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30화 (809/877)

전칠은 뒷짐 진 채 폴짝폴짝 능연을 따라 쪼르르 걸었다.

수트 차림의 보디가드 열 몇이 멀찍이 지키며 두 사람에게 달려들거나 전칠 아가씨의 깜찍한 모습을 찍으려는 사람을 제지했다.

전칠은 너무나 신이 나서 어쩔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는 집안 관리가 가장 엄격한 시기였고, 기껏해야 로맨스 드라마 몰래 볼 정도였지 꽃미남의 팔짱을 끼고 쇼핑 같은 걸 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중국이었다면 혹시라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날까 봐 자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사회적 부담이 줄었고, 능연의 기분도 좋아 보여서 더 들뜰 수밖에 없었다.

능연도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그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수술 생각도 잊고 전칠과 함께 어슬렁어슬렁 구경했다.

운화병원에 익숙한 능연에게 클리블랜드의 리듬은 정말이지 매우 느렸다. 하루에 겨우 수술 서너 건, 그것도 같은 유형의 수술이라 종일 수술 생각을 하며 보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런 환경이라 능연도 긴장에서 해방되었다. 전칠의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느긋하게 걸으면서 가끔 전칠의 달콤한 미소에 마주 웃어주기만 하면 됐다.

“클리블랜드 경치 좋네요.”

전칠은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으면서 능연의 얼굴을 보았다. 온몸의 세포가 들뜨는 기분이라서 주변의 공원과 건물까지 그냥 다 마음에 들었다.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치 좋네요.”

오대호 근처인 이곳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그들이 있는 구역은 지극히 잘 유지되어 있고 건물도 자연도 매우 아름다웠다.

공감받은 전칠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며 아름답게 손짓하며 나중에 채용한 비서를 불렀다.

“여기에 별장 하나 구입해요.”

“클리블랜드에 이미 농장이 있습니다…….”

굽이 얇고 높은 하이힐을 신은 비서는 한참 같이 걸어도 얼굴에 아무런 변화 없이, 현재 상황도 잘 제어하며 중년 엘리트의 능력을 선보였다.

“새로 구입해요. 너무 클 필요 없고, 고용인도 필요 없어요. 그냥 정기적으로 청소만 하면 돼요. 능 선생이 가끔 일하러 올 때 편하도록 클리블랜드 클리닉 가까운 곳에요.”

“앞으로도 클리블랜드에 올지 아직 몰라요.”

전칠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능연이 상기시켰다.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쇼핑하고 싶어서 그래.”

“아.”

전칠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능연도 바로 이해했다. 그의 어머니도 기분 좋으면 바로 쇼핑하러 나갔다. 물론 도평 여사가 자주 사는 건 스카프, 찻잎 같은 거지만, 전칠이 별장을 구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였다. 즉, 비슷한 느낌이라는 말이었다.

능연이 반대할 줄 알았던 중년 엘리스 비서는 능연이 이런 큰 지출에 끼어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흥미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절로 혀를 끌끌 찼다.

“별장에서 같이 쓸 차도 사러 가요.”

전칠의 쇼핑 욕구가 왕성해졌다. 같이 쓴다는 말은 물론 능연이 쓸 것이라는 뜻이었고.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어차피 기사가 늘 함께 있고, 난 미국에서 운전할 생각이 없으니 필요 없어요.”

“그건 그렇네요. 미국 경찰은 까다롭기도 하고.”

전칠은 바로 동의하며 비서를 바라봤다.

“그럼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별장으로 해요.”

“알겠습니다.”

비서가 작은 노트를 꺼내 기록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도보로 가능한 별장은 차 몇 대 사는 돈보다 비싸겠지만, 전가 혹은 전칠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들새처럼 기분 좋게 산책했다. 누가 감히 총이나 새총으로 위협하면 바로 스스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혼쭐내줄 사람도 있고.

다음 날.

전칠은 능연과 함께 아침을 먹은 후에야 병원에 가라고 그를 놓아주었다. 이것도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일과 덕분이었다. 중국이었다면 몇 시간 전에 수술실로 갔을 것이고, 야식이나 같이 먹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클리블랜드 내에는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가득했다. 미국인이 자랑스러워하는 병원이지만, 순위 높은 미국의 다른 병원처럼 클리블랜드 의사 구성은 매우 글로벌했다. 이민자 2세뿐만 아니라 3세 중 능력자, 여러 나라 의대에서 배출한 우수한 인재가 쉴 새 없이 클리블랜드로 향했다. 그리고 이런 젊은이들이 인턴이나 레지던트 생활할 땐 같은 연배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자율적으로 근면했다.

수술도 클리블랜드의 펠로우들은 하루 평균 세 건, 한 주에 15건, 월 60건의 수술량을 유지했고, 그런 생활을 3, 4년 혹은 더 긴 시간 유지해야 한다. 국내 대부분 병원의 의사가 이룰 수 없는 양이었다.

그래서 능연이 수술 층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정상 작업 모드에 돌입한 상태였다.

“능 선생!”

“능!”

“연!”

전과 달리, 사람들이 오늘은 바로 능연에게 인사했다. 클리블랜드 같은 병원은 펠릭스 같은 주치의가 아닌 나머지 펠로우와 레지던트는 트레이닝 단계에 속했다. 중국의 훈련의 단계에 속하는 레지던트는 4년제 의대를 졸업하기 전에 4년제 정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즉, 소위 ‘4+4 모드’였다. 험난하고도 운 좋게 의사 면허를 딴 다음에야 클리블랜드 진료소 같은 병원에서 트레이닝한다. 그리고 레지던트 생활 3년 후에 젊은 의사들은 겨우 펠로우가 되고 전문과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물론 트레이닝이 끝난 후, 주치의가 되면 편해진다. 연 수입 10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월급에 너무나 많은 선택과 즐길거리가 주어진다. 하지만 중국 의사처럼 적어도 4+4+3+3, 즉 고등 교육 14년이 끝나기 전엔 레지던트든 펠로우든 슬슬 기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의사를 한 인격체로 보는지, 또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그 모든 게 의사의 지위와 기술에 달렸다. 어제의 수술로 많은 젊은 의사들이 능연을 의식하는 게 분명했다. 심지어 어제 수술의 특수성과 극적인 면으로 많은 젊은 의사들이 더 깊이 능연을 이해하게 되었다.

“능 선생, 우리 수술에 참여하실 건가요?”

빈틈을 잡은 젊은 의사가 능연에게 요청했다.

“음……. 우리 수술도 괜찮아요. 능 선생, 우리도 오늘 우회술 하거든요.”

“우린 우회술 두 개!”

“30분 이내에 시작해요!”

“20분!”

젊은 의사들은 갑자기 경쟁하기 시작했다. 실력이 우수한 의사와 함께 수술하는 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클리블랜드에서 인턴 혹은 레지던트 생활 중인 젊은 의사는 그런 모드에 익숙해서 능연을 만난 이상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능연은 뜻밖의 상황에 입술을 오물거렸다.

“내가 함께 수술에 들어가도 됩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복도에 몰려드는 의사가 더 많아졌다.

“내가 집도합니까?”

능연이 다시 묻는 말에 어떤 의사들은 주춤했고, 나머지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환자 상황 좀 설명해 주세요.”

이런 고르기 모드에 익숙한 능연은 바로 조건을 높였다. 가장 먼저 말을 건 의사가 바로 대답했다.

“제 환자는 3차 우회술 환자입니다.”

2차 우회술만 해도 난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에서는 우회술을 세 번 하는 나이 든 환자도 종종 있고 실력 좋은 의사일수록 이런 수술에 끌린다. 능연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환자는 2차 우회술이지만, 몸무게가 300파운드(약 135킬로그램)입니다.”

“전 250파운드. 하지만 유명인입니다. 누군지는 말할 수 없지만…….”

“제 환자는 유방이 세 개입니다!”

한 여자 의사가 소리 높여서 하는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능연의 고개도 저절로 돌아갔다. 여자 의사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유방 내 동맥으로 심장 우회술을 할 계획이에요. 유방이 세 개이니 어떤 유방을 써도 된다고요!”

“어느 수술실입니까?”

능연의 클리블랜드 호감도가 다시 올라갔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같은 병원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전세계적인 영향력이다. 자본과 기술적 우세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인구와 지역 우세를 얻을 수 있다.

운화병원 같은 중국의 지역 정상급 병원은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수가 기껏해야 천만인 데다가 같은 지역에 위치한 비슷한 수준의 경쟁 상대도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다르다. 여러 진료과에서 전세계적으로 선두인 장점도 있고 또 한편으로 환자 역시 전세계인이다.

전세계 70억 인구 모두 그 범위에 닿는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정도 급이 되면 무엇을 하든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수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매해 진료수는 760만 회에 달하고, 퇴원 환자 수는 20여만 명, 어떤 수치로 봐도 병원의 선택권은 매우 강했다. 그 선택은 자금, 보험, 또 질환일 수도 있다.

글로벌 정상급 의사가 클리블랜드에 합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클리블랜드가 가져다주는 성장성 때문이다.

어떤 면으로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의사는 여전히 배움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첨단 기술을 가진 인재들이 성장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대학 생활 4년을 마친 후 인생이 원만하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는 10년 이상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따고 난 후, 누군가는 4+4 의대를 선택한 다음 3+8의 전문 진료과 배움을 한 세트 더해서 흉부외과 의사가 된다.

하지만 진정한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가 되려면 19년 고등 교육만으로는 현저히 부족하다. 클리블랜드에서 5년 이상 주치의 생활을 한 후에야 겨우 두각을 드러내고 세계급 흉부외과 의사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 세계 정상급 어쩌고는 이 모든 시련을 겪고 살아남은 다음에야 계속 버티며 노릴 수 있고.

하지만 이런 엘리트 교육 중의 엘리트 교육으로 병원이 얻는 장점도 매우 현저하다. 클리블랜드가 위치한 오대호 구역은 원래 미국에서 경제가 쇠퇴하던 재난 구역이었지만 클리블랜드 클리닉 또는 시카고 노스웨스턴 메모리얼 병원이 쇠퇴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분야를 넓혀 맹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글로벌 급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어느 의사가 비만인 관련 연구를 하고 싶어서 300파운드 비만인 열 명 필요하다고 하면 다음 날 레지던트 40마리가 뚱보 10마리를 짊어지고 들어오는 곳이다.

생사와 관련된 일은 아무리 해이한 서양인이라고 해도 분수가 있다.

물론, 유방이 세 개인 환자는 지극히 드문 축에 들었다. 특히 유방 세 개인데 심장 우회술이 필요한 환자, 거기에 유방 내 동맥 이식은 드물고 드물었다.

그 의사는 당첨이라도 된 듯 능연을 끌고 수술실로 들어가 바로 소개했다.

“리사, 내가 당신 운이 좋은 편이라고 그랬죠? 여기 능 선생 좀 봐요. 감탄스러울 정도로 우수한 데다가 매우 잘생겼죠. 이 의사가 당신 수술을 해준대요.”

클리블랜드는 미국 전체에서 의료 서비스를 가장 중시하는 곳이며 그들의 셀링 포인트이기도 하다. 사우디 거부들이 클리블랜드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리사라는 환자는 수술 침대 위에 누워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유방이 세 개라서 잘생긴 남자는 얼마든지…… 와, 세상에, 뭐 이렇게 잘생겼어?!”

리사는 놀라고 감탄하는 말투로 입맛을 다셨다. 능연은 그녀에게 다가가 고개를 까딱였다.

“유방이 세 개인 것과 잘생긴 남자가 부족하지 않다는 건 상관성은 없어요.”

여자 의사의 관심 포인트에 리사는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거시기 두 개인 남자가 데이트 신청하면 어쩔 건가요?”

“이런 변태 같……. 잠시만요, 이건 편견이 아니에요. 하지만…….”

“남자는 당신과 달라요.”

의사가 깜짝 놀라서 하는 말에 리사는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남자들은 새로운 걸 좋아해요. 예쁘고, 야하고, 유연하고, 유명하고, 유방이 세 개고.”

여자 의사는 할 말을 잃었다.

“저기요, 잘생긴 남자일수록 생각이 특별해요. 게다가 예쁘고 야한 여자는 흔하고, 유연한 여자도 흔하지만 유방이 세 개인 여자는……. 흠, 저기 내 옷 좀 벌려줘요.”

리사가 흥미가 생긴 듯이 하는 말에 미국 동부 지역 출신 여자 의사는 잔뜩 굳은 얼굴로 마취의를 바라봤다.

“꾸물대지 말아요.”

마취의가 손을 흔들자, 리사는 세 유방과 함께 늘어졌다.

“환자의 태도를 매우 중시하는 게 병원 정책이에요.”

여자 의사가 안도하며 능연을 향해 허탈하게 말하자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 포인트를 찾았다고 여긴 여자 의사가 말을 이었다.

“평소에 환자랑 증상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요. 증세를 알아보는 데 도움도 되고 환자와 신뢰도도 형성되거든요. 환자가 주도하려고 드는 부작용은 있지만요. 치료 조치가 어려워질 때도 있고.”

“저한테는 좌자전 선생이 있습니다.”

능연도 소회를 나누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특히 클리블랜드까지 온 이상 상대의 수술실과 환자를 이용하고 바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중국인의 예의에도 어긋나고. 그래서 능연은 의자-환자 관계에서 자신이 쓰는 스킬을 상대에게 알려주었다.

“뭐라고요?”

여자 의사는 어리둥절해졌다. 능연은 그녀를 ‘우둔한 사람은 가르칠 수 없다’는 범주로 귀납하며 고개를 저었다.

“수술 시작하죠.”

“아……. 어……. 음…….”

여자 의사는 서둘러 수술 전 준비에 돌입했다. 귀를 쫑긋하던 다른 의사, 간호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머리 위 참관실에서도 머리통이 솟아 올라왔다.

클리블랜드 심장 센터엔 거의 모든 수술실에 참관실이 있었고, 이건 운화병원 같은 병원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점이었다. 이곳엔 대단한 의사가 너무 많아서, 참관할 필요가 있는 수술이 거의 매일 있었다. 게다가 레지던트 트레이닝 기지인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해마다 염가로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곳이자 학습이 필요한 장소였다.

능연을 수술실로 초대한 여자 의사 역시 가장 스탠다드한 주치의였고, 업무 수준을 따져도 켈런에게 뒤지지 않았다.

아래층 작은 식당.

중간 자리에 앉은 전칠의 주변에 바삐 움직이는 미국 엘리트와 문서를 뽑아대는 프린트와 팩스가 놓여 있었다.

클리블랜드 현지 변호사 몇 명이 수트에 넥타이를 매고 얼굴을 찌푸린 채 문서를 보면서 프로페셔널한 자태를 선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가족 내부 지분과 재산에 변화가 생긴 건일 뿐이지만, 큰 규모라 신중에 신중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전씨 가문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고.

전칠은 그렇게까지 집중할 필요가 없었고, 눈앞에 놓인 메뉴를 더 신경 쓰면서 자연과 미적 감각, 자연과 로맨틱을 어떻게 결합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마라 베이스로 해요. 클리블랜드에 온 지 며칠 됐으니 서양식은 질렸을 거예요.”

메뉴를 내려놓은 전칠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말했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쉐프가 바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외국인의 정서를 고려해서…….”

“다른 사람은 신경 쓸 것 없어요! 다 능 선생 위주로 준비해요!”

전칠이 손을 저으며 하는 말에 쉐프가 주저했다.

“오늘 매우 중요한 계약 아닙니까?”

“중요한 계약이지만, 저 사람들이 우리 파트너로 온 거예요. 까다롭게 군다면 성의 부족이라고 봐야겠죠.”

“네, 그럼 외국인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쉐프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그리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새 주방으로 향했다. 서양인 엘리트 몇 명 역시 불안한 듯 돌아봤고, 그중 하나가 전칠을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전 사장님, 굳이 외국인 비위를 거스를 필요 있습니까? 어찌 됐든 현지를 잘 아는 사람들인데.”

전칠은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의지를 확인한 부하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면서 앞으로 있을 담판 계획을 새로 수정했다.

“사장님, 능 선생님 나오셨어요.”

맥순은 무전기를 들고 작은 목소리로 전칠에게 보고했다. 여러 명이 이야기를 나누기엔 핸드폰보다 무전기가 편했고, 병원 같은 곳에서 쓰기도 좋았다.

고개를 끄덕인 전칠은 자기 앞에 가지런히 두 줄로 앉은 남녀를 향해 강한 기세를 유지했다. 그녀 부하도 같은 자세였고, 상대적으로 젊은 얼굴과 단호한 눈빛에 상대방은 전칠과 그녀 팀의 의지를 느끼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전칠의 부하가 보고한 바와 같이, 이번 계약은 전칠 일행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외국인에게는 더 중요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계측이 족족 효과를 보지 못하자, 실패보다 자신들의 처지가 더 걱정됐다.

“사장님, 능 선생님이 예약한 식당까지 가는 데 15분 정도 걸립니다.”

맥순은 무전기를 내려놓고 다시 전칠에게 보고했다.

“우리가 가는 데 2분 걸리고요.”

그들은 지금 식당 2층의 세미나실에 있었다. 여러 회사와 집단에서 온 엘리트 중에 꽤 규모가 큰 대형 회사에서 온 사람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전칠을 만나러 왔다. 이런 작은 식당에 모실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행히 전칠이 전에 클리블랜드에 소액 기부한 덕에 비교적 쉽게 비즈니스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전칠은 떠벌떠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변호사의 말을 머리를 쓸어내리며 자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12분밖에 시간이 없네요. 협의점을 찾지 못하면 다음 회의 때 다시 상의해야 해요.”

그 말에 대머리를 포함한 그 자리에 있는 모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왜인지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바로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격렬하게 토론했다. 정 안 되면 다음 회의 때 결정할 수밖에 없지만 다들 그걸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양측의 협상은 속도가 빨라졌다.

금빛 낙하산이 필요한 관료, 퇴진하고 싶은 소액 주주, 의결권을 포기하더라도 주식을 보유하고 싶은 조기 투자자, 각자 다른 생각이 있지만 전씨 가문 집행권자를 직접 만나는 이 기회는 모두에게 소중했다.

“능 선생님 약 10분 후 도착 예정입니다.”

맥순이 시간을 보고하자 전칠은 계속하라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맥순은 의도치 않게 귀엽게 눈을 크게 뜨고는 심호흡한 다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회의는 이제 7분 남았습니다.”

두 줄로 앉은 외국인들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계속 뜨겁게 토론했다. 맥순은 혼자 만족하며 웃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 거물이고, 그녀는 열심히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이런 자리에서 입을 연 것만 해도 만족스러운 느낌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무전기에서 점점 더 빈번하게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 그 점을 의식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걸 따질 틈이 없었다. 전 사장이 왜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개요를 정하는 게 중요했다. 전칠에게 유리한 개요겠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또 한편 그 자리에 있는 능구렁이, 너구리들도 앞으로는 경쟁보단 협력할 일이 더 많을 테니 스마트하고 능력 있는 이사가 더 좋았다.

“3분.”

“1분.”

맥순은 전칠의 동의하에 분마다 시간을 알렸다. 이제 남은 시간이 초 단위로 접어들었을 때, 회의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능구렁이 몇 명이 드디어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사장님 뜻대로 합시다.”

“좋아요.”

전칠은 쓸데없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이 사람들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걸 지켜본 다음 자기도 서명했다.

박수 소리가 바로 울려 퍼졌다. 회사를 떠나려는 사람이든, 새로 그룹에 합류하는 능구렁이, 너구리 모두 일이 잘 마무리되어 큰 부담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150초 후 도착합니다.”

맥순이 전칠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점심은 이곳 레스토랑에서 제가 대접할게요.”

전칠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세미나실에서 나갔다. 전칠이 밖으로 나간 후, 다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군.”

“여러분, 오대호에서 다시 만납시다.”

“정말 대단하군.”

“어찌 됐든 국물이라도 얻었어.”

세미나실에 남은 사람들은 다들 답답한 듯 재킷을 벗었다. 그들에게 조금 전 몇 분은 운명적 심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의 큰 변화였다. 다만 문득 밖을 돌아본 그들은 묘하게 침착해졌다.

병원 안에 있으니 인생의 큰 변화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전 사장이 일부러 회의 장소를 클리블랜드로 잡은 건가? 그런 생각에 뒤늦게 흠칫하는 사람도 있었다.

“식사하러 갑시다.”

“난 오후 비행기를 잡아놔서.”

“시간 바꾸시죠. 전 사장에게 잘 보일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려고요?”

“그러죠. 중국 음식이라면서요?”

“음. 맛있는 척을 해야 합니다. 중국 사람은 음식을 매우 중시하거든요.”

“능 선생.”

능연이 식당으로 들어왔을 때, 전칠은 이미 15초 만에 신을 갈아신고 화장도 고친 다음 학처럼 조용하게 식당 안에 서 있었다.

“수술은 어땠어요?”

“매우 성공적이었어요.”

전칠이 다정하게 묻는 말에 능연은 100점 만점에 760점짜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많은 수술과 자아 트레이닝 후, 능연은 수술에 대한 자신감과 조작 능력 모두 대대적으로 늘었다. 비록 매번 완벽한 수술은 할 수 없어도 대부분 수술을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끝냈다. 오늘 수술도 포함해서. 그리고 이런 수술을 끝나고 나면 능연 본인도 큰 기쁨을 느꼈다.

전칠은 부러운 듯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은 직업이 참 좋은 거 같아요. 나는 항상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하고 의미 없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잖아요.”

이런 상황을 매우 잘 이해하는 능연은 위로의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어떤 시합에서 이기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참가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기권해서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그런 기분.

바로 이런 무반응을 기대했던 전칠은 감동해서 능연의 팔짱을 꼈다.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음식 먹어요. 오늘 메인 요리는 마라 위주의 사천요리예요.”

전칠이 이야기하는 사이 미리 준비를 마친 쉐프가 다가와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하고는 요리가 올라올 때마다 설명을 곁들였다.

“사실 전통 사천요리는 백미(百味)가 메인입니다. 물론 저희는 마라 역시 저희 정통 분야입니다만.”

이야기하는 사이, 마파두부, 궁보계정, 어향육사, 후이궈로우가 한 세트로 테이블 왼쪽에 놓였다. 뒤이어 쉐이주위, 동파육도 테이블에 올랐다. 이어서 다른 요리들도 작은 접시로 연달아 올라왔다.

쉐프는 조금 허탈한 듯 설명했다.

“마라 위주라서 어쩔 수 없이 붉은 요리가 많습니다만, 사실 전통 사천요리점은 이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천요리를 먹어 보아요.”

전칠은 기쁨 가득한 얼굴로 능연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능연 역시 꽤 즐거워하며 한 입 맛보고는 기쁜 듯이 대답했다.

“마라 좋네요. 출국한 이래 못 먹었으니까요.”

쉐프의 허탈한 표정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는 금발에 파란 눈 현지인 비서에게 끌려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쉐프는 언짢은 듯 비서를 향해 영어로 꿍얼거렸다.

“우리 사천요리를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현지인 비서는 쉐프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본격적인 실력을 갖췄을지 몰라도 우린 필요 없어요. 오늘은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니까요.”

쉐프는 얼떨떨해졌지만, 뒤이어 들어온 외국인들이 그 말에 더 혼란스러워했다.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던 외국인들은 새로 큰 충격을 받은 듯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다음 묵묵히 자리로 갔다. 이어서 부쉐프와 서버가 알려주는 대로 큰 수저로 마파두부와 쌀밥을 퍼서 마라맛 음식을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오늘 요리가 마음에 드십니까?”

처음으로 외국에 나온 사천요리 부쉐프는 나이 든 백인들이 자신의 요리를 깔끔하게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말에 나이 든 백인 노인 하나가 호탕하게 웃었다.

“아마도요? 난 나중에 엉덩이가 아픈 이런 거,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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