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39화 (818/877)

“어머니, 편두통은 원인이 아주 많습니다. 일단 약 좀 드릴 테니까요, 나중에 병원 가서 검사 더 받아보세요.”

정신없이 환자를 상대하는 좌자전은 힘든 와중에 기쁘기도 했다. 드디어 진료할 자격이 생긴 게 기뻤고, 환자의 병세가 너무 복잡해서 힘들었다. 봉사 진료에서 커버할 수 없는 질환이 대부분이었다.

흔한 질병은 일반 의사도 해결할 수 있지만, 인간이 걸리는 병은 너무 많았고, 1%의 확률일지라도 각종 기기괴괴한 증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편두통도 바로 전형적인 복잡한 합병증이었다. 고대의 화타도 조조를 고치지 못했고, 현대의 화타도 평범한 농민을 고치지 못한다.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보면, 화타나 페르마나 같은 유형의 인류였다.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엔드류 마일스에 따르면 페르마는 천재거나 거짓말쟁이다.

페르마 정리(편두통)처럼 책 한 권으로 서술해야 하는 걸 어떻게 책 한 권의 공백 자리에 쓴단 말인가.

천재도 거짓말쟁이도 아닌 좌자전은 내놓을 만한 절묘한 증명이 없었다. 마을 위생 병원의 경험으로 농민과 어떻게 교류하면 되는지 알아서 다행이었다.

차로 올라온 연수의 둘 역시 현급 작은 병원에서 온 사람이라 쉽게 진료했지만, 조금 언짢은 듯 툴툴댔다.

“시골이 싫어서 운화병원으로 간 건데, 다시 시골로 올 줄이야.”

“일은 더 많잖아.”

“돈도 없고.”

좌자전은 양쪽에 귀 두 개씩 달린 것 같은 모습으로 바로 두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하기 싫어?”

환자에게 약처방을 내린 좌자전은 바로 화부터 냈고, 두 연수의는 목을 움츠렸다.

“봉사 진료라고 미리 설명했는데, 오겠다고 나서놓고 뭐 말이 많아?”

좌자전은 팔짱을 낀 채 온몸의 모든 구멍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냥 농담한 거예요. 헛소리죠, 헛소리.”

둘 중 조금 반응이 빠른 연수의가 허둥지둥 일어나서 더는 정중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한 모습으로 사과했다. 연수의는 다 다른 병원에서 왔고, 운화병원에 배우러 왔다지만 아르바이트하는 것과 비슷해서 보통 보너스야 받아도 지위나 학습 기회 등등은 저 연차 주치의보다 못했다.

능 팀 내부 사무를 총괄하는 좌자전이라 연수의, 실습생 관리 역시 그의 책무라서 엄격할 때는 누구나 무서워했다.

다른 연수의도 그제야 정신 차리고 바로 사과했다.

“좌 선생님, 진짜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심심하고 또 병원도 아니라서 풀어져서 한 말입니다.”

“풀어지는 거랑 다르지.”

좌자전은 콧방귀 뀌고는 손가락으로 자기 두 눈, 그리고 상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지켜볼 테니까, 잊을 수 있도록 잘해라.”

“네네!”

두 연수의 모두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좀 쉬고 온다. 다른 사람 보낼게.”

남을 혼내고 나서 그 자리에 더 있기도 그래서, 좌자전은 뒤쪽 텐트에 손짓해서 의사를 부른 다음 자리를 떴다. 안 그래도 엉덩이가 들썩였고.

다른 의사들과 비교해서 좌자전은 진료가 더 힘들었고, 핑계를 찾았으니 그만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의사는 많았고, 정 안 되면 운화병원에서 더 불러오면 그만이었다.

컬러 플레이트로 설치한 진료 텐트에서 나와 심호흡한 좌자전은 문득 담배를 피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좌 선생님, 화 풀어요. 괜히 몸 상하면 손해잖아요.”

수간호사 절친이 생수를 들고 자연스럽게 좌자전에게 건넸다.

“별꼴을 다 보였네요. 미안해요.”

좌자전은 조금 얼떨떨해하면서 생수를 받다가 실수로 여자의 손가락을 건드렸다. 순간 좌자전은 당황했다. 그동안 경험으로 이런 일은 종종 입씨름과 큰 싸움으로 번졌다.

그런데 수간호사 절친은 그냥 생긋 웃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좌자전은 역시 교양있는 사람은 다르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일할 때도 이렇게 교육하는 건 아니죠?”

절친은 궁금한 듯 좌자전을 주시했다. 얼굴은 변함없고, 주름도 여전했지만, 아까 모습을 본 후로 묘하게 사내답게 느껴졌다.

좌자전은 순간 후회하면서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메일 그럴 순 없죠. 사실 의사들은 다 나이도 있고, 그렇게 큰 사고는 안 칩니다. 그래서 심하게 욕할 일도 별로 없죠. 아까 저 두 사람은 좀 심해서.”

“운화병원 사람들이 엄격하네요. 전에 저도 지방에 봉사 자주 갔는데 헛소리하는 사람 많았거든요.”

절친이 생긋 웃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능 선생 이야기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좌자전이 입을 삐죽였다.

“능 선생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주는데요. 봉사 진료는 둘째치고 3년 공짜로 일해도 손해 아니라고요. 그러니 헛소리하면 안 되죠.”

절친은 생긋 웃어 보이고는 별 뜻 없는 듯 물었다.

“그럼 좌 선생님도 능 선생님이 먹여 살리는 거예요?”

“전 배 터지게 먹고 있죠.”

좌자전은 마을 입구 백 년 된 아카시아나무 아래 서서 편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른 의사보다 더 많이 번다는 거네요?”

“당연하죠.”

절친은 순간 마음이 동해서 물었고, 좌자전은 피식 웃어 보였다.

“능 선생이 엄격하긴 해도, 돈은 정말 잘 줍니다.”

“헬기에, 보너스에, 돈이 장난 아니게 들겠네요.”

“능 선생이 돈이 왜 필요해요.”

좌자전은 다시 헛웃음 지었다.

“꼭 전칠 씨가 있어서가 아니라, 능 선생 수준 되는 의사는 기본적으로 돈이 궁할 일이 없습니다.”

“의사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요?”

“평범한 의사는 아니죠. 하지만 능 선생 수준쯤 되면…….”

좌자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목숨 하나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

이미 마흔 넘은 절친도 이제 순진할 나이가 아니라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목숨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 목숨값은 다르겠죠.”

“음…….”

좌자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래서 능 선생이 봉사 진료를 하러 온 거겠죠.”

거기까지 이야기한 좌자전은 달달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기분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계속 쉬고 있을 순 없겠네요. 잠시 즐기고 계세요. 전 다른 쪽도 일 잘하고 있는지 좀 둘러보고 올게요. 여러 곳에서 같이 와서 조율하는 것도 큰일이네요.”

절친은 저도 모르게 실망하면서 고분고분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 보세요.”

좌자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련도 없이 돌아섰다. 그의 모습이 사라진 후, 수간호사가 밀크티를 안고 나타나 절친에게 건넸다.

“헬기로 온 간식이야. 병원에서 마실 때보다 맛있네.”

“아…….”

절친도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짜증 나는 듯 고개를 들었다.

“상남자 정말 짜증 난다.”

“돈도 많고, 미래도 밝은 상남자 말이니? 이젠 상대가 이혼한 것도 안 싫어?”

수간호사가 놀리듯 물었다.

“나도 이혼했는데 뭐. 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흠이니.”

절친은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밀크티를 쪽쪽 빨다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가자, 음식이나 하러 가자고.”

수간호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다치게 조심해서 해. 괜히 좌 선생님 더 바쁘게 할라.”

절친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여기 그을까?”

절친은 우물쭈물, 손에 든 칼을 내리지 못했다.

“아까 닭 잡고, 생선 잡는 거 보니까 잘하던데?”

수간호사가 그 옆에서 놀렸다. 더 정확히는 조금 부럽고 질투 나고 샘이 났다. 비슷한 나이인데, 그녀는 절친처럼 아름다운 라이프를 추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물론 절친도 지금은 용기가 줄었지만.

브랜드 정장을 입은 절친은 얼굴을 단단히 찌푸리고 어이없는 듯 투덜거렸다.

“속도 모르고, 그런 소리 하지 마. 닭 잡는 거랑 같니? 게다가 이 칼이 깨끗한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메스는 되게 날카롭지 않아? 차라리 메스를 줘…….”

“메스랑 식칼이랑 절개구가 달라서 의사들은 바로 알아. 다들 응급센터 의사들이라 경험도 많아서 어쩌다 다친 건지 바로 안다고.”

수간호사는 망설이는 절친을 팔짱을 낀 채 재미있게 지켜봤다.

“그게……, 그게……. 의사 속이기 참 힘드네.”

“쉬운 편이지. 제약회사 직원은 정말 못 속여.”

수간호사는 회상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의사의 전문성에 도전하는 거라고. 이런 걸 대충할 생각하지 마. 성공해서 잘 되면 앞으로 네 세상인데.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모기가 너란 그물에 걸리면 네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잖아.”

“너나 거미 해라.”

절친은 그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의연하게 식칼을 들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식칼을 높이 들어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단지 이식은 마연린 담당이다.”

수간호사가 으스스하게 상기시키는 말에 절친이 번쩍 눈을 떴다.

“너 대체 왜 그래!”

“눈 감고 내리치다가 손가락 끊어지면 이식받아야지, 안 그래? 갈비 잘라본 적 없어?”

“안 되면 그 마연린만 덕 보는 거지, 뭐. 그쪽에 의사라면?”

“응. 그게 되게 커. 근데 너한텐 안 돌아가.”

“뭐라고?”

절친은 귀를 의심했다. 수간호사는 다시 한번 말해주고는 손짓으로도 보여주었다.

“비뇨기과 의사가 홀랑 채갔어. 협회 졸업한 비뇨기과 주치의인데 그렇게 큰 건 처음 봤대.”

절친은 헉 소리를 내고는 수간호사가 손짓으로 보여주는 크기를 보며 홀린 듯이 물었다.

“그럼 좌 선생님은?”

수간호사는 대답하려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야 못 봤으니까 모르지.”

절친은 그 점은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좌자전 같은 중늙은이의 장점이 뭐가 있냐면 안전하다는 것이 그중 하나였다. 그럴 용기와 마음이 있든지 없든지, 실행력이 없는 건 진짜였다.

“됐어. 그냥 여기에 그어. 신경도 없고 혈관도 없어서 매우 안전해.”

수간호사는 절친의 손등을 살짝 그으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만 그어. 보기엔 끔찍해도 아무 일 없어. 위험하니까 길게 긋진 말고.”

“어긋나면?”

“죽진 않아.”

“야…….”

절친은 화도 나고 어이도 없어서 바로 돌아서서 핸드백을 뒤졌다.

“펜슬로 선 그려줘.”

“그린 다음에 지울 수도 없는데, 안 돼. 나중에 선 남으면 누가 봐도 일부러 그런 거라는 거 알게?”

수간호사가 경험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그럼…….”

절친은 속으로 미친 듯이 갈등하며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옆에 놓인 그릴에서 서서히 고기 굽는 냄새가 퍼졌다. ‘고향의 맛’을 즐기고 싶은 주 주방장은 메인 요리에 쓸 양고기를 현지 마을에서 조달했다. 현지 농촌엔 양을 길러서 파는 전통이 있었고, 그들의 꽤 큰 수입원이자, 아이 학교 보내고 노인 약 사는 비상금이기도 했다.

고기 굽는 통나무 역시 마을에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 요즘엔 과수원도 각지에서 치중하는 수입원이고, 잘 버는 마을은 쉽게 가난에서 탈출했다. 십이천향엔 빈곤한 마을이 많아서……. 그들의 나무는 그다지 잘 자라지 않았고, 과수원 경영은 더욱 형편없었다.

그래도 고기 굽는 데 쓰는 나무는 그렇게 따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무를 잘 관리하지 않고 그냥 자연 방치해서 황폐한 경우가 많아 오히려 풍미가 충분했다. 십여 년, 심지어 이 삼십 년 된 나무는 불을 붙이면 향훈 효과처럼 멀리서도 상큼한 사과향, 배향, 귤향이 난다.

“전칠 씨네 쉐프 아니랄까 봐, 평범한 양고기로도 이런 향을 내네요.”

좌자전은 코를 킁킁대며 전칠을 추켜세웠다. 아부라는 건 공부와 마찬가지로 크고 작음이 없고 중요한 건 항상 같은 태도와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며,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정말로 새로워지고 싶으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라)’해야 한다. 등급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수치는 없지만, 나날이 하다 보면 언젠가 문득 뒤돌아봤을 때 보답을 얻게 된다.

전칠은 능연을 힐끔 보고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능 선생이 운반하는 데 큰 힘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아서 그랬어요. 게다가 밥 먹고 쉬고 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마을 식자재를 써도 좋을 것 같았죠.”

“덕분에 새로운 풍미가 있네요. 능 선생도 좋지?”

좌자전이 아예 그를 부르며 묻는 말에 환자 진료 중이던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됐어요.”

전칠은 매우 기분 좋게 웃으며 저도 모르게 발로 장단 맞춰 바닥을 톡톡 쳤다.

“여기 환자 다 보고 나면 꼭 밥 먹어요.”

“굳이 거기 가서 먹을 거 없어요, 이쪽으로 가져다줘요.”

줄 선 사람이 몇십 명은 되는데, 다들 작은 의자를 들고 와서 앉아 있다고 해도 의사가 밥 먹으러 사라지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능연 역시 이런 진료줄을 꽤 많이 본 편이었다. 아예 진료소를 닫으면 모를까, 마지막 환자가 끝나기 전에 의사가 자리를 비우면 바로 갈등이 생긴다.

환자에게 항상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강조하는 의사들도 이런 외부 진료 때는 아침에 물도 잘 안 마신다. 화장실만 가도 말이 많아지니까.

능연도 거하게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앞에 날라진 양 갈비가 사실상 성찬인 건 맞지만.

“혹시 배고프시면 저희가 준비한 무료 양고기 덮밥 드세요.”

주방 담당인 여자 하나가 달려 나와 음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능연은 손을 씻고 진료 테이블 옆 테이블 앞에 앉아 전칠과 함께 갈비와 덮밥을 먹었다. 과일나무로 훈연한 양갈비엔 은은한 청향이 느껴져서 전혀 느끼하지 않을뿐더러, 마이야르 반응도 지극히 훌륭하게 생겼다.

전칠은 활짝 웃으며 능연을 바라봤다. 낡고 오래된 책상으로 충당한 테이블이었고, 주변에 수많은 낯선 삶이 갖가지 눈빛으로 힐끔대고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운화에 있어도 임시 숙소에 쓰는 가구라고 대단히 호화롭진 않고, 마트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이라고 대단히 우호적이지 않은데 거기엔 능연도 곁에 없었다.

능연 역시 기분이 꽤 괜찮았다. 병원 생활 시작한 다음, 대부분 수술실에서 보내느라 진료 보는 시간이 지극히 드물었다. 수술실 안에서 지내는 생활과 비교하면 진료는 또 진료 나름의 특징과 재미가 있었다.

지금 눈앞의 상황처럼 줄지어 늘어선 환자 때문에 점심 휴식과 식사에 방해받아도, 의사가 필요한 환자들이 보이는 반응도 의사들이 버틸 수 있는 큰 동력이 된다. 능연은 가끔은 활력을 주는 이런 동력이 자신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좌 선생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멀리서 가까워졌다. 고개를 들었더니, 수간호사 절친이 손을 부여잡고 걸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좌자전도 조금 당황했다.

“실수로 손을 다쳤어요.”

절친은 크게 동요하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그녀는 도도하게 왼손을 내밀었다. 손톱 길이보다 큰 상처가 왼손 엄지 아래 볼록살에 보였다.

“휴우, 크게 다치진 않으셨네요. 능 선생한테 꿰매 달라고 할게요.”

잠시 그녀의 손을 잡고 들여다보던 좌자전이 하는 말에 절친은 깜짝 놀랐다.

“직접 해주시지 않고요?”

“내가 하면 흉질 확률이 높아서요. 능 선생이 꿰매면 흉이 안 남거든요.”

좌자전의 말에 절친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흉이 안 남는 게 당연히 흉 남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낫지만, 좌 선생이 꿰맬 게 아니라면 일부러 상처 낸 의미가 없었다. 상처 내지 않았으면 흉도 안 생겼을 거 아냐!

맞선 하나일 뿐인데, 이런 대가를 치르다니. 순간 멍청이가 된 것 같았다.

한순간 능연에게 꿰매 달라고 하고 말자, 싶던 절친은 아까 상처 내느라 아팠던 걸 떠올리고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좌자전에게서 헬리콥터 한 대 못 얻어내면 완전히 적자잖아!

“저기 누구냐, 와서 소독 좀 해.”

좌자전은 맞선 상대의 갈등을 상대할 겨를도 없이 바로 초짜 의사를 불렀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상처라서 어떤 의사가 와도 처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상처 치료 초기 스텝일 뿐이고.

수간호사 절친은 얼굴이 흐려졌다. 고분고분 옆에 있는 텐트로 따라갔지만, 들어가자마자 바로 의사를 내보내고 핸드폰을 꺼내 수간호사에게 하소연했다.

잠시 후, 수간호사가 바로 달려왔다.

“어우, 좌자전 이놈, 진짜. 이러니까 혼자 살지!”

수간호사는 좌자전을 욕하며 절친의 눈치를 살폈다.

“좌자전 같은 남자는 이대로 봐주면 안 돼. 이따 불러서 제대로 혼내주자. 똑같이 아프게 해줄 때까지 용서하지 말자고.”

상처가 아프기도 하고, 마음도 언짢아진 절친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렸다.

“어디 이런 성격이라 혼자 사는 거니? 못생겼으니까 혼자 살아도 마땅해!”

“그래, 네 말이 맞아. 고지식한 남자에 못생기기까지 했으니 혼자 살아야지.”

“주름이 턱까지 내려왔더라.”

“그건……. 그렇게까지 심한 건 아니지.”

“머리카락도 별로 없고.”

“의사는 다 그래. 우리 병원에 새로 모집한 박사들은 더 심하더라.”

“눈도 작고, 눈빛도 흐릿하고, 눈 밑은 누레서…… 못생겼어.”

“그건……. 남자는 화장을 안 하니까, 못생긴 게 당연하지.”

“하지만 그 못생긴 남자가 날 마다하잖아!”

절친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건 아니야. 그냥 여자 마음을 몰라서 그러지…….”

수간호사는 다급하게 그녀를 달랬다. 도저히 달래지지 않자, 돌아가야 할지 계속 있어야 할지 몰라서 문 쪽에서 서성거리는 의사를 향해 손짓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고, 절친도 훌쩍이다가 곧 눈물을 거두고 거울을 보며 씩씩거리면서 티슈로 눈물을 찍어냈다.

“200위안이나 하는 화장품 아깝게.”

“조심하세요. 상처에 화장품 묻겠어요.”

초짜 의사는 몰래 혀를 끌끌 차며 상기시켰다.

“하아. 아야, 아파라.”

절친의 눈가에 눈물이 다시 고였다. 수간호사는 어이도 없고 웃기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내가 가서 좌자전 끌고 올게.”

“됐어.”

절친이 오기 부리는 모습에 수간호사는 손을 휘저으며 좌자전을 찾으러 나갔다. 자주 맞선을 주선하는 노련한 중매꾼인 그녀도 이런 맞선은 골치 아팠다.

절친은 수간호사가 나간 후에도 초짜 의사에게 상처 처리를 맡길 생각이 없어서 잠시 고민하다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나가 볼게요. 선생님도 그냥 가보세요.”

“안 돼요.”

초짜 의사도 어쩔 수 없었다. 좌 선생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 좌자전이 눈 밖에 난 초짜 의사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본 적은 없지만, 눈 밖에 난 초짜 의사를 그만큼 흔적도 없이 처리했다면 그야말로 그의 수법이 험악하고 악랄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초짜 의사는 절친을 뒤따라갔다.

진료 구역.

좌자전은 능연 곁에서 얼굴을 찌푸린 채 노인의 어깨를 검사하는 중이었다. 노인의 어깨는 타박상 골절이었다. 나이 많은 노인은 자주 타박상과 골절을 겪는다. 노인은 골밀도가 낮고 다리도 잘 돌아가지 않아서 일단 넘어지면 다칠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능연을 비롯한 그들이 자주 만나는 환자와 달리, 십이천 마을의 이 노인의 상처는 이미 오래된 상처였다.

“일은 둘째치고 일상생활도 힘들어요. 또 아프고.”

촌장 역시 육순 넘은 노인이지만, 마을을 지키는 다른 노인과 비교하면 젊고 건강해 보였다. 모직 코트를 입고 구두까지 신은 꽤 세련된 모습이었다.

“이 위치를 다친 거라, 평소에도 많이 아프셨죠?”

환자를 많이 봐온 능연도 장시간 치료받지 못한 골절 환자는 또 처음이었다. 나이가 너무 많고, 몸은 너무 안 좋아서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는 노인이나 이렇게 아픔을 참으며 세월을 보낸다.

노인은 싱긋 웃으면서 이가 다 빠진 입술을 꿈틀대며 한참 만에 버틸 만하다고 대답했다.

“가족은요?”

“다 외지에서 바쁘지, 뭘.”

좌자전이 묻는 말에 노인은 다시 웃어 보였다. 능연은 다른 어깨 상태를 살폈다.

“사진 찍어 보죠.”

좌자전은 바로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환자를 앉힌 다음 직접 밀고 갔다. 마을의 큰길은 새로 포장했지만, 휠체어처럼 작은 바퀴가 지나가기엔 여전히 힘겨웠다.

그래도 좌자전은 형식적으로 환자를 대하지 않았다. 능연이 직접 치료할 생각인 게 분명하니, 좌자전으로서도 다른 초짜 의사에게 넘기기보다 자기가 능연 주변에 있는 게 나았다.

그리 덩치가 크지 않은 좌자전은 열심히 휠체어를 밀고 임시 플레이트 건물로 향했다. 세게 미느라 몸 전체가 앞으로 기우뚱했다.

노인들과 함께 서서, 열심히 노력하는 좌자전을 본 절친은 갑자기 그의 나이가 생각한 것보다 그리 많지 않게 느껴졌다.

“저 환자, 수술해야 할 것 같은데. 좌 선생, 당장은 못 나오겠다.”

“응.”

수간호사의 말에 절친은 순순히 대답하고는 능연을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나직이 말했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왜 의사를 한대.”

“그러니까.”

수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퍼뜩 깨달은 듯 다급하게 덧붙였다.

“능 선생은 너무 특별해, 좌 선생이랑 비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좌 선생은 알은체도 안 하는데 뭘.”

“일 다 보고 올 거야.”

“의사는 종일 바쁜 거 아니니?”

절친은 입을 삐죽이다가 좌자전이 이미 환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 걸 보고는 갑자기 물었다.

“사진 찍으면 방사능 나오는 거 아니야? 여긴 설비도 허름한데…….”

“간이 영상실 있어. 의사들도 다 장비 착용하고.”

간단하게 설명한 수간호사가 입을 삐죽였다.

“사진 찍을 때 의사는 다 밖에 피해 있거든. 안엔 간호사들이 보조한다고.”

절친은 그제야 안심인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간호사를 향해 웃다가 또다시 투덜거렸다.

“그럼 이 상처, 괜히 다친 거네.”

잠시 생각하던 수간호사는 결론 짓듯 입을 열었다.

“맞선 성공하면 괜히 다친 건 아니고, 실패하면…….”

고개를 끄덕이려던 절친은 갑자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럼 내가 물린 거 아니야?”

“단단히 물면 되지.”

“쓰읍…….”

절친은 다시 손이 아파졌다.

30분 후.

수간호사와 절친은 두 환자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운화병원으로 돌아갔다. 처음 헬리콥터를 타는 노부인은 흥분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점점 작아지는 건물과 산등성을 내려다봤다.

하강하기 시작하자, 노부인의 얼굴에 다시 근심이 어렸다.

“어르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엔 봉사 진료라 돈 안 쓰셔도 돼요. 교통비도 안 들어요.”

수간호사는 간호사 역할을 하며 무심결에 노부인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이가 다 빠진 노부인은 실실 웃어 보였다.

“걱정 안 해.”

“안 하시는구나. 다행이네요, 다행이야……. 그런데 왜 안 하세요?”

“돈이 없어.”

노부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속담에 낡아 빠진 집이라도 내 집이 최고라는 말 있잖아요.”

“어깨가 너무 아파서 죽고 싶었어. 어깨 치료를 해준다니,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없어.”

노부인의 말에 소름이 끼친 수간호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절친을 바라봤다.

“난 바로 침대 알아봐야 하니까, 네가 기다릴 만한 곳 알아봐 줄게. 가 있어.”

“넌 일 봐. 난 망했어.”

절친의 손은 결국 능연이 좌자전의 도움을 받으며 봉합했다. 돌아가서 수액도 맞고 주사도 맞아야 한다는 말에 절친은 시들시들해져서 대답했다.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라니까.”

수간호사는 웃으면서 그녀가 있을 곳을 마련해주고는 친한 정형외과 의사에게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응급센터 병상은 능연이 자릴 비우기 전에 이미 가득 찼으니, 지금 이 환자가 들어갈 곳이 없을 게 분명했다.

전화 너머 정형외과 의사는 그다지 까다롭게 굴지 않고 쉽게 받아주었다. 평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전화를 끊은 다음, 정형외과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졌는지, 그녀는 몰랐다.

“능연에게 만한전석을 보낸다고 하자마자 시골 구석탱이에서 환자를 찾아 보내다니. 선수 친 건가?”

“꼭 우리보고 하라는 건 아니잖아.”

“맞으면? 못하면 창피하잖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데?”

“아직 잘 몰라. 하지만 능연이 보낸 환자인데, 평범할 리가 없잖아.”

“어쩌지?”

“어쩌기는, 호 주임이 해야지. 만한전석을 능연에게 보내라고 한 사람이니 책임져야지.”

호 주임 본인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며 얼굴을 찌푸린 채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걱정할 것 없어. 그냥 평범한 환자일지도 모르잖아…….”

“이 선생, 왕 선생. 나 따라와.”

차를 한 모금 마신 호 주임은 하얀 가운 매무새를 고치고는 의연하게 일어났다. 화가 아니면 다행이고, 화라고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정형외과 주임인 만큼, 호 주임은 병원의 혜택을 다 받고, 세상 재미를 톡톡히 누렸다. 겪을 고생도 적잖게 겪었고, 누릴 이득도 마찬가지로 하나도 빠짐없이 누렸다.

호 주임은 자신이 능연의 반격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선생과 왕 선생은 자기가 준비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는 레지던트, 하나는 주치의로, 호 주임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도 아니었다. 일로도 혜택은 받았지만, 그 혜택을 아직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그러니 호 주임과 함께 전사할 생각은 없었다.

“주임님, 전 아직 환자가 있어서.”

이 선생이 넘어갈 만한 핑계를 대며 벗어나려고 나지막이 애원했다.

“아이고, 배야.”

왕 선생은 아예 배를 부여잡고 필살기를 썼다. 호 주임은 경기 참가 전에 낡은 양말을 발견한 마라톤 선수처럼 침착하게 손을 저었다.

“그럼 이 선생이 나 따라와.”

호 주임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병실 구역으로 향했다. 왕 선생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후에야 털썩 주저앉으며 흘리지도 않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번에 제대로 호 주임 눈 밖에 났을 것이다. 호 주임이 정형외과 과 주임은 아니라서 망정이지, 신발을 목구멍에 쑤셔 넣을지도 모른다.

곁에 있던 초짜 의사들도 생각이 많은 듯 동정하는 눈으로 왕 선생을 바라보며 몰래 눈빛을 주고받았다.

잠시 후, 친한 의사들끼리 옥상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 선생님이랑 왕 선생님도 봉변이다. 호 주임님 밑에서 얻은 것도 없는데 이럴 땐 방패막이로 쓰이네. 정말이지, 너무하네. 자기 제자가 아니라 두 사람을 부르는 거 좀 봐.”

“제자는 아깝겠지. 이번에 능연한테 당하면 앞으로 믿을 건 제자밖에 없을 텐데. 그런 제자들을 앞세웠다가 능연 손에 꺾이면, 혼자 남아야 하잖아. 생각만 해도 두렵겠지.”

“주임까지 되었고, 우리랑 다르니까, 생각하는 것도 다르겠지. 하원정 2호 되고 싶겠냐.”

“호 주임이 하원정하고 비교가 되냐?”

“돈은 더 버는 건 분명해.”

“그건 맞지. 어깨관절까지 능연이나 응급센터에서 해버리면, 호 주임님은 죽느니만 못하게 될걸? 그러니 전력으로 싸워보는 게 낫지.”

이야기할수록 허탈해지다가 묘하게 앞으로에 대한 동경도 생겼다. 다들 입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능연이 개입하면 호 주임을 비롯한 다른 사람 밑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얻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형외과 의사는 배우는 기간이 가장 짧은 의사였다. 보통 1, 2년이면 어시를 잘 할 수 있고, 4, 5년이면 집도할 준비가 끝난다. 마흔 정도면 임상 기준 수준에 오르는 것도 문제는 아니라서 심장외과, 흉부외과 의사처럼 자위할 때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정형외과 의사는 젊을 때부터 공부하면서 가볍게 자위하곤 한다.

환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런데 능연이 대표인 응급센터는 현저히 많은 환자를 가지고 있다. 그 환자를 호 주임보단 초짜 의사에게 나눠줄 가능성이 더 클 뿐이다.

호 주임은 진지한 얼굴로 병실 구역에 나타났다.

정형외과 수간호사와 응급센터 수간호사는 진지한 척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천년 먹은 여우라, 당연히 이야기가 재미없었고, 호 주임이 나타나자 진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고 많네, 수고 많아.”

호 주임은 가식으로 인사하고는 수간호사가 보낸 환자를 바라봤다.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정형외과엔 노인 환자가 많지만, 처리하기 쉬운 건 아니었다. 젊은 환자에게는 매우 유용한 기술도 힘이 약한 노인들에겐 적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인은 회복력도 떨어져서 수술 효과도 크게 줄어든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노인의 상태는 딱 봐도 평균 이하였다.

간악한 것.

호 주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일부러 체질이 약한 노인을 보낸 거다. 체질이 약한 환자일수록 의사의 기본 내공, 전면적인 기술이 필요했다. 즉 능연이 가장 뛰어난 부분이었다.

호 주임이 아무리 거만해도, 자기가 일반외과 혹은 심장외과 등 분야에서 능연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어딜 다치셨어요?”

호 주임은 친절한 척 환자에게 물었다.

“어깨.”

의사가 묻는 말에, 노부인은 매우 빠르게 대답했다. 호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검사하며 물었다.

“어쩌다 다치셨어요?”

“작년에 넘어졌어요. 그때도 좀 아프더라고요. 나중엔 아파서 잠이 안 와서 애들 불러서 마을 병원도 가봤죠. 수술해야 한다더라고요. 그런데 또 다 낫는 건 아니래서, 애들이 일단 지켜보자고 해서…….”

병세 이야기를 하는 노부인은 점점 말이 많아졌고, 어디가 아픈 건지 눈도 슬쩍 만졌다. 호 주임의 얼굴이 점점 더 심각해져서 다시 질문했다.

“작년이라면 몇 달 됐다는 건가요?”

“반년 됐지.”

“반년이요?”

호 주임은 저도 모르게 수간호사를 바라봤다. 이런 간악한 것들!

어깨관절은 안 그래도 정형외과 수술 중에서 상당히 복잡한 부분인데, 반년이나 지나서 병원에 오면 훨씬 더 어려워진다. 나이는 많고, 체질은 약하고, 오래된 상처까지, 세 가지 겹친 상황에 호 주임의 경계가 최고로 올라갔다.

20년 경력으로 간단히 호 주임의 생각을 읽은 응급센터 수간호사는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이 직접 할 생각이에요.”

“아, 그럼 직접 하라고 하면 되겠네.”

호 주임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명백한 자극요법이라니, 거기에 속겠냐!

“여기 능 선생님이 내린 오더대로 약 쓰시고요. 우리 간호사 보낼까요?”

응급센터 수간호사는 자연스럽게 정형외과 수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됐고요. 오더는 호 주임님께 한 번 보여드릴까요?”

정형외과 수간호사가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게 물었다. 응급센터 수간호사가 호 주임을 바라봤다. 호 주임은 속으로 몰래 웃었다.

여우 꼬리가 드디어 드러났지! 말이 오더지, 속셈이 있는 거지?

“한번 보지.”

호 주임은 곁에 있는 이 선생에게 지시해서 패드를 열고 슬쩍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평범했다. 정말로 표준적인 수술 전 준비 방안이잖아.

그 생각을 하자마자 호 주임은 바로 자기 생각을 부인했다. 그럴 리 없어. 능연과 응급센터가 얼마나 간악한데, 표준적인 수술 전 준비 방안이라도 해도 뭔가 있을 거야!

“호 주임님?”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바람에 수간호사가 그를 불렀다. 호 주임은 화들짝 고개를 들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능연이 언제 수술한대?”

“며칠 뒤에요. 일단 봉사 진료 케이스부터 처리할 생각인 거 같아요.”

“알겠네.”

호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병실 구역을 떠났다. 이 선생은 서둘러 뒤쫓으며 조마조마한 듯 호 주임의 안색을 살폈다.

“호 주임님, 무슨 문제 있습니까?”

“있겠지. 두고 보라고.”

의학적 증거는 없지만, 호 주임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능연이 분명 꼼수를 부리리라 생각했다. 이 선생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호 주임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여기 환자 특별히 주의하고.”

호 주임은 지시를 내린 다음 의국으로 가서도 한바탕 지시를 내린 후에 앞으로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대응할 수 있도록 재빨리 수술실로 가서 연달아 수술 몇 건을 마쳤다.

심지어 집에 가기 전에, 며칠 동안 방해하지 말라고 애인들에게 전화도 걸었다. 그렇게 밤 11시까지 바쁘게 움직인 호 주임이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호 주임님. 능 선생이 헬기 타고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낮엔 봉사 진료하고 밤엔 수술할 거랍니다. 18번 베드 노부인을 막 보고 갔습니다.

이 선생이 빠르게 상황을 보고했다.

“그럴 줄 알았지. 흥! 바로 간다!”

호 주임은 평온하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하하하하, 관공 앞에서 칼 솜씨를 자랑하다니. 그럴 줄 알았다니까.

순간, 호 주임은 멈칫했다. 나, 뭐가 좋다고 이러는 거야.

“우리 애들은 다 왔나?”

그 길로 차를 몰아 병원으로 돌아온 호 주임이 시간을 봤더니 겨우 15분이었다. 차 꺼내고 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병원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 중 최단 기록이었다.

아까 지명됐던 이 선생도 기다리고 있다가 호 주임이 나타난 속도에 조금 놀라며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마취과 선생님은 이미 왔고요, 방 선생님, 문 선생님은 오고 계십니다. 수술과에 통지했고요.”

방 선생과 문 선생 모두 호 주임의 측근이었고 자주 호 주임과 손발 맞추는 주치의인데 당직이 아닌 날은 당연히 집으로 돌아간다.

호 주임은 매우 언짢은 듯 고개를 저었다.

“왜 이리 느려. 다시 전화해 봐.”

“예.”

이 선생은 고분고분 전화하러 가며 속으로 투덜댔다. 주임님은 병원 근처 비싼 집을 살 능력이 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잖아요.

모두에게 지시를 내린 호 주임은 사무실 안에 틀어박혔다. 전에는 정형외과가 응급의학과보다 돈이 많았고, 병원에서 권력도 더 컸다. 그래서 호 주임 같은 작은 팀 책임자도 작은 사무실을 별도로 쓰고 있었다. 책상 하나 겨우 놓을 정도로 작은 면적이지만, 어찌 됐든 문도 걸어 잠글 수 있는 독립 공간이었고, 정형외과 의사로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대단한 복지였다.

호 주임은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자기 사무실에서 복습하는 걸 좋아했다. 오랫동안 해온 수술이라도 수술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복습하거나 환자의 사진을 한 번 더 보면 수술 효과가 분명 한층 더 좋아진다.

다만 중요하지 않은 수술을 앞두고 의사들은 복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은 그럴 시간이 없거나. 그런 의미로는 의사들은 준비 없이 시험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수술은 어차피 점수로 결과가 달라지지 않아서, 60점이든 90점이든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일반 수준의 수술은 호 주임 같은 의사는 준비 없이 수술해도 90점 정도는 받는다. 보통 일반 수술을 거들떠보지 않아서 그렇지. 기회를 주치의나 레지던트 등에게 남겨 줘야 하기도 하고.

청탁이나 출장 수술을 제외하고 호 주임이 일반 수술에 참여하는 건 보통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대비할 때나 그랬다. 자주 하지 않던 수술을 갑자기 하려고 하면 수술을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치고 일단 마음이 불안하다. 능연과 관계된 일이라 당연히 고집을 부릴 수도 없고.

그러니 시간 내서 복습을 좀 해야 믿음과 자신감이 생긴다.

눈앞의 X-ray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이, 자신감이 끝없이 생겼다. 대단히 복잡한 수술은 아니었다. 고령 환자고, 오래 수술을 미룬 상태지만, 수술 자체는 크게 어려운 수술이 아니었다.

자신감이 점점 차오르던 호 주임은 서서히 이런저런 의문이 생겼다.

왜지? 능연이 왜 이런 환자를 골랐지? 아예 간단한 수술은 아니라서 평범한 의사에겐 꽤 난도 높은 수술이다. 하지만 우린 다 어깨관절 분야 고수잖아. 고수끼리 싸우는 건데, 이런 환자로 무슨 승부를 낸다고.

같이 만점을 받은 다음에 ‘나와 모 주임’의 기술이 비슷하다고 크게 떠벌리려고?

아무리 능연이 싫은 호 주임이라도 능연이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래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호 주임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답답한 듯 문을 열었다.

“주임님.”

졸고 있던 의사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시간 있을 때 환자 차트랑 리포트 좀 챙겨.”

호 주임은 퉁명스럽게 부하들을 바라보다가 바로 말투를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와이프한테 한 소리 들은 거 아니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두 주치의가 짧게 대답했다. 밤에 급하게 불려 나오는 건 그들에게도 가족에게도 다반사였다. 호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자, 환자 보러 가지.”

“예…….”

두 사람은 호 주임 뒤를 따랐고, 문 선생은 잠시 뒤처져 있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호 주임님, 정말 능연 수술 가로챌 겁니까?”

“환자가 우리 과 병상에 누워 있고, 우리 과 명의로 입원했는데, 그게 왜 가로채는 거야? 두려워?”

“능연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곽 주임님도 어떤 때는 진짜 미친개 같고.”

호 주임이 잡아떼는 모습에 문 선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흠.”

호 주임은 숨을 들이마셨다. 곽종군의 위협은 장난이 아니었다. 약체였던 응급의학과도 곽종군의 미친개 같은 행적으로 활활 일으켰으니 지금은 더 건드릴 상대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수술이잖습니까.”

망설이는 호 주임의 모습에 문 선생이 서둘러 설득했다. 그러나 호 주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우리 과에 입원시킨 건데.”

“응급센터에 침대가 없어서겠죠.”

“간담췌도 침대 빌리고, 심장외과도 침대 빌리고……. 흥, 다른 과 침대는 왜 안 빌린대?”

정형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라서, 라고 하려던 문 선생은 문득 그래서 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능연이 정형외과 침대를 쓰면서 정형외과 수술을 한다는 건 정말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다.

“주임님께 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곁에 있던 방 선생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그가 말하는 주임이란 물론 정형외과 과주임이었다. 호 주임은 입을 삐죽였다.

“우물쭈물하면서 상황 보자고 하잖아. 능연이 어깨관절 수술을 하는 거라,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그러는 거지.”

그 말에 방 선생은 적개심이 생겼다.

“어깨관절 수술이라고 방치했다가 나중에 고관절까지 손대면 그땐 어쩌시려고 그런대요.”

“이제 늙으셨어. 그러니 기세가 한풀 꺾인 거지.”

호 주임이 한숨 쉬며 하는 말에 두 주치의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 주임의 영향으로 두 사람도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깨관절은 호 치료팀의 주요 분야이고, 이 부분을 빼앗기면 호 주임의 지위에 타격이 올 것이고 두 사람의 이득도 흔들린다. 두 사람은 호 주임의 마지막 결정을 기다리며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호 주임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더 생각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수술하러 가자.”

그 말이 나오자마자 세 사람 모두 한숨을 쉬었다. 그들 나이와 지위가 되면 결정 내리는 게 제일 어려워진다. 결정이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결정만 내리면 실행은 간단해진다.

방 선생과 문 선생은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각자 마취의와 수술과에 연락했다. 잠시 후, 두 사람 모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마취과에서 이건 능 선생 수술이라고, 능 선생하고 이야기 끝난 거냐고 묻는데요.”

“수술과에서는 능 선생하고 이야기해 보랍니다.”

두 사람 모두 지극히 안 좋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얼굴이 더 심하게 구겨진 호 주임이 핸드폰을 꺼냈다.

“직접 전화해 볼 테니까 잠깐 기다려.”

외과의사와 마취의 혹은 수술과 갈등은 수시로 일어나지만, 크게 심각하진 않다. 호 주임은 자기가 단호하게 나오면 이치로 보아 자기편에 설 것으로 여겼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가 정형외과에 있는데 말이다.

호 주임은 기세등등하게 전화를 걸었다. 호 주임은 단호한 태도로 전화했다. 호 주임은 논리에 근거하여 필사적으로 통화했다. 호주임은 자신의 작은 사무실로 돌아와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호 주임이 뛰쳐나왔다.

“주임님?”

가물가물 졸고 있던 문 선생은 방 선생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두 사람은 함께 호 주임을 바라봤다.

“능연이 몰래 수술 시작했어. 가보자.”

주머니 속 뜨끈한 핸드폰보다 호 주임이 몸이 훨씬 더 닳아 올라 있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붙을 준비하는데 너는 몰래 수술실에 숨어들었어.”

호 주임의 지금 심경은 대강 이런 뜻이었다.

수술복을 꺼내고 있는 문 선생은 수술을 다툴 필요가 없어지자 마음이 훨씬 평안해져서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젊은 애라 그런 걸 모릅니다.”

“아주 예법이 무너졌어!”

“시대가 변했네요.”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방 선생 역시 생각이 많은 모습이었다.

수술복 담당인 나이 든 간호사가 체면도 세워주지 않고 고함쳤다.

“시기해요? 수술실 규칙이 변한 것도 아니고. 뒤에 사람들 있으니까 서두르세요.”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온다고.”

호 주임은 언짢아졌다. 간호사들이 어린 의사를 괴롭히는 건 흔한 일이지만, 연차 높은 의사는 그래도 존중하는 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연차 높은 주치의는 거의 신입 간호사의 아빠뻘이고 나이 든 간호사라고 해도 부주임 의사보다 나이가 더 많진 않다.

그러나 오늘 탈의실 담당 간호사는 여전히 호 주임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고 입을 삐죽였다.

“능 팀이 밤에 수술실 써야 해요. 서두르세요.”

“수술층에 수술실 많은데 우리 수술실까지 쓸까 봐요.”

문 선생도 조금 화가 났다. 수술층의 수술실은 명색만 공용이지, 임의로 혹은 장기적으로 변동해서 사용할 뿐 사실 각 진료과에 배정되어 있었다.

정형외과처럼 로테이션이 특히 좋은 진료과는 항시 원하는 대로 수술실을 배정받는다. 능연이 수술실을 아무리 많이 써도 이론적으로 정형외과 수술실까지 침범할 일은 없어야 맞다.

실제로도 그래서, 호 주임이 오히려 문 선생을 말렸다.

“됐다, 입씨름할 거 없어. 그냥 우리 체면 세워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야.”

문 선생은 멈칫하며 담당 간호사를 바라봤다. 정직원인 중년 간호사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어서 눈을 세모로 뜨고 문 선생을 바라봤다. 문 선생은 과감하게 목을 움츠리며 호 주임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예, 예. 싸울 것 없죠.”

세 사람은 말없이 수술복을 받아 재빨리 탈의실로 들어갔다. 방 선생은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멀쩡한 병원이 능연의 독무대가 되어가네.”

“이상할 것도 없지. 우리가 나이만 많지, 정말로 능연하고 맞서려면 우리가 도전자인 셈이지.”

호 주임이 껄껄 웃으며 세 사람을 한데 묶었다. 지금 그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수하의 부하들 몇뿐이었다. 그 수는 잘 먹혔고, 방 선생은 싱긋 웃어 보였다.

“도전하라면 도전하면 되죠. 능연이야 여기저기 걸친 것도 많지만, 우린 어깨관절 한 분야잖습니까. 물러날 곳도 없어요.”

“몰릴수록 물어야죠.”

문 선생도 반쯤 농담하며 한마디 보탰다.

“그렇지. 우리가 압박받는 쪽이니까 이기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들 거다.”

호 주임은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로는 조금 후회했다. 전에 마취의와 간호사들에게 조금 더 잘 대해줬다면 지금처럼 따돌림받진 않았을 텐데. 어찌 됐든 앞으로의 수술도 다른 과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만큼 정말로 고립되면 힘들어진다.

“6번 수술실이네요. 벌써 시작했습니다.”

복도의 모니터로 능연의 수술실을 확인한 문 선생이 말했다.

“바로 가자.”

호 주임은 매무새를 고치고 곧장 달려갔다. 문 선생과 방 선생 역시 용기를 내서 호 주임의 뒤를 따라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6번 수술실은 고급 일식집처럼 고요했다. 고객으로 붐비는 이곳은 안에서 밖까지 거의 발 디딜 틈이 없는데도 집도자가 칼을 휙휙 놀리는 소리 말고는 손님들은 끽소리 내지 않고 온순하게 있었다.

문 선생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심지어 조금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새벽이고 복도도 반짝반짝, 왁스라도 바른 듯이 털 하나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6번 수술실에 몰려 있는 이 인파는 무엇인가.

혹시 귀신 본 거라면 난 여자 귀신 배 위에서 죽고 싶은데. 문 선생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뒤이어 수술실이 나오는 귀신 영화를 떠올리다가 귀신은 마취할 필요가 없다는 걸 생각하고는 부르르 떨었다.

“이 부분, 액와신경을 주의해야 합니다.”

능연의 목소리에 문 선생의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허스키하면서도 듣기 좋은 남자 중저음은 뼛속까지 안전감을 준다. 문 선생은 갑자기 능연을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목소리를 잘 듣고 싶은 이유 하나로. 중년 주치의가 무슨 다른 흑심이 있겠나.

문 선생의 얼굴에 순종적인 미소가 자연스럽게 퍼졌다.

“흠흠.”

호 주임이 헛기침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나이도 많고, 뒤에서 사람 욕하는 데나 익숙하지, 앞에서 공격하는 덴 서툴렀다.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몇몇 사람이 초밥 먹다가 모자라서 입맛 다시는 귀신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호 주임은 교감신경이 꿈틀댔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수술을 지켜봤다. 평범한 외측 진입 수술이었다. 가장 흔한 진입 방법은 아니지만, 어깨 수술 자체가 융통성, 가변성을 추구해서 대단히 드문 방법은 아니고 호 주임도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호 주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장 흔한 삼각근-대흉근 진입법 혹은 비교적 흔한 상방 진입과 비교하면 외측 진입은 명확한 우열이 있다. 외측 진입은 손상이 적고 혈액 공급 파괴가 적어서 환자의 수술 후 예후가 좋고 기능 회복도 빠르다. 하지만 액와신경 파손도 크다. 얼핏 들으면 이렇게 주고받으면 꽤 남는 장사 같아도, 사실상 외과 수술에서 가장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신경이었다.

삼각근-대흉근 진입로를 채택하는 게 왜 가장 일반적이냐면, 이런 방식의 노출은 정맥만 잘 지키면 기본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다. 큰 흉은 지겠지만, 환자가 나이 든 노파이니 흉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평범하고 평범한 의사는 이 한 가지 수술 방법을 터득한 것만 해도 매우 만족한다. 환자가 나이 많은 노부인이면 흉이 지든 말든 상관없고, 어린 아가씨라서 흉지지 않게 해주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어서 그냥 해야 할 대로 할 뿐이었다. 수술 전 면담에서 굳이 수술 진입 문제를 거론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

“능연은 혈액 공급 문제를 지나치게 연연하는군.”

호 주임이 짐짓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운동선수도 아니고 말이야.”

그는 능연이 했던 아킬레스건 수술을 떠올렸다. 지금 수술과 비슷한 사고 회로인데 다만 조작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운동선수 아킬레스건 수술이라면 혈액 공급 위주로 생각하는 걸 이해하지만, 노부인 어깨 수술도 혈액 공급을 고려하다니, 호 주임은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바로 이 점을 꼬집어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쉿.”

높은 의자에 앉아서 수술을 보던 의사가 호 주임을 향해 손가락을 세웠다. 눈살을 찌푸리며 빤히 바라보던 호 주임이 마스크 아래 익숙한 밉상 얼굴을 알아봤다.

“이 원장님, 왜 여기 계십니까? 이 늦은 시간에.”

호 주임은 ‘어쩐지 의자에 앉아 있더라니’ 하고 생각하며 냉큼 달려갔다.

“오늘 당직이라.”

이 원장의 대답은 완전한 사실은 아니었다. 운화병원 규칙에 병원 윗선도 당직을 서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그런 일 하라고 원장 대리들을 뽑은 것 아니냔 말이다.

이 원장이 밤에 잠도 안 자고 수술을 보러 달려오는 건 호 주임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수술 끝나고 이야기하세.”

이 원장의 말을 자른 사람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호 주임이 다시 유심히 바라봤더니, 역시나 옆집 육군 병원 부원장이었다. 그리고 후자가 가리킨 방향에 창서성 마크가 붙은 카메라가 있었다.

봉사 진료에 취재가 붙었어? 질투심이 번쩍 스치던 호 주임은 크게 깨달아서 수술대를 바라봤다.

능연의 메스가 일식집 회칼처럼 춤추고 있었다.

액와신경……을 피하고, 또 피하고.

현란한 모습에 호 주임은 눈이 아른거렸다. 능연이 액와신경을 하나씩 박리할 때마다 정신도 몽롱해졌다.

능연 이 새끼, 액와신경 전공이냐?

너무 나대!

“마 선생님. 액와신경 분포 특징 말씀해 보세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술하던 능연이 갑자기 마연린을 부르더니 시험하는 말투로 물었다.

“아, 네…….”

살짝 졸던 마연린은 능연이 지목한 순간 확 깼다. 모두의 시선도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주방장이 갑자기 반제품인 식자재를 부하 도마 앞에 던진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식객들이 이를 갈며 먹을 것을 기다리는 앞에서.

마연린은 마누라가 새벽에 다시 깨워서 시작할 때처럼 위산이 솟구치는 느낌으로 우물쭈물 말했다.

“액와신경은 상완신경총 뒤 척수 분기, 견갑하근 표면에서 겨드랑이 후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마연린은 지금 레지던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어깨 수술을 해본 적 없는 젊은 의사에게 액와신경과 관련된 기본 지식은 모두 책과 공부를 통해 온 것이다. 마연린이 수족 외과 수술을 아무리 잘해도, 간 절제 수술을 아무리 많이 접했어도 마찬가지로 이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다.

하지만 운화병원에 들어와서 정직원 자리를 얻은 젊은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좋은 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이고, 이 정도 지식은 갖췄다. 가장 중요한 건, 아내와 생활을 잘 유지하면서도 어깨관절 방면 지식을 복습했었는데 잘 써먹은 것 같아서 속으로 조금 뿌듯했다.

마연린의 기본 지식을 확인한 능연은 별다른 말 없이 수술을 진행했다.

“소원근 박리할 땐 주의해야 해요. 윗각 박리는 액와신경 손상 없어도, 실수로 소원근 하각 박리했다간 손상될 수 있습니다.”

“네. 소원근 윗각 박리할 것.”

마연린이 다시 반복했다. 능연은 그 자리에 있는 연수의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액와신경은 삼각근을 지배하는 유일한 신경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니까, 특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안 되면 무모하게 도전하지 말고 전통적인 진입로로 들어가면 됩니다.”

다들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 현장에 도착한 호 주임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액와신경 박리의 함정은 지금 능연이 거론한 부분만 있는 게 아니고 곳곳이 함정이라고 해도 좋다. 당당한 주임 의사인 그도 외측 진입 수술은 거의 하지 않는다. 모든 이해득실을 고려한 결과였고.

호 주임은 갑자기 흠칫했다.

내가 왜 이렇게……. 음, 능연이 나한테 작업 치는 건가?

호 주임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속으로 이건 분명 능연이 그를 말로 누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능연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소원근에 관한 질문을 하던 능연이 어느새 깔끔하게 박리를 마쳤다. 부적절한 비유를 하자면, 조금 전까지 칼로 소 해체하는 것을 이야기하던 주방장이 눈 깜짝할 사이 발라낸 고기를 펄펄 끓는 탕에 집어넣은 상황이랄까. 게다가 옆에 소스가 담긴 그릇까지 준비해둔 채.

호 주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탐스럽죠?”

연수의인지 아니면 외부 병원 의사인지 모를 의사가 호 주임이 이 병원 정형외과 주임인지도 모르고 그가 침을 삼키는 모습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걸었다.

“능 선생이 심장 수술하는 거 예전부터 좋아했습니다. 멋있잖아요. OS 수술도 좋네요. 시원시원스럽게 하는 게 상남자스러워요.”

호 주임이 눈을 흘겨보았다.

“그냥 감상이죠.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외부 병원 의사가 목소리를 낮추며 거의 호 주임의 어깨에 달라붙어서 말을 이었다.

“능 선생 기술 말고도, 저런 프로 정신이 너무 좋아요. 이 야밤에 봉사 진료 수술이라니, 돈을 못 벌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돈 들이는 거잖아요. 이걸 누가 믿겠어요. 수술실 모자란다고 만날 우는 소리하는데, 이 시간엔 수술실 텅텅 비잖아요.”

호 주임의 눈이 점점 더 매서워졌다. 외부 병원 의사가 입을 떼려는데, 이 원장이 흠흠대는 소리가 들렸다.

“호 주임, 자네 OS에서도 젊은 의사 교육 좀 시켜야겠군. 시간 날 때 우리 능 선생 수술 좀 자주 보라고 해. 육군병원 OS에서도 이렇게 달려왔는데, 집 앞마당인데 우리가 헛발질하면 안 되지.”

호 주임은 얼떨떨해졌다가 카메라가 있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이 원장의 주식이 떡락한 게 틀림없다고, 그러니 헛발질 같은 단어를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원장은 머리에 발길질 당했나. 정형외과가 응급센터 부속 진료과가 될 생각이 아닌 이상, 젊은 의사를 보내서 배우라니.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거지. 우리 과에서 어깨관절 수술할 정도 되는 의사면 젊어도 서른인데, 박사 졸업하고 병원 들어오면 서른이 시작이고. 얘들이 나중에 부주임, 주임 되면 능연을 어떻게 마주하라고. 능연이 나이가 더 어리기까지 한데? 기다려도 안 죽는다고!

“액와신경은 힐튼의 법칙에 가장 부합하는 범례입니다. 마 선생님, 힐튼의 법칙은요?”

“아, 음…….”

능연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더니 이번에도 질문을 던졌다. 다시 긴장한 마연린은 조금 넋이 나갔다. 공기가 어색해지기 전에, 마연린이 재부팅을 끝낸 듯이 입을 열었다.

“힐튼의 법칙은, 어느 한 관절에 분포되는 신경은 동시에 그 관절을 움직이는 근육에도 분포되어 있고, 또한 이 근육이 insertion(뼈에 붙어 닿는 곳)의 표면에 있는 피부에도 분포된다는 규칙성을 지닌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깨관절 통증은 액와신경을 통해 전해질 수 있고, 또 액와신경을 통해 피부에 분포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슥슥 메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 주임 옆에 있던 외부 의사는 코웃음 치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이래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아야 하는 거지. 공부할 때부터 이론을 착착 쌓아두니까. 연수의들은 공부해야 할 때 안 하고, 나중에 노력해야겠다 싶어져서 남들 잘 때 다시 공부한다니까. 공부 잘한 학생은 대단한 인물 밑에서 수술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호 주임은 듣기 매우 거슬려서 툭하고 내뱉었다.

“능 선생도 병원 들어온 지 몇 년 안 됐습니다.”

“천재는 다르죠. 그러는 그쪽은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 지금 능연이 하는 수술, 할 수 있어요?”

외부에서 온 의사는 가차 없이 내뱉었다. 외과의는 원래 거친 사람들이었다. 어느 병원에서 온 지 모를 이 의사는 호 주임을 알지도 못하고, 또 신경도 쓰지 않아서 점점 가시 있는 말을 하게 되었다.

호 주임은 한동안 이렇게 첨예한 질문을 받은 적 없었다. 아니, 그의 마음속에서나 첨예한지도 모른다.

정형외과의 다른 주임 혹은 선임 외과의라면 ‘능연의 외측 진입로 너무 대단해’ 같은 말로 얼버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호 주임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질문 자체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능연이 지금 하는 수술, 내가 할 수 있나?

호 주임의 머릿속에 한 번 나타난 이 질문은 폭풍이 되어 눈앞을 어지럽혔다. 호 주임이 했었던 외측 진입 수술은 모두 예후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최악의 상황도 있었다. 다만 그동안 호 주임은 어깨관절 수술에 있어서는 자신이 능연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케이스가 눈앞에 드러나자, 더는 피할 수가 없었다.

오늘 이 환자를 내가 가로챘더라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진입로로 수술했어도 십중팔구는 수술을 잘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능연의 선택과 결과를 생각하면 조금 무기력해졌다.

“괜찮아요, 같이 배웁시다.”

곁에 있던 외부 의사가 피식 웃으며 호 주임에게 다가갔다.

호 주임은 마음이 괴로워졌다.

“반행 정맥(Accompanying Vein)도 주의해야 해요. 액와신경만큼 어렵진 않지만,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니까요.”

능연은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지만, 길게 말하진 않았다.

오늘 어시는 마연린이었다. 마연린은 이미 여러 분야를 메인으로 하고 있었고, 어깨관절까지 늘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능연도 지금 계몽식 교육을 하는 정도였다. 어찌 됐든 응급의학과 의사고, 앞으로 비슷한 경우를 만날 일이 있을 테니, 처리 방법을 알고, 처리하는 걸 본 경험이 있는 건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어떤 분야의 첫 번째 수술은 대다수 의사가 등 떠밀리듯 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 수술의 분류는 너무 디테일해서 모두 컨트롤할 수 없고, 대분류를 컨트롤하는 것만 해도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다. 현대 응급의학과가 갈수록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 발전 정도에서는 책, 동영상을 보거나 현장 수술을 보는 것만 해도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육군병원 리더들은 벌써 부러워져서 떠보는 말투로 운화병원 이 원장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의사들은 우리 때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군. 우리 때 남의 수술 볼 환경이 어디 있었냔 말이지.”

“관절경은 더 그렇지. 집도의가 보는 뷰를 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군요. 그렇다면 능 선생은 정말로 좋은 스승이군요.”

“그렇지.”

“음, 이해했습니다.”

신속하게 시작된 화제는 또 신속하게 마무리됐고, 사람들은 다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호 주임은 문득 우스워졌다. 이놈들, 카메라가 다 보는 앞에서 어색하지도 않나. 어색한지 아닌지 본인만 알겠지…….

“호 주임님.”

능연의 시선이 갑자기 향하자, 호 주임은 멈칫하며 머릿속으로 온갖 장면을 상상하다가 곧 침착하게 그를 바라봤다.

“음, 능 선생.”

응급센터 의사들은 더더욱 의외였다. 능연은 보통 수술 참관하는 의사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심심해서 호 주임을 한 번 가지고 놀아볼 생각인 건가.

정형외과는 호 주임을 비롯해 모두 임전 태세를 갖췄고, 마연린 등 응급센터 사람들은 모두 구경할 생각에 샌드위치 정리(Squeeze Theorem) 모드로 돌입하여 순간 고무되었다. 능연은 ‘원하느냐’의 표정으로 물었다.

“수술하고 싶어서 오신 겁니까?”

호 주임은 조금 얼떨떨해졌다. 능연이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분별 있는 사람이었다고?

곧바로 수술대를 바라본 호 주임은 갑자기 상황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메인 부분은 다 해놓고, 수술할 거냐고 묻다니, 나를 네 조수로 부른 거 아니냐?

얼뜨기 표정으로 능연 옆에 서 있는 마연린을 보는 순간, 호 주임은 더 확신했다. 능연이 오늘 데리고 온 조수는 어깨관절에선 초보로 마무리 스킬조차 낙제인 놈이었다.

그래서, 나를 주목한 것이냐, 능연? 이건 정말이지……. 대굴욕인걸? 쪼오오끔, 자랑스럽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능연이 인정해준 건 맞잖아? 하지만 인정해준 거라고 해도…….

호 주임은 화를 내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켕기는 거로 보일 테니까.

“안 그래도 그 환자 수술할 생각이었지. 그 환자, 원래 내 거였거든.”

호 주임은 조금도 꺼리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병원 돌아가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호 주임이 불만을 표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능연은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센터에 침상이 없어서요.”

“하, 침상이 없어도 그렇…….”

“이 수술, 원래 하려고 하셨다고요?”

능연은 호 주임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해줄 생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관점으로는 진료과의 권위나 진료과끼리의 경계, 이런 건 고려 범위 안에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 침대를 썼으니, 작은 보답 정도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능연은 요즘 가상 인간 사용에 익숙해진 상태라, 호 주임 좀 도와주는 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다. 호 주임은 능연의 물음에 다시 얼떨떨해졌다.

대답하지 않자니, 적절하지 않고, 대답하자니, 능연에게 넘어가는 거였다.

호 주임이 침묵하는 가운데, 이 원장이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 주임은 주로 전내측 진입을 쓰지?”

전내측 진입이란 삼각근, 대흉근 진입로로 어깨관절 수술에 쓰이는 여러 스킬 중에 가장 흔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어깨관절 자체가 정형외과에서 첨단 기술이라 전내측 진입로 자체는 그다지 ‘명예 포인트’에 가감할 거리가 없고 그저 화제를 돌리려고 꺼낸 말에 불과했다.

호 주임은 이 원장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수 없어서, 내심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전 보통 안정적인 방안으로 수술하니까요.”

“그럼 이번 기회에 커뮤니케이션 좀 해보지.”

“하하, 그럴 시간이 있다면…….”

“손 씻고 들어오세요.”

능연은 남의 말의 속뜻을 아랑곳할 사람이 아니었고, 들린 대로 바로 피드백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능연은 학생 때부터, 초등학생 여자, 중, 고등학생 여자, 대학생 여자들의 속셈에 깔려 죽었을 것이다.

호 주임은 못마땅한 듯 수술대를 바라봤다.

“수술 거의 끝나가지 않나.”

“마무리까지 하면 한 20분은 더 걸립니다. 게다가 뒤에 또 수술 있고요.”

능연은 손발 맞는 어시가 필요했다. 특히, 알아서 잘할 능력이 있어서 자기 시간을 크게 절약해줄 어시가.

그러나 호 주임의 뇌리엔 순간 하원정의 모습이 떠올라서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능연이랑 함께 수술 몇 건 하지 그러나.”

이 원장은 능연이 말 꺼내는 순간 바로 호 주임이 뭐라고 반응할지 짐작했지만, 호 주임의 속뜻이 뭐든 상관할 이유가 없었다.

능연 동지를 기쁘게 하는 것이 병원 리더인 그의 책임이니까. 이미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능연 선생은 운화병원의 스타이자 미래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호 주임은, 뭐, 평소엔 분위기 맞춰 주며 띄워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호 주임은 상사 마음속에 자신의 서열이 이렇게 낮은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똑같은 팀 책임자였고, 게다가 호 주임은 주임 의사이기까지 하니까…….

그러나 이 원장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손 씻으러 갈 건가?”

“예…….”

이 원장이 의문문을 썼지만, 상의할 여지가 없음을 잘 아는 호 주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손 씻으러 나갔다. 그렇게 수술실에서 나오고는 마음이 참 착잡해졌다.

나,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거지?

“주임님, 저도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함께 왔던 이 선생이 고분고분 호 주임을 따라갔다. 능연의 어시를 서게 됐지만, 옆에 누군가 허리를 납작 엎드리고 잡일을 해주기만 해도 주임님의 마음이 조금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호 주임은 순간 마음이 따뜻해져서 저도 모르게 온화한 눈빛으로 이 선생을 바라봤다.

“이 선생, 어쩌면 좋을 거 같으냐?”

이 선생은 호 주임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또 기회도 잡지 못해서, 계속해서 아까 했던 이야기대로 대답했다.

“그 만한전석 환자, 다 해버릴까요?”

“음……. 그럴 수밖에 없겠군.”

호 주임의 표정이 다시 단호하고 결연해졌다.

“주임님, 제가 하겠습니다.”

쉰 목소리로 입을 여는 이 선생의 얼굴이 스무 살은 더 늙은 듯이 버석했다. 이 선생보다 정말로 스무 살 많은 호 주임은 더더욱 눈 밑이 시커멓고 입술이 다 갈라져서는 노래방에서 삼박사일 고래고래 노래 부르기라도 한 듯 두 눈이 퀭해져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 같이 하자.”

“주임님은 좀 쉬세요. 능연이 이따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릅니다.”

이 선생이 나지막이 하는 말에, 호 주임은 숨쉬기도 힘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마찬가지로 나직이 대답했다.

“무, 무슨 수작을 부리든지 간에, 이어서 해야지. 밤새 수술하느라 우리도 죽을 거 같지만, 저놈도 마찬가지겠지. 다들 헐떡헐떡하고 있으니까,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시 손을 씻은 능연이 기운 넘치는 얼굴로 수술실로 들어왔다.

막 스테미너 포션을 마셔서 한창 기운이 넘치고 기분이 고조된 능연은 시간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여섯 시, 딱 좋네요. 다들 출근하기 전에 최대한 수술 몇 건 더 하고 나중에 사람 많아지면 쉬는 게 어때요?”

새 팀으로 바뀐 간호사와 마취의가 빌빌거리며 ‘예’하고 대답했다. 병원 제도에 따르면, 당직 간호사와 마취의는 응급 수술을 위해서 배정된다. 그러나 능연의 습관 때문에 수술과, 응급실, 그리고 마취과 모두 당직 방안을 바꿀 수밖에 없었고, 더 많은 인원을 야간의 ‘능연 수술’에 배치했다.

그러나 ‘능연 수술’이 힘들긴 해도 돈 받을 땐 짜릿했다. 그래서 다들 몸은 거부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능연의 요구에 고분고분 대답했다.

요즘은 돈 벌기가 똥 싸기만큼 어려운 시절이고, 일반외과 항문과 주치의들은 똥을 만져가면서도 능연의 어시보다 더 많이 벌진 못했다. 돈이라는 자극이 있으니, 아무리 새우기 힘든 밤도 어떻게든 버텨내야만 했다.

그러나 밤을 꼬박 새운 이 선생과 호 주임은 조금 달랐다. 두 사람은 비틀비틀하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하나만 더 버티자. 체력은 한계가 있는 법이야. 능연이라고 다르겠어?”

승부욕 강한 호 주임은, 아무도 경쟁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강인하게 버티며 말했고, 이 선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쟤도 분명 지쳤을 겁니다.”

“능연은 젊잖아. 스물 몇 아니야? 내가 스무 살 젊어지면, 저것보다 더 잘 버틸 수 있어.”

허풍을 한 번 떤 호 주임은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젊어도, 수술을 이렇게 많이 한 이상 어쩔 수 없을 거야. 우리 수술 시간은 늦으니까, 오늘만 버티면 된다. 만한전석 환자들을 그때 시작하면, 능연이 아무리 잘났어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퇴양난의 선택에 빠질 수밖에 없어.”

호 주임은 단호한 말투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략적으로 버티고 있는 거다.”

“예. 그럼 전 환자하고 이야기하고 오겠습니다.”

이 선생은 지금 몇 시인지 아랑곳하지도 않고 환자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습관성 탈구 환자였다. 여러 번 재진했지만, 수술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어오다 보니 하품만 해도 탈구, 잠만 자도 탈구, 기지개만 켜도 탈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정도로 진행된 환자는 환자 개인 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이 생기고 어려움이 닥치지만, 의사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주고 도전적인 문제가 된다.

호 주임은 이 환자를 흔히 있는 삼중 수술, 심지어 사중 수술로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환자로 판단했다. 이 환자는 ‘관절낭, 관절순 보수’, ‘견갑골 이식술’, ‘오훼골돌기 전이술’, ‘상박골 이식술’, ‘우완 인대 재건술’, 이 다섯 가지 빅 스킬을 써야만 각종 결함을 완벽하게 고칠 수 있다.

각각 단독으로 하자면 호 주임 정도 의사로서는 어려울 것이 없는데, 문제는 다섯 수술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위 ‘만한전석’이라는 단어로 이런 상황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만한전석에 나오는 요리는 비록 복잡 다변하고 까다롭지만, 그중 하나의 요리, 혹은 1/5의 요리, 또 혹은 1/3의 요리만 하면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다. 결국은 수량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 변질하면 굉장히 어려워지는 것이다.

과제의 양의 너무 많은 중상 난이도의 시험 문제가 인간의 기본 내공을 가장 시험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호 주임이라고 ‘만한전석’ 한 번 하는 것에 자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환자를 내놓자니 그건 또 억울했다. 일부러 소란을 피울 것까진 없고, 능연이 알아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다.

같은 시험 문제를 풀 때, 다 같이 풀지 못하거나 다 같이 낙제하면 느낌상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랄까.

“금식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상황을 대충 이해했고요.”

피곤한 얼굴로 핸드폰을 끊은 이 선생이 보고하자, 호 주임이 그를 바라봤다.

“이 시간에 안 잤대?”

“아파서 잠을 못 잤답니다. 환자도 마침 일찍 수술하고 싶어서 잘 협조하겠답니다.”

“음. 그런 병이긴 하지.”

호 주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잘 해낼 자신이 없는 수술은 그에게도 껄끄러운 일이었다.

그때, 준비를 잘 마친 능연이 두 사람을 힐끔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는데, 좀 쉬시죠.”

그러고는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제 막 들어온 연수의를 불러서 수술 준비를 하러 갔다. 이 선생은 의외이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한 얼굴로 호 주임을 바라봤다.

“안 해도 그만이야.”

안 그래도 지칠 대로 지쳤던 호 주임은 내친김에 털썩 둥근 의자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편안한지, 모공 180개가 다 방귀를 뀔 지경이었다.

“좌 선생님 왔는지 알아봐요. 왔으면 준비하고 들어오라고 하고.”

좌자전 교육 퀘스트가 아직 남은 능연은 그 김에 좌자전의 교육 준비도 했다. 좌자전의 쭈글쭈글한 얼굴을 떠올린 호 주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좌자전도 불쌍한 놈이지.

수술이 절반쯤 진행됐을 때, 좌자전이 광 나는 얼굴로 그제야 수술실에 나타났다. 맞선은 일단 제쳐두고, 일 욕심이 제일 많을 40대 남자였다. 능연의 작업 페이스를 잘 아는 좌자전은 괜히 숙소에 돌아가서 시간 낭비할 생각도 없어서 바로 휴게실에서 머리를 붙이고 잠들었다. 그래서 날이 밝기도 전에 전화를 받고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주무시고 온 거니까.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크게 고함치는 좌자전의 모습은 알뜰살뜰 살핀다기보다 주권을 선언하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능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재촉했다.

“Bristow예요, 선생님이 이어서 해요.”

“……제가요?”

좌자전이 멈칫하고 묻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좌자전의 수술 스킬을 트레이닝하려면 당연히 실력 발휘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어시만 해서는 실력을 올릴 수가 없지 않은가.

좌자전은 감동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능연 선생이 하던 수술을 나에게? 사자가 먹던 음식을 하이에나에게 나눠주는 거랑 뭐가 달라.

좌자전은 재빨리 모든 준비를 마치고는 온몸으로 행복감을 내뿜으며 능연이 해온 수술 노선을 따라 쭉 진행해 나갔다.

호 주임은 옆에서 보다가 얼떨떨해졌다. 그는 어느 정도 좌자전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좌자전의 수술 실력을 보고 나니 더 이해할 수 없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이 선생 역시 같은 의문을 품은 얼굴이었다. 호 주임은 순간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좌자전 좀 봐봐. 저 나이에, 학력도 별로고, 경험도 없고, 동작도 굼뜨고, 생긴 것도 그저 그런데, 수술을 저렇게 잘하네?”

“예.”

이 선생은 고분고분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보스의 말은 다 옳은데, 어쩔 도리가 있나.

울적한 마음을 풀 길이 생긴 호 주임은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능력이 좀 떨어져도 열심히 하면 된다니까. 좌자전은 너보다 재능이 떨어지는데도 이 정도로 수술하잖아. 너도 할 수 있어.”

이 선생은 계속해서 ‘예’하고 대답하고는 저도 모르게 능연을 힐끔 바라봤다. 호 주임이 싸우자는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보는 동시에 능연도 시스템 알람을 받았다.

- 퀘스트 완성: 퀘스트 완성: 조절 (2)

- 퀘스트 내용: 당신의 부하 좌자전이 여러 골절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부하에게 스킬을 전수하고 전문가급에 이르면 다음 골절 스킬을 열 수 있습니다.

- 퀘스트 보상: 어깨골절 Bristow 수술(그랜드마스터급)

“능 선생, 능 선생이 한 번 봐줬으면 하는 환자가 있어.”

호 주임은 능연이 수술 완료를 선포한 다음에 재빨리 다가갔다. 쉴 만큼 쉬었고, 능연이 자기보다 더 힘들 거라 가늠하고 다가간 것이었다. 이론적으로 능연은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일 테니까.

이런 때에 ‘만한전석’인 수술을 진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 결정 내리는 건 지극히 고통스럽고 고르기 힘든 순간이겠지!

호 주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전이다, 새꺄.’라는 눈빛을 쏠 뻔했다.

“어떤 환자인가요?”

능연 역시 시간을 살폈다. 그 역시 의료 봉사를 하다가 온 것이었다. 의료 봉사 환자의 수술을 끝내버리고 싶고, 또 한편으로 진료과 내부의 기한이 가까운 택일 수술을 해버릴 생각이었다.

이미 이름난 의사인 능연이 지금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의사가 된 건 너무나 당연했고, 상대적으로 줄 서서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도 갈수록 많아졌다. 그러니 서둘러 수술하지 않으면 수술이 미뤄져서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능연은 스테미너 포션을 써서 이런 혼란과 빽빽한 스케줄을 해결했다.

호 주임은 능연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거만함을 누르고는 말을 꺼냈다.

“습관성 탈구 환자야. 심각해. 만한전석으로 해야 할 거라고 초기 판단하고 있어. 가 보면 바로 알 거야.”

“만한전석이요? 괜찮네요. 역시 OS는 환자 리소스가 좋네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모르게 칭찬했고, 호 주임은 멈칫했다.

“이건 OS 리소스랑 상관없어.”

“음? 환자가 병원에 와서 접수한 거 아닙니까?”

“그건 맞는데……. 그래도…….”

호 주임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짜증스러워졌다. 전에는 정형외과의 풍부한 환자 자원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능연 앞에서는 뭐라고 자아를 표현해야 좋을지, 항상 껄끄러웠다.

마무리 작업 중이던 좌자전이 수술대 쪽에서 끼어들었다.

“능 선생이 하고 싶은 말은, 우리 같은 삼갑병원의 주력 진료과는 원래 사이펀 효과가 두드러진다는 말입니다. 환자들이 유명세 때문에 몰려든다는 거죠…….”

“그야…… 그렇지.”

호 주임의 눈앞에 하원정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늙고 무기력한 그 얼굴에, 한때 진료과 주임이 되고자 꿈을 품은 수많은 중년이 얼마나 마음 아파했던가.

“응급환자 아니니까 저녁에 와서 볼게요. 지금은 돌아가서 좀 쉴 생각이라서요. 십이천향 의료 봉사도 가야 해서 저녁에나 시간 됩니다.”

능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까 어떤 환자냐고 물은 것도 응급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응급센터의 응급환자 혹은 응급 지혈이 필요한 다른 수술실 환자였다면 바로 가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응급환자가 아니면, 특히 이런 ‘만한전석’ 환자는 조금 기다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 기다리는 걸 끝내주게 잘하는 환자가 아니라면, 어깨관절로 만한전석이 필요할 지경까지 이르지도 않는다.

그와 비교하면 의료 봉사 환자들의 상태가 더 긴급했다. 특히 외진 시골에서 온 환자들은 어제 소식을 듣고 곧바로 출발했어도 아직 오는 중일 것이다. 의료 봉사가 미뤄지거나 취소되면 큰 타격을 받는다.

능연은 준비한 건 절대로 쉽게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안 그랬다면, 오늘은 한 여자아이가 다리를 삐었다고 안아달라고 하고, 내일은 다른 여자아이가 강아지가 죽었다고 위로해달라고 하는 통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것이다.

호 주임은 능연 식의 일상생활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그의 개념으로는 누군가 어렵게 부탁한 일이 있다면 가능하면 먼저 고려해 주는 것이 당연했다. 특히 그는 정형외과 주임 의사였고, 능연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러나 능연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섰고, 호 주임은 다급해졌다. 이렇게 되면 괜히 함께 밤새워 준 거 아니냐?

게다가 만한전석 환자를 이렇게 아무런 대가 없이 내주고 싶지도 않았다.

“능 선생, 웬만하면 좀 보고 가지? 시간 얼마 걸리지 않아.”

호 주임이 이를 악물고 능연을 불렀다. 호 주임은 그 나이에 상응하는 늙은 얼굴이었고, 직책에 상응하는 부한 몸집이라서, 다급해서 방방 뛰어도 전혀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다.

좌자전조차 담담하게 물을 뿐이었다.

“호 주임님, 환자가 주임님 친척입니까?”

“그건 아니고.”

호 주임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내일 봐도 되잖아요. 다들 종일 고생했는데, 그렇게 다급하게 할 거 있습니까.”

“난 능 선생이 만한전석이라고 들으면 흥분할 줄 알았는데…….”

호 주임이 도발하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이야 남 눈치 보는 사람이 아니고,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깨관절 만한전석 정도는 OS에도 가능한 사람 있지 않나요?”

호 주임은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야 물론 그렇지만…….”

정형외과는 배우기 쉽고 익히기 쉽고, 학습 곡선이 짧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인 전형적인 진료과였다. 서른 몇에 수술에 정통하고, 마흔 몇에 수술 피크치에 이르는 경우도 분명 흔하다.

호 주임의 경력과 재능은 전국 범위로 보면 순위에 오르지도 못하지만, 어깨관절에 몰두한 그는 만한전석 같은 최고급 수술도 가까스로 해낼 정도는 된다. 흉부외과나 심장외과였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나이의 대다수 심장외과 의사는 기껏해야 기술 트리 절반에 이르러서, 호모에렉투스처럼 나무에 기대서 과일을 따 먹을 수만 있어도 매우 흡족해했다.

한동안 정형외과에서 놀던 능연은 이제 정형외과가 질렸고, 블론드 레벨인 간 수술과 다이아몬드 레벨인 심장 수술에 익숙해져서 고난도 어깨관절 수술엔 흥미가 그다지 강렬하게 일지 않았다. 특히 무거운 방호복을 입어야 하는 수술은 더 그랬다. 그래서 호 주임의 말은 능연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필요하면 협진엔 참여할 수 있습니다.”

큰 도움 준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상, 지금 능연의 실력으로 정형외과의 협진에 참여하는 건 도움이긴 했다. 게다가 실질적 도움도 줄 수 있고.

호 주임은 더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심지어 조금 어이없어져서 능연과 좌자전을 바라봤다.

“협진 요청서만 보내주세요.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좌자전이 호 주임을 향해 따사로이 웃어 보였다.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얼굴에 직급보다 훨씬 마른 몸이라 호 주임의 상사 같은 모습이었다.

치익 소리와 함께 능연이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호 주임님, 지금 요청서 보내주시면 마무리하고 제가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좌자전은 싱긋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숙이고 수술에 몰두했다.

“됐어. 능연이 시간 안 되면 내가 하면 돼.”

호 주임은 만사가 순조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패전북을 두드리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좌자전은 이대로 그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정형외과는 그가 가장 능숙한 진료과고, 능연 대신 큰 수술을 한 번 확정지어 줄 수 있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좌자전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능 선생 돌아오면 찾아가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한다고.”

호 주임이 강조하며 다시 말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한 좌자전은 다시 싱긋 웃었다.

“오후에 끝내시면 우리는 빠지겠습니다.”

즉, 오후에 끝내지 못하면 끼어들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호 주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 역시 밤을 꼬박 새운 몸이었다.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데, 만한전석 같은 수술을 어떻게 할까.

능연이야 호 주임의 사정 같은 건 상관할 필요가 없었고, 집으로 가서 잠시 쉰 다음 예정대로 헬리콥터를 타고 십이천향으로 향했다. 번호표를 받은 마을 주민을 진료하고는 다시 날아왔을 때는 마침 쉬고 돌아온 어시들도 기운이 가득 넘칠 때였다.

그렇게 어시들에게 둘러싸여 응급센터 회진을 마친 능연은 정형외과 수술을 자주 하는 초짜 의사 몇을 지정해서 정형외과 수술방으로 향했다. 좌자전이 한 걸음 앞서가며 호 주임에게 전화를 넣었다.

비몽사몽 자고 있던 호 주임은 좌자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시공간이 돌아가는 느낌에 우선 오늘이 며칠인지부터 물었다.

“23일입니다. 아침에 말씀드렸듯이, 능 선생이 지금 십이천향에서 돌아왔습니다.”

좌자전은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쪼렙 주임이었다. 그 말에 호 주임은 머리통을 힘껏 내리쳤다.

“벌써?”

“예. 능 선생은 잠시 쉬다가 아침 10시에 십이천향에 가서 의료 봉사를 마치고 점심때 한 시간 쉰 다음에, 오후 6시 30분에 운화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회진을 마쳤고, 지금은 20시 45분, 별일 없으면 능 선생은 21시에 병원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이제 곧 정형외과 병실에 도착합니다.”

좌자전은 아예 능연의 일정을 읊어 주었다. 아무래도 능연의 일정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드니 말이다. 적어도 마지막 말은 알아들은 호 주임이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곧 병실이라고?”

“예. 지금 간단하게 협진하고요, 응급상황이 아니면 내일 이후로 수술 잡을 예정입니다. 이제 막 깨신 거죠? 그러게, 늦지 않을 거라고 했잖습니까.”

“아직 깨지도 않았…….”

좌자전이 실실 웃으며 하는 말에 호 주임은 고함치다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대충 옷을 입으면서 옆 침대에서 자는 이 선생을 걷어차서 깨우고는 휴게실에서 나와 병실로 달려갔다.

그와 이 선생이 흐트러진 매무새로 병실 복도에 도착했을 때, 능연도 마침 초짜 의사를 거느리고 복도 저편에 나타났다. 새로운 하얀 가운을 입은 능연이 맨 앞에, 그 뒤로 V 진형으로 좌자전, 연문빈, 마연린 등이 따르고 있었다.

이 선생은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봤다.

“누가 보면 우리 잡으러 오는 줄 알겠습니다.”

이 선생이 침 묻은 입가를 쓱 닦으며 하는 말에 호 주임이 반문했다.

“그럼 아니냐?”

“아야야야…….”

환자 왕규방은 의사들이 들어왔을 때 이미 식은땀을 송골송골 흘리고 있었다. 능연이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땐 저도 모르게 고함을 쳤고, 인정 없이 웃던 이 선생은 바로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꽤 오래된 환자입니다. 어깨 부위 습관성 탈구, 보존치료 위주로 진행하다가 도저히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수술에 동의했어요.”

왕규방도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맞장구치고는 다시 물었다.

“고칠 수는 있는 거겠죠?”

“한번 볼게요.”

능연이 다시 손을 내밀었고, 역시나, 환자 왕규방도 다시 고함쳤다.

“마취하고 해요. 기절시킨 다음에 만지면 되잖아요.”

좌자전은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환자를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이 검사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마취하고 나면 정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아파서 그러죠. 정말로 아프다고요!”

왕규방은 그렇게 말하면서 좌자전을 손을 잡고 힘껏 힘을 주었다.

“보라고요. 얼마나 아픈지 보라고요.”

그녀의 딸과 사위가 이마를 짚었다. 사위는 미안한 듯이 입을 열었다.

“장모님 병이 너무 오래되어서.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서 그래요. 저기…… 죄송합니다…….”

좌자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연이 촉진할 때마다 아프다고 고함치는 환자를 바라봤다.

“통증을 1에서 10이라고 치고, 지금은 몇인 거 같아요?”

“10이요! 10!”

왕규방이 돼지 잡을 기세로 고함치자, 좌자전이 잠시 있다가 지금은 어떠냐고 다시 물었다.

“12요! 12!”

“지금은 안 건드렸는데요.”

좌자전이 목소리를 깔고 답한 말에, 왕규방의 목소리가 뚝 그쳤고 병실 안도 조용해졌다.

후우…….

다들 감탄하는 소리를 냈고, 귀를 막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왕규방의 표정은…… 별 변화 없었다.

“아까 아팠던 게 계속되어서 그런 거예요.”

“진단할 수 있게 정확한 정보를 주셔야 합니다. 소리만 질러대 봐야 진단에 영향 줄 뿐이고, 환자분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좌자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환자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병원 의사들은 환자 교육을 내키지 않아 할 때도 내켜 할 때도 있다. 지금은 비교적 내켜 하는 상황에 가까웠다.

왕규방의 안색이 변했고, 능연을 다시 바라봤다.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데. 보통 사진 보고 판단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능연 선생은 보통 의사가 아니니까요.”

좌자전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럼, 내 어깨를 고칠 수 있나요?”

왕규방은 이번엔 그렇게 물었다. 다년간 병원에 다녀 본 환자로서, 의사들은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능연 역시 곽 주임에게 그렇게 교육받은지라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

“신체검사부터 하고 수술 전 진단을 충분히 하는 게 환자분 어깨 수술에 더 유리하고 예후도 더 좋습니다.”

좌자전도 덧붙였다.

“어깨 수술은 부작용이 매우 많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따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릴 겁니다. 이런 큰 수술인데, 의사가 사전에 제대로 검사하길 바라시죠?”

“충분히 검사하면 어깨를 고칠 수 있나요?”

왕규방의 물음에 좌자전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깨를 치료한다는 전제로 충분한 검사를 하는 겁니다.”

“그럼 누가 수술할 건가요?”

왕규방의 시선은 좌자전을 지나쳐 뒤에 서 있는 호 주임에게 향했다. 종일 몇 시간밖에 자지 못한 호 주임은 지치고 늙어 보이는 대신에 놀랍게도 명의 느낌이 났다.

호 주임은 잠시 머뭇거렸다. 푹 쉰 상황이라면 혼자 수술하는 걸 더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기가 세팅한 작은 판이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모순적인 마음으로 갈등하고 있는데 환자 왕규방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렇게 물었다.

“누가 수술을 더 잘하나요?”

이 정도로 몸이 아프면, 정말이지 말을 가리지 않고 하게 된다. 어깨 통증만 사라질 수 있다면, 조금만 더 편안해진다면, 바랄 게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의사 모두 순간 껄끄러워졌다. 사실 평소라면 그럴 것도 없다. 같은 진료과 의사라면, 다들 수준 차이가 있을뿐더러 직위, 직책 고하가 있어서, 설사 말주변이 안 좋은 환자를 만나도, 레벨 낮은 의사는 겸손하게 마주하고 레벨 높은 의사는 겸허하게 마주하면 되어서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두 진료과가 함께 있는 자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양측이 안 그래도 팽팽한 상황에서는.

호 주임은 입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고, 좌자전도 머릿속에 빙글빙글 맴도는 언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능연은 호 주임을 힐끔 보고는 시스템을 소환했다.

‘시스템, 시스템. 내 ’어깨관절‘ 기술, 지금 몇 등이나 됐지? 호 주임은?’

-당신의 Latarjet 수술 스킬 레벨은 운화시 일등, 창서성 일등, 중국 8등입니다. Bristow 수술은 운화시 일등, 창서성 일등, 중국 11등입니다. 어깨 관절경 스킬은 운화시 일등, 창서성 일등, 중국 35등입니다.

잠시 말을 멈췄던 시스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호 주임의 Latarjet 수술 스킬 레벨은 운화시 5등, 창서성 6등, 중국 1,455등입니다.

“제가 더 잘합니다.”

결론을 들은 능연은 자연스럽게 왕규방의 질문에 대답했다. 모두가 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눈만 껌뻑이는 바로 그때.

좌자전은 멈칫했고, 호 주임의 안색이 서서히 변했다.

호 주임, 반박 모드를 준비하다.

호 주임, 생각에 잠기다.

호 주임, 입 닥치고 침묵하다.

자신감을 따지면, 주임 의사급까지 왔는데 부족할 리 없다. 그리고 뇌도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이 뇌라는 것은 일단 사고를 시작하면 주인에게 별로 안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오곤 한다.

어떤 때는 표면 아래 감춰진 작은 현실과 큰 잔혹함일 때도 있다.

아직 완전히 깬 건 아니지만, 뇌를 굴려본 호 주임은 여기서 자기가 능연보다 수술을 더 잘한다고 말하면 앞으로 결코 쉽지 않을 도전이 닥칠 것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리고 능연은……. 능연은 벌써 화이트보드를 꺼내서 왕규방의 수술 스케치를 그리고 있었다.

“환자분 어깨 탈구가 심해서 여러 가지 수술 방안을 사용해야 할 겁니다. 정상적인 어깨 관절외측에 상박골이 있습니다. 큰 공이라고도 부르죠. 그 안에 견갑골이 있습니다. 큰 공의 작은 받침대 같은 거죠. 그 주변에 관절 인대가 있어요. 환자분은 어깨 탈구로 관절낭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처음 탈구됐을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큰 공이 계속해서 밖으로 나오는 거죠.”

능연은 환자를 향해 간단한 기초 원인과 방법을 설명했지만, 오히려 주변 의사들이 매우 유심히 듣고 있었다. 다들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대의 교육 능력도 급이 있다. 명문 의대라고 해도 너무 많은 과목이 있어서 대부분 내용은 그저 거론하고 넘어가는 정도였고, 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할 뿐이었다.

정말로 능연처럼 이렇게 스케치를 그려서 강의해주는 수업은 대다수 학생이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학교에 그런 수업이 없으니, 병원의 선배가 그만큼 공들여 설명해 줄 일은 더더욱 없다. 중요한 건,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해 줄 능력이 그들에게 없다는 것이고.

능연은 쉬운 것부터 점점 어려운 것으로 설명해 나갔다.

“결함을 채우는 것, 이게 바로 관절낭, 관절순 보수술입니다. 그다음이, 탈구 후 어깨관절인데, 관절와에도 손상 혹은 결함이 있을 수 있어요. 환자분이 바로 그런 케이스로…….”

능연은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했다. 그의 스케치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설명하면서도 전혀 영향받지 않고 잘 그렸다.

국내 환자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설명 방식이었다. 왕규방은 감동해서 어깨가 정말로 아파오는 것도 꾹 참고 진지하게 들었다.

이 선생은 숭배하는 눈빛으로 잠시 능연을 바라보다가 곧 그가 적임을 인식하고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 호 주임을 바라봤다. 재촉이 담긴 눈빛이었다. 옛말에 부처도 화를 낼 때도 있다는데, 하물며 이 주임은 종일 지쳐 있다가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불려 나온 주치의였다.

한 바퀴 돌아보고 들어가라고 깨운 거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울화통이 터졌을 거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게 있는 개인 회식에서 180번 욕해줄 것이다.

호 주임은 이 선생의 마음을 매우 이해했다. 그 역시 주치의였던 시절이 있고, 한때 주임을 미워했었으니까…….

능연이 ‘만한전석’ 강의를 하는 걸 본 호 주임은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능연의 스케치 강의가 너무 명확했다.

의사들에게 설명하는 거라면 능연도 조금 더 간략하게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 상대이니 당연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어떤 의미로는, 호 주임은 이 내용이 너무 잘 이해됐다.

교과서식 수술 스텝에, 반박할 수 없는 수정 내용도 다소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능연의 수술은 환자의 실제 상황에 맞춰 방향성 수정도 했다. 방향 선택은 당연히 토론할 여지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호 주임은 능연과 수정 방향에 관해 토론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특히 능연이 이런 실력을 드러냈을 때, 호 주임은 자기가 능연의 수술 방안에 매우 동의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안에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을 거라는 것이 더 걱정됐다.

무턱대고 반대 의견을 낸다는 것은 적에게 칼을 건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안으로 하지.”

호 주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한전석 수술 환자를 데리고 온 건 그였다. 그리고 팀 내부에서 여러 번 토론한 끝에 이 케이스를 초 어려운 케이스라고 생각해서 능연을 테스트하기 위해 들고나온 것이었다.

사실상 어깨관절 영역에서 가장 어려운 수술이기도 했다. 더 깊이 파고든다고 해도, 기껏해야 정밀도에서, 의료 이념에서 진보했을 뿐이지, 단순히 난도로 따지면 이보다 더 어려운 수술이 있다고 할 순 없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난제를 능연이 이토록 명백하게 설명하는데 호 주임이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호 주임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설명을 마친 능연은 펜을 내려놓고 호 주임에게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호 주임에게 향했다. 이 선생님을 포함해서.

호 주임으로는 조금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왜 나에게 묻나. 능 선생이 수술 스텝을 다 준비해놓고, 내 말이 무슨 소용 있다고.”

호 주임은 영문을 모르는 척 물었다. 사실 조금 영문을 모르기도 했다.

“그래도 도움 되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으니까요.”

능연은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가끔은 그도 학회에서 꽤 다른 견해의 의견을 들을 때도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가끔 각종 학회에 참가하는 것이고.

호 주임 같은 어깨관절 전문가는 -비록 전국 순위 1,455등이지만- 어찌 됐든 절묘한 기술을 갖췄다. 사실 그보다 순위가 높은 사람 중에 많은 이가 어깨관절 수술을 거의 하지 않고 능연처럼 기본 내공으로 많은 사람을 압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순히 어깨관절에 대한 이해만 따지면, 호 주임에게도 얻을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네 수술이니, 네가 결정하면 돼.”

호 주임은 단 한 마디로 능연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정형외과 환자입니다. 수술 후에도 주임님이 개입하셔야 하고요.”

그 말에 호 주임이 싸늘하게 웃었다.

“네가 다 하고 우리에게 넘기는 건 뭔데…….”

이런 플로우에 익숙한 좌자전이 담담하게 설명했다.

“수술은 OS 것이 되는 거죠. 자재 비용 등등 모두 OS 거고요. 본원의 수술비로 출장 수술 한 건 한 셈이죠. 정 수술비를 주기 싫으면 안 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ER을 등쳐 먹은 게 되잖냐.”

“몇 번 더 등쳐 드셔도 됩니다.”

호 주임이 코웃음 치면서 하는 말에 좌자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능연이 요즘 진짜 출장 수술을 나갈 땐 수술 한 건당 수술비가 기본이 만 위안부터다. ‘만한전석’ 같은 5 in 1 수술은 못 해도 간 절제, 심지어 심장 우회술 기준으로 한 번에 2, 3만 위안, 심지어 더 많이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게 비교하면 본원 내부 수술비는 딱히 가치가 없다. 5 in 1 수술이라고 해도 자재 커미션 등 수입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좌자전은 능연이 보는 앞에서 돈은 필요 없다고 대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호 주임도 돈 필요 없다고 강하게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 보면 돈을 받지 않는다고 능연이 수술하는 걸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수술은 능연이 하고 공돈은 자기 진료과에 생기는 것이니 꽤 먹음직한 일이었다.

“됐습니다. 수술 준비하세요. 호 주임님도 관심 있으면 들어오세요.”

능연은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정형외과 침대를 쓰는 것이니 예의 있게 대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 환자 수술 후 단계에서도 정형외과 주치의와 간호사가 돌보는 게 좋고, 문제가 생겼을 때도 물론 정형외과 상급 의사들이 결정하는 게 더 좋다. 안 그러면 응급센터 의사들이 왔다 갔다, 불편한 건 접어두고 쉽게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능연은 해당 진료과 의사들이 자기 수술에 참여하는 걸 더 선호한다. 자주 타과 침상을 사용하는 능연으로서 이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눈 감고도 결정 내릴 문제였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은 적 없는 호 주임은 한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생각하기도 전에 능연 일행은 벌써 자리를 떴다.

호 주임과 이 선생은 환자에게 웃어 보이고는 주저주저 뒤따라갔으나 능연과 수하 의사들의 뒷모습만 보았다. 그 시건방진 기염을.

“자러 가자.”

호 주임은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고, 능연 일행이 사라지자 돌아섰다. 이 선생은 동침할 어린 신부처럼 고개를 숙이고 뒤따라갔다.

정형외과 휴게실은 엉망진창 어지러운 것이 별 변화도 없었고, 자고 있는 의사들의 자세조차 변화 없었다.

매우 지쳐서 금세 잠들 줄 알았던 호 주임은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들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호 주임이 벌떡 일어나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 선생을 불렀다. 이 선생도 잠이 들지 못했는지, ‘호 주임님’하고 대답했다.

“수술실에 가자.”

호 주임은 왜 잠 못 자고 있는지, 이 선생에게 묻지도 않고 하얀 가운을 대충 걸치고 다시 수술층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어젯밤 같이 수술했던 의사들이 아직 여럿 있었다. 호 주임을 보고 다들 자연스럽게 인사할 뿐, 왜 왔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뱃속 가득한 말을 할 곳이 없이 서 있던 호 주임은 정형외과 의사를 보고는 그를 불렀다.

“능연은 수술 시작했나? 보고 왔어?”

“봤습니다.”

정형외과 의사는 매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어떻든?”

“멋있긴 끝내주게 멋있죠.”

정형외과 의사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제 수술 시간이 되어서 먼저 나왔습니다.”

호 주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바심 가득하던 마음이 갑자기 냉정해졌다. 그의 수술은 선임 주치의들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보러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높은 평가를 주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없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 호 주임은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 온 수술실에 의사들이 가득했고, 라이브 중계도 처음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간호사 하나가 다가오더니, 호 주임과 이 선생에게 각각 무선 이어폰을 건넸다.

“이게 뭐예요?”

호 주임이 살짝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북경 의사가 능 선생 수술을 평가하고 있어요. 이어폰으로 들으시면 돼요.”

간호사는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이어폰을 호 주임에게 찔러주고 돌아섰다. 호 주임은 고개를 저으며 될 대로 되라는 듯 이어폰을 꼈다.

익숙한 음성들이 바로 귓가에 들렸다.

“옛것을 보존하면서 고치는 게 기본 원칙입니다. 기본이라는 건 말입니다, 아주 중시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런 방면으로 보면 능연이 아주 잘하고 있어요.”

매우 놀라서 두리번거리던 호 주임은 친한 정형외과 의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병원에서 만한전석 수술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 선생님이 특별히 보고 계셔요.”

친한 정형외과 의사가 미소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호 주임이 주변을 둘러봤더니, 긴 탁자 뒤에 도도하게 앉아 있는 유 선생의 모습이 한 모니터에 보였다.

능연이 쓰는 수술실은 보통 모니터가 잔뜩 있고, 그저 30분 전에 운리 직원에게 통보하기만 하면 운리 직원이 바로 수술실에 열 개 이상의 모니터를 설치한다. 자주 보는 티비 프레임과 디스플레이는 모두 소독한 후 운화병원 수술층 창고에 보관한다.

호 주임은 모니터가 이렇게 많은 수술방이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유 선생을 비추는 모니터를 찾은 후엔 상대의 얼굴 그리고 유 선생의 사무실로 보이는 배경이 똑똑히 보여, 머릿속에 그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유 선생님한테 어깨관절 수술을 배우셨었죠?”

친한 정형외과 의사가 뻔히 알면서 그렇게 물었다. 병원 규모는 뻔했고, 진료과에 의사가 스물, 서른 남짓 있으면 큰 진료과에 속한다. 게다가 병원 환경은 유명할 정도로 안정적이고 폐쇄적이다. 다들 같은 의국에서 생활하고, 같은 층에서 3년, 5년, 10년 심지어 30년 일하다 보면 서로 질릴 정도로 알게 된다. 특히 서전이라는 포지션은 서로 탐색할 것도 없이, 수술 몇 번만 같이 해도 상대의 친척 관계는 기본적으로 꿰게 된다.

한 번도 유 선생과의 관계를 자랑한 적 없는 호 주임은 지금도 겨우 웃어 보이며 예전에 말하던 대로 말했다.

“북경에서 연수할 때 유 선생님 밑에 있었지. 그때 했던 프로젝트도 유 선생님이 지도하셨고.”

“어깨관절 쪽이요? 유 선생님 밑에서 프로젝트 하셨다니, 기본을 탄탄하게 다지셨네요.”

호 주임은 상대가 비꼬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고, 따지기도 귀찮아서 그저 ‘음’하고 입을 다물었다.

유 선생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정형외과 전문가이자 어깨관절의 권위자로 해마다 전문가 컨센서스를 집필하고 중국 의학 가이드 제작에 참여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호 주임은 고작 운화병원의 일개 주임일 뿐이었다. 예전에 북경에 연수하러 갔을 때는 이제 막 주치의에서 부주임으로 승진한 의사였고.

그렇긴 해도, 그 당시 연수에서 배운 것이 지금 성공의 기초가 되긴 했다. 북경의 의학 발전은 지방 병원과 비교하면 10년은 더 빠르다. 특히 원리성, 원칙성에 관한 것들에 있어서 북경의 정상급 병원, 연구소는 운화병원 같은 병원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어떤 의미로는, 호 주임이 어깨관절 방면 전문가가 된 가장 큰 역할은 북경 연수 시절에서 얻은 것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유 선생 밑에서 배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 정상급 어깨관절 전문가와 예비 전문가와 얼굴을 익혔다. 그때의 프로젝트 성과와 연구 방향으로 운화병원에서 단단히 자리 잡고 앞서 나갔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지방 병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식이었다. 근면 성실함과 재능만으로 스스로 올라간 의사는 평범한 시(市)급 혹은 성급 일반 삼갑병원 주임 자리가 한계고 성급 일류 삼갑병원 주임 자리에 오르는 건 조금 불가능해진다.

요즘은 젊은 상급 의사들은 좋은 스승이 있거나 좋은 상사를 만났거나, 대부분 둘 다 갖춘 경우다. 나이 많은 상급 의사들도 당연히 출세 루트가 있고, 북경, 상해 두 지역 정상급 병원에 연수 가는 것이 바로 매우 결정적인 루트다.

호 주임은 원래 은근슬쩍 자기와 유 선생의 관계를 흘렸고, 들뜬 때는 ‘사제’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유 선생의 목소리는 그저 낯설기만 했다.

“최고로 안정적인 구조를 설립하는 것이 만한전석의 목표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만한전석이라는 이 큰 수술을 선택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까, 수술의 가성비도 그렇고 환자를 생각해도 그렇고, 수술 구상은 높게 잡아야 하지. 그러다 보면 우리 의사들이 조작할 때, 더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지요…….

음, 이 부분 좋군. 세심하고 강인해. 나는 능 선생을 두 번밖에 못 봤고, 인사는 한 번 주고받았지만, 영상을 자주 봤습니다. 좋아하는 의사를 고르라면, 능연은 분명 그중에 포함됩니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의사는 바로 이름을 부르곤 합니다. 전설봉도 그렇지요. 누구는 전 원사하고 부르고, 누구는 전 원장이라고 부르지요. 또 전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내 생각엔 이렇게 독보적인 의사는 이름을 불러줘야 다들 똑똑히 기억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독보적인 존재가 됩니다.”

호 주임은 이어폰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모니터에 보이는 얼굴을 보며 속으로 더할 나위 없이 황망함을 느꼈다.

유 주임이 너무 온화하고 너무 자상했다.

그의 기억 속의 유 주임의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학술회의에 참석해서도 유 선생은 종종 비판적인 말투로 의사들을 평가했다. 표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호 주임은 심지어 자기가 무릎 관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을 때 망치를 빼앗던 유 선생의 표정도 똑똑히 기억했다. 그날 밤 식사 자리에서 두꺼운 굴 껍질을 칼로 파내던 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어폰에서 유 선생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뒤이어 유 선생의 감정이 잔뜩 실린 목소리가 들렸다.

“능 선생은 사실 타고난 정형외과 의사입니다. 우선 첫 번째, 다들 보고 있듯이, 아, 잘생김이 아닙니다. 그건 네 번째고. 첫 번째는 젊음입니다. 정형외과 의사는 젊을수록 좋지요. 내 나이쯤 되면 말입니다, 수술 하나 하려면 큰 수술일수록 기력이 참 달립니다. 힘이 없으면 정형외과 의사 하기 힘들지요. 그다음은, 능 선생의 섬세함입니다. 우리 의사들은, 수술할 때 섬세함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작은 뼛조각 말이에요. 시야 범위 안에 있는 뼛조각을 모두 찾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골격 구조, 운동 방향을 고려해서 뼛조각이 어디에 더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호 주임은 저도 모르게 더 바짝 다가가서 고개를 내밀고 능연의 수술을 지켜봤다. 유 선생의 말대로, 지금 능연은 더할 나위 없이 진중한 자세로 열심히 인대 봉합 중이었다.

그리고 이 간단한 봉합만 봐도 능연의 내공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눈으로 봐도 완전히 똑같은 바늘땀, 굉장히 고른 위치……. 호 주임조차도 능연이 지금 심장외과 기준으로 정형외과 수술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정형외과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기본기입니다.”

이어폰 안의 유 선생은 더더욱 아낌없이 능연을 찬양하고 있었다.

“우리 정형외과 의사는 바로 이런 기본기 연습이 부족합니다. 수술할 때 세심하지 못해요. 그렇게 우리 정형외과 발전이 늦어지고 있어요. 어깨관절 수술은 전 세계 범위로 봐도 첨단 기술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빅리그부터 스몰리그, 청소년 야구 애호가까지, 일본과 한국 야구 선수도 많지요. 세계 각지 골프 선수 등등, 해마다 어깨관절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지극히 많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잘해 내는 의사는 너무 적습니다. 사실 다들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 수술 레벨, 수술 후 매니징 작업이 세계 일류 수준까지 오르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말입니다.”

호 주임의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외국 프로 선수들이 병원으로 몰려드는 광경이 떠올랐다.

“호 주임님.”

이때, 능연은 앞으로 나온 호 주임을 발견하고 시원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먼저 가서 준비하셔도 됩니다. 메인 부분, 30분 정도면 끝납니다.”

“나는…….”

“오, 호 주임, 마침 잘 되었군. 자네 수술 솜씨 좀 보여주게.”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 입을 열던 호 주임은 모니터 안에 유 주임이 궁금한 기색을 드러내자 고분고분 수술실을 나갔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나가서도 귀에 꽂힌 이어폰에선 여전히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이것이야말로 만한전석이지.”

힘껏 손을 비비던 호 주임의 뇌리에 갑자기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옹알옹알 배우는 아들에게 7 스텝 손 씻기 방법을 알려 주었었다. 손 씻기를 알려주면서 ‘아빠가 손꾸락 닦아 줄게염’ 하며 말도 가르쳐 주었다.

기억이 또 갑자기 북경 연수의 시절로 튀었다. 사실 같은 시기였다. 그는 진료과의 탑이 되려고 옹알이하는 아이를 의연하게 떠나 멀리 북경까지 가서 일 년 연수했었다.

그때 유 선생은 아직 유 교수라고 불리던 시절이었지만, 엄격함으로는 북경 탑으로 손꼽혔다. 호 주임과 나이 비슷한 연수의들은 서른 넘어서 이제 인턴이 된 것처럼 새로 시작한 기분이었다.

가족의 굴레, 사회의 압박, 학습의 고통, 교수의 엄격함, 관계의 복잡함, 경제적 압박 등 이런저런 부담이 몸을 짓누르는 느낌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호 주임은 늘 ‘다들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지’하며 스스로 위안했었다. 그런데 오늘 능연을 대하는 유 선생의 따듯한 칭찬에, 호 주임은 마음이 흔들렸다.

능연은 내가 북경에 갔을 때보다 어린 나이인데, 제가 뭐라고…….

“호 주임님, 저희 슬리퍼 한 번 써 보시겠어요? 굉장히 편하답니다.”

운리 이름표를 단 제약회사 직원이 묵묵히 다가와 입구에 선 채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무슨 슬리퍼?”

생각에서 깨어난 호 주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의사 선생님들이 슬리퍼를 다들 아무거나 신잖습니까. 오랜 시간 서 있으면 불편하잖아요. 저희가 고른 이 슬리퍼는 의사 선생님들 전용으로 디자인한 겁니다. 응급센터 선생님들이 써 보고 다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임님도 한 번 써 보시면 어떨까 해서요.”

“아, 근데 왜 OS엔 추천하러 오지 않았나.”

하루에도 온갖 제약회사 직원을 만나는 호 주임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이제 막 정식 추천 중입니다. 마음에 드시면 바로 우리 운리에 말씀해 주십시오. 다들 넉넉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지.”

손을 다 씻고 슬리퍼로 갈아신던 호 주임은 나가기 전에 능연을 떠올리고는 가리키는 바가 있는 말투로 말했다.

“운리는 응급센터랑 특별히 잘 지내는군.”

이런 화제는 보통 피하기 마련인데, 눈앞의 이 직원은 느긋하게 웃는 얼굴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희 대표님이 능 선생님을 좋아하니까요.”

호 주임은 멈칫하다가 할 말 없다는 듯 신을 신고 사라졌다.

“후아, 후아.”

호 주임은 수술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수술실 문을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힐끔 돌아본 순회 간호사가 바로 다가가 노련하게 수술 가운을 입히고 장갑을 끼워주었다.

“호 주임님.”

어시하던 좌자전이 호 주임을 힐끔 보고는 민첩하게 자리를 내어주자, 호 주임이 고개를 끄덕이며 능연의 맞은편으로 가서 섰다.

환자와 접촉하기까지의 과정이 어찌나 순조로운지, 미끄러질 듯했다. 그 느낌이 마치 작년 3월에 서자호반의 호텔에서 마주친 나긋나긋하고 귀여운 여인을 만났던 때 같았다.

호 주임은 순간 화들짝 놀라면서, 능연이 매복하고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수술대에서 내려온 좌자전이 무시하는 얼굴로 호 주임을 바라봤다. 발꿈치로 생각해도 지금 호 주임의 속마음이 읽혔다. 출장 수술을 잔뜩 하면서 능연을 따라 여러 도시를 돌아온 좌자전이었다. 그동안 만났던 상급 의사들의 생각이라 봐야 사실 대동소이했다.

능연은 맞은편 퍼스트 어시가 바뀌는 것에 익숙했다. 학생 때, 그의 짝꿍이 뜬금없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너무 빈번하게 바뀌니까 오히려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오훼돌기 부근 부속 인대 조심하시고요.”

능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귀띔해 주었고, 그런 능연을 무시하려는 듯 호 주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그는 능연이 서서히 오훼돌기 인대를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바로 표정이 굳었다.

오훼인대는 사방형 인대와 추형 인대가 포함되어 있다. 이름만 들으면 꽤 크게 느껴지지만, 사실 손톱만 한 크기였다. 이런 인대를 손대는 난도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보통 의사들은 여러 번 시도하고 이리저리 건드린 끝에야 정확한 위치를 골라낸다. 그러고도 몇 번 심호흡 하고서야 제대로 조작하고.

그런데 능연은 매끄럽다고 하기에도 부족했다. 오훼인대를 건드리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노련한 동작이었다.

유 선생도 전혀 인색하지 않게 칭찬하기 시작했다. 유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능연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 이해관계도 충돌하지 않는 사이라서 칭찬이 유난히 더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현실 세상에서, 상급 지식분자가 순수한 마음으로 칭찬할 때, 그 칭찬의 힘은 상상 초월한다.

호 주임의 귓가에도 쉴 새 없이 ‘잘한다’, ‘정확하다’, ‘좋다’ 같은 형용사가 들렸다. 노쇠한 음성이 아니었다면 다른 의미로 오해할 정도의 목소리였다.

“여기는 조금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한참 손을 놀리던 능연이 말을 꺼냈다. 그는 수술하면서 종종 어시를 지도한다. 조금 전 좌자전도 기본적으로 수술 내내 지도받았었다.

호 주임은 멈칫하고는 집중해서 바라봤다. 능연이 메스를 깊이 그었다가 가볍게 빼내고 있었다. 특별한 동작은 아닌데도 호 주임은 바로 기억해두는 동시에 의아한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이런 동작, 혹은 이런 설명은 교과서에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것이고, 의사들의 구두 교육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매우 중요한 동작은 아니고, 엄격한 검증도 필요 없어서 교과서에 실릴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서전들이 실제 조작할 때는 이 한 번의 동작을 그었다가 당길지, 평평하게 그어 내려갈지, 아니면 깊이 그을지, 가볍게 그을지, 뭐가 됐든 결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 선택을 잘할수록, 다음 스텝에 유리하고 환자의 몸에 유리하다. 선택을 잘못해도 수술은 계속되지만, 수술 효과가 절감된다.

수술을 수업으로 배우는 게 직접 메스를 휘둘러 보는 것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배우는 학생은 종종 실수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다음엔 더 깊이’, ‘다음에 더 살살’ 이런 식으로 한 마디씩 알려주기 때문이다.

외과의들의 밀접한 사제 관계도 바로 이런 것에서 성립한다. 그리고 상급 의사의 시중을 잘 들었을 때나 이 한 마디 ‘더 깊이 그으세요’가 나온다. 그 점만으로도 21세기의 외과 의학의 교육 모드와 14세기 철물점이 본질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능연과 수술할 때 이런 실시간 지적을 받는 좌자전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 참관하러 온 초짜 의사들도 보기만 해도 이득 본 느낌을 받지만, 수술대 밖에 있는 것과 수술대 안에서 얻는 정보는 확연히 다르다.

좌자전 대신 수술대에 선 호 주임은 좌자전과 같은 대우를 바라지 않았는데, 능연은 호 주임이라고 전혀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호 주임은 소리 하나 없이 아까 그 요점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능연은 계속해서 손을 놀리며 포셉을 달라고 하고는 다시 덧붙였다.

“여기는 조금 더 벌리고요. 찢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음.”

호 주임도 묵묵히 대답했다. 어깨관절 수술을 오래 해 왔지만, 능연이 지적한 부분은 그조차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능연은 수술을 진행하면서 호 주임의 기술 특성에 근거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몇 년 동안 출장 수술하면서 익힌 습관이었다. 그 많은 도시와 병원 주임들이 능연을 출장 수술 의사로 요청하는 데엔 어느 정도 배움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능연도 인색하게 굴지 않고 가르쳐 주었다.

호 주임은 점점 그 안에 빠져들었고,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짜릿함을 느꼈다.

어떤 단체 활동에도 이런 현상이 있다. 단체의 일원인 누군가가 수월하고, 즐겁고, 통쾌할수록 팀원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이런 단체 활동은 회사 동료일 수도, 군대 동료일 수도, 또한, 농구팀, 축구팀, e-sprts팀일 수도 있고 또 혹은 마작 파트너, 맞수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이치는 외과 수술대에도 통한다.

능연이 참여한 수술만 봐도, 그가 퍼스트 어시를 설 때 집도의는 수월함, 즐거움으로 인한 통쾌함을 느낀다. 기술 조공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집도할 때도 퍼스트 어시가 수월함, 즐거움으로 통쾌해진다. 먹이 투척술이랄까.

마연린 혹은 좌자전 등이 퍼스트 어시를 설 때, 능연은 그들의 스킬을 키워주기 위해 가끔 연습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 시험도 한다.

하지만 자기 부하가 아닌 호 주임은 타지 의사 대하는 방식으로 대하며 설명과 시범 위주로 수술을 진행했다. 상대가 실력이 올라가지 않는 데다가 환자와 침대까지 제공할 수 없으면 바로 출장 수술은 다른 병원으로 가면 되니까, 상대의 실력을 올릴 수 있는지 없는지까지 고심해서 키워줄 의미가 전혀 없다. 어차피 상대는 수술에 협조할 만큼 퀄리티를 유지하지 못하니까.

호 주임이 어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능연이 호 주임에게 수술 기회를 주는 이유는 호 주임이 앞으로 지속해서 환자를 돌봐야 하니까, 수술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환자가 수술받은 후 아프네, 쑤시네, 외치거나 검사로 문제가 딱히 나오지 않을 때라도 호 주임이 원인을 판단할 근거가 생긴다.

그것 말고는 능연이 호 주임에게 기대하는 게 없었다. 물론 내친김에 설명은 빠지지 않고 해주었다.

호 주임은 이미 황홀해하던 사이 완벽한 원활 세계에 빠져들어 있었다.

과정이 이토록 원활한 수술은 제약회사 직원 세 명과 마작 치는 때와 같은 느낌이다. 능연의 설명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호 주임은 중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병원에 들어온 이래 이런 주입식 교육을 누려본 적이 없다. 이런 즐거움은 굴욕적 교육과 채찍형 교육을 받아본 사람이나 느낄 수 있는 찐기쁨이었다.

의학 피라미드는 다른 기술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술 정상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특권을 쥐고, 나중에 배우러 온 사람들은 당연히 그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각하가 다정다감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굵은 동아줄에 맞을수록 아픈 건 세상 이치였다.

물론 운화병원에 몸 담은 호 주임으로서는 잡을 굵은 동아줄도 없고, 굵은 동아줄에 맞은 것도 매우 오래전이었다. 얼마나 오래전이냐면, 굳이 굵은 동아줄에 맞아 가면서 그 굵은 동아줄을 잡고 싶은 마음도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러나 능연은 달랐다. 능연은 그를 때리기는 귀찮아했지만, 기술은 기꺼이 내놓았다. 호 주임은 주입되는 기술에 행복한 깔때기라도 된 듯, 좋아서 눈이 다 까뒤집히는 느낌이었다.

“끝났습니다.”

능연은 수술 완료를 선포하며 가위를 받아서 봉합사를 잘라냈다. 그리고 간단히 검사한 후에,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일찍 시험지를 내고 나가는 학생처럼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수술실에서 나갔다.

수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체크 필요는 없다. 수술엔 그런 방식이 존재하지도 않고. 인체는 시험지도 아니라서 답을 쓰는 순간 고칠 기회가 없으니까.

호 주임은 아직 행복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몽롱한 얼굴로 수술대 앞에 서 있었다. 진작 준비하고 있던 좌자전이 복장을 갖춰 입고 다시 수술대 앞으로 다가갔다.

“호 주임님, 제가 마무리 어시할까요?”

만한전석 같은 큰 수술할 때는 환자 어깨관절을 완전 개방해서 감염될 리스크가 컸다.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 부분이라서 호 주임으로서는 좌자전에게 맡겨 혼자 진행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

호 주임은 잠시 주저하다가 묵묵히 손을 놀렸다. 얼굴에 아직 행복한 여운이 남은 호 주임은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손을 놀렸다. 그러다 보니, 유 선생도 ‘호 선생이 참 잘하는군’하고 칭찬해 주었다.

유 선생은 쉽게 남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고, 기껏해야 조롱하고 무시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능연을 칭찬하는 김에 자연스럽게 나온 건지 몰라도 어찌 됐든 호 주임을 칭찬하는 말도 나왔다.

호 주임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손도 살짝 떨고는 더 신이 나서 손을 놀렸다. 마무리 작업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안정된 다음, 감동이 차오른 호 주임은 옷을 벗으며 누군가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까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술실에 있던 사람들은 나쁜 여자가 옷 입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썰물처럼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밖으로 나간 호 주임은 어쩔 수 없이 좌자전의 꽁무니를 쫓아갔다. 무심결에 따라가던 호 주임이 정신 차려 보니 좌자전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만.”

호 주임은 잰걸음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에 따라 탔다. 좌자전이 누른 층수를 본 호 주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옥상?”

“십이천향 의료 봉사요.”

“시간을 이렇게 타이트하게 잡나?”

“익숙해졌습니다.”

호 주임이 웃는 말에 좌자전도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의료 봉사를 가지 않으면 출장 수술을 나갈 것이라서 시간 관리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였다.

호 주임은 주저하다가 층수를 누르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좌자전도 못 본 척했다. 두 사람 모두 말없이 옥상으로 향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프로펠러를 타닥타닥 돌리고 있진 않아서 그렇지, 헬리콥터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아마 빈 자리 있을 겁니다. 같이 가시고 싶으면 가셔도 됩니다.”

좌자전이 호 주임을 힐끔 보며 하는 말에 호 주임은 잠시 멈칫했다.

“능 선생은?”

“아까 헬기 타고 갔습니다.”

“의료 봉사에 헬기를 두 대나?”

좌자전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왕 온 거, 그럼 나도 한 번 가볼까.”

“예. 다다익선이죠.”

호 주임이 짐짓 꺼낸 말에 좌자전은 입꼬리를 45도로 끌어 올리면서 호 주임을 데리고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진작 타 있던 응급센터 초짜 의사들과 서로 인사 나누는 소리로 헬리콥터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헬리콥터는 결정적 순간에 책임을 회피하는 나쁜 남자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창밖의 경치가 순식간에 변화했고, 항상 익숙했던 풍경은 샤워를 마친 나쁜 여자처럼 금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호기심으로 변했다.

호 주임은 여자친구 아닌 여자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뒤숭숭한 마음으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생각해 보니 헬리콥터를 타는 건 정말로 처음이었다. 전에도 기회는 있었는데 결국 타지는 못했다.

“당일치기?”

호 주임이 조금 불안한 듯 묻자 좌자전이 싱긋 웃었다.

“환자 진료수만 맞춰 주면 돌아올 겁니다. 차로 돌아와도 되는데, 산길이라 커브가 많아서요.”

“아.”

호 주임은 영안실에 처음 갔던 때의 장면을 문득 떠올리며 멍청하게 대답했다. 친구는 그를 조금 놀라게 할 생각이었나 본데, 결과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데 헬리콥터가 금세 하강했다. 십이천산은 원래 운화와 그다지 멀진 않았고, 그저 산길이 험해서 교통이 불편할 뿐이었다.

십이천산엔 어렴풋한 기억뿐이던 호 주임은 막상 헬리콥터에서 내린 다음 눈에 보인 광경이 자기가 알던 광경과 완전히 다름을 깨달았다.

눈앞에 보이는 평지는 지금은 색깔로 명확히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구역마다 한 개 이상의 하얀색 혹은 녹색 텐트가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가 각 텐트를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색 표식과 표시선이 이 눈앞에 보이는 누추한 환경에 일종의 디자인감과 질서정연한 느낌을 재창조해주었다.

텐트가 소박한 차림의 산골 주민을 쉴 새 없이 집어삼켰다가 또 뱉어냈다.

호 주임은 지금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돌아서서 좌자전을 마주 보고 물었다.

“산에 병원을 지었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있고?”

“재미로 지은 걸요, 뭐.”

좌자전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사진 찍어 놓으면 날 잡아 가두진 못하겠지?”

호 주임은 저 아래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의적절하지 못한 농담을 했다. 좌자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찍으세요. 괜찮습니다. 자, 그럼 일단 둘러보고 계세요. 전 내려가 보겠습니다.”

좌자전은 호 주임이 대답할 새도 없이 잰걸음으로 텐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단숨에 옷 갈아입고 손 씻은 다음 모자, 마스크까지 끼고 나와서 ‘문진’이라고 적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십이천향의 의료 봉사 구역은 기본적으로 야전 병원 형식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의료 봉사엔 부상 환자가 많지 않고 외상 환자를 중점으로 둘 이유가 없어서, 운리 쪽 설계사가 현장에서 실제 사용 효율에 근거해 이곳저곳 수정했다.

사실상 운리는 여전히 설계사를 두 자릿수나 현장에 두었고, 다들 한 텐트에 옹기종기 모여서 끊임없이 현장 구획을 개선하고 있었다.

운리는 의료 봉사를 ‘임시 병원’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이 프로젝트의 영리 포인트는 모르겠지만, 대표가 영리 포인트를 생각해서 하는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리고 회사 경영 면에서도 몇 년 동안 능연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돈도 적잖게 벌어들였다. 특히 운리의 라이브 중계 시스템은 앞으로도 폭넓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어서, 이런 ‘사소한 일’에서 두 사람을 거역할 리가 없다.

충족한 예산도 있고 현장 필요에 따라 조율하고 판단할 수 있어서 임시 병원 프로젝트는 반대는커녕 오히려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복잡한 구조 설계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초기 준비만 봤을 때, 임시 병원과 야전 병원은 확연히 다른 생태계임을 프로젝트팀도 이미 의식했다.

능연이야 당연히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의료 봉사’도 어떻게 보면 능연의 일시적인 충동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이런 일을 줄곧 기대해 왔다.

의사의 직급이 높아지고, 이름을 알리게 될수록 접촉하는 환자 계층도 갈수록 높아진다. 단순히 출장 수술을 많이 하고, 학술회의를 많이 하거나 수하에 하급 의사가 더 많아져서일 뿐만 아니라, 문진 번호표 받는 난도도 높아지고, 암표 가격도 높아져서였다. 가격에 예민한 사람으로서는 유명한 의사의 진료를 받는 문턱도 대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능연은 어릴 때부터 하구 골목에서 자란 사람으로 항상 봐온 이웃이 대부분 암표를 원하지 않고 출장 수술 의사를 요청할 수 없는 부류였다. 1, 2년 전이라면 줄 서고 번호표를 받는 등 각종 방식으로 능연을 찾아올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능결죽 같은 연줄을 통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난도가 높아졌다.

물론 의료 봉사로 만나는 환자들의 병세는 대부분 경미하다. 그러나 능연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복잡한 수술에서 나타나는 질서감을 좋아하듯이 간단한 진단으로 얻을 수 있는 컨트롤 가능한 느낌도 좋아했다.

“담낭 결석일 겁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수술하시겠어요?”

능연은 이미 선별한 환자를 진료했다. 리포트를 확인하고 신체검사도 한 후엔 바로 입원 신청서를 꺼내며 물었다.

“돈 드나요?”

환자와 보호자 역시 매우 직설적이었다.

“택일 수술엔 돈이 필요합니다.”

이것 역시 진료과 내에서 협의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돈을 안 받으면 십이천향과 부근 주민뿐만 아니라 운화 시에서도 확진 환자가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만 위안을 날리는 셈이 된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주저하는 표정이었다. 보호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지고 물었다.

“의료 봉사는 돈 내지 않아도 된다면서요.”

“진단, 검사, 그리고 응급 치료는 필요 없습니다. 택일 수술은 적당한 시기에 산에서 내려가 아무 병원에 가서 받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해도 되는지 봐드릴 수도 있고요. 비용은 다 같습니다.”

마연린이 언짢은 마음으로 반박했다. 의료 봉사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상황이 자주 생겼다. 환자와 보호자는 무료 진료가 아닌 걸 뻔히 아는 부분에서도 쓸데없이 우기곤 했다.

능연은 대수롭지 않게 앉아 있었다. 하구 진료소의 환경은 의료 봉사 환경보다 조금 낫지만, 대단히 나은 건 아니었다. 특히 이웃들의 경우엔, 10년 전쯤엔 돈을 따져대고 아낄 수 있으면 아끼려 들었다. 물론 지금도 따지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끼려 드는 건 대부분 노인이었다.

환자는 머뭇거리며 돌아갔고, 잠시 후, 나타난 장염 환자는 약만 받아서 돌아갔다. 이어서 고질병 관절염 환자가 왔는데, 전원 신청서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아마도 가지 않을 듯했다.

“여기서 수술받을 수 있나요?”

새로 들어온 환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놓고 물었다.

“어떤 수술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능연은 곁에 있는 마연린에게 차트를 달라고 손짓하며 물었다. 의료 봉사와 일반 진료의 차이점이었다. 운화병원에도 재진 혹은 다른 병원에서 진단받고 다시 온 환자가 있긴 하지만, 초진 환자 수량이 그래도 더 많았다. 십이천향 환자는 달랐다. 응급과 감기성 발열 등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재진 환자였다.

마연린은 두꺼운 종이 차트를 내밀고는 상대의 신분증을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20년 동안 앓아온 무릎 부종 문제입니다. 줄곧 보존치료 해왔고요.”

“한 번 보죠.”

능연은 느긋하게 차트를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했다. 꽤 빠르게 넘겼고, 흥미진진한 느낌까지 들었다. 성장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또 피동적으로 차트를 대량 읽어야 하는 보통 의사와 달리 능연은 그 스텝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 흥미진진하게 차트를 읽는 것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착실하게 앉아 있었다. 뒤에 줄 선 환자는 텐트 밖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안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으니 기다리다 못해 아예 사람이 적은 텐트 쪽으로 가서 줄 서는 사람도 있었다. 의료 봉사 자체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이고, 조무사 비율이 더 높아서 질서를 그렇게 따지지 않았다.

능연은 한참 들여보다가 차트를 덮고 환자의 전자차트도 읽은 후에야 수술할 건지 다시 물었다.

“하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납니다.”

예순쯤으로 보이는 환자가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무릎은 수술해도 몇 년 지나면 결국 망가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수술할 필요 없는 거 아닙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능연은 환자의 물음에 이상하다는 듯 힐끔 바라봤다.

“환자분 무릎은 이미 망가진 거 아닙니까?”

“그래도 아직 걸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망가진 거죠.”

능연의 진지한 말에 환자도 알아듣고는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선생님이 수술해 주실 수 있나요?”

“예.”

“이 텐트에서요?”

“맞습니다.”

“텐트는……. 그게 좀…….”

그러자 마연린이 끼어들었다.

“참새는 작아도 장기를 다 갖췄습니다. 우리 임시 병원이 이 지역 현 병원보다 조건이 더 낫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여기도 임시 의료 봉사 규모로 진단하고 약을 쓰고 수액을 맞췄다. 그러나 능연이 있고, 또 운화병원의 협조도 있으니 십이천향의 의료 봉사 규모는 눈에 확 띄게 올라갔다. 지금은 수술실까지 갖추었다. 적어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외과 수술은 할 수 있고, 더 복잡한 수술도 일단 처치하고 전원해서 마무리 할 수 있다. 헬리콥터까지 있어서, 치료 환경이 안 좋은 건 아니다.

물론 능연이 자리 잡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외과 수술은 사실 그리 높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80년대 이전의 중국 의사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수술을 완성했다. 성과는 현대 의학의 첨단 수준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일류 수준은 되었다.

근본을 따지자면,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서전의 기술이었다. 설비 같은 부수적인 것들도 중요하지만, 의사의 수준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제한적인 환경에서도 적절한 선택을 한다. 조건이 더 나은 환경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더 전면적인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조건이 안 될 때도 상응하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여기 십이천향 같은 임시 병원에서는 문제가 더 단순해진다. 능연은 할 만한 수술은 여기서 해 버리고, 적당하지 않은 수술은 전원시켰다. 헬리콥터로 전원시킬 수 있어서 의료 봉사치고 수술 효과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환자는 마음이 동한 얼굴로 능연을 바라봤다.

“그럼 능 선생님이 직접 해주시는 거죠? 아니라면 안 할랍니다.”

“예. 그러죠.”

능연은 당연히 이견이 없었다. 슬관절 수술은 그로서는 작은 수술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연린은 생각이 많아져서, 환자 뒤에 서 있는 젊은 여인을 힐끔 보고는 특별히 물었다.

“왜 능 선생님이 반드시 직접 해야 합니까?”

“능 선생님이 유일하게 제 차트를 끝까지 본 사람이니까요.”

환자의 말에 마연린이 멈칫했다.

“차트를 다 볼 필요 없어요. 환자분 병은 단순해서…….”

“하지만 능 선생님은 끝까지 봤어요.”

텐트 안에 있는 의사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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