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
대충 눈 붙이고 일어난 능연은 옷을 걸치고 나와서 정원 중간 선배드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춥긴 해도 하늘이 꽤 맑았다. 능연은 별 불평 없고 오히려 조금 기쁜 듯이 옷깃을 여몄다.
몇 년 치, 어쩌면 한참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모은 스태미너 포션 생각에 이제 능연은 스태미너 포션 수량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도 점점 많아졌다. 게다가 능연은 이런 밤이 가장 좋았다.
낮이 싫은 건 아닌데 다만 낮엔 사람도 일도 너무 복잡했다. 멀쩡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 사진 찍는 사람, 같이 찍자는 사람 심지어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거절하기 골치 아픈 건 둘째치고, 방해받으면 기분이 다 울적해졌다.
밤은 달랐다. 아무리 헌신하는 게 일인 제약회사 직원도 새벽 세 시에 제가 먼저 의사 집에 나타나진 않는다. 정형외과 의사가 새벽 세 시에 제약회사 직원에게 전화 거는 일은 있어도 반대는 없다.
새벽의 진료소는 더 조용했다. 낮에 떠들썩하던 하구 골목이 갑자기 숙녀가 된 것처럼, 가끔 해괴한 개 짖는 소리와 사람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말고는 불평 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는 숙녀에게 인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게 거슬릴 것 없었다.
능연은 잠시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봤다. 운화에서 보이는 별은 많지도 않지만, 미미한 존재인 인류의 두려움을 체감하긴 충분했다. 이건 잘생겨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시 일어난 능연은 죽부터 한 솥 끓인 다음 자기가 먹을 계란프라이를 부쳐서 우유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 배를 두드리며 침대에 누워 시스템에게 질문했다.
“보상으로 얻은 시간, 어떻게 쓰면 돼?”
말하는 사이, 능연 앞에 가상 수술대와 환자가 나타났다. 가상인간과 비슷한데 증상으로 환자를 고를 수 있었다.
능연은 순간 흥미가 생겼다.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가상인간인 건 갖지만, 증상을 보이는 가상인간 쪽을 훨씬 더 다양하게 가지고 놀 수 있다.
“인대를 여러 번 다친 댄서가 좋겠어. 인대 질감 좋은 사람으로. 근육도 아름답고, 팔다리 길쭉한 사람…….”
능연은 침대에 누운 채 세팅했다. 순식간에,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모습이 변했다. 신체 비율도 좋고 근육도 탄탄한 사람으로.
능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일어나 앉으며 수술대 위치를 낮췄다. 그리고 앉아서 수술을 하는 것처럼 환자의 어깨를 세세히 해부하기 시작했다.
가상 수술엔 원하는 기구, 설비를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된다는 장점이 하나 더 있었다. 특히 병상 곁 X-ray 같은 큰 기구는 힘을 아끼고 덜 골치 아플뿐더러 방사능을 피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정형외과 의사가 부러워서 고름을 흘릴 것이다. 아무래도 의사는 발전에 가장 긴 시간을 들여야 하니까.
그렇게 아낀 방사능, 벌어온 수명으로 10년은 더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운이 좋은 정형외과 의사는 10년 더 마오타이 혹은 가짜 와인을 마실 수도 있는걸?
“다른 환자.”
능연은 수술을 끝내지 않고 손을 휘둘러 새로운 가상 환자를 불러냈다. 이것도 가상 인간의 짜릿한 점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부분, 가장 흥미 있는 부분만 하고 나머지는 내던져 버릴 수 있다. 병원에서였다면…… 물론 병원에도 전후 처리를 할 초짜 의사가 있어서 기운을 아낄 수 있지만, 정신적 부담은 확연히 다르다.
수술을 하니 시간도 빨리 흘렀다. 새벽부터 점심때까지, 겨우 열 몇 시간 동안 환자를 가지고 노는 사이 밖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능연은 굳건하게 가상 환자 둘 정도 더 가지고 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 역시 그가 훈련해낸 습관이었다. 외부 방해가 있을 땐 하던 일을 멈추는 것.
“엄마.”
밖으로 나갔더니, 도평 여사가 큰 티테이블 뒤에 앉아서 나지막이 이야기하면서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티테이블에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도 몹시 즐거워하고 있었다.
“자자, 자랑 좀 할게요. 이게 내 돌연변이 아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들은 엄마 닮는다는 옛말도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린 중년 부인이 능연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때요?”
도평 여사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능연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랑했고, 이런 중년 부인의 반응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역시나, 상대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실물이 이 정도로 잘생긴 사람은 모니터에서 보는 2D가 주는 느낌과 완전히 달랐다.
“가난하면 돌연변이밖에 믿을 게 없다고들 하잖아요. 난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난해도 돌연변이 아들이 있으면 돼요.”
몹시 흡족해진 도평은 아닌 척 차를 내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자식 많은 게 나쁜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첫애가 얘가 아니었다면 나도 몇 번 더 시도했을 거예요.”
“태어나자마자 그걸 알아요?”
손님 하나가 못 믿겠다는 듯 말하자, 도평은 잠시 멈칫하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두 살이면 남다른 걸 알죠. 모르시겠지만, 이렇게 특별한 아이는 꽤 빨리 티가 나요.”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아들이 잘났으니, 당신 말이 다 옳겠지.
“차 마실래?”
도평이 찻잔을 건네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곁으로 가서 앉아서 찻잔을 들고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전에는 자주 엄마와 차를 마셨는데 요즘은 바빠져서 그럴 기회가 줄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도평 여사가 연 오늘의 차 모임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신기한 듯 능연을 바라봤다.
“오늘 쉬는 날이니?”
도평은 아들에게 차를 따라주며 조금 신이 난 듯 물었다.
“밤에 집에서 밥 먹어?”
“쉬는 날인 셈이에요. 집에서 밥 먹을 거고.”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원을 바라봤다. 마사지 방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동한생 왔어요?”
“응. 사부님 치질약 사러 왔다더라. 마사지해서 돈 벌면 약값은 되겠지.”
“마사지 한 번에 25위안 맞아요? 동자승한테 얼마나 나눠줘요?”
도평의 대답에 그 이야기를 아는 손님이 물었다.
“절반이요.”
“그럼 마사지해서 번 돈으로 다 치질약 산대요?”
“먹을 거랑 다른 것도 사겠죠?”
도평이 확실하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럼 거기 스님 병이 심한가 보네요. 병원은 안 가신대요?”
“병원 가기 싫어한대요. 심해지면 미친 듯이 좌선한대요.”
도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동한생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생하지. 참, 이번에 다리 부러졌다는 개를 데리고 왔더구나. 네 아버지한테 봐달라고 해서 지금 걱정 중이셔.”
“아유, 의사가 수의사도 아니고 어떻게 개를 고쳐요.”
“그건 아니에요.”
도평이 고개를 저었다.
“얘 아빠는 사람도 못 고쳐요.”
도평이 능연을 바라보자, 능연은 고분고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가볼게요.”
“저녁 집에서 먹을 거면 전칠도 부른다.”
“네.”
도평이 등 뒤에 대고 목소리를 높이자 능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로 내려온 능연은 투명한 약 케이스에 기대서 사람들과 한담을 나누는 웅 선생을 발견했다. 하구 진료소에서 몇 년 근무하면서 웅 선생은 점점 노쇠해져서 얼굴만 보면 진료비로 몇십 위안 받는 명의로 보일 정도였다.
물론 나이 때문에 웅 선생은 진단을 내리는 일이 줄었고 대부분 손님 접대만 했다. 환자는 묘 선생에게 보내고 자기는 익숙한 단골 환자만 치료하고 일반적인 영양제 처방만 했다.
어떤 의미로는 웅 선생은 AI 같기도 했다. 알아서 환자 안부를 묻고 그리 어렵지 않은 환자의 명확한 문제는 대답할 수 있고. 너무 어렵거나 환자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그는 이렇게 묻곤 했다. 뭐라고요?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료소를 찾는 주변 이웃들은 여전히 웅 선생을 좋아했다. 꼭 익숙해서만은 아니라 그의 입담을 좋아했다.
다들 병원을 꺼리는 데엔 복잡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의사와 소통하기 너무 어려워서 그런 것도 있다. 차라리 진료소에 와서 어쩌고저쩌고하는 것도 의사와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였다. 나이 든 의사든 웅 선생이든 다 의사니까.
웅 선생 주변에 사람이 가득했지만, 노안이 와서 시력이 흐려진 웅 선생의 아직 남아 있는 시력을 뚫고 곁눈으로 휘광이 비쳤다. 웅 선생은 바로 빛이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능연이 2층에서 비친 빛을 등진 채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능연, 왔구나.”
웅 선생은 도련님 보듯이, 또 자기가 기르는 진귀한 동물을 자랑하듯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봤지? 영상이나 사진에서 봐도 잘생겼지만, 실제로 보니까 완전히 다르지?”
곁에 있던 중년 부인은 역시나 놀란 표정을 지었고, 고고하게 치켜들고 있던 고개도 저절로 조금 숙여졌다.
“우리 집 딸은 어울리지도 않겠는걸요.”
“재건축한다는 8DK로도?”
그동안 자랑 듣느라 당한 게 있으니 지금 되돌려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중년 부인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
“그걸 혼수로 쓸 수는 없잖아요.”
능연은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자동 필터링했다. 주변 이웃은 원래 말 많은 존재였고, 명확히 부르지 않는 이상 능연은 보통 상대하지 않았다.
능연은 그저 웅 선생을 향해 웃어 보였다.
“개는요?”
웅 선생은 동한생이 개를 데리고 왔다는 걸 모르는 듯 고개를 저으며 AI 질문 모드로 돌입했다.
“무슨 개?”
“아버지는요?”
능연은 아버지에게 묻기로 했다. 진료소에서 일어난 일은 그래도 능결죽 씨가 잘 관리했다.
웅 선생은 멈칫하다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능 소장이 가끔 개 같긴 해도……. 그래도 나 월급 주는 사람이고, 너는……. 아, 넌 월급 안 받는구나. 그럼…….”
능연은 물끄러미 웅 선생을 바라보며 보기 드물게 설명해 주었다.
“동한생이 다리 다친 개를 데리고 왔다고, 엄마가 보라고 하셔서요.”
뜬금없이 능결죽이 다리 다친 모습을 떠올린 웅 선생은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가리켰다.
“보호자랑 이야기 중일 거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웃에게도 인사한 다음 그쪽으로 향했다. 웅 선생은 슬쩍 안도하다가 곧 경계하기 시작했다. 능연은 이런 성격이라서 3, 40년 뒤에 능결죽이 은퇴한 다음에도 편하게 지내기 쉽진 않을 것이다. 그때도 어쩌면 50위안을 위해 열심히 분투할 자신을 떠올린 웅 선생은 은근히 언짢아졌다.
진료실.
하구 진료소 진료실은 수액실과 같았다. 2층 높이 로비 안, 동선과 시선을 다시 정리해서 사람이 가득해도 환자가 크게 불편함을 겪지 않았다.
들쑥날쑥 놓인 의자 중간엔 보호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작은 의자도 놓여 있었다. 환자 말고도 보호자가 여기저기 가득했다.
능결죽은 아무나 잡고 이야기 나누는 걸로 수술 후 관리인 셈 쳤다. 능연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진료소에서 큰 그는 이런 환경에 익숙했고 좋아했다. 예쁜 아내와 결혼해 지나치게 잘생긴 아들을 낳은 게 아니었다면, 능연도 이 가업을 이었을 것이다.
능결죽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능결죽 맞은편에 선 보호자는 그런 그의 모습에 순간 긴장했다.
“상황이 안 좋은가요?”
보호자가 나지막이 물었다.
“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능결죽은 바로 정신을 차리며 말을 이었다.
“원래 어르신들은 상황이 복잡하니까요. 노인성 만성 기관지염은 원래 쉽게 치료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냥 둘 수 없으니까요. 집에 가서도 조심하고요. 감기, 교차 감염 주의하세요.”
사실 큰 병원에서 같은 지시를 들었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던 보호자는 능결죽의 대답에도 완전히 마음 놓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려고 정원에서 서성거렸다.
개를 찾으러 온 능연은 아버지에게 확실히 설명했다.
“엄마가 개 봐주래요. 동한생이 데리고 온 그 개요. 진짜 개.”
“진료소에 다른 개가 있냐. 그냥 개라고 하면 되지.”
능결죽은 의아한 듯 아들을 바라봤고 능연은 물끄러미 능결죽을 바라봤다.
“개는요?”
“잠시만.”
능결죽은 두 단골 ‘소비자’에게 당부한 후 능연을 데리고 후원 차고로 향했다. 누렁이 한 마리가 불쌍하게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곁엔 깨끗한 물과 커다란 뼈가 놓여 있었다. 죽을 우려내서 살은커녕 뼈도 푹 고아진 거라, 누렁이는 한 번 핥아본 뒤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루한 듯 차고 안의 차 두 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의사한텐 안 보였어요?”
능결죽은 능연을 힐끔 쳐다보고 대답했다.
“우리 집이 병원인데, 쓸데없는 돈 쓰라고? 동한생은 부르자고 했는데, 우리가 말렸다. 지금 동물병원이 얼마나 속이 시커먼데, 그럴 것 없다.”
능연은 개를 한 번 보고 능결죽 씨를 바라봤다.
“고칠 수 있겠어요?”
“내가 고칠 수 있으면, 네가 필요하겠냐?”
능결죽은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명령했다.
“병원에서 수술하는 셈 쳐. 전에 쓰던 수술대 꺼내올 테니까, 연자 누나한테 소독이나 도와달라고 해.”
능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동물병원이랑 장비가 다르잖아요.”
“절에서 거둔 유기견이 뭘 따지냐. 동한생이 돈 내야 하잖냐.”
능결죽은 입을 삐죽였다.
“동한생이랑 스님은 절 주변 주민도 자주 도와주잖냐. 동한생이 마사지로 버는 돈도 대부분 약 사서 나눠준다. 이런 말 그렇지만, 그 마을 사람한테 동물병원에 들일 손이 있으면 차라리 자기한테 쓸걸? 아픈 데 없으면 치아라도 채워 넣을 거다.”
“알았어요. 내가 해요.”
능연이 승낙하자, 능결죽은 오히려 걱정됐다.
“할 수 있겠냐? 안 될 거 같으면 말아. 괜히 개 죽이지 말고. 다리 하나 없어도 살 수는 있어.”
“할 수 있어요.”
“해봤고?”
능연은 잠시 주춤하다가 대답했다.
“개로 수술 연습하잖아요.”
귀하고 비싼 해부용 시체보다 의대생은 사실 개를 더 많이 이용한다. 특히 초기 수술 연습, 장 문합 같은 건 실제 경험이 매우 중요하니까. 실험용 개로 수술을 잘해야, 그리고 완벽하게 해야 인체 수술할 자격과 자신이 생긴다.
또한 그런 수술을 통과해야 의대생도 외과수술을 단순히 기계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걸 깊이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몇 번이고 봉합해도 장을 제대로 꿰매지 못하고, 배 닫을 때 실수해서 개를 죽이게 되니까. 의대생이 의학을 포기하려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는 그렇게 죽은 개의 목숨도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의학 발전 과정에서도 개라는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라든가, 프레데릭 벤팅이 당뇨병 연구로 췌장을 제거한 개라든가, 심장 수술과 장기이식 수술 발명도 무수한 개의 헌신 덕에 이뤄낸 것이다.
그 밖에, 피부약과 화장품 안전성과 유효성을 위해 희생된 개의 생명도 매체에서 보도한 것보다 훨씬 많다.
기술이든 다른 면이든, 능연은 자기가 개를 잘 치료할 능력이 있다고 여겼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이 개는.
“제약회사 직원 두어 명 부르죠.”
능연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는 수의사 있거나, 아니면 이쪽 수술을 좀 아는 사람으로요. 관련 수술 동영상 찾아서 보내달라고 해요.”
“알겠다.”
대답부터 한 능결죽은 그래도 불안한 듯 물었다.
“영상보면서 수술하려고?”
“영상부터 보고 수술하려고요.”
“그래.”
능연이 고쳐주는 말에 능결죽은 개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이따 수술할 때 너무 무서워하지 마라. 아빠가 먹을 것 좀 가져다줄게.”
“수술 전엔 금식해야 해요. 마시는 것도 안 돼.”
능연은 어이없다는 듯 아버지를 말리고는 아예 핸드폰을 꺼내서 개마취의에게 전화했다. 수술은 자신 있지만, 마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능연이 수술하지 않는 날엔, 운화병원 응급센터 작업량이 한 등급 아래로 내려간다. 예를 들어 개마취의 같은 마취의는 쉴 틈이 생겼다. 물론 출근은 해야 했고, 야근해야 할 땐 해야 했다. 환자가 줄긴 해도 환자도 있었고. 보통 의사들은 능연처럼 수술하고 싶지 않아도 쉬는 게 불가능했다.
능연의 전화를 받은 개마취의는 일단 얼떨떨하다가 곧 미친 듯이 기뻐했다. 다들 알다시피, 윗사람의 사적인 업무 하나 처리하는 게 공적인 일 백 가지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특히 능연 같은 윗사람은 통도 크고, 루트도 다양해서 출장 수술 몇 번만 해도 일반 의사가 한 달에 버는 것만큼 번다.
능연이 마취과 의사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은 대부분 소가복이 차지한다. 개마취의도 자주 능연의 수술에 들어가지만, 심지어 자기 직위가 소가복보다 더 높다는 걸 알고 있지만, 병원 밖에서 함께 협조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개마취의는 기뻐서 미친 듯이 뛰는 마음을 억누르며 핸드폰을 내려놓고 마찬가지로 오늘 출근한 소가복을 바라보며 담담한 척 입을 열었다.
“소 선생, 나 잠시 나갔다가 올게. 자리 좀 지켜줘.”
“네. 제가 있을 테니까 다녀오세요. 하지만 한 시간 뒤엔 저도 수술 있어요.”
전엔 가복이라고 불렸던 소가복은 능연과 함께 일한 후로 서서히 소 선생이라고 불렸다. 그래도 어찌 됐든 직급은 직급이니, 본인은 꽤 조심하는 편이었다. 고분고분 구는 게 낫지.
개마취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직 잡힌 수술 없는데, 긴급수술 생기면 좀 맡아줘. 두 시간 만에 못 돌아오면 그때 위에 보고해주고.”
“예이.”
소가복은 바로 대답했다. 마취과는 언제나 손발이 부족해서 서로 도와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떤 때는 규정이고 뭐고, 연달아 두어 수술을 하는 일도 있다.
개마취의는 재빨리 물건을 챙겨서 나가려다가 그래도 자랑하고 싶어서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혹시 기회를 빼앗길까 봐 말이 바로 나오진 않았다. 그는 가엽다는 듯 소가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젊어서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네 운을 이제 내가 가지고 가마.
차키를 들고 나온 개마취의는 그 길로 하구로 달려갔다. 잠시 헤매다 바로 하구 진료소의 번쩍이는 네온사인을 발견하고는 흥분해서 주변 사람에게 물은 다음 차고로 직행했다.
웅 선생은 개마취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의사는 상급 의사 엉덩이 핥자고 개도 마취하러 오다니. 그것도 이렇게 흥분해서. 정말 모르겠네. 나 때는 누가 와도 저렇게 쉽게 부릴 수 없었는데.”
운화병원을 잘 아는 제약회사 직원이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모르셔서 그래요. 저 의사 별명이 개마취의예요.”
“그게 무슨 뜻이야.”
“소문에 개 마취한 적 있대요. 지금 보니까, 개 마취하는 거에 꽤 흥분하는 거 같은데요.”
제약회사 직원은 자기가 이야기하면서도 의심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정말로 개 마취를 좋아하나. 모르겠네. 아니겠지.”
“개 패티시가 있는지도 모르지.”
누군가 바로 스토리를 짜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무료한 제약회사 직원들이 많았고, 다른 사람도 바로 끼어들었다.
“처음엔 그냥 개 마취하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지. 그러다가 알고 보니 패티시가 있었다던가. 그러니까 명실상부한 개마취의지.”
“그럼 진심으로 개 마취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셈이네요.”
“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의사들은 다 패티시 있잖아요.”
제약회사 직원들이 실실 웃었다. 금세 스트레스도 풀리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차고.
개마취의는 누렁이와 능결죽을 번갈아 보다가 마지막으로 갈등하며 물었다.
“정말로 아저씨가 수술하는 거 아니죠?”
“아니라고. 내가 수술할 줄 알면 병원에 취직했지!”
능결죽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개 수술도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요!”
개마취의는 화가 나서 울고 싶어졌다. 멀쩡한 마취의를 불러다가 개 마취를 시키다니. 아무리 개 마취 경험이 있다고 해도, 아무리 윗선이라고 해도, 아무리 능연이라도…….
개마취의는 순간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맞아, 능연이 이런 일을 나를 시킨다는 건, 날 잘 본 거잖아. 왜 소가복을 안 불렀겠어. 소가복 꼬라지를 보면 개 마취는 둘째치고 개한테 소가복 마취하라고 해도 허락할걸!
하지만 능연은 친한 소가복을 부르지 않고 개마취의인 날 불렀지. 내가 개 마취한 경험이 있어서잖아! 이게 내 장점이야!
사람이, 의사가, 부하가 가장 두려운 게 무엇이냐. 바로 윗사람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장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마에 느낌표가 떠오른 개마취의는 잔뜩 감탄하고는 큰 깨달음을 얻은 말투로 능연과 능결죽을 향해 웃어 보였다.
“병원 안 간 거, 잘한 거예요. 병원집 개를 굳이 뭐하러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마취하고 수술합니까.”
도와주러 왔던 제약회사 직원 둘은 배웠다는 듯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도구랑 약품, 다 있는지 확인하고 모자라면 두 사람한테 말하세요.”
능연은 조금 전에 찍은 X-ray를 들고 묵묵히 판독했다. 능결죽이 아까 안고 가서 찍은 것이었다. 하구 진료소엔 X-ray도 있고, 잘 찍히기도 했다. 그리고 필름으로 본 결과, 누렁이는 단순한 경비골 골절이었다.
개에게는 흔한 외상이고, 농촌의 잡종개 혹은 유기견은 제때 치료받을 일도 없이 저절로 낳기도 했다. 움직이기 힘들거나, 아프거나 할 순 있어도 개는 인간보다 뼈가 훨씬 잘 붙었다.
능연은 그 각도로 고려하면서 필름을 근거로 내고정 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수술 방안을 결정한 그는 10분 전에 본 동영상 내용을 되짚었다. 확신이 생긴 그는 재빨리 손 씻고 옷 갈아입고 돌아왔다. 차고 정리는 거의 끝나갔고, 진료소에서 쓰던 옛 수술대에 누운 누렁이는 이미 마취되어 잠들어 있었다.
“개방식 수술, 경골 내측을 진입로로, 내고정합니다. 필요하면 철사 환형 고정술을 쓸 거고요.”
능연은 주변 사람들이 넋이 빠진 듯 바라보든 말든, 간단하게 수술 내용을 설명했다. 개에게는 매우 강대한 수술 진용이었다.
“포셉.”
“들고, 당겨요.”
“불 이쪽으로 좀 비춰요. 이제 뼛조각 박리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떨어지는 어시라도 기본적인 의학 지식이 있는 병원과 달리, 오늘의 어시인 제약회사 직원 혹은 능결죽, 또 혹은 개마취의 모두 반 문외한이라서 알아서 움직이는 걸 기대할 수 없었다. 능연의 명령은 더 빈번히, 또 더 자세히 떨어졌다.
능연은 개 수술이라고 해서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근육과 근막을 박리하고, 골절된 곳의 뼛조각을 깔끔히 정리했다.
같은 시각, 자동차 네 대가 한 줄로 늘어서 하구 골목에 정차했다. 검은 수트 차림의 열 몇 명이 재빨리 차에서 내려 착착 사방에 흩어져서 섰다.
전칠은 작은고모와 함께 벤틀리에서 내렸다. 잘 관리한 고모는 우아한 모습으로 낡은 하구 골목을 좀 떨떠름하게 바라보다가 전칠에게 웃어 보였다.
“왜 작은 차로 오나 했더니, 확실히 그럴 만한 곳이구나?”
전칠은 고모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면서 생긋 웃었다.
“아무 말도 안 하기로 약속했다, 고모.”
“걱정하지 마, 얘. 눈이랑 귀만 가지고 왔어. 하지만 돌아가서는 오늘 듣고 본 거, 네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할 거야. 네가 조금 과장하는 건 이해해줄게.”
“과장할 필요 없어. 이따 능연 보면 알게 될걸.”
전칠의 서비스를 즐기며 고모가 하는 말에 전칠은 방실방실 웃었다.
하구 골목 입구엔 표식이 하나밖에 없고, 골목이 시작하자마자 양쪽으로 점포가 늘어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밝고 넓은 편의점이 있고, 창구에서 바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작은 매점도 있다.
이곳에서 긴 세월을 보낸 많은 중년, 노년 주민의 생활 방식과 생업 방식 모두 큰 변화가 없어서 아차 하다가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도시의 모세 혈관 안에 틀어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많은 이의 눈엔 도시의 상처와 흉터가 되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온 전칠의 고모는 몇 걸음 만에 노면이 갈라져서 더러운 물이 고인 상황을 마주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전칠을 바라봤다.
“공들여 디자인한 하이힐로 이런 물웅덩이를 밟은 걸 디자이너들이 보면 뭐라고 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난 요즘 하구에 올 때 스틸레토 힐 안 신어. 스틸레토만 아니면 편해. 그리고 여기 리모델링한 거야. 작년엔 골목이 이것보다 더 복잡했어.”
“네가 했니?”
전칠이 태연자약하게 하는 말에 고모가 물었다.
“시청 개발 쪽에 지원 프로젝트가 있었어. 그런데 제대로 안 해서, 얼마 안 지났는데 다시 이 꼴이 됐어. 성능을 고려하지 않잖아. 가성비는 더욱 아니고.”
“운화 정도면 괜찮지.”
전칠의 고모는 화제를 이어갔다.
“정부는 사람이랑 마찬가지로 오래된 습관일수록 고치기 어렵지. 네가 평범한 집 아이를 변화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마찬가지로 그쪽에서 널 변화시키는 것도 매우 어렵겠지.”
“능연은 평범하지 않아.”
전칠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언니한테 들어서 나도 알아. 국정이도 칭찬이 자자하던데? 잘생긴 데다가 실력도 대단하다고. 그렇지?”
고모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둘 다 쓸모없단다.”
전칠은 짐작했다는 듯 ‘아.’하고 대답했다. 집안에 사람이 많으니 생각도 다 달랐다. 작은고모는 집안에서 보수적인 편이고, 그래서 전칠의 부모가 능연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오라고 그녀를 보냈다.
태연해 보이는 전칠의 모습에, 고모는 더 다급하고 어이없어했다.
“잘생긴 사람이 안 된다는 말이 아니야. 하지만 생김새가 가장 큰 참고 조건이면 안 되지. 잘생긴 사람은 천지야. 잘생기면 좋기야 하지, 아니,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전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고모는 말을 이었다.
“의사 실력은 더 필요 없지. 얘, 금융 쪽이거나 경영 쪽이면 집안에 도움이 될 거 아니니. 변호사, 공무원도 괜찮고. 의사는 말이야, 아니 얘, 의사 하나 있으면 뭐 하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원, 유명한 의사가 있는데.”
전칠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능연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야. 작은삼촌도…….”
“나도 알아. 네 삼촌, 그 멍청이가 네 체면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겠지.”
전칠의 안색이 흐려진 걸 본 고모는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물론, 어떤 한 분야에서는 대단하겠지. 하지만 그게 뭐 대단하니.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젊은이는 얼마든지 있어. 의사는…….”
“거의 다 왔어.”
전칠은 앞을 가리키며 고모의 말을 잘랐다.
“진료소 리모델링, 내가 소개해준 사람이 했다?”
은백색 하구 진료소는 디자인이 특별하고 간결하면서도 품격 있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서 디자인만 따지면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은고모는 그저 힐끔 볼 뿐,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까 한 말대로, 전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평범했다.
전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가족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소리를 듣고 컸다. 안 들으려야 듣지 않을 수도 없었고. 그래서 어른이 되어갈수록 전칠의 발언권은 점점 더 커졌고, 주변에 이런저런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불가피했다. 친척도 있고, 친구도 있고, 부하도 있고, 우연히 스친 낯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도 있었다.
거대한 이익을 눈앞에 두면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려고 별수를 다 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님 대와 달리 전칠은 이런 문제를 대할 때, 공격보다 방어했다. 결론을 내릴 때 모든 편을 꼼꼼히 고려하긴 해도, 대부분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재능은 아니었기에, 전칠이 점점 더 가족에게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다들 자기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시선을 모은 사람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바로 지금, 전칠의 작은고모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작은고모의 보안팀장이 앞으로 나서자, 그녀는 전칠을 바라봤다. 전칠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환자와 의사들 방해하지 않도록 해요. 연장자는 존중하고요, 음, 연장자는 존중하고 어린이는 사랑하고요.”
보안팀장은 할 말을 잃은 듯 작은고모를 바라봤다.
“이 안에 있는 사람, 누구에게도 무례하면 안 돼. 가 봐.”
작은고모는 보안팀장에게 행사권을 주지 않았다. 그녀를 비롯한 모두 그냥 보기만 하러 왔을 뿐, 분탕질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쓸 용기는 없었다.
보안팀장은 가장 유능한 부하 둘을 골라서 온몸에 힘을 빡 주고 눈엔 힘을 주고 귀는 쫑긋 세운 채 천천히 진료소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사람, 사람. 온 골목의 사람이 모두 진료소에 몰려 있는 것 같았다. 마사지 줄을 서면서 수다 떠는 사람, 수다 떨면서 약 사는 사람, 수액 맞는 가족 옆에서 입 터는 사람,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이 그냥 수다 떨러 온 사람…….
보안팀장은 그런 상황에 머리가 다 멍해졌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함께 들어온 부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끄러운 사람 몇이 어슬렁어슬렁대기만 해도 지리겠는데요.”
“하구 CBD(중앙 상무국)는 장난이 아니지.”
문 옆에 서 있던 노인이 수트 차림의 세 사람을 힐끔 보면서 자랑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우리 하구에서 여기는 북경의 장안 거리, 상해 남경로랑 같은 곳이라고. 알겠냐?”
“예, 예. 압니다.”
보안팀장은 돌아서서 두 부하에게 지시했다.
“대도시 표준대로 해야지, 몇 명 더 불러와.”
부하는 꿍얼대면서 사람을 부르러 갔다.
잠시 후, 전칠과 작은고모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구 진료소로 들어왔다.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전칠 씨가 왔군.”
문 앞에 서 있던 노인은 전칠을 보자마자 싱글벙글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아이고.”
전칠이 인사하자 노인은 좋아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가리켰다.
“연이 만나러 온 거지? 차고에 있어.”
“네.”
전칠은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주변을 향해 웃어 보였다. 작은고모는 전칠의 뒤를 바짝 따르면서 내심 고개를 저었다.
“별별 사람이 다 있네. 너무 복잡해.”
아무런 말 없이 웃기만 하는 전칠은 작은고모에게도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로막는 사람 없이 차고까지 가서 안으로 들어가니, 수술복을 입은 남자가 고함쳤다.
“뭐 하는 거야!”
“능 선생 있나요?”
“아! 전칠 씨!”
전칠이 나서자 남자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지금 수술 중입니다. 들어오셔서 최대한 움직이지 마세요. 오염될 수 있으니까 문 쪽에만 서 계시고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세요.”
“나랑 우리 작은고모만 들어갈 거예요.”
전칠과 작은고모는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차고 안으로 들어갔고, 보안팀장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뒤에서 목을 쭉 뺐다.
“절 기억하시나요?”
남자는 머쓱한 듯 또 기대하는 듯 전칠을 바라봤다.
“음…….”
전칠은 주저했다. 보통 이런 때에는 옆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남자도 화를 내지 않고 헤헤 웃었다.
“몇 번 못 봤거든요. 또 마스크도 쓰고 있었죠. 이렇게 말씀드리면 바로 아실걸요? 제가 그 개마취의입니다.”
“아!”
전칠은 역시나 바로 생각해냈고 개마취의는 영광이라는 듯 우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은고모는 저도 모르게 코를 틀어쥐었다.
“왜 이런 곳에서 수술하는 거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쓰는 수술실을 쓸 수도 없잖습니까.”
개마취의가 어깨를 으쓱했다. 두 사람은 그제야 문 앞에 세운 차를 둘러가서 수술대 쪽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파란 시트 아래 털복숭이 머리통은 놀랍게도 사람이 아니라 혀를 길게 내민 개였다. 작은고모는 눈도 가려 버리고 싶어졌다.
뼛조각 정리를 막 끝낸 능연이 고개를 들고 웃어 보였다.
“동한생이 데리고 온 갠데, 다리가 부러졌어요.”
작은고모는 아주 잠시 넋이 나갔다가 바로 손을 다시 내렸다.
“능 선생이 개 수술도 할 줄은 몰랐네요. 고모, 우린 올라가서 기다릴까?”
“아니.”
작은고모는 능연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몇 초 후 나지막이 해명했다.
“내가 사랑이 넘치는 남자한테 약하잖니.”
“사랑이 넘치는 능 선생은 확실히 멋지지.”
전칠도 동의했다. 작은고모는 전칠보다 빠른 속도와 빈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모르게 전칠의 팔을 덥석 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왕년에 사랑에 머리가 어떻게 됐을 때랑 너무 닮았어.”
“뭐라고?”
“저 개 말이야. 얼마나 행복한 얼굴로 저기 늘어져 있니.”
작은고모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봉합만 하면 끝나요.”
능연은 내고정을 마친 후 마무리 작업을 시작하면서 전칠에게도 설명해 주었다.
“응. 천천히 해요. 급할 거 없어요.”
전칠은 괜찮다는 듯 그 자리에 서서 능연을 바라봤다. 햇살 아래 서 있는 능연은 태양을 가까이 끌어다 주고 싶을 정도로 잘생겼고, 불빛 아래 서 있을 땐 또 다른 잘생김으로 넘쳤다.
차고 안은 공기 순환도 늦고 빛도 엉망이었다. 그러나 공기 안에 능연의 냄새가 있고, 음영 안에 능연의 그림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전칠은 행복하기만 했다.
전칠의 작은고모도 끽소리하지 않고 능연이 수술하는 걸 지켜봤다. 개와 가까운 곳에 서 있어서, 개의 머리통이 가장 먼저 보였고, 드리워진 시트, 능연의 손목과 어깨 그리고 상반신의 동작이 보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선 수술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 바람에 마음이 진정되어 지극히 차분하게 능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름다워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수술 후 관리를 인간처럼 완벽하게 할 수 없으니 용약량 주의하세요.”
능연은 수술하면서 개마취의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아, 응. 알겠어.”
“필요하면 동물병원 알아봐 줄 수 있어요.”
“그냥 만일을 위해서 그러는 거라, 그럴 필욘 없어요. 게다가 정말로 위급해진대도 개는 ICU를 사용할 수도 없거든요.”
전칠이 끼어들자 능연은 싱긋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수술 후 상황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미지수다. ICU는 어떤 의미로는 바로 그런 미지수를 대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고.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ICU의 역할이 크다.
같은 약을 써도 ICU에서는 0.1ml, 심지어 0.01ml까지 정확하다. 환자가 ICU에서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살아있는 덴 그 뒤에 무수한 학자, 임상의와 간호사의 노력이 있어서다.
동물까지 그런 대우를 받긴 어렵다. 설사 전칠이 ICU 하나 더 만들어 줄 능력이 있다고 해도, 동물은 쓰는 양, 용약량 등에 편차가 있어서 잘 돌보려면 긴 시간과 큰 대가가 필요하다. 능연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여겼다.
병원에서 모든 환자를 받아주지 못하는 시대에, 병원에서 시시각각 인간 희비극이 일어나는 시대에, 같은 종족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한 감정이입은 그저 의미 없는 자아 감동일 뿐이다.
동한생이 데리고 온 개를 수술해 줄 뜻이 있다고 해서 이 개를 죽을 때까지 기를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전칠은 고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고모는 볼을 가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랑이 넘치네.”
전칠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칭찬을 받아들였다.
“너, 넌 할 말 없니?”
“무슨 말?”
작은고모가 대뜸 물어오자 전칠은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봤다.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누가 부러운 건 처음이거든.”
작은고모는 흠모하는 표정으로 전칠을 바라봤다.
“저렇게 잘생겼고, 저렇게 사랑이 넘치는데 실력도 훌륭하다니. 정말 완벽한 연인이네.”
“잘생긴 거, 실력, 이게 제일 소용 없다면서.”
“능연은 그 수준을 넘었지. 그 수준을 넘으면 내 얄팍한 분석이 해당하지 않는단다. 음, 그래, 내 분석이 너무 얄팍했구나. 전칠, 미안하다. 이럴 줄은 몰랐지.”
“괜찮아.”
전칠은 생긋 웃었다. 감탄을 멈춘 고모가 입술을 깨물었다.
“얘, 이제 내가 전력을 다해 도와줄게.”
“뭘?”
“이 결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도록 말이야!”
전칠은 웃으며 고모를 살며시 두드렸다.
“딱히 도움받을 게 없는데.”
“두 사람 일이야 도울 게 없겠지. 하지만 능연을 가족한테 소개하는 거, 내가 도와줄게.”
“응?”
거절하려던 전칠은 듣다 보니 살짝 망설여졌다. 작은고모의 표현대로, 전씨 가문 사람 중 능연을 만나 본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태도 차이는 매우 명확했다. 꼭 능연을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 능연 혹은 능연을 만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능연의 전체 평가가 편향적으로 기울었다. 비록 능연에 대한 평가 자체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평가가 매우 중요해지는 때도 있다는 걸 전칠은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전엔 딱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과 계획이 없었는데, 고모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전칠의 말투도 조금 달라졌다.
“도와준다면 좋지.”
“반드시 도와야 해.”
고모는 작지만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면 넌 이제 다른 사람은 눈에 차지 않아서 평생 홀로 외롭게 사업을 이어갈 테니까.”
전칠은 생긋 웃으며 작은고모의 말을 필터링했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해?”
“일단……. 물론 환자를 능 선생한테 소개해야지!”
고모는 자기가 읽었던 능연과 관련된 자료를 되짚어 보고는 말을 이었다.
“네 셋째 당숙모의 큰오빠의 아내가 간경화거든? 적당한 의사를 찾고 있었어. 능연에게 보이자.”
“너무 먼 사이 아니야?”
“무시할 사람이 아니란다. 내가 너보다 십여 년 더 살면서 대단한 사업은 만들어 내지 못했고, 또 뭐 대단한 능력도 키우지 못했지만, 이런 우여곡절 많은 관계는 많이 안단다.”
전칠도 그 말엔 동의했다. 그녀의 부모도 바로 그런 이유로 오늘 작은고모를 보낸 것이고. 다른 사람에겐 없는 능력이었다.
“들어봐. 셋째 당숙모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또 엄마도 돌아가셔서 당숙모 큰오빠랑 새언니가 키워줬어. 아버지 같은 오빠, 엄마 같은 새언니라는 이야기야. 그래서 그분이 입원하고 수술하면 당숙모는 반드시 갈 거야. 그리고 네 셋째 당숙은 우리 대에서 발언권이 쎈 인물이지.”
전칠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맡겨.”
이런 일을 제일 좋아하는 작은고모는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능연의 수술을 지켜보는 동안 감정이 점점 치솟았다.
“연자 누나 불러서 드레싱하라고 하죠.”
능연은 봉합까지 마친 후 드레싱은 넘겼다. 병원에서도 그 부분은 거의 하지 않아서 종일 드레싱하는 연자보다 실력이 떨어진다.
능결죽이 밖으로 나가서 고함치자 잠시 후, 둥둥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재수도 좋은 개네.”
연자는 큰 누렁이를 시트에서 꺼낸 다음 축 늘어져 있는 녀석을 25kg짜리 팔로 힘을 주어 번쩍 들어 올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재빨리 거즈를 감았다.
“수의사보다 잘하진 못했을 거예요.”
능연이 솔직하게 하는 말에 연자가 입을 삐죽였다.
“시골에서 누가 개를 수술해. 이 개를 팔아도 오늘 쓴 약값만큼 안 나올 거야. 너랑 소장님이니까 이렇게까지 한 거지. 시골 사람들은 자기 수술도 너무 비싸면 안 하려고 하는걸.”
능연은 오늘 두 번째로 비슷한 이론을 들었다. 수술 도구를 치운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능결죽을 바라봤다.
“우리 봉사 진료해요.”
“봉사 진료? 돈 안 받고 환자 봐 주자고?”
크게 놀란 능결죽은 입술까지 파르르 떨며 핑계를 댔다.
“나…… 나랑 네 엄마는 네 결혼비용 벌어야 해!”
능연은 의심스러운 듯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진료소할 때 해마다 봉사 진료하셨잖아요. 아버지도 나중에 돈 모으면 할 거라고 했고.”
“그래, 그래. 알았다. 너도 같이 갈 거냐?”
잠시 주저하던 능결죽이 물었다.
“병원에서 시간 나는 의사도 데리고 가요. 진료소 의사는 가벼운 케이스 보고, 우리는 복잡한 거 보고.”
능연 기준으로 병상이 없는 의사는 시간 나는 의사였다. 평소에 출장 수술하는 걸로 의사, 병상, 환자 수를 조절하는 그로서는 봉사 진료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전칠도 당연히 더더욱 적극적이 되어 손을 치켜들었다.
“운리도 도울게요.”
“창서제약도입니다!”
“우리도요!”
그 자리에 있는 제약회사 직원들도 얼굴을 마주 보다가 태도를 밝히고는 서둘러 메시지를 보냈다.
소식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능연은 그 사실을 모른 채-알아도 신경 쓰지 않지만- 전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운리는 헬기만 보내주면 돼요.”
“응응.”
전칠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서 저절로 푸르른 풀밭, 별이 비치는 밤하늘, 외딴 텐트를 떠올리며 기대했다.
“좌 선생님, 언제 쉬세요?”
빙긋이 웃으며 의국으로 들어온 수간호사가 이제 막 수술실에서 돌아오던 좌자전을 붙잡았다. 좌자전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았다.
“환자한테 문제 생겼어요?”
“환자는 멀쩡해요.”
수간호사는 덥석 그를 잡고는 다시 앉힌 다음 생긋 웃어 보였다.
“다른 게 아니라 좋은 일이에요.”
“아…….”
좌자전은 그제야 자리에 앉으며 연달아 수술한 눈동자로 졸린 눈빛을 발산했다. 수간호사는 곁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며 말했다.
“좌 선생님, 이혼한 지 2년 지났는데 재혼할 생각 없어요?”
평소라면 바로 알아들었겠지만, 요 며칠 수술이니 해부니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뒤늦게 반응했다.
“또 사람 소개해주신다고 그러시려고요?”
“왜요? 또 소개해줘서 싫어요?”
수간호사는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좌자전은 드디어 완전히 정신이 들고, IQ도 회복했다.
“아니요, 아니에요. 싫을 리가요. 관심 감사하죠.”
“솔직히 선생님이 요즘 노력하는 거 알아서 그렇지, 아니면 소개한다는 말도 안 해요.”
“알죠, 알죠.”
좌자전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때 너무 도도하게 굴면 소개해주려는 사람이 바로 언짢아할 테니까.
원래 좌자전의 태도를 좋아하는 수간호사는 그의 거친 피부를 힐끔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제 친구인데요, 선생님보다 4살 어려요. 돌싱인데 아이는 없어요. 괜찮은 조건이죠. 관계도 깔끔하게 끝났고요.”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소개했다. 병원에서 돌싱인 좌자전 나이의 의사는 드물지 않은데 보통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성공해서 유명해졌거나 곧 성공해서 유명해질 의사. 그런 의사들은 이혼을 했거나 아니거나 젊고 예쁜 간호사나 제약회사 직원이 넘쳐서 수간호사가 상대를 소개할 필요도 없고, 소개해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또 한 부류는 한물간 의사들로, 앞길이 막막한 데다가 노력할 동력도 없고 노력할 방법도 없다는 특징이 일치한다. 병원에서의 나날도 각박하지만, 결혼 상대로 봤을 때 의사라는 타이틀만 빼면 잔존 가치가 끔찍할 정도로 낮은 부류다. 예전의 좌자전이 바로 그랬다.
그러나 지금 좌자전의 가치는 크게 올랐다. 생긴 건 여전히 큰일이고, 심지어 다른 사람보다 더 큰일이지만, 능연 밑에 있는 좌자전은 돈을 많이 벌고, 능력도 올라가고 있었다.
정형외과 수술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수간호사가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요즘 미친 듯이 정형외과 수술을 해대는 좌자전을 본 수간호사는 바로 자기 친구를 떠올렸다.
좌자전은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은 거 같네요. 그런데 제가 요즘 정말로 너무 바빠서요. 수술예정표 못 보셨죠?”
수간호사가 힘껏 고개를 저었다.
“내일 어깨관절 수술 7건, 처리할 응급센터 일도 있고요…….”
“돈 많이 버시겠네요.”
수간호사가 놀라 목소리를 높이자 좌자전이 흠흠흠 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요즘에 수술이 많아져서 그렇죠.”
“역시 능 선생님이네요. 다른 의사는 수술하고 싶어도 이렇게 많이 할 기회가 없죠.”
좌자전은 우직한 척 싱긋 웃었다. 사실이니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같은 능 팀이라도 해도 누구나 미칠 듯이 수술할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수많은 레지던트와 연수의가 죽을 것처럼 지쳐 있어도, 다들 능연의 수술 어시 위주로 움직였다. 그리고 능연의 수술 외에 환자 케어, 차트 입력 등등 모두 일이었다. 하급 의사는 이런 대가를 치른 후에야 수술 기회를 얻는다. 그러고도 수술실 수량, 마취과, 수술과 협조, 환자 수량과 종류 등등 제한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일이 많지만 남 좋은 일만 한다는 뜻이다. 좌자전도 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이득도 보고 있어서 힘들긴 해도 기분은 매우 좋았다.
“어디 보자. 그럼 금요일 어때요? 금요일에 오프시네요?”
수간호사가 핸드폰을 꺼내 듀티표를 살폈다.
“헤헤, 금요일에 수술이 없긴 한데, 금요일엔 제가…….”
“좌 선생님. 선이라는 게, 미룰 일이 아니에요.”
“능 선생이랑 같이 가야 해서요. 모르시겠지만, 능 선생이 봉사 진료 시작했거든요.”
“봉사 진료요? 처음 듣는데요.”
“하구 진료소에서 하는 거거든요.”
좌전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수간호사는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라…….”
“어디로요?”
수간호사가 좌자전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십이천산에 있는 십이천사예요. 아세요? 거기 근처라고 하더라고요.”
수간호사 역시 운화 사람이지만, 잠시 생각한 후에야 떠올릴 수 있었다.
“가깝진 않은데요. 길도 험하고.”
“네…….”
“알았어요.”
좌자전이 오늘 수술 7건 한 걸 떠올리고도 수간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금요일로 해요. 우리도 십이천사로 갈게요. 절에서 맞선 보는 셈 치죠.”
“아? 그, 그걸 그분도 동의하실까요?”
좌자전도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 친구는 제가 설득할게요.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제 절친이에요. 설사 성사되지 않아도 무례하게 굴면 안 돼요.”
“그럼요. 제가 굽혀서라도 수간호사님 절친이 서운할 일을 만들면 안 되죠.”
“그런 마음이면 돼요.”
좌자전의 노련한 태도에 수간호사는 더 흡족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금요일 점심으로 해요. 난 알아서 운전해서 갈게요.”
“저기…….”
좌자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금요일 아침까지 우리 쪽에 두 사람 자리 더 마련할 수 있는지 알아볼게요. 정 안 되면 따로 가시는 게 어때요?”
“아니에요.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내려올 수 있게 따로 차 가지고 갈게요.”
“우린 헬기 타고 갈 거라서요.”
좌자전이 부드럽게 설명하는 말에 멈칫했던 수간호사는 곧바로 크게 기뻐했다.
“어머, 그럼 꼭 우리 자리 마련해 주세요. 정 안 되면 제가 능 선생님한테 말할게요!”
“아뇨, 아뇨. 그러지 마세요…….”
좌자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기분은 가벼워졌다. 운리에서 이번에 보내주는 헬리콥터엔 빈자리가 있다. 봉사 진료를 앞다퉈서 할 리도 없고, 그래서 단정할 수 없을 뿐, 두 자리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금요일.
수간호사는 절친과 함께 병원에 나타났다. 마흔 초반인 절친은 이지적으로 말랐고,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있어서 꼼꼼하게 화장해서 그렇지 피부도 하얗고 탱탱했다.
“의사들은 정말로 이렇게 바빠? 맞선을 일하면서 보다니.”
조금 불만스러운 것 같은 절친의 모습에 수간호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의사는 몰라도, 좌 선생님은…… 보너스를 많이 받아.”
“하지만 정말 못생겼다, 얘.”
절친이 입을 삐죽였다.
“지난번에 능 선생이랑 태국 갔을 땐, 손목에 롤렉스 서브마리너 그린 차고 돌아왔어.”
“그 나이에 차기엔 좀 요란스럽지 않아?”
“어느 나이는 안 요란스럽니.”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렸다. 수간호사는 엘리베이터에 탄 다음 메시지 몇 개 보내서 확인한 후에야 절친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상황을 모르는 절친은 의국으로 가는 줄 알았다가 옥상에 도착한 다음 조금 놀라고 의아해했다.
“뭘 타고 갈지 이제야 확정됐거든.”
수간호사가 손을 잡아끌며 모퉁이를 돌자 줄지어 선 헬리콥터 세 대가 조용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절친은 놀라서 그 자리에 굳었다.
“전화 좀 걸고 올게요. 지방 정부하고 일정 확인해야 하는데 이따가는 시끄러워서 안 들릴 수 있거든요.”
좌자전은 수간호사와 절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어 보인 후 계속 통화했다. 봉사 진료가 순조로울 수 있도록 현지 간부와 소통하려는 것이었다. 능연과 능 팀뿐만 아니라, 능연의 부친과 하구 진료소 직원, 전칠과 운리 직원도 같이 가는 행사인데, 이제 그의 맞선 상대까지 늘었다. 이런 복잡한 인원이 움직이는 것이니 꼼꼼하게 살피는 게 당연했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맞선 상대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좌자전의 속셈 중 하나였다. 얼굴로는 성공할 수 없고 일적으로 장점을 보이는 게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좌자전의 옆모습을 보고 역시나 다소 실망한 얼굴을 짓던 수간호사의 절친은 바로 표정을 감췄다. 좌자전이 못생겼다는 이야기는 듣고 왔어도 내심 희망은 품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손을 떨었거나 혹은 불순한 마음으로 이상하게 찍었을 수도 있으니까. 왕소군의 초상화 일화처럼.
전에 본 좌자전의 사진이 보정된 것이라고는 더더욱 상상도 못 했다.
“후우…….”
절친은 불편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돌싱이라도 좌자전은 열 살 넘은 아들도 있다. 친아들이 아닌 걸 알면서도 양육비도 낸다. 월급도 많지 않고, 보너스는 안정적인 게 아니다. 결정적으로 집도 없고, 아마 차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좀 멋져 보였다. 아쉽게도 좌자전 것이 아니지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절친은 한순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타타타타타탁-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절친이 고개를 드니 좌자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저녁에 같이 식사하시죠. 그 마을 민물고기가 유명합니다.”
말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좌자전은 거의 상대의 어깨에 기대다시피 이야기했다. 절친은 프로펠러 소리를 들으며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기회는 주어야 했다. 헬리콥터를 교통수단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니 얼굴이 바람에 찌그러져도 용서할 수 있었다.
좌자전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민물고기에 대해 설명한다는 명목으로 귓가에 큰 소리로 말했다. 수간호사는 흡족하게 바라봤다. 다들 저렇게 일 처리를 잘하면 일하기 참 편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