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관절 손상이 심합니다.”
MRI 필름을 들고 직접 판독하며 능연이 하는 말에 무 원장은 순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자조하듯 웃었다.
“전엔 MRI 찍고 적어도 30분은 기다렸는데, 자네는 빠르기도 하지.”
“영상의학과에서 끼어들지 않으니 빠를 수밖에요.”
좌자전은 능연이 무심코 맹비난할까 봐 먼저 나서서 말했다.
“영상의학과랑 사이 안 좋은가?”
무 원장이 좌자전을 힐끔 보며 물었다.
“MRI는 돈이 되거든요.”
좌자전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응급센터엔 지금 응급센터 소유 MRI, 이동식 CT, 소형 X-ray를 모두 구비해서 영상의학과의 업무를 거의 커버할 정도였다. 쓰는 사람이 많지 않고, 운화병원 자체에 사진 찍을 일이 많아서 진짜로 충돌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원래 영상의학과로 갈 부분을 따지면 확실히 큰 양이긴 했다.
병원 내부 시스템을 잘 아는 무 원장은 웃으며 말했다.
“능연이 MRI 판독할 줄 알아서 다행이군.”
“게다가 능 선생 MRI 판독 기술은 창서성에서 손꼽히죠.”
좌자전은 아낌없이 아부하며 말을 이었다.
“영상 판독 실력이 떨어지면, 능 선생이 혼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들 언짢아도 참을 수밖에 없죠.”
무 원장은 얼떨떨하게 그 장면을 상상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영상의학과 의사를 붙들고 MRI 제대로 판독하지 못한다고 욕하다니, 수많은 의사가 꿈꾸는 일이리라.
“영상의학과에서 꽤 쓰릴 일이군.”
무 원장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상급 병원일수록 기술 제압의 위력이 더 크다. 하급 병원일수록, 병세 혹은 치료 방안을 잘 알지 못하고 그레이존이 너무 넓어서 의사가 무슨 짓을 해도 틀리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삼갑병원, 특히 운화병원 같은 고급 삼갑병원에서는 명확한 진료 방안 혹은 판단 기준이 일단 나오면, 의사가 말로 문제를 회피하기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MRI 진단도 하급 병원일수록 의사 자체가 판독할 줄 모르니 영상의학과 의사와 단호하게 대립할 수 없다.
그러나 운화병원 같은 병원에서, 능연 수준으로 판독하고 문제도 읽어내면 언제든지 영상의학과 의사를 불러다가 다시 수업을 할 수도 있다. 공개적인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면, 의사가 인생에 회의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능연은 그런 즐거움에 관심이 없었고, 손에 쥔 필름을 흔들면서 물었다.
“수술하시겠습니까?”
“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수술이든 보존 치료든 처음처럼 회복하긴 어렵습니다.”
주저하며 묻는 무 원장에게 능연은 심사숙고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술로 지금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순 있습니다. 무릎에 물 차는 현상이나 통증 문제요. 하지만 리스크도 있습니다.”
“능 선생, 수술 시간은 있지?”
좌자전은 틈을 보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 원장이 여기까지 온 이상, 수술 준비는 이미 마친 셈이다. 물론 능연이 수술할 시간과 여력이 있는지가 가장 문제였다.
능연은 오히려 좌자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시간 있나요?”
“다음 수술까지 한 시간 있어.”
좌자전은 당연히 진작 생각해 두었고, 능연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 원장을 바라봤다.
“그럼 그냥 지금 수술할까요?”
“음. 이렇게 갑작스럽게……. 흠, 그러지.”
무 원장도 잠시 생각하다가 바로 결정 내렸다. 무릎에 문제가 생긴 지 한참 되어서 본인도 어떻게 처리할지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전문 기술을 가진 의사라도, 본인 혹은 가족에게 병이 생기면 일반인보다 덜 망설이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능연 같은 울트라 프로급 의사는 의사들에게 무한한 믿음을 가져다준다.
능연이 자주 하는 슬관절경 수술과 비교하면 무 원장 증상은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특히 운동선수 수술을 자주 하고, 수술 후 경과도 매우 훌륭하단 걸 떠올린 무 원장은 바로 마음을 놓았다.
“곧 댁에서 오실 겁니다. 일단 수술 전 준비부터 하시죠.”
좌자전은 무 원장을 끌고 수액실로 향했다.
“뭐 하러 연락했나. 수술 끝나고 알리면 되는데. 다들 일이 한가득한 사람들인데.”
“벌써 오고 있을 겁니다.”
무 원장이 온몸이 굳어서 얼굴을 찌푸리며 하는 말을 좌자전은 진심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실실 웃었다. 특수 병동 환자는 다 이랬다. 게다가 배려심 넘치고, 친척, 친구, 제자, 동료, 선후배를 오지 말라고 막는 사람일수록 문병객이 넘쳤다.
무원장 곁에서 내내 보좌하던 좌자전은 이내 그를 능연의 수술대 위에 올렸다. 종일 심장과 간 수술을 하던 능연 역시 작은 당일 수술을 기꺼이 즐겼다. 심장, 간 같은 부위의 수술이 정성 들여 준비한 만찬이라면, 대충 한 시간 빼서 한 건, 심지어 두 건도 할 수 있는 당일 수술은 디저트 같았다.
만찬도 매우 좋지만, 예약 준비, 복잡한 과정, 먹을 때도 사소한 디테일 등이 있는 데다가 만찬은 서프라이즈보단 기대감이 더 크다. 그러나 당일 수술은 달랐다. 손을 치켜들고 수술실로 들어간 외과의는 어떤 수술인지 스윽 보고는 메스만 대면 그만이었다. 맛집 거리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슬관절경 역시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해진 반월판을 보게 될 가능성도, 빨래판으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닳은 뼈를 보게 될 가능성도 있다. 취두부처럼 어떤 건 냄새도 나고 맛도 있고, 어떤 건 맛은 있는데 냄새가 구리고, 어떤 건 맛도 없고 냄새만 구리고…….
“마취해요.”
능연은 손을 치켜든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수월하고 기대하는 얼굴로 무 원장의 무릎을 바라봤다. 서둘러 달려온 소가복은 파이프를 짜면서 투덜거렸다.
“능 선생, 이거 랜덤 박스 여는 기분이야.”
“뭔 박스?”
무 원장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소가복이 서둘러 설명했다.
“랜덤 박스요. 신선한 판촉 방식입니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박스죠.”
소가복의 설명을 자르고 들어온 좌자전이 무 원장을 향해 싱긋 웃었다.
“요즘 젊은 애들 놀잇거리입니다. 수술이랑 상관없습니다.”
“음, 어떤지 좀 볼까?”
파이프를 꼽자마자 무 원장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몸으로 향했다.
“원장님이 보실 수 있게 모니터 돌려드려.”
능연은 자리를 조금 비켜주고는 계속 손을 놀렸다. 무 원장은 고개를 들고 수술을 지켜봤다. 자주 수술 동영상을 보지만, 자기 수술을 현장에서 참관하는 느낌은 매우 특별했다. 왼손으로 치골근을 마사지할 때 조금 뻐근하고 시원하면서도 항상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수술식 구석구석 흩어져 있던 초짜 의사들도 모두 몰려들어 모니터를 주시했다.
“요즘 애들은 참 행복하군.”
무 원장은 크게 감탄했다.
“우리 땐 훅 잡는 것도 3, 4년 걸렸는데. 고수가 조작하는 걸 이렇게 모니터로 직접 볼 기회가 어디 있어.”
개복할 때 훅맨은 복강 안의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초짜 의사들은 1, 2년간 훅만 잡으면서 정말로 단순히 훅 잡는 데 열중하며 수술실 분위기를 느낄 뿐이지, 진정으로 실력을 키우는 건 나중 일이다.
수술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건 퍼스트 어시가 유일했고, 어떤 수술에서는 퍼스트도 집도의의 동작을 다 보진 못한다. 그러나 복강경 시대가 열린 후, 의사들 교육도 쉬워졌다. 복강경 기술이 수술 자체를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의사 교육 시스템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수술에 참여하지 않아도 집도의의 움직임을 복강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어떻게 병변 조직을 처리하는지, 해부 구조 인식은 어떤지, 돌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외과 의사 교육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무 원장도 자신의 무릎 관절 조직이 혼란스럽던 모양에서 가지런해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앞으로 학생들이 자기 병 하나 기증해서 교수한테 수술받으면 되겠군. 그렇게 몇 년 하면 학생들 실습도 문제가 아니겠어.”
무 원장이 반 농담으로 웃으며 감탄하는 말에 능연의 눈이 환해졌다.
“그래도 됩니까?”
“무 원장님?”
좌자전이 작은 소리로 몇 번 부르자, 무 원장이 화들짝 일어났다.
“음, 내가 잠들었나. 수술은 끝났고?”
“성공했습니다.”
무 원장이 눈을 뜨며 묻는 말에 저쪽에서 능연이 대답했다.
“수술 모니터 보시다가 잠드셨어요.”
“환자가 자기 수술 모니터 보는 건 역시 좀 잔혹하군. 놀라서 기절한 게 내가 처음은 아니겠지?”
무 원장은 마음이 가벼워져서 농담을 했다.
“일반 환자한텐 모니터 보여주지도 않죠.”
무 원장이 오해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좌자전이 웃으며 설명했다. 무 원장도 하하 웃었다. 이미 수술 가운을 벗은 능연은 장갑을 벗으면서 무 원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수술 모니터 보다가 잠든 의사는 원장님이 처음입니다.”
수술실 사람들은 모두 멈칫하다가 능연 씨가 농담하는 게 아님을 깨닫고 더 재미있어했다. 무 원장 역시 더 즐거워했다.
“능 선생 수술이라. 그렇지, 이 거리에서 자네 수술을 볼 수 있는 건 재미있네만, 나는 나이도 많고 수술받는 사람이다 보니…….”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웃었다. 좌자전은 무릎의 붕대를 보여주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능 선생이 나중에 영상 보내드리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서비스도 하나?”
“능 선생이 특별히 지시한 겁니다. 오늘 수술이 거의 완벽했거든요.”
좌자전이 손을 펼치며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제대로 감상해야겠군. 자기 수술 보면 느낌이 참 다르겠지. 능 선생 수술이니 당연히 끝내줄 거야. 푹 쉰 다음 꼭 진지하게 보겠네.”
신분이 특수한 무 원장도 반 농담하며 맞춰 주었다. 능연이 말하는 완벽한 수술이 정말로 완벽했는지 몰라도, 의사가 수술 영상을 보여준다는 건 매우 성공한 수술이라는 것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내가 교육용 헌신에 한 발짝 앞장섰군.”
“물론입니다. 아, 연문빈 왔냐? 원장님 휠체어로 모셔드려라.”
좌자전은 웃으며 지시를 내렸다. 무 원장 역시 따라 웃다가, 좌자전의 말의 의미를 깨달았을 땐 이미 연문빈에게 공주님 안기로 안겨 있었다.
“조심해.”
좌자전은 짐짓 지휘하는 척하며 연문빈이 무 원장을 안아서 휠체어에 올리는 걸 지켜봤다. 연문빈은 매우 노련하게 움직였다. 몇십 년 살아오면서, 무 원장은 온갖 대우에 단련되어왔다. 어색한 순간도 경험했었고. 하지만 이번 공주님 안기엔 방어벽이 허물어졌다.
“병실로 모시겠습니다.”
무 원장을 내려놓은 연문빈은 휠체어를 밀고 가다가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무 원장의 수술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운화 의과 대학병원 무 원장을 수술대에서 안고 내려온 이 일은 운화대 졸업생인 그가 한동안 허풍 떨어도 될 일이었다.
“수술 계속하죠.”
무 원장을 눈으로 배웅한 능연은 다시 돌아가 손을 씻었다.
“오늘 예정된 수술은 두 건인데, 단숨에 할래? 아니면…….”
“환자 더 있나요?”
“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환자는 많으니까…….”
대충 대답하던 좌자전은 능연의 시선을 느끼고 바로 정신 차렸다.
“아니, 능 선생이 어떤 환자를 원하느냐에 달렸지. 필요한 게 있으면 최대한 준비할게. 그래도 심장 우회술 환자는 시간을 좀 줘야…….”
“선생님은요? 수술 더 할 수 있겠어요?”
능연은 시스템 창고 안의 스태미너 포션을 힐끔 보고는 좌자전에게 먼저 확인했다. 좌자전은 멍해졌다가 곧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능연이 그냥 물은 것은 아닐 테고, 분명 일을 던져주려는 태도였다. 능연이 직접 일을 던져주려고 한다는 건, 능연이 일대일로 가르쳐 주려고 한다는 기회라는 뜻이었다.
좌자전은 점점 단호해진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20시간은 더 버틸 수 있어.”
“그럼 Latarjet 적응증 수술 여덟 건 준비하세요. 있을까요?”
능연은 10시간 남짓으로 계산해서 말한 것이었다. 수술엔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고, 본인이 직접 나선대도 혈압 문제, 과다출혈로 심장 정지가 오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었다. 훌륭한 외과의란 그럴 때 처리 능력이 어떤지에 달렸고, 좌자전에게 기술을 가르치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게 좋았다.
능연의 생각을 읽은 좌자전은 감동해서 꼬리를 흔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수술은 있어. 요즘 계속 어깨 부상 환자 찾고 있었거든. 간호사 불러서 바로 연락해 보라고 할게.”
좌자전은 다급하면서도 확실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다른 사람 불러서 시키고 선생님은 저랑 수술 준비해요.”
“아, 아……. 응.”
능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좌자전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해부 연습하라고 해서 이제 막 무 원장님 찾아간 거라 아직 연습 못 했는데.”
“해부학 서적은 보셨죠?”
“봤지, 봤지.”
“그럼 보면서 연습해요.”
능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좌자전이 해부 한 번 하고 정통할 실력도 아니었다. 그나마 정형외과 기술이 간단해서지, 심장 방면 수술이었다면 좌자전이 8-0 실로 커튼을 짰대도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니까.
좌자전은 내심 감동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던가…….
능연은 손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말없이 수술실로 들어가서 환자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수술 자체보다 좌자전을 가르치는 게 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일도 아니고, 오히려 손이 근질근질했다.
일반 수술은 일반적인 식사처럼, 맛있을 때는 더 맛있고, 배부를 때는 그냥저냥이다. 하지만 도전성이 있는 수술은 유난히 흥분된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맛볼 때, 지뢰를 밟을 가능성도 있지만 여전히 기대하는 것처럼.
사실 능연은 사람을 가르친 경험이 많다. 특히 고등학교 이전에, 사교활동을 싫어했지만 잘생긴 얼굴 덕에 곁에 사람이 매우 많았고,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이 성공 확률이 높았다.
어리고 무지할 때는 능연에게 질문을 들고 오는 여학생일수록 능연과 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좋은 문제일수록 능연도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좌자전에게 Latarjet 수술을 가르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재미있는 문제풀이였다.
“난 잠깐 잘 게. 환자 들어오면 불러.”
좌자전은 비틀비틀 수술 가운을 벗고 수술실 벽에 대고 그렇게 말하고는 쓰러졌다. 연달은 수술 세 건으로 한계가 온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다섯 건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무너졌다. 환자보다 먼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게 가장 의사를 어렵게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낡은 허리와 머리로 아직 더 버틸 수 있어도,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바닥에 누웠다. 그는 예상대로 곧바로 잠들었다.
연문빈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여 공주님 안기로 좌자전을 품에 안았다. 팀에서 가장 강한 남자인 연문빈은 자기에게 그럴 의무가 있다고 여겼다. 특히 무 원장을 안아 본 후로, 연문빈의 수집벽이 묘하게 쪼오끔 는 것 같았다.
“저기, 연 선생님. 좌 선생님을 어디로 주워…… 데리고 갈 생각이에요?”
순회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듯 연문빈의 근육을 바라보며 물었다. 좌자전이 늙고, 못 생기고, 피부가 거칠고, 골격도 크고, 비율이 엉망이지만, 이대로 업혀 가는 걸 보니 조금 위험해 보였다.
알아들은 연문빈은 바로 얼굴을 흐렸다.
“어디긴 어디예요. 당직실 아니면 수술실이지. 바닥에서 자게 둘 순 없잖아요. 게다가 줍는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좌 선생님을 어쩔 생각인지 모르니까요.”
순회 간호사는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뭘 어쩌는데요.”
연문빈은 궁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세계 종말이 와서 두 사람만 남아도 수컷은 싫거든요!”
“지금은 세계 종말은 아니지만, 선생님은 애인 찾고 있잖아요.”
연문빈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스쿼트 한 세트 할 시간 동안 고민했지만 반박할 말을 찾았을 때 간호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실컷 자요.”
연문빈은 씩씩대며 좌자전을 휴게실에 던지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한 시간 후, 좌자전은 평범한 얼굴이라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가 깨워서 일어났다.
“일하러 가세요.”
“나 얼마나 잤냐?”
레지던트가 입을 쭉 벌리고 웃는 모습에 좌자전은 띵한 머리를 잠시 견디며 머리를 쓰다듬다가 물었다.
“제 손에 들어온 게 한 40분?”
“능 선생 수술 다 해 가?”
좌자전은 화들짝 일어났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능연이 연달아 수술하는 날엔 어시와 환자만 바뀔 뿐 수술은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능연은 수술 중 어시의 상태를 매우 잘 알아서, 연달아 세 건 수술한 좌자전이 지쳤다는 걸 알고 바로 어시를 바꿨을 것이다.
능연이 얼마나 체력이 왕성한지는 몰라도, 능연의 수술은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요즘은 연수의도 많아져서 기회가 알아서 오지 않는다.
“간식 먹고 있어요. 이제 막 먹기 시작했고요.”
레지던트가 다급하게 쫓아오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멈칫했다.
“야식?”
“응. 선생님 좀 기다리자고요. 이야, 이런 대우라니. 진짜……. 쯧쯧.”
레지던트가 부러운 듯이 하는 말에 좌자전은 조금 우쭐해졌다가 곧 감동했다. 능연이 바른생활맨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수술을 연달아 하는 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좌자전은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었다. 야식 같은 건 금시초문이었다.
레지던트뿐만 아니라 본인도 다 부러워할 만한 대우였다.
“능 선생……. 능 선생이 말수가 없어서 그렇지…….”
이런 감동이 몇 번째인지. 좌자전은 순간 행복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열심히 휴게실로 달려가보니, 능연은 리모델링한 작은 방 안에서 문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 능연 앞에 작은 화로가 놓여 있고, 하얀 가운을 입은 쉐프가 열심히 조리하는 모습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능 선생.”
좌자전은 흘리지도 않은 땀을 열심히 닦으며 능연 맞은편에 앉았다.
“드시고 싶은 거 알아서 드세요.”
능연은 가늘고 긴 젓가락으로 막 구워진 고기를 들어 올려 천천히 씹었다. 전칠이 보낸 쉐프였고, 쉐프가 골라온 식자재도 있고 응급센터 혹은 제약회사의 것도 있었다. 수량도 충분했고, 능연도 나눠 먹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능연에게 나눔이란 살아온 내내 겪은 경험이었다. 학교에서든, 마트에서든 혹은 운동장에서든, 능연은 언제나 누군가의 선의의 나눔을 받았다. 그런 경험에 능연도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것을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스킬이 쌓이고, 체력도 나날이 늘어가면서, 능연의 나눔은 더 후해졌다. 더 많은 환자를 고치고, 더 많은 의사를 가르치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능연은 야식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배고팠던 좌자전은 젓가락을 들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능연이 주는 기회와 비교하면 고기 같은 건 정말로 사양할 거리도 아니었다.
쉐프는 잘 숙성된 고기를 꺼내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좌자전과 능연 앞에서 구웠다.
“아까 수술, 어땠어요?”
능연은 고기를 집어 올리면서 선생님처럼 물었다. 마블링 가득한 고기에 침을 삼키던 초짜 의사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질 쳤다.
좌자전 역시 멈칫하다가 두려움이 가신 얼굴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외과 의사가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이론도 줄줄 외우지 못해서야 수술에서 어떻게 실천한단 말인가. 반짝 지식으로는 한순간을 넘기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좌자전은 저녁에 했던 수술과 그 전의 수술 과정을 떠올리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환자들은 보통 어깨관절이 빠져도 오래 버티니까 날개뼈 아래 힘줄, 상완골두 주변, 오훼인대 주변에 반흔과 육아(새살)종이 대량 발생하지. 그래서 오훼인대를 꺼낼 때, 액와신경, 근피신경 등의 해부적 위치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야 해.”
능연은 고기를 씹으며 좌자전의 말을 들었다. 다년간 가르친 경험 중 하나였다. 배우는 사람이 선생에게 설명하게 할수록 무작정 수업을 듣게 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 좌자전 역시 갈수록 순조롭게 설명했다.
요즘 이론 서적을 꽤 읽었고, 능연이 직접 하는 수술을 여러 건 같이해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경험을 쌓았다. 사실 평범한 삼갑병원 주치의가 새로운 수술을 하려면, 보통 영상을 보고 학습한다. 학습 시간이 좌자전이 실제로 조작한 시간보다 많으리란 법도 없었다. 그들의 상급 의사는 기껏해야 처음 수술할 때 몇 번 같이 해줄 뿐, 능연처럼 이렇게 일대일로 가르치는 사람은 드물고 드물었다.
능연은 들으면서 수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든 젓가락 역시 마찬가지로 정확하고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야들야들하게 숙성된 브라질 제프 꽃등심을 낼름낼름 입에 넣었다. 만족감이 쉴 새 없이 상승했다.
모든 이가 흡족한 밤이었다.
“다음 수술 준비하시죠.”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물을 마시는 동시에 포션도 마신 능연은 순간 에너지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질문에 대답하느라 입이 다 마른 좌자전도 그 틈에 물을 마셨다.
“다음 환자한테 연락할게.”
“네.”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자 좌자전이 그를 불렀다.
“저기……. 능 선생.”
할 말 있는 것 같은 그의 말투에 능연은 멈춰 서서 그를 바라봤다. 좌자전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다음 수술은 준비됐는데, 그다음 환자 상황이 조금 복잡해.”
“네?”
“하급 병원에서 전원한 어깨 환자인데, Latarjet 적응증인지 아닌지 불확실해. 또 OS에서 우리가 고르고 남은 환자는 안 받겠다네.”
좌자전은 켕기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뒷부분이 확실히 복잡한 문제였다. 지금은 병상이 과하게 부족한 상태라 진료과에서 환자를 거절할 이유는 넘쳐났다. 응급센터에서 환자를 고른다는 건 환자를 받겠다는 뜻인데, 처리할 수 없는 환자를 받았다가 나중에 다른 과로 보내지도 못하게 되면 골치 아파진다.
물론 예전이라면 응급센터에서 환자를 보내도 정형외과에서 거의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건 양측의 관계가 좋을 때나 그렇지, 관계가 틀어지면 상황이 묘하게 된다.
능연은 이런 문제엔 관심이 별로 없어도 병원의 기본적인 플로우는 알고 있어서, 빠르게 그 뜻을 이해했다.
“OS에서 그래요?”
“호 주임님 생각이겠지. 원래 어깨 쪽 전문이잖아.”
좌자전은 능연이 오해하지 않도록 아예 대놓고 설명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무릎 관절경 수술과 달리, 어깨관절 수술은 훨씬 더 복잡했다. 운화병원으로서도 어깨관절 수술이 훨씬 더 중요했고. 얼마나 중요한지는 결국 정형외과 의사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운병에 무릎 관절경 수술을 하는 의사는 매우 많고, 수술 자체도 매우 개방적이어서 거의 모든 주임 혹은 부주임이 가볍게 하는 수술이었다. 그쪽에 치중하는 의사가 있긴 해도, 무릎 관절경 수술만 하는 의사도 없고.
그와 비교하면, 어깨관절 수술 환자는 더 적고, 더 복잡해서 오히려 집적도가 증가했다. 운화병원 정형외과에서도 몇 사람만 하는 수술이었다. 그중에 좌자전이 말한 호 주임이 가장 많이 하는 의사고.
능연도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한테 Latarjet 수술 알려드리려고 하는 건데, 호 주임님께 설명하셨나요?”
“당연하지.”
좌자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그런데 호 주임님 태도가 단호해. 곽 주임님에게 부탁해야 할까?”
응급센터 일이니 곽 주임을 불러도 되지만, 좌자전은 그러려면 능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능연은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호 주임님 생각일 뿐이라면 일단 곽 주임님까지 나서지 않아도 돼요.”
능연은 이어서 특별히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곽 주임님은 심장 수술하셨잖아요. 싸울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아요.”
“곽 주임님은 불벼락 뱉고 나면 더 기분 좋아하실걸?”
좌자전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능연도 빙긋 웃고는 다시 고개 저었다.
“그럼 호 주임님한테 뭐라고 대답할까? 그냥 먼저 호 주임님한테 환자들 보낼까?”
좌자전은 조금 긴장하며 물었다. 호 주임이 어깨 환자를 뺏길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좌자전도 걱정됐다. 대단한 싸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싸우려면 엄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호 주임님이 우리가 고르고 남은 어깨 손상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능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처리하면 되죠.”
“우리가?”
좌자전은 얼떨떨해하다가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을 입에 올렸다.
“님, 그 말씀은, 우리가 출장 수술을 요청하자는 거야?”
주변에 있던 의사들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들 각자 다른 표정이 되었다. 일반 의사의 사고 회로로 보기에, 이런 식으로 호 주임과 정형외과에게 대응하는 건 거의 거리낌 없는 공격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의사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능연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의외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좌자전 역시 잠시 놀라다가 곧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외부 병원에서 출장 수술 의사를 운화병원으로 불러온다면 정형외과 주임이 매우 언짢아할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곽종군이 직접 나선다고 호 주임이 좋아할까?
그렇게 따지면, 운화병원 응급센터는 예전부터 운화병원의 똥젓개였다. 전에는 곽 주임이 직접 휘젓고 다녔고, 지금 능연은 밖에서 젓개를 구할 뿐이었다. 어느 방식이든 똥은 거품 물고 화를 낼 것이고.
그러나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네요. 출장 수술 의뢰해도 되겠네요.”
좌자전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뜻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럼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처리해?”
“제가 배우면 되죠.”
“바, 바로 배워서 쓴다고?”
능연의 자연스러운 대답에 좌자전은 조금 전에 자기가 생각한 대응책 중에 절대로 ‘바로 배워서 써먹기’라는 선택지는 없다고 치질을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어깨 수술 종류는 매우 많았고, 능연이 그중 하나 혹은 몇 개의 수술 방식을 터득했을지 몰라도 모든 수술 방식을 터득했을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설사 터득했다고 해도 얼마나 터득했는지도 문제였다. 고난도 수술을 만나면, 능연이 끝낼 수 있는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이론적으로 그가 할 수 있다고 해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상급 의사가 곁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능연이 지금까지 뛰어난 의술을 선보였다고 해도, 좌자전 같은 ‘측근’이 보기에 능연의 기술 성장은 매우 착실하게 차근차근 쌓아온 것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천재, 그리고 그에 대한 기대에도 부합했다. 능연처럼 이렇게 잘생기고…… 똑똑한 젊은이가 한 가지 기술에 몰두하고 연구하면 쉽게 터득하고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풀 세트 어깨 수술은 ‘점’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Latarjet 수술로 시작한 점은 아직 면이 되기엔 멀었고.
능연은 설명하지 않는 스타일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닥치면 바로 배워서 쓰면 돼요.”
좌자전은 책임감을 느끼며 계속 설득했다.
“정 안 되면 출장 수술 구하자. 바로 배우는 게 하루 이틀에 되는 것도 아니고.”
“정 안 되면요.”
능연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고 명확했다. 본인의 스킬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관절경 수술 전문가급 스킬 중에는 어깨 관절경 사용 기술과 경험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단순한 절개, 봉합, 특히 혈관과 신경 처리는 마스터급 혹은 그랜드마스터급이었다. 이런 기술이 뒷받침해주니 무얼 배워도 빠를 것이다.
물론 작은 실수도 큰 영향을 미치는 수술, 신경외과 혹은 심장외과 수술이라면 능연도 트레이닝과 배움을 거쳐야 성공률을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정형외과는, 능연이 딱히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든 외과 의사가 그랬다.
무균 환경 조건이 까다롭고, 힘이 필요하고 방사능을 견뎌야 한다는 것만 빼면 정형외과 의사는 그냥 돈 좀 많이 벌고, 애인이 많고, 이혼을 많이 한 것 말고 특별할 것이 없었다.
이론적으로, 능연은 낯선 수술이라도 영상 좀 보면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는 능연에겐 출장 수술을 비롯한 선택지가 많았다. 필요 없다고 생각할 뿐, 딱히 출장 수술을 배제하지도 않았고.
능연의 귓가에 시스템 알람이 ‘딩’ 울렸다.
- 퀘스트: 배워서 바로 써 먹어라
- 퀘스트 설명: 우수한 의사는 의학 외의 환경에 가로막히면 안 된다. 의학에 뜻 있는 의사는 당연히 의술을 배울 기회를 얻어야 한다.
- 퀘스트 내용: 어깨관절 수술 한 건 끝낼 때마다 일정 모의 트레이닝 시간 획득 (어깨관절)
“일단 환자부터 만납시다.”
시스템 퀘스트 내용을 읽은 능연은 더 단호해졌다. 뒤를 바짝 따르던 좌자전은 능연의 자신감 넘치는 뒷모습, 그리고 주변의 감탄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부러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능 선생 10분의 1의 자신감만 있어도 적어도 맞선 시장에서 인기 있을 텐데, 하고.
“능 선생, 이분이 환자. 유입생 씨, 17세. 어깨 부위 다차 탈구, 수술 경험 없고 모두 수법 복위했습니다. 이번엔 스키 타다가 넘어져서 왼쪽 어깨를 다쳐서 병원으로 왔습니다.”
좌자전은 병실 안에 도착한 다음에야 환자의 구체적 상태를 능연에게 설명했다.
정형외과 호 주임의 태도 문제가 걸린 환자지만, 외과 의사가 병실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말을 잊어버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능연은 자연스럽게 환자 맞은편으로 가서 필름을 꺼내라고 눈짓하는 동시에 환자에게 말했다.
“검사 좀 할게요.”
좌자전은 몰래 심호흡하고는 능연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이제 능연이 완전히 정형외과를 배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 주임은 정형외과 과 주임은 아니지만, 호 주임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과 주임의 동의, 혹은 묵인은 얻은 것이다.
응급센터에서 정형외과 수술을 그렇게 오래 해왔으니, 정형외과에서 언젠간 보일 만한 반응이었다. 곽종군이 나선다면 그의 얼굴과 혀를 생각해서 조금 더 참을 수도 있겠지만, 더는 참을 필요 없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의아할 일이 아니었다.
환자 문제는 너무 많은 일이 엮여 있다. 두 진료과의 갈등은 둘째치고, 같은 진료과 내부 갈등도 조율할 수 없을 정도로 불거지기도 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좌자전은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속으로야, 능연이 호 주임 눈 밖에 나지 않게 일 처리 할 수 있을 텐데, 싶긴 해도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호 주임 역시 너무한 감이 있었다.
곽 주임이 환자를 모으고 새로운 병례와 수술 방식을 개척할 때는, 운화병원의 실권을 쥐고 있는 큰 주임하고 맞설 용기가 없어서 아무 소리도 못 했으면서, 능연에게 이러는 건 상대가 젊어서 만만하게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능연이 자신만 있으면 맞서면 그만이다 싶었다. 또 생각해 보면, 심장 수술까지 손댄 능연인데 고작 어깨관절 수술이 뭐라고.
“아파요…….”
버텨 보려던 17살 환자는 능연이 꾹꾹 누르자 바로 고함쳤다. 환자 부모가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에 좌자전이 서둘러 다가갔다.
“환자 어깨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테스트한 겁니다. 어깨관절의 느슨한 정도를 확실히 보려고요. 보존 치료할지, 아니면 수술해야 할지 판단하는 검사거든요.”
환자 어머니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좀 살살할 수 있잖아요.”
“상완골두를 앞 혹은 뒤로 밀어서 25% 정도 이동하면 양성으로 봅니다. 거기까지 못 가면 검사할 의미도 없고요.”
좌자전은 성의껏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실력도 뽐냈다.
“그럼 지금은 어때요? 양성인가요?”
“양성이라는 건 관절이 느슨해졌다는 뜻입니다.”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듯 묻는 말에 좌자전이 나직이 대답했다.
“그게……. 이걸로 확정하는 건가요? 너무 쉽잖아요.”
환자 어머니는 여전히 언짢아 보였다.
“관절이 느슨해졌다는 걸 나타내고요,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어깨 불안정 지표입니다. 수술 판단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좌자전이 지연 작전을 펼치자, 환자 어머니는 역시나 넘어갔다.
“그럼 보존치료해도 되는 건가요?”
“안 됩니다.”
능연이 바로 대답했다. 환자의 팔을 앞으로 90도, 안으로 90도 돌려보고 뒤로 향하는 작용력을 가하며 Jerk 시험을 한 후 손쉽게 얻은 결론이었다.
환자 아버지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에도 탈구한 적 있는데 다 보존치료로 되돌렸습니다만…….”
“지금 어깨 상태는 보존치료할 상황이 아닙니다. 여러모로 봐도 수술치료가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능연은 좌자전처럼 많이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어깨 한번 돌려보고는 수술해야 한다는 걸 안다고요?”
환자 어머니는 지지 않고 다시 물었다. 수술치료와 보전치료의 차이가 너무 컸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부터 오래 걸렸다.
게다가 능연은 딱 보기에 너무 어려 보였다. 아무리 잘생겨도 그걸 고려할 때가 아니라서 오히려 좌자전을 바라봤다.
“선생님, 선생님이 다시 봐주세요. 보존치료할 수 있으면 최대한 보존치료하는 게 좋잖아요.”
환자가 이런 태도를 보이면, 대부분 의사는 사실 한 번 고려해보는 경향이 있다. 좌자전 역시 저절로 마음이 흔들려 능연을 바라봤다. 그러나 능연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의견에 일일이 휘둘렸다간 할 일을 할 수 없다. 그랬다면 유치원 때도 여자아이들과 매일매일 소꿉놀이만 했게.
능연으로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과학적 판단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경로였다. 그래서 보호자의 의견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수술치료해야 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우선 눈으로 봤을 때, 환자 어깨 기형이 보입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리스크는 높아지죠. 다음은 관절 이완도와 어깨 불안정 검사, 모두 양성입니다. 마지막으로, X-ray만으로도 문제가 보여서 CT로 검증했습니다. 상기 문제를 종합한 결과, 환자분은 반드시 수술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
보호자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의사도 모두 멍해졌다. 좌자전은 묵묵히 기록하면서 앞으로 초짜 의사들에게 이런 식으로 보고하라고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매우 심하다는 건가요?”
환자 어머니는 그래도 포기 안 되는 듯 물었다. 응급센터 의사들은 익숙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 능연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히 설명했지만, 그런 명확한 진단을 해도 보호자가 반복해서 묻는 일은 사실 응급센터 의사들이 겪는 가장 익숙한 일상이었다.
두개골 손상 환자, 심근경색 환자, 대량 출혈 환자의 보호자들도 의사들이 상태를 알려줄 때 꼭 심각한 건지 다시 묻는다.
능연도 당연히 비슷한 경우를 자주 겪었다. 하지만 그는 환자 혹은 보호자가 그 평범해 보이는 단어를 정말로 이해하리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다. 의사들이 암을 CA라고 얼버무리면 환자와 보호자가 속는 것처럼.
어깨 불안정 같은 낯선 질환 앞에서, 능연은 명백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매우 심각합니다. 바로 수술해야 해요.”
“그, 그래요, 그럼.”
환자 어머니는 드디어 조금 깨달은 것 같았고 바로 당황하며 남편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떡해요.”
“학교에 전화해서 병가 내고, 학원 선생님한테도 알려요. 부모님껜 일단 알리지 말고.”
환자 아버지가 빠르게 그렇게 말하고는 능연과 좌자전을 바라봤다.
“이제 뭘 준비해야 합니까?”
“일단 입원하고 수술 준비할 겁니다. 간호사가 와서 설명할 겁니다. 몇만 위안 정도 우선 준비해주세요.”
좌자전은 대답부터 하고 능연을 바라보며 작게 물었다.
“Latarjet 수술이죠?”
“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좌자전은 대답한 다음 긴장했던 마음을 억누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Latarjet 수술은 능연의 스트라이크 존이고, 앞으로 있을 어깨관절 수술 모두 그렇다면 정형외과 호 주임도 당분간 발작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럼 조금 시간 끄는 사이 상황이 변할 수도 있지.
좌자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니 능연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 정말.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니까.”
머리를 긁적이던 좌자전은 갑자기 당황했다.
머리가 이 정도로 빠졌다면, 다른 사람은 적어도 박사 학위는 얻었겠네!
환자는 신속하게 수술실로 들어갔고, 간호사는 우선 바삐 준비하기 시작했다. 좌자전은 한참 만에 빠른 걸음으로 나타나 고개를 숙이고 환자 어깨관절을 관찰한 다음에 나지막이 위로했다.
아파서 정신이 조금 몽롱해진 소년이 중얼대며 물었다.
“마취는요?”
“이제 곧 와요.”
좌자전이 계속 달래고 잠시 기다린 후에야 소가복이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또 어깨관절 수술이에요? 이러니까 호 주임이 펄쩍 뛰지.”
슬쩍 환자를 본 소가복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Latarjet 수술이야. 와서 보는 것도 못 할 거면서.”
좌자전은 강렬한 반항이 느껴지는 말투로 거만하게 고개를 저었다. 소가복은 의아한 듯 그런 좌자전을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 정말로 호 주임님하고 한판 할 생각이군요.”
“선생님들이라니, 선 긋기냐? 가복아, 이러면 안 되지.”
짐짓 눈살을 찌푸리던 좌자전이 말을 이었다.
“왜? 넌 이제 우리 응급센터 사람 아니라는 뜻이냐?”
“아뇨! 맞죠! 당연히 맞죠.”
소가복은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맹세를 덧붙였다.
“전 살아서는 응급센터 사람, 죽어서는 응급센터 시체입니다. 그냥 그럴 필요 있나 해서 그러죠. 호 주임님도 괜히 으름장 놓는 건데, 굳이 맞설 거 있나 싶고…….”
“능 선생은 그냥 어깨관절 수술하려는 것뿐이야.”
소가복은 내심 좌자전의 뻔뻔스러움에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냥 주임님 환자 달라는 것뿐인데 협박하다니, 이건 태도 문제라고요!”
“그러니까. 게다가 능 선생도 그냥 잠시 하는 것뿐이지, 앞으로 계속할 것도 아닌데 말이야.”
좌자전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우리가 고르고 남은 환자는 받지 않겠다고 협박하다니. 정말로 그랬다가 나중에 우리가 환자 안 보내주면 어쩌려고.”
“그게 무서워서 이러는 거겠죠.”
“모든 환자가 Latarjet 수술일 리도 없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돌아갈 것을.”
“그러다가 정말로 Latarjet 적응증 아닌 환자가 나오면 어쩌시려고요.”
소가복의 질문은 좌자전이 걱정하는 핵심을 찔렀다. 하지만 능연의 태산처럼 단호한 태도를 떠올린 좌자전은 걱정을 거두고 침착한 척 대답했다.
“길이 막히면 산이라도 뚫는다고, 다 방법이 있겠지.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소가복은 혀를 끌끌 차며 생각을 거두고는 좌자전을 바라보며 정말로 늙은 개처럼 침착하다고 생각했다.
능연은 매우 빠르게 온몸을 향긋하게 씻고는 옷도 싹 갈아입고 샤워실에 나와 수술실 복도에 있는 세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능 선생, 부탁할 게 있어. 심근경색인 친척이 있는데 지금 좀 심각해져서 심장 우회술을 해야 하는데…….”
앞을 지키고 있던 의사가 서둘러 다가와 입을 열었다.
같은 병원 의사들이 지인 수술을 부탁하는 것도 능연의 일상 중 하나라서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좌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서 입원시키세요. 제가 수술할게요.”
능 팀에서 심장 우회술을 할 줄 아는 건 능연밖에 없었다. 능연이 직접 수술하길 바라던 같은 병원 의사는 몇 번이고 감사 인사했다.
능연은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역시 알아서 찾아온 환자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문진으로 들어오는 환자보다 이런 환자 분류가 더 명확하고 목표도 더 뚜렷했다. 일반 환자처럼 수술하라고 설득할 필요도 없고. 일반적으로 질질 끌거나 이러쿵저러쿵 말도 없이 병원에 오면 바로 입원하고, 입원하면 바로 수술하고, 수술하면 돌아간다.
그 뒤 따라오는 동료의 감사도 능연은 언제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감사받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깊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곁에 있던 간호사들은 저마다 다른 눈빛으로 능연을 주시하면서 오늘치 감동을 톡방에 공유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능연은 잠시 검사한 후에 묵묵히 수술을 시작했다. 전의 수술과 마찬가지로, 능연은 좌자전을 지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좌자전은 열심히 따라갔다. 요즘 이론 지식도 충분히 채웠고, 실전 경험도 있어서 일반 의사 기준으로 어깨관절 수술은 별문제 없었다. 다만 Latarjet 수술 자체가 어려운 유형이라 좌자전은 두 배로 더 힘들어했다.
호 주임의 그림자가 머릿속에 어른거리지 않았다면, 살살하자고 능연에게 부탁했을지도 모른다.
능연 역시 좌자전의 근성에 조금 놀랐다. 크리스 골절이 정형외과 입문 수술이라면, 좌자전은 입문급 시험에서 90점을 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난도가 조금 높은 무릎 관절 수술에서 절반 정도의 점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어깨관절 수술은 정형외과 가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척추 수술처럼 올림피아드 급 수준은 아니지만, Latarjet 수술은 일정 난도가 있다.
하지만 능연이 지도하며 진행하는 수술이니 어찌 됐든 해결책은 있다. 이제 얼마나 버틸 것인가가 좌자전의 부담이 되었다.
능연도 사실 좌자전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좌자전이 극한에 이르러 더는 버티지 못할 때, 위로해 주기로 결정 내렸다.
능연은 수술하는 동시에 머릿속을 정리하고 좌자전에게 말했다.
“너무 긴장할 것 없어요. Latarjet 수술도 그저 어깨관절 수술 일부일 뿐입니다.”
“예.”
좌자전은 표정을 풀고 웃어 보였다.
“다른 수술 방법도 터득하면 정형외과 도움 없이 어깨관절 손상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오히려 정형외과를 도울 수도 있을 테니 생각해 보세요.”
느긋하고 진지하게 위로 작업을 마친 능연은 안심하고 수술에 몰입했다. 좌자전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정형외과를 도와?”
능연은 매우 놀란 듯이 좌자전을 바라봤다.
“싫으면 안 해도 되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포를 떠올린 좌자전은 순간 거의 넋이 나갔다.
능연은 좌자전이 기뻐서 그런 건지, 흥분해서 그런 건지 상관하지 않았다. 집도의인 그의 리듬이 어시 때문에 흐트러질 수는 없었다. 능연은 좌자전이 정신 차릴 시간을 넉넉히 주면서 끊임없이 수술을 진행했다.
관절오목 노출. 오훼인대 이식물 준비. 가장 중요한 건 오웨인대 이식물을 가장 좋은 위치에 놓은 것이었다.
이걸 위해 능연은 상당히 긴 준비 기간을 거쳤지만, 모든 것이 궤도에 오른 후에는 매우 순조롭고 질서정연하게 수술을 해나갔다.
딩.
- 퀘스트 완성: (1) 배워서 바로 써 먹어라
- 퀘스트 내용: 20시간 모의 트레이닝 시간 획득 (어깨관절)
딩.
정형외과 의국에 돌연 울린 종소리에 호 주임을 비롯한 모두 깜짝 놀랐다.
“배, 배달 도착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초짜 의사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화풀이 상대가 되기 전에 재빨리 의국을 빠져나갔다.
호 주임은 있는 대로 얼굴을 찌푸리다가, 부하들의 푹 죽은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능연이 수술을 잘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잖아. 하지만 할 줄 아는 수술은 많지 않아. 그러니 저지할 땐 저지해야지.”
“능연, 쟤 오훼인대 이식물 너무 잘하는데요. 어떻게 한 거지.”
곁에 있던 주치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는 호 주임의 머릿속에 무수한 답이 떠올랐지만, 하나도 입에 올리기 싫었다.
“전에 그 만한전석 환자, 능연에게 소개해.”
호 주임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선생님이 하세요.”
“넵.”
“수술 시야 주의하시고요.”
“넵.”
“여기 이 관절낭,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음……. L형 절개?”
수술을 하나 마친 능연과 좌자전은 쉬지 않고 새 수술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대화 역시 능연의 간결한 스타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연린과 연문빈은 질투로 미칠 것 같았다. 힘겹게 수술을 끝내고 피로에 절어서 능연이 좌자전 수술 지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연문빈은 이를 갈며 목소리까지 부르르 떨었다.
“능 선생 목소리 부드러운 것 좀 봐.”
“능 선생이 이렇게 다정하게 우리한테 말한 적 없는 거 같은데.”
마연린 역시 피로에 절어 무너졌다. 고개를 돌린 연문빈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없어?”
“없…… 음?”
마연린은 바로 잘못됐음을 깨닫고 재빨리 연문빈을 바라봤다.
“당분간 같이 대응하자고.”
연문빈은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웃음을 참으며 마연린을 설득했다. 침착한 척 돌아선 마연린의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전엔 내가 제일 오래 어시했는데, 좌 선생님은 대체 뭘 먹었길래 저렇게 오래 버티는 거지.
굳이 추측할 것도 없이, 고개만 들어도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기운 가득한 좌자전의 모습이 보였다.
야근하며 수술할 때, 특히 반복된 평범한 수술일 때는 의사들은 쉽게 짜증 내고 의기소침해진다. 이때 의사들은 생산라인 작업자와 같은 모드로 의지 하나로 버티기 때문이다. 사실 의사라는 직업이 아니라면, 아무리 속이 시커먼 자본가라도 작업자를 연속 36시간 굴리지는 못한다.
병원은 그걸 해낸다! 그것도 건강검진과 응급처치를 포함해서!
하지만 의사가 진심으로 이 직업을 버텨내는 건 바로 성취감, 쉴 새 없이 늘어나는 기술과 경험 그리고 풍부한 수입 때문이었다.
단순히 성취감이라는 건 그림의 떡이고, 단순히 수입만으로도 버틸 수 없다. 정상급 삼갑병원에 엘리트가 계속해서 유실되는 이유이자 속이 시커먼 진료소에서 엘리트를 계속해서 놓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기술 성장은 더욱 중성적인 보약이다. 특히 젊은 의사들에게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이란 무궁무진한 상상 공간을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모든 의대생은 자기가 오맹초 같은 유명 의사가 되는 걸 상상한다. 그리고 보통 기술이 정체됐을 때 그 환상이 깨진다.
마연린은 전에 자기가 능연 밑에 있는 가장 젊은 의사라서 능연의 기술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좌자전이 나이에 굴복하지 않을 줄은 정말 몰랐다.
주름이 다 흘러내릴 정도로 늙은 사람이 아직도 새 기술을 배우려고 하다니!
게다가 능연이 배는 진지하게 가르치는 게 더 열 받았다.
“능 선생, 우리도 도와주러 왔어.”
마연린은 어릴 때 갈치 사려고 부모님을 꼬시던 정신을 떠올리며 허리를 비틀며 아부했다. 연문빈은 속이 울렁거려서 그를 힐끔 보고는 비교적 정상적인 방법, 헬스장 근돼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말투로 사근사근 말했다.
“능 선생, 손 빌려주러 왔어.”
“음, 마 선생님, 손 씻고 좌 선생님 어시하세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좌자전에게 슬슬 마무리하자고 눈짓했다. 수술이 거의 끝날 단계였지만, 좌자전은 강렬하게 긴장했다. 능연이 어시하는 것과 마연린이 어시하는 건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가장 쓸모없는 조수석을 예로, 아내가 조수석에 앉은 것과 친구가 조수석에 앉은 건 안전감이 확연하게 달랐다.
그러나 좌자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생 아내를 어쩌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도 마연린이 올라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몇 분 후, 마연린은 당당하게 들어와 수술대 맞은편에 섰다. 좌자전의 속도가 한층 떨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사실 이미 일정 관성대로 진행되어 있었다. 수술 앞부분에서 환자를 상당히 이해하고 익숙해졌다. 환자 근육의 이완 정도라든가, 비만 정도, 뼈의 굵기, 경도 또 혹은 신경 방향 등등, 이미 직관적인 개념이 잡혀 있었다.
이럴 때는 어시가 바뀌었대도 조금만 적응하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근본부터 이야기하자면, 이것이야말로 인류 외과 의사의 대단한 점이었다.
인류는 모형을 설립하는 것을 주요 방식으로 외부 요인을 깨우친다. 구체적인 데이터 혹은 스텝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지만, 현존하는 계산기보다 몇 배는 효과적이다.
그리고 우수한 외과의는 무수한 자료를 읽고, 무수한 검증된 의료 케이스를 학습하지만,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면 그런 것들을 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못한다. 그런 것보다 무의식적으로 더 많이 손을 놀리고, 예전 얻은 무수한 경험과 질환에 대한 이해로 반응한다.
좌자전은 원래 몰입이 늦는 캐릭터였다. 동기 의사보다 배우는 게 느리고 부족했다. 하지만 능연이라는 지도 의사와 함께 어깨관절 수술을 한 건, 한 건 해나가면서 그는 이제 충분한 경험과 깨달음을 쌓아나갔다.
능연이 손을 뗀 후, 그런 경험과 깨달음이 오히려 몰려들어 좌자전의 기본 움직임의 프레임이 되어 주었다.
“잘하시네요, 좌 선생님.”
맞은편에 선 마연린이 그 점을 가장 똑똑하게 느꼈다. 정교한 수법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수술 순서가 매우 명확했고, 스텝도 막힘없이 정확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실 정형외과 수술은 정교함을 따지는 수술이 아니었다.
다들 정형외과 의사를 목공에 비교하듯이 사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깨관절 수술은 크고 무거운 목재를 축으로 깎으면서 상한 부분을 걷어내고 새로운 철물을 갈아 끼운 다음 나무 외피를 잘 붙이면 기본 임무가 끝나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듣기에 간단해 보이는 이 과정은, 실제로 하기에…… 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쉬워도 손에 익어야 가능했다.
익숙해져야 곧이곧대로 착착할 수 있고,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리 방법을 알아도 고생만 하고 깨우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론적으로, 평범한 정형외과 의사를 키워내는 시간은 명인 목공을 키워내는 시간과 비슷하다. 그리고 정형외과 의사가 명인 목공이 담배 피우는 시간에 애인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론 덕이다.
좌자전은 다른 정형외과 의사가 애인 이야기할 시간에도 수술했으니 기술이 당연히 빠르게 성장했다.
딩. 수술실 구석에 서 있는 능연 귓가에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 퀘스트 완성: 조절 (2)
- 퀘스트 내용: 당신의 부하 좌자전이 여러 골절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부하에게 스킬을 전수하고 전문가급에 이르면 다음 골절 스킬을 열 수 있습니다.
- 퀘스트 보상: 어깨골절 Bristow 수술 (그랜드마스터급)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마지막 수술이 끝나갈 때쯤, 능연이 수술 가운을 벗었다. 마무리 중이던 좌자전은 아직 여운이 남았지만, 더 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수술 하나 더 한다는 건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서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다. 상태가 좋을 때라면 몰라도, 상태가 별로일 때 수술 하나 더 했다가는 정말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하물며 지금도 죽을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이따 회복실로 환자 데리고 갈게.”
좌자전이 나지막이 하는 말에 잠시 생각하던 능연은 그의 핏발 선 눈을 보고 결국 환자를 우선 고려하기로 했다.
“마 선생님이 어시하고 싶어 하니까, 회복실은 마 선생님 보내세요.”
지금은 그나마 괜찮아도 회복실까지 가서 병상 옆에 앉아서 가만히 있다가 보면 분명 졸음이 몰려와서 세상모르고 잠들 것이다. 그러면 회복실을 지키는 의미가 없어진다.
이제 막 들어온 마연린과 연문빈은 별 부담이 없으니 환자를 지키는 일에 더 적당했다. 좌자전과 마연린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Bristow 수술이 어떤 건지 알아요?”
능연은 나가기 전에 다시 좌자전에게 물었다. 좌자전은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서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어깨관절 아래 동력성 지탱을 만들고 이두박근과 오훼돌기를 자리 잡아서 상완골두 외 신전, 외 회전 시 탈골을 방지한다…….”
“좋아요. Bristow 수술 알려드릴 테니 그런 환자 찾아오세요.”
말은 마친 능연은 샤워실로 향하는 복도로 사라졌다.
“어! 알겠어! 바로 찾아볼게!”
좌자전은 바로 큰 소리로 대답했다. 능연이 대답을 듣지 못하고 생각을 바꿀까 봐 즉시 확정 지었다. 그래놓고 고개를 돌렸더니, 마연린과 연문빈이 생 레몬 씹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능 선생이랑 같이 일하려면 적극적으로 해야지.”
좌자전은 은근히 해명을 늘어놓았다. 나이가 있는 만큼, 이런 때 너무 솔직하면 등에 칼 맞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 좀 봐, 대단하지.’라는 말은 속으로만 미친 듯이 고함쳤다.
“나만 불쌍하네, 나만 불쌍해.”
마연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했다. 내가 밥 살게.”
좌자전은 역시 위로 노선을 선택했고, 주름 가득한 얼굴로 미소 서비스를 보였다.
“Bristow 수술이라니, 지금 하는 수술보다 쉬운 수술 아니에요?”
기초 이론이 꽤 탄탄한 편인 연문빈이 잠시 생각하다가 문제를 제기했다. 좌자전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이 생겼나 보지.”
“생각나는 대로 다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마연린이 눈썹을 까닥이며 하는 말에 좌자전은 조금 뿌듯한 듯 대답했다.
“차원 축소 타격인가 보지. 아, 저 용어, 아들한테 배운 거야.”(*중국 유명 SF 소설 작가가 만든 단어. 공격 목표물이 있는 공간의 차원을 축소 시켜서 목표물이 그 차원에서 생존할 수 없어서 소멸하도록 하는 것)
“그게 되겠어요? 차원 축소한다고 선생님을 아들 자리로 낮추지 말라고요.”
“연린아.”
마연린이 다시 입을 삐죽이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인류와 대립하지 마라.”
그 말에 마연린이 고개를 들었더니, 인류 연문빈이 슬금슬금 좌자전 뒤로 가서 서는 게 보였다.
병원에서 옷을 갈아입은 능연은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조금 서늘한 새벽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펄럭펄럭 날렸다. 그것도 멋있게.
능연은 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새로운 스킬을 터득한 것도 그랬고, 어깨 수술 한 번 할 때마다 연습 시간 20시간이 주어지니 매우 짜릿했다.
수술의 가치는 실제 사람에게 수술할 때 가장 빛나고, 가상 인간에게 할 때는 또 그 재미가 있으니까. 기술을 가르쳐서 돌아오는 각종 이득을 생각하면 더 기분이 좋아졌다.
좌자전 같은 의사는 이제 와이프, 자식 부담도 없어서 더 나은 기술을 더 많이 배우면 더 장기적으로 병원에 머무르며 수술에 집중할 수 있다. 본인 수입과 성취감이 커지고 환자의 행복감도 늘려주고, 동료 의사에게도 장점이 있으니 가히 완벽하다 할 수 있다.
반려자에게 가장 큰소리칠 수 있는 직업이 뭐냐고 한다면, 의사도 당연히 그 안에 든다. 물론 공무원과 나란히 비교할 순 없지만.
“능연 씨, 퇴근했어요?”
신이 난 걸음으로 다가온 전칠이 능연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며 물었다. 전칠의 버버리 코트 역시 바람에 펄럭였다. 그녀는 나무 뒤에 숨어 있는 헬리콥터를 향해 이만 가도 좋다는 듯 살며시 손짓했다. 투명 유리 헬리콥터는 고분고분 고개를 흔들고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날아갔다.
“좌 선생님 수술 몇 건 가르쳤어요.”
헬리콥터에 관심 없는 능연은 걸음을 조금 늦춰 전칠과 나란히 걸으며 이제 막 느낀 작은 성취감을 그녀와 공유했다.
“좌 선생님 Latarjet 수술 스킬이 전문가급으로 올랐거든요.”
“능 선생이 선생님이라면 어떤 학생이라도 높은 점수를 얻겠죠.”
전칠은 능연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의사들이 좀 부럽네요. 회사 일은 좀 복잡하거든요. 요즘 그룹 내부 재무 체계 정돈 중인데, 직원 하나 해고하느라 애먹었거든요. 성취감이 하나도 없어.”
“성공했나요?”
“체계 정리는 한참 걸리는 일지요. 아, 해고는 당연히 했고요.”
“성공했으면 성취감을 느껴야죠.”
전칠은 듣기 좋은 능연의 목소리에 포근해져서 온몸에 힘이 풀렸다.
“맞는 말이에요. 재미없는 회사 일, 혹은 별것 아닌 성공이라도 해도 조금이라도 성취감을 느껴야죠.”
“성취감은 중요하니까요.”
능연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도움에 진작 깔려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손쉽게 얻는 게 무슨 의미람.
그 생각에 능연은 갑자기 호텔에 가서 왕자영광 한 판 파고 싶어졌고, 전칠은 흔쾌히 동행했다.
바람이 솨솨 불었다.
능연과 전칠은 나란히 선배드에 누웠다. 앞엔 통유리에 비친 아름다운 경치가, 좌우엔 각자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능연은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양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전칠은 영국차를 들고 무릎을 만 채 게임에 빠진 능연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지켜봤다. 능연의 모니터가 어두워질 때마다 전칠은 차를 홀짝이며 능연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찻잔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평소에 하이힐을 신는 중년 여비서도 플랫슈즈로 갈아신고 등 뒤에서 흐뭇한 듯 전칠을 바라봤다. 능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뻐하는 전칠의 모습에 그녀 얼굴에도 미소가 피었다.
그러다 보니 얼굴에 매서움이 좀 줄었지만, 여전히 엄숙한 얼굴로 수십 명을 지휘하며 점심 식사 준비하고 카펫을 갈고 좋은 분위기를 꾸몄다.
트레이닝 받은 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능숙하게 샹들리에마저 조용하게 바꾸는 걸 본 중년 여비서의 마음에도 작은 성취감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