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32화 (811/877)

주말.

클리블랜드의 직원은 대부분 휴가였다. 수술은 여전히 진행됐지만, 인원수가 대대적으로 감소했다. 긴급수술 위주로 진행하는 분위기에 의사들은 오히려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그렇다는 말이었다.

능연이 있는 수술실 분위기는 조금 침울했다. 간호사는 말없이 기구를 건넸고, 의사는 조용히 건네받고, 그리고 다들 한마디 말도 없이 환자의 몸을 들쑤셨다.

그렇게 수술이 거의 끝나갈 때쯤, 이쯤 하면 거의 완벽한 수술이라고 생각한 켈런이 솔선해서 침묵을 깼다.

“능 선생, 정말로 클리블랜드에 남을 생각 없어요? 바라는 게 있으면 설사 조금 지나친 요구라고 해도 오스본 선생님이 병원하고 협상해 줄 거예요.”

참관실에 있는 오스본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능연이 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든 괜찮습니다. 상의하면 되죠. 물론 페이를 너무 높여달라는 건 안 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능 선생은 페이를 굳이 따질 것 같지 않군요.”

능연이 개인 비행기를 타고 왕복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미국 의사들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사실 오스본도 불가능했다. 본인이 개원한 게 아니라서 개인 비행기의 엔진 하나 만지지 못했다.

능연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이번에도 여지를 남기지 않고 대답했다.

“클리블랜드에 남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상의할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단호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여지를 남기는 성격이었다면 학교 다닐 때 여기저기 ‘능연 부인’을 자처하는 학생들이 줄 섰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하자 오스본 역시 더는 밀어붙이지 못하고 껄껄 웃으면서 가장 클래식한 거절당한 후의 대사를 읊었다.

“클리블랜드의 대문은 언제나 능 선생에게 열려 있습니다.”

능연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동네에서도 항상 듣는 말이었다. ‘저녁에 우리 집 와서 밥 먹으렴.’, ‘언제 같이 밥 먹자.’

“닥터 오스본, 논문, 메일로 보냈습니다.”

란셋에 매우 진심인 여원이 바로 타이밍을 보고 끼어들었다. 오스본은 멈칫했다가 곧 웃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능 선생 논문이니 당연히 가장 우수한 간행물에 실어야죠.”

능연의 심장외과 방면 지식은 란셋에 발표하고도 남을 정도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물론 이런 세계급 간행물에 길잡이가 있으면 훨씬 더 수월할 것이고.

“Cardiac rhythm 좀 더 낮춰요.”

능연은 오가는 대화에 전혀 개의치 않고 지시했고 오스본은 조금 허탈해졌다.

“능 선생, 클리블랜드에 남고 싶은 생각이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앞으로를 위해서 참고하려고요.”

그 말에 능연은 모종의 피드백 기제가 격발된 듯 하하 웃으면서 어머니 도평 여사가 십여 년 동안 가르쳐온 화술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클리블랜드 문제가 아니라 제가 생각이 있어서입니다.”

오스본은 역시나 소녀들처럼 흡족하고 또 유감이라는 미소를 지으며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능연도 순조롭고 조용한 수술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고.

“4-0”

“거즈.”

“4-0”

능연은 쉴 새 없이 실을 요구했다. 심장 수술은 기본적으로 모든 바늘이 홑땀이었다. 퀄리티 높고 비싼 실이 달린 바늘은 조직 반응을 줄여줘서 수술 효과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술 시간에는 의료진들이 서로 수다를 떠느라 재료 이름을 부를 시간이 없다. 오늘은 수술실이 기이할 정도로 조용해서 능연도 입을 열 타이밍을 찾은 것이고.

능연은 이런 쾌적하고 자유로운 데다가 완전히 제어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그러나 수술실과 참관실에 있는 의사, 간호사 그리고 내방객은 진한 이별의 슬픔, 씁쓸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때, 메시지 하나가 모두의 SNS에 동시에 공유되었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능 선생도 말이 많아졌네. 생각할 게 너무 많은데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의학용어로 발산하는 거겠지.

클리블랜드에 있는 모든 이가 하나같이 동감하는 듯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만리타향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란 성공으로도 어쩔 수 없지.

-능 선생은 마음을 털어놓는 남자가 아닌데. 저렇게 의학용어로 기분을 표시하는 걸 보니까 묘하게 조금 귀엽다.

-오늘 수술은 4-0로 정했어.

-이따 능 선생 송별회 하자.

송별회 하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수많은 사람이 동의했다. 존재하지 않는 사이트에 능 선생의 파티에 참석한다는 포스트가 쉴 새 없이 늘어서 클리블랜드 지역 외의 사람들도 소식을 받았다. 심지어 조직적으로 참여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주인 정신을 발휘해서 적극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송별회를 잘 끝내야 합니다.

맥순은 화상 회의에서 단호하게 발언했다. 이번엔 단순히 전칠을 위해서 하는 발언이 아니었다. 사장 비서 생활을 오래 해 온 만큼, 이사회 비서까진 오르지 못했어도 쓸만한 비서는 되었다.

게다가 전칠 같은 높은 지위의 사람을 보좌하면서 그녀의 전면적인 계획, 각종 전략을 봐오면서 맥순도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그녀는 전면적인, 전략적 시선으로 상황을 살펴보고는 자연스럽게 결론을 끌어냈다.

-미국 사람들은 사교활동을 중시합니다. 특히 분위기 좋은 파티야말로 미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형식이죠.

-그룹에서 해마다 전시와 광고에 큰돈을 들이는 것도 다 인지도 때문 아닙니까. 능 선생 송별회 주최야말로 인지도를 올리기 가장 좋은 일이에요.

-클리블랜드 진료소는 사교활동을 중시하고 모임에 열정적이죠. 이건 거의 의학계 카니발이에요. 송별회를 잘 끝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걸로 이름도 알려서 운리 그룹의 네임카드로 만들어야 해요.

짝짝짝짝. 맥순 앞의 모니터에서 박수 소리가 터졌다. 맥순은 흥분해서 얼굴이 다 빨개졌다.

-많은 표를 얻어 통과했습니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세요.

화상 회의 주최자가 투표 결과를 발표한 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 종료를 선포했다. 맥순은 조금 멍한 듯 모니터를 끄고 전칠을 향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통과……한 것 같습니다.”

“통과했으니 이제 성공적으로 끝내야지. 이젠 맥 비서에게 달렸어요.”

“아……. 그, 그럼 사장님은요?”

전칠이 웃으며 하는 말에 맥순은 순간 조금 두려워졌다.

“난 능 선생이랑 같이 있어야지. 정말로 언짢아하면 어떡해요.”

전칠이 생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가세요.”

클리블랜드와 가까운 어느 장원 부지에 중국 특색인 붉은 등롱이 잔뜩 달려 있었다. 입구엔 사자상 두 개와 중국에서 온 영빈 직원 두 명이 중국어로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기까지 했다.

피부색이 다양한 외국인들은 중국어를 들어본 사람이든 아니든, 특색있는 어조를 들으며 묘하게 웃음 지었다. 안 그래도 호기심과 재미로 파티에 참여한 것인데 주최측이 입구에서부터 특색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보고 헛걸음한 것이 아님을 느꼈다.

장원 안 주차장은 밤이 되기 전에 거의 만차가 되었다. 게다가 거의 고급 자동차였다. 클리블랜드의 페이로는 생활 부담을 느끼는 의사는 사실 고급 자동차를 구매할 형편은 아니다. 해마다 고액 고용 보험과 비싼 학비 지출은 접어두더라도, 클리블랜드 현지 생활 지출만 해도 중위권 수입의 의사를 쪽쪽 빨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유명한 클리블랜드 병원에서 생활 부담을 정말로 느끼는 의사는 드물었다. 대부분 가정환경이 좋았고, 고용 보험을 자기가 부담하고 학자금 대출 상환해야 한다고 해도 대출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의사는 사실 많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많은 클리블랜드 의사는 집안에서 지원해주는 부동산 대출에 신탁 기금, 혹은 주식 수익을 얻는 의사도 많았다.

따지고 보면 매우 미국 같지 않은 스타일인 것 같지만, 사실 클리블랜드 같은 병원 자체가 비교적 낮은 페이, 높은 사회 책임감과 높은 사회적 지위로 유명하다. 그래서 대부분 의사는 출신 자체가 자녀에게 금전 지원을 해주는 의사 집안인 편이다. 업계에서도 다들 인정하는 일종의 자선 활동에 가깝다고 할까.

가정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의사들은…… 사실 가정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비 화교권 교포는 의사가 되기 힘든 건 접어두고, 설사 가끔 바늘구멍을 통과한 사람들도 현실을 인지하고 수입이 높은 영역으로 간다.

물론 수입이 높은 영역과 성장성이 있는 영역은 그다지 겹치지 않는다. 그리고 서양 의학 체계에서 이것이 바로 2차 계급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으면 의사가 되어도 차근차근 길을 밟아나가 의학계의 능력자가 될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낮다고 해도 좋다.

이런 자본적인 차이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또 은밀해서 대부분 인식해도 나서서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펠릭스만 봐도 원래는 대빵 예비역 캠프 밖으로 밀려났었다. 하지만 가정환경 때문은 아니고, 심지어 단순히 재능 문제도 아니고 그냥 뒤처졌을 뿐이었다.

클리블랜드 같은 병원에서는 순위가 밀리면 계속해서 기회를 잃게 되고, 기회를 많이 잃어버리게 될수록 대빵의 인선에서 탈락하게 된다.

펠릭스도 당연히 인지했고, 그래서 툭하면 해외 출장 수술을 나갔다. 즉 의학계 대빵이 되겠다는 노선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돈을 번 다음엔 한때 고급 차니 파티 같은 것에 빠져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능연에게 배운 심장 박동 비정지 우회술을 오스본 앞에서 시연한 이후, 펠릭스는 갑자기 후회가 들었다. 어릴 때 부지런하지 않았던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대가를 치른달까.

하늘이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파티에서 흥청망청 새벽까지 술에 절어 있지 않고, 쉬지도 않고 노력하고, 논문도 제대로 쓰고, 재물을 탐내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맹세하겠나이다.

이런 근면함에 굳이 기한을 두어야 한다면……. 25년 6개월?

펠릭스는 가슴 가득 포부를 안고 얼마 전에 새로 렌트한 벤츠 AMG를 몰고 거대한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능 선생 파티라서 온 거야. 그동안 수술 케이스를 제대로 정리할 생각이었거든…….”

펠릭스는 파트너에게 자신의 원대한 미래 계획을 나지막이 말해주며 허세를 부렸다.

“저 가로등, 알렉산더 송 거네.”

차에서 내린 파트너는 치맛자락을 살짝 정리하고는 펠릭스의 팔짱을 꼈다.

“아는 디자이너?”

펠릭스는 살짝 관심을 보였다.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이 포토그래퍼, 화가, 댄서 그리고 PT 선생보단 조금 떨어졌지만.

파트너는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브랜드 이름이야. 독립한 디자이너 브랜드. 요즘 유행하는 고가 브랜드지.”

“마음에 들면 사줄까?”

“비싼 건 아우디보다 조금 싸더라고.”

“다른 브랜드랑 비교할 거 뭐 있어. 나중에 아우디를 사든가.”

펠릭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돈이 궁하진 않지만 고급 차 한 대를 몸에 걸칠 정도로 부자는 아니었다. 파트너는 예상했다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알렉산더 송이 이 길 전체를 디자인한 모양이네. 빛을 참 잘 썼네. 가로등뿐만 아니라 여기 울타리도 다 그런 거 같다. 울타리당 계산했을지도 몰라.”

펠릭스는 가격을 묻고 싶지도 않았다. 사우디 갑부의 수술을 했던 그는 지금 이런 단어를 하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장원 안으로 들어가보니, 로비와 레스토랑에 식사 테이블이 줄지어 깔려 있었다.

“오, 중국 요리네!”

“멕시코 요리…….”

“브라질 바비큐…….”

“프랑스 에피타이저?”

아무래도 전 세계를 돌며 출장 수술을 했던 만큼, 펠릭스는 조금 둘러보고는 지역 특색 요리를 바로 알아봤다. 이탈리아 요리를 가장 좋아하는 그는 몇 입 맛보고는 혀를 내두르며 칭찬했다.

“이탈리아 요리는 피노스가 만든 것 같네.”

한 바퀴 둘러본 파트너가 입이 번들번들한 펠릭스에게 대답했다.

“그 피노스?”

펠릭스 역시 유명한 이탈리아 쉐프를 알고 있었다.

“응, 그 피노스.”

파트너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펠릭스는 씹는 속도가 느려졌다.

“세상에, 돈이 얼마야.”

“내가 묻고 싶네. 의사들이 돈을 이렇게 잘 벌어? 능 선생이라는 의사, 일 년에 몇천 달러는 벌어야겠는데?”

파트너는 오늘 본 물건 가격들을 떠올리며 추산해 봤다. 펠릭스는 재미있다는 듯 파트너를 힐끔 보고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오늘 이거, 능 선생 여자친구가 쓴 거야.”

“아. 그러게. 정원까지 합치면 당신이 80이 되어도 못 벌 돈이라고 생각했어.”

깨달았다는 듯이 답하는 파트너의 말에 펠릭스는 씹는 동작을 완전히 멈췄다. 들고 있는 이탈리아 고기가 더 무거워진 듯했다.

“펠릭스!”

샴페인을 든 해리스가 뒤에서 다가왔다.

“해리스.”

펠릭스는 정신 차리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모셔온 중국 사람이라며?”

해리스는 인사도 자르고 조금 뿌듯한 듯 웃어 보였다.

“돌아간다니 안타깝네. 붙잡을 수 있었다면 희망이 있었을 텐데.”

병원에서 말하는 희망이라는 건 여러 방향이 있지만, 해리스는 말하지 않았고 펠릭스도 묻지 않았다. 그는 마찬가지로 자세히 말할 생각은 없다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많이 배웠어.”

“음?”

“닥터 오스본에게 꽤 높은 평가를 받았지. 나중에 너도 보게 될 거야.”

“아…….”

해리스는 살짝 긴장했다. 대가로 향하는 무리에서 그는 제3그룹 꽁무니를 따르는 선수지만, 그래도 펠릭스보다는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괴롭게 분투하는 인생 속에서 모처럼의 재미를 느끼며 종종 펠릭스 앞에서 잘난 척했다.

“뭘 할 건데?”

“그냥 심장 수술.”

해리스가 참지 못하고 물어오자 펠릭스는 싱긋 웃었다. 심장 우회술이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능연이 돌아간다고 해서 그가 중국에 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이미 끝냈기 때문에.

산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가면 되지, 라는 어느 종교 명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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