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마친 마연린은 컨트롤타워에서 내려와서 폴짝폴짝 몸을 풀었다. 능연이 환자 상황을 보러 간 다음, 어시인 마연린은 오히려 한가해졌다. 옆 방에서는 아직 한참 준비해야 해서, 마연린은 커피와 함께 이름 모를 케이크를 먹은 다음 좌자전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양 주임님이 동동거리는 걸 봐서, 환자 모자라는 거죠?”
“응.”
좌자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쪽을 주목하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아마 응급 쪽 환자도 보낸 거 같은데, 우린 다빈치 로봇 수술하려는 거니까 겨우 둘 모았나 봐. 그러니 모자라지.”
“능 선생이 이런 식으로 수술하면 어디서라도 모자라죠.”
마연린은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양 주임님은 아직 병상 문제는 생각하지도 못했을걸요. 병상 생각나면 혈압이 180까지 오를 겁니다.”
“그러니까, 선물 제대로 줘야지. 우리는 사기 치러 온 게 아니니까, 서명을 준다고 했으니, 그 서명의 가치를 느끼게 해줘야지.”
좌자전은 제가 말해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 별 준비 없이 태무 센트럴 병원에 왔다. 로봇 수술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희한한 것이고, 갑자기 찾아왔으니 친분 운운해도 얻을 게 없고, 또 눈총도 살짝 받은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쪽에서도 살짝 태클 거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래서 언제 환심 사러 갈 건데요? 괜히 환자 끊기지 않게 어서 가세요.”
마연린도 좌자전의 수법이 매우 익숙하다. 근래 2년 동안 전국 수많은 병원에 출장 수술 가면서 형형색색의 박힌 돌을 만났었다. 좌자전 역시 갖가지 수를 시도해서 능 팀을 순조롭고 평안하게 유지해왔다.
“10분 더 있다가. 정말로 더 없는 게 확실해지면, 간 절제 환자 하자고 제안하려고.”
“에? 간 절제가 가능하겠어요?”
좌자전이 어깨를 으쓱하며 하는 말에 마연린이 조금 놀란 듯 물었다. 간 절제 자체가 난도 높은 수술인데 다빈치까지 사용해서 조작하려면 연습으로 하기엔 리스크가 막대하다. 특히 출장 수술인 상황에서는.
“능 선생이 할 수 있대.”
“하긴, 최악의 상황엔 개복으로 전환하면 되니까.”
마연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양 주임님 쪽에서 다빈치 로봇으로 간 절제하려면, 잘못하면 우리한테 도움 청할 수도 있겠는데요.”
개방식 수술은 체강경 수술의 안전밸브 같은 것이다. 복강경이든 흉강경이든, 자궁경이든 착착 진행하고 문제가 없을 때는 모두 지극히 좋은 수술 방안이다. 하지만 일단 자료에 없는 의외 상황이 나타나면 개방식 수술이 마지막 안전 조치가 된다.
바로 그런 이유로, 국내에서는 일반외과, 심장외과가 가장 발전한 병원에서 가장 먼저 복강경, 심장 우회술을 도입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로운 수술 개발을 전혀 할 수 없다. 병원 환경이란 수술하면서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환상을 품는 사람은 없는 곳이다. 일단 일이 생기면 그게 큰일이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까.
제도 측면에서 말하자면, 사고가 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조사 단계가 되면, 충분한 준비를 했는지, 정확하고 충분한 응급처치를 했는지 아닌지가 사망 토론의 중점이 된다. 다빈치 수술에서는 사고가 나기 전에 개복 수술로 전환할 준비를 해 두는 것이 필수 조치다.
사실상, 다빈치 로봇으로 수술하면 일정 확률로 문제가 생겨 개복 수술로 전환하곤 한다. 자연분만으로 출산하던 임산부가 어쩔 수 없이 개복으로 전환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 의학 발전 정도로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개복 수술로 전환 중에 문제가 생기거나 더 안 좋은 상황이 생겨서 개복 수술 준비를 하지 않았을 때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의료 사고가 된다.
좌자전은 의외라는 얼굴로 마연린을 바라보며 턱을 문질렀다.
“연린아, 네 사고 구조, 좀 특이하구나.”
“네? 그럼 좌 선생님은 무슨 생각 했는데요?”
마연린은 더 의아한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태무 센트럴 병원은 간담췌외과도 독립되어 나오지 않은 대형 일반외과다.”
“그래도 간은 할 거 아니에요.”
“하지. 하지만 말이다……. 양학 주임의 전공은 췌장, 십이지장이야.”
“그것도 대단하죠.”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일반외과 하면서 간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나? 태무 일반외과 규모의 진료과에서 간 욕심 없는 사람이 없을 리 없어. 특히 다빈치 로봇으로 하는 건 역전의 좋은 기회니까.”
“간 수술하는 의사는 있을 거 아니에요.”
“이 정도 급 수술이고 위에 버티고 있는 상급 의사가 없는데 몇이나 도전하겠냐. 기껏해야 한둘이겠지, 그거로는 안 돼.”
좌자전은 점점 기운이 넘쳐났다. 아직 한 가지 마연린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부처님이 우방과 결탁할망정 자기 집 노비와 결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듯이, 태무 센트럴 병원 일반외과 내부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늙은 좌 동지가 긴 세월 남북을 오가며 이것저것 터득한 경험으로, 이 세상 삼갑병원의 인간관계는 차악만 있지 최악은 없다.
물론 억측의 성분이 조금 많고, 수치와 이론적 근거가 없는 데다가 조금 어두운 이야기라서 마연린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일이 성사되면 그만이니까.
좌자전은 양다리를 쭉 벌리고 자신감을 충전하고는 양학이 혼자 있을 타이밍을 재서 찾아갔다.
오후. 간단한 스페인식 빠에야와 일식 로바타야키를 먹고 난 능연의 앞엔 각종 간 영상 자료가 주르륵 꽂혀 있었다. 능연은 신이 나서 CT를 확인하고는 MRI까지 확인하면서 수시로 눈앞의 영상 자료와 비교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곁을 지키는 일반외과 의사들은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말 꺼내라고 지시받은 원 부주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일단 좀 보고 혹시 쉽지 않으면 다시 생각하지.”
“같이 해도 되고.”
양학 주임은 그걸 더 바랐다. 좌자전과 마연린이 예상했듯이, 양학은 간 절제를 하고 싶어 했다. 능연의 간 절제 쪽 유명세도 잘 알고 있고. 관련 케이스와 뉴스를 다시 읽어 본 양학은 심지어 능연에게 탄복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간 절제 영역은 실로 난도 높은 수술이었다. 비행기 제작에 있어 엔진부나 마찬가지였다. 비행기의 다른 부품을 기술 없이 만들 수 있다고 해도 헛소리고 욕먹겠지만, 엔진 제작 난도는 더더욱 의심할 여지가 없다.
스웩을 따져도 엔진 제작이 가장 쩐다. 그리고 복잡한 정도를 따져도 엔진이 일등을 다툰다. 그러나 다빈치 로봇은 어찌 됐든 조금 다른 만큼, 양학은 자기가 집도하고 능연이 옆에서 지도해주길 더 바랐다.
“일단 환자부터 보고 이야기하죠.”
능연은 여전히 결정권을 단단히 쥔 채 손을 저었다. 양학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뺏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자본이 없으니, 뺏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오늘 수술대에 오를 만한 환자는 모두 둘, 한 분은 간중엽 절제, 또 한 분은 간담관 암색전 합병증 환자입니다.”
양학은 여기까지 설명하고는 조금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이 두 환자 역시 예전부터 리스트에 있던 환자인데, 수술할지 말지 줄곧 결정 내리지 못한 케이스입니다.”
간중엽과 간담관 모두 간 수술 중 처리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한때 간중엽은 간 수술 중 금지구역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간의 풍부한 대혈관 안에 포위된 위치인 중심 지대에 있어서 절제하기 매우 어려워서였다. 게다가 절제 후 하나의 상처 면만 있는 다른 부위와 달리, 간중엽은 절제 후 두 개의 상처 면이 생겨서 상처의 봉합과 회복 모두 큰 난제다.
예전에 오맹초가 몇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실험실에서 동물 실험을 한 끝에 대량 데이터를 축적한 후, 1963년 여름이 되어서야 중국인은 해당 영역을 돌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수술로, 오맹초가 중국 외과 영역의 일인자에서 세계 외과 영역의 일인자로 부상했다.
이 두 수술 모두 간 외과 중 지극히 어려운 유형이었고, 오맹초가 영역을 개척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수많은 지방 정상급 삼갑병원의 일반외과 주임 혹은 간담췌외과 주임이 아직 접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이 두 수술 모두 개복 수술로 한다면 능연에게 준대도 별문제가 없다. 능연이 전에 수술한 적 있는 유형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빈치 로봇으로 수술할 예정이고, 이 두 수술을 선택하자니 아무래도 난감하게 하려는 거로 보일 수도 있었다.
양학은 능연 일행이 그렇게 생각하길 당연히 바라지 않았고, 그래서 특별히 설명을 덧붙였다.
“너무 급하게 말씀하셔서 그럽니다. 어제가 마침 우리 이 주임의 수술날이라, 다른 수술은 다 해버려서 말이죠. 지금은 이 두 수술만 남아서, 내일 혹은 모레 수술할 예정입니다.”
양학의 말에 두 사람 뒤로 조금 떨어져 있던 좌자전이 바로 물었다.
“그 말씀대로라면, 이 주임님이 이 두 수술을 할지 말지 결정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음. 두 환자 모두 몸 상태는 괜찮은 편인데, 이 주임이 아직 망설이고 있어요. 계획대로라면 출장 수술할 의사를 북경에 요청할 생각인데…….”
양학은 조금 껄끄러운 듯 말을 이었다.
“갑자기 간 절제를 하겠다고 하시니, 우리 쪽에서 제공할 수 있는 적당한 환자는 이 두 분뿐입니다. 아니면 며칠 더 기다리거나.”
“원래 개복 수술 준비하던 환자입니까?”
이번에도 좌자전이 물었고, 양 주임은 ‘음’ 하고 대꾸하고는 조금 더 털어놓았다.
“이 주임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주로 간중엽과 간담관 수술을 하고 있거든요.”
사실 양학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좌자전도 전후 인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두 수술은 이 주임이 실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기를 위해 준비한 실력 상승용 수술일 것이다. 안전을 기하려고 든든하게 북경에서 고수까지 초청한 것일 테고.
고급 의사는 기본적으로 성장 노선이 두 루트이다. 상급 병원의 초특급 의사 밑에서 트레이닝하면서 레지던트에서 부주임까지 기어 올라가면서 강자는 전승을 이어받게 되고 약자는 타향으로 멀리 떠나게 되는 노선 하나. 또 하나는 홀로 독립해서 쉴 새 없이 강호를 떠돌면서 유명한 스승을 구하면서 자력갱생하고 연구하면서 미래를 추구하는 노선 하나…….
물론 이 두 노선을 교차해도 된다. 다만 전자는 언제든지 후자가 될 수 있지만, 후자가 전자가 될 확률은 낮을 뿐이다.
“그럼 능 선생이 주임님과 함께 수술합니까, 아니면 이 주임님과 함께합니까?”
좌자전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정적인 문제를 물었다. 양학은 감탄하듯 좌자전을 힐끔 바라봤다.
“괜찮으면 제가 능 선생 어시하도록 하죠.”
“예, 좋습니다.”
좌자전은 안심하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어떤 수술하는 게 좋을까?”
“간중엽부터하죠. 간담관 암색전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 조금씩 떼어내야 하니까요.”
능연이 자연스럽게 하는 말에 좌자전은 의외가 아니라는 듯 양학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주임님, 그럼 우리 간중엽부터 할까요?”
“예.”
양학도 긴말하지 않았다. 그와 좌자전 모두, 이 주임을 버린 거나 마찬가지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정상이었다. 양학은 원래 능연 밑에서 간 절제를 좀 배워 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상 개복 수술 간 절제 수술 기술은 이 주임보다 조금 떨어져서 간중엽에 도전할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됐든 그의 임상 발전 방향은 간 절제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다빈치 로봇으로 간중엽 수술하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다른 건 접어두고, 이 영역에서만 말하자면, 다빈치 로봇으로 간중엽 수술하는 건 세계적으로 따져도 선두 그룹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리드는 병원에서 인정하고 국내 의학계에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외국 병원과 의학계에서도 인정할 것이다. 조금만 손 쓰면 다빈치 로봇 제조사에서도 기꺼이 홍보해주려고 안달일 것이다.
최악의 상황으로 생각해 봐도, 다빈치 수술에 실패하면 개복 수술로 전환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능연의 전적으로 보면 개복 수술로 전환해서 간중엽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이 주임의 기분 문제는, 진료과 내부 인간관계로 봐도 양학은 그 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이 주임의 전문 영역에 발을 들일 생각까지 하고 있고, 설사 더 합리적이고 더 완곡한 방식이었다고 해도 이 주임이 딱히 더 기뻐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나누면서 수술을 결정했다. 양학은 더 주저하지 않고 능연 일행을 데리고 바로 병실로 향했다.
“선생님.”
“양 주임님.”
진작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들은 의사들이 들어가자 바로 일어섰다.
“환자 상황 좀 보겠습니다.”
양학은 능연을 소개하지도 않고 먼저 다가가 손을 비비고는 환자 복부에 손을 두고 체격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는 자리를 능연에게 내주었다.
능연도 그가 체격검사하는 사이에 알콜겔로 손을 문질렀고, 손의 온도가 오른 지금 앞으로 나서서 더 상세히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랜드마스터급 체격검사 스킬에 사자왕급 실전 경험 그리고 뇌룡의 식사량처럼 많은 해부 경험은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대량의 정보를 능연에게 피드백해 주었다.
환자는 중년 부인으로, 수액을 맞고 있어서 조금 몽롱한 상태였다가 능연이 누르고 검사하자 서서히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환자 아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양학을 바라봤다.
“양 주임님, 인턴 교육을 이렇게 길게 할 건 없지 않습니까.”
“오늘 수술은 저와 능 선생이 같이합니다.”
상대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양학이 한마디로 대답하자, 환자의 아들도 바로 알아듣고 냉큼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괜히 그런 게 아니라, 어머니가 아프셔서 마음이 초조해서 그랬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 선생님.”
“괜찮습니다.”
좌자전이 상대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양 주임님과 능 선생 모두 실력이 뛰어나십니다. 이미 병은 생겼고, 두 분이 수술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좋은 일입니다.”
“네…….”
환자 아들은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 고질병이에요. 괜히 아들 고생시키고. 사실, 저는…….”
“엄마.”
아들이 서둘러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그동안 너무 바빴어요. 이 김에 좀 쉬면 돼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그 자리에 있는 의사 모두 환자와 보호자의 대화에 익숙하지만, ‘너무 바빴다’는 부분에는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침묵했다.
양학은 수술 준비로 들떴던 마음도 차츰 침착해지는 기분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능연은 여전히 침착한 얼굴이었다. 다만 체격검사를 착착 끝낸 다음 묵묵히 가상인간을 꺼내 다시 한번 검사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푹 쉬세요.”
검사를 마친 양학은 한마디 더 당부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복도로 돌아온 일행은 아까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오맹초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는군. 좋은 의사는 눈으로 병을 보고 마음으로는 사람을 생각한다고 하셨지.”
양학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양 주임님, 수술 플로우 한번 맞춰 볼까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허리를 곧추세운 채 정중앙에서 걷는 능연의 모습에 태무 센트럴 병원 의사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
능연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작은 양학 주임은 못생긴 데다가 나이도 많고 머리카락도 적고 체형도 못나서 기세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수술 플로우라는 말에 양 주임은 속으로 뜨끔해서 주저하며 대답했다.
“그럼 맞춰 봅시다. 그러고 보면 나도 간중엽은 오랜만이군.”
사실상 그동안 진행한 수술 중에 간중엽 수술은 한 건도 없었다. 오랜만이란 말도 사실은 예전에 선배 의사와 함께한 것이니, 그의 나이로 생각해 보면 선배와 함께 수술한 것이 얼마나 오래전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자질이 탁월한 소수 의사를 제외하고, 평범한 천재 의사는 어느 영역의 어느 방향에 집중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도태되고, 심지어 주임이 될 자격도 없다.
병원은 성과를 가장 따지고, 능력을 가장 따지는 곳이니까. 췌장 수술로 양학 주임을 찾아오는 의사가 있다면, 양학이 간중엽 수술을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간중엽 수술 능력이 어떤지 전혀 개의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임상 의학 능력으로만 따지면 박학다식한 것과 하나에 집중하는 건 서로 위배하는 관계이다. 양학의 간 절제 스킬은 여전히 진료과에서 1, 2위를 다투듯이, 평범한 주치의 혹은 부주임이 더 높은 급의 스킬을 터득하려고 할 때 병행하는 기술만 해도 분명 배울 게 많다.
그 각도로 보면, 박학은 더 높은 기술 트리로 오르는 데 반드시 거처야 하는 길이고, 의사의 기술 곡선에 빠질 수 없는 일환이다. 특히 자력갱생한 의사들이 기술 트리에 오르는 것은 피라미드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를 잘 다져야만 위로 한 발짝, 한 발짝 올라갈 수 있다. 수직인 기술 트리는 좋은 스승을 만나서 배워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이런 방식도 결국은 병목 현상을 겪게 된다.
양학 주임이 스승의 전승을 이어받은 것도 벌써 십여 년 전이었다. 그가 아직 진료과 주임이 되기 전, 그리고 이제 막 진료과 주임이 된 때에는 진료과에 간 절제 수술하는 선배 의사가 아직 있었다. 그러나 양학 본인의 전공은 췌장이었고, 그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고, 다른 수술도 고려해 볼까 했을 땐 이미 기술을 배울 선배가 없었다. 의학계를 강호로 예를 든다면, 태무 센트럴 병원의 지위는 화산파 지위 정도였다. 양학 주임 본인의 실력은 약한 편이 아니고, 지위도 낮지 않다. 그러나 잔혹한 강호 세계에서는 기껏해야 중급 수준이었다. 어쩌면 어느 종파 하나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대부분 병원과 진료과는 다 그렇다. 다들 큰물에서 작은 물로 가고, 작은 물에서 더 작은 물로 향했다. 초특급 천재가 나타나기 전엔 쉴 새 없이 정통하고, 강호의 변화에 따라 점점 더 강대해지거나 점점 더 약해진다.
양학 주임이 태무 센트럴 병원 일반외과의 새 영역으로 다빈치 로봇을 개척한 것은 강토를 개척한 것 같은 성과였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나가려면 반드시 다빈치 로봇으로 첨단 수술을 해내야만 한다.
췌장은 그의 전공 방향 중 하나지만, 단순히 췌장 수술로는 한 단계 더 올라갈 확률이 너무 낮다.
양학에게 간 영역은 그저 고려 대상일 뿐이었지만, 능연을 만났고, 수술을 몇 번 같이 하면서 그를 겪는 동안 사고 회로가 완전히 변했다. 사고 회로가 완전히 열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빈 회의실을 찾아서 들어온 양학은 겸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능 선생이 집도하고, 플로우도 직접 결정하세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로운 일엔 적극적으로 나서듯이 대답했다.
“그럼 첫 번째 방안은, 제1 간문에서 시작해서 인대 절단부터 하고…….”
능연은 세세히 빠짐없이 설명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부분을 빼놓지는 않고 느긋하게 설명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항상 해오면서 얻어낸 경험이었다.
자주 출장 수술 나가는 능연은 항상 본원에 있는 의사와 당연히 다르고, 이미 굳어진 플로우로 수술해도 된다.
다빈치 로봇 수술이라서, 첫 번째 방안은 비교적 보수적으로 잡았고, 양학에게 설명할 때도 아무런 막힘없이 설명해 주었다.
“다음은 대비용, 제2 방안입니다. 제1 간문과 하대정맥을 차단하고, 담낭을 절제하고 간문판을 박리합니다…….”
능연은 이어서 제2 방안을 설명했다. 시작하자마자 멀쩡한 담낭을 절제할 정도로 제1 방안보다 더 적극적인 방안이었다.
양학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간중엽 같은 수술에서 담낭을 희생하는 건 일도 아니었고, 수술만 순조롭고, 안전성을 200% 끌어올릴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능연이 예비 방안으로 삼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예비 방안을 시행해야 할 상황에 이르면, 환자와 보호자가 모두 집중해야 할 문제는 분명 담낭을 남기고 말고 할 문제 정도가 아니다.
“됐으면 준비하죠. 식사 후에 수술 시작합시다.”
능연은 식사 준비해도 된다고 좌자전에게 손짓했다. 양학은 멈칫하다가 능연의 뜻을 알아듣고는 허둥지둥 수술 계획 시간은 얼마인지 물었다.
“6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단 좀 자고 오셔도 됩니다. 괜찮겠죠?”
“네. 괜찮습니다.”
능연이 묻자 양학은 매우 빠르게 대답하고는 자기가 신분에 맞지 않은 태도를 보인 건 아닌지 하고,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진작 밖에서 기다리던 주 주방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따끈따끈한 소주(蘇州)식 간식과 독일식 소시지로 다 먹어도 그리 배가 차지 않을 도시락을 준비했다.
“너무 배부르면 졸릴 수 있으니까요.”
좌자전은 양학에게 설명해 주고는 걱정스러운 듯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님도 좀 쉬지 그래.”
능연에게 스테미너 포션이 있는 걸 모르는 좌자전은 그가 밤을 새운 거로만 알고 있었다. 능연은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술 전 준비하세요. 난 한 시간만 자고 올게요.”
스테미너 포션은 스테미너를 해결해주지만, 근육 피로는 역시 쌓인다. 능연은 두어 입 만에 음식을 깨끗하게 먹어 치우고는 휴게실에 쉬러 갔다.
“어, 우리 휴게실은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제가 가서 문 열어야겠군요.”
능연이 가버린 후에야 양학이 생각난 듯이 하는 말에 좌자전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수간호사님이 이미 능 선생 방 준비해주셨습니다.”
좌자전이 침착하게 말하자 양학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난 못 들었는데.”
“너무 사소한 일이라서 말씀 안 드린 모양이지요.”
좌자전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고, 양학은 생각이 더 많아져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운화병원 일반외과, 간담췌외과 주임, 참 힘들겠습니다.”
양학으로서는 수술 전 준비 작업이 사실 조금 힘들었다. 새로 전개하는 수술 방식이라, 수술실과 마취 준비 모두 특별히 신경 써야 했고, 그러려면 수술과와 마취과의 특별한 협조가 필요했다. 그것 외에도, 수술 시간도 탄력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예상 6시간짜리 수술이라고 해도, 수술실 부킹은 10시간으로 잡는다.
다빈치 로봇 수술에서는 6시간도 충분히 긴 시간이고, 10시간이나 되면 다른 의사의 사용 시간을 차지하는 셈이다. 게다가 병원 윗선과 다른 진료과 의사들까지 궁금해하기 시작하자, 양 주임은 심지어 후회가 들었다. 너무 복잡하고, 너무 주목받고 있었다.
기술자는 보통 너무 주목받는 환경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성격이 괴팍하거나 사교 공포증이 있어서 그런 것뿐만 아니라, 실수할 확률이 너무 높아져서였다. 기술자들은 실수, 특히 새로운 기술을 시작하다가 겪는 실수는 혼자 있을 때 저지르길 더 바란다.
이제 시작해야 하는 이 간 절제 수술도, 자신감만 따지면 어느 정도는 있었다. 능연이 과거 며칠 동안 다빈치 로봇을 능숙하게 다룬 모습, 그동안 간 절제 영역에서 보인 능력이 양 주임의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확률면에서는 바뀌지 않은 것도 있는 법이었다. 라이브 중계 중에 폭발해버린 미사일을 생각해 봐라. 설계하고 검사한 사람 중에 자신감 넘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다들 자신감에 넘쳐서 점화한 것이지만, 계속해서 발생하는 실패자가 지금껏 모두의 취약한 신경을 자극하고 있지 않은가.
양 주임도 이 수술의 마지막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고, 점점 더 많은 이가 주목하게 되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술이 시작되자, 양 주임은 사라지지 않는 초조함을 달래고는 샘물처럼 고요히 흘러가기로 했다.
능연은 예전과 변함없이 일단 영상부터 판독한 다음, 환자가 본인이 맞는지 확인한 후에 직접 수술복을 입고 로봇 팔 부품을 환자 복부에 찔러 넣었다. 이전에 한 수술에서는 모두 어시들이 진행한 일들을 오늘은 능연이 직접 했다. 더 정확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니면 세레모니 느낌을 더 강하게 하려고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능연은 살며시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있는 양 주임과 사람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제 컨트롤실로 들어가죠. 연 선생님, 선생님이 수술실에 계세요.”
“예압.”
연문빈은 바로 대답했다. 간중엽 같은 복잡한 수술에서 수술실에 남아 어시를 맡는다는 건 보조 도구를 교체하고 클리닝 혹은 수정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수술 중에 사고가 생기면, 그가 두 번째 안전밸브가 된다. 기계 팔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재빨리 개복으로 전환하고, 지혈 같은 작업을 하면서 능연이 안으로 들어올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능 팀 최고참 의사인 연문빈은 이미 단지 이식, 그리고 단지 재건 수술에서 작은 세상을 펼친 만큼 지혈 스킬도 꽤 괜찮았다. 적어도 일반 다빈치 로봇 수술팀에서는 연문빈 급의 의사를 쓰진 못한다.
능연은 전혀 미적거리지 않고 망설임도 없이 앞장서서 수술실에서 나가서 컨트롤실로 돌아갔다. 양 주임은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 걸을수록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능연에게 사람을 감염시키는 모종의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사실상, 능연 본인은 조금 불안감이 있었다. 간 절제 수술은 매우 복잡한 수술이고, 이런 수술을 아무리 많이 했다고 해도 마음을 놓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부담 없고 편안해 보인다고 능연 자신이 정말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익숙해질수록 노련해진다는 측면에서 더 편안하게, 그리고 더 노력해서 수술할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간중엽 수술은 금지구역 중의 금지구역으로 불리는 만큼, 능연은 개복 수술할 때도 몹시 진지하게 임했다. 지금은 갑자기 다빈치 로봇으로 수술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능연은 어릴 때부터 자신감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아침에 입고 나간 옷과 신발이 저녁이 되면 친구들에게 유행하는 걸 종종 발견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많이 입은 옷은 교내, 심지어 동네의 최신 유행이 되고, 근처 옷가게 직원이 학교에 와서 몰래 사진을 찍다가 파출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각종 단체 행사에서 능연은 그런 유행이 퍼지는 걸 더 똑똑히 느꼈다. 그가 노력하면 그 단체도 노력했다. 그가 흥분하고 기뻐할 땐, 그 단체도 흥분하고 기뻐했다. 마찬가지로, 그가 의기소침하면 그 단체도 의기소침했다.
게임이나 체육 활동할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생활로 차츰 범위가 넓어지면서, 능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졌다. 바로 그런 이유로, 능연은 중요한 순간에 자기감정을 다스리면서 적극적 시그널을 내뿜었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간중엽 수술을 해온 오맹초 등과 비교하면, 이미 개복 수술은 익숙하게 진행하는 능연은 기술적 부담이 훨씬 적었다. 그러나 곁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능연은 더 많은 부담을 져야만 했지만, 본인은 신경 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그와 동시에, 운리의 라이브 중계 시스템도 수술화면과 수술실 화면을 동시에 방송했다.
양학은 개인적으로 라이브 중계를 그리 바라지 않았다. 특히 본인의 활약이 그다지 튀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러나 태무 센트럴 병원은 그의 한 마디가 먹히는 곳이 아니었고, 이 수술에 관심을 보인 병원 윗선들이 수술을 볼 수 있는 라이브 중계를 원했으니 양학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라이브 중계를 홍보하지는 않아서, 그저 운리 시스템에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내부 홍보도 하지 않은 모양이라서 양학도 조금 안심했다. 큰 문제가 생길까 봐 무서운 건 아니었다. 이 수술은 대부분 다빈치 로봇 수술이 그렇듯이, 최악의 경우 개복으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같은 영역 내의 의사도 툭하면 개복 수술로 전환하고 있었고, 로봇 수술은 아직 복강경 수술만큼 성숙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러니 밑바닥이 드러날 상황은 드물어서 양학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설사 정말로 개복 수술까지 해도, 제어할 수 없는 사고가 생겨 실패한 상황이 생겨도, 그 정도 직급쯤 되는 의사에게는 수술을 시도한 것만으로 용서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전칠도 회의실에서 아이패드를 꺼내서 수술화면이 아닌 수술실 화면만 켜두었다.
그룹 연구부에서 만든 라이브 시스템에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일이 바쁘고 툭하면 회의하러 나와야 하지만, 아이패드만 열면 능연이 수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꽤 마음이 놓였다. 자신감도 생기고, 투지도 불타올랐다.
전칠은 모니터 한 번 힐끔 보고는 고개를 들고 더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회의 테이블 저쪽을 바라봤다.
“간문 차단. 타이머 15분 작동.”
능연이 명령내리자, 수술실 안팎 간호사가 바로 시간을 조정했다. 양학은 심호흡하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간 수술의 어려운 점이 바로 간의 혈행이 왕성해서 조금만 잘못해도 출혈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현대 의학과 조기 서양 의학의 큰 차이점이 바로 수술 중 출혈량을 전면적으로 제어해야 하는 점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초기의 야만적 의학처럼 오로지 속도를 추구하고 툭하면 사지를 절단한 다음에 지혈하는 수작을 부릴 수 없다.
그러나 인체의 다른 장기와 달리 간은 유난히 취약하고 중요한 장기라서 혈액 공급을 차단한 다음에 수술이 끝난 후에야 관심 주면 실패할 확률도 매우 높아진다. 그런 고로 초기 임상 의사는 ‘저온 마취법’을 창조했다. 원리는 저온을 채택하여 근육과 신체의 저항을 낮춰서 혈액 차단 효과를 조금 더 길게 유지하는 심장 체외순환과 조금 비슷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손상이 지극히 심하다. 특히 환자에게 상당히 큰 고통을 준다. 그래서 오맹초가 ‘항온 간헐적 간문 차단 간 절제법’을 개발했을 때 세계적으로 주목한 것이고.
능연은 오늘 전통적인 ‘항온 간헐적 간문 차단 간 절제법’을 선택했다. 우선 저온 마취가 아니라서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고 예후도 더 좋아진다. 그다음, 간헐적 간문 차단이란 간헐적으로 간에 혈액을 공급한다는 뜻으로, 최대한 간 활성을 보장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맹초가 실험용 개를 이용해서 여러 번 시도한 끝에 확정 지은 것이다.
간문 혈액 차단 시간은 총 15분, 그리고 5분 동안 혈액 공급하면서 수술 후에 환자가 급성 간 기능 쇠약을 일으킬 확률을 대대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간 혈액 부족 그리고 재투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상도 줄여서 수술 안정성과 성공률을 높인다. 이 방법은 한때 중국 간담췌외과의 ‘비전’으로 통했고, 그 시대에서는 외국인을 놀라움으로 뒤흔든 기술이었다.
물론 여러 번 놀란 끝에, 국제 사회에서도 매우 빠르게 통용되었고, 곧 국제 간담췌외과 표준 수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15분간 간문을 차단한 동안 외과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15분, 다음 15분 순환하는 횟수가 적을수록 환자의 신체 손상 부담도 더 줄어든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빠른 수술 속도는 상당히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의료 시스템의 자본화 덕에 현대 외과 설비, 기구가 빨리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있지만, 시간이 새 기술, 새 발견에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같은 서전이 전통적인 메스와 봉합사로 수술할 때의 속도는 분명 전동 메스를 사용할 때보다 명백히 느리다. 마찬가지로 전동 메스를 사용하는 서전의 수술 속도는 분명 동기 의사 중에 손꼽히는 수준이다.
다빈치 로봇의 기계 팔엔 기능이 잔뜩 탑재되어 있어서 이론적으로 수술 속도를 끌어 올리는 기능도 있다. 그러나 실제 사용할 때는 수술 공간이 의사가 실력 발휘할 기회를 가로막는다.
아무리 공기를 주입해서 배를 부풀려도, 개복 수술만큼 수술 공간이 넓진 않다. 기계 팔이 720도 회전한대도 제한된 수술 공간 안에선 그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빈치 로봇이 수술할 때는 총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밀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정신을 집중해서 기술로 기술 차이를 메우는 것밖에 없다.
양학은 정신을 집중해서 평생 배운 것을 운용하며 능연의 손놀림을 따라 손을 놀렸다. 대형 일반외과 출신인 그의 간 절제 방면 기술을 따지면 국내 일류 축에 끼지 못한다. 그러나 어시로서는 매우 막강했다. 복강경 해부 관계에 대한 이해, 터득한 첨단 이론, 임상 수술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경험, 그리고 다빈치 로봇에 대한 익숙함, 이 모든 것을 그다지 현란한 스킬을 쓰지 않고도 어시 자리에서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양학 역시 매우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컨트롤타워 앞에 앉아서 능연에게 협조하고 있었다. 원래 간단한 조작이니까.
실제로도 정말 간단했다. 수술 시작부터 제1 간문 차단까지 양학은 매우 손쉽게 협력했다. 그리고 제1 간문이 차단됐을 때, 양학은 점점 더 자신감이 넘치고 느긋해졌다. 그리고 곧 능연이 ‘집중’하고 상기시켜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양학은 미소 지은 채 더 주의를 기울였고, 그리고……. 갑자기 다빈치 로봇 컨트롤러에 의문이 생겼다.
‘왜 따라가지 못하겠지.’
양학은 속으로 꿍얼거리고는 재빨리 능연의 손놀림을 따라갔지만, 시종일관 반 발짝 늦는 느낌이었다.
다빈치 수술을 10건 넘게 해온 능연은 지금 익숙한 단계를 넘어선 정도로 다빈치 로봇을 제어했다. 그리고 그가 완벽하게 기계를 컨트롤할 수 있어졌을 때, 그랜드마스터급 간 절제 스킬은 지극히 막강해졌다.
개복 수술 때와 달리, 720도 회전하는 다빈치 기계의 기계 팔은 집도의가 실제 조작할 때 상상 능력을 대대적으로 시험한다.
굳이 형용하자면, 정상적인 집도의가 다빈치를 사용하는 건 민항기를 모는 것과 비슷하다. 이 비행기를 전후좌우로 움직일 수 있고, 시계방향, 역 시계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지만, 보통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설사 조금 거칠게 운전하는 의사도 최대한 회전 범위를 컨트롤하며 움직인다.
그런데 오늘 능연은 광기의 전투기 조종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필요에 따라, 그가 컨트롤하는 기계 팔을 거의 쉬지 않고 빙글빙글 돌려댔다. 빙글빙글, 쉴 새 없이 빙글빙글.
양학은 자기의 건강한 신체 덕에 토하지 않고 버티는 거라고 생각했다.
“10초 남았습니다.”
수술실에서 연문빈이 귀띔해 주어도 능연은 못 들은 것처럼 변함없이 미친 듯이 손을 놀렸다.
“5, 4, 3…….”
연문빈의 목소리도 멈추지 않았고, 능연은 마지막 순간에 간문 차단을 풀었다.
“타이머 5분 시작합니다.”
능연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좌측 컨트롤타워를 바라봤다.
“느낌 어떻습니까?”
양학은 고개를 들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양학은 그래도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방 안팎에 있는 의사들을 마주하고 침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마음속엔 태풍이 스치고 지난 듯이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왜 내 기계는 능연이 쓰는 거랑 다른 거야!’
운리 라이브 방송.
고작 28명 시청 중인 방송에도 평론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의문이 계속 올라온다고 해야 옳은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아, 어지러워.
-요즘 다빈치 조건이 이토록 까다로워졌나? 이건 거의 조종사 수준인데.
-환자의 내장이 토할 일이 없어서 그렇지, 복강에 토사물이 가득할 뻔했네.
운리 라이브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지금 28명 시청자 뒤엔 어떤 병원은 말수가 적고, 어떤 병원은 말이 많은 차이점이 있을 뿐, 더 많은 의료진이 있을 수 있다.
태무 센트럴 병원은 엄숙하고 겉보기엔 냉정해도 속으로 열정이 넘치는 경향이 있는 유형의 사람이 많았다. 바로 모니터를 보는 사람, 핸드폰에 연결해서 보는 사람 모두 묵묵히 모니터와 액정의 평론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뿐, 직접 발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의실에서 라이브를 보던 부원장이 호기심이 생긴 듯이 컨트롤실로 향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바퀴 돌고는 능연의 손놀림을 찍어서 내보내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 거라고 건의했다.
그 말에 컨트롤실에 있던 의사들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윗선의 머리는 가끔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한 번씩 쓸모 있을 때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빈치 로봇에 교육 기능도 있어서 손놀림 부분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제약회사 직원이 좌자전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태무 센트럴 병원 담당 제약회사 직원으로 라이브 방송의 민감도를 잘 알고 있었고, 말이 잘 안 통하는 의사를 만났다가는 상대하기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좌자전도 자기가 결정할 수 없어서 컨트롤타워 쪽으로 다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수부 쪽 동작을 보고 싶대.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하자는데.”
“아, 그러세요. 운화병원 쪽도 해주세요.”
능연은 자신의 실력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좌자전은 서둘러 대답하고는 제약회사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에 전화하러 나갔다.
태무 센트럴 병원에 상주하는 엔지니어가 있었고, 심지어 직접 올 필요 없이 원격으로 제어한 후에 모니터에 바로 한 구역이 생기더니 컨트롤러를 쥔 능연의 손 영상이 보였다.
한 의사가 능연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예쁘다.”
곁에 있던 의사가 듣고는 바로 동의했다.
“모니터 하나 더 추가하지. 벽면이 많이 비었잖아. 아깝게.”
부원장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제약회사 직원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엔 병원에 상주하는 엔지니어가 직접 나타났다. 손엔 27인치 모니터 두 개까지 들고 나타난 엔지니어는 두어 번 만에 벽에 모니터를 설치했다.
국내 병원은 설비 사용 면에서 모두 지극히 제멋대로였고, 삼갑병원일수록, 삼갑병원 중 좋은 병원, 정상급 병원일수록 제한이 거의 없었다. 특히 진료과 주임 이상의 고급 의사들은 병원의 제약이 거의 없을뿐더러 제약회사의 갖가지 우대를 받는다. 몇천만 위안짜리 모니터는 둘째치고 몇만 위안짜리 약품 혹은 식비 모두 전화 한 통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 데다가 나아가 증빙을 올리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어진다.
의사들은 제약회사 직원을 길게 신경 쓰지 않았고, 모니터가 조용히 설치된 다음에 새로 시작된 ‘15분’에 집중했다. 환자의 제1 간문이 다시 차단되고, 쉴 새 없이 콸콸 흐르던 혈류가 수도꼭지의 물처럼 단번에 뚝 그쳤다.
동시에 간 위에 붕 떠 있던 기계 팔이 다시 움직였고, 그와 함께 능연 시야로 보이는 모니터에 장면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의사들은 새로 설치한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능연의 손가락 아래 흔들리는 컨트롤러가 앞으로 갔다가, 회전했다가, 좌로 갔다가, 우로 갔다가……. 보고 있는 의사들은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모니터와 핸드폰 화면을 비교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자기가 조작한 것 혹은 예전에 봤었던 동영상과 비교해 본 사람도 모두 놀랐다. 다른 미남미녀의 손가락과 비교해 본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저런 영화와 비교해 본 사람은 눈을 감아 버리고 싶어졌다.
능연이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았고, 컨트롤실 안팎에서 술렁이는 소리도 싹 무시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고요하고 엄숙한 수술실과 달리, 실제 수술실은 사무실과 비슷하다. 소독, 위생 등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일반 수술실은 그렇게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지 않고, 의료진의 수다도 금지하지 않았다.
능연에게는 학창 시절과 비슷한 일이었다. 외모가 괜찮은 편인 여자들이 항상 그의 곁을 에워싸고 크고 작은 소리로 웅성대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은 같은 업계 의사와 간호사로 바뀐 것이라 더더욱 방해로 여겨지지 않았다. 능연은 역시 수술 자체를 더 즐겼다.
사실상, 간 절제 수술로 바꾸고도 이토록 순조로우리라고는 능연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에 다빈치 로봇을 사용할 때는 아직 숙련되지 않아서, 능연 본인을 포함해서, 간 절제 같은 큰 수술에 도전할 시도를 하지 않았다. 수술 등급 분류는 대부분 ‘죽냐, 아니냐’로 판단 기준을 잡는다.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수술은 4급으로 분류되어 주임 의사만 집도할 수 있고, 잘못해도 죽지 않는 수술은 1급으로 분류된다.
간 절제는 엄연한 4급 수술이고, 당연히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만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능연은 간 절제 수술 숙련도가 실로 너무 높았다. 심지어 같은 유형의 수술을 너무나 많이 해서, 정상 수술 과정 중에 전혀 쓸 필요가 없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도 가득 가지고 있었다.
같은 저수지에서 항상 낚시하는 사람이 어종, 날씨, 미끼의 선호도, 저수지 깊이를 모두 파악한 다음에 주변 식물, 벌레 종류, 오가는 교통 등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은 이해도를 갖췄다고 치고, 낚시 자체를 따졌을 때는 후반의 정보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낚시 규칙이 바뀌지 않는 이상 말이다. 오가는 교통편의 시간을 낚시 시간 그리고 소비에 포함하거나, 낚시 시간이 마라톤 시간만큼 길어지거나, 주변 식물이 계절 혹은 다른 요인으로 물고기의 밀집도에 영향을 주게 되면, 그 정보들은 새로운 유리한 조건이 된다.
그리고 그랜드마스터급으로 오른 후에 쉴 새 없이 축적한 간 절제 경험이 지금 능연에게 거대한 작용을 했다.
평범한 의사가 간 절제를 배우면 간에 관한 각종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열심히 해부하고 공부하지만, 정도 차이를 따지면 큰 차이가 있다. 입문급 의사는 억지로 스텝 외우기에 급급할 것이고, 조금 뛰어난 의사는 기술을 확장하여 각종 장기 변이 혹은 수술 중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닥쳐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원리적인 것들을 따지자면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방정식 푸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입문급 선수는 익숙하게 전형적인 방정식 답을 얻어내고, 전문가급 선수는 변형된 방정식에 대응할 수 있지만, 마스터급까지 진입하게 되면 방정식 변형도 규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원리에서 출발해서 분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랜드마스터급이 되면 다른 방정식을 합병하는 상황을 마주치는 것뿐만 아니라 대수 해법이 없는 방정식을 마주치기도 한다. 심지어 기하 해법이 없어서 새로운 수학 도구가 필요한 상황도 닥친다.
다빈치 로봇으로 간 절제 수술한다는 것은 새로운 수학 도구로 방정식을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정식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도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진다. 그리고 양자 모두 이해한 후에는 확연히 다른 답안을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같은 간 우정맥 박리, 간 좌, 중 정맥 처리, 제2 간문 부분 박리라고 해도 다빈치 로봇으로 처리하려니, 능연은 실제 내용에 변화가 생긴 걸 발견했다.
“차단 풀고 잠깐 생각 좀 하겠습니다.”
능연은 이번엔 15분을 다 쓰지 않고 차단을 풀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후속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양학은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바라봤다. 평론이 올라온 모니터엔 역시나 감탄이 가득했다.
-뭘 더 생각한다는 거야? 나야말로 깊은 생각에 빠졌네.
-이건 뭐, 100점 맞은 학생이 이번에 실수했다고 하는 거잖아.
-능 선생의 손이 예뻐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짜 화났을 거야.
양학은 예전에 수술 라이브 보면서 평론하는 의사를 경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이 경박한 그 말들을 보며 깊이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 주임님, 내 생각엔 종양이 벌써 하대 정맥에 침범한 것 같습니다. 혈관 벽 절제하겠습니다.”
능연은 곧 새로운 결정을 내렸고, 옆에 있는 양학에게 통지했다. 양학은 빙긋이 미소 지었다.
“예, 예.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환자의 상태를 심층 파악할수록 능연의 수술은 갈수록 순조로워졌고, 주변에서 논의도 갈수록 많아졌다.
지금 수술 내용에 토론 포인트가 많아서는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수술 진행이 빠른 데다가 간중엽 수술의 핵심 부분으로 갈수록 모르는 부분이 많아졌다.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다들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최우수 학생은 항상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사실 꼴찌라고 해도 꼭 수업을 열심히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데,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으니 몇 분 지나면 점점 견디기 힘들어서 더 재미있는 것을 찾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방송 보는 사람의 진짜 목표는 수술도 아니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핸드폰을 들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집중했다.
-능 선생 손, 정말 예쁘네요.
-속도도 빠르고, 정확하고. 피아노 치는 느낌이 이런 걸까요.
-다빈치 수술 꽤 행복하네요.
초짜 의사들이 어느새 한 무리로 모였고, 화제도 점점 퍼져 나갔다.
-양 주임님 아까 고개 들었을 때, 표정 봤어? 갑자기 친절해 보였어.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네. 전처럼 엄숙하지 않고 좀 온화해 보였어.
-맞아, 진짜 평온해 보였어. 뭐랄까, 뭐랄까…….
-평평하게 누운 표정?
-맞아!
-정말이네!
누군가는 양 주임이 정말로 성격이 온순해지면 앞으로 편해지겠다는 좋은 생각을 했다. 초짜 의사들은 생각만 해도 신이 나서 발가락까지 치켜들었다.
양 주임도 사실 발가락이 치켜 들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술 전, 중반까지는 능연과 서로 적응하고 있었다. 능연은 다빈치 로봇으로 간 절제 수술하는 그 자체에 적응하면서 양 주임에게 극한의 압력을 주었다. 자기 부담을 낮추면서 양 주임의 능력 한계치를 테스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야 수술하다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양 주임에게 정확한 분량을 부담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술 핵심 부분에 이르렀을 때, 능연의 테스트도 끝났고, 역 조공 스킬도 이때가 되어서 완벽히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도전성은 있지만 멘탈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양 주임을 압박하며 극한 이상으로 몰아붙였고, 양 주임은 편안하면서도 성취감을 느끼는 상태에 빠졌다. 의사에게 이런 수술은 섹시한 모델과도 바꾸지 않을 수술이었다.
일상 업무 중에 편안하면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라면 누구에게라도 극락일 것이다. 연문빈부터 마연린, 여원, 좌자전까지, 능연과 하루하루 밤을 새워 수술하면서 역 조공 스킬로 얻는 작용이 만만치 않게 많다.
양학은 그 역 조공을 만끽하면서, 만끽하면서, 갈수록 편안해져서 진저리쳤다. 한 편으로 본인의 부담이 낮아질수록, 능연의 수술 부담이 높아지고, 수술 진도는 더더욱 알아볼 수 없어졌다.
그리고 이 정도로 모르는 수술이 되면 그냥 마음 편하게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이를 도저히 채울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벌어졌는데, 그냥 편하게 누워 있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더 열심히 배워? 어떻게? 뭘? 어디까지 배워야 하나?
더 분투해? 방향은? 목표는? 분투한 결과는 또 뭔데.
양학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도 없었고, 대뇌가 본능적으로 사고를 포기했다.
“차단.”
“릴리즈.”
“차단.”
능연의 명령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손놀림은 더더욱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어찌나 현란하게 움직이는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수술이 끝났을 때 쉰 넘은 양학 큰 주임님은 초 비싼 의자에 일어나지도 않고 누워 있고 싶었다.
“총 수술 시간, 5시간 20분입니다.”
연문빈이 유리창 너머에서 시간을 보고했다. 개복 수술과 비교하면 좋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학은 흡족한 듯 웃으면서 무기력하게 입을 열었다.
“8, 9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환자가 상대적으로 젊어서, 조금 더 빨랐네요.”
능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양학과 다른 사람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능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앞으로 다시 하면 속도가 더 빨라질 겁니다. 4시간 안까지 단축할 수 있을 거예요.”
4시간이면 개복 수술과 비슷한 시간이었다. 양학의 미간이 실룩였다.
“4시간이라니, 난도가 너무 높은데. 그럴 필요…… 있습니까?”
몇 시간 이전이라면 의문 품은 말투로 그럴 필요 있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능연과 수술 한 번 한 후엔 자기가 생각해도 태도가 누그러졌고, 마음가짐 자체가 평화로워진 것 같았다.
어떤 마음가짐이냐면, 길 가다가 꼬맹이가 중지를 치켜드는 걸 봤다면 화가 나서 길길이 뛰겠지만, 타이슨이 중지를 치켜들었다면 꾹 참고 어른의 미소를 짓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능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목 쪽 맥박을 살며시 문질렀다.
“환자는 수술 효과를 높이고 수술 시간을 단축해서 더 큰 이득을 얻으려고 다빈치 수술을 선택하는 겁니다. 물론 수술을 정밀하게 하는 것이 1순위지만요.”
능연은 여원을 바라보며 그 말을 했고, 여원은 별다른 지시 없어도 벌써 자기 손바닥만 한 작은 노트와 자기 손가락만 한 펜을 꺼내서 능연이 조금 전에 한 말을 기록했다.
나중에 논문에 쓰일 만한 내용이었다.
양학은 주저하며 싱긋 웃었다. 할 말이 뱃속 가득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개복 수술과 비교했을 때 다빈치 로봇의 장점이 바로 정밀함이었다. 목표 구역을 10배 확대할 수 있고, 그 덕분에 더 정밀한 방법으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 현재 외과 영역에서 비교적 선호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유방암 수술은 2, 30년 전이었다면 한쪽 유방을 잘라버리는 걸 우선하여 고려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서는 환자들은 유선만 제거하는 걸 훨씬 더 선호한다.
의료적으로 고려하면, 분명 전체적으로 잘라내는 방안이 더 안전하다. 그러나 정밀화 수술의 발전에 따라 유선 절제 방안을 선택하는 게 환자의 종합적 이득이 더 클 수 있다.
그리고 간 절제 수술도 비슷한 상황이다. 절제할 간 조직이 많을수록 환자 예후가 좋지 않다. 그러나 간을 충분히 절제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양자의 균형을 잡는 게 바로 정밀화 수술의 목적이다. 수술을 섬세하게 하면 할수록 필요한 시간도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예후 문제가 변함없이 불거진다.
그래서 환자의 총 이득 면에서 참으로 혼란스러운 문제였다. 그러니 능연이 시간 단축하겠다고 하는 것은 분명 좋은 방안이다. 그러나 양학 입장에서는,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다들 못 하는 것일 뿐이었다.
더 세밀하고 더 빠른 건 바란다고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 발전해야 하는 방향이긴 하네요.”
부주임이 그렇게 인사치레하면서 능연을 식사 초대할 생각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능연은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와 관련된 생각이 있으니 이야기 나누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능연은 이 사람들의 사교적 심리를 아랑곳하지도 않고는 마치 자기 병원에 있는 것처럼 수술실 밖으로 나가서 회의실로 향했다.
“저기, 양 주임님, 보호자에게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좌자전이 양학 주임 뒤를 따르며 살며시 귀띔하자, 양학은 능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내가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능연은 신분이 애매하니, 보호자 면담은 양학이 하는 게 가장 적합했다. 좌자전은 껄껄 웃으며 양학 곁에 달라붙어서 그의 기분을 어루만졌고, 양학은 곧 주임 기세를 다시 갖추고 보호자 면담도 자신감에 넘쳐서 진행했다. 능연은 수술 후 환자에게 ‘수술 성공’ 같은 말을 하는 순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를 좋아하고 성취감도 느끼는 의사도 있다. 그러나 능연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루트가 너무 많아서 그에게 있어 수술 후 면담의 서열은 너무 낮았다.
좌자전과 양 주임이 돌아왔을 때, 회의실 안엔 이미 스케치가 열몇 장 붙어 있었다. 능연은 사람들을 등진 채 손에 2B 연필을 들고 빠르게 그려 나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방향에서 보는 하얀 가운을 입은 능연은 평소보다 시크함이 줄었고 조금 더 바빠 보였다. A4 용지에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선을 만들어내는 그에게서는 예술가의 기질이 느껴져서, 일을 미루는 버릇이 없는 다빈치…… 같은 느낌이 들었다.
A4 용지?
양학은 차마 욕은 하지 못하고, 눈을 찌푸리면서 곁에 있는 의사를 끌어당겨서 왜 좋은 종이를 쓰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의사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병원에 더 좋은 종이가 어디 있다고. 심전도 종이?
“그럼 가서 찾아올까요?”
붙잡힌 의사가 고분고분 묻자, 양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사가 밖으로 나간 후, 양학은 몇 걸음 안으로 더 들어가서 부주임 원수의를 붙잡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능 선생이 복기 중입니다.”
원 주임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고, 양학은 익숙하지 않은 얼굴로 되물었다.
“그림으로 복기해? 이런 상황 본 적 있나?”
“주임님, 능 선생 같은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원 부주임은 더 당연한 얼굴로 되물었다. 양학은 말문이 막혀서 원수의 녀석이 가끔은 맞는 말도 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쓸모 있어?”
양학은 질문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있습니다.”
원 부주임의 표정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양학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저도 모르게 바짝 다가가서 유심히 살폈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수하 의사가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 건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은 PPT만 꺼냈어도 시간 낭비한다고 욕해주었을 것이다.
양학은 ‘눈으로 봐서 얻는 것’을 가장 숭상하는 구식 외과의였다. 그런 그가 노년에 임상 방향을 다빈치 로봇으로 바꾼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지금 일반외과는 복강경의 천하이고, 자신이 아무리 ‘눈으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환자의 강렬한 요구에 따라 대부분 시간을 복강경 2D 모니터에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렇게 따지면, 원근감이 느껴지는 3D 다빈치 로봇이 오히려 ‘눈으로 보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양학은 ‘복기’를 그다지 믿지 않았다. 스케치로 그려낸 복기는 더더욱 황당하게 느껴졌다. 최초 인류의 해부도는 스케치로 그린 거라지만, 이 시대에, 임상 의학이 스케치와 상관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능연이 그린 것이니, 진지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양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고, 원 부주임은 자연스럽게 그의 뒤로 다가가서 섰다.
“그렇죠?”
“음.”
두 사람은 수술할 때처럼 진지한 얼굴로 은어를 주고받듯이 이야기를 나눴다. 능연의 스케치는 지극히 단순했지만, 슥슥 그은 것 같은 선으로 해부 관계를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게 표현해냈다. 게다가 오늘 마지막 수술인 간중엽 수술을 초본으로 그린 것이었다.
양학은 그림에 그려진 간의 모습을 통해 심지어 아까 렌즈를 통해서 봤었던 화면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매우 정확하게 그렸군.
양학은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 수술 과정을 다시 떠올렸다. 능연의 그림 중 7, 8번째까지는 수술 전반부였고, 9번째, 10번째 스케치부터는 화면이 낯설게 느껴졌다.
물어볼 필요도, 능연의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양학은 바로 화면을 알아보았다. 이 화면이 바로 능연이 말한 ‘발전 방향’이었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이 부분이 능연이 생각하는 수술 중 수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양학은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 더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 안에서 오류와 문제점을 찾아 나중에 능연에게 물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그 자리에 있는 주치의와 레지던트는 이미 눈앞에 펼쳐진 그림에 지쳤고, 한둘씩 조용히 뒷걸음질 쳐 보더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자 대부분 회의실을 떠나 쉬러 갔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모두 도망갈 수 없거나, 아니면 사진을 찍고 싶은 초짜 의사들뿐이었다. 양학 같은 주임급, 부주임급 의사는, 남자는 침묵하고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지켜봤다.
“제 생각엔, 전체 플로우를 수정하면 4시간 안에 간중엽 수술 한 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30분 넘게 그림을 그린 능연은 커다란 방향성은 다 그려냈다. 직접적인 스케치로 정확하고 또렷하게 그려낸 것이라 비주얼적으로 느낌이 매우 좋았다.
물론 수술 순서와 구체적인 과정도 똑똑히 그려져 있었다.
“음…….”
양학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능연의 스케치로 봐서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단순히 그림으로 과정을 이렇게 크게 바꾼 것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미 있는 수술 방식으로 수술하는 게 아무래도 더 안전했고, 설사 과학 기술 연구 프로젝트를 개발한다고 해도 이런 기초로는 부족하다.
그때, 좌자전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능 선생, 이제 수술 한 건만 더 하고 돌아가지. 우리 병원에 다 준비되었어.”
좌자전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림을 한 장, 한 장 거두고는 주변 의사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작은 학회 한 건 했다고 생각합시다. 돌아가서 바로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할 겁니다. 다들 신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아까 찍은 사진, 외부에 유출하지 말고 소장만 하는 거로…….”
좌자전은 이야기하는 사이 스케치 80장을 가지런히 거둬서 치우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라는 말에 양학의 신체 세포가 활발히 깨어났는데, 마음이 허전해졌다.
4시간 안에 다빈치 로봇으로 간중엽 수술을 끝낸다니. 매우 자극적인 속도와 수술 방식이었다. 정말로 가능해진다면, 전문가 컨센서스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물건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큰 판에 끼어들 자신이 별로 없었다. 수하에 간 절제 마스터급 인물도 하나 없는데 능연과 협력하려면 아무래도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깝고, 조금 아쉽고, 욕심도 조금 나고. 양학의 머릿속이 뒤엉켰다.
“능 선생, 큰 프로젝트니까 두 병원에서 같이 해도 좋지 않겠습니다.”
원 부주임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부주임이라서 주임처럼 이런저런 부담도 없고, 간중엽 수술, 다빈치 로봇 수술, 그리고 능연이 이미 수술 플로우도 다 바꿔 놓은 걸 생각하면 침을 줄줄 흘릴 정도로 탐이 났다.
“참여하려면 좌 선생과 말씀 나누시면 됩니다.”
능연은 수술 생각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아무래도 다빈치로 처음 하는 간 절제 수술인 만큼, 아까 했던 간중엽 절제술은 비교적 보수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이 수술을 마친 후, 처음에 했던 생각, 지금 한 생각이 모두 차례차례로 착착 잡혀갔다.
가시적인 화면을 통해 사고 회로를 정리한 후엔 생각 정리가 더더욱 완벽해졌다. 그의 경험으로는, 이런 임상 프로젝트는 누군가 침대를 기꺼이 제공하고, 환자를 제공하고, 비용을 제공하면서 프로젝트 주도권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의사 몇이 참여해서 원래 받아 가야 할 서명을 나누기만 한다면, 이득이면 이득이지 해될 것이 없었다.
좌자전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참여 팀을 짜 보죠. 능 선생, 나, 또 여원, 그리고 우리 간담췌외과 하원정 주임, 장안민 부주임,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방안 논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임님, 찾으셨습니까?”
장안민이 노크한 후에 하원정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와.”
하원정은 담배 연기가 자욱한 사무실 안에 의자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장안민은 고분고분 하원정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부주임으로 승진한 후로, 장안민은 간담췌외과에서 반 독립한 상태였다. 홀로 팀을 꾸려서, 알아서 진료하고 환자를 받고, 혼자 수술하고 침대 관리를 했다. 다만 약품, 기구, 설비 그리고 수술실 등은 모두 간담췌외과 걸 사용했다. 프로젝트도 이득 배분받지 못했고, 유일한 장점이라곤 기본적으로 부주임 신분뿐이었다.
그러나 진료과 내부에서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운화병원 간담췌외과 부주임이라는 직책을 달고, 일 년 넘은 시간 동안 외부의 평가는 갈수록 달라졌다. 지금은 팔채향 같은 곳에서만 출장 수술 요청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 외진 현 병원에서도 종종 간, 담 같은 수술로 요청이 들어왔다. 비록 출장 한 번에 수술은 한두 건밖에 없고, 출장비도 겨우 여비 포함되지 않은 5천 위안 정도지만, 동기 의사, 그리고 예전의 자신과 비교해도 장안민은 이 정도만 해도 행복하게 생각했다.
지금만 해도 그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지만, 허리에 차고 있는 800위안짜리 허리띠는 그가 막 병원에 들어왔을 때 원장이 쓰던 허리띠와 비슷한 것이었다. 진료과 주임 하원정이 그다지 그를 대우해 주지 않지만, 어차피 예전에도 대우하지 않았고 제대로 눈길을 주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원정 앞에 앉은 지금 기분이 다 좋아지려 했다.
“좌자전이 꾸린 팀, 한 말, 너도 봤냐?”
하원정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능 선생 최근 연구 방향일 겁니다. 여원에게 물어봤더니, 간중엽을 다빈치 로봇으로 절제하는 수술이랍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첨단 기술이에요.”
하원정은 입을 비쭉이며 속으로 입을 열 때마다 능 선생, 능 선생, 배신자라는 걸 알리지 못해서 안달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철없는 어린 시절은 지났고, 아무리 언짢아도 감정을 잘 감추고 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이였다.
“능 선생은 환자랑 병상이 필요한 거지? 나눠달라는 거잖아.”
장안민은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눌 것 없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병상도 제가 준비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임님이 원하시는 만큼 협조하시면 됩니다.”
하원정은 눈꺼풀이 파르르 튀어서 저도 모르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모든 걸 다 바치겠다는 거냐?”
장안민은 하원정과 실랑이할 생각도 없어서 그저 웃기만 했다. 두 사람의 신분은 원래 달랐고, 하원정이 임무를 완성할 마음가짐이든 아니든 관여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본인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장안민은 내심 하원정이 능연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까지 있었다. 두 사람이 정말로 틀어진다면, 지금 능연의 추세로는 간 외과를 분리해서 나오겠다고 해도 온 병원이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간담췌외과 주임 하원정은 제2 간(담) 외과 주임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것도 좋은 결과일 경우에.
“다빈치 로봇은 우리는 경험이 없잖아. 능연도 이제 막 시작했고. 그런데 벌써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다니, 생각엔 좀 이른 것 같다.”
“주임님이 하실 생각 없으시면, 제가 우리 진료과 대표해서 참여하면 됩니다.”
하원정이 하는 말에 장안민은 여전히 다툴 생각 없는 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원정은 다시 안색이 변했다.
진료과에 배신자가 있으면 이렇다니까.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배신자가 벌써 주도권을 뺏지 못해서 안달이잖아.
완전한 권력이 있는 진료과 주임이라면 분명 화를 낼 타이밍이었다. 표면적으로, 하원정에겐 완전한 주임의 권력이 있긴 했다. 그러나 가슴속에 울화가 잠시 치밀었을 뿐, 이미 비슷한 생활에 익숙해진 하원정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게 잠재력이 있을 것 같냐?”
하원정이 비슷한 질문을 다시 했다. 아무래도 전투 경험이 적은 장안민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능 선생 프로젝트가 언제 실패한 적 있습니까. 게다가 이번엔 전 인원 풀 가동했는데요.”
정보가 많지 않던 하원정은 장안민의 대답에 저도 모르게 침묵에 빠졌다. 장안민은 자기가 내부 정보를 제공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한 채 맞은편에 앉아서 하원정이 시대의 흐름을 모른다고 속으로 꿍얼거렸다.
“그래, 환자와 병상을 분배하는 게 좋겠군. 예전처럼, 알아서 환자, 병상 책임지면 되겠지?”
생각을 마친 하원정의 말에 장안민은 다시 손을 들면서 대담하게 말했다.
“그럴 것 없습니다. 그냥 병상 몇 개 주실 수 있는지 말씀하세요. 모자라면 제 병상으로 충당하겠습니다.”
“정말?”
하원정이 웃으며 물었고, 장안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20개 내놓지.”
하원정이 빤히 바라보며 말하자 장안민은 순간 멈칫했다. 장안민이 간담췌외과 부주임이 된 후에 얻은 리소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침상 12개였다. 보통 한 치료팀이 먹고살 만한 양이었다. 누구나 능연처럼 혼자 대형 진료과 수준으로 수술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장안민이 침상 12개를 가져간 후로, 하원정도 병상이 넉넉하진 않았다. 자기도 수술을 해야 하고, 진료과 다른 주치의도 키워야 했으니까 말이다.
보통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하원정은 침상 2, 3개 정도 내놓는다. 심지어 병상만 제공하고 예후는 책임지지 않는 조건을 걸어도 장안민은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장안민은 병상을 10개 내놓아도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도 참여할 거고, 수하에 있는 몇 마리 의사들이 따라서 조금 배워간다고 해도 시간 빼앗길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하원정이 침대를 20개나 내놓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병상 20개가 어떤 의미냐면, 진료과 하나를 따로 만들 규모였다. 그리고 운화병원에서 작은 진료과에 속하는 간담췌에서 침대 32개를 내놓고 나면 몇 개나 남는단 말인가. 간경화 노인 간 수술하고 남은 자투리 간이나 마찬가지인 정도였다.
게다가 중요한 건 하원정의 태도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제가 가진 침대는 12개뿐입니다…….”
장안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네가 5개, 내가 20개 해서 25개 모으고, 능연이 돌아오면 4:1 비율로 수술 분배하면 되지.”
하원정이 담담하게 하는 말에 장안민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쥐죽은 듯이 살기로 한 거 아닙니까? 왜 갑자기? 이건 말이 안 되잖아!
하원정은 태연자약하게 오히려 장안민에게 충고했다.
“병상과 환자 수는 상대적인 거다. 간중엽 수술 환자, 2주에 5명 모을 수만 있어도 대단한 거 아니냐?”
능연의 정책으로 장기 입원하는 환자 중에 간 절제 환자는 적어도 2주 입원해야 한다. 게다가 ICU에 머무르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장안민이 2주에 5명 간중엽 수술을 해내려면 그때그때 병상을 바로 조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 그럼 난 10개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내가 30개 낼까? 그럼 총합 40개인데,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그럼 주임님도 10개 내면 되지 않습니까.”
“네 말은, 우리 진료과에서 능연에게 줄 병상을 줄이라는 거냐?”
하원정의 말에 장안민은 단번에 말문이 막혔다. 장안민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다 맴돌았고, 곧 하나의 문제로 취합되었다.
상사가 반란을 일으키고 공을 다투려고 하면, 배신자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