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29화 (808/877)

“능 선생, 푹 쉬고 내일 봐요.”

능연이 롤스로이스로 들어가는 걸 배웅한 펠릭스는 부러움에 침을 흘릴 지경이었다. 롤스로이스 행렬은 낮은 엔진음과 함께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서서히 자리를 떴다.

“능 선생은 정말 수수께끼 같은 남자네.”

켈런은 단톡방의 대화를 머릿속 가득 생각하며 ‘수수께끼’라는 단어를 말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해외 능연’ 그룹에 가입했다. 그룹명만 중국어이고 대화는 영어를 사용하는 그 그룹엔 유학생 혹은 화교도 있지만, 켈런 같은 순수 야생 외국인이 더 많았다. 공통 화제가 있는 그 그룹의 대화는 제법 떠들썩했다.

연문빈은 혼자 껄껄 웃고는 중국어로 나지막이 꿍얼거렸다.

“능 선생이야말로 단순한 사람이지. 지나치게 잘생겨서 그렇지 수수께끼는 무슨.”

“뭘 그렇게 중얼거려.”

밟히지 않으려고 연문빈 뒤에 서 있던 여원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연문빈은 정신 집중해서 여원의 위치를 찾았다.

“그것보다 네 어시 자리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걸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 지금 클리블랜드에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미국의 병원과 의사 생활에 자격지심이 있던 연문빈은 클리블랜드의 햇볕을 쬐는 지금 온몸의 근육이 다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의사 사이에서 어찌 됐든 충분히 허세를 부릴 만한 곳이었다. 심지어 메이요와 비교해도 클리블랜드 심장외과가 더 있어 보이는 덕에 클리블랜드 자체의 격조도 덩달아 높아졌다.

허풍떨기엔, 존스 홉킨스 졸업, 클리블랜드 취직이 가장 완벽한 임상의의 루트였다. 연문빈이 전에 접촉했었던 화교 의사 증국영처럼.

연문빈은 존스 홉킨스로 진학할 생각한 적 없고, 클리블랜드에 취직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에 왔고, 또 클리블랜드 의사 앞에서 수술하게 되니 비록 어시 신분이라고 해도 매우 들떴다.

몇 년 전, 연문빈이 능연 밑에서 잡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날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원은 부럽고, 질투 나고, 시기하는 마음으로 연문빈의 발목에 있는 닭살을 노려보며 연문빈의 그 묘한 통쾌함을 차단했다.

“우리 리포트 두 개나 써야 하는 거 잊지 마.”

“아, 알아. 문제없어.”

연문빈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능연은 쉬거나 놀러 갔지만, 연문빈과 여원은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클리블랜드 사람들과 함께 환자 검사를 팔로우해야 했다. 클리블랜드 환경이라면 두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게 더 효율적이겠지만, 내일 수술 준비를 아예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능 치료팀의 작업 방식도 아니고.

사실 그것이야말로 두 사람을 데리고 온 이유와 목적이었다.

능연이 클리블랜드에서 수술한다고 해도 대단히 주목받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능연의 지위 상승에는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화교 의사 증국영이 한 말대로, 평범한 임상의는 보통 능연의 수술을 본 부류, 능연의 수술을 보지 못한 부류, 두 종류로 나뉜다.

능 팀의 목표는 당연히 더 많은 의사가 능연의 수술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수술을 위해 많은 사람이 준비하고 있었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 의료진 역시 정신을 집중해서 준비 중이었다.

그들도 자주 각국에서 온 의사와 학자를 맞이하지만, 달마다 센터 주임과 주치의가 관심을 가지는 수술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수술 자체 수준이 낮지 않은 것 같은 수술은.

능연은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여원은 재빨리 달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능 선생, 환자 상태 안정적이야. 더 일찍 올 줄 알았더니? 심장 센터 주임이랑 펠릭스들은 참관실에서 기다리는 중.”

항상 자기 리듬으로 일을 하는 능연은 조금 의아한 듯 여원을 힐끔 봤다.

“환자 상태가 안정적인데 왜 일찍 와요?”

여원은 하마터면 바로 말을 잇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 바닥에 달라붙어 있어서 말이 그녀 귀에 닿기까지 오래 걸려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준비한 리포트를 볼 거라고 생각했지. 영어랑 라틴어로 적혀 있고, 쓰는 단위도 다르니까.”

능연은 가볍게 ‘음’ 하고 대답했다. 그 정도 이론 베이스는 시스템을 쓸 것도 없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술 구역으로 들어간 다음 각자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참관실에 서서히 의료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엔 참관실이 달린 수술실이 여러 개였다. 아니, 그건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심장과 혈관 센터엔 참관실이 있는 수술실이 여러 개 있다고 해야 정확하다.

그리고 이 수술실들은 심장 흉강 외과, 혈관 외과, 성인 선천성 심장질환 센터, 만기 국부 결혈성 심장센터, 대동맥 질환 센터, 심방세방 센터, 심장 종양 센터, 심부전 센터, 비만 질환 센터, 심장질환 센터, 색전증 센터, 심실성 부정맥 센터 등등 여러 센터에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낮에 비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런데 능연이 바로 수술 기회를 얻은 데다가 내장 역위증 환자의 수술이라 심장 센터 각 부문 의사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센터 주임 오스본은 이번에도 제때 수술실에 도착했다.

더 빨리 온 펠릭스는 텅텅 빈 수술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해명했다.

“능 선생은 매우 신중한 의사입니다. 중국에 있을 땐 매일 일찍 와서 준비했습니다. 아직 우리 병원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시차 적응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차 조절은 이미 끝났어야지. 정 안 되면 스탑해.”

“괜찮을 겁니다. 켈런이 함께 있습니다.”

펠릭스는 조금 엄숙해졌다. 의사의 수술 전 상태는 당연히 확인해야 했다. 그들이 아는 바로는 능연이 수술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 내장 역위증 같은 증상 심장 수술이라고 해도 능연에게 문제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심장 비정지 수술도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끝낸 사람인데, 내장 역위증은 말할 것도 없지.

“왔네요.”

펠릭스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능연이 간호사 둘을 거느리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간호사 중 한 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한 명은 서양계 미국인, 모두 여성인데 영국계 미국인인 켈런까지 있으니 수술실이 정치적으로 매우 이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오스본조차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수술을 내심 흡족해했다.

“시작합시다.”

한 바퀴 둘러본 능연은 계량기와 기구를 다시 한번 세팅한 후 서서히 손을 내밀었다.

“다들 집중, 수술 시작합니다.”

연문빈은 클리블랜드 수술실 규칙이 어떤지 아랑곳하지 않고 작게 소리치고는 바르르 떨었다.

수술 플로우는 그들이 익숙한 방식대로 흐르겠지만, 수술실 온도는 클리블랜드 센터가 세팅한 대로였다. 운화병원보다 2도에서 3도 낮은 섭씨 20도 이하의 수술실 온도는 미생물 번식도 줄여주고 심장 수술할 때 환자의 신체를 더 잘 보호해준다. 그러나 환자 보호 조치를 더 잘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담요 등을 배치해야 하고, 간호사들이 상황에 따라 온도를 조절해야 하는 등 조건이 더 까다롭다.

능연은 그 방면에선 운화병원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온도는 시스템 작업이라, 운화병원 수술실에서 섭씨 18도라는 온도를 요구해도 얻어내기 쉽지 않았다.

능연의 세컨 어시인 미국 레지던트는 과할 정도로 정신 집중했다. 능연의 기술이 좋은지 아닌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는 트레이닝이 덜 끝난 의사라서 시시각각 우수성을 드러내야만, 클리블랜드에 남는다는 직업상 초기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미국은 흉부외과 인턴 기간이 가장 길지만 만족도가 가장 떨어졌다. 중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심장 우회술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은데 심장외과의 환자 수량엔 여전히 큰 영향을 주었다. 가장 뛰어난 심장외과 의사는 수술이 빽빽하고 환자도 줄지어 선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중하층 의사는 전과하거나 전문 어시가 되어야 하는 곤경에 빠진다.

새로 들어온 흉부외과 의사는 당연히 문이 더 좁아서 더 많이 노력해야만 했다. 하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클리블랜드 센터에서 이름을 알린 레지던트는 업계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거의 십여 년 전문적으로 훈련한 후에 겨우 직업적 ‘자유’를 얻는다. 연차만 따지면 연문빈이 의대 공부를 시작한 시간보다 더 길었다.

그러므로 이 세컨 어시에게 연문빈은 거대한 스트레스를 느꼈다. 지켜보는 그의 시선에 두 번이나 실수할 뻔했다. 다행히 능연이 시종일관 수술을 컨트롤했고, 연문빈의 실수로 발생할 손실이 크지 않은 건 둘째치더라도 능연 본인이 이미 여력을 남기고 있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10분 정도 지나자, 연문빈은 더는 세컨 어시를 힐끔거리지 않고 몰입했다. 능연도 차분해져서 내장 역위증 환자의 다른 점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내장 역위증 환자를 처음 수술하는 의사는 익숙해지기까지 종종 시간이 걸린다. 어찌 됐든 의사는 기본적으로 비 역위증 인체 해부 구조에 일정한 사고 구조를 지니고, 근육도 그 구조에 맞춰 기억한다.

자기 집에서 걸을 때, 복도 끝에서 좌측으로 꺾어 주방이 나오는 구조라면, 설사 가슴에 가득 품은 택배 상자가 시선을 가려도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꺾는다. 하지만 거울방 같은 구조로 바뀌면 그렇게 능숙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보통 의사에겐 오히려 큰 영향이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의사는 보통 정상 인체 해부 구조에 익숙하다. 레지던트에게 보통 환자를 주거나 역위증 환자를 주거나, 후자라고 해서 수술 난도가 더 올라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둘 다 연습으로 하는 거니까.

그러나 능연 같은 의사로서는 평소에 익숙하던 해부 구조가 갑자기 낯설어지면 더 적응하기 힘들다.

다행히 거울 구조인 내장 역위증 환자에게도 규칙은 있어서 익숙함을 찾을 수 있다. 능연도 지금 역위증 환자에게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천천히 시작된 동작은 점점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어시가 적응할 수 있도록 너무 서두르지는 않았다. 연문빈과 클리블랜드 레지던트 모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펠릭스 같은 의사는 능연의 속도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그냥 익숙한 거라면 속도가 점진적 증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혹은 한 개인이 점진적 성장하는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일지도.

펠릭스는 조금 흥분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바로 이거야.”

능연을 클리블랜드로 초대한 이유는 많지만, 귀결하면 단 하나, 펠릭스가 능연의 실력에 빠져서였다. 그리고 오늘 수술에서 능연이 제 기술을 완벽하게 발휘하지 못할까 봐, 압박 때문에 갈등하거나 실수할까 봐 걱정했었다. 아무래도 내장 역위증 수술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능연의 요구였고, 센터 주임인 오스본이 ‘선물’한 것이라 펠릭스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능연이 착실하게 완벽한 실력을 선보이자, 다들 눈도 떼지 못하고 열심히 지켜봤다.

“중국엔 내장 역위증 환자가 많은가 봐.”

의사 하나가 갑작스럽게 꺼낸 말에 참관실 분위기가 풀어졌다. 누군가는 그 틈에 킥킥 웃기도 했다.

“내가 중국에서 지켜본 모든 수술이 이런 식이었습니다.”

펠릭스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덧붙였다.

“내장 역위증 수술은 아니었지만, 모든 수술의 완성도, 숙련도, 난도, 모두 높았어요. 다들 보시다시피.”

“매번 이랬다고?”

그러자 켈런이 말을 이었다.

“중국 사람 말을 빌리면, 높은 표준, 엄격한 요구라고 하더군요. 능 선생이 어떻게 수술하는지 똑똑히 봤어요. 자, 직접 보세요.”

수술대 앞의 능연은 전희 단계를 마치고 혈관을 끌어당겨 봉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심장외과 전문의라면 대부분 수술 중 아주 일부분만 직접 진행하고, 개흉 같은 전반부 과정과 이어지는 많은 후속 작업은 전문 어시에게 맡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의사들은 수술 주요 부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그 외의 부분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능연의 조작 강도도 지금 크게 높아졌다. 심장 우회술을 잘하려면 우회할 때 더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더 빠른 속도는 심장 손상을 줄여주고, 접촉이 덜할수록 혈관 경련과 재 막힘 확률을 낮춰준다. 그리고 더 꼼꼼한 봉합은 리스크 가능성을 줄여주어 수술 성공률을 대대적으로 높인다. 이 모든 것은 말이 쉽지, 실제로 조작하기는 매우 어려운 데다가 상반되기까지 하다.

적게 접촉한다는 건 일반인 혹은 평범한 의사가 해내기 매우 어려웠다. 산 사람의 심장은 미끄러운 데다가 탱탱해서 안정적으로 들어 올리는 것만도 어려운데, 두 심혈관을 봉합하려면 압력과 횟수도 신경 써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배관공이 파이프 설치할 때도 반복해서 고민하고 조절하는데 심장 수술에서는 혈관을 접촉하는 빈도, 횟수에 제한을 두고 스스로 빈도를 낮추는 의사는 드물고 또 드물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심장 센터엔 세계급에 드는 외과의가 가득하고, 센터에 방문하는 대가도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럴수록 수술 퀄리티, 의사의 기술 계급에 대해 더 또렷한 인식이 생긴다.

“맞는 말일세.”

오스본이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이 수술, 최고야.”

“능 선생, 느낌 어때요?”

통화 버튼을 누른 오스본은 미국 레스토랑에서 ‘오늘 요리는 어떻습니까?’하고 쉴 새 없이 물어보는 웨이터처럼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물었다.

한창 수술에 빠져 있던 능연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담담한 어투로 영어로 대답했다.

“기대보다 좋진 않습니다.”

오스본은 어리둥절해져서 머릿속으로 재빨리 능연의 조작을 되짚어 봤지만 별 실수가 떠오르지 않아서 조금 뜨끔한 듯 물었다.

“어떤 기대를 했길래요.”

“제가 예상한 역위증 환자 말입니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길 바랐달까? 소수(素數)처럼 말이죠.”

능연이 유감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환자는 분명 역위증 환자인데 벌목공인 그는 공들여 운동하고 자주 건강 검진받은 사람이 아닌 듯했다. 심장은 비대하고, 심혈과는 굵고 딱딱한 데다가 변형되어 위치가 비틀어져 있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역위증 환자의 역위된 장기가 모두 변질되었다면, 역위증의 특징이 다 사라진 것 아닌가.

종이접기 할 때, 반쪽 부분을 너무 문질러대서 다시 펼쳤을 때 거울에 비친 듯한 ‘경상성(鏡像性)’이 약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런 심장은 아름답다고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벌목공의 심장은 능연에게 모진 고통을 받고 비틀어진 상태의 발레리나 발처럼 느껴졌다.

사고 회로에 영향받은 능연은 조금 전에 봉합을 마친 혈관을 저도 모르게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병변 위치가 너무 명확한 데다가 많고 촘촘합니다. 거울이 깨진 것처럼 말이죠.”

“그래요. 완벽한 역위증이 아닌 건 알았습니다.”

이해할 것 같은 오스본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능 선생이 좋아한다면야, 앞으로도 역위증 환자를 섭외해서 수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기쁠 겁니다.”

능연이 바로 대답하는 모습에 오스본은 헛웃음이 나왔다.

“문제없습니다. 능 선생만 기뻐한다면 역위증 환자는 끊임없이 구할 수 있어요.”

“끊임없이 구할 것까지야 없습니다. 대여섯 건 하고 나면 큰 차이 없을 테니까요.”

능연은 조금 아쉬운 듯 다시 덧붙였다.

“그러니까 초반 환자는 젊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젊은 역위증 환자로.”

오스본은 껄껄 웃으며 승낙했다.

수술실과 참관실은 다시 평온해졌다. 펠릭스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꺼냈다.

“역위증 환자를 다섯 건이나 마련하려면 큰돈이 들 텐데요.”

클리블랜드에서 심장 수술하는 비용은 가볍게 백만 달러를 넘긴다. 조금 복잡한 우회술은 600만을 쓴대도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그건 보험회사에서 지급할 비용이고, 환자는 자비로 30% 비용만 내면 청구서를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50에서 100만 달러를 가볍게 넘긴다.

그리고 비영리 병원인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이 비용 중 30에서 50%를 지출한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무료 수술 다섯 건 하려면 적어도 백만 달러, 많으면 수백 달러를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심장 센터 주임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무료로 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었다.

하지만 오스본은 전혀 걱정 없는 듯 싱긋 웃었다.

“능 선생이 원한다면 여섯 건도 문제없지.”

“제가 경비 5, 600만 달러 달라고 했을 땐 5백만 주셨으면서요.”

“500만이나 자네에게 줬다고? 나중에 좀 알아봐.”

펠릭스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투덜거리자 오스본은 비서에게 한마디 하고는 다시 수술에 집중했다. 펠릭스는 이를 악물고는 불퉁한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랑 능 선생이 차이가 있죠.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닐 텐데요.”

오스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입꼬리가 귀까지 치켜 올라갈 정도로 미소만 지었다.

“수술 끝났습니다.”

다시 검사를 마치고 손을 든 채 물러난 능연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수술복과 장갑을 벗었다. 수술복과 장갑 모두 피가 가득해서 보기에 끔찍했지만, 수술실 분위기는 안정감이 넘쳐흘렀다. 수술을 이 정도까지 하면 안팎으로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그 자리에 있는 모두 체감할 수 있었다.

“능 선생, 고생하셨어요.”

오늘 수술에서 가장 연장자인 간호사는 이미 쉰은 되었다. 깡마르고 고집스럽고 스마트해 보이는 이미지의 그녀 역시 전형적인 클리블랜드 버전 엘리트였다. 바로 그런 이유로 50대 엘리트인 그녀가 가장 먼저 송별사를 읊었다.

“능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나머지 엘리트들도 여기저기서 입을 열었다. 매우 쾌적한 미국의 간호사 생활은 블루칼라 노동자의 생존 모드와 유사했다. 혹은 그들이야말로 블루칼라 작업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젊은 의사들은 병원에서 이런저런 제한을 두어 감히 월권하지 못한다면, 간호사들은 훨씬 조건이 유리했다. 직장 찾기도 매우 쉽고, 자리도 많아서 병원 관리자와 의사를 전혀 ‘케어’할 필요가 없다. 또 한편, 간호사 연합은 병원에서 가장 강한 정치적인 세력이라 어떤 거지 같은 일을 겪어도 배출할 루트가 있다.

물론 수간호사는 고생스럽긴 했다. 수입도 의사하고 비교할 수 없고. 그러나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수술실에서 비교적 독립적이라서 의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 따위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능연에게 경의를 표하자, 그 자리에 있는 의사들 모두 몹시 질투했다. 그러나 병원이란 환경은 질투를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고 다들 능연의 수술 과정만 쉴 새 없이 복기할 뿐이었다.

“나도 처음엔 그랬지.”

주변 사람의 표정을 둘러본 펠릭스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개똥을 밟은 러너가 다음 바퀴에서 다른 러너가 개똥을 밟은 걸 보고 기뻐하는 기분이랄까.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아.

끼익. 전칠은 모든 이의 표정을 눈에 담은 다음 자랑스러운 듯 문을 열고 나갔다. 의사들은 크게 ‘후우’하고 숨을 내쉬고는 바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능 선생 여자친구? 세상 참 불공평하다.”

“공평하니까 이런 거 아니고요?”

조금 젊은 의사가 멍청하게 입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젊은 의사가 궁금한 듯 펠릭스를 바라봤다.

“중국 의사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버나요? 아니면 중국에 미녀가 많은 건가요?”

“중국 의사 수입이 어떤지 나는 모르지. 어쨌든 우린 이번에 저 미녀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왔어.”

클리블랜드 의사들은 개인 비행기를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부잣집 딸인가 보네요. 무슨 비행기였어요?”

“개조된 보잉 737.”

펠릭스는 기다리던 질문에 대답했고, 휘파람을 불던 의사는 하마터면 목이 막혀 죽을 뻔했다. 줄곧 미소를 유지하던 오스본 역시 두 귀를 접어 손뼉 치고 싶은 기분으로 눈썹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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