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병원으로 갑니까? 호텔로 가서 오전은 쉬실까요?”
강서림은 차 안에 앉아서 같은 차에 탄 좌자전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능 선생은 일부터 하고 쉽니다. 특별한 말 없으면 병원으로 가면 됩니다.”
“개인 비행기 타고 왔으니 힘들진 않겠네요.”
차 안에 몇 사람 없어서, 강서림은 저도 모르게 삐딱하게 한마디 했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가장 이른 시간 이코노미를 타고 날아와서 현장에서 마중을 준비했다. 그래서 개인 비행기가 하강하는 것도 봤다.
좌자전은 뒷좌석에서 몸을 비틀었다.
“편하기야 하죠. 하지만 평소에 출장 수술 갈 땐 보통 평범하게 비즈니스 타고 갑니다.”
강서림은 ‘평범한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인간의 리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트레이닝 인원은 정해졌습니까?”
“예,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음. 가능하면 한 번에 가자고요.”
“능 선생 기세로 한 번에 패스하지 않을 리가 없죠.”
좌자전의 말에 강서림은 쓴웃음 지으며 눈을 문질렀다. 어제 밤새 능연과 함께 다빈치 로봇 연습을 했고, 능연은 서비스로 받은 기계 팔을 망가뜨린 후에야 연습을 끝냈다.
운화병원과 능연에게나 가능한 대우로, 다른 곳이었다면 자격증 때문에 이런 사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좌자전에겐 익숙한 일이었고, 그는 그저 실수가 없는지 살피며 물었다.
“태무 쪽 의사는 의견 없겠죠?”
“인증 센터 간판 걸고 있으니 당연히 어떻게든 자격증 내어주려고 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센터에 가는데, 보통 순조롭습니다.”
“특별 대우는 없다는 말이군요?”
“그게……. 태무 센트럴 병원이랑 저희도 꽤 오래 협력했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그쪽에 이래라저래라할 위치가 아니라서요. 하지만 보통 별문제 없습니다.”
강서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태무 센트럴 병원은 그가 지금 공략하려는 운화병원보다 훨씬 유명하고 관계도 더 복잡했다. 진료과 주임 역시 의학계의 선두 인물이고 능연보다 훨씬 오래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다. 그런 곳에서 다빈치 설비를 쓰기 시작한 이래, 얼마 되지 않아 Intuitive 사의 인정을 받고 인증 기지 자격을 갖추게 되었으니, 어느 방면으로 봐도 강서림 정도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심지어 해당 주임의 비서를 통해서 겨우 소통하는 터라, 함부로 장담할 수가 없었다. 좌자전은 입을 삐죽였지만, 의외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능 팀이 온 세계를 누비며 출장 수술하고 있지만, 태무엔 이제 두 번째 방문이었다. 태무 센트럴 병원은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고. 운화병원과 마찬가지로, 태무 센트럴 병원은 지역에서 정상급 병원이었고, 설사 출장 수술을 요청한대도 보통은 북경, 상해 두 곳의 친한 의사들에게 요청했다.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고 해도 영국, 미국, 독일의 유명한 의사 쪽으로 가지, 운화병원 의사와 접촉하지 않는다. 후자의 기술 수준이 상당해도 말이다.
물론 태무 센트럴 병원에서 타 지역 의사의 출장 수술을 금지하진 않는다.
어찌 됐든 다빈치 로봇 인증 기지 간판을 걸려면 기본적으로 태무 센트럴 병원 규모는 되어야 하고, 다른 선택지 역시 능팀과 별 접촉 없는 곳이었다. 이것 역시 능연의 약점 중 하나였다. 북경, 경성 큰 병원 출신 의사라면 4, 50대쯤 되면 보통 여기저기 제자가 널려 있어서 일 처리가 매우 쉬워진다.
좌자전도 딱히 불평할 건 없었고, 그저 최대한 연락해놓고 차에 앉아서 어제 이미 확인했던 스케줄을 다시 체크하고는 마음 놓고 차에서 내렸다.
모 학회에서 일면식 있던 어느 의사가 일행을 마중 나왔다. 예의 바른 의사였지만, 별로 할 말은 없었다.
태무 센트럴 병원은 현지에서 유명한 병원이고, 일반외과는 태무의 핵심 진료과였다. 능연 일행이 방문 혹은 참관으로 온 거라면 상대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겠지만, 다빈치 로봇 인증받으러 온 것이라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일을 많이 겪은 강서림은 능팀 의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매우 중요한 손님 대접하듯이 동료와 함께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조심스럽게 능연을 힐끔 본 좌자전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능연의 모습에 바로 안심했다. 마연린과 연문빈의 기분이 어떻든, 좌자전이 알 바 아니었다.
“먼저 인증부터 받으시고 시간 되시면 함께 식사라도 하시죠.”
접대 담당 의사 낙관은 예의 바르고 온화했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좌자전은 낙관을 붙잡고 인사부터 하고는 말을 이었다.
“한 이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사는 바쁜 사람들이라, 이 자리에서 정하지 않으면 아마 다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낙관도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몇 마디 더 나누고는 인증 센터로 데리고 간 다음엔 돌아갔다.
어찌 됐든 아무런 특별 대우가 없었다.
마연린 같은 쪼랩 의사도 알아챘는데, 뭐라고 한마디 하자니 묘하게 마음이 켕겼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랐다. 바로 이런 기회를 기다렸던 것 아닌가 말이다. 운화병원 위아래 의사들이 가득한 이 자리에서 자격증을 이미 손에 넣은 건 자기뿐이었다. 능력을 보이며 모두를 도와줄 때였다.
그렇게 고개를 돌렸다가 태연자약한 능연을 본 순간 마연린은 마음이 켕기는 이유를 바로 깨달았다.
원래 출장 수술 나갈 때는 모두 능연을 의지한다. 어느 병원에서 눈치 없는 의사를 만났더라도, 능연을 보는 순간 상대는 바로 깨닫는다. 죽일 놈의 자부심을 반쯤 접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오늘은 자격증 따러 온 것이라 상황이 다르다. 얹혀가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상대 병원보다 한 수 낮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감이 갑자기 줄었다는 게 가장 문제였다.
“환영 인사는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일단 우리 인증 플로우부터 소개하지요.”
새로 나타난 중년 의사가 서둘러 몇 마디 하면서 인증 전문가인 자기 신분을 드러내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익숙해지면 같이 수술 한 번 합시다.”
“좋습니다.”
수술이라는 말을 들은 능연의 동의 확률이 당연히 높아졌다.
“사실 전에 능 선생 수술 라이브 본 적 있습니다. 정말 훌륭하더라고요. 우리 주임님도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일반외과 수술을 이렇게 잘할 줄 몰랐죠.”
중년 의사는 한참 칭찬하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이 다빈치 로봇 조작은 복강경이나 개방식 수술과 조금 다릅니다. 이따가 제가 시연해 보이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좌자전의 말에 현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연문빈은 뒤에 서서 중년 의사가 컨트롤타워 의자에 가서 앉는 걸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 지었다.
“익숙한 장면인 것 같은데요.”
출장 수술 나갈 때마다,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이런 의사를 수시로 만났다. 사실상, 상급 의사가 되면 다른 상급 지식분자와 마찬가지로 자꾸 드러내는 걸 좋아하게 된다. 즉,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리 대단한 지식분자라고 해도 한계가 있어서, 시 규모에서 상급인지, 성 규모에서 상급인지, 전국 규모에서 상급인지, 전 세계적으로 상급인지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진다.
연문빈 일행이 능연과 출장 수술 나가면 가장 많이 접하는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의사는 시 규모 상급 의사였다. 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비록…… 지만, XX 병원과 비슷합니다’ 같은 말이었다. 같은 언어환경이라 학창 시절부터 고정적인 언어 모드가 있다. ‘우리 학교는 비록…… 지만, 우리 학교의 XX 전문성은 명문 대학과 비슷합니다.’ 라는.
능연은 이런 비슷한 장면을 더 많이 겪었고, 덕분에 면역력이 조금 더 강했다. 그래서 출장 수술 요청을 받은 데다가 상대가 침상을 제공하는 때엔, 능연은 보통 상대가 마음껏 뽐내게 내버려 둔다.
연문빈과 다른 일행의 항체는 조금 더 떨어지는 데다가 특히 오늘은 로봇 수술이라 저도 모르게 투덜거리고 싶어졌다. 마연린은 흥흥대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번엔 바로 갚아주진 못하겠네. 능 선생 재능이라면 내년에 다시 와서 저 선생을 어시로 제대로 부려주면 되겠어.”
그 말에 연문빈은 조금 언짢아졌다.
“일 년까지 뭐 필요해. 수술은 그냥 수술이야. 인체 해부구조, 수술 판단에 별 차이도 없는데. 그냥 다빈치 조작 방법만 익숙해지면 끝이다.”
마연린은 고개를 저었다.
“자료를 봤는데, 보통 의사들은 평균 수술 150건 해야 다빈치에 익숙해진대요. 250건은 해야 노련해지고요. 능 선생은, 흠, 그래도 200건은 해야 상대보다 레벨이 높아질걸요. 인증 기지 의사잖아요. 뭐가 좀 다르겠죠.”
상당히 완곡한 표현이었다. 사실 내심으론 아무리 능연이라도 다빈치를 제 팔처럼 쓰려면 수백 건은 해야 할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수중의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어야 서전의 실력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거니까.
배운 적 없는 연문빈은 오히려 쉽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200건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능 선생 속도라면 수술 200건이야 몇 달이면 끝내지.”
“다빈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니까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기계 팔 사용료는 다 환자가 자비로 내야 하잖아요. 우리 병원에서 마지막에 얼마를 책정해 줄지 몰라도 어찌 됐든 국내에서 가장 저렴한 것도 한 번에 2만 위안 넘어요. 비싼 건 한 번에 6만이고요. 환자들이 잘 원하지 않는다고요. 특히 담낭 절제 같은 작은 수술에서는 다들 아낄 수 있으면 아끼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환자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또 수술 조작과 기술 문제도 있는 걸 마연린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연문빈 역시 알고 있었다. 익숙해진 수술은 천편일률적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수술은 수많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연문빈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8위안 더 비싼 특제 소스 족발 파는 게 일반 족발 파는 것보다 어려운 것처럼 말이지.”
마연린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죠. 새로 나온 특제 소스, 정말 맛없거든요.”
“다빈치 로봇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복강경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컨트롤타워에 앉은 중년 의사가 팔을 조작하면서 이야기했다. 이번에도 좌자전 혼자 호응해주었다.
“3D 느낌이 아무래도 2D보다 명확하죠.”
“명확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장점이 너무 많아요. 평범한 담낭 절제도 다빈치로 하면 훨씬 간단해집니다.”
조금 뽐내고 싶은 말투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국에서 유명한 의사인 능연 앞에서 잘난 척할 기회라고는 지금뿐이니 말이다.
좌자전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
“담낭 절제 같은 간단한 수술을 더 간단하게 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긴 합니다.”
“그렇죠…….”
중년 의사는 문득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잠시 곱씹다가 고개를 들어 좌자전을 바라봤다. 좌자전은 상대의 관점에 동의한다는 듯이 무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특별할 것 없는 인증 과정이 이어졌다. 태무의 중년 의사는 그다지 진지하지 않았고, 운화병원 의사들은 힘겹게 배웠다.
능연 역시 수월하진 않았다. 학교 다닐 때도 특출한 학습 능력은 없었다. 책을 빨리 읽기로 이름난 학생이 한 권에 몇백 페이지짜리 의서를 사나흘 밤을 새워 다 끝낼 때, 능연은 2, 3주, 심지어 3, 4주 만에 끝냈다. 가끔 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고. 동창들보다 40점 이상 높은 점수를 받긴 했지만, 학습 속도 면에서 능연은 별 자신이 없었다.
다빈치 로봇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연습하기까지, 능연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러나 자격증 자체가 플로우대로 움직이는 형식이고,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간 인증이 끝난다.
“축하합니다. 능 선생.”
중년 사내가 얇은 종이를 들고 와서 붉은 수첩에 끼워 넣고는 능연과 연문빈 등에게 건넸다.
“수술 두어 건 함께 할까요? 우리 태무의 관례입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배우는 사람이 확실히 배워 가야 두루두루 좋죠.”
“좋습니다.”
능연도 다빈치 수술 두어 건 하고 싶던 참이었다. 그는 상대의 ‘배우는 사람’ 운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좌자전은 그다지 원하지 않은 듯 헛기침했다.
“능 선생, 시간 얼마 없어. 그냥 돌아가서 수술하지.”
자기 구역으로 돌아가면 다른 의사를 초청해서 다빈치 수술할 수 있다. 다른 출장 수술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모셔온 의사는 아무래도 말이 더 통하는 법이었다.
능연은 좌자전의 말속의 뼈를 알아듣지 못하고 일단 시스템 화면부터 살폈다.
- 퀘스트 완성: 자격증을 획득하라
- 퀘스트 내용: 다빈치 로봇의 전제부 연습을 완성하여 조작 자격을 획득할 것
- 퀘스트 보상: 1,000% 수술 기계 연습 효과
“급할 것 없습니다. 일단 수술부터 하고요.”
능연은 연습 효과 10배라는 스킬의 지속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고, 낭비하긴 더 싫었다. 게다가 이 먼 태무까지 왔는데, 제대로 된 수술 하나 하지 못하고 돌아가긴 너무 아까웠다.
“잠시만요. 연락 좀 해보겠습니다.”
중년 의사는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리고는 나가서 전화 몇 통 하고는 다시 들어왔다.
“그럼 수술 구역으로 갑시다. 마침 오늘 수술이 있네요.”
좌자전은 묵묵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대수롭지 않은 척하고 수술 구역에 다빈치 기계가 몇 대나 있는지 물었다.
“두 대 더 있습니다. 다 더블 컨트롤타워고요. 더블 컨트롤은 팔끼리 부닥치기 쉬워서, 더 조심해서 조작해야 합니다.”
“음.”
“긴장할 건 없고요. 가이드를 따라 조작하면 보통 별문제 없어요.”
이야기 나누는 사이 수술 구역에 도착해서 다빈치 로봇 조작실에 들어갔다. 일행을 마중했었던 낙관도 그 자리에 있다가 껄껄 웃으며 인사했다.
“마침 제 수술입니다. 운화병원에 드리죠.”
“감사합니다. 낙 주임님.”
좌자전은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낙관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자상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능연과 중년 의사가 각각 로봇에 자리 잡았다.
“내가 하는 대로 따라와요.”
중년 의사는 시작부터 명령하는 말투였다.
“옙.”
능연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대답했다. 다만 뒤에 서 있는 마연린과 연문빈 등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연문빈은 마연린 뒤에서 발을 굴렀다.
“다 너 때문이다.”
“앞으로 발전 방향인 걸 어떡해요. 게다가 난 웰스 왕립 병원에서 트레이닝 한 걸…….”
“다른 학생들도 진지하게 보세요.”
중년 의사가 고개를 들며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들진 않았지만, 맞장구쳤다.
“음, 진지하게 보세요.”
다들 곧바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중년 의사는 조금 부러운 듯 고개를 다시 돌리고 능연에게 한 수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컨트롤러를 움직였다.
그는 한마디도 없이 절개를 시작하고 순서대로 차근차근해 나갔다. 다빈치 기계의 장점 중 하나가 인원을 줄여준다는 점이었다. 이론적으로, 중소형 수술은 어시 없이 할 수 있다. 다만 트레이닝할 때는 어시가 있으면 훨씬 편하긴 했다.
능연은 중년 의사의 스텝을 따라 마찬가지로 차근차근해 나가면서 다른 수술과의 차이를 서서히 체감했다.
어시 중이라서 직접 조작할 공간이 별로 없지만, 수술 시야에 보이는 기계 팔의 움직임을 보면서 능연에게는 익숙한 느낌이 착착 쌓여 갔다.
“담낭 수술 환자는 보통 LC(복강경 담낭 절제술)를 더 많이 선택합니다. 사실 그거면 충분해요. 음, 넘치지. 하지만 우리 병원엔 다빈치 수술을 지정하는 환자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쯤 되어야 담당 수술을 능숙하게 이끌어줄 의사가 있어요. 담관 연결해서 하는 수술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이게 효과가 더 좋죠. 리스크도 더 낮고.”
중년 의사는 느긋하게 수술하는 동시에 수다도 떨었다. 다른 유형 수술할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점이라면, 오늘 다빈치 로봇 조작실에 한꺼번에 열몇 명 서 있다는 것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수술실 안 상황도 볼 수 있고, 모니터를 통해 수술 시야도 볼 수 있다.
현대기술이 있어서 서전들이 기술 자랑할 공간이 생겼다고 할 수도 있다. 중년 사내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손을 움직여댔다. 기계 팔의 작은 집게를 슥슥 움직이면서, 때론 평면 회전, 때론 측면 회전하면서 기계 팔의 손가락을 S형으로 구부렸다가 또 M형으로 구부렸다가, 비범한 기술과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능연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협조하면서 별 감정 동요 없이 중년 의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의 곁엔 총애받으려고 재주를 뽐내거나 표현력이 왕성한 여자, 남자가 너무 많다. 유치원 졸업 후, 능연은 옆에서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이런 신선한 물건과 신선한 행동에 이미 면역되었다. 집도의의 조작이 조금 대단하긴 해도, 솔직히 말하면 능연이 봐온 동영상에서 선보인 기술만큼 현란하진 않았다. 수술 전체적으로 판단하자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담낭 수술을 능연이 한다면, 현재 다빈치 로봇 활용 능력과 가장 기초적인 수법으로도 지금 맞은편에 있는 의사보다 50%는 더 잘할 수 있다.
물론 능연의 수술 능력은 이미 세계급, 농구로 비유하자면 NBA 선수 수준이라 딱히 자랑할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눈앞의 이 중년 의사는 태무 센트럴 병원 핵심 진료과의 핵심 외과 의사지만, 지방 리그 강팀 구성원 정도였다.
그러니 능연이 굳이 화려한 기술을 선보일 것도 없이 가장 기본적인 신체 능력에 기본 내공만 조금 쓰면 상대를 해결해 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능연이 상대를 무시하진 않았다. 함께 길을 가는 세 사람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인생을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평범했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장점을 배워오는 데 지장이 있진 않았다.
눈앞의 중년 의사의 최대 장점은 바로 동작 분해력이었다. 장시간 트레이닝해 온 만큼, 수술 동작이 매우 표준적이었다.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짜임새 있었다. 동작을 분해하듯이 한걸음, 한걸음 매우 조리 있었다. 영어 공부할 때, 구와 절을 읽을 때와 비슷했다. 누군가는 단어 하나하나 또박또박 읽는다. 고급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리스너 입장에서는 매우 친화적이다.
능연은 담낭 수술 자체가 아니라 로봇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수술을 따라갔고, 꽤 수확이 있었다.
한참 자화자찬하던 중년 의사는 슬슬 지루해져서 헛기침하며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3D 시각효과가 참 좋네요. 포스 피드백도 없고, 기계 움직임도 매끄럽고요.”
“잠깐 해보고 꽤 개념이 잡히셨네요.”
능연이 단숨에 세 마디로 총결하자, 중년 의사가 빙긋이 웃었다.
“운화병원에도 한 대 구매해서 어제 만져 봤거든요.”
능연의 매끄러운 대답에 중년 의사가 멈칫했다.
“아, 맞네. 깜빡했네. 4세대 기계 구매하셨죠? 책임 의사는 누구입니까?”
“제가 책임자입니다.”
중년 의사는 놀란 듯이 고개를 들어 능연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는 다시 머리통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국내 다빈치 로봇은 아직 사용자가 많지 않아서요. 잘 아는 어느 의사가 운화병원으로 간 줄 알았습니다. 자격증 따기도 전에 기계부터 산 건가요? 손에 안 익으면 어쩌려고.”
“데모 테스트했고요, 가격도 비싼 게 아니라서…….”
“마침 예산이 남아서요.”
좌자전이 냉큼 능연의 은근한 자랑을 잘랐다. 능 팀 기술이 어떤지 관심 없을 순 있어도, 예산이 많은 걸 알면 다들 원한을 품을 것이다.
그러나 중년 의사는 벌써 혀를 끌끌 차며 탄식했다.
“역시 유명한 능 선생은 다르군요.”
좌자전은 이 녀석도 능연을 유명인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들었다. 능연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지금 집도의에게 거울을 비춰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빈치의 렌즈를 들어 주면서 수동화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랄까. 그러나 담낭 절제술은 개복이든 복강경이든, 혹은 다빈치 로봇이든, 그리 복잡하지 않았고, 능연이 집도의의 동작을 충분히 집중해서 관찰할 여력과 시간이 있었다. 조금 전에 얻은 퀘스트 보상도 있어서 기술이 매우 빠르게 상승해 더욱 홀딱 빠져들었다.
잠시 기다려도 능연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중년 의사는 입을 삐죽이며 먼저 말을 꺼냈다.
“능 선생, 한번 해볼래요?”
“좋습니다.”
능연이 바로 승낙하자 중년 사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시야 전환하겠습니다. 집도의와 어시의 시야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집도의와 어시는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시할 때는 집도의가 수월하게 해내는 것 같아도, 막상 해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바쁘게 조작해야 하는지 깨달으리라.
능연에게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가르쳐줄 기회가 생긴다.
서전들은 사실 모두 그렇게 하급 의사를 가르친다. 수술할 기회를 주고,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혼내주는 것.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초짜가 수술대에 오르면, 흥분이 오래가는 것 외에 오래갈 수 있는 건 실수뿐이다. 그러니 실수하지 않을 리가.
능연은 순조롭게 집도 위치를 이어받았다. 컨트롤타워는 계속 같은 기계였고, 앉은 자세 역시 같은데 수술 시야가 완전히 달라졌다.
“시야가 확실히 좋네요.”
능연은 눈앞의 삼각 구역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복강경은 모니터 화면을 봐야 하고 2D 화면이라 깊이 감각이 없는 건 둘째치고 화각 변형도 생긴다. 다빈치 로봇은 3D 화면이라 훨씬 간단해진다. 이것 역시 메이커의 기량이었다. Intuitive라는 이름 자체가 직관적이라는 뜻을 가졌으니까.
그러나 복강경과 다른 점은 수술하는 집도의와 어시가 보는 화면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집도의와 어시 모두 같은 모니터를 보고, 어시가 집도의의 모든 움직임과 처지를 완전하게 볼 수 있는 복강경 수술과 달랐다.
다빈치 로봇의 집도의와 어시의 관계는 개복 수술 시대의 집도의와 어시의 관계에 더 가까웠다. 후자는 자기 시야 범위에 있는 것만 볼 수 있어서 집도의의 손동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가 없다.
복강경 시대에서 젊은 의사를 대량 키워낼 수 있던 것과 달리, 로봇 수술의 시대에서는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능연은 그 방면의 고민이 없다. 담낭 절제술을 많이 해온 데다가, 지금 기술 자랑할 생각도 없어서 그냥 컨트롤러를 톡톡 밀어가면서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기계 팔을 조작하며 조금씩 수술을 진행할 뿐이었다.
그의 속도는 아까 그 중년 의사와 비슷했는데, 아는 사람 눈엔 슬슬 거장의 품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리듬감, 익숙해.”
연문빈이 컨트롤실의 모니터를 올려다보며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컨트롤실의 대형 모니터엔 당연히 3D 효과가 없었고, 고해상도 화면은 복강경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다만 조작이 하나도 복강경 같지 않았다. 그러나 연문빈을 비롯한 모두에겐 그런 화면이 오히려 판독하기 쉬웠다.
그들이 보기에, 능연이 조작하는 기계 팔은 어쩌면 그렇게 원활하게 움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래도 착착 움직이면서 담낭 삼각 구역을 명확하게 처리했다.
수술을 한참 하다 보면, 외과의들도 사실 한 가지 이치를 깨닫는다. 수술 중에 가끔 나타나는 시크하고 난도 높은 조작이 사실 어려운 건 아니다. 왜냐? 그건 한순간의 빛남일 뿐이니까. 정말로 어려운 것은, 꾸준히 수술 구역을 정확히 처리하는 것이다. 후자는 마라톤식 검증일 뿐만 아니라, 해부에 대한 이해이자 기본 내공인데 마침 그 두 가지가 가장 어렵다.
수술 목표는 결국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이 세상에 많은 업계와 직종 종사자는 모두 ‘난 과정만 중요하고 결과는 신경 쓰지 않아’라고 크게 외칠 수 있지만, 의학 종사자는 감히 이런 말을 했다가는 척추뼈를 찔리며 욕먹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외과 의사는 자신이 빛나는 순간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한다. 자기의 시크하고 난도 높은 동작을 자랑하지, 진정으로 환자의 예후를 추적하여 자신의 수술 성공률을 통계 내서 득실을 분석하는 사람은 드물다.
설사 간단한 담낭 절제라고 해도 얼렁뚱땅하는 의사도 있다. 기본을 잘 아는 의사는 많지만, 확실하고 명확하게 아는 의사는 적다.
“능 선생 수술은 언제 봐도 얻는 게 있지.”
느릿느릿 입을 연 좌자전이 습관적 아부를 가동했다.
“능 선생이 처리하는 담낭, 정말 아름답다.”
“그러니까 로봇이니 뭐니해도 결국 도구라니까. 대단한지 아닌지는 역시 수술하는 의사에 달렸어.”
“능 선생이 로봇을 조종하니까 더 멋져 보이네.”
좌자전은 관점을 총결하면서 소리가 온 세상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아부를 떨어댔다. 그는 지금 다빈치 로봇이 꽤 좋아졌다. 특히 컨트롤러가 수술실 밖에 있다는 점에서. 다들 깔끔하게 챙겨 입고 아부하니 더 우아하고 진지하게 느껴진달까. 툭하면 옷 벗고 샤워하고 가운 갈아입어야 하는 데다가 맞장구치는 사람도 적은 수술실과는 분위기가 참 달랐다.
능연 역시 이런 갖가지 목소리에 익숙했고, 이런 갖가지 목소리를 필터링하는 것에도 진작 익숙해졌다.
어떤 일에 집중할 때, 필요한 곳에 집중력을 기울이는 건 더더욱 다년간 길러온 습관이었다. 수술대에서 능연의 사고 회로는 대부분 환자에게 맴돌고 있었다.
담낭 수술은 간단하긴 간단해도 쉬운 건 아니고 영향이 적은 편도 아니었다. 혹시라도 실수해서 담관과 간에 손상이 가면 그야말로 더 골치였다.
바로 그런 이유로, 다빈치 로봇 초보인 능연은 시크함을 고려할 겨를이 없고 그저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으로 순서대로 착착 해나갈 뿐이었다.
가장 실수 없는, 그러나 비교적 시간이 걸리는 방식이었다. 동시에 가장 의미 없는 방식이다. 다들 담낭 절제술을 해본 의사라서, 이런 가장 기초적인 수술 방식에 금방 질렸다.
그러나 능연이 하는 수술이라서, 좌자전을 비롯한 모든 이가 지루함을 참으면서 온몸의 힘을 다해 칭찬해댔다.
좌자전이 솔선해서 ‘리듬감이 참 좋다’고 칭찬하자, 연문빈이 뒤이어서 ‘능 선생 해부는 배 안의 회충 같다’고 받아쳤다. 마연린이 재빨리 ‘그럼 연 선생은 잘린 회충이냐, 굵고 멍청하다’며 태클을 걸자, 여원이 주석을 달았다.
“지난번에 마침 1m 넘는 회충을 꺼낸 적 있는데, 마침 끊어져서 포르말린에 담그기 전에 죽었지. 그런데 굵기는…….”
“그게 무슨 마침이야!”
다들 눈을 부릅뜨며 흥미진진하게 서술하는 여원의 말을 잘랐다.
“재미없어.”
여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제자리로 돌아가서 계속해서 능연의 수술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실제 조작 스킬이 떨어지는 그녀는 시크한 스킬을 쓰는 건 진작 포기했고, 오히려 이런 가장 기본적인 수술 조작을 보는 것이 오히려 수확이 있었다.
중년 의사는 지루한 듯 능연에게 협조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너무 지루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능연이 아무런 장애도 없이 이 스텝까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빈치 로봇은 대단히 신기한 기술이 아니지만, 서전에겐 어쨌든 풀세트 설비로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풀세트 장비로 새로 바꾼 배관공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서전의 조작은 더 복잡하니 말이다.
그동안 중년 의사가 겪어온 새내기 서전들은 초짜보다 더 나을 것도 없었는데, 능연은 노련함에 가깝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능 선생, 운화병원에서 한동안 연습했었나요?”
중년 의사가 결국 묻자, 하루 놀아봤다고 대답한 능연이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타이랑 수처 같은 기본 조작 위주로요.”
“음……. 기초는 괜찮은데…….”
중년 의사는 딱히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입을 삐죽였다.
수술실은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기 전까지 조용했다.
“낙 선생님.”
태무 센트럴 병원의 초짜 의사가 그를 보자마자 매우 착실하게 인사했다. 낙관은 웃으며 인사하고는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러 왔다고 말했다. 전에 학회에서 능연 일행을 만난 적 있어도, 그때는 겨우 인사만 나눌 정도였는데 인제 자기 병원에서 만나니 자신감도 더 넘쳤고 인사하는 목소리도 훨씬 자연스러웠다.
중년 의사는 웃으며 아는 척하고는 꽤 순조롭다고 대답했다.
“아……. 담낭 절제 시작했네?”
“음.”
“첫 번째 수술? 다빈치로 말이야.”
“맞아. 첫 번째 수술.”
“그럼 꽤 잘하네.”
낙관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평가했다. 그 말이 끝나자, 태무 센트럴 병원 의사 두 사람 모두 느낌이 이상해졌다. 낙관은 자기가 그런 말로 운화병원 능연을 평가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이상해했고, 중년 의사는 능연의 수술을 다시 되짚어 보고는 그의 실력 표현이 조금 의외라서 이상해했다.
“후반부가 전반부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더 순조로워졌어…….”
중년 의사는 혼자 중얼거리고는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너무 작은 수술이라 실력을 드러낼 만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능연은 점점 순조로워졌다. 자격증을 얻은 다음 시스템에서 10배 경험치를 받았고, 이미 관련 기술을 정통한 그로서는 기폭제 같아서 다빈치 로봇의 숙련도도 빠르게 상승했다.
수술이 끝난 후엔 더더욱 통달한 느낌이 들었다.
다빈치 로봇,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네.
사실상 다빈치 로봇은 원래 어렵지 않다. 이 녀석의 주요 컨트롤 부분은 바로 양손에 쥔 두 개의 컨트롤러와 발치에 두 줄로 놓인 여섯 개의 발판이다. 조금 더 이미지적으로 비유해보면, 새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 컨트롤러보다 더 복잡할 것도 없고, 같은 기계식 구조라서 조종하는 데 난이도랄 게 아예 없었다.
제조사에서도 복잡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의사들이 사용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다빈치 로봇은 설계 단계부터 ‘직감’이라는 개념을 탑재했다. 특별히 트레이닝할 필요도 없어서 미국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수술 두 건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복강경을 배우는 게 오히려 자본이 더 든다. 그러나 능연에겐 모든 것이 간단했다.
“다음 수술할까요?”
능연이 들떠서 묻자, 중년 의사는 얼떨떨해졌다.
“어……. 그럼 준비할 시간이 좀 필요한데.”
“넵.”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이 순조롭게 수술을 완성하자, 자신감이 붙은 좌자전은 얼굴에 주름을 더 늘리며 빨리하라고 재촉했다.
중년 의사의 안색이 저절로 변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태무 센트럴 병원의 평범한 의사일 뿐이라서 좌자전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악한 세력 앞에서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태무 센트럴 병원의 다빈치 로봇 수술실은 수요 공급 문제로, 모든 걸 세팅해놓고 의사를 기다리는 보통 수술실과 달리 의사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능팀은 이곳에서 별 특권도 없고, 유리창 너머에서 수술실을 정리하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시간 내서 아까 수술한 환자를 보러 갔다. 마흔 남짓한 신체 건장한 남자로 배에 뚫린 구멍은 이미 드레싱 해놓았다. 얼굴이 창백하긴 하지만, 다른 문제는 아니고 마취 때문이었다.
벽에 걸린 모니터링 지표로 알 수 있듯이, 환자의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심박수가 조금 낮긴 해도 정상 범위 안이라 능연도 훨씬 안심했다.
짚신벌레 급 논리, 사고로 출발해서 고려했을 때, 모든 상태가 변하지 않고 그저 수술 설비에 변화를 준 상태에서 환자의 신체의 주요 바이탈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적어도 다빈치 로봇의 기계 팔에 독이 없음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잠시 후, 다른 환자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능 선생, 이번엔 비장 절제입니다.”
중년 의사가 유리창 너머에서 인터폰으로 말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 상태를 체크하러 갔다.
비슷한 시간에 마취의도 작업에 돌입했다. 능연은 컨트롤실로 다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문득 뭔가 허전한 듯 유리창 앞에 가서 섰다.
커피 반 잔을 단숨에 마신 중년 의사가 손을 비비며 다가섰다.
“능 선생, 비장 절제는 난도가 조금 높아요. 평소에 개복이나 복강경은 해봤어도 이번엔 다빈치니까, 아무래도 좀 다른 점이 있겠죠? 집도하기 어려우면…….”
“제가 할게요.”
능연이 단호하게 중년 의사의 말을 잘랐다. 그의 비장 절제 스킬 등급은 그랜드마스터급이고, 그건 담낭 절제술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설사 다빈치 로봇을 쓴다고 해도 이 정도 난이도 수술에서는 수술 방식에 대한 인식, 수술 전후 시간에 관한 각종 의학 지식에 대한 이해, 모두 기계와 비교할 수 없다.
좌자전 일행은 더더욱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중년 의사는 입을 삐죽였다.
“응급센터에서 자주 하는 수술인 건 나도 압니다. 그래서 비장 절제를 고른 거고요. 하지만 다빈치로 하는 건 다릅니다.”
“우리 능 선생이 한 번 해보고요.”
좌자전도 너무 단호하게 말하진 않았다. 중년 의사 역시 ‘음’ 소리를 낼 뿐, 큰소리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응급센터에서 자주 하는 수술이라서 비장 절제술을 선택한 건 물론 아니었다. 솔직한 말로, 능연을 난감하게 하고, 자기를 과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난감이고 과시고, 일단 상대가 전혀 하지 못하는 수술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난감하게 하는 게 아니라 환자에게 무책임한 일이다.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정말로 뜻대로 되어 버리면 잠시 짜릿함을 얻고 평생 신세 망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른 수술을 고르자니, 아까 몰래 알아본 결과, 능연의 수술 커버 범위가 너무 넓다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찮은 일반외과인 그가 접촉하지 못하는 심장외과 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외과 자체에서도 위부터 장까지, 능연은 기본적으로 모두 수술해 본 적이 있었다. 게다가 논문까지 발표했다. 중년 의사는 촘촘하게 적힌 ‘간’이라는 단어만 봐도 작은 간이 파르르 떨리는 기분이었다.
간 절제가 괜히 외과수술에서 왕관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엘리트 의사가 중년까지 수술한대도 반드시 접할 기회가 있는 게 아니다. 젊었을 때 엘리트가 아니면 나이 들어서는 더더욱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지금 이 중년 의사처럼.
간단히 말해서, 너무 어렵고 너무 특이한 수술은 중년 의사 본인도 못 하고 실력 발휘할 공간도 없다. 비장 절제술이 그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적당한 선택이었다. 물론 적합한 환자가 있어야 하지만.
태무 센트럴 같은 등급의 지역 정상 삼갑병원 중, 고급 의사 손엔 환자 명단이 가득 있다. 모두 평소에 누적된 택일 수술 환자로, 병상이 부족하고, 환자의 증세가 응급이 아니라서 틈새에 끼워서 자리가 비면 전화를 걸어 병원에 오도록 통지해서 수술한다. 중년 의사도 친한 의사 여럿 컨택해서 다빈치 수술을 원하는 환자를 겨우 찾아낸 것이었다.
다빈치 로봇으로 비장 수술을 한다는 건 사실 이미 다빈치 로봇 수술 중 첨단 수술에 속한다. 복강경과 개복 수술 모드를 전면적으로 복제할 수도 없고, 재창조할 거리가 조금 있기도 하다.
꽤 자신감이 충족된 중년 의사는 태연하게 컨트롤타워 앞에 가서 앉았다.
“능 선생이 자신 있으면 시작합시다. 능 선생, 수술 동영상 좀 보실까?”
능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입 다물고 기다리던 중년 의사가 다시 물으려는데, 능연이 눈을 떴다.
“비장 동맥을 박리하고 결찰하면 아마 문제없을 겁니다. 비장 꼭지 절단도 예비 방안으로 준비해도 될 것 같고요. 음, 동영상 있으면 한 번 보죠.”
중년 의사는 얼떨떨해져서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고는 핸드폰을 꺼내 한참 서치 했다.
능연이 한 말로 비장 절제술에 대한 그의 이해도를 바로 알아차린 중년 의사는 커브에서 추월하려다가 함정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가 찾아내기 전에 여원이 어느새 자기 얼굴 반만 한 핸드폰 액정을 치켜들고 능연 앞에 서 있었다. 핸드폰을 이마에 대고 머리통으로 받치고 있으니 높이가 딱 맞았다.
능연은 고맙다고 인사한 후에 여원의 정수리에서 화면을 넘겨 가며 금세 수술 영상을 다 봤다.
대부분 스텝은 사실 볼 필요가 없었다. 다빈치 수술은 그렇게 신비로운 기계가 아니라서, 기계 팔의 회전 각도가 이상한 것 말고는 수술 본질엔 변화가 없었다. 사실상 다빈치 로봇은 환자에게 이점이 더 많은 기계였다. 다빈치 덕분에 의사들은 상처를 덜 내고 수술을 마칠 수 있고, 의사들의 체력 저하, 그리고 손떨림 상황에서도 순조롭게 수술을 마칠 수 있게 해준다. 수술 시야도 개선해서 의사들이 조직을 더 잘 처리할 수 있게 해주지만, 솔직히 말해서 환자를 고려하지 않고 수술 자체만 고려하면 의사들은 차라리 개복 수술을 더 원한다.
개복 수술이야말로 외과 의사의 낭만이었다. 선혈이 낭자한 화면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외과 의사의 느낌이니까!
물론 다빈치 로봇의 보급으로 새로운 수술 방식도 발명되었고, 개량된 수술 방식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래된 수술 방식을 쓸 수 없다는 거나 안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토 스틱이 수동 스틱을 대체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초보 운전자나 일반 운전자에겐 세상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겠지만, 노련한 운전자에게는 오토 스틱이 좋긴 해도 수동 스틱의 시대가 끝난 건 아니었다. 수동 스틱 시대의 기술도 여전히 유용하고, 가장 결정적으로 수동 스틱 시대의 레이싱 로직에 변화가 없다.
“다빈치로 하면 조직 전후의 상대성 관계가 명확해지네요. 그럼 수술 시작할까요?”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년 의사를 바라봤다.
“님이 괜찮으시면 시작하시지요.”
중년 의사는 사실 능연이 겸손하게 자문을 구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상과 실제 조작은 다르니까. 안 그러면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병원의 초짜 의사들이 왜 아직도 빛 보지 못하고 있을까. 진지하게 영상을 시청하고 영상을 달달 외우는 아이들이 몇은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능연은 달랐고, 중년 의사도 입 떼기 귀찮아졌다. 입 뗄 능력이 없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능연을 데리고 수업할 능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의 모든 사고가 마지막엔 하나로 응집되었다. ‘묻기만 기다리자.’
그리고 컨트롤타워 뒤에서 고개를 들고 지켜보는 의사 중에 마연린은 더 중요한 문제를 사고 중이었다.
‘일이 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돌아가는 거 같지?’
능연에게 두 번째 수술은 확연히 달라졌다. 사실상, 평범한 의사라도 해도 최신 기계 설비로 수술 한 건 하고 다른 수술할 때는 자신감도 늘고 숙련도도 높아진다. 수술도 더 순조로워지고. 그리고 Intuitive 사는 다빈치 기계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일반 의사들에게 고작 수술 두 건을 요구할 뿐이다. 두 번이면 숙달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최저 조건은 된다.
조금 뛰어난 의사는 로봇으로 모의 수술 몇 번 하면 금세 상당히 괜찮은 수준으로 익힌다. 시스템에게 받은 10배 숙련도 스킬도 있는 능연은 이런 때 더 쓸모 있게 활용했다.
기구와 설비를 바꾸고 완전히 새롭고 낯선 물건으로 수술 참여하는 건 의사에겐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특히 중국 의사들은, 7~80년대를 지나온 나이가 좀 많은 의사는 한의학 마취와 침 마취 시대를 겪어 온 사람들이었다. 마취가 부족한 상태에서 수술 시간, 수술 모드, 리듬 모두 변화해야 하는 시대였다. 90년대엔 방사선과와 영상의학과를 대량 신설했고, 외과 의사들의 개복 검사 횟수가 줄었다. 수술 방안, 심지어 수술 진입로 등에서도 좀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단순한 절제, 봉합 같은 외과 기계는 십여 년이면 새로이 업그레이드된다. 가장 평범한 금속 메스를 사용하던 초기에서 단극 전동 메스를 사용하던 후기를 거쳐 기계 진동 초음파 메스를 사용하기까지 모든 세대의 변화는 의사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흑기술이라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에 비교하면, 다빈치 로봇의 변화는 환자 조직을 접촉하는 곳 정도이고, 의사가 직접 손으로 들지 않아도 될 뿐이지, 기계 손에 마찬가지로 전동 메스, 초음파 메스가 연결되어 있다.
컨트롤러에 익숙해진 능연은 다빈치 로봇에 대한 신비감이 거의 사라졌다. 아무래도 능연에게 비장 절제술은 작고 작은 수술일 뿐이라서, ‘눈을 감고도 한다’라기엔 오버지만, 한쪽 눈과 한 손으로만 하라고 해도 정말로 해낼 수 있다. 다빈치 로봇은 네 손가락밖에 없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발판 위치가 익숙해진 다음엔 장애랄 것이 전혀 없어졌다. 원래 전동 메스를 쓸 때도 한 번에 발판을 몇 개나 밟지 않아서 그렇지 발판은 썼었다. 그리고 조금 신경 쓰면 그것도 별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다리를 높이, 머리를 낮게 둔 체위로 누운 환자의 복부에 가스를 넣자, 다빈치 로봇의 3D 시야가 효능을 발휘했다.
“포셉으로 위결장 인대 잡고 아래로 당기세요.”
수술 구역을 확인한 능연이 곧바로 명령하자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한 중년 의사는 저도 모르게 손발을 놀렸다. 그와 동시에, 능연은 위결장 인대를 위로 잡아당겨서 팽팽하게 했다. 뒤이어 초음파 메스를 든 기계 팔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위로 올라가서 위결장 인대를 슥슥 두 동강 냈다.
중년 의사는 입이 떡 벌어졌다. 동작이 이상한 게 아니라, 초보인 능연이 이런 동작을 할 줄 몰라서였다. 보통 초보는 이것저것 재고 주춤하다가 하는 것 아니냐?
게다가 조금 전 명령은 뭐란 말인가. 이제 막 자격증을 받은 초보가, 당연하단 듯이 자격증 선생에게 명령을 해? 그보다 자기가 왜 순순히 말을 들었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말투가 너무 주임 같아서였나?
중년 의사가 머릿속 사고 회로를 정리하기도 전에 능연의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당기세요.”
능연이 밑도 끝도 없이 한마디 했다. 그러나 비장 절제술에 익숙한 중년 의사는 자연스럽게 기계 팔을 조작해서 조금 전에 노출한 대략 6, 7m 굵기 혈관을 당겼다.
그 점만으로 그의 수술 실력도 꽤 능숙함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비장 절제 수술에 자신이 있어서 선택한 것이라는 것도. 그러나 능연의 비장 절제술이 너무나 막강했다.
운화병원과 비슷한 등급인 태무 센트럴 병원의 주치의의 비장 절제술은 기껏해야 전문가급 수준이었다. 택일 수술 환자를 치료할 땐 확실히 상당히 아름다운 수준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랜드마스터급 비장 절제술을 가진 능연의 기술은 그저 아름다운 수준이 아니었다. 수술할 때 고려하는 문제들만 해도 확연히 달랐다.
바둑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돌이지만, 입문급 기수가 어떻게 땅을 차지할지 고민할 때, 중급 기수는 이미 전체 국면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 고급 기수는 상대의 기보 습관을 연구한다. 돌을 내려놓을 때 전체 국면, 부분 국면에 유리하도록 둘 뿐만 아니라, 일어날 가능성 있는 위험을 방어하고 상대의 우세를 미리 차단한다.
능연은 비장 수술할 때, 이번 스텝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는 수준이고, 어떻게 하면 비장을 완벽하게 잘라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수준도 아니다. 그는 환자 본인의 신체 구조를 더 고려해서 각종 출혈 가능성을 차단하려 애쓴다. 특히 대량 출혈이 생길 땐 더 신중하고 신중해진다.
인대 박리할 때마다 당연히 어시의 어시스트가 필요했다. 처음 두 번 할 땐 능연이 입을 열었지만, 그 후로는 어시하고 있는 중년 의사가 알아서 나섰다. 그렇게 어시하는 동안, 중년 의사의 마음도 차츰 평화로워졌다.
수술은 딱히 자극적일 것도 없었다. 매우 간단한 비장 절제술이라서 의외의 상황도, 리스크도 없다. 능연이 모든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한 후에, 중년 의사의 마음가짐은 더더욱 안정되었다. 아내가 흑인 아이를 낳은 후에 바로 그와 이혼하기로 결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기분은 아까 그 순간에 모두 터져 버렸다. 그 후로는 뭘 더 할 필요도 없었다. 전에 기대하고, 기뻐하고, 초조해하고, 분노했던 모든 것은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저 조금 웃기기만 했다.
수술이 중반으로 갈수록 능연의 손놀림이 더 노련해졌다. 그리고 능연이 기계 팔을 더 민첩하게 조종할수록, 수술 선택은 훨씬 더 높아졌다.
젊은 의사들은 색깔이 변한 비장이 콧물 치우듯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박리된 혈관들이 교과서의 시연 그림처럼 또렷하게 나타났다. 작은 출혈 포인트에서 스며 나온 피는 수술 시야를 붉게 물들이기도 전에 닦이거나 다시 근육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 능연의 다빈치 로봇 컨트롤 능력은 중년 의사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비장 절제 효과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저 하늘 위의 수준으로 중년 의사가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는 높이였다.
능연의 수술을 지켜보며, 중년 의사는 저도 모르게 교과서를 떠올렸다. 그리고 논문, 학술회의 영상도 건건이 떠올렸다. 한때 그저 수업에서나 쓰고, 지표로만 쓰이는 줄 알았던, 그저 학술회의에서 자랑거리로만 쓰는 줄 알았던 기술들이 하나씩 그의 눈앞에 재현되었다.
게다가 지금 능연이 기술 자랑하는 게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기계 설비에 익숙하지 않아서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라는 것도.
그렇다면, 이게 개복 수술 혹은 복강경 수술이었다면, 능연은 얼마나 막강할까?
그 문제를 떠올린 중년 의사는 불안한 듯 엉덩이를 비틀었다. 종일 기러기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익룡에게 조각조각 찢긴 느낌이었다.
다빈치 로봇으로 비장 수술하는 건 난도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쉬운 선택이 아니고, 초보 의사가 선택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빈치 로봇으로 비장 수술을 하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 주된 이유다. 평균치로 봤을 때, 복강경 수술은 보통 120분 좌우인데 다빈치 로봇을 채택하면 160분 이상 걸리게 된다.
다빈치 로봇엔 의자와 팔 받침대가 있어서 수술자의 부담을 크게 줄여줄 수 있지만, 수술이 성공할지 아닐지, 적당한지 아닌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 지표는 역시 환자가 기준이 된다. 그중에 시간은 매우 눈에 띄는 중요 요인이다.
다만 아직 발전 초기인 수술 설비로서 지금 이 순간의 평균 시간은 부정적 요소는 아니라서, 다빈치 로봇으로 비장 수술하는 덴 아직 크게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새 수술 방식 개발이든, 다빈치 로봇의 효능을 올리든, 또 아니면 수술 스킬을 늘리는 것 모두 발전 방향이 될 수 있고, 프로젝트, 논문을 써서 기금을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중년 의사의 연구 방향이기도 했다. 그가 몇 번이고 가늠한 끝에 능연에게 비장 수술을 준 이유도 바로 이쪽으로 연구를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능연이 도움을 청하거나, 포기하거나, 실수하고 만회하려고 애쓸 거라고 자신했었다.
능연이 이렇게 내내 잘해갈 줄은 몰랐고, 그의 생각에 복잡하고 어려운 다빈치 로봇 비장 절제 수술을 능연이 이토록 가장 일반적이고, 특화도 하나 없는 방안으로 진압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순수하게 복강경 플로우 대로 수술을 해나가던 능연은 고작 120분 정도 손을 놀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별문제 없으면 수처하겠습니다.”
능연이 예의 바르게 중년 의사에게 물었다.
“그러세요.”
중년 의사는 침착하게…… 침착했다. 300만 달러짜리 로봇 의자는 편안하고 쾌적해서, 주르륵 미끄러져서 평탄한 바닥에 무릎을 꿇는 일 없도록, 그의 궁뎅이를 받쳐줄 뿐만 아니라 무릎도 보호해 주었다.
능연은 별생각이 없었다. 300만 달러짜리 로봇은 매우 재미있었고, 컨트롤러 느낌이 좋고, 시야가 명확했다. 두 시간짜리 수술을 마친 능연은 트랜스포머에 타고 타이탄 수술하는 느낌이었다.
“꽤 재미있네요.”
능연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좌자전은 기러기를 욱여넣을 수 있을 만큼 입이 커졌다. 주군이 기뻐하면 신하도 영광스럽다고, 능연이 기뻐하고 좋아하니,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열심히 같이 웃으며 분위기를 띄울 수밖에.
“재미있었다니 됐네요.”
중년 의사는 담담했다. 할 말이 뭐가 있겠나. 능연은 미소가 사라지 않은 얼굴과 흡족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다음 수술 준비하시죠.”
능연이 지은 미소 한 구석에서, 중년 의사는 격려받은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표창받은 흥분감을 느꼈다. 다만 그 흥분감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곧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음 수술은 없어요. 수술 두 건 준비했을 뿐이라서요.”
“아, 이제 없군요…….”
능연이 미련이 남은 듯 탄식했다.
사실 수술 두 건이 적은 게 아니었다. 대다수 서전은 일주일에 이틀 수술하고 하루에 서너 건 수술하는 정도다. 게다가 능연은 그저 다빈치 로봇 자격증을 따러 온 거지 출장 수술하러 온 게 아니라서 수술 두 건 준비해준 거면 최대치로 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그런데, 이제 막 다빈치 수술에 익숙해진 능연은 막 면허 따고 두 바퀴 돈 초보 운전자처럼, 기술이 어떤지는 둘째치고 한창 신이 난 상태인 건 확실했다.
좌자전은 한눈에 능연의 상태를 알아봤고, 연문빈과 마연린도 다 알아봤다. 이제 주군의 근심은 신하의 치욕인 상태가 되었다.
좌자전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빨리 머리를 굴리는 동시에 눈알을 굴리다가, 구경하러 온 현지 의사 낙관에게 다가가 조용한 곳으로 그를 끌고 갔다.
“낙 선생님, 일반외과시죠? 능 선생이 할 로봇 수술 몇 건 배정해주실 수 있을까요?”
좌자전이 웃으며 하는 말에 낙관도 크게 웃었다.
“아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수술이 하고 싶다고 나오는 겁니까. 난처하게 왜 이러세요.”
“그럼 주임님께 말씀 한 번 드려주세요. 능 선생이 공짜로 출장 수술하겠다고.”
낙관은 의외라는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출장 수술이란 결국 지대한 리스크를 안고 하는 수술인데, 돈마저 없다면 누가 왔다 갔다 다니면서 출장 수술을 한다고.
그러나 낙관은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미안한 말투로 대답했다.
“좌 선생님,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진료과에서 출장 수술할지 말지, 언제 할지, 그게 어디 제가 참견할 수 있는 일인가요.”
“아, 그래요…….”
좌자전은 낙관에게 이런 결정을 내리라고 한 건 역시 경솔했다고 생각하며 생각에 잠겼다. 낙관은 잠시 웃으며 기다리다가 돌아설 준비를 했다.
“그럼 이럽시다!”
좌자전이 달라진 말투로 낙관을 다시 불렀다.
“마침 저희가 간 절제 수술 전후 기간 회복 가속에 관한 전문가 컨센서스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참여할 마음 있으신지, 주임님께 한 번 여쭤보세요.”
“미친…….”
낙관은 하마터면 욕을 내뱉을 뻔했고, 이 자리에서 주임 대신 결정 내려주지 못함이 한스러웠다. 낙관은 누굴 출장 수술 의사로 요청할까, 같은 복잡한 결정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 그 책임을 감당하지도 못하고. 그러나 주임의 명예가 될 좋은 일을 가지고 오는 건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필요까지 있습니까? 운화병원에 다빈치 로봇 이미 있지 않습니까?”
다행히 낙관은 아이큐가 살아 있었고, 속으로 ‘미치셨습니까?’하고 묻고 싶은 것 같은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전문가 컨센서스란, 의사가 쓸 능력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고 쓸 자격도 있어야 한다. 전문가 컨센서스란 임상 지도 건의, 다시 말하자면 전국의 임상 의사들에게 ‘내 말을 들어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의문이 하나 생길 것이다. ‘네가 뭔데?’라는.
국내에서 전문가 컨센서스는 역시 XX 전문 위원회 같은 기관에서 담당해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전문가들이 우르르 모여서 배서하는 동시에 ‘네가 뭔데’라는 문제도 해결해준다. 그리고 보통 북경, 상해 두 지역의 대빵들이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고, 지방 병원에서 이 정도까지 해내는 진료과는 지극히 드물다.
태무 센트럴 병원에도 대단한 대빵이 있지만, 일반외과 진료과 주임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낙관은 자기네 진료과 주임이 전문가 컨센서스에 공동 서명할 기회가 있는 걸 알게 되면, 능 선생을 위해 일주일 동안 병을 쌓아두는 것도 기꺼이 원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낙관이 의문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걸 주려는 거냐!
좌자전은 실제로 이런 디테일한 일을 시행하는 책임자였고, 그저 간단하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지방 병원 임상의를 몇 명 모아 공동으로 발표할 생각이었거든요. 전문가 컨센서스엔 당연히 여러 전문가의 공동 연구와 인가가 필요합니다. 물론, 태무 쪽에서 부담할 부분이…….”
“예, 예. 압니다. 알아요. 그럼 주임님께 전화 한 번 해볼까요?”
낙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아첨하는 말투로 물었다.
태무 센트럴 병원 일반외과 주임은 그렇게 빨리 오진 않았고, 약 한 시간 후에 허둥지둥 나타났다. 그러는 사이 낙관은 뜨거운 솥 위에 선 태감처럼 몇 번이고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
“미안합니다. 수술 중에 전화를 받아서,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예순 남짓한 일반외과 주임 역시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다빈치 로봇 수술은 장점도 많지만, 수술을 이어서 할 살 사람 찾기 어려운 게 문제랍니다. 아직 수하 의사가 감당할 정도가 아니라서.”
“주임님이 오늘 저희는 아직 못 하는 십이지장 절제 수술을 하신 거라서요.”
함께 나타난 부주임이 한마디 보태며 주임 대신 해명했다.
“어찌 됐든, 환자, 수술실 같은 건 다 준비해뒀습니다. 능 선생이 수술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일반외과 주임 양학은 잠시 주저하다가 덧붙였다.
“물론 출장 수술 규정대로…….”
좌자전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능 선생은 그냥 수술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 비용은 필요 없습니다.”
양측은 서로 바라보다가 살며시 한숨을 내쉬고는 같이 웃었다. 양학 주임은 더더욱 홀가분해졌다. 출장 수술은 사전에 준비하고, 환자, 보호자와 미리 상의해야만 한다. 태무 센트럴 병원 같은 등급의 병원을 찾을 정도라면 대부분 어느 정도 아는 게 있는 환자로 주치의와 잘 아는 사이거나 아니면 아예 연줄로 온 사람이나 출장 수술을 배정한다. 즉 합법적인 리스크를 양측의 신뢰로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것이다.
좌자전의 갑작스러운 수술 요청에, 환자를 찾거나 차트를 준비하는 건 일반외과로서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 진료과에 줄 서서 병상을 기다리는 환자가 많아서 기껏해야 전화 한 통 해서 통지한 후에 재빨리 검사부터 하면 그만이었다. 그에 비해, 출장 수술비는 어려운 문제였다.
안 주자니, 성의가 없어 보이고, 주자니, 환자에게 갑자기 몇만 위안 더 내라고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설사 환자가 기꺼이 낸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은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리스크가 너무 커서, 태무 센트럴 병원 의사로서는 그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었다.
양학은 진료과에서 그 돈을 낼 생각까지 했는데, 좌자전이 분명하게 필요 없다고 하니, 10만 위안 이상 절약한 리얼한 감각에 당연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다른 생각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번엔 이렇게 됐지만, 앞으로 능 선생이 시간 날 때 다시 출장 수술 배정하겠습니다. 그때는 규정대로…….”
“앞으로 두 달은 다 예정이 있습니다. 양 주임님, 깊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우리 능 선생은 그저 수술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해서 그런 겁니다. 만나보면 아실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여러분이 도착했을 때도 마침 수술 중이라서 만나지도 못했군요.”
좌자전이 손을 휘휘 저으며 하는 말에, 양학은 할 말도 다 했겠다 좌자전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약 30평짜리 공간에 사진을 꽉 채운 뷰라이트가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중년 의사가 허둥지둥 상황을 설명하면서 지친 기색도 없이 즐겁게 조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다빈치 로봇 학습 단계는 이미 끝났고, 중년 의사도 드디어 제 위치로 돌아간 셈이라 유난히 쾌적하고 안심되는 마음으로 능연에게 아부를 시도하고 있었다.
“주임님이 아까 보내주신 환자 자료, 능 선생이 보고 꽤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바로 팀에게 자료를 나눠주고 방안을 토론하고 있습니다.”
좌자전이 간단하게 양 주임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는 차를 따라주었다. 능연도 양학이 왔다는 말을 듣고,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곧 나타났다. 양학은 순간 훨씬 안심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낙관보다 훨씬 더 조바심이 났다. 일반외과는 태무 센트럴 병원의 핵심 진료과이고, 그런 핵심 진료과의 주임인 양학은 진작 지도 가이드에 참여할 자격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자격과 기회가 있더라도 잡을 수 있을지 아닌지, 그럴 자질이 있는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그때는 아직 젊어서, 언젠간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스펙이 중요한 곳이고, 나이가 더 든 다음에 하려고 하자 젊었을 때보다 더 힘들어졌다.
그러니 이제 딱 한 발만 남은 상황이 되자 더 초조해지기 마련이었다. 병원에서 부주임이 가장 초조해하고 노력하고, 학교에선 부교수가 가장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설사 쉰, 예순이 되고, 예순, 일흔이 되어서 준 원사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각종 학회에 참석하는 것도 그런 이치였다.
그리고 양학이 생각하기에, 능연은 실력도 막강하고, 배경도 탄탄해서,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전문가 컨센서스를 낸 사람이니, 이제 하나 더 출판하면 성공률이 더 높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도 이번에 한 번 참여하고 나면 앞으로도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능연과 조금이나마 연줄을 맺게 되는 건 사실 그렇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첫 번째 수술은 어떤 거로 할 생각인가, 능 선생?”
능연과 잘 아는 사이도 아닌 양학은 아예 환자 이야기를 하자 싶었다. 능연도 미소 지으며 빈틈없이 받아쳤다.
“준비된 환자 있으면 그 환자부터 시작하시죠.”
“음…….”
양학이 오히려 바로 받아치지 못하게 되었고, 좌자전은 능연은 역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내심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고 서둘러 설명했다.
“수술 준비된 세 환자, 우리 측에선 모두 수술 전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 빠르군요.”
양학 주임은 해탈한 듯 대답했다. 환자가 자기네 일반외과 환자니까, 마지막 책임도 결국 일반외과의 몫이다. 그러니 주임인 양학으로서도 당연히 능연이 진지하게 수술을 마주하길 바란다. ‘전문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수 없는 일도 겪기 싫은 건 당연했다.
양학은 이야기하는 사이 부하 의사들을 훑어보았다. 중년 의사는 중둔근에 힘을 바짝 주고 평소보다 8.57배 뇌를 빨리 굴리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능 선생 팀은 모두 프로패셔널합니다. 특히 능 선생 영상 분석력은 감탄이 나옵니다.”
“다빈치는 순조롭게 쓰는 편이고?”
중년 의사는 사실 그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중둔근과 아이큐의 협조하에 재빨리 대답했다.
“순조롭습니다. 두 번째 수술인 비장 절제는 능 선생이 집도해서 끝냈는데, 지극히 훌륭했습니다.”
주임이 오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지극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지금은 자기 내적 갈등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주임 기분이 언짢아지면, 자기의 모든 내장을 뒤틀리게 할 테니까.
양학도 사실 오기 전에 이미 상황을 파악해 두었고, 지금 부하에게 물은 것은 그저 마지막 확인 때문이었다. 중년 의사가 전하고 싶은 의미를 양 주임도 깨닫고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능 선생이 어떻게 실력 발휘하는지 두고 보면 되겠군요.”
가장 기대하는 전문가 컨센서스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자기가 제공하는 리소스가 없는 만큼, 교환 이야기를 꺼내기 민망했다.
“차 한잔하시지요.”
양 주임은 50년 동안 잘 가꿔온 오른손으로 능연에게 국화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
“능 선생……. 아, 주임님, 저기……. 수술 준비 끝났습니다.”
수술과 간호사가 신이 나서 들어와서 미소 가득한 얼굴로 능연을 바라보다가 양학 주임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구겼다.
“왜? 능 선생을 보고 나니까 양 주임은 꼴 보기 싫어?”
양학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수술과 간호사는 순간 부르르 떨고는 어이없는 듯 양학을 바라봤다.
“주임님, 수술방 준비되었어요. 로봇 조립할까요?”
수술할 때마다 새로 조립해야 하는 기계 팔은 노련한 의료진이 있어도 15분은 걸리고, 조금 느리면 30분은 걸린다. 그런 시간까지 따지면 이 점 역시 로봇 수술의 단점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개선하려고 들면 비교적 쉽게 개선할 수 있다. 로봇 수술의 더 핵심적인 부분은 원격 수술 매개가 된다는 점이었다. 인터넷 속도와 퀄리티가 표준 치에 이르기만 하면, 의학 논리와 법률 모두 기회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원격 수술이 가지고 오는 이득이 너무나 많다. 특히 지방과 소도시에 가까울수록, 2천만 위안 정도 대도시의 의학 원조를 받을 수 있다면, 해당 지역 건강 환경과 평균 수명 개선에 혁명적 결과를 가지고 온다.
그러나 원격 수술이 실현되기 전까진 출장 수술은 한동안 더 성행할 것이다.
양학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는 출장 수술 온 외부 거물을 마주한 듯이 의견을 구하듯 겸손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능 선생, 능 선생이 보기에…….”
“시작하죠.”
“시그널 체크하고 연결해.”
벌써 조바심 난 능연이 하는 말에 양학이 바로 지시하고는 짐짓 휴게실의 시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침 오후 티타임 시간이군요. 간식이라도 좀 준비할까요?”
“차만 있으면 됩니다.”
능연은 간단하게 자기가 필요한 걸 말하고는 좌자전에게 눈짓하는 동시에 아까 받은 국화차를 스테미너 포션과 함께 한입에 비워버렸다.
지금도 체력 상태가 나쁘진 않지만, 다빈치 로봇 조작이 아직 능숙하지 않은 것과 수술 자체 시간이 긴 편에 속하는 것을 고려해서 사전에 준비한 것이었다. 스테미너 포션이 남아돌아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아니었으면 지금은 낮잠을 자도 될 시간이었다.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하품하다가 서둘러 입을 가리고는 흠흠 목을 가다듬고 양학을 바라봤다.
“주임님, 괜찮으시면 배 좀 채울 간식 준비해주시면 좋고요.”
태무 센트럴 병원 의사들은 능연이 수술할 때 얼마나 폭풍처럼 몰아치는지 모르겠지만, 좌자전 일행은 잘 알고 있었고, 이 기회에 배를 채우고 에너지를 충전해두지 않으면 밤까지 버티지 못하고 수술 중에 침을 줄줄 흘리는 강시 상태가 될 것이다.
연문빈은 더더욱 익숙하게 배낭에서 하얀 가루만 담긴 텀블러를 꺼내 물을 담았다.
“요즘에 근육량을 늘리고 있어서 단백질 보충을 해야 해서요.”
마연린은 아무런 말 없이 자기 고향에서 나는 생선포를 꺼내서 묵묵히 씹기 시작했다. 네가 먹을 것을 주든 말든, 나는 굶어 죽지 않을 거라는 듯이.
“캐비닛에 간식 있습니다.”
중년 의사는 돌아가서 자기 휴게실 서랍을 털어왔다. 뒤틀렸던 생각은 이미 다시 돌아왔고, 나중에 혼쭐나지 않으려면 이제 능연과 그의 수하 떨거지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원의 주머니에서 유리병이 부닥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여원 선생도 먹을 걸 가지고 왔나요? 데워드릴까요?”
중년 의사가 세심하게 물었다. 여원은 정수리에 반사된 빛만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인 채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먹을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배달시키죠. 뭐 먹을래요?”
“소고기 카레요.”
여원은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고, 생선포를 질겅질겅 씹던 마연린의 동작이 서서히 멈췄다. 고향에서 온 생선포가 갑자기 맛없게 느껴졌다.
다빈치 로봇 제어실.
변함없이 능연이 집도의, 중년 의사가 어시하는 2인조 움직임이었는데, 실내에 더 많은 의사가 서 있었다.
정규 수술과 달리, 수술제어실이 따로 있는 이런 수술엔 인원 제한이 팍팍하지 않아서 그 안에 있는 사람만 괜찮다면 만원 버스 안에서 치한 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수술자와 같은 방에 있는 장점은 바로 수다 떨기 편한 점이다. 수술자가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정식 수술이 시작한 3분 후, 양학 주임은 그 점을 깨닫고는 칭찬을 멈췄다.
“우리 능 선생은 수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좌자전은 전방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동안 무수히 반복했던 말을 다시 했다. 양학은 우르르 서 있는 자기 부하 앞에서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
“능 선생이 참 집중하네요…….”
“사실…….”
좌자전이 양학 주임의 말을 잘랐다.
“우리 능 선생이 너무 잘생겨서 그럽니다. 평소에 말 거는 여자가 너무 많아서 거절하다, 하다 이렇게 된 거죠. 뭐, 대시받는 횟수가 많아지면 이해한다고 하더라고요.”
양학 주임은 얼굴 여기저기 움푹 팬 좌자전을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떠오른 상태로 바라봤다.
“그래서 이해하십니까?”
“많이 봤으니 아무래도 조금 이해하죠.”
좌자전이 박학다식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양학 주임은 웃고 싶었지만, 전문가 컨센서스를 생각해서 참아냈다.
머리 위 모니터에, 다빈치 기계 팔이 막 환자의 체내로 깊숙이 진입했고, 연문빈은 수술실 옆 칸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예비 작업을 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양학 주임은 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이따 능연을 어떻게 칭찬할지 고민했다. 다른 사람 수술 보는 일 같은 건 평생 해온 일이다. 평범한 의사가 하는 수술도 많이 봤고, 대단한 의사 수술도 많이 봐온 그는 오늘 수술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운화병원 능연의 유명세를 당연히 들어봤지만, 드넓은 중국, 드넓은 세계에 유명한 의사는 많고 많다.
바로 그런 이유로 능연이 처음 도착했을 때 나와 볼 생각도 없었다. 나이도 나이라서, 젊을 때처럼 사람 마중하고 배웅하는 데 시간을 쓸 생각도 없었다.
심지어 능연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다. 현재 병원에서 가장 막강한 건 역시 기술 과학 연구 능력과 프로젝트 받아오고 프로젝트 끌어오는 능력이다. 임상 기술도 중요하긴 해도 그의 직급쯤 되면…….
“응?”
두 눈을 찌푸린 양학 주임의 눈에 머리 위 모니터에 거대한 변화가 생겼음이 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컨트롤타워를 한 번 바라봤다. 지금도 능연이 조작하는 게 맞았다.
“능 선생은 이제 막 다빈치 수술 시작한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며칠 전에 시작했죠.”
좌자전의 대답에 양학 주임은 언짢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게 어디 며칠 전에 막 시작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정말입니다. 게다가 이게 오늘 두 번째 비장 수술이니까, 능 선생이 노련하게 하는 것도 당연하고요.”
좌자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수술은 중년 의사의 수술 리스트에 있던 수술로, 중년 의사가 헌납한 셈이었다.
양학 주임이야 두 번째 수술인지 몇 번째 수술인지 알 바 아니었다. 정상적인 의사가 같은 수술을 몇십, 몇백 번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다고 해도 이토록 순조로운 정도로 하기 어렵다.
“이건 너무 비정상적인데.”
양학 주임은 최대한 완곡하게 의문을 표현했다. 그리고 조금 언짢아졌다. 우린 성심성의껏 너희들을 대접하는데, 너희는 농담이나 하냐?
“우리 능 선생 나이가…….”
그런 상황을 매우 잘 아는 좌자전은 살며시 입을 열었고, 양학 주임은 순간 더 언짢아졌다.
“참 깔끔한 수술이군요.”
양학 주임은 속으로 언짢아도 여전히 모니터를 바라보며 능연 일행이 기분 좋을 말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부탁할 일이 있으니 입안의 혀처럼 굴 수밖에. ‘전문가 컨센서스’ 공동 서명 앞에서 자기 감정 따위는 정말이지 중요하지 않았다.
좌자전은 빙그레 웃으며 맞장구쳤다.
“우리 능 선생 수술은 의사들이라면 모두 즐거워하면서 볼 수밖에 없죠.”
“음……. 사람도 멋지고, 수술도 멋지군요.”
양학은 망설이지 않고 계속해서 칭찬했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양심을 어기는 말을 한두 번 했을까. 예전에 월왕 구천이 와신상담하면서 오왕 부차의 변까지 맛봤다지만, 일반외과 주임에게 그게 또 뭐 대단한 일일까. 밤 당직 서면서 의자를 연결해서 허리도 못 펴고 자봤고, 낮에 얼굴에 튄 환자의 담즙 맛도 봐봤다. 그리고 변까지 맛본 것도, 수술실에서 터진 장 안에서 튀어나온 내용물도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말이다.
지금 수술실 유리창 밖에 서 있는 일반외과 주임 양학 동지의 마음은 매우 평안했다.
“그래도 역시 수술이 멋지네요.”
곁에 서 있는 영상의학과 여의사가 침이 가득 고인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자기 병원 의사에게 그렇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는 양학은 껄껄 웃으며 영상의학과는 한가하냐고 물었다.
“바쁘죠. 그래도 괜찮아요.”
여의사는 못 들은 척하고는 능연의 척추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핸드폰까지 들고 사진을 찍었다. 양학은 순간 속이 터져서 조금 화풀이하듯 내뱉었다.
“왕 주임이 참 편하게 해주나 보군.”
“왕 주임님도 지금 능 선생 논문 보고 계실걸요. MRI 팀 학습할 땐 거의 매번 운화병원 능 선생 이야기 나와요.”
여의사가 자연스럽게 하는 말에, 예민했던 양학의 마음은 파도에 휩쓸린 듯이 곧바로 사라졌고 이내 다시 아부 모드로 돌아왔다.
“나도 들었지. 능 선생, 영상 판독도 대가라던데.”
“초특급이죠. 아무렇게나 논문 쓰는 그런 류요. 가장 많이 쓸 때는 한 달에 SCI 10편도 썼을걸요.”
“두 달에 22편입니다.”
여의사가 부러운 듯 침을 삼키며 하는 말에 두 사람 저 아래쪽에서 여원이 자부심 넘치는 듯 고개를 들었다. 키로 이겨 본 적은 없지만, 논문으로 져 본 적 없는 그녀였다.
“당신은…….”
고개를 숙인 여의사가 모성애가 넘치는 말투로 물었다.
“여원입니다. 운화병원이요.”
“아, 오, 음.”
여원의 대담한 대답에, 여의사는 세 마디 감탄사를 내뱉으며 머릿속으로 이미 논문에 자주 나타나는 제1 저자와 제2 저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여 선생도 영상의학과?”
여의사가 궁금한 듯 묻는 말에 여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럼…….”
“일반외과도 아닙니다. 하지만 간담췌외과 논문도 많이 썼어요.”
여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같은 상황에 공치사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여의사도 바로 알아듣고 입을 가리며 생긋 웃었다.
“그러게……. 우리 주임님이 능 선생처럼 영상 판독도 하고 외과 수술도 하는 의사는 만 명에 한 번 날까 말까 하다고 자주 말씀하세요. 게다가 이렇게 수술을 끝내주게 하는 데다가, 영상 판독도 끝내주게 하는 의사는 업계에서 독보적이라고요.”
양학은 옆에서 들으면서 이 영상의학과 의사가 참 아부를 잘 떤다고 가장 먼저 생각했다가 다음 순간 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임상의 중에는 영상 판독할 수 있는 의사도 많아졌지만, 대가 급으로 판독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임상의가 판독하는 건 주로 자기 과 영상이죠. 그래야 조금 자신 있게 판독하지, 다른 과 영상은 전혀 상황이 다르죠. 그런데 능 선생은 달라요. 커버하는 범위가 실로 넓어요.”
양학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세뇌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가까이.”
능연의 목소리에, 방 안에서 수군거리던 소리가 순간 사라졌다. 사람들은 분분히 고개를 돌리거나 고개를 들어서 모니터 혹은 능연을 바라봤다.
중년 의사는 긴장한 듯 기계 팔을 돌리고는 놀란 듯이 물었다.
“출혈?”
“네.”
능연은 가볍게 대꾸하고는 기계 팔을 끌어당겨서 노련하게 봉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발견한 겁니까?”
중년 의사가 켕기는 듯 배움을 청했다. 비장 절제 수술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포인트가 바로 출혈 문제였다. 그리고 그는 종종 다빈치 로봇으로 비장 절제 수술을 해서 출혈에 매우 민감했다. 그러나 아무리 민감해도, 수술 시야 밖 출혈 포인트를 찾기 쉽지 않다. 특히 단번에 위치를 파악하는 건 너무 신기했다.
능연은 대수롭지 않은 듯 조작하며 대답했다.
“아까 5ml 정도 출혈을 발견했습니다. 수술 시야엔 파손된 부분이 없었으니, 뒤쪽일 확률이 높죠.”
그의 간단한 설명에 중년 의사는 얼떨떨해졌다.
“5ml?”
“네. 출혈이 있으면 안 될 위치였거든요.”
“안 되나?”
중년 의사는 어리둥절해졌다. 능연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빈치 로봇 수술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수술을 매우 디테일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상, 능연은 실제로 매우 디테일하게 하고 있었다. 절단, 절개 같은 상황을 부닥쳐도 매우 수월하게 처리하며 사전에 혈관을 봉쇄했다. 의외가 없는 한, 수술 내내 10~20ml에서 20~30ml 이내로 출혈량을 제어할 수도 있다.
이것 역시 다빈치 로봇 수술의 대단한 점이었다. 기계 손가락이 비교적 작은 편이고, 기계 교체도 편하고 자유도도 더 높아서 수술 과정에서 집을 땐 집고, 지질 땐 지지고, 꿰맬 땐 꿰매고, 스텝 몇 개 더 늘어도 그렇게 대단히 더 힘들지도 않다.
개복 수술 그리고 복강경 수술은 이렇게 디테일하게 고려하기 힘들다. 수술 과정에서 바로 처리하고 싶어도 위치가 좁거나 방향이 이상해서 수술자는 여러 디테일을 고려하기보다는 그냥 수술 진행하는 걸 선택할 때가 많다. 그 정도 출혈로 생길 수 있는 손상은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미미해서, 수익도 없는데 굳이 몰입할 필요가 없다.
자동차 정비할 때 바로 교체할 수 있는 부분은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조금 더 전면적으로 정비하기 위해 엔진을 뜯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질 가능성도 크고.
능연으로서는 개복 수술 혹은 복강경 수술할 때는 가끔 조금 조잡하게 해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그러나 다빈치 로봇이 보조해주는 수술에서는 적어도 출혈 면에서는 출혈량을 최저로 낮출 능력이 있었다.
거의 무혈 수술에 가깝던 상태에서 갑자기 그만큼 출혈이 생겼으니, 당연히 출혈 포인트를 쉽게 추적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당연히’라는 건 능연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중년 의사로서는 마지막 결과 앞에 나타난 일련의 동작이 너무 많고, 기준도 너무 높았다. 설사 능연이 설명해 준 대도 대부분 이해할 수 없거나, 해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실, 능연은 전혀 설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에 반해, 일반외과 주임 양학 동지는 이 자리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잘 알수록 더 얼떨떨해졌다.
여원은 이 방에 가득한 의사들이 평소 자기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걸, 게다가 멍청하게 입까지 벌리고 있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이렇게 생각했다.
평소에 고개를 잘 들지 않아서 이런다니까. 이러다가 하늘에 갑자기 새들이 날아가거나…… 소방 스프링클러에서 갑자기 물이라도 뿜어지면 재미있어지겠는걸.
짝짝짝짝.
수술이 끝났을 때, 양학 주임이 앞장서서 손뼉을 쳤다.
“달라, 정말로 달라. 앞으로 누가 나한테 사람은 다 비슷하다, 천재 같은 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오늘 수술 동영상을 보여줘야겠네.”
“좋은 방법입니다. 오늘 동영상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겁니다. 저도 다빈치 로봇으로 2년이나 수술했는데 지금 보니까 별거 아니었네요. 능 선생하고 비교하면 원숭이 수준이네요.”
양 주임이 감탄하며 하는 말에 뒤에 서 있던 부주임이 다들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를 말을 했다.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원 주임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앞으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요. 누가 보면 비꼬는 거로 생각할 것 아닙니까.”
양학 주임 뒤에 서 있는 부주임 성이 하필 원 씨였고, 원 주임은 더 크게 웃었다.
“그럼 원수의 주임이라 부르지 말고 부주임이라고 부르면 되죠. 아니면 원 부주임이라고 부르거나요.”
성이 원이요 이름이 수의라서 연결해서 부르니 더욱 기억에 남게 되었지만, 앞으로 그를 부를 일을 생각하면 수하 의사들은 가련하게 되었다.
좌자전은 자기를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는 데다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웃음거리를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 참 절묘하네요.”
“하하하.”
수술실엔 즐거움이 가득해졌고, 숨이 찰 정도로 웃어대던 양학 주임이 타이밍을 보고 입을 열었다.
“능 선생도 피곤하죠? 우리가 식사…….”
“아니요.”
능연은 재빨리 양 주임의 말을 자르며 태도를 나타냈고, 좌자전은 껄껄 웃으며 수술 계속하자고 재빨리 말했다.
“어……. 조금 쉬지 않고요?”
“네.”
능연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저녁은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근처에 간단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양 주임은 그래도 식사 자리를 마련해서 관계를 좁혀보고 싶었지만, 능연은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능연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좌자전은 양 주임의 표정이 머쓱한 듯 변하자 다시 말을 꺼냈다.
“양 주임님, 신경 쓰지 마세요. 쉐프 데리고 왔습니다.”
“쉐프를 데리고 왔다고요?”
양 주임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아니건만, 지금 이 순간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출장 수술하는 의사는 많지만, 이토록 건방지게 다니는 의사라니, 너무 재미있었다.
좌자전은 헛웃음 치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설명해 주기로 했다.
“의사라서 쉐프를 데리고 다니는 건 아니고요, 능 선생 개인적인 일입니다.”
“부자라는 이야기를 이토록 새롭게 이야기하는 건 또 처음이군요.”
양 주임이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셨네요. 잘생겨서 그런 겁니다.”
양 주임은 한참 동안 할 말을 잃었다가, 이내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은 수술 한 건을 더 한 다음, 환자와 기계 팔을 바꾸는 틈을 타서 밥 먹으러 나갔다. 저녁은 태무 센트럴 병원 수술층의 작은 식당에 마련되었다. 태무의 식당은 설비가 조금 떨어져도 면적은 상당히 넓은 편이라서 같은 비행기로 온 주 주방장과 요리사들도 꽤 만족했다.
주 주방장은 전자렌지로 가열하는 기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븐과 찜통에 쓸 도구를 들여온 다음에 메인 요리 조리사와 초밥 조리사, 그리고 조수 둘을 불러서 식당 전체를 차지하고는 신이 나서 움직였다.
시간 맞춰 나타난 전칠도 능연보다 5분 먼저 도착했지만, 마음은 느긋했다. 사실 한 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느낌상 충분하게 느껴졌다.
“운화병원에 있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전칠과 능연은 작은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굳이 식당을 비우지는 않아서, 오고 가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두 사람을 힐끔거릴 뿐만 아니라 옆 테이블에서 밥도 먹었다. 게다가 주 주방장 등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운화병원보다는 더 떠들썩해요.”
능연은 참치 초밥, 그리고 숯불구이를 먹은 다음 완전히 편안해진 모습으로 전칠을 바라봤다. 낯선 곳에서 낯선 설비로 수술하려니 평소에 수술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심리 부담이 더 무거웠다.
“운화병원 의사들은 우리를 자주 봐서 알은척도 안 하잖아요.”
“이렇게 많이 먹지도 않고요.”
“많이 먹어서 살쪄서 그런 거 아닐까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대화 나누는 모습에, 주임들은 껄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오늘 수술층 식당에 사람이 가득할 뿐만 아니라, 입원 병동에서 일부러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능연과 전칠을 바라보며 열심히 밥을 먹고는 아쉬움 가득한 모습으로 자리를 떴다.
주임들의 대우는 당연히 달랐다. 그들은 사전에 근처 테이블에 자리 잡았지만, 테이블을 다 같이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다 같이 밥을 먹은 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식사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하기엔, 평소에 이런 식으로 식사했다. 게다가 오늘 음식은 다른 때보다 너무나, 너무나 좋았다.
참치는 남방 참다랑어였고, 소고기는 브라질 제부, 소룡포는 닭 육수였고, 만두는 입이 델 정도로 뜨거웠다…….
사람들은 말할 생각도 없이 식사했다. 수다 떠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말이다. 맛있는 게 있을 때라도 즐기는 게 좋았다.
능연과 전칠은 더더욱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능연은 어릴 때 집에서 밥 먹을 때마다 이웃들이 그릇을 들고 진료소로 찾아와서 그가 밥 먹는 걸 바라보며 수다 떨었다. 학교 갔을 때는 더더욱 자주 구경거리가 되었고, 밥 먹을 때 둘러싸이고 사진 찍히는 건 단순한 일상 수준이었다.
전칠의 식사 환경 역시 조용한 적이 없었다. 레스토랑을 오가는 종업원, 옆에서 찰싹 붙어 시중드는 집사, 게다가 수시로 나타나는 친척, 친구들까지, 식사할 때마다 수십 명 나타나곤 한다.
시선 역시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이미 면역되었다. 그렇게 유쾌한 한 끼 식사 후, 능연은 잠시 앉아서 쉬다가 전칠을 옥상 헬리콥터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접시에 초밥을 채우는 양 주임을 바라봤다.
“수술 계속하시죠.”
“어……. 지금 바로?”
양 주임은 눈앞의 초밥을 바라보며 미련이 남은 듯 배를 두드렸다.
“네. 환자 준비됐을 겁니다.”
“그럼 가지요. 아, 저녁 준비해줘서 감사하다고 전칠 씨에게 인사하는 것도 깜빡했군요. 거참 미안하네. 운리의 자본, 참 탄탄하네.”
양 주임이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말에 뒤에 있는 의사들 모두 운리에 깊은 인상을 가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은 예전과 달리 수술실로 튀어갔다. 다빈치 로봇 수술은 옷 갈아입을 필요도 없고 조금만 조절하면 되어서 능연은 바로 양손으로 컨트롤러를 잡았다.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고는 온몸을 곧추세운 능연을 뒤에서 보니 뇌룡처럼 척추가 아름답게 쫙 펴져 있었다.
지난 두 번의 수술보다 이번 수술의 효율은 무서울 정도로 한 단계 높게 올라갔다. 앞의 수술을 거치며 수술 방식에 익숙해진 능연은 초 막강한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능연은 지금 많은 수술 방식을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그랜드마스터급 수술은 전국 100등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리고 그 레벨은 의학계에 알려진 그의 실력을 멀리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의학계 자체는 단순히 임상 기술로만 의사들의 순위를 먹일 수 없는 법이고, 막강한 의사일수록 순위를 그렇게 먹이지 않는다.
그리고 능연이 개복 수술 혹은 복강경 수술을 할 때는 관련된 임상 수법이 많고, 이미 완성된 기술이라서 일반인은 그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다빈치 로봇으로 수술할 때는 그렇게 많은 수단이 있을 수 없다. 능연이 같은 수술 방식으로 같은 수술을 하는 걸 본 사람들은 순간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직하고 싶네.”
원 부주임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싶네요.”
“그럴 때가 되었다.”
다들 동감하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능 팀에서는, 연문빈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따지고 보면 그가 능연보다 더 먼저 다빈치 로봇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능연, 그리고 자기 자신을 비교해 본 그는 처음에 왜 다빈치 로봇을 배우려고 했는지 의미를 모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