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산길을 반나절을 달려야 하는 십이천산에 헬리콥터로 30분 만에 도착했다. 향(鄕)정부 간부 역시 일찍부터 기다리다가 열정적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사교활동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수간호사와 절친은 조금 뒤떨어져서 느긋하게 걸으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병원에서 하는 봉사 진료인데 이쪽에서도 꽤 협조하네? 전에 현에 봉사하러 갔을 때는 묵을 곳도 없어서 열몇 명이 한 사무실에서 같이 잤는데.”
절친이 조금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허풍 떠는 게 아니라, 병원은 연줄이 좀 세지. 각 부처 윗선들 봐봐. 여기 마을 간부들도 서른, 마흔부터 쉰까지 되는 사람 다양하게 있잖아. 누구라도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고, 의사 한둘 알아두면 얼마나 편하겠니.”
수간호사가 경험 있는 모습으로 주절거렸다.
“좌 선생 같은 의사는 아는 사람이 더 많지. 게다가 이런 일 잘해. 위아래 할 거 없이 잘 처리한다니까? 혹시 잘 되면 넌 앞으로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된다.”
“그런 거 같네, 응.”
절친은 여전히 망설여지는 듯했다.
“봉사 구역 설치하실 분, 이쪽으로 오세요.”
운리에서 온 간부가 손을 치켜들고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주방일 도우러 오신 분은 여기입니다.”
주 주방장 역시 높은 하얀 모자를 쓴 채 포크를 흔들어댔다. 헬리콥터를 타고 온 사람이든, 차를 타고 온 사람이든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간호사와 절친은 평지 쪽에 서서 주변에 보이는 산을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우리도 가서 좀 도울까?”
다른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에 절친이 괜히 켕기는 듯 물었다.
“마음에 들었어?”
“뭐가 마음에 들어. 그거랑 상관없지.”
수간호사가 빤히 보며 묻는 말에 절친은 부인했다.
“마음에 든 것도 아닌데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슨 상관이야.”
“네가 난처할까 봐 그런 거지.”
“난 난처할 거 없거든!”
수간호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안 놀릴게. 그럼 우린 주방으로 가자. 좌 선생한테 음식 솜씨도 보여주면 좋잖아.”
“뭘 보여줘.”
획 고개를 돌리던 절친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주방 돕는 건 괜찮네. 익숙하기도 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주 주방장 구역으로 향했다. 수간호사는 절친에게 요리 두어가지 하라고 했고, 주 주방장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행사에 경험이 많은 그는, 그런 일로 손님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맥순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미 경치가 수려한 언덕 쪽에 티테이블과 텐트를 준비해 두었다. 텐트 안엔 보글보글 끓는 찻주전자와 다구가 있었다.
전칠은 잠시 쉰 후에 열심히 차와 간식을 준비했다. 도평 여사에게 제대로 배웠다. 차 내리는 기묘 혹은 뜬금없는 다도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능연과 능가 사람들의 차 취향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녹차를 더 좋아하는 사람, 보이차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세세히는 차를 우리는 디테일까지, 사람들이 기대하는 차 맛이 다른 법이었다. 다들 별로 티 내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 농도뿐만 아니라, 단맛, 쓴맛, 온도, 향기 등 모든 요인이 누군가의 차에 대한 기호에 크게 영향을 준다.
능연이 차 마실 때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걸 아는 전칠이 그 중요한 스킬을 포기할 리가 없고, 야외로 나오면서도 각종 다구를 챙겨 왔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능연이 동한생을 데리고 다가왔다. 전칠은 바로 자세를 가다듬고 자연스럽게 차를 내리면서 능연을 향해 웃으며 소개했다.
“찻물은 총 세 가지 준비했어요. 하나는 십이천의 샘물인데 어떨지 모르겠네.”
“사부님 말씀이, 제6천의 물이 가장 맑대요. 십이천의 물은 요리할 때나 적당하다던데요.”
“아, 그럼 평소에 제6천 물을 기르니?”
전칠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사부님이 엉덩이 많이 아파하는 날엔 가서 길러오죠.”
동한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전칠은 손을 파르르 떨면서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럼 자주 마시는 샘물 말고, 내가 가지고 온 설수(雪水)를 쓰는 게 낫겠다.”
“동한생, 가서 사부님 모셔와. 병세가 단순하면 바로 수술해서 해결해 버릴 수 있을 거야.”
능연도 동의하고는 입을 열었다.
“사부님, 수술했는데 다시 재발하셨어요.”
“음. 상황 보고 이야기하자.”
능연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의학엔 분명 한계성이 있고, 완치되지 않는 질병이 훨씬 많았다.
능연은 이때, 이번 봉사 진료에서 이런 환자를 많이 마주하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