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33화 (812/877)

“왕 주임님, 차 드릴까요, 커피 드릴까요?”

족발을 만진 손을 물수건으로 닦은 연문빈이 공손하게 물었다. 왕 주임은 자세를 고쳐 앉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실망한 듯 말했다.

“개인 비행기인데 스튜어디스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있습니다. 곧 올 거예요. 그냥 목 좀 축이셔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연문빈은 매우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모습이었고 곁에 있던 도 주임은 껄껄 웃었다.

“네가 따를 필요 없으니까 가서 일 봐.”

응급 센터 주임들이 천리만리 떨어진 미국까지 와서 타이틀도 잘 기억 나지 않는 학회에 참가한 진짜 목적은 바로 전설 속의 개인 비행기를 한 번 타 보고 싶어서였다.

당당한 운화병원 주임이 퇴임할 때가 다 되어서도 개인 비행기 한번 못 타 보고 개인 비행기 스튜어디스의 서비스를 받지도 못한 건 너무나 체면이 안 서는 일이니까.

열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일부러 날아온 주임들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는 연문빈은 실실 웃으며 돌아섰다. 그러나 여원은 툴툴거리며 연문빈을 따라 옆 객실로 향했다.

“너무한 거 아니야? 비행기 좀 타겠다고 전칠 씨 돈을 얼마나 더 쓰게 하는 거야.”

“돈은 운리에서 내는 걸걸?”

연문빈은 회사와 이윤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었다.

“운리가 전칠 씨 거잖아.”

여원이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주식 전체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대부분 주식이 운리 건데, 운리 돈을 막 쓰는 건…….”

“쓰는 건?”

연문빈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녀가 말을 마치길 기다렸다.

“우리 돈 쓰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여원은 용기를 내서 바로 답변을 내놓았다. 사실 절묘한 증명법을 이미 찾았는데 종이가 너무 작아서 다 쓰지 못할 뿐이야, 라는 스킬을 쓰면서.

연문빈은 한순간 뭐라고 반박해야 좋을지 말을 찾지 못해서 비틀거렸다.

“주임님들도 애쓴 건 맞는데, 정말로 개인 비행기를 타고 싶었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야지.”

여원이 매우 언짢은 듯 투덜거렸다. 그때, 통로에서 들어온 좌자전이 스무스하게 의자에 앉으면서 낄낄댔다.

“전칠 씨가 초대한 거면 어쩌려고.”

“응? 그래요?”

여원이 의아한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좌자전은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전칠 씨가 아니면 부하일 수도 있지. 맥순이라던가? 어쨌든 737 같은 큰 비행기를 개인 비행기로 개조했잖아. 못해도 100명은 타는데 뭐 어때.”

“그건 다르죠. 같이 타고 왔던 회사 고위직들도 있잖아요. 다른 비행기 타고 가려면 돈 들어요.”

한창 중얼거리던 여원은 말을 멈췄다가 깨달은 듯 다시 이었다.

“티켓 바꾼 건가?”

“당분간 미국에 체류하는 사람이 많대. 처리할 사업이 많잖아. 아무나 시킬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자리도 비었던 참에 주임님들이 타고 싶다고 하니까, 전칠 씨도 별생각 없었던 거지.”

여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 미워해도 되겠네요. 저주할 뻔.”

좌자전은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저주를 왜 해. 그러지 마. 어쨌든 응학에서 고생한 주임님들인데, 이 정도도 못 즐기냐.”

“바다 건너는 비행기 타는 게 무슨 즐길 거리나 되나요. 열몇 시간이나 비행기 타고. 어차피 의자에 앉아서 먹는 것도 그저 그렇고.”

연문빈은 넓은 좌석에 널브러져서 마취라도 한 듯 편안하게 다리를 쭉 뻗었다. 열 시간 넘는 비행은 몹시 지치는 일이었다. 그냥 잠깐 다리나 펴려던 연문빈은 드러눕더니 곧 잠이 들었다.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땐,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 대부분 모두 잠들어 있었다. 일부러 차고 온 롤렉스를 힐끔 본 연문빈은 순간 기운이 솟아나서 조금 뭉친 어깨를 풀어주고 헬스룸으로 달려갔다.

새벽 4시의 비행기 헬스룸에는 놀랍게도 점심때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외국인 남자 셋, 여자 하나가 포커도 안 치고, 4p도 안 하고, 야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각각 헬스룸 한구석에 서서 비 오듯 땀 흘리고 있었다.

연문빈은 중간으로 가서 시계 방향으로 네 사람을 훑어보았다.

“뭘 그렇게 봐요?”

트레이드밀에서 엉덩이를 비틀던 백인 여자가 이상한 듯 물었다.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싶어서요.”

연문빈은 간단한 영어로 대답했다. 물론 그 말은 진심이었다. 헬스룸에서는 다치기 쉬운 데다가 비행기에 의료 장비도 완전하지 않으니 능 선생이 가지고 놀 적당한 환자가 마침 생기면 좋으니까.

연문빈의 커다란 어깨를 잠시 바라보던 백인 여자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그럴 거면 욕실에서…….”

연문빈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온 거라서 괜찮아요.”

운화병원 의국.

다리를 꼬고 앉은 곽종군이 매우 한가하게 한 손에 신문, 다른 손에 찻잔을 들고 있었다.

회진을 막 마치고 돌아오던 의사들이 낄낄대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로 주치의가 된 정배가 가장 먼저 들어와서 문 옆의 에피프렘넘을 향해 손을 내밀다가 다리를 틀고 의자에 앉아 있는 대 주임을 발견했다.

“아오, 깜짝이야.”

정배는 놀라 고함치며 목을 움츠렸다. 곽종군은 행동이 느린 장수 동물처럼 신문 위로 목을 쭉 내밀면서 눈을 깜빡, 정배를 한 번 바라보고는 전분 함량 98.7% 햄을 발견한 것처럼 슉 목을 다시 숙였다.

정배는 무의식적으로 뻣뻣하게 손발을 놀리며 자리로 돌아와서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함께 돌아온 동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임님……. 더 무서워진 것 같아.

개인 단톡방에 메시지가 쏟아졌다.

-내 생각도 그래.

-요즘 수술이 많아져서 유물주의가 단호해져서 그렇지, 곽 주임님 빙의한 거 아닐까 의심할 뻔.

-13번 베드 환자 상처 또 액 샌다. 유물론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곽 주임님 완전 정상이라고 확신한다.

‘동맥 귀환’이 보낸 메시지가 단톡방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정배는 즉시 그를 태그하고 물었다.

-왜?

-주임님이 신문 보는 거 봤냐? 내 생각엔 말이다, 설사 곽 주임님이 고장 났다고 해도 신문 들고 의국에 앉아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일부러 보라고 저러는 거지

‘동맥 귀환’의 매우 진지한 분석에 정배는 매우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이 오늘 돌아오잖아. 기다리시는 듯.

-지난번 8중 추돌 때도 곽 주임님이 2, 30분 먼저 나와서 기다렸잖아.

초짜 의사 하나가 질투 나는 듯 말을 이었다.

-곽 주임님 편애가 심하셔.

-이럴 가능성도 있지. 지난번 8중 추돌 때는 12시간 전에 곽 주임님한테 알리지 않았어. 능연은 알렸고.

‘동맥 귀환’의 메시지에 정배는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들고 한 방 먹은 초짜 의사를 바라봤다. 초짜 의사는 동맥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멍청한 표정이었다. 정배는 감탄하며 조용히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의사 4’ 뒤에 마이너스를 하나 추가했다.

능연이 병원에 들어왔을 때, 정배는 이미 선임 레지던트였는데 올해 겨우 주치의 타이틀을 얻었다. 능연보다 몇 년 늦은 것 같아도 운화병원에선 정상에 속했다. 또 자연스럽게, 정배는 부주임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연차 낮은 초짜 의사들을 기록하고 평가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또 몇 년 흘러 자기가 팀을 꾸리게 될 때 좋은 의사를 고를 수 있도록.

정배는 부푼 꿈을 안고 조용히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마음대로 타인을 평가하고 운명을 결정하는 느낌, 좋은데!

의국은 다시 평온해졌고, 의사들은 차트 쓸 사람은 쓰고, 혼날 사람은 혼나면서 변함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 가운데 오직 곽종군만이 물에 잠긴 듯이 머리를 신문 뒤로 깊게 감췄다.

“능 선생 돌아오셨어요.”

제약회사 직원 하나가 빠르게 달려왔다. 마치 중요한 군사 정보라도 전하는 듯이, 갈증 나는 척 가지고 온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기까지 했다.

“알겠네.”

곽종군은 헐떡대며 보고한 제약회사 직원에게 됐다는 듯이 미소 지어 주었다. 젊은 제약회사 직원은 만족할 줄도 모르고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물었다.

“알고 계셨어요?”

곽종군이 씨익 웃었다. 기분이 좋은 참에 ‘탁’ 소리 내며 신문을 접고는 아래 놓인 노트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살며시 방향을 틀어서 화면을 제약회사 직원을 향해 보여주었다.

“어쩐지.”

젊은 직원은 바로 알아들은 동시에 많은 것을 떠올렸다. 선물 전달에 실패했을 때라든가, 키스에 실패했을 때라든가, 섹스 시도에 실패했을 때라든가…….

“이만 가 봐.”

곽종군은 소매를 휘둘러 새우껍질 내던지듯이 제약회사 직원을 내보냈다. 새우살은 이미 그가 홀랑 먹었고.

지금 곽종군에게는 제약회사 직원, 심지어 진료과 일도 모두 뒷전이었다. 클리블랜드에서 금의환향한 능연이야말로 응급센터의 핵심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퇴임 준비를 하는 건 아니었다. 심장 발작을 겪었을 땐 그런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당연히 응급센터 주임 신분으로 능연이 편안하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곽종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차를 홀짝이고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매무새도 정리했다. 그러는 사이 능연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의국으로 돌아왔다.

곽종군은 미소 지은 채 태연하게 그런 능연을 바라봤다. 질투가 심한 사람, 육군 병원 유 주임, 성립 왕 주임, 본원 손 주임 등등이라면 진작 안달복달할 텐데, 어릴 때부터 군대에 있었던 나 곽종군의 사상과 행위 방식 모두 결단코 남다르다고 생각하면서.

“곽 주임님.”

안으로 들어온 능연은 전혀 거들먹거리는 모습 없이 착실하게 인사했다. 곽종군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잘생긴 놈은 다르지. 아무리 큰 명예를 얻어도 거만하지도 들뜨지도 않잖아. 귀해, 귀해.

“오늘은 플래카드 안 걸었다.”

곽종군은 능연의 표정을 살피며 미소 지었다.

“운화병원은 물론이고 운화시, 창서성 안에서도 플래카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으니까. 플랜카드를 걸어도 북경이나 상해에 걸어야지.”

“광동, 심천도 있습니다.”

주 선생은 준비하지 않은 대사를 잘도 읊었다. 아부 기술 하나는 끝내주니까. 역시나, 곽종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능연의 팔을 덥석 잡았다.

“플래카드는 안 걸었지만, 준비해야 할 케이스는 착실히 준비해뒀지. 학회를 열어도 좋고, 생중계 열어도 좋고. 수술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곽종군은 ‘선물은 보냈으니 마음대로 해’라는 투로 말했다. 능연은 조금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소녀, 소년, 아가씨, 총각의 선물은 많이 받아봤지만, 곽종군 같은 중늙은이의 선물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따라와.”

곽종군도 줄곧 능연을 붙들고 있진 않았다. 친밀한 태도를 보이고 싶은 거지 능연의 습성에 도전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그렇게 막 의국으로 돌아온 능연은 곽종군에게 끌려 병실 구역으로 향했다.

“여기부터야.”

병실 구역 끝으로 능연을 데리고 간 곽종군은 100-103 병실 문을 가리켰다.

“다 중환자. 심장 우회술 지표도 명백해서 날짜를 고르기만 하면 돼.”

능연은 얼떨떨해졌다.

“104-106도지. 게다가 159킬로그램 이상 거구.”

곽종군은 설명을 덧붙였다.

“350파운드 말이야. 나중에 논문 쓸 때 편하게 쓰라고. 단위 환산하기 쉽고, 총결 내기 쉽게.”

주 선생이 능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나서서 맞장구쳤다.

“국내에서 150킬로그램 넘는 비만 환자를 찾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천 명은 넘게 컨택하셨겠어요.”

“전화 많이 했지, 뭐.”

곽종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불은 주 선생이 알아서 지필 테니, 그는 그냥 담담하게 굴면 그만이었다. 능연도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만 환자든, 단위 환산이든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2차 우회술 환자도 6명 있어.”

곽종군은 계속 걸어 나가며 감미롭게 속삭였다.

“클리블랜드에서 수술할 때도 이런 식으로 환자를 제공해줬다며? 괜찮은 방법 갔더군. 우리 병원과 진료과에서 배울 만해. 음, 3차 우회술 환자도 연락했다네.”

능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세심한 배려라니, 아무리 그라도 저절로 감사 인사가 나왔다.

“감사합니다, 곽 주임님.”

“좋아하니 됐지, 됐어.”

곽종군은 순간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 선생 등 다른 의사들은 손뼉까지 짝짝 쳤다. 응급센터 의사들에게 있어 이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모두에게 유리한 일이었다.

“주임님 회진 예정입니다.”

젊은 레지던트가 종종걸음으로 병실 안으로 들어와 통보부터 하고는 거슬리는 의자들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초짜 의사들에게 주임 회진이란 이유 불문하고 큰일이었다. 적어도 갑작스러운 쪽지 시험 정도는 되는. 진료과 의사들이 대거 모였을 때는 모든 행동이 장래에 영향을 준다. 내과인 경우, 회진 중에 보인 행동으로 한 의사에 대한 동료들의 평판의 50%가 결정된다. 외과는 조금 터프하지만, 여전히 초짜 의사를 시련으로 몰아넣는다. 침대 관리 담당인 초짜 의사 중엔 커닝페이퍼를 참고하는 의사도 있다.

병실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도 매우 적극적으로 알아서 정리했고, 환자를 깨우는 사람도 있었다. 주임과 보통 초짜 의사가 얼마나 다른지 잘 아는 게 분명했다.

100번 베드 보호자가 가장 먼저 물었다.

“곽 주임님이세요?”

“맞아요. 곽 주임님하고 능연 선생님이 같이 오세요.”

“오오.”

보호자는 환호하며 일어나면서 침대에 누운 아버지를 툭툭 쳤다.

“능 선생님이 수술하기로 한 선생님이세요.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요.”

“막 클리블랜드에서 돌아오셨어요. 클리블랜드엔 세계 1위 심장 센터가 있죠. 그런 클리블랜드에서도 능 선생을 환영하고 인정했죠. 홍보 사진 같은 것도 내보낼 테니 신문에도 실릴 겁니다.”

젊은 레지던트가 나지막이 설명했다. 운병의 젊은 의사들에게 클리블랜드는 매우 높은 존재였다. 보호자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클리블랜드, 저도 알아요. 전에 해외 브로커하고 연락했을 때도 그 병원 소개받았거든요. 이런저런 이유로 안 가긴 했지만.”

“그쪽도 해외 브로커랑 연락했었군요. 우리도 했었는데. 외국이라 걱정되는 것도 많아서 끝내 포기했지만요. 비용도 비싸고.”

101번 보호자도 불쑥 끼어들어 100번 보호자와 수군대기 시작했다.

“외국에서는 보험 적용 안 되죠?”

102번 베드 환자도 귀를 쫑긋 세웠다.

“당연하죠. 국내 보험은 외국에서 안 통하죠. 클리블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자비로 심장 수술 받으려면 몇백만 달러는 써야 한다던데요.”

101번 베드 보호자가 감탄하며 대답했다.

“운화병원에서 하면 십만 위안 정도면 충분하겠죠?”

102번 환자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아예 레지던트를 향해 물었다. 레지던트는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의료 보험이 있으면 그 정도일 거예요. 자세한 건 상황을 봐야 알겠지만요.”

“왜 말이 달라집니까.”

102번 환자가 숨을 내뱉으며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까지 심한 것도 아니고, 더 비싸면 수술 안 할랍니다!”

“아빠…….”

병간호하던 딸이 못 말린다는 듯 고함쳤다.

“몸이 이 지경인데 수술 안 하면 어쩌려고요. 병실은 쉽게 구한 줄 알아요? 제발, 고집 좀 부리지 마세요!”

“트럭 몰면서 어떻게 모은 돈인데, 통째로 병원에 바칠 수는 없잖냐. 상세하게는 아니더라도 대충은 알려줘야지. 수술 끝났다가 알거지가 되면 어쩌라고…….”

젊은 레지던트는 한숨부터 쉬고는 그래도 끈기 있게 설명했다.

“한 가지만 설명해 드릴게요. 마취를 4시간 하느냐 6시간 하느냐에 따라 마취제 양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비용도 달라지겠죠?”

잠시 멈칫하던 102번 환자가 대꾸하려는데 딸이 막고 나섰다.

“돈 아까워서 그러지 다른 생각 있어서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트럭 운전하셨거든요. 2년 전부터 쉬기 시작해서 이제 수입도 없는데 돈 들어갈 덴 많고, 약도 먹어야 해서 최대한 아끼고 싶어서요…….”

딸이 조심스럽게 해명하는 말에 레지던트는 고개를 끄덕일 뿐 별말 하지 않았다. 가정환경에 따라 비용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당연히 달랐다. 100번, 101번은 딱 보기에도 환경이 괜찮아 보였다. 자비로 미국까지 수술하러 갈 정도는 아니라서 국내에서 수술하긴 해도. 예산 백만 달러를 일반 가정에서 부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2번 환자는 처지가 두 사람보다 못해 보였다. 옷차림을 보면 몇만 혹은 십몇만 위안인 수술비를 못 낼 정도는 아니지만, 비싸질수록 심리적 부담인 건 분명했다.

레지던트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의 수입으로 심장 우회술을 해야 한다면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동정은 동정이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고, 이런 문제는 의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세, 구민의 길엔 겹겹이 고난과 막막한 안개가 가득했다.

탁탁탁. 의사들이 곽종군과 능연을 둘러싸고 안으로 들어왔다. 한참 열띤 이야기를 주고받던 세 환자와 보호자가 알아서 조용해졌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곽종군은 짐짓 아는체하며 바로 몸이 어떤지 물었다. 심장 쪽은 모르지만, 아는체쯤이야 주임이 되면 다 할 줄 안다.

100번 환자는 몸을 조금 일으키며 살짝 가슴을 부여잡았다.

“조금 불편해요. 주임님, 언제 수술해요?”

“혈당이 좀 떨어져야 합니다.”

능연이 아이패드에서 검사 결과를 보면서 바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혈당이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닌데…….”

“혈당이 낮아지면 수술 안정성과 예후가 명백하게 높아집니다. 그러니 조금 더 떨어져야 해요.”

능연은 환자와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결론이라서, 환자 혹은 보호자가 란셋 급 논문을 꺼내지 않는 이상 반박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곽종군은 껄껄 웃으며 뒤로 물러나서 능연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병실 안 환자와 보호자는 눈에 빛이 쏘인 듯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능연을 바라봤다. 자기가 깨닫지 못한 새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고 빙긋 눈이 가늘어진 사람도 있었다.

능연은 평소처럼 환자의 각종 레포트를 분석하고 관찰하는 동시에 신체검사를 했다. 굳이 뭐가 다르냐면…… 300 파운드 환자의 살의 느낌이 확실히 다르달까.

손으로 쿡 찔러도 힘을 매우 줘야 환자의 살이 손에 들어왔다. 살짝 끈적한 느낌이 싫었지만, 모두의 신체검사를 끝까지 마쳤다.

102번 환자 순서엔 잠시 청진기를 듣다가 바로 내려놓고 다시 아이패드를 꺼냈다.

“승모판 역류 진단받은 적 있으세요?”

능연은 아이패드를 살펴본 후 다시 청진한 다음에 102번 환자에게 물었다. 노인은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저었고 딸이 더 다급해했다.

“승모판 역류면 더 심각해진 건가요?”

“급성 심근경색 혹은 관상 동맥 경화를 장기간 앓은 환자는 만성 승모판 역류가 생깁니다. 하지만 아버님 상황은 조금 심각하네요.”

능연은 청진기를 거두고 단호하게 말했다.

“승모판 역류 증후가 명확합니다. 검사 몇 개 해서 확실히 하는 게 좋겠어요.”

능연은 바로 검사 의뢰서를 썼다.

“승모판 역류가 뭔지 알아요……. 이래도 수술할 수 있나요?”

“심각하다면 우회술 할 때 동시에 승모판도 하는 게 좋습니다.”

“어떻게요?”

“승모판 성형술 혹은 치환술로요.”

나지막이 묻는 딸의 말에 능연은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저는 성형술 쪽입니다. 치환술로 해야 하면 다른 의사와 함께 수술해야 합니다.”

클리블랜드에서 진행한 퀘스트, 영역 확장을 끝내고 얻은 중급 보물 상자에서 승모판 성형술(마스터급)을 얻었다. 심장 우회술 100건 달성 퀘스트를 클리블랜드에 있는 동안 끝낸 것이다. 다만 심장외과 의사들이 고심해서 선별한 케이스 중에 승모판 역류 환자가 없어서 클리블랜드 진료소에서는 이 기술을 쓰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클리블랜드에서 제공하는 환자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심장 우회술만 필요한 환자였다. 설사 복잡한 기초 질환이 있어도 관상 동맥 우회술이 필요한 환자였다.

그러나 운화병원에서는, 아무리 곽종군이 심장외과 강 주임과 함께 선별했다고 해도 기술과 실력 차이가 현저하게 있었다. 능연은 고작 세 번째 환자 검사 중에 바로 문제를 발견했다.

하지만 불만은 전혀 없었다. 만성 승모판 역류 증상 자체가 매우 발견하기 어렵고 대부분 관상 동맥 허혈 증상만 나타난다. 그래서 수술 전 검사할 때가 되어서야 승모판 역류를 발견하는 건 정상에 가깝다.

그러나 환자와 보호자는 초조해졌다. 노인은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럼 얼마나 드는데요?”

능연이 대답하려는데 환자의 딸이 벌써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돈, 돈, 돈! 돈 이야기 좀 그만하세요!”

노인의 서릿발 같은 얼굴이 온화해졌다.

“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딸은 내가 낸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입가만 맴돌다 다시 들어갔다.

“선생님. 다른 방법은 없는지 다시 한번 봐주시오. 보존 치료라든가요. 몇 년 더 버틸 수 있는 그런 거요.”

노인은 바로 퇴원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환자지만, 능연에게 수술받는 게 쉽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수술해 온 능연도 다양한 환자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02번 환자가 하는 말에 그가 퇴원할 생각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현실 세계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 능연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본다. 구경꾼이 몰릴 때, 이런저런 말과 방식으로 구경꾼을 조롱하고 설득해도 구경꾼이 줄어드는 걸 본 적 있는가?

돈이 없어서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는 병원에서 드물지 않을뿐더러 매우 흔하다. 이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라도 완전하고 정확하게 해석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능연은 이런 복잡한 문제라도 문제 자체에 마주 섰다. 구경 상대가 되었을 때, 모든 구경꾼에게 말이 통할 거라 여기고 잘 선도하고 교육하고 사회적으로 비난해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능연은 그런 구경꾼을 처리할 때, 제3자가 도와주길 기다리거나, 일대일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 역시 그는 수술비용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 없이 천천히 알콜겔을 꺼내 능숙하게 쭉 짜내서 손에 발랐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환자분 상황은 심각한 관상 동맥 경화입니다. 심근경색에 합병증으로 만성 허혈성 승모판 역류까지, 동시 수술 생존율과 예후 모두, 보존 치료보다 훨씬 낫고요.”

학술적 답변에 환자는 멈칫하다가 이내 쓴웃음 지었다.

“좋은 건 다 비싸고, 돈이 없으니 선택할 여지도 없지.”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수술하든 다른 의사가 수술하든 비용은 같습니다.”

“국내에서 능 선생이 직접 하는 수술이라면 분명히 ‘좋은 것’에 속하죠.”

좌자전도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좌자전 전문이었다.

“그 뜻이 아닙니다…….”

환자는 조금 허탈해했다. 조금 센치해졌는데, 돈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능 선생이 말한 생존율과 예후가 어떤 뜻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여 선생, 설명해드리지.”

좌자전은 자연스럽게 여원을 불러들였다. 여원은 바로 맡겨진 임무에 호응하며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이 말하는 보존 치료는 보통 약물치료를 가리킵니다. 그와 비교하면 수술 후 환자의 장기 생존율이 50% 더 높습니다. 즉, 절반이죠.”

“내가 다른 50%일지도 모르지 않소…….”

노인이 고통 속에서 즐거움을 찾듯이 중얼거렸다.

“남은 목숨이 50%는 더 길어진다는 말입니다.”

좌자전이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는 여원에게 계속하라는 듯 눈짓했다.

“리포트에서도 나와 있습니다. 중증 이상 승모판 역류, 다혈관 협착증 합병증 환자 111건과 약물치료 그리고 단순한 관상 동맥 우회술, 관상 동맥 이식 & 승모판 치환술을 비교한 결과, 그중 악물 치료 효과가 가장 떨어졌습니다.”

노인은 어리둥절한 듯 사람들을 바라봤다.

“총체적으로 수술치료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환자분 상황으로는 관상 동맥과 승모판을 함께 제거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좌자전이 앞으로 나서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같은 수술에서 다른 수술을 추가한다고 비용 차이가 그렇게 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의료 보험 있으시죠? 몇만 위안 정도 더 나올 뿐일 겁니다.”

“몇만 위안이라도…….”

노인은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다. 몸 때문에 몇 년 동안 일도 하지 않았고, 트럭도 이미 팔아 버린 데다가 평소의 약값 등등 버는 거 없이 쓰기만 하는 처지였다. 이번에 수술 결정을 내린 것도 도저히 버틸 수 없고 딸이 효심에 어느 정도 돈을 보태서 겨우 마련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몇만 위안이 더 든다고 하니 그로서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집을 팔 수는 없지 않은가. 낡고 오래된 작은 집이라 가격도 맞출 수 없을 것이고 오래 걸리는 건 둘째치고, 정말로 팔고 나면 앞으로 어디서 살라고. 게다가 유산 하나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그럼 조금 더 고민해 보세요. 능 선생에게 수술받는다는 게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닙니다.”

좌자전은 어쩐지 자신의 노년을 보는 것 같은 마음에 102번 환자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그래서 조금 더 설득했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수술은 어찌 됐든 리스크가 있고 심장 수술 리스크는 더욱 컸다. 국제 표준으로 따지면, 심장 우회술에 심장 판막 합병증 수술 사망률은 5% 전후였다.

적극적으로 설득했다가, 나쁜 상황이 된다면 이 가족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병원, 진료과와 능연에게도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좌자전은 이미 부담을 안고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돌아보지 않아도, 곽종군이 지금 목덜미를 노려보고 있음을 짐작했다.

의사들은 다시 무리가 되어 위풍당당하게 병실에서 나갔다. 좌자전은 먼저 곽종군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주임님, 102번 환자, 비용 감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 돼.”

좌자전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곽종군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102번 환자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어찌 됐든 나름 중산층이라 보험도 있고 퇴직금도 있지. 한 달에 2천 위안 정도라던가. 작게 집도 하나 있어. 딸도 형편이 괜찮은 편이고. 저소득층이나 퇴직금 없고 집도 없는 노인과 비교하면 꽤 나은 환경이지.”

“하지만 이러다가는 빈털터리가 될 지경 아닙니까.”

좌자전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작은 마을의 노인에 대해 너무나 익숙했다. 마을 위생 병원 시절 나이 든 환자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창피한 것도 무릅쓰고 시장 바닥에 떨어진 채소잎을 줍는 노인도 바로 이런 부류였다.

곽종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때문에 병을 얻은 건 아니지 않나.”

“그럼 과제 경비나 아이템 경비는 없을까요? 미국에 있을 때 오스본 주임님은 적당한 환자를 찾으려고 몇백만 달러 경비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좌자전은 클리블랜드의 예를 들며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자네는 환자 찾는 데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럼…….”

곽종군이 별도리 없다는 듯 손을 펼치는 모습에 뒤를 돌아본 좌자전은 마침 열려 있는 병실 문틈으로 서로 말없이 마주 보는 102번 환자 부녀를 보았다.

좌자전은 입술을 핥았다.

“아니면 비용 지급을 조금 미뤄주는 건요?”

“자네가 침상 담당의가 될 텐가?”

곽종군이 눈을 흘겼다. 환자가 비용 지급을 질질 끌거나 아예 달아나 버리면, 병원, 진료과, 주치의와 침상 담당의 모두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하는 게 운화병원의 정책이었다.

그 정책을 당연히 알고 있던 좌자전은 하얀 가운 위로 캘빈 클라인 팬티를 한 번 문질렀다.

“그러겠습니다.”

“좌 선생님, 잘 생각하세요. 예순 넘은 환자고 이미 퇴직도 했어요. 퇴원한 다음에 돈을 안 내면 선생님까지 부담해야 한다고요.”

102번 환자 담당의가 바뀌고 비용 지급 연기 허가도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된 주 선생은 바로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회의를 마친 후 조금 망설이던 좌자전은 실실 웃기만 할 뿐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젊을수록 동정이라는 감정에 치우치겠지만, 좌자전은 사실 이해득실을 우선 고려할 만큼 먹은 나이였다. 그러나 중간에 운화병원에 합류한 좌자전은 주 선생을 비롯한 다른 의사보다 불쌍한 사람을 덜 접한 편이었고, 그렇게 남겨진 동정심을 이번에 완전히 발휘했다고 볼 수도 있다.

“환자랑 환자 따님하고 이야기 나눠봤는데, 다들 생각 있는 분들이셨어. 당장 돈이 부족할 뿐이니까, 상황이 풀리면 나중에 내면 돼. 솔직히 나였어도 비슷했을 거야. 아직 아들 도움 못 받잖아, 나.”

좌자전이 씁쓸하게 웃었다.

“요즘 사람들은 얼마를 벌든 부족하다고 생각할걸요? 특히 빌린 돈 갚는 거, 힘들지.”

“그렇게까지는 아닐 거야.”

“그럼 그러세요. 좌 선생님 형편이 괜찮으신 모양이네.”

좌자전이 헛기침하며 대꾸하자 주 선생도 더는 뭐라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좌자전 등 능 팀 의사는 능연과 함께 출장 수술 다니느라 꽤 돈을 벌었으니 몇만 위안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못 내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주 선생은 환자가 돈을 갚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런 일이 하도 많아서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다. 좌자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술비를 미룰 수밖에 없는 환자들은 대부분 환경이 좋지 않았고, 노동력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런데 큰 수술을 받은 환자는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회복하기 힘들뿐더러 일해야 할 다른 가족들까지 매달려 간호해야 했다. 거기에 수술 후 검사, 약값, 생활비 등등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도 많았다.

이런 가정이 필연적으로 병원비를 떼어먹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려면 지극히 큰 용기와 도덕심이 있어야 한다.

102번 환자와 보호자에게 그런 게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좌자전은 상대가 돌아올지 말지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다. 담당의로서 회의를 마친 좌자전은 일부러 102번 환자를 찾아가 결과를 알렸다. 돈을 떼이면 자기 보너스에서 깎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평생 한 번쯤은 환자에게 의료비를 떼이는 경험을 한다. 수도 없이 오고 가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환자 중에 누가 가장 그의 심방을 건드리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른 아침.

좌자전은 일찍 병실로 가서 102번 노인 환자를 수술 구역까지 데리고 갔다. 적극적인 좌자전의 모습이 의아한 간호사는 좌자전이 환자를 복도까지 밀고 들어오자 재빨리 나섰다.

“좌 선생님, 가서 일 보세요.”

“딱히 할 일도 없어요.”

좌자전이 무던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운화병원에서 무던한 좌자전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어린 간호사는 무심결에 옷깃을 여미며 사포로 민 것처럼 거칠거칠한 좌자전의 얼굴을 바라봤다.

“좌 선생님, 저 남자 친구 있어요.”

안 그래도 정신 집중이 안 되어서 몽롱하던 좌자전도 무의식적으로 슬렁슬렁 대답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간호사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어서 단호하게 옷깃을 쥐었다.

“둘이에요!”

“둘?”

좌자전이 어리둥절해서 묻는 말에 간호사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 때 한 명, 나이트 때 한 명이요.”

“그래도 돼요?”

좌자전이 멍하니 물었다. 나도 데이, 나이트 근무 다 서야 하는데?

좌자전을 방어하기 급급한 간호사는 다른 건 생각할 겨를 없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요.”

“말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좌자전의 호기심, 분개심, 질투심, 강렬한 남심, 추악한 중년심, 저급한 응큼함 모두 꿈틀꿈틀 대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정중하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소문내면 병원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 영향을 주겠죠. 그렇게 되면 선생님은 커플 브레이커가 되는 거예요.”

좌자전은 꿈틀거리던 온갖 생각이 더는 돌아가지 않아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그 남자 친구는 데이, 나이트 어느 쪽인데요?”

“지리로 분류해요. 게다가 그 사람은 북원, 나는 남원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장거리 연애죠.”

거기까지 말한 간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좌 선생님, 가서 일 보세요.”

“내…… 내가 직접 환자 들여보내려고요.”

좌자전은 강인하게 걸음을 멈췄다. 지난 일주일 동안 겪은 것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감정이 동요했지만, 처음에 가슴을 건든 일이 가장 중요했다.

좌자전이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줄 몰랐던 간호사는 뿌듯한 기분을 감추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두 사람은 그렇게 환자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환자가 얼굴을 들이밀며 좌자전을 힐끔 바라봤다.

“지금 수술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니었다면 웃었을 겁니다.”

좌자전이 힐끔 바라보니, 환자는 그의 말대로 웃지 않았다.

“능 선생님이 수술하는데, 웃어야 정상이죠.”

간호사가 다른 쪽에서 끼어들었다.

“능 선생님은 요즘 외국인 수술 한 번 하면 몇만 위안도 받으세요. 돈 문제가 아니라, 우리 능 선생님 수술은 정말 귀한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환자분 수술을 능 선생님이 하신다는 건, 오버가 아니라 목숨 하나 더 생기는 일이에요.”

환자는 느낀 바가 있는 듯 ‘아’ 하고 소리를 내고는 육중한 몸을 바로 잡았다.

간호사는 태산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좌자전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고작 이 정도로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거라면 바로 거절하는 게 낫겠어. 하지만 응급센터에서는 그래도 입김이 센 편인데, 그걸 봐서라도 기회 한 번 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취의와 간호사가 수술실로 들어와 준비하기 시작했다. 좌자전은 틈을 봐서 간호사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앞으로는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무슨 말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조금 끈적해졌다.

“외국인 수술비, 그리고 다른 의사 수술이랑 비교하는 거요. 환자들 생각이 많아집니다. 수술할 땐 최대한 마음이 편안한 게 좋아요. 게다가 의료 분쟁을 유발할 수 있어요.”

“그런 일 없어요.”

“없다고?”

“심장 수술이잖아요. 수술이 순조로우면 다들 기뻐할 일만 있고요. 혹시 수술이 잘 안 되면 환자가 살아서 내려올 수 있어요? 분쟁이 생길 수가 없죠.”

좌자전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기가 막혀서 엄숙하게 대답했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말라고요.”

“지금 저한테 화내신 거예요?”

간호사는 매우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좌자전을 바라봤다.

그때, 치익 소리와 함께 능연이 팀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오자, 수술실 분위기가 순간 진지해졌다. 좌자전은 표정 관리부터 하고 능연을 보좌할 준비를 했다.

조금 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취의 소가복은 참지 못하고 실실 웃고 있었다.

“좌 선생님한테 봄이 왔네요.”

“왜요?”

간호사 왕가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좌자전을 바라봤다. 말을 꺼낸 소가복은 아무런 부담도 없이 둥근 의자에 앉아 좌자전을 힐끔 봤다.

수술실의 나날은 무미건조하고 심심하다. 특히 자주 함께 팀을 짜는 의사와 간호사는 서로의 친지, 친구의 일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한 사이라, 드물게 새로운 화제가 생기면 다들 기운이 번쩍 난다.

“가복이가 헛소리하는 거야.”

좌자전이 맥 빠진 소리를 냈다.

“좌 선생님이야 일도 잘하시니 생활력도 분명 강하겠죠. 개인적인 일도 알아서 잘 해결하실 거고요. 선보고 어쩌고 해야 하는 우리랑 다르죠.”

대놓고 좌자전을 놀릴 수 없는 마연린은 은근 돌려 깠다. 다들 자신을 가지고 놀자 좌자전은 그저 머쓱한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회에 다들 스트레스 해소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좌자전 같은 중견이 할 일이긴 했다. 일하다 보면 욕먹을 일이 생기는 건 당연했고, 같이 일하면서 불만만 오래 쌓이고 풀어주지 않는 상사가 되어 버리면 어느 날 손가락질 받으며 인생 쫑날지도 모른다. 승진이라든가, 분양받을 때라든가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마연린도 그랬다. 직급도 낮고 생각도 성숙한 편이 아니지만, 능연과 밑에서 반 제자처럼 수술하는 사이라서 좌자전도 그를 제압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만을 풀 수 있는 루트를 제공하곤 한다.

기껏해야 다음 듀티 배정할 때 나이트 몇 번 추가하거나 까다로운 환자를 배정해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의료 분쟁에 엮였을 때 조금 늦게 나타나서 도와주거나, 또 아니면 다음 학회 배정 때 멀고 힘든 지방을 배정해주거나 하면 되니까.

고분고분한 좌자전의 모습에 신이 난 마연린은 매우 힘차게 철컥철컥 개흉기를 놀렸다. 그렇게 한바탕 바쁘게 움직인 마연린은 바로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 선생님, 아까 뭘 보신 건데요? 재현해 주시지 그래요.”

“좌 선생님 생각이 어디 확실하게 보여야 말이지.”

아직 젊은 소가복은 철부지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꾸몄다.

“어찌 됐든 평소에 못 보던 모습을 보여주셨지. 바람둥이가 꼭 잘생겨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어.”

“좌 선생님, 하실 말씀은?”

마연린은 신이 나서 계속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대단하네.”

좌자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실컷 떠들라지.

남이 뭐라든 아랑곳하지 않는 좌자전의 모습에 간호사 오뢰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발끝을 내려다봤다.

머리숱이 적은 데도 기회를 줬는데,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지도 않네? 나서서 그만하라고 해야지. 이렇게 같이 이름이 오르내리면 앞으로 남자 친구 어떻게 사귀라고. 양심도 없지.

결국 오뢰는 못 참겠다는 듯 발끝으로 좌자전을 건드렸다. 좌자전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거면 모를까, 기껏해야 동료로 보이는 아가씨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평소라면 매섭게 바라보면 상대가 바로 멈추겠지만, 오늘은 수술실에 사람도 많고, 운리 생중계까지 진행 중이라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간호사 오뢰는 슬슬 화가 치밀었다.

이 늙은 남자가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내 주변에서 모든 남자를 쫓아내고 독점하려는 거야! 너무 못 됐잖아!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곽종군이 들어왔다.

“수술 순조롭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온 곽종군이 바로 물었다.

“네.”

곽종군의 목소리를 들은 능연이 바로 대답했다.

“그래. 그냥 보러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해.”

곽종군은 매우 흡족해하며 구석으로 향했다. 능연이 판막 수술을 하는 건 본 적 없어서 조금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능연의 진지함은 몇 년에 거쳐서 충분히 증명된 일이었다. 곽종군도 걱정보다 신경 써 주려고 온 것이었다.

같은 일이라도 해도 윗선에서 관심을 보이는지 아닌지, 큰 차이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좌자전 뒤에 서 있던 오뢰도 화를 내다가 침착해졌다. 물론 겉으로는 평온해도 마음은 여전히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다시 이러면 차라리 같이 죽더라도 곽 주임 앞에서 당신 정체를 폭로할 거야…….

오뢰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뭘 폭로하지? 이 쓰레기는 속을 너무 알 수 없어. 하아, 내가 너무 착하네. 윗선 앞에서 한 남자를 완전히 망가트릴 수는 없지.

“리트렉터 (Retractors).”

능연의 명령에 수군대던 소리가 사라졌다. 간호사와 어시들이 익숙하지 않은 특수 용도의 기구인 코스그로브(Cosgrove) 리트렉터를 달라는 그의 말에 다들 조금 주춤하며 리트렉터를 가지고 왔다. 그렇게 잠시 틈이 생기자 물처럼 흘러가던 흐름이 끊어지며, 곽종군을 비롯한 모두가 바로 경계했고 수다 떨던 소리도 완전히 사라졌다.

능연은 아무런 말 없이 리트렉터 위치를 조절하고는 이어서 승모판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좌심방을 충분히 끌어 올렸다. 리트렉터를 든 마연린의 마스크 아래 숨소리가 묘하게 거칠어졌다. 긴장한 것이었다.

사실 수술실 안의 의사와 간호사 모두 긴장했다. 심장 수술이라 원래 부담이 컸다. 하지만 실력만 있으면 심장 우회술의 부담은 이겨낼 수 있다. 특히 한동안 수술하다 보면 어시들도 점점 익숙해지고 심지어 어느 정도는 여유로워진다.

하지만 판막 수술까지 더해지자 어시와 간호사 모두 조금 힘들어했다. 시작 단계는 그래도 여전히 익숙한 부분이었지만, 그 부분이 지나간 후 다들 점점 더 긴장했다.

다행히 능연의 동작은 여전히 정확했고, 지시도 명확했다. 외과 수술은 어떤 때는 잘 아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클리블랜드에서도 주치의 하나가 레지던트 하나 혹은 인턴 하나만 데리고 끝내는 수술도 많다.

고개를 들어 모두를 둘러본 능연은 아무런 말 없이 수술을 계속했다. 수술은 사실 공부와 매우 비슷해서 ‘열심히 해’하라고 크게 고함친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한 집안의 가장에게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물론 가장에게 필요로 하는 기술력이 훨씬 낮지만.

능연은 보통 직접 보여주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었다. 말로 하기 귀찮아서도 있고, 효과가 매우 좋아서인 것도 있다.

심장 수술은 수술 통째로 보여주는 것이 여러 번 연습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다시 말하면 많은 연습도 수술 한 번을 대체할 수 없다.

“초음파 준비.”

능연의 수술 진도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초음파 평가는 판막을 성형할지 치환할지 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통상적으로 판막 고리 확장으로 인한 역류라면 판막 성형으로 해도 된다. 하지만 판막이 늘어나서 변형됐다면 치환할 수밖에 없다.

곁에 있던 좌자전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성형도 저렴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됐든 치환보다는 저렴하고 후속 치료비도 덜 들었다. 이 노인 환자가 판막 치환을 해야 한다면 경제적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수술 중 초음파 평가는 점점 더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능연은 전에도 수술 중에 빈번하게 초음파를 사용했고, 지금은 심장 수술에도 매우 순조롭게 사용했다. 요즘 추세가 그랬다. 초음파로 판막 입구의 면적, 활동 정도, 판막 역류 정도, 혈류 속도, 병변 부위와 심각 정도 등을 판단할 수 있다.

좌자전은 신경이 쓰이는 듯 목을 빼고 능연을 지켜봤다.

“아는 사람이에요?”

너무 가까워서 능연의 움직임을 방해할까 봐, 순회 간호사가 다가가서 그를 살짝 잡아끌었다.

“그냥 내 환자라서요.”

“미국에 다녀온 의사는 확실히 다르네요. 인간적인 관심과 배려가 가득해지셨어요.”

좌자전이 목을 살짝 숙이기만 하자 순회 간호사는 별다른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좌자전은 계속 목을 빼고 바라봤지만, 능연이 동맥 단축(短軸), 심첨(心尖) 단면을 검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바라봤더니 온통 파랬다. 초음파 화면에 심장 수축이 이런 상태를 나타낸다는 건 혈류가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역시 승모판 개폐 부전이네.”

결과를 통해 이유를 역산한 좌자전은 보다 쉽게 확신했다. 능연은 좌자전의 판단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 인간으로 환자의 심장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도 있지만, 소모품인 만큼 초기 판단부터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초기 판단은 기구로도 꽤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데 굳이 귀중한 가상 인간의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 정 필요하면 두 가지 중에 골라야 할 때 쓰는 게 훨씬 이득이다.

곽종군은 의외라는 듯 좌자전을 지긋이 바라봤다.

“좌 선생이 심장외과에 재능이 있나?”

대장의 질문에 다들 고분고분 능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10초 후, 마연린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능연에게 눈치를 었다.

“능 선생?”

능연은 화들짝 고개를 들어 곽종군을 바라봤다.

“혼잣말인 줄 알았습니다.”

“혼…….”

곽종군은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웃음을 터트리고는 좌자전이 난처하지 않도록 말을 이었다.

“좌 선생이 심장외과에서 두각을 드러낼 희망은 없는가 보군.”

한순간 설마 하며 기대했던 좌자전도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나이에 심장외과 쪽에 시간과 정성을 다해도 몇 년 못 쓸 텐데 차라리 안정적인 걸 택하는 게 낫습니다.”

“심장 우회술만 배워서는 오래 써먹지 못해요. 차라리 정형외과가 가성비가 낫습니다.”

능연이 자기 판단을 말했다. 동시에 좌자전의 임상의학 계획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조금 낙담했던 좌자전은 능연의 말에 바로 머리를 굴렸다. 국내에서, 심장외과는 조금 그럴싸하게 들릴 뿐이고 조금 있어 보이는 것 말고는 어느 모로 봐도 정형외과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운화병원처럼 진료과 경쟁이 심한 곳에서 정형외과는 수술실도 더 좋고, 실험 경비도 더 많다. 심지어 수술과 연구 방면에서도 심장외과를 너끈히 이기고 있고.

당연히 정형외과에 관심 있던 좌자전은 바로 말을 받았다.

“능 선생이 하라는 대로 할게.”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손을 놀렸다.

좌자전 곁에서 이런 대화를 들은 오뢰는 좌자전에게 잘해주기로 했다. 그녀는 살며시 몸을 틀어서 무심한 척 부드럽게 좌자전을 쿡 건드렸다. 조금 늙고, 조금 못생겼어도 정형외과 의사라면 돈은 있겠지. 게다가 자주 방사선에 쏘이니 평균보다 빨리 죽을 것이고.

“동맥 판 두께 3mm 이상 늘입니다.”

초음파로 판단을 내린 능연은 좌자전이 듣고 싶은 말을 매우 빠르게 내뱉었다.

“심장 판막 성형술 해도 됩니다.”

“돼? 그럼 보호자한테 알리러 갈게. 님은 계속해.”

좌자전은 바로 허리를 펴며 일어났다. 수술 전 동의서는 이미 서명했고, 성형술이든 치환술이든 능연이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린 후 병원이든 의사든,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다시 동의서에 서명받길 바라는 것이 일반 플로우였다.

위급 통지서만 해도 한 번만 발행하면 되는데, 어떤 병원은 끊임없이 발행하길 선호했다. 끊임없고, 끊임없이…….

간호사 오뢰는 발을 동동 구르고는 좌자전을 따라 재빨리 수술실에서 나왔다.

“왜 따라와요?”

복도로 나온 좌자전은 매우 빠르게 걸었는데 종종걸음으로 따라온 오뢰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뒤쫓아 왔다. 오뢰는 좌자전을 힐끔 보고는 아무런 말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욕할 준비를 마친 좌자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미 수술실도 아니고, 간호사가 20m만 더 따라오면 퇴사하고 싶을 정도로 욕해줄 자신이 있었다.

“도와드릴게요.”

오뢰가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뭘요?”

좌자전이 눈살을 찌푸렸다.

“면담할 보호자, 가정환경이 복잡하다면서요. 기다리는 가족이 많은 거 같던데요.”

그 말에 좌자전이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엔 도와주지도 않다가, 수술할 때가 되면 다들 하나같이 나타나서 존재감을 드러내죠. 친척들 말입니다.”

“저 그런 거 잘 처리해요. 제가 갈게요.”

오뢰가 자신만만하게 하는 말에 좌자전이 의심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봤다.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배운 건데요?”

“남자 친구가 둘 셋 있는데, 그 정도 조율도 못 하면 마음 놓고 출근할 수 있겠어요?”

오뢰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좌자전은 오뢰를 데리고 트럭 기사 환자의 가족 앞에 섰다. 지난번에 만난 딸 말고 환자의 형제자매 쪽 가족도 모두 와 있었다. 그들은 대기실에 앉아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요즘은 심장 수술 다 우회술로 하지 메스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대체 왜 그렇게 멍청한 거야. 칼 대면 회복도 느릴뿐더러 위험하단 말이야!”

“게다가 판막까지. 병원은 다 이런 식이라니까.”

“그러니까. 몇만 위안이나 걸린 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어.”

친척들이 주절주절, 쉴 새 없이 환자의 딸에게 속삭였다. 꼭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었다.

“102번 베드 보호자분.”

좌자전이 헛기침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 저예요.”

환자 딸이 두려운 듯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수술, 현재로선 매우 순조롭습니다. 판막 상태가 심각해서 판막 성형술 준비 중입니다. 사인해 주세요.”

좌자전이 동의서를 내밀자 딸이 받아들고 읽었다.

“막 서명하면 안 돼.”

“문제 있으니까 서명하라는 거 아니야?”

“환자는요? 환자를 봐야 서명하죠.”

사람들이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보호자들은 밀고 당기며 좌자전 앞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오뢰는 걱정스러운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어찌 됐든 자길 좋아하는 남자니까, 곤란한 일은 당하지 않을수록 좋았다. 당해서도 안 되고.

그때, 좌자전은 이미 준비해 둔 다른 리스트를 내밀었다.

“또 하나. 수술 청구서입니다. 친척이나 친구한테 좀 빌려서라도 낼 수 있는 만큼 내는 게 좋아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밀고 당기던 친척들이 순간 온화해졌고 힘쓰던 방향도 다른 쪽으로 비틀렸다.

“저기……. 저기, 되는 만큼은 다 내고 왔어요.”

트럭 기사 환자의 딸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영수증을 들고 돌아왔다. 영수증을 들고 힐끔 본 좌자전은 잔액란에서 ‘23580’라는 숫자를 발견했다. 요즘 지폐의 화폐가치 절하 문제로 위안 단위는 뗀 듯했다. 병원 기준으로 보면 수술 전에 2만 위안 조금 넘게 남은 것은 충수염 수술 정도 수준이었다.

“일단 이렇게 진행합시다. 나중에 돈 생기면 나머지 내세요.”

이만큼 낸 것도 환자 친척에게 반쯤은 빌린 것이라는 걸 좌자전도 알고 있었다.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것은 고작 며칠 전이었고, 환자나 딸이 그 짧은 시간에 몇만 위안을 구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래도 수술은 할 수 있는 거죠?”

“상황이 특수하니 수술부터 할 겁니다.”

환자 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좌자전은 크게 위로는 하지 않았다. 심장 수술은 다른 수술과 달리 수술 효과가 결정적이다. 다른 유형의 수술이라면, 수술을 마친 후에 모호한 묘사와 수정된 병례로 얼버무릴 수 있지만, 실패하면 보통 인명으로 대가를 치르는 심장 수술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좌자전이 지금 잘 이야기하더라도, 수술이 실패하면 이 자리에 있는 환자 보호자 모두 바로 얼굴을 바꿀 것이다. 심지어 지금 눈앞에 있는 환자의 딸도 아무런 감사하는 마음도 남지 않을 것이고. 아버지가 죽었는데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면, 파시즘도 눈물을 흘릴 일이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난다면, 어차피 좌자전의 위로가 쓸모없어진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나면 모두 기뻐하면 된다. 좌자전은 이런 분위기에 매우 익숙했고, 또 좋아했다. 돈 문제는 진작 고민을 끝냈고 또 결정도 내린 만큼 더는 고려하지 않았다.

묵묵히 그의 뒤에 서 있던 오뢰는 조금 놀라서 영수증을 바라봤다.

“요즘은 수납 끝나지 않았는데도 수술 가능한 거예요?”

“음……. 돼.”

“나중에 환자가 돈 안 내면요.”

“재촉?”

“재촉해도 안 주면요?”

“진료과랑 의사가 부담해야죠.”

좌자전이 어깨를 으쓱하며 하는 말에 오뢰는 의문이 남은 듯 되물었다.

“그 담당의가 선생님이잖아요.”

좌자전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오뢰는 미간을 단단히 찌푸렸다.

“선생님, 이상해요.”

유심히 좌자전을 살핀 오뢰는 환자의 딸을 바라보고는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경멸하는 듯 좌자전을 흘겨봤다.

“정말 아무것도 안 가리네요. 남편 있는 여자예요. 아이가 중학생은 됐을걸요!”

뒤돌아서 오뢰를 바라본 좌자전은 드디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 간, 할 일 없어요?”

“말 돌리지 마세요…….”

여러 남친과 전쟁을 겪어온 오뢰는 수사가 시작되자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좌자전은 문득 마을 위생 병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손에 리도카인을 든 채 동료가 다 보는 앞에서 전처에게 욕을 먹던 그 시절로.

좌자전은 스트레스 반응처럼 손을 흔들고는 밖으로 향했다. 오뢰는 얼떨떨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좌 선생님이 회피형일 줄은 몰랐네. 이런 남친은 재미가 좀 없지만, 나쁘지 않아. 상대적으로 시간 낭비 덜 하잖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 보호자들은 좌자전과 오뢰의 이야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흔 넘은 대머리 의사와 평범한 어린 간호사, 거들떠볼 이유도 없었다.

오뢰도 환자 보호자와 소통할 생각이 없었고, 도망가는 좌 선생을 바라보며 ‘병원 데이(한가)’라고 메모가 적힌 톡방을 열고 상대가 알뜰살뜰 관심을 보이길 기다렸다.

두 시간 후.

마음을 가다듬은 좌자전은 자기가 산 롤렉스를 끼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4만 위안에 산 시계인데 트럭 기사 환자의 남은 병원비를 충당하기 충분할 것이다. 상대가 나머지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손목을 만지작거리면서 걸어가던 좌자전은 오뢰가 아직도 구석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참.”

좌자전은 혼자 탄식했다. 그가 사회 초년생일 때는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모른다. 마을 위생 병원에서도 젊은이들은 아침 일찍 병원에 나와서 청소하고 물 끓이고 신문 받고, 알아서 의국을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에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퇴근 시간까지 묵묵히 편지를 쓰고, 가사를 적고, 뜨개질……을 했다.

“좌 선생님, 아빠 어떻게 되셨어요?”

한바탕 울어댄 것 같은 환자의 딸이 좌자전을 보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

“지금까지는 모두 순조롭습니다.”

사실 의국에서 운리 생중계로 수술이 거의 끝나가고 또 매우 순조로움을 알고 있었지만, 능연 대신 보호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어서 그저 웃는 얼굴로 위로만 했다.

할 말이 가득한 딸은 저도 모르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아는 의사도 없지만, 아빠가 트럭 몰던 때는 사람도 많이 구했어요. 한 번은 불타는 자동차에서 사람을 구해내기도 했고요. 그래서 감사 깃발도 받았다니까요. 나중에는 재난 구조에 참여한 적도 있어요. 기름값만 받고 피해자 텐트에 컵라면도 가져다주고요…….”

상대가 그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 뿐이라는 걸 잘 아는 좌자전은 질문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입을 다문 후에야 순조로울 거라고 다시 말했다.

“아빠도 집에서 나갈 때마다 그렇게 말했었어요.”

환자의 딸은 왈칵 눈물을 흘렸다. 좌자전은 순간 뜨끔해졌다가 이내 능연의 얼굴을 떠올렸다. 묘하게 가슴이 활짝 펴졌다.

“수술은…….”

좌자전이 입을 떼려는데 앞에 있는 여닫이문이 활짝 열리고 능연 본인이 문 앞에 나타났다.

“능 선생님 나오셨네요.”

능연의 안색을 살핀 좌자전의 말투가 순간 적극적이 되었다.

“능 선생님.”

환자 딸과 다른 보호자 모두 리얼한 관심 가득한 얼굴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능연은 사람들이 묻기 전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외과의로서, 허다한 잡소리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대답이었다. 좌자전은 묘하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수술을 했다면, 수술 후 결론이 이렇게 단순하지 못할 테니까.

“그럼 됐어요.”

“아이고, 수술 성공했네.”

“잘 됐다, 잘 됐어.”

환자 보호자들이 사방에서 탄식했다. 딸은 그들이 한참 떠들고 난 후에 다시 물었다.

“그럼 심장 판막 수술도 했나요?”

“심장 판막 성형술도 잘 됐습니다.”

능연은 마찬가지로 별 수식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딸은 할 말이 가득해서 뭐부터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진정하세요. 환자가 수술실에서 나온 다음 차차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좌자전이 롤렉스를 찬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앞으로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