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28화 (807/877)

아침 10시.

펠릭스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제부 엉덩이살이 육즙이 가득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보다 배가 등가죽에 붙을 정도로 허기져서였다.

환자 진찰하고, 수술하고, 수술 후 케어하고……. 능연의 요구는 점점 높아졌고, 수술은 점점 많아지는데 펠릭스 일행의 지위는 수직 하강해서 지금은 정말로 어시급 위치가 되었다. 그리고 어시와 집도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대량의 잡일과 몸 쓰는 일의 양이고.

수술 전에 능연이 하는 일은, 환자의 각종 검사 리포트와 필름만 본 다음, 환자를 만나 시진하고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어시는 이리저리 뛰며 모든 준비를 해야 하고, 특히 수술 방안이 확정되기 전엔 심지어 자료를 뒤지고, 유사한 케이스 등등을 찾으며 리스크를 줄여야 했다.

긴 세월 어시 일을 하지 않았던 펠릭스는 당연히 몸도 마음도 피곤했고, 모처럼 쉬는 시간이 되자 적을 찌르는 것처럼 포크로 고기를 쿡쿡 찔러댔다.

켈런 역시 마찬가지로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찌르고 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펠릭스보다는 평온한 상태로 그를 보며 웃어 보였다.

“버틸 수 있겠어요?”

“당신도 버티는데 내가 왜 못 버텨.”

펠릭스는 힘껏 고기를 씹으며 말을 이었다.

“엉덩이살은 쫄깃하고 식감이 좋긴 해도, 지금 이 시기엔 등심 아닌가.”

“전칠 씨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능 선생에게 등심을 줬겠죠. 1 파운드에 천 달러 이상 하는 고기인데 부족해요?”

“피곤해서 그래.”

펠릭스는 말도 하기 귀찮다는 듯 대답했고, 켈런은 동정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도 10년 뒤엔 당신처럼 되겠죠.”

“그게 무슨 말이야.”

펠릭스가 눈을 흘기는 모습에 켈런은 입을 삐죽였다.

“내 나이였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나는…….”

울컥하던 펠릭스는 금세 정말로 열 살 어렸다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화도 나지 않았다.

지금 상황만 봐도 그는 지금 켈런과 같은 출발선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적어도 심장우회술에서는 명확한 이점이 없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주임 의사인 펠릭스는 사실 여러 가지 수술이 아니라 한 가지 유형의 수술에서 탑 오브 탑이 되고 싶었는데, 능연이라는 천재를 만난 후 생각이 더 명확해졌다.

펠릭스는 최근 이틀의 수술 과정을 회상하면서 육즙이 가득한 엉덩이 살을 내려다봤다.

“능연의 무혈 시야 너무 대단해. 게다가 요 며칠은 무혈 시야 빈도가 점점 더 많아지잖아. 실력이 는 것처럼 말이야. 정말 놀라운 일이야.”

수술 이야기가 나오자 켈런도 예민함을 풀고 잠시 생각하다가 동의했다.

“실력이 는 것처럼이 아니라 확실히 실력이 늘었어요. 수요일 오후에 했던 수술 기억해요? 수술 진도도 명확하게 발전했어요. 벽을 돌파한 것처럼 말이죠.”

“이런 상황에 발전까지 하다니.”

펠릭스는 이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뭐라고 묘사해야 좋을지 몰라서 고개를 저었다.

“우리 기술도 늘었잖아요.”

켈런은 더 적극적인 태도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교류하면서 능연의 실력도 올라갔고, 우리 실력도 올라갔다고 생각하자고요.”

“물론 그게 컸지.”

펠릭스는 미국인다운 자부심이 순간 치솟아서 큰소리쳤다.

“능연이 우리가 가지고 온 클리블랜드의 선진 경험을 많이 채택했잖아. 이런 기술 교류, 사상 통합…… 나중에 책에 써야겠다. 잠시만, 좀 적자.”

펠릭스는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노트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와 수준에 이르면 스토리 있는 일화로도 정말로 지위를 올릴 수 있다. 물론 능연이 세계급 의학 마스터가 된다는 전제하에.

켈런은 펠릭스 같은 생각은 없고 그저 그가 농담하는 것으로 여기고는 고개 숙이고 고기를 먹고 물도 마시고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찌 됐든 우리가 기술을 가지고 돌아가면 병원에서도 깜짝 놀랄 거예요.”

“그렇지. 하하하. 닐슨하고 로크에게 진정한 정상급 기술이 뭔지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펠릭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이제 사흘만 버티면 돼요.”

켈런은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고는 바로 고통에 휩싸였다. 의대 다닐 때 바로 이렇게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서 다행이었다. 그 경험이 있어서 능연의 고강도 수술, 개인 집중도에 대한 요구도 별것 아니게 넘길 수 있었다.

사실 별것 아니었잖아?

그렇게 생각할수록 켈런은 온몸이 바짝 굳었다.

“능 선생은 5일 더 국내에 있을 겁니다.”

연문빈은 영어도 알아듣고 며칠 동안 친해진 것도 있어서 툭 한마디 하고는 싱긋 웃으며 두 사람의 표정을 관찰했다. 당장에 두 사람의 얼굴이 흐려졌다.

“왜 5일이나?”

“병상이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아무리 능 선생이라고 해도 며칠 만에 병상을 다 채울 수는 없죠.”

켈런이 묻는 말에 연문빈이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밑에 의사에게도 병상을 일부 나눠줘야 해서 요즘은 진료과에서 차지하는 병상 수도 전보다 줄어든 바람에 다른 병원 병상에 더 눈독 들이고 있었다.

“5일은 더 못 버틸 것 같은데.”

펠릭스가 한숨을 내쉬며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비행기 티켓 또 바꿔야겠네.”

“비행기 티켓이 왜 필요해요. 전칠 씨도 함께 갑니다. 개인 비행기죠.”

“개인 비행기요?”

“7, 80프로는요? 전에도 전칠 씨랑 같이 갈 때는 다 개인 비행기로 갔어요.”

“잠시만, 그게 무슨 말이지? 전칠 씨랑 능 선생이…….”

“그렇죠.”

펠릭스가 가십에 흥미진진한 얼굴로 묻자, 연문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펠릭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능 선생은 왜 의사 합니까? 게다가 이렇게 열심히?”

연문빈은 멈칫하다가 갑자기 깨달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외국인인 당신도 이해 안 되는 거 맞죠?”

펠릭스와 켈런 모두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흠, 당신들의 선진성도 여기까지네요.”

연문빈은 한숨을 내쉬며 팔뚝에 힘을 주어 이두근을 드러내며 속으로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라고 생각했다.

“14, 15, 16…….”

연문빈은 폐까지 보일 듯이 콧구멍을 거칠게 벌름대며 힘껏 숨을 내뱉었다. 켈런은 그의 동작을 따라 가까스로 움직였는데 다만 중량이 더 가벼워서 땀도 덜 흘렸다. 그래도 켈런은 시원해서 ‘아~~아~~’ 하고 소리를 냈다.

연문빈은 더 크게 소리치며 거칠게 힘을 주었다.

“으라차!”

펠릭스는 술잔을 든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헬스장으로 들어와 목을 빼고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레이 아나토미라도 찍는 줄 알았네요.”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켈런이 핏줄이 불거진 연문빈의 근육을 힐끔 바라보며 하는 말에 펠릭스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닥터 연, 들었습니까? 모처럼의 기회인데…….”

“오늘은 안 됩니다. 등 운동 보충해야 해요.”

연문빈이 땀을 용암처럼 흘리며 바벨을 내려놓고 심각하게 하는 말에 켈런은 순간 연문빈의 납작코가 더 못생겨 보여서 입을 삐죽였다.

“맘 놓고 등 운동하세요. 우린 내일부터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에서 수술한다고요.”

“비행기 타고 날아가자마자 다음 날 바로 수술하다니, 능연처럼 열심히 하는 느낌이야.”

펠릭스는 술잔을 흔들면서 경쾌하게 다가와 술 마신 사람처럼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개인 비행기 타고 다니면 바로 수술해도 될 것 같아. 음, 언젠간 그렇게 되겠지.”

“당신 월급으로요? 기름값도 안 나오겠네.”

아무리 세계 정상급 의료 기관이라고 해도 클리블랜드 센터의 페이는 높지 않다. 사실 미국 최대 의료 센터들은 상상력이 결핍된 페이를 의사에게 지급한다. 메이요가 가장 낮고, 노벨상 수상자도 10만에서 20만 사이로 연봉을 받으며, 앤더슨 암 센터 외과 부장도 80만 달러 수준이다. 많아 보이는 액수지만, 기업 특히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와 비교하면 평범하게 여겨질 수치이다.

중산 계급에서 조금 높은 편을 유지하는 클리블랜드 센터 의사 연봉은 대부분 개인 병원 수입보다 낮았다. 그래서 펠릭스와 켈런도 밖에 나와 돈벌이를 하는 것이고.

다만 클리블랜드에서 일하는 때가 의사들의 수입 최고봉은 당연히 아니고, 이직하면 보통 몇 배의 연봉을 받고, 개인 병원을 열면 더 높아진다.

정상급 외과 의사가 탁월한 실력을 계속 유지하면, 그들이 이직할 땐 업계가 크게 흔들린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개인 진료소 혹은 의사 집단에서 기꺼이 통 큰 계약을 제시할 것이고, 개중엔 중산층 의사를 단숨에 상류층으로 끌어 올릴 만한 주식 혹은 다른 이익도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아직 그런 꿈을 꾸는 펠릭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 있게 웃었다.

“클리블랜드 센터 서전으로, 못 해도 세계 탑 10위에 드는 심장 우회술 의사는 가능하겠지?”

세계 탑 10위를 꿈꾸는 건 그로서는 터무니없는 꿈은 아니라고 여겼고, 특히 능연의 스킬 버프까지 생긴지라, 켈런조차도 시도해볼 만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심장 우회술로 세계 탑 10에 들면 개인 비행기 살 수 있대요?”

켈렌도 그 화제에 꽤 흥미가 있었다. 펠릭스는 살짝 취한 듯 동경의 눈빛으로 못나기도, 귀엽기도 한 눈을 가늘게 떴다.

“개인 비행기 지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지. 하나는 비행기 가격, 또 하나는 유지비. 정말로 세계 탑 10이 되어서 개인 병원을 차리고 거물 환자를 하나 만나면……. 하하하하.”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같은 거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분은 앤더슨 암 센터에서 암을 고친 다음 1.5억 달러를 기부했다. 순위가 높은 병원과 대학에서 한 해 동안 받은 후원금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이었다.

반은 농담인 걸 잘면서도 켈런도 순간 들떴다.

“기부받은 돈으로 비행기를 살 수는 없잖아요.”

“반의반으로 충분합니다. 유지 보수 비용쯤이야 진료소에 나오는 경비로 충분할 거고.”

펠릭스는 못생긴 눈을 껌뻑이며 신이 나서 중얼거렸다. 켈런 역시 입이 벌어졌다. 설사 불가능하다고 해도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 비행기에 헬스실 있나요?”

스쿼트를 마친 연문빈은 바벨을 내려놓고 땀을 닦으며 순박하게 물었다. 한창 환상에 빠져 있던 펠릭스는 잠시 생각한 다음 정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헬스실 없는 개인 비행기라니, 그게 무슨 재미람. 그걸 뭐하러 사.”

연문빈은 입을 삐죽이더니 웃어 보였다. ‘돈 없는 사람이나 롤스로이스 고스트(팬텀보다 사이즈가 작은 롤스로이스. 팬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 사지!’라는 언어 방식을 겪어 본 적 없는 펠릭스는 잠시 그 자리에 굳어서 중얼거렸다.

“보통 누가 보잉 737을 개인 비행기로 개조합니까.”

“하하.”

연문빈은 다시 웃어 보이고는 생수 반 통을 꿀꺽꿀꺽 삼켰다. 100년 동안 족발을 팔아도 개인 비행기는 살 수 없지만, 어쩌면 개인 비행기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를 펠릭스와 켈런의 흥을 깨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언어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즐거움 아닐까.

보잉 737을 개조한 개인 비행기가 가볍게 클리블랜드 공항에 내려앉았다. 능연과 전칠이 느긋하게 비행기에서 내렸고, 그 뒤로 펠릭스, 켈런, 좌자전과 연문빈 등이 따라 내렸다. 전칠의 부하는 잠시 후 다른 곳으로 비행해야 해서 대부분 비행기에 남아있었다.

전씨 가문으로서도 매우 의미 있는 여정이어서, 이 개인 비행기를 타고 온 인원을 제외하고도 많은 이가 일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예정이었다.

클리블랜드 센터에서는 따로 고용한 기사 한 명만 마중 보낸 상황이라, 펠릭스는 미안한 마음에 병원 경비가 삭감되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능연은 당연히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그저 앞에서 길만 안내할 뿐, 전칠은 나머지 사람을 모두를 전가에서 제공한 차에 태워 보냈다.

롤스로이스에 타고 클리블랜드로 돌아와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펠릭스는 다시 불안해졌다. 그리곤 한참 만에 곁에 있는 켈렌에게 말했다.

“병원에서 제대로 준비했길 바라야겠어. 이런 의사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데.”

“괜찮아요. 이렇게 주르륵 차를 세우면 아무리 바보라도 IQ가 높아질 거예요.”

클리블랜드 의학 센터는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응급 구조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엔 응급 구조팀이 세 팀 항시 대기했고, 긴급 방송이 울리면 세 팀이 거의 동시에 현장으로 달려간 다음, 가장 먼저 도착한 팀이 구조 활동을 지휘하고 다른 두 팀은 빠른 속도로 철수한다. 이런 방법은 포화 구조 방식이라고 불리며, 지극히 높은 성공률과 생존율을 올리는 방식이다.

물론 필연적으로 지극히 높은 청구서가 따라온다. 하지만 의료 보험이 있어서 그래도 해결 가능한 범위였다. 덕분에 비싼 치료비를 의료 보험으로 커버하면서 비교적 유리하게 상급 의사와 고급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중국 의사들이 수술 전 면담할 때 대부분 돈과 성공률 문제를 상의하는데, 미국에서는 그 문제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환경과 레이아웃으로는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고.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녹색 식물과 깨끗한 건축물 안으로 들어온 능연 일행은 바로 아이폰을 선물 받으면서,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의 통 큰 재력이 드러났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전문 어플이 깔려 있습니다. 10 개 정도인데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죠. 간단하게 병원 이메일, 병원 차트로 전 진료과의 듀티 상황을 체크할 수 있고, 병원 내부 네트워크에 로그인해서 각종 영상 리포트를 볼 수 있습니다.”

펠릭스는 핸드폰을 들고 온 행정 직원 앞에서 최대한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자랑했다.

살짝 뚱뚱한 행정 직원은 줄어든 KFC 햄버거처럼 작고 퉁퉁했다. 그는 의아한 듯 펠릭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전엔 자랑한 적 없잖아요.”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그래도 자랑할 물건이 좀 있어야 하잖아요.”

펠릭스는 입을 삐죽이고는 다시 능연에게 설명했다.

“이 시스템 때문에 돈이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매해 10억 달러 넘는 경비가 들어가요. 그래도 잘 관리되는 건 아니지만.”

“클리블랜드 환자를 다 합하면 백만 명이거든요.”

행정 직원이 변명하듯 말했다.

“중국은 평범한 병원도 환자가 백만 명입니다.”

펠릭스가 은근히 비꼬며 말을 이었다.

“환자 케이스 하나 유지보수하는 데 몇백 달러 받는 건 당신들뿐일 겁니다.”

행정 직원은 심호흡하며 욕먹으니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펠릭스 선생이 돌아온 게 실감 나는군요.”

펠릭스는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늘 빠져나가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이.

능연은 그들을 상관하지 않고 고개 숙인 채 어플을 열어 이리저리 눌러보았다. 보물 상자를 대할 때처럼 새로운 스킬엔 언제나 관심이 있었다.

“쓸 만해요?”

전칠이 잠시 지켜보다가 물었다.

“음, 괜찮은 편이네요. 조각조각 나뉜 우리 시스템과 달리 시스템 통합이 매우 잘 되어 있어요.”

능연은 운화병원 오피스 프로그램에 사실 할 말이 매우 많았다. 사실 병원 전자 차트 시스템 혹은 다른 프로그램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한히 태클 걸고 싶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전자 차트 시스템에 인터럽트 기능을 넣는 병원도 있어서, 괜히 프로세스가 늘어서 어리석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급 의사는 하급 의사를 조종해서 차트 입력 혹은 듀티 배정 등 업무를 처리하니, 전자 차트 시스템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에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은 제약회사도 하층 의사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할 때면 예상처럼 빨리 답변을 주지 않고.

능연은 영상 자료를 즐겨 보고, 어떤 때는 목욕할 때도 읽어주기 기능으로 차트를 틀어 놓아서, 운화병원이 채택한 전자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 상태에서 클리블랜드의 어플을 사용해 보니 나름 흡족했다.

능연의 모습을 보며, 전칠은 바로 속으로 소프트웨어 회사 경영권을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공업용 소프트웨어, 병원 시스템 회사의 경영권을. 나중에 운리와 합병하면 업무 통합 후, 이익도 늘어날 것이고…….

전칠 뒤에 서 있는 맥순도 전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능연의 표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녀는 ‘운화시 연 조공그룹’의 주축 멤버로서, 매일 대화를 나누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 외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능연의 표정을 판독하는 걸 터득했다.

맥순은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전칠 사장과 같으리란 걸 확신하며, 능연이 핸드폰과 어플에 관심 보이는 걸 바로 기록했다.

“능 선생, 이제 사무실로 갑시다.”

“바로 수술실로 가죠.”

펠릭스가 열정적으로 하는 말에 능연은 하늘을 힐끔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그게…… 아직 절차 문제가 있어서요.”

펠릭스는 냉큼 설명하고는 바로 덧붙였다.

“토비, 아, 토비 오스본은 센터 주임인데 직접 만나고 싶어 합니다. 토비를 만난 다음엔 자유롭게 수술실에 있을 수 있습니다.”

CCF(클리블랜드 클리닉) 심장 센터는 심혈관 중심으로 승급했지만 아직 전통적으로 여전히 심장 센터라고 불렀다. 그리고 CCF의 심혈관 센터에 전통적 의미를 지닌 심장내과, 심장외과와 심혈관 내과, 그리도 더 전문적인 심장마취과, 심장 영상의학과 등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이런 진료과는 진료과 주임이 책임지는데, CCF엔 부문별 리더가 있고, 권한은 대부분 센터 주임 손에 있다.

CCF의 심장 센터엔 이름만 말하면 알 만한 전문가들이 매우 많고, 모든 부문 리더 역시 거의 대부분 세계급 유명 의사였다. 토비 오스본 역시 매우 유명한 심장외과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지금은 나이가 많아도 여전히 일선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다만 수술량은 눈에 띄게 줄고, 후배 양성에 좀도 힘쓰고 있었다.

그 점에서 외과 의사와 조종사는 매우 비슷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병원이 아무리 방대한 규모라고 해도 후계자를 키워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칼자루를 쥔 사람의 역할이니까.

토비 오스본은 매우 애타게 인재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능연 일행을 기다렸다.

이미 60세가 넘고 유명해진 지도 오래된 외과의에, 센터 주임까지 된 오스본은 보기에도 온화해 보였다. 능연을 만나자 더욱 세심하게 물었다.

“능 선생, 드디어 만났군요. 궁금한 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바로 말씀하세요.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오스본의 모습에 펠릭스는 살짝 안도했다. 오스본이 누구에게나 이렇게 진지하게 대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사실 그의 기억 속 오스본은 성격이 불같은 외과 의사이고, 수하들을 종종 울리는 사람이었다.

물론 센터 주임이 되기 전엔 그렇게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했지만.

어찌 됐든, 지금 다른 젊은 의사라면 오스본의 이런 대우에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접을 너무 빈번하게 받은 능연은 그저 오스본의 말에 온 신경이 쏠려서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정말로 아무런 궁금증, 아무 요구나, 다 괜찮습니까?”

오스본도 물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궁금증, 어떤 요구, 모두요.”

“세계급 대형 병원은 역시 다르군요.”

능연이 저도 모르게 하는 말에 오스본은 멈칫하다가 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펠릭스와 켈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재미있어.”

펠릭스와 켈런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능 선생, 필요한 게 있나요?”

“완벽한 내장 역위증(內臟逆位症) 환자 수술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병원에 이런 환자 있나요?”

능연은 매우 기대하며 필요한 걸 말했다. 내장 역위증 환자란 심장, 간, 담, 비장 등 모든 장기 위치가 정상인과 반대인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 장기가 미러 현상이 일어나는 빈도는 비교적 높다. 하지만 모든 장기가 역 자리인 환자의 발생 확률은 백만 분의 일밖에 되지 않고, 마침 수술이 필요한 사람은 확률이 더 낮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찾는 환자도 일 년에 2, 3백만 명 정도이지만, 그중에 여러 진료과 진료를 받는 환자를 포함해도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더 적을 것이고, 심장 센터 환자는 또 줄어든다. 즉, CCF 의사가 완벽한 내장 역위증 환자를 만나 수술하려면 운이 좋아도 몇 년은 걸린다는 말이었다.

오스본은 조금 난처해하다가 바로 털어냈다. 적어도 재미있는 요구 아닌가.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오스본도 흥미가 생긴 듯 대답했다.

“이분이 바로 스트롱 해리스 씨입니다.”

“이분이 스트롱 해리스 선생?”

“스트롱 해리스 씨구나.”

오스본, 펠릭스. 켈런과 능연 일행은 1인실 침상 앞에서 ‘의사의 눈빛’으로 눈앞의 내장 역위증 환자를 바라봤다.

60대 벌목공인 그의 얼굴엔 세월과 오랜 작업의 흔적인 주름이 가득했지만 다행히 근육은 여전히 탄탄해 보였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했다.

“의사 한 사람만 있으면 수술 가능한 줄 알았는데요.”

방 안이 조용해지자, 해리스가 불안한 듯 꿍얼거렸다. 오스본은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물론 수술할 때는 의사 하나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환자분 수술은 여러 의사가 나눠서 할 계획입니다.”

어렵게 찾아낸 내장 역위증 환자이니, 이미 능연에게 넘기긴 했어도 운 좋게 다른 부분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여러 의사가 청구서를 발행하는 건가요?”

마찬가지로 노쇠한 해리스의 아내가 다급하게 질문했다. 오스본은 오랜 기간 연습해온 위로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샌드라 씨, 이미 이야기했듯이, 환자분께서는 아무것도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숙식 비용도 모두 CCF에서 부담합니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를 몇 명 쓰든, 모두 CCF가 책임집니다.”

“오가는 데 드는 비용도 포함된 거죠? 우린 그렇게 큰 대형 의료 비행기를 탈 만한 돈이 없어요.”

샌드라의 말에 오스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데리고 나가라고 눈짓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의사들이 다시 몰려들어 크고 작은 눈을 반짝이며 장갑을 낀 손, 안 낀 손으로 60대 벌목공의 몸을 마음대로 더듬었다.

“느낌 좋은데?”

병실에서 나온 오스본은 능연보다 훨씬 더 신이 나서 웃어 보였다. 직접 진료 보지 않은 지 오래됐고, 바로 환자를 마주할 일은 더 없던 터라 오히려 느낌이 좋아져서, 숨소리까지 거칠어진 상태로 새하얀 병실 복도를 걸었다.

능연 역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간 쪽이 매우 독특하더라고요.”

“맞아요. 심장 타진할 때 소리도 변했죠.”

오스본은 심호흡하고는 히죽 웃었다.

“빠르게 판단 내려서 다행이지, 남부 플로리다로 갈 뻔했네. 음, 능 선생이 이런 요구를 해서 다행이군요. 난 왜 젊을 때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능연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지도 교수가 원하는 걸 물었을 때 클리블랜드에 남고 싶다고 대답했죠.”

오스본은 추억에 잠긴 얼굴로 씁쓸하게 웃었다.

“그땐 학자금 대출 생각에 10만 달러요! 하고 외쳤어요.”

“대출금이 있었다면 당연하죠.”

능연도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의 아버지 능결죽 씨도 대출받아 운영한 적 있는데 생각보다 부담이 컸었다.

“하하하, 아무리 클리블랜드라고 해도 그 당시의 나에게 10만 달러 계약금을 줄 리는 없었습니다. 물론 계약금으로 대출금을 갚지도 않았죠! 바로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꿈 같은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 특히 클리블랜드 의료진들은 모두 허탈한 듯 오스본을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센터 주임이 어쩐지 좀 달라 보였다.

그러나 오스본은 다른 사람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능연만 바라봤다.

“내가 그때 능 선생 같은 요구를 했다면, 몇 년 더 일찍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능연이 웃어 보이자, 오스본은 계속 말을 이었다.

“능 선생이 클리블랜드에 온다면 나도 손에 넣지 못한 기회를 잡게 될 겁니다.”

이런 직접적인 포섭에 클리블랜드 의료진은 매우 놀랐다. 능연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이런 비슷한 일이 너무나 많았고, 클리블랜드는…… 집에서 너무 멀었다.

능연 곁에 서 있는 부하들도 매우 침착했다. 마찬가지로, 몇 년 동안 능연을 포섭하려는 조직, 개인이 너무나 많았고, 처음엔 연문빈들도 능연을 뺏길까 봐 걱정했지만, 지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능 선생을 따라가면 그만이었고.

조금 뒤에서 따라가던 연문빈은 심지어 조금 따분하고, 외국인들이 영어로 포섭하는 것도 듣기 귀찮아서 한참 준비했던 영어로 곁에 있는 중국인 의사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무료 어쩌고 하던데요? 이 환자 보험으로 치료비를 커버할 수 없습니까?”

“치료비, 숙식, 교통비, 그리고 집에서 쓰는 전기세, 물세, 생활비 등등 모두요.”

중국인 의사는 바로 중국말로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능 선생 요구를 듣고 사람을 수소문했는데 적당한 사람이 하나뿐이었답니다. 아니면 더 간단했겠죠. 보험은…… 플로리다주 벌목공 보험으로야 클리블랜드 클리닉 비용을 당연히 커버 못 하죠.”

“쯧쯧쯧, 의료 보험 제약이 꽤 많네요.”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는 환자를 확보할 루트를 늘리려고 계속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 년에 퇴원 환자는 22만 명, 수술 환자는 15만 명 정도인 것 같아요.”

“15만 명이요?”

연문빈은 중국어로 다시 확인했다.

“진료 인원은 2, 3백만 명이라면서요.”

“입원 환자는 20%죠. 존스 홉킨스는 겨우 2만 명입니다.”

“2만이면 너무 적네요. 우리 운화병원은 한 달이면 2만인데. 일 년이면 클리블랜드보다 더 많네요.”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모두 5 지역에 있어서 병원 다섯 개로 구성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섯 병원에 1년 수술량이 20만, 그런데 직원만 6만 명이죠. 그래서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미국에서 의료 서비스가 가장 좋은 병원인 겁니다. 또 대부분 의료 보험으로 커버 안 되는 병원이기도 하고요.”

순수한 미국인 오스본보다 확실히 중국인 의사의 설명이 조금 더 상세했다. 연문빈은 정신이 조금 멍해졌다.

“정말 그렇다면 여기 수술량으로 능 치료팀을 먹여 살리진 못하겠네요.”

“그렇죠. 일은 별로 없고 따지는 건 많고, 서비스도 따져야 하고요. 월급이 조금 많긴 해도, 소비 생각하면, 뭐. 특히 의료사고 보험료는…….”

중국어로 거기까지 이야기한 중국인 의사는 조금 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어떤 때 생각해 보면 여기서 일하느니 차라리 중국에서 일하는 게 나을 것도 같고.”

“시도한 적 없어요?”

연문빈은 둔감한 사고 회로가 드디어 열려서 잠시 멈칫하고는 다시 중국인 의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증국영입니다.”

중국인 의사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중학교 때 출국해서, 존스 홉킨스 대학을 나왔어요. 거기서 박사 학위도 따고,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레지던트 생활, 심장 전문과 트레이닝하고, 란세트 (Lancet: 영국의 의학 저널)에 논문도 발표했어요.”

초 화려한 경력이 약간 구직 이력서처럼 나지막이 연문빈의 귀를 뚫고 들어왔다. 클리블랜드에서 자리 잡은 의사라면 모두 경력이 화려하겠지.

연문빈은 조금 의아한 얼굴로 옆에 있는 다른 의사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쩐지 우리를 선생님 동료들이랑 조금 다르게 대해주시네요?”

그 말에 중국인 의사는 싱긋 웃어 보였다.

“능 선생 수술을 본 사람, 안 본 사람, 확연하게 다를걸요?”

“예?”

“중국에서 온다길래, 능 선생 수술 영상을 일부러 찾아봤습니다.”

증국영은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능 선생 수술을 보고 나면, 다들 저랑 비슷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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