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
다들 바빠서 미쳐버릴 것 같은 시간에 주 선생이 느긋하게 처치실에서 걸어 나왔다. 피 묻은 장갑을 한쪽에 버리고 모자도 벗은 다음 알콜겔로 손을 닦고 고개를 들었더니 좌자전이 넋이 빠진 듯이 근처 처치실에서 나왔다.
“102번 환자, 퇴원했어요?”
주 선생이 일을 많이 안 해서 그렇지, 응급센터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은 거의 꿰고 있었다. 좌자전은 피곤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팀 의사보다 나이가 많은데 아침 대여섯 시부터 지금까지 일한 바람에 도저히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예전이라면 그의 업무의 절반이 수술 전 면담 같은 일이라 버티기 쉬웠지만, 오늘은 대부분 수술이라 머리가 쿡쿡 쑤시기까지 했다.
좌자전의 상태를 눈치챈 주 선생은 피식 웃었다.
“102번 환자, 병원비 다 안 냈죠?”
“돈이 없으니까.”
좌자전이 한숨을 내쉬었다.
“보험으로도 안 된대요?”
“운화 사람이 아닌 데다가 자비로 나가는 약도 쓰고 해서 반도 안 나왔어.”
좌자전도 할 수 있는 한 비용을 줄여주었다. 간호 비용, 약 비용처럼 뺄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뺐지만, 타지 주민이라 비용 책정이 높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수술 전에도 돈을 못 냈으니, 수술 끝난 다음에는 말할 것도 없겠네요.”
주 선생은 심리니, 철학이니 그런 문제 없이 현실 이야기를 했다. 좌자전 역시 아는 현실이었다.
“선생님이 돈 내셨어요?”
좌자전의 표정을 힐끔 본 주 선생은 손바닥으로 생각해도 좌자전의 쇄골 아래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직. 정산이 안 끝나서. 거기서 좀 끌면 두어 달 뒤에 내게 되겠지.”
좌자전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괜찮네요. 재무 쪽 애들이 알아서 해주겠죠. 얼마나 낼 것 같아요?”
“나는 만 위안 정도겠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나중에 진료과에서 얼마나 부담할지 봐야지.”
“진료과 비용도 선생님이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거기까지 말한 주 선생은 깨달은 듯 끌끌 혀를 찼다.
“착복하는 거 같아서 그래요?”
“뭐 하러 그래.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몇만 위안 생각하면 마음이 좀 아파서 그렇지. 이럴 줄 알았으면 롤렉스 하나 더 살 걸 그랬지.”
주 선생은 좌자전의 호사를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 듯 껄껄 웃었다. 좌자전은 능연과 출장 수술을 하러 다니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능 팀 의사들은 출장 수술할 시간을 내려고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병원에서 묵다시피 했는데 그가 바라는 생활이 절대로 아니었다.
다시 좌자전을 힐끔 본 주 선생은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그만큼 더 벌 생각인 거죠?”
“능 선생이 뒷문을 열어줬는데 알아서 움직여야지.”
병상과 환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느 병원이나 병상은 촉박한데, 능 팀 내부는 더 그랬다. 좌자전 같은 별거 아닌 의사는 생각 있다고 집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 환자가 있어야 하고 다음엔 병상이 필요했다. 환자보다 병상 구하는 게 더 힘들고.
좌자전이 주머니를 털어 환자의 담보를 선 이후, 능연은 좌자전에게 병상 다섯 개를 풀어주었다. 이 병상 다섯 개는 환자 다섯 명이 아니라, 환자가 퇴원하면 바로 새 환자가 들어오는 연속성 병상이었다.
좌자전의 환자는 모두 크리스 골절 환자라서 평균 사흘이면 퇴원했고, 일주일 동안 꽤 많은 환자를 수술했다. 게다가 능연이 종종 수술을 도와주거나 어시하며 지도해 주어서, 좌자전의 스킬도 확 늘어갔다. 직접적이고 명확한 수입보다 이런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가는 게 더 안심되었다.
주 선생 역시 그 점을 느끼고 웃어 보였다.
“전화위복이라는 생각도 드시죠?”
“미천한 레지던트일 뿐인걸요.”
좌자전이 속 보이게 웃어 보였다. 좌자전의 성격을 잘 아는 주 선생은 저도 모르게 그를 높이 봤다.
“OS쪽으로 미천하다고 할 정도로 기술이 는 거예요?”
“크리스 골절만 그래.”
“각종 골절을 다 하게 되면 정형외과를 아예 여시게요.”
좌자전은 멈칫하다가 곧 자조하듯 웃어 보였다.
“은퇴한 다음에 먹고 살긴 좋겠네. 안타깝게도 난 안 되겠지만.”
같은 시각, 막 수술을 마치고 수술복을 벗던 능연의 머릿속에 ‘딩’ 소리가 울렸다.
‘잠깐.’
능연은 수술 후에 수술복 벗는 이런 짜릿한 일이 방해받는 게 싫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퀘스트를 나타내려던 시스템은 순간 멈췄다.
능연이 수술 가운을 깔끔하게 벗어서 장갑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던진 후, 복도를 걸어 나와 개인 샤워실에서 수술복도 깔끔히 벗어 던지고 편안하게 샤워를 시작한 후에야 시스템이 다시 톤 다운된 ‘디잉’ 소리를 냈다.
“음.”
능연은 바디워시를 짜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은 바로 능연 앞에 퀘스트를 내보였다.
- 퀘스트: 조절
- 퀘스트 내용: 당신의 부하 좌자전이 여러 골절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복잡한 수술을 진행할 때, 간단한 수술을 배우기 더 쉽습니다. 부하에게 스킬을 전수하고 전문가급에 이르면 다음 골절 스킬을 열 수 있습니다.
- 다음 단계 퀘스트 보상: Latarjet 수술법(마스터급)
능연은 퀘스트 수락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디워시를 씻어냈다. 뒤이어 시스템에서 더 낮아진 ‘딩’ 소리가 울렸다.
- 퀘스트 완성: 조절 (1)
- 퀘스트 보상: Latarjet 수술법(마스터급)
능연은 얼굴에 비누 거품을 치우며 바로 물었다.
“좌 선생님 크리스 골절 기술이 전문가급이야?”
-예.
시스템은 여전히 간단하게 대답했다. 초 쿨하게.
“그동안 수술한 게 헛된 건 아니었네.”
능연은 꽤 만족스러웠다. 좌자전에게 대단한 수술 재능은 없지만, 일 처리는 능숙했고, 자원을 아낄 줄도 알았다. 한 마디로 좌자전은 크리스 골절 전문가급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그가 쓴 병상 수 등을 봐도 지나친 건 아니었다. 게다가 능연이 재능을 우선으로 병상을 나누지도 않는다.
정말 재능을 따지자면, 연문빈 등을 비롯해서 다들 재능이 특출나진 않았다. 그리고 능연이 재능이 출중한 젊은 의사를 뽑고 싶어도 사실 어려웠다. 요즘 젊은 사람은 선택권이 있으면 의대를 잘 선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병원 선별 기준도 재능과 두뇌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 일할 체력이 되는지, 상사의 갈굼에 버틸 정신력이 되는지를 더 중시했다.
능 팀의 지금 규모로 능연이 재능을 선발 기준으로 둔다면 뽑을 사람도 몇 없었다. 특히, 뛰어나다는 정의가 능연의 판단 기준에 따르면 매우 비표준적이기 때문에.
재빨리 샤워를 마친 능연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좌자전에게 전화했다.
“오늘부터 Latarjet 적응증 환자 신경 쓰세요. 내일부터 가르칠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이제 막 침대에 누웠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은 좌자전의 눈물이 얼굴의 홈을 타고 줄줄 흘렀다.
“좌 선생님, 왜 다시 오셨어요?”
마연린이 한 손으로 허리를 문지르고 다른 손으로 오징어를 쥐고 씹으며 물었다. 좌자전은 힐끔 마연린과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농담하듯 말했다.
“자다가 너희들 때문에 마음이 안 놓여서 다시 왔지.”
“그렇다고 돌아오셔도 소용없잖아요.”
마연린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연린 책상 위에 있는 오징어를 주워 들고 쭉 찢어 질겅질겅 씹었다.
“연린아. 이러고 있을 시간 있냐?”
“힘들어서요.”
마연린 역시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허리를 문질렀다.
“힘들면 좀 쉬어라.”
좌자전이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저기 누구냐, 비뇨기과 황 선생한테 전화해서 위만 선생 오프 물어보고 연린이랑 맞춰줘. 이틀 정도 쉬게. 이렇게 힘들어서 어쩌냐.”
마연린은 흠칫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주말에 쉬었어요…….”
“주말에 쉬었으면 더 적극적으로 해야지, 안 그래? 많이 지친 거 같은데 이틀 더 쉬어. 듀티 미뤄줄게.”
좌자전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하는 말에 마연린은 당황했다. 아무리 생산직이라고 해도, 연달아서는 아니지!
“가라.”
좌자전은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는 마연린 같은 젊은 의사는 한창 열심히 일하고 발전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능연 팀에서 마연린이 가장 나태해서 종일 꾀를 부린다. 어떤 때는 아침 6시가 되어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고, 일주일 실제 일하는 시간도 100시간 전후, 그야말로 농땡이 대표였다.
자기에게 마연린 나이의 신체와 에너지가 있고 이렇게 좋은 학습 환경이 있다면 절대로 잠시도 낭비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오징어처럼 먹는 시간 걸리는 간식을 먹을 시간에 열심히 메스를 놀릴 텐데!
“예정된 수술은 어쩌고요…….”
마연린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다.
“OS쪽은 내가 하고, 아킬레스건 같은 건 따로 방법을 찾으면 돼.”
좌자전은 매주 듀티를 쫙 꿰고 있었다. 능 팀에서 마연린이 맡은 주요 수술은 아킬레스건과 정형외과 수술이었다. 그중 좌자전도 잘하는 크리스 골절 그리고 능연이 알려주려고 하는 Latarjet 적응증이 있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마연린을 집으로 보냈냐고 물으면 좌자전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병원엔 연수의가 너무 많아서 의사가 쉰다고 환자를 돌려보내야 할 일은 절대로 없다.
대단한 수술은 할 사람이 없을지 몰라도 정형외과 수술은 전화만 하면 돈 주우러 살랑살랑 잘만 온다.
“예약된 환자 다시 한번 체크해 보고.”
좌자전은 다시 ‘거기 누구’를 불러서 지시했다. 의국의 초짜 의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좌자전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을 뒤적였다.
어깨관절 탈구에 주로 사용되는 Latarjet 방식은 최근 몇 년간 자주 수부외과와 간담췌외과를 접하는 좌자전에게는 거의 새로운 영역이었다. 사실 어떤 새로운 수술이라도 그에게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진료과의 젊은 의사였다면, 의대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면허 등 여러 가지 시험 준비로 이론 지식을 계속해서 쌓아나가고, 바로 수술에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조금만 복습하면 될 기본 이론은 갖추고 있다. 그러나 좌자전처럼 나이도 많고 기술은 없는 중년 의사는 골치 아파진다.
예전에 배웠던 이론은 기본적으로 몽땅 잊었다. 특히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못했고, 최근엔 새 이론을 따라잡지 못했으니 어떤 의미로는 신입보다 못했다.
능연 밑에서 수술을 배우며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본인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건 알고 있었다. 우선 능연은 기초 이론을 설명하는 법이 없다는 것과 능연을 창피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
부담이 매우 거대해졌는데, 다른 사람에게 티 낼 수도 없는 게 문제였다. 지금 능 팀은 일반적인 작은 진료과와 비슷한 규모가 되었다. 특히 연수의와 실습생 수는 큰 진료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병원 기준으로, 초짜 의사의 수는 진료과의 활력과…… 돈 버는 능력을 대표한다. 실습생은 배달 도시락으로 키울 수 있지만 연수의는 진짜로 돈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응급센터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부리려면 단순히 월급으로 되는 게 아니다.
치료팀의 활력과 돈 버는 문제는 능연이 모두 해결한다지만, 저차원적인 관리 문제는 모두 좌자전에게 달려 있었다. 진료과는 진료과의 관리방식이, 치료팀엔 치료팀의 관리방식이 있다. 일반 치료팀은 보통 서너 명, 많아야 열 명이라 팀장이 너끈하게 관리하는데, 능 치료팀은 완전히 달랐다.
좌자전은 본인이 어느 정도 위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에 열심히 책을 읽는 그의 얼굴이 뒤틀렸다.
“좌 선생님 이상한 거 같아.”
수술을 한번 끝내고 휴게실로 돌아온 초짜 의사들이 주방에 있는 오징어를 훔쳐 먹으며 쫑알쫑알 수다를 떨었다.
“주치의 시험 준비하시나.”
“응급센터 주치의 시험 보면서 OS쪽 책 보는 사람도 있냐?”
“OS 가려고 그러시나?”
“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간담췌 주치의 한 사람도 있잖아.”
짝짝짝. 휘적휘적 들어온 주 선생이 짹짹대는 초짜 의사들을 허수아비처럼 쫓아냈다. 그러고는 자리로 돌아와서는 그 역시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좌 선생님, 요즘에 OS쪽 관심이 큰 것 같은데요.”
“그냥 보는 거야.”
주 선생이 자기 자리를 빼앗을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동네방네 알릴 소식은 아니었다. 주 선생이나 능연에게 수술을 배우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지, 다른 사람들은 분명 탐낼 것이다. 뻔뻔한 놈들은 은근슬쩍 발 디딜 것이고.
다음 날. 10시도 되기 전에 어깨관절 손상 환자가 들어왔다. 좌자전은 능연에게 알리고는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달려갔다.
조금 추레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어깨 통증을 달고 나타났다. 그러나 얼굴은 비교적 침착했고, 보호자도 없이 혼자였다.
“38세 환자, 버스에서 내리다가 넘어져서 어깨가 틀어졌습니다. 어깨 탈구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응급 진료를 맡은 초짜 의사가 나지막이 보고하다가 좌자전을 힐끔 보고는 덧붙였다.
“말씀하신 게 있어서, 아직 OS엔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응, 능 선생님이 보실 거야.”
좌자전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자, 젊은 의사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흡족하면서도 홀가분하고, 시원스러운 표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은 듯 싱긋 웃었다.
좌자전은 추레한 중년 남자 맞은편에 앉으며 미소 지어 주었다.
“전에도 어깨가 빠진 적 있다고요?”
“예. 학교 다닐 때 농구를 자주 했거든요. 그때 어깨를 다쳤어요.”
환자는 씁 소리를 내며 물었다.
“끼워주실 수 있죠?”
“수술은 안 하셨고요?”
“뭐 하러 수술까지 해요.”
좌자전은 말없이 웃으며 조금 전에 읽었던 이론을 바로 써먹었다.
“얼마나 자주 빠집니까? 대강요.”
“1년에 한 번씩? 2년 동안 농구도 안 했는데 버스 내리다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습관성 탈구인데 일단 CT부터 찍어 볼까요?”
좌자전은 실습생에게 눈짓했다.
“한의원 가면 바로 끼워주던데.”
환자가 언짢은 듯이 말하자 좌자전은 싱긋 웃었다.
“저희 운화병원에서는 한의에서 쓰는 정골(正骨) 방식을 쓰지 않습니다.”
“왜요?”
“정골은 경험이 중요하거든요. 저희 병원에 오는 환자는 유형이 매우 복잡합니다. 탈구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젊은 의사는 그런 경험을 쌓기 어렵고, 연차 높은 의사들은 아래 병원에서 온 환자 처치하느라 바쁘거든요. 그러니까 뼈 맞추다가 실패한 환자들이요.”
좌자전은 운화병원 의사답게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요, 그럼. 그런데 저 의료 보험 카드 안 가지고 왔는데요…….”
“가족분에게 가지고 오라고 하세요. 수술해야 하면 서명도 하셔야 하거든요.”
환자는 잠시 멈칫하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와이프는 애 데리러 가야 하는데, 동료는 안 될까요?”
“당연히 안 되죠.”
좌자전은 아이스바 깨물 듯이 단호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요. 수술할 때도 가족이 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환자분도 안전하고요.”
“그럼 전화 좀 할게요.”
환자는 한 손으로 힘겹게 전화를 걸었다. 좌자전과 다른 사람들도 그러려니 했다. 응급실에 오래 있으면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병원에 오기 전까지 자기가 보호자가 필요한 병에 걸린 걸 모르는 때가 많다는 것에 익숙해진다.
통화하는 환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아파 죽겠다는데, 반차 내고 좀 오면 안 돼?”
-반차 내면 돈 깎이잖아! 그냥 넘어진 거라며? 그러게 빨리 병원 가 보라고 했지? 듣지도 않더니…….
핸드폰 너머 여자는 한참 투덜거린 후에야 어느 병원인지 물었다.
“운화병원 응급실.”
어깨 탈구 환자는 몇 마디 더 하고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전화를 끊었다.
“어서 검사하러 모셔가.”
좌자전은 바로 실습생에게 지시했다. 응급센터는 지금 돈이 넘쳐서, X-ray, CT, MRI까지 모두 갖췄고, 영상 판독할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가 수술할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좌자전은 실습생에게 휠체어를 가지고 오게 해서 검사실로 데리고 갔다.
이것도 클리블랜드에서 배운 방법이었다. 몇천 달러 월급 받는 간호사가 다친 환자를 밀고 몇 시간 걸으면 천 달러 가까이 청구서를 낼 수 있으니 매우 수지맞는 장사였다.
운화병원에서는 특수 병동에서나 이 방법을 쓰고, 비용도 너무 많이 받지는 못한다. 응급실에서 휠체어는 특별한 필요가 있을 때나 사용할 수 있고, 보통은 쓰지 못한다.
보호자와 함께 오지 않은 어깨 탈구 환자는 간호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한순간 아픈 것도 지나간 것 같고, 통증도 그리 심하지 않고, 몸도 그렇게 지치지 않고, 숨도 잘 쉬어지는 것 같았다. 가끔 꿈틀거리며 체위를 바꿀 때마다 은근히 짜릿하기도 했다.
곧 환자와 함께 CT, X-ray 리포트가 좌자전 앞으로 돌아왔다.
“상완와관절이 엉망입니다. 전에 병원 안 가셨어요?”
좌자전은 리포트를 슬쩍 보면서 전에 본 자료를 떠올리며 간단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몇 번 갔었죠. 다차 손상으로 인한 만성 질환이라고 하더라고요.”
“수술하란 말 없었습니까?”
“있었죠. 그래서 좀 알아봤었는데, 수술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낫다고 해서…….”
“이번엔 심각합니다.”
좌자전은 얼굴을 찌푸리며 능연에게 전화했다. 응급에서는 이런 단순한 어깨 수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응급 내부에서 능연을 제외하고 이런 수술 경험 있는 의사도 없었고. 전에는 어깨 손상 환자가 생기면 일단 지혈하고 소염 후 사진 찍으면서 정형외과 의사를 콜했다. 이번엔 능연을 콜했고.
능연에게 전화한 좌자전은 다시 환자를 재촉했다.
“보호자는 아직입니까? 수술은 매우 진지한 일입니다.”
“곧 올 겁니다.”
환자도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에 좌자전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의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온갖 사정 있는 가정을 겪게 되고 궁금해하지도 않게 되어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능연이 새 가운을 걸치고 나타났다. 실습생이 항상 입는 몇 사람이나 거쳤는지도 모를 구깃구깃 때 탄 가운과 달리, 능연의 옷장에는 언제나 새하얀 가운이 있다.
능연은 기분에 따라 새로운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주름 하나 없는 그런 가운으로.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런 가운 말이다.
어깨 환자도 쓰읍대며 능연을 바라봤다.
“사진 다 걸어.”
좌자전이 진작 초짜 의사를 지휘해서 사진을 다 걸어두었지만, 능연이 나타난 이상 티는 내야 했다. 능연은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알아서 사진을 판독하기 시작했다.
그의 진단학 기초는 모두 나쁘지 않지만, 영상 판독 쪽이 가장 두드러졌다. 특히 정형외과 증상은 사진을 볼 때 가장 정확하게 드러났다.
능연은 느긋하게 살폈다. 그는 이제 시간 분배에 매우 능숙해졌다. 특히 영상 판독할 때 이런저런 생각도 했다. 그가 관심만 느끼면 수술은 그의 것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이 머릿속으로 모의하며 수술 가치를 고려하면 된다.
“마침 Latarjet 스트라이크 존이네요.”
판독을 마친 능연은 바로 환자에게 물었다.
“수술해야 합니다. 우리 병원에서 하시겠어요?”
그 한마디에 환자는 여러 가지 문제를 떠올리다가 대답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능연은 매우 시원스럽게 대답하고는 덧붙였다.
“심각한 편이지만, 어찌 됐든 택일 수술할 수 있어서 하루 이틀 늦어도 괜찮을 겁니다.”
그때 좌자전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큰 병원은 병상이 모자랄 겁니다. 서둘러 연락하길 바랍니다.”
환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운화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운화시에 있는 삼갑병원은 어디든 병상이 부족했다. 오늘 운 좋게 병상이 생겼지만, 운화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도 병상이 있으리란 법이 없었다.
“그, 그럼 가족이랑 상의해 볼게요.”
환자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반차 내기가 쉽지 않아서 좀 늦나 봅니다.”
“그럼 그림 몇 개 그려서 설명하겠습니다.”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손을 내민 능연은 빠른 속도로 어깨 구조도를 그려 환자 앞에 내밀었다. 그랜드마스터 급 스케치가 복사한 그림처럼 환자 눈앞에 나타났다.
“환자분 어깨관절은 반복 탈골 때문에 골 손상이 일어났습니다. 이쪽이 가장 심각하고요. 결손 너비가 15% 이하면 굳이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30% 넘으면, 즉, 지금 환자분 상태면 수술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간단한 수술이고요.”
능연은 5분 동안 그림 세 장을 그렸다. 모두 간단한 스케치지만 단순 명확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환자는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능연의 그림을 바라봤다. 머릿속도 복잡해지는 듯했다.
“여보!”
점점 가까워지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간호사가 못 가게 막아서자 전화를 했다.
“여기야.”
환자는 다급하게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의사들을 향해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제 와이프요. 조금 사납습니다.”
“아내 있는 게 어딥니까.”
좌자전이 하는 말에 의사들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는 씁쓸하게 웃고는 성큼성큼 다가온 아내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어깨가 많이 아파. 꼭 수술해야 한대고.”
“상사한테 전화는 했어?”
그림을 힐끔 본 아내는 바로 이어서 물었다.
“출근하다가 다친 거잖아. 그럼 산재 아니야?”
환자는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가 뭐야. 확실히 해야지. 병원이 자선 단체인 줄 알아? 나중에 청구서가 네 똥보다 길게 나오면 어쩔 건데?”
아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팔을 휘두르다가 자선 단체가 아닌 사람들이 자길 바라보고 있는 걸 깨닫고 손을 흔들어대며 말했다.
“선생님들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좌자전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통 전문이지만, 이런 때 목소리 큰 동물은 매우 위험해서 굳이 나서서 욕먹을 필요 없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었다.
“전화는 했어?”
“그럴 겨를이 없었어.”
“넘어져서 다쳤다며? 넘어지면서 다친 사람이 전화할 시간이 없었다고?”
다른 환자와 의사 모두 멈칫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이의 시선에 어느 정도 판단력이 영향받은 어깨 탈구 환자가 이를 악물었다.
“조미풍! 그만 좀 해!”
아내 조미풍은 잠시 멈칫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자를 노려봤다. 그 자리에 있는 환자와 의사, 간호사는 감탄한 표정으로 어깨 탈구 환자를 바라봤고.
마연린은 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그래, 이래야지. 남자는 거절을 잘해야 해!”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조미풍도 한참 말이 없었다. 아내의 시선에 어깨 탈구 환자는 점점 당황해서 십여 초 만에 땀을 뚝뚝 흘렸다.
“나 아픈 사람이야.”
“사는 게 너무 편하지!”
조미풍이 꽥 고함쳤다.
“전화잖아! 전화 하나 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내가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당신 병원비 내라는 거야? 당신이 그렇게 대단해?”
“전화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
“우리 상황이 어떤지 몰라? 한 달에 고작 몇천 위안 벌어서 생활이 가능해? 분윳값 되냐고! 아니면 보육원에 보낼 돈이 되냐고! 돈을 못 벌면 공립 보육원에 애 보낼 능력이라도 되든가! 상사한테 이야기나 해 보라는데 대체 뭘 미적거리는 거야!”
“우리 사장도 개인 사업하는데, 공립 보육원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럼 사장 뒀다 뭐 하려고!”
“돈 주잖아!”
남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조미풍은 멍해졌다가 한참 만에 콧방귀를 뀌었다.
“꼴랑 얼마나 된다고.”
“적은 건 아니야. 지금 꼬박꼬박 몇천 위안 주는 회사가 얼마나…….”
“남들은 한 달에 만 위안도 버는데, 고작 몇천으로 감지덕지하는 거야?”
조미풍은 이 자리에서 큰 싸움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좌자전은 뒤에서 듣다가 귀를 긁적였다. 웃기기도 하고 화도 나서, 양손을 얼굴 아래 대고 눈을 감은 다음 고개를 기울였다. 맞은편에 선 사람들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환자는 바로 알아듣고 쓰읍쓰읍 숨을 거칠게 내뱉다가 기절하는 척 고개를 꺾었다.
조미풍은 순간 멍해졌다가 조금 긴장한 듯 고함쳤다.
“여보, 여보…….”
“저희가 할게요.”
좌자전은 바로 커튼을 치고 조미풍을 쫓아내고는 양측 모두 진정된 다음에야 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다. 기절하는 연기에 한 번 성공한 남자는 자신감이 붙어서 침착하게 아내를 바라봤다.
안 되면 또 기절하는 척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조미풍도 뾰족한 눈을 거뒀다. 무능해서 돈도 못 벌고 승진도 못 하면서 농구 하다가 몸을 다치는 남편이라도 이대로 속 터져서 죽길 바라지는 않았다.
“환자 어깨가 이 지경까지 와서 수술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문제 없으면 그만 서명하시죠. 수술 준비도 시간 걸리니까요.”
수술 전 면담에 유능한 좌자전은 매점에서 생수 파는 것처럼 평온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이 정도면 회사에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조미풍은 여전히 거기에 집착했다.
“산재는 처리 방식이 있습니다. 운화시 법에 따르면 산재 발생 24시간 안에 고용처에서 해당 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 환자 수술을 미룰 필요는 없어요. 잠시만요, 제가 상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상대가 모른 척하면요. 작은 회사 가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작은 회사 가더니!”
홍보 책자를 한참 바라보던 조미풍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내고 올 테니 수술해 주세요.”
환자는 살며시 숨을 내쉬다가 다시 생긴 어깨 통증에 입을 쭉 늘였다.
“됐어. 수술받아.”
슥슥 사인을 마친 조미풍은 수납하러 내려갔고, 환자는 슬며시 웃다가 다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수술실.
어깨를 풀어주던 좌자전은 잘 누워 있는 환자를 보고는 문득 마음이 놓였다.
“역시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가 가장 좋은 환자야.”
좌자전은 절로 감탄하며 소가복을 바라봤다.
“수술하기 쉽게 잘 마취해줘.”
“넵.”
소가복은 좌자전이 보는 앞에서 생리 식염수를 더 주사했다. 외과의가 하라는 대로 근육 이완제를 썼다가는 환자는 살아서 수술대에서 내려가지 못한다.
능연 역시 일찍 수술실에 와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좌자전을 바라봤다.
“Latarjet 수술의 핵심은 골성 재건입니다. 날개뼈 모양을 다시 회복시키는 거죠. 어찌 됐든, 골 손상이 많이 됐을 때 이 수술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깨관절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게 우리 목표예요.”
좌자전은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 능연이 이런 식으로 설명해 주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능연은 차근차근 상세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저 간단히 설명한 다음 바로 정식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좌자전은 수술이 끝난 뒤 복습할 수 있길 바라면서 속으로 열심히 능연의 말을 외웠다. 능연이야 더더욱 긴 시간 침묵에 익숙한 사람이었고.
환자의 겨드랑이까지 절개구를 낸 능연은 흉근을 노출할 때가 되어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 스텝은요?”
좌자전은 눈을 번쩍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사람들 앞에서 질문받는 건 어느 의사라도 긴장할 일이었다. 연차 높은 의사일수록 이런 일이 드물었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매우 창피하니까. 체면을 중시하는 의사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이고.
좌자전도 당연히 체면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기초 이론이 완벽한지 아닌지 시험하는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좌자전은 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오훼인대와 결합 근건을 꺼낼 순서입니다.”
“오훼인대는 어떻게 처리하고요?”
좌자전은 기회를 주려는 건가 싶어 다시 바짝 긴장했다. 설마 나더러 처리하라고 하려고? 좌자전은 다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이론을 되짚어 보며 느릿느릿 대답했다.
“외측엔 연조직을 남기고 흉근 힘줄, 오훼인대를 절단한 다음 펜듈럼 톱으로…….”
“신경은 어디 있습니까?”
능연이 말을 자르자, 좌자전은 침을 꿀꺽 삼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중에 해부용 시체 구해서 연습하세요.”
능연은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좌자전은 실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부용 시체 없지.”
“운화대 무 원장님한테 부탁하세요.”
능연이 아는 루트 중 가장 순조롭게 시체를 구해줄 사람이었다.
“무 원장님이 능 선생한테 빚지긴 했어도 이렇게 쓰긴 아깝지.”
좌자전이 주저하며 하는 말에 능연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선대 무 원장님 수술한 거로 빚진 거라고 말씀하시는 거면 걱정할 것 없어요. 심장 우회술 적응증은…….”
“어! 알겠어!”
좌자전은 다급하게 능연의 다음 말을 막았다.
“수술 끝나면 바로 연락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