 치료는 안 됩니다.”
펠릭스도 매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능연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고, 바라는 게 있으니 진료든 뭐든 별 거부감이 없었다.
능연은 바로 능결죽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대요.”
“정말?”
능결죽은 몇 번이고 확인한 후에 바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현수막 좀 만들어야겠다.”
<세계 정상급 의사 진료>
<미국 유명 심장 전문가 펠릭스 운화 왕림>
<단 사흘, 미국 전문가가 친히 진료하여 당신의 심장 문제를 해결합니다.>
<세계 최고의 심장외과 의사를 우리 집으로. 오늘, 당신의 심장의 잡다한 문제를 해결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능결죽은 현수막을 들고 돌아와서 집 앞뿐만 아니라 상하구 입구와 수로에도 내걸었다. 도평은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능결죽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며 꾸이위엔(桂圓: 용안, 중국 과일)을 입에 밀어 넣어 주었다.
“너무 오버 아닐까요? 세계니, 미국이니, 유명 전문가까지!”
“우리 아들이 맞다잖아요.”
능결죽이 자신감에 넘쳐 말했다.
“원사가 모셔온 사람 아니오. 대단하겠지. 원사가 돈을 허투루 쓰겠소? 안 그래?”
“그 원사가 연이도 중시하잖아요. 아들 이름을 쓰지 그래요.”
이해 가지 않는 듯, 도평이 방울토마토를 먹여주지 않자 위험을 예리하게 감지한 능결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자고로 근처엔 위인이 나지 않는 법이라고, 우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하구에서 자라서 아무리 원사가 중시해도 주변 이웃에겐 그 느낌이 와닿지 않지…….”
주절주절 늘어놓던 능결죽은 와이프의 시선에 바로 말을 돌렸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언제 주목받지 못한 적이 있나. 그냥 아들 팔아서 광고하기 싫어서 그런 거지. 흠, 아들로 우리 진료소 광고하면…….”
능결죽은 시선을 돌리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당당한 사람이 아들 팔아 광고하겠어요?”
남편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도평은 한마디로 제압했고, 침을 흘리던 능결죽은 바로 입을 다물고 의연하게 대답했다.
“안 하지. 아들 팔아 광고할 거였으면 차라리 모델을 시켰겠지. 예전에 그 감독이 얼마 불렀어. 하루에 20시간 영상 찍어서 프로그램에 내보냈으면, 지금 별장 하나는 벌었을걸?”
도평도 그리운 듯 감탄했다.
“그때 광고 찍은 돈으로 산 찻잎, 아직도 남아있잖아요.”
“그러니까. 아들로 돈 벌 생각이 있었으면 진작 부자 됐지. 저런 멍청한 외국인 쓰는 게 나아요. 부담도 덜하고. 단지 체력이 어떤지 모르겠네.”
“정말로 우리 진료소에서 심장 수술을 하진 않겠죠.”
“그건 말도 안 되지. 설비도 없고.”
도평이 얼굴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능결죽도 생각하며 대답했다.
“환자가 너무 많이 몰릴까 봐 걱정이지. 다들 골목 사람이라서 체력이 안 된다고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보면 욕먹잖아.”
“그럼 인원 제한해요.”
능결죽은 주저하더니 고민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깝지. 열 명, 스무 명 볼 거면 단골들로 끝나게. 현수막 걸었으니 밤까지 자주 오는 동네 사람들은 다 몰려들 거요. 평소에도 툭하면 핑계 찾아서 놀러 오는데.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몰려들겠지.”
“새 손님 필요한 거예요? 돈 부족해요? 그럼 이번 달엔 옷 안 살게요.”
“아니, 그 돈은 있소.”
능결죽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연이도 컸고, 일도 잘하고 있으니 이제 슬슬 집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차도 새것으로 바꿔줘야 하나 싶고.”
“우리 아들이 그런 게 왜 필요해요.”
“하하, 필요하든 말든, 우리야 준비해줘야지.”
도평은 물끄러미 능결죽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다정하게 물었다.
“그런 생각 한 적 없잖아요. 요즘 부담 느껴요?”
“그건 아니고.”
능결죽은 현수막을 올려다보며 헛기침하면서 말을 이었다.
“전엔 돈이 없었고.”
하구 진료소는 줄곧 가까스로 운영해 나가는 상황이었고,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바로 약이니 소모품이니 준비해야 해서 그동안 그다지 돈을 벌지 못했었다.
도평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돈 버는 데 이용하지 못하도록 줄곧 능연을 보호해왔다. 능결죽도 두 사람이 상의한 규칙대로 움직였다. 단, 그 점은 매우 훌륭하게 해냈지만 돈 버는 쪽엔 별 능력이 없었다. 그냥 가족이 먹고살 정도의 작은 진료소, 딱 그 정도였다.
약도 인터넷에서 구매 가능한 시대에, 이런 진료소로 운화 시에서 집을 산다? 몇 년 전이라면 그나마 기회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
능연이 일을 시작한 후에 진료소 환경도 차츰 좋아져서 기회가 생겼다. 그렇다고 해도, 하구 진료소 인테리어는 결국 전칠이 사람을 찾아 설계한 것이라 비용을 많이 절감했다.
도평은 웃기만 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평 역시 남편을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말을 꺼냈다.
“맞춤형 서비스는 어때요?”
“맞춤형 서비스?”
“에르메스, 롤렉스처럼요. 가장 핵심 상품, 가장 이슈가 되는 가방 사려면 다른 걸 사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도평이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 설명하는 모습에 능결죽은 몸이 살며시 떨렸다. 흥분이 아니라 놀라서 말이다.
“당신, 에르메스랑 롤렉스를 사기 시작한 거요?”
“아니에요. 그 비싼 걸 어떻게 사요. 그냥 구경만.”
도평이 태연하게 하는 말에 능결죽은 더욱 심하게 떨었다.
“사고 싶다는 거잖소.”
“그야 당연하죠.”
도평은 이해한다는 듯 남편을 토닥였다.
“괜찮아요. 지금은 살 능력이 안 되니까, 구경만 해도 기분 좋아요.”
능결죽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저 멍청한 외국인을 제대로 굴려보지. 약속하오.”
새벽.
하구 진료소의 환자가 속속 돌아간 후, 능결죽은 테이블을 깔아 각종 독한 술을 늘어놓고 펠릭스, 켈런, 그리고 웅 선생, 묘 선생 등 돌아가며 한 잔씩 따랐다.
능결죽은 사회성 좋은 모습으로 잔을 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선 닥터 펠릭스, 닥터 켈런이 중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구 진료소에 와주신 것도요. 그리고 두 분이 우리 진료소에서 진료해 주시는 것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닥터 켈런, 먼저 참여해 주신 점, 중국인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웅 선생 등 중국인들이 모두 잔을 들고 켈런와 펠릭스에게 웃어 보였다. 엄지만 한 작은 잔에 찰랑이는 영롱한 바이주가 불빛과 별빛 아래 더욱 아름답게 반짝였다.
“원샷!”
능결죽이 술을 꼴깍 삼키고는 목이 타서 ‘쓰읍’ 소리를 냈다. 늦은 밤 분위기 좋은 정원에서 펠릭스와 켈런은 중국인들과 함께 그들처럼 술잔을 비우며 ‘쓰읍’ 소리도 따라서 냈다. 웅 선생은 더 놀란 얼굴로 디켄더를 들어 올리며 능결죽에게 물었다.
“능 소장, 우리나라 술대접한다며.”
“그렇죠.”
능결죽도 디켄더를 들어 올려 사람들 잔을 채워주었다.
“이게 우리나라 술이야?”
“이과두잖아요. 우리나라 술이죠.” (*이과두주: 중국의 가장 서민적인 술)
웅 선생이 목소리를 깔고 따지듯 묻는 말에 능결죽은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웅 선생은 기가 차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마오타이 내놓을 정도로 통이 컸으면 내 월급 50위안도 깎지 않았겠지.”
“무슨 문제 있습니까?”
펠릭스가 궁금한 듯 묻자, 묘 선생이 통역했다.
“아닙니다. 웅 선생이 나이가 많아서 독한 술을 못 마셔서 그럽니다.”
능결죽은 설명을 덧붙이고는 다시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웅 선생님, 나중에 50위안 올려드릴게요.”
“정말?”
“정말이요.”
웅 선생이 눈을 번쩍이는 모습에 능결죽은 조금 아깝기도 한 듯 덧붙였다.
“개근 수당에 더하는 거로 해요.”
“그러지 뭐.”
능결죽의 쩨쩨함에 익숙한 웅 선생은 그것으로도 만족하며 잔을 들어 올리고는 다시 물었다.
“종일 이과두주만 마시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죠. 배갈(고량주)도 있죠.”
능결죽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웅 선생은 술을 놓지 않고 꿀꺽꿀꺽 마시다가 능결죽이 검남춘을 열고서야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정원의 밤 경치와 시내에서 드물게 보이는 별 하늘을 만끽했다.
반대로 묘 선생은 기분이 업되었고, 그렇다고 큰 소리를 내는 건 아니고 그저 술을 계속해서 권하고 마시면서 곧 알딸딸해져서 흔들대며 목소리를 높였다.
“능 선생은? 능 선생하고 한잔해야 하는데.”
그와 하구 진료소의 관계는 아무래도 협력 관계고, 전엔 자주 다른 작은 병원과 진료소로 진료를 나갔다. 단지 지금은 하구 진료소의 명성이 커지고, 환자가 늘어나고, 설비와 기구가 업데이트됨에 따라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하구 진료소가 그에게 가져다준 이득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다른 한편으로, 묘 선생은 아직도 능연에게 배울 것이 많고, 능연에게 돈도 있고 미래도 있다는 생각에 눈 밑까지 달달 떨면서 ‘능 선생’을 불렀다.
“능연은 자러 갔어. 애 엄마가 술을 못 먹게 하거든.”
능결죽은 도평을 방패막이로 끌어냈다.
“엄마요?”
“음, 집안은 애 엄마가 대장이야.”
능결죽은 또 잔을 들어 올려 펠릭스와 건배했다.
“건배!”
펠릭스는 술을 권할 것도 없이 히죽이며 잔을 비웠다. 묘 선생은 다소 얼떨떨하게 술잔을 비우고는 ‘하지만, 하지만…….’ 하고 중얼거렸다.
“능연 깨겠다, 좀 조용히 해. 하지만은 무슨. 나도 집에선 마누라 말 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묘 선생은 능결죽을 향해 손가락을 흔들어대면서 말을 이었다.
“하구 진료소는 능 소장님 집 정원에 지었잖아요!”
능결죽은 멈칫하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본질적으로, 내 마누라가 원한다면 진료소 일도 마누라 말을 들어야 해.”
“그건 문제없는 것 같은데.”
묘 선생이 웅 선생을 바라봤다.
“나 보지 마. 난 집에 가면 힘든 척해.”
술이 된 웅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펠릭스와 켈런은 바로 손뼉을 쳤다.
“잘 부르시네요.”
“재미있네요.”
“무슨 내용인가요.”
능결죽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자본가를 규탄하는 내용입니다.”
“자본가는 나쁜 놈들이에요.”
“맞아, 자본은 쓰레기야.”
두 미국 국민은 이과두주를 마시며 격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상구.
지역 진료소 장천성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진료실의 환자를 바라보며 때때로 핸드폰을 보았다.
“이런 나쁜 새끼! 감히 이따위 거짓말을 해?”
능결죽의 SNS를 새로고침 하다가 하구 진료소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선 사진을 본 순간, 장천성은 완전히 폭발했다.
“진짜 미국 전문가도 아닐 거 아니야! 얼마나 속은 거야. 우리 중국인은 진짜 못 말린다니까. 백인만 보면 다 좋은 사람인 줄 안다니까. 미국에서 온 날라리면 어쩌려고.”
“날라리가 뭐예요?”
세대 차이 나는 어린 간호사가 묻는 말에 장천성은 화도 나고 어이도 없었다.
“직업 없이 노는 놈들 말이야.”
“아, 들어본 거 같아요.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렇지. 그런데 능 선생은 운화병원 전문가잖아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던데 그렇게까지 할까요?”
상구 지역 진료소의 어린 간호사는 능 선생이라는 말에 눈빛을 빛내며 그렇게 말했다. 장천성도 능연이라는 사람을 알기에 이 백인이 정말로 미국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 정상급 어쩌고는 절대로 믿지 않았다.
“설사 미국 의사면 뭐? 미국 전문가면 수액을 더 잘 놓나?”
장천성이 무시하며 툴툴대자, 간호사가 푸훕 웃음을 터트렸다.
“미국 사람은 수액 안 놓는다면서요.”
“수액이고 자시고 미국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내가 의료진인데 모르겠어?”
장천성이 씩씩대며 욕을 해댔다.
“능결죽, 이 허풍쟁이! 그거 알아? 정말로 세계급 이름난 의학 전문가면, 북경, 상해, 광동 개인 병원 가서 진료비 6만 6천 6을 받아도 줄이 꽉 찰걸?”
“그럼 병 한 번 고치는데 백만 위안 들게요?”
“백만 위안으로 가방 사는 사람도 있는데, 목숨값이 백만 위안이 무슨 대수라고.”
장천성은 하구 진료소 방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정정당당한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내가 알기로 능결죽의 아들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개인 병원에 가서 백만 위안짜리 수술할 수 있어. 하지만 세계급 전문가를 불러온다고? 그래, 불러올 수는 있다고 치자. 그럴싸한 이름으로 학회도 열 수 있어. 하지만 세계급 전문가가 하구 진료소에서 진료를 본다고? 너무 심하지 않아? 운화 일등 부자도 그 정도는 못 하겠다!”
그는 능연이 아니라 능결죽 아들이라고 더 부르고 싶었다. 어찌 됐든 능결죽과 몇십 년 적수라서 그렇게 부르는 게 더 기분이 좋았다.
“우리 운화 일등 부자가 누군데요?”
“난 저기 좀 가보고 올게.”
어린 간호사 역시 흥미진진하게 듣다가 묻는 말에 장천성은 더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핸드폰을 들고 줄행랑쳤다.
상구 골목과 하구 골목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직선으로 걷다가 모퉁이를 돈 장천성의 눈에 하구 진료소가 들어왔다. 딱히 눈썰미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바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SNS 사진은 거짓말은 아니었군.
점점 더 질투가 나서 다가가 봤더니,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세우는 동시에 줄 선 사람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의자를 내어주고 있었다.
“아들의 제약회사 직원까지 끌어다 쓰다니. 뻔뻔하군.”
장천성도 제약회사 직원을 알고 있었다. 특히 백신 회사는 장천성 같은 지역 병원 책임자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서 평소에 가끔 작은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입 안의 혀처럼 구는 건 대형 병원 상급 의사나 받을 수 있는 대우였다.
장천성은 그 점을 부러워하며 혀를 끌끌 차고는 멀리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장 선생! 장 선생!”
누군가 그를 발견하고 손짓하자, 눈을 찌푸리고 보던 장천성은 주민 센터 주임인 걸 알고 재빨리 다가가 아는 척했다.
“인사 좀 드려요. 우리 위생국 최 국장님.”
주민 센터 주임이 옆에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자 장천성은 재빨리 공손하게 인사했다.
“장 선생은 상구 병원 책임자입니다.”
장천성을 소개한 주민 센터 주임은 다시 그를 향해 물었다.
“능 소장이 진행하는 이 진료, 어떻게 된 건지 알아요?”
“허풍 아닐까요…….”
아까까지만 해도 격분하던 장천성도 이제는 함부로 단정할 자신이 없었다.
“들어가 봅시다.”
국장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앞장섰고, 바로 버려진 주민 센터 주임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장천성을 흘겨봤다.
“확실하지 않은 일을…….”
“세계 정상급 의학 전문가라잖습니까. 그게 어떤 사람인데요.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이지.”
투덜거리던 장천성은 미심쩍은 듯 주민 센터 주임을 바라봤다.
“덩달아 사슴을 말이라고 하시려는 건 아니죠?”
0.125초 당황하던 주민 센터 주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위생국에서 무슨 생각인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 장 선생도 그냥 입 다물어.”
“미국 사람이라고 아무나 세계 정상급 의학 전문가라고 하는 건 아니죠.”
장천성은 아까 간호사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하지 못함이 한스러웠다.
“일단 들어가 보자고.”
주민 센터 주임은 이렇다저렇다 말없이 장천성 곁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연말이잖아. 위생국에서 일하는 척해야지.”
장천성은 입을 삐죽이다가, 안에 들어간 위생국 국장이 어느새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더 언짢아졌다.
그때 국장의 말을 통역하며 묻는 말이 들렸다.
“그럼 두 분은 어느 병원에 계십니까?”
장천성은 귀를 쫑긋 세우며, 두 사람이 중국에서 졸업한 거면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입니다.”
펠릭스는 대빵 기질을 내뿜으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뉴욕이나 DC 어쩌고가 안 붙어 있으니, 조금 하급 병원인가 싶어서 이름을 되풀이한 위생국 국장은 곁에 있는 부국장에게 아는 병원이냐고 물었다. 국장은 비전문가고 부국장은 의사 출신이라, 부국장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부국장은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심장외과 수술합니다.”
펠릭스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때 운리 제약회사 직원 하나가 앞으로 나와 프린트한 종이를 묵묵히 내밀었다. 펠릭스와 켈렌의 경력서였다.
멀찍이 내다보던 장천성의 눈에 ‘주치의’, ‘하버드 의대’ 같은 중문이 들어왔다. 위생국 관원들은 손도 심장도 바들바들 떨었다.
다른 업계와 달리 임상 의학 문턱은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것이고, 기층 병원에서 세계급 병원이란 쉴 새 없이 커지는 마트료시카와 같다. 한 사람이 어떤 계층의 문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평범하고 포부도 없는 사람들이 무수히 보이고, 위로 올려다보면 오르기 힘든 높은 산이 있다.
임상 의학에서 승급이란 비주류 인원을 잘라내는 노선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중국 혹은 인도 마을 위생소엔 지금도 의과대학 출신이 아닌 의사가 있지만, 지시급 삼갑병원엔 의과대학 출신이 아닌 의사는 기본적으로 없고 대다수 의학 석사 혹은 의학 박사가 존재한다. 성급 병원이 되면 그런 상황이 더 보편적이게 된다.
성급 삼갑병원의 수많은 중, 노년 의사가 어려워하는 SCI 논문도 직할시 삼갑병원 혹은 지역 정상급 삼갑병원에서는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워진다.
국내 정상급 병원 진료과에서 논문을 잘 쓰는 의사는 실험 데이터가 있다면 하루
사실상, 국내 정상급 수준 임상의가 되면 자신의 영역에서 이미 입만 열면 법이 되는 힘이 있고, 전형적으로 지침을 쓰고, 전문가 의견을 쓰는 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쓴 논문을 부문 발췌해도 문단마다 모두 새로운 논문을 쓸 수 있다. 정상급 전문가가 수술할 때는 단 10분이라도 약체 의사가 평생 배울 수 있다. 그들이 배우려고 든다면 말이다.
세계급 병원의 조건이 까다로운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보통 어느 경력서든 거의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승리 그룹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펠릭스는 눈에 띄는 하버드 의과대학 졸업 외에도 줄지어진 수상 항목이 있고, XXX 걸출 공로상, XXX 경력, XXX 전문가 등이 쭉 늘어져 있다.
그 외에 펠릭스는 미국 심장질환 학회, 심장질환 의학원, 심혈관 혈관조영술 협회, 미국 중풍 협회 등등 이런저런 협회와 학회 구성원 혹은 연구원이기까지 했다.
국내 의사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이렇게 많은 타이틀을 가진 것 자체는 별것 아니지만, 타이틀을 많이 가졌을수록 여러 가지를 설명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업계 내 경력에 밀접한 연관이 생긴다. 여러 분야를 섭렵할수록 학회 신분과 명예 신분이 매우 복잡 다양해진다. 어찌 됐든 너무 보잘것없는 상과 학회가 아니라면, 1, 2년 사이에 마구잡이로 한 의사에게 왕창 때려줄 일이 없으니 말이다. 특히 경쟁 관계인 학회와 상은 고려할 것이 더 많아진다. 그러니 진정한 능력자만이 이 많은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위생국 관원에게는 펠릭스의 경력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국내 의학 능력자의 경력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을 텐데, 외국인이다 보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평범한 의학 능력자는 아무리 거만해도 그들 같은 지방 관원들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겠지만, 외국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거……. 맞는지 조회해봐.”
국장은 의학계를 모르지만, 곁에 아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다. 경력을 받아든 부국장 역시 어쩔 줄을 몰랐다.
이걸 어떻게 조회하라고. 클리블랜드 센터에 문의해? 사실 펠릭스 본인이 증명해주는 게 제일 좋지만, 상대가 증명할 이유가 전혀 없지.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부국장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바쁘게 전화를 돌리는 척했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장천성은 그럴싸하게 꾸미기도 힘들어 보이는 경력을 보며 살짝 위험을 느꼈다.
“장 선생, 능결죽하고 친하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주민 센터 주임이 하필 아픈 곳을 찌르며 물었다. 능결죽이 현수막을 걸지 않았다면, 외국 전문가가 자기 구역에서 진료 보고 있는 것도 모를 뻔했다. 위생국 사람들까지 일부러 달려왔지만,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그냥 일하는 척하러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다시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으니, 현수막 위에 눈이라도 달린 듯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세계 정상급 의사’는 그에게 별 영향이 없는데 또 영향을 적잖게 주었다.
장천성은 머리를 힘껏 긁적였다.
“내 생각엔……. 내 생각엔…….”
“장 선생 생각 말고, 아는 것만 말해.”
주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제가 뭘 알겠어요.”
장천성은 이야기하기 싫어져서 대놓고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 능결죽은 이런 일을 벌일 능력이 없습니다. 원래 타고 나기를 잘 타고나서 진료소 물려받고, 예쁜 마누라랑 결혼해서 대단한 아이 낳았을 뿐이지, 의사도 아닌데 무슨 외국 의사를 알겠냐고요.”
주민 센터 주임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이야 이럴 루트가 있긴 하지.”
능연은 그의 관할 구역에서 절대적 유명인이지만, 아직 정식으로 인사한 적이 없었다. 주민 센터 주임인 그는 주제를 잘 알아서 괜히 쓸데없이 찾아가진 않았어도 능연의 상황이 어떤지는 상당히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지력과 경험으로는 당장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구 진료소가 리모델링했을 때도 주시했었지.”
주민 센터 주임은 있는 말 없는 말 늘어놓았다.
펠릭스 일행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펠릭스는 클리블랜드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일이 환자를 진료했다. 그들은 이미 임상 최고급 주치의였지만, 계약이 있어서 주마다 진료할 의무가 있었고, 그런 생활이 길어 지니 가끔 진료 보는 생활에도 익숙했다.
단 하나 익숙하지 않은 건, 하구 진료소의 진료 방식이 밀폐식이 아니라는 것이어서, 펠릭스는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진료를 해야 했다. 그러나 몇 명 진료하는 사이 바로 익숙해졌다. 제3 세계 국가에 지원 나간 적도 있어서, 환경 적응력이 괜찮은 편이었는데 다만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다 보고 있으니, 진료실에서 단독으로 진행할 때보다 자신에 대한 요구가 더 까다로워졌다. 게다가 곁에 능연도 있고.
“자, 이 검사를 해야 합니다.”
펠릭스는 종이와 펜을 들고 모든 항목을 적어서 앞에 있는 골목 사람에게 건넸다.
“검사 보고 나오면 다시 예약하고 오시고요.”
통역이 재빨리 능력자의 말을 통역했다.
“검사를 이렇게나 많이?”
골목 사람이 미심쩍은 듯 펠릭스를 바라봤다. 저 금발이 진짜가 아니었다면, 경찰에 신고할 기세였다.
“위험한 상태라서 제때 검사해야 합니다. 중요해요.”
펠릭스는 이어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또 10분이 지났다. 그 모습에 위생국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저 태도, 전문성 좀 보게. 중국 의사들의 갈 길이 멀군.”
줄이 줄지도 않고 늘기만 하자 얼마나 걸리는지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기다리기 싫으면 병원으로 가세요.”
“기다릴게요.”
“그럼 기다리세요.”
그 모습에 펠릭스는 기분이 좋아져서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떠들썩해졌군요.”
“그러니까, 이놈이 정말로…… 세계 정상급 심장의라는 건가?”
부하의 대답을 들은 위생국 국장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하 역시 그다지 자신 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그의 말을 고쳐주었다.
“이놈들이죠. 둘 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의사입니다. 정상 루트로 들어간 의사요. 게다가 세계 정상급 심장외과 의사고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어디 소식인데? 정확해?”
위생국 국장은 대충 물으면서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소문을 듣고 온 것이긴 하지만, 하구 진료소에서 허풍을 떠는 것으로 여기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백만 대군을 끌고 왔다고 허풍 친 것, 다리우스 3세가 이소스 전투에 백만 대군을 끌고 왔다고 허풍 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든 외국이든 과장법이 있기 마련이니까.
위생국 국장은 속는 셈 치고, 이 김에 뉴스 좀 내고 이슈 만들면 업무 리포트 만들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두 외국인이 정말로 세계 정상급 심장외과 의사라면, 조조가 정말로 백만 대군을 쓴 것처럼 전투 형세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병원 고위층에 전화도 해 봤고, 개인 진료소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확인했습니다.”
소식의 진실성을 본인도 잘 믿지 못해서, 부하는 소식을 듣게 된 루트를 알리는 데 별 거리낌이 없었다.
“다들 정말이래?”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들어본 적 있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부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두 분은 어느 원사님이 초청했다더군요. 국내에서 매우 대단한 심장외과 전문가래요. 운화병원 응급센터 곽종군 수술 대비책으로 초청했답니다.”
국장은 한참 동안 그 말을 곱씹다가 다시 물었다.
“수술 대비책을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그냥 비정규 루트 탄 거죠. 능연이 곽종군 수술을 했는데, 혹시 문제가 생길까 봐 큰돈 들여서 미국 전문가를 부른 겁니다. 그야말로 대비책이죠. 이건 여러 사람에게 확인한 거니까 정확할 겁니다.”
부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우리 국내 개인 진료소에도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와 연계된 곳이 있는데 펠릭스, 켈런이라는 의사가 분명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진 캡처도 있습니다.”
부하는 핸드폰을 꺼내 바로 갤러리를 열었다. 갤러리 안 윗줄 중간에 아래 설명이 적힌 펠릭스와 켈런의 증명사진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하구 진료소에서 정말로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의사를 불러왔다는 건가?”
국장은 이제 믿고 있었다.
“이 정도 증거면 뉴스를 내기 충분합니다.”
“음, 이 정도 증거면 뉴스 내기 충분하군.”
국장이 부하의 말을 반복했다. 둘 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생각은 같았다. 생각이 같다는 걸 확인한 두 사람은 순간 신뢰도도 높아졌다.
“출입국 관리소에 있는 친구분께 한 번 확인해 보시죠. 두 사람의 자료가 있다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부하가 의견을 냈다. 뉴스를 내기엔 지금 증거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 귀한 기회를 뉴스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의료 업계에 있는 부하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고, 국장은 그의 의견이 쓸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바로 전화하러 돌아섰다. 사실 국장뿐만 아니라,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사람은 다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능가 하구 진료소 크기는 뻔해서 돌아다니다가 서로 만나기 일쑤였고, 처음에 만날 때는 그래도 껄껄 웃으며 인사했지만, 자꾸 만나다 보니 다들 고개를 숙이고 못 본 척했다.
2층 티테이블에도 두 사람이 앉아서 각자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도평은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동네 사람 대접하며 마시든 말든 차를 내주었다.
그렇게 한참 흐른 후, 국장이 싱글벙글 진료 보는 곳 앞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부하도 기대하며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확인됐네. 그것참…….”
국장은 웃음을 참으며 헛기침하고는 말을 이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가 세계 1위 심장외과 병원일 줄은 몰랐군.”
“그렇다니까요. 미국에서도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는 방귀 좀 뀝니다.”
부하는 핸드폰을 만지면서 물었다.
“사람 구하셨나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위생 계열 사람이라 이런 대단한 의사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세계 일등 심장 센터에서 온 의사의 가치는 그들이 그동안 까치발을 들고도 꿈꾸지 못한 것을 창출해낼 수준이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제 알게 됐으니 이런 금덩어리 두 개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국장은 껄껄 웃으며 이름 하나를 말했다.
“유가 장모님이 병원에 들락거리시잖나. 심장 문제가 크거든.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당연히 들어봤겠지.”
“승낙하셨나요?”
부하가 부러워하며 묻는 말에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미루지 말고 어서 모셔오세요. 언제 돌아갈지 모르잖습니까.”
부하가 재빨리 상기시켜주었다. 국내 의사라면 상대가 늦게 도착해도 당연히 기다려야 할 거물이지만, 외국 의사는 그렇지 않으니까.
국장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러기엔 두 번째 문제가 있다고 했다.
“두 번째 문제요?”
“인원 처리 좀 해야지.”
국장은 길게 늘어선 줄을 향해 입을 삐죽였고, 부하는 바로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소 책임자와 이야기하겠습니다.”
“음, 심하게 새치기할 필요는 없지만, 수술 시간은 최대한 배정하라고 전해.”
국장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렸다. 최소라는 말이었다. 부하는 바로 이해하고 능결죽을 만나러 갔다.
이웃인 상구 지역 위생 병원에서 온 장천성 씨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난 높으신 분들이 잘 보이려는 듯한 얼굴로 능결죽을 찾아대는 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기분으로 눈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능연이 불러올 수 있는 이익을 사실 이해할 수는 있었다. 운화병원의 실력 있는 의사는 진료소 급 기관엔 분명 플러스 되는 존재이까. 하지만 잘 보이려고 애쓴다? 그건 장천성의 상식을 넘는 문제였다.
“무슨 이야기 중이십니까?”
장천성은 제약회사 직원이라도 된 양 뻔뻔하게 다가갔다.
“어, 장 선생!”
부국장은 사실 장천성을 잘 모르지만, 예의 바르게 그를 맞았다. 물론 능결죽에겐 더 예의 발랐지만.
“능 소장, 그럼 그렇게 합시다. 우리 자리 남겨 주셔야 합니다.”
“그럼요. 예약해 놓을 테니, 오시면 바로 진료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지만, 안 오시면 자리는 넘어갑니다. 나중에 오시면 뒤로 밀려나야 하고, 너무 뒤로 밀렸다가 외국인들이 귀국한다고 하면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OK, 능 소장 말대로 하죠.”
돈도 들이지 않고 열 명 정도 새치기한 셈이라 부국장은 이 정도만 해도 만족했다. 능결죽 역시 만족했다. 어차피 진료하고 약 처방 해주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서둘러 돈을 내겠다는 사람이 있는 건 그로서도 귀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짜릿한 경험.
한편으로 수술도 필요할 수 있어서, 위생국에서 수술실과 병실 문제도 해결해 줄 것이다. 새치기한 열 명뿐만 아니라, 요 며칠 펠릭스와 켈런이 진료한 사람들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능연 역시 그런 이유로 그들의 상의 결과를 승낙했다. 운화병원 병상은 다 찼는데 위생국의 협조하에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고 병상을 쓸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해결 방법이었다.
부국장은 완벽하게 해결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싱글벙글 국장에게 보고했다. 국장은 고개부터 끄덕이고는 저 멀리 내다보았다.
“다른 병원에서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군.”
군안 진료소의 박 원장은 최대한 서둘러 하구 진료소에 도착했다. 정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좌자전이 넋두리하면서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능 선생은 의학 말고는 정말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동네 사람들 검사나 할 생각했지, 후속 치료 돈 문제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돈을 어떻게 받을지는 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박 원장은 껄껄 웃으며 좌자전에게 말을 걸었다.
“잡다한 일은 우리한테 맡기세요. 능 선생은 그냥 좋아하는 일만 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면 됩니다.”
“예, 예. 남은 부분을 우리가 하면 되지요.”
박 원장이 있는 군안 진료소는 개인 진료소 중에서는 유명한 편이라서 몰려드는 환자가 많은 편이고 개중엔 큰돈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박 원장은 큰돈을 들여 의사들과 교류했다. 어찌 됐든 환자는 의사를 보고 치료받으러 오는데 그의 진료소엔 진짜로 대단한 의사를 키울 능력이 없으니 말이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서 밖에서 큰소리치고 싶을수록 상급 의사와 친밀하게 교류해야 했다.
좌자전도 ‘남은 부분’이라는 말엔 걱정하지 않았다. 박 원장도 그가 불러서 온 것이니, 인내심 있게 상황을 설명했다.
“대부분 외국 의사에게 수술받고 싶어 하지만, 시간, 체력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돈 문제도요. 그 부분 조율을 군안에서 맡아주세요. 경험 많으실 테니까요.”
“방법은 많습니다. 나한테 맡기세요.”
박 원장도 긴말하지 않았다. 꼭 사업 비밀이라서가 아니라, 능연이었다면 길게 이야기 나눴겠지만, 좌자전 상대로는 언행을 조심해야 했다.
“가격 너무 비싸게 부르지 말고요. 외국인들도 돈을 크게 바라지 않으니까요. 박 원장님도 돈 벌 생각만 너무 하시지 말고요.”
박 원장은 좌자전이 당부하는 말을 메모하면서 조용히 들었다.
“알겠습니다. 입소문으로 명성 올리잔 말씀이시죠.”
“그런 셈이죠.”
좌자전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어느 병원으로 배정할지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환자하고 보호자한테 잘 말씀해주시고요.”
“음? 어떤 식으로 배정할 건가요?”
“각 병원 원장 시야 넓혀줄 수 있을 정도면 되겠죠.”
박 원장은 두 외국인 의사로 호가호위 혹은 원님 덕에 나팔 불겠다는 생각임을 바로 깨달았다. 물론 박 원장은 따를 수밖에 없었고, 좌자전과 세부 내용을 합의하고는 구체적인 상황을 살피러 갔다.
하구 진료소는 지금 매우 떠들썩했다. 능결죽의 현수막에 이끌려 온 하구 현지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집에 틀어박혀 있던 사람들도 각종 인터넷 소식을 보고 몰려들었다.
이제 하구 주민, 하구 주민의 친척, 친구만 줄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백 명 넘게 몰려든 환자와 보호자가 쉴 새 없이 진료소 정원을 오가는 모습에 하구 주민들도 관심이 폭등했다.
근처 마트 사장은 한 번에 생수 두 박스를 짊어지고 진료소에 나타났다가 바로 싹 팔려버리자, 재빨리 돌아가서 또 두 박스 짊어지고 나오다가 잠시 생각하고는 더 비싼 생수로 바꿔서 나왔다.
이번에도 빠르게 다 팔리자, 바로 아내에게 전화하고는 돌아가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대기 번호를 받았다.
“282? 282번째라고? 언제까지 기다려?”
마트 사장이 번호표를 바라보며 능결죽에게 물었다.
“그건 몰라. 외국 의사가 돌아갈 때까지 보는 거지, 뭐. 외국인들이 언제 갈지, 그동안 얼마나 진료 볼지, 나도 장담 못 해. 어차피 번호표는 돈 주고받는 것도 아니니까 차례 오면 보는 거고 안 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알아서 미국 가도 되고.”
능결죽은 그래도 동네 사람이라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2백 몇 번 대라니, 많아도 너무 많네. 이게 차례가 돌아올까? 동네 이웃인데 282를 주다니!”
“빈 번호가 없어서 그래. 빈 번호 있는지 직접 물어보라고! 따로 빼놓은 게 있으면 벼락 맞아 죽을 거다!”
능결죽은 재빨리 맹세부터 했다. 이웃에게 호감 사려고 하는 일에도 리스크가 있다는 걸 능결죽은 진작 깨달은 사람이었다. 마트 사장도 믿을 수밖에 없어서 꿍얼대며 번호표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간식 좀 가지고 와야겠네.”
사람들이 이리 많이 몰려 있으니 분명 배고프겠지. 음, 외국 놈들도 있으니까 콘돔도 좀 가지고 올까.
마트 사장은 힐끔 펠릭스를 바라봤다. 마흔 남짓한 앵글로색슨족, 모 영상에서 본 모습과 똑같았다.
잠시 후, 부부가 나란히 물건을 가지고 진료소로 들어와 팔기 시작했다. 연자는 그 모습을 보고 허리를 펴고 팔 수 있도록 테이블을 가져다주었다.
“사람 정말 많네.”
사장 부인이 연자에게 웃어 보이고는 콜라를 내밀었다.
“이거 마셔.”
“땡큐!”
연자도 사양하지 않고 웃으며 받아들고는 의자도 가져다주었다. 사장 부인은 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남편에게 번호표 받았는지 물었다.
“받았지. 282번. 진료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앞에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외부인들도 와서 줄 섰대.”
“좀 일찍 와서 받지.”
사장이 후회하는 듯 목소리를 낮추고 하는 말에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홍보물 봤을 땐 별생각 없었지. 하구 같은 곳에 심장에 문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었다니까.”
“당신도 문제없으면서 줄은 왜 섰는데.”
“요즘 심장에 문제없는 사람도 있어?”
마트 사장이 조금 뿌듯한 듯이 하는 말에 아내는 어이없어졌지만, 번호표 받은 걸 반대하진 않았다. 남편 말대로 요즘 세상에 심장에 문제없는 사람이 없으니 진료받아서 나쁠 건 없었다.
박 원장은 정원에 서서 하구 진료소와 환자를 살폈다. 물론 펠릭스 일행을 더 많이 관찰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중요한 사람을 접촉하는 걸 가장 금기하는 업계였다.
박 원장도 면담 전에 면담인이 썼던 논문, 편찬 서적을 미리 싹 다 읽어보고, 이런저런 루트로 면담인의 상황도 파악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전국구로 돌아다니는 개인 진료소 책임자가 현지 제약회사 직원들과 밀접한 친분을 맺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잠시 보고 있는 사이 능연이 아래로 내려오자, 박 원장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슨 이유로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주치의를 불러왔던지, 능연이 곁에 있는 건 당연하지. 그런 걸 보면 능연이 완전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진 않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펠릭스와 켈런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 선생!”
펠릭스와 켈런이 동시에 부르자, 능연은 앉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펠릭스 곁으로 다가갔다.
다년간 의료 중개를 해온 박 원장은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펠릭스와 켈렌이 능 선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겁니까?”
박 원장이 좌자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셈이죠. 배우고 싶어 하거든요.”
좌자전이 핵심을 찌르며 대답해 주자, 박 원작은 자신의 상식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주치의가 뭘 배울 게 있다고.”
좌자전은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싱긋 웃었다.
“외로워서겠죠?”
박 원장은 신중하게 웃어 보였다. 능연이 원님 덕에 나팔 불 수 있도록 좌자전이 돕는 줄 알았더니, 능연은 클리블랜드에서 온 의사와 비교해도 너무 위풍당당했다.
박 원장은 좌자전을 더 높이 살 수밖에 없어졌다.
“여러분, 능 선생은 잘 아실 테니 더 소개할 필요 없겠죠. 이 두 분은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에서 오신 펠릭스 선생, 켈런 선생입니다.”
박 원장은 마음을 활짝 열고 열정이 넘치는 모습으로 운화 시 제2 중앙 병원 의사들에게 능연 일행을 소개했다.
훌륭한 브로커고 기꺼이 자기 구역을 운화로 확장하고 싶어하던 박 원장은 능연과 두 세계 정상급 의사 조합을 이렇게 쉽게 꾸릴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 했었다.
그들이 병원에 나타나면 평소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원장 혹은 모모 부원장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나타났다.
박 원장은 이게 위생국의 공로 덕인지, 클리블랜드 센터의 명성 덕인지, 아니면 능연의 명성 덕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기분이 좋아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상황을 설명하고는 능연 팀의 구성원이 안내받아 사라진 후, 의사들에게 명함을 나눠주었다.
군안 진료소의 규모가 있어서 상급 의사만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실력도 괜찮고 시간도 좀 있는 의사들은 여전히 사귀어둘 만했다. 어떤 때는 이런 병원에서 바로 스카우트할 때도 있고.
평소라면 박 원장이 사적으로 친분 없이 바로 나타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의사들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능연 팀과 함께 왔으니 당연히 능연의 인맥으로 여겨졌다. 의사들도 인맥이 필요하니까.
오랜 시간 의료계에서 구른 박 원장은 사실 상급 의사 인맥도 매우 많지만, 그동안 어떤 경험보다 지금 능연의 인맥이 된 기분이 훨씬 더 통쾌했다.
다른 이유보다, 대부분 상급 의사의 인맥 네트워크는 대부분 자기 진료과에 집중되어 기껏해야 본원 안이고,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의사는…… 사실 조금 더 급이 높은 의사는 대부분 북경, 상해에 집중되어서 있고 인맥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로 그리 넓진 않다. 그러나 능연은 조금 달랐다. 그는 말수도 적은 편이고, 다른 상급 의사처럼 이런저런 협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사람은 더욱 아니지만, 그의 확장성이 대다수 의사보다 낫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병상 두 개 쓰겠습니다.”
박 원장이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곧 휘몰아칠 피바람을 예상했었다. 그리 적당하지 않은 예를 들어보면, 남의 공장에 가서 기계 두 대, 혹은 작업장 하나 쓰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제4 중앙 병원과 제3 중앙 병원 의사들처럼 제2 중앙 병원 의사들도 눈 감고 두 손 들고 반겼다.
박 원장은 사실 웃음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웃진 않았다. 제2 중앙 병원 심장외과 중에 웃고 싶거나 웃으려 드는 의사가 없으니까. 의사들이 피바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피바람이 불지 않았을 뿐,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닐 테니까.
“할 말이 있어도 다들 참아라.”
부원장 하나가 뒤에 서서 나지막이 주변에 있는 의사들에게 당부했다. 박 원장은 잠시 주춤하다가 재빨리 자리를 떴다. 아무리 패자의 앓는 소리라고 해도 잘못했다간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박 원장, 마침 잘 만났군. 자자, 나 좀 봅시다.”
그러나 2 병원 부원장이 부르는 소리에 박 원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못 들은 척하긴 글렀고, 할 수 없이 이제 막 도착한 것처럼 웃으며 다가갔다.
“방 원장님, 같이 가신 줄 알았습니다.”
“나까지 갈 거 있나. 박 원장, 요 며칠 계속 능 선생하고 같이 움직였나?”
“예. 그랬습니다.”
박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 진료소 원장은 공립 병원 대빵 앞에서는 고분고분해야만 하니까.
“음, 아까 사람이 많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잘 됐군. 능 선생이 다른 병원에선 어땠는지 이야기 좀 해 보게.”
방 원장은 길게 인사치레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왕 주임이 환상을 좀 품은 것 같은데, 좀 깨줘.”
“한번 들어봅시다.”
쉰쯤 되어 보이는 왕 주임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방 원장을 힐끔 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능연 실력이 대단한 건 나도 압니다. 하지만 의학은 순순히 기술로 지금까지 발전한 게 아니라고. 인간관계도 고려해야지.”
이들이 미리 준비하고 던진 화제라는 걸 박 원장도 알고 있었다.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 빠지려야 빠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해야 할 말이었고. 박 원장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이 인간관계를 좀 고려할 필요가 있긴 하죠.”
“그렇죠?”
왕 주임은 한순간 박 원장이 조금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며 눈빛을 빛냈다.
“의료 서비스는 의료 두 글자로 되는 게 아닙니다. 서비스도 봐야지. 음? 기술만 좋다고 제멋대로 구는 건……. 안 통하지.”
“박 원장, 어떻게 생각해.”
곁에 있던 방 원장도 거들자, 박 원장은 싱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사실 저희 군안 진료소도 인간관계 측면, 서비스 측면 모두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찌 됐든 능 선생이 수술해야 환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고, 저희가 2 병원에 온 것도 어찌 됐든 환자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
앞에 늘어놓은 말은 다 쓸데없고,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말, ‘환자가 원한다’였다. 운화병원엔 정말로 병상이 없고, 수술받으려는 환자는 모두 2 병원 인맥이라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박 원장은 어쩌면 환자가 바로 방 원장이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상황이 다른 병원에서도 벌어졌다. 본원 의사가 의견이 있든 말든, 환자와 다른 의사 혹은 행정 관원의 힘이 들어가면 거대한 작용이 발생한다. 정말로 같이 죽을 생각은 없는 왕 주임를 비롯한 의사들도 결국 물러설 것이고.
기껏해야 병상 두 개고 그냥 잠시 빌려 쓰는 거잖아. 왕 주임도 대충 이렇게 생각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왕 주임의 눈빛이 휙휙 변하는 것이 분명 이해타산을 조율하는 게 틀림없었다.
“왕 주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식견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라서 봐주는 겁니다.”
방 원장이 왕 주임의 퇴로를 만들어 주며 끼어들자 왕 주임은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하하하. 그래, 그래. 일단 가보자고.”
박 원장은 모른 척하며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수술은 능연이 모두 집도하고 펠릭스 일행은 배우는 모드로 진행됐다. 수술 자체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뛰어난 수술이 아니면 펠릭스와 켈런이 굳이 배우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직접 그런 수술을 보고, 능연과 두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주치의의 관계를 알게 되면 2 병원 같은 병원의 심장외과 의사들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능연이 수술실에 나온 다음, 능연을 대하는 태도도 불가피하게 변할 것이고.
박 원장은 불구경하자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수술실로 들어갔다. 2 병원 수술실은 심장외과 전용 수술실이라고 해도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고, 잔뜩 몰려 들어가자 순회 간호사가 바로 스탑을 외치며 사전에 예약하지 않은 두 레지던트를 쫓아낸 후에야 수술이 시작되었다.
“메스.”
“거즈.”
“훅.”
기교 없이 소박하게 진행되는 수술은 이제 능연에겐 아무런 도전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겐 여전히 눈이 휙휙 돌아가는 동작이었다.
“능 선생, 여기 수술 끝내면 우리랑 같이 클리블랜드로 가요.”
손을 놀리던 켈런이 드디어 못 참겠다는 듯이 하는 말에 통역은 순간 넋이 나가서 멍청하게 통역했다. 그러나 그의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영어를 잘하는 의사들은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닥터 켈런이 능연에게 함께 클리블랜드에 가자고 했대요.”
사무실에서 문서 정리하던 맥순은 재빨리 그 내용을 전칠에게 전했다.
능연을 팔로우하는 건 운리 이사회의 매우 중요한 업무였다. 전엔 맥순의 주요 업무였지만, 그녀의 실적이 점점 좋아짐에 따라, 그리고 전칠과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업무량이 늘어서 그쪽에만 집중할 수 없어졌다. 그러나 맥순은 여전히 능연을 주시하고 있었다. 단순히 업무라서가 아니라 이제는 취미에 가까워졌다. 같이 졸업한 룸메이트와 함께 팬질하는 것처럼, 능연을 오래 주시하던 맥순은 점점 배우보다 능연을 주시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맥순은 ‘연 조공그룹(골수)’, ‘남신 조공그룹’, ‘플래티넘 조공그룹’, ‘광동식 조공그룹’, ‘스페인 운화 사무실’ 등 꽤 덩치가 큰 단톡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 소식도 이 조공그룹에서 가장 먼저 누설됐다고 볼 수 있었다. 켈런이 능연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는 gif 이미지를 본 맥순은 바로 전칠에게 소식을 보냈다.
그녀는 서둘러 영상을 편집해서 이메일을 보낸 다음 클리블랜드 상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클리블랜드 인문 지리 같은 정보가 아니라 클리블랜드에서의 전씨 가문 사업 혹은 관련 사업에 관한 정보였다.
전칠이 요즘 가족 사업을 인수하느라 바쁜 건 잘 알지만, 각지 사업군이 지나치게 복잡해서 전후 순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어쩌면 미국 중부의 사업을 끌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맥순은 매우 진지하게 살폈다. 클리블랜드 역시 미국 중부의 중요한 도시로, 전통적인 공업 분야는 매우 쇠퇴했지만, 금융과 의약 분야는 그래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서 아직은 희망이 많은 곳이었다.
운화 제2 중앙 병원.
심장외과 수술실에 있는 본원 의사들은 마음이 좀 착잡해졌다. 능연의 상상 초월한 활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운화병원 의사들과 달리 소문으로만 들은 2 병원 의사들은 아무리 그를 높이 친다고 해도 본원에서 가장 뛰어난 의사보다 훌륭하고, 운화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의사 중 하나고, 창서성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의사 중 하나로 인정한다고 해도 거기까지였다. 더 위로 올라가는 건, 그들에겐 머나먼 존재였다.
그리고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의 초청이란, 사실 지금 수술실에 있는 2 병원 의사들에겐 고려조차 하지 않은 노선이었다.
“이미 외과 부장하고 이야기 끝냈어요. 당신만 좋다면 모든 비용을 우리가 부담할 거예요.”
켈런은 조금 흥분한 상태로 능연을 어시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능연과 수술하는 동안, 본원의 업무량도 늘어갔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펠릭스와 그녀 모두 연차를 쓰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둘 다 주치의라서 그만한 연차가 있는 거겠지만, 보름이나 쉬었으니 슬슬 연차도 끝나갔고, 능연을 클리블랜드로 끌고 가는 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능연 역시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가 궁금했다. 세계 최고의 심장외과 센터에서의 택일 수술은 중국 일반 삼갑병원에서 하는 수술보다 평균 수명을 10년 끌어올리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의술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였다. 그 시스템에는 물론 리스크 배제, 더 좋고 더 새로운 기술과 약물, 그리고 트레이닝, 믿을 만한 팀원도 포함된 것이었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있냐 마냐의 중점은 돈이 없느냐, 혹은 돈을 정확하게 쓰지 못했냐의 문제였다. 가장 두드러지는 예로 헬리콥터 구조와 응급차 구조를 들 수 있다. 정말로 목숨에 가격이 없다면, 온 세상 응급차를 헬리콥터로 바꿔야 할 테니까.
기술 방면, 심지어 수술 전후 기간 케어 방면에도 능연은 상당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심장외과는 그동안 진행했던 간담췌와 다르고, 일반외과나 정형외과는 규모와 조건으로 더욱 비교할 수 없는 분야였다. 뛰어난 심장외과 팀은 규모, 트레이닝, 장비 어느 모로 봐도 의학 영역 중 특수 부대라고 할 수 있고.
투자도 소규모 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의료 피라미드 최고봉인 심장외과에 투자되는 돈이 가장 많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잠시 다녀오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운화 쪽 일부터 처리해야 해요.”
“그야 물론이죠.”
능연이 잠시 생각하다가 하는 말에 켈런은 그저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전화 몇 통 하는 것으로 여기고 웃어 보였다. 그런데 능연이 좌자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병상 수 확인해주세요.”
“예압.”
이미 예상한 좌자전은 바로 대답했다. 정말로 미국에 갈 작정을 했다면 능연이 병상을 비우고 갈 리가 없으니까. 예전의 예로 보면 분명 온 복도를 다 채우고서야 만족할 테니까.
“심장외과 병상도 같이 확인해주세요. 최근에 심장 우회술 환자가 많습니다.”
“오키, 접수.”
좌자전은 바로 대답하고는 뒤에 말은 필요 없었다고 속으로 꿍얼거렸다. 강 주임의 병상이 우리의 병상인걸.
이야기를 나누며 수술을 지켜보던 2 병원 심장외과 의사들이 능연의 손놀림을 보면서 점점 말을 잃자, 수술실은 점점 조용해졌다. 차이가 너무 명확한 상대에겐 흥미를 잃는 법이다. 위를 올려다보기만 하는 것도 지치고.
“수술 끝났습니다.”
능연은 우아하게 선을 자르며 자리에서 물러났고 함께 어시 하던 펠릭스와 켈런은 블라블라 토론하기 시작했다.
2 병원 주임은 허탈하게 웃다가 한참 후에 고개를 저으며 능연에게 말을 걸었다.
“능 선생, 수술 순조롭게 끝난 거 축하해요. 이따 밥 같이 먹읍시다.”
관례대로 하는 말이었는데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 없습니다. 미국 가려면 연달아 수술해야 해서요.”
그렇게 말하는 능연의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고, 좌자전뿐만 아니라 펠릭스도 눈치채고는 입을 열었다.
“능 선생, 밤에도 수술하려고요? 나도 같이 합시다. 음, 밤새 심장 우회술 하면 향상하겠군.”
능연이 대답하기 전에 시스템 알람이 눈앞에 펼쳐졌다.
- 퀘스트: 영역 확장 발전
- 퀘스트 내용: 심장 우회술 100건 완성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심장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