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안의 능연은 느긋하고 편안해 보였다. 수술을 많이 할수록 다빈치 로봇의 학습 부담은 점점 줄어들고 편리함만 늘어갔다. 720도 회전하는 기계 팔의 편리함은 접어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 해도 쾌적함이 배는 늘었다.
간담관 암색전 같은 수술 중인 능연은 더더욱 그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전에 복강경 혹은 개복 수술할 땐 풀로 몇 시간 서 있어야 해서 피곤한 건 둘째치고 신체 자세도 지대하게 제한적이었다.
복강경 혹은 개복 수술할 때는 인간의 신체를 뻗어야 의료 기계를 사용할 수 있으니 의사들의 자세에 큰 제한을 받는다. 삐뚤어진 긴 핏덩이를 꺼내려면 허리를 숙이거나 몸을 기울여야 한다든가 등등.
물론 스킬이 약한 의사라면 수술을 하면 할수록 기계 팔 조종이 점점 순조롭지 않아져서 환자 복부에 바로 손을 꽂고 꺼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5분 휴식하겠습니다.”
수술 전 단계를 완료한 능연은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쉬면서 목과 손목을 문질러주었다. 곁에 있던 간호사가 세심하게 뜨거운 타올을 건네고는 침을 삼키며 직접 주무르고 싶어 죽겠다는 눈으로 능연의 어깨와 목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병원의 ‘연팀’은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그건 어느 병원에서나 똑같았다.
다른 다빈치 로봇에 앉은 마연린은 다른 사람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기계를 풀었다. 이건 몹시 귀한 기회였다.
능 팀에서 가장 먼저 로봇 자격증을 딴 의사인 마연린은 다른 의사보다 일주일 정도 유리한 고지를 먼저 차지했다. 물론 그 우세를 마음껏 누리기도 전에 능연에게 바로 짓밟혀 버렸지만, 들뜬 감정이 차분해진 후에는 곧 내려놓고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능연을 앞서겠다고 서두른 것도 아니었고, 능 팀의 로봇 고수, 능연의 퍼스트 어시가 되는 것이야말로 마연린이 추구하는 목표였다. 그리고 그걸 해내려면, 수술 중에 잘하고 최대한 큰 수술 많이 하는 게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
간중엽 수술은 태무 주임이 했고, 마연린은 매우 유감스러워했다. 어렵게 상대가 지쳐 떨어진 다음이니 이제 시작한 암색전 수술에서 그는 모든 정력을 쥐어짜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와이프가 일찍 돌아왔다고 생각하자!!
이런 정신으로 자신을 격려하면서, 마연린은 잠시 쉬다가 곧 레드불을 마시고, 비타민을 삼켰다. 단 몇 초 만에 피로감이 사라지고 눈앞이 밝아지고 눈과 얼굴이 다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음. 두 번째 턴 시작합니다. 2시간 예상합니다.”
능연은 격앙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런 계획 있는 조작 방식이 꽤 좋았다. 평소에도 수술을 단계로 나눠서 진행하지만, 다빈치 수술만큼 명확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명확한 구분이 명확한 리듬감을 주었고, 능연은 그런 느낌이 너무너무 좋았다.
물론 무혈 수술 시야도 매우 좋아한다. 이것 역시 최최소 절개술에서나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매우 기분 좋게 수술을 시작했다.
“노래 좀 틀게요.”
수술실의 간호사는 느낀 바가 있는 듯이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놀렸다. 수술실 각 구석에 있는 하만카돈 스피커에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경쾌하면서도 어쩐지 구슬픈 멜로디에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얼마 전에 안으로 들어온 원 부주임은 음악 달인이었고, 두 소절만 듣고 바로 느낀 바가 있는 듯이 간호사를 힐끔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 능 선생이 떠나는 게 아쉽구나?”
“네.”
간호사는 콧소리가 들어간 맹맹한 목소리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바람에 그녀뿐만 아니라 수술실에 있는 많은 이의 기분이 이상해졌다.
“병상 생기면 다시 올 겁니다.”
능연이 위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의외의 말을 했다. 지금 이런 장면은 능연에게 매우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가 어떤 단체 활동에 참여했을 때 활동 시간이 얼마인지에 상관없이 그가 떠날 땐 다들 슬퍼했다. 초등학교 때가 가장 심했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승객들은 매우 기운 빠져 했다.
그래서 능연은 이런 상황이 닥치면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노력했다. 어떤 때는 그저 한마디, ‘인연 있으면 다음에 다시 만나요’만 해도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출장 수술을 해 오면서 이런 상황도 처음이 아니었고, 그럴 때마다 침묵을 유지하는 평소와 달리 뭐라도 이야기하려고 시도했다. 역시나 간호사가 ‘네.’ 하고 대답했다. 기분이 확 달라진 목소리였다.
원 부주임도 알아차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침대 몇 개 희생하면 능 선생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 자리에 있는 간호사들 모두 매서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응? 내가 뭐 잘못 말했…… 어?”
원 부주임은 공기 빠진 풍선처럼 뜨끔해졌다.
“능 선생님이 수술을 이렇게나 잘하시는데, 우리 침대 쓰는 건 당연하죠. 그게 왜 희생이에요.”
이제 막 졸업한 간호사는 부주임 체면 같은 건 알 바 아니어서 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간호사들도 동의와 지지를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너희들 말이 다 맞다. 내가 시야가 좁았다.”
원 부주임이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인민의 파도 속에 고분고분 흔들릴 수밖에. 다행히 다들 더 추궁하진 않고 변함없이 능연을 주시했다.
잠시 후 좌자전이 다가가 살며시 위로했다.
“능 선생이잖아요. 익숙해지시면 됩니다.”
원 부주임은 껄껄 웃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습니다. 부주임 생활 오래 한 제가 뭔들 익숙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자기와 좌자전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모두 핍박받는 부주임 캐릭터랄까. 좌자전 역시 공감하는 마음으로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다음에 또 언제 같이 수술할지 시간 정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원 부주임은 멈칫하다가 쓴웃음 지었다.
“그럽시다. 우리 주임님도 그럴 생각인 것 같더라고요.”
태무 센트럴 병원이란 배경이 있으니, 평소라면 운화병원 같은 급 병원의 의사에게 출장 수술을 요청하지 않는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이건 체면 문제였고, 그걸 깎을 일을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주임 양학은 목표가 달랐다. 더 큰 체면을 위해 작은 체면은 기꺼이 깎을 수 있었다.
좌자전은 껄껄 웃고는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는 듯이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했다. 능연은 그런 디테일은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수술에 심취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5분 휴식하고 다음 이어갑니다.”
능연은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간담관을 그림으로 그리자면, 나무 같은 모양이 간 중간에 자란 것이다. 그리고 초기 간담관 암색전일수록 병변 위치가 나무 꼭대기에 자란다. 반대로 나뭇가지와 뿌리 쪽으로 퍼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즉 암이 심각해진다는 의미다.
암색전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담관이 마개로 막힌 것 같은 증상이다. 능연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쉴 새 없이 암색전을 박리하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이다.
지극히 세심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길었던 과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대부분 의사에게 암색전 박리 과정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사실 구경하는 의사들도 그 길디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바뀌어댔다. 능연은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전혀 초조해하지 않고,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수술을 착착 진행해 나갔다.
나이 많은 양학은 수술 보는 것만 해도 등허리가 쑤셨다. 능연이 반복되는 암색전 박리 단계에 진입한 후 잠시 더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수술실 밖으로 바람 쐬러 나갔다.
수술실 복도에는 사람이 오갔다. 허둥지둥 움직이는 간호사가 제일 많았다. 간호사들은 쉴 새 없이 혈액, 기구 등등을 가지러 다녀야 했고, 수술 한 건에 네다섯 번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있었다. 의사들 역시 바삐 오고 바삐 갔다.
수술이 배정된 날 의사는 마지막 수술이 끝나기 전까진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 절대로 모른다. 순조롭지 않은 수술이 생기면 더 늦게까지 버텨야 하고.
양학은 익숙한 수술실 복도를 바라보며 한순간, 이 공간에서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힘드세요?”
원 주임도 밖으로 나왔다. 양학은 허리를 문지르며 쓴웃음 지었다.
“음. 요 며칠 수술을 너무 많이 했지.”
잠깐 쉬긴 했지만, 수술대에 오르는 건 역시 힘든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양학도 예전엔 수술 광인 같은 사람이었고 쉰 줄에 들어서도 여전히 젊은이들과 비슷한 수술량을 자랑했었다. 그러나 능연과 함께 수술하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요즘 젊은 애들은 다르네요.”
원 부주임도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쉬며 가장 먼저 간호사들의 태도를 떠올리고는 질투도 안 난다고 중얼거렸다.
“이 나이에 질투는 무슨.”
양학은 흥흥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오늘 마취과 주 선생이, 앞으로 우리도 이런 식으로 수술해 보자고 하더라. 마취과에서 초 장시간 수술 논문 준비한다나 뭐라나…….”
“주 선생…….”
원 주임은 혀를 끌끌 찼다. 마취과는 수술 구역 붙박이였다. 자기 휴게실과 사무실도 있고, 수술층에서 항상 뭉개고 있을 정도로 바쁘다. 일반외과 같은 대형 진료과는 평소엔 마취과 눈치를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밉보일 짓은 하지 않는다. 다들 협력해서 일해야 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논문 같은 부분에서도 최대한 협조할 수 있으면 해준다.
“이러다 허리 부러지겠다.”
양학은 투덜거리면서 허리를 풀어주고는 다시 물었다.
“난 병실 가볼 건데, 넌?”
“같이 가요.”
원 부주임은 살짝 떨어진 채 양학을 따라 수술 구역에서 벗어났다. 두 사람이 소방 통로 밖으로 나가서 문을 열자 웅성웅성 소음이 들이닥쳤다.
태무 센트럴 병원의 수술 구역은 규모가 매우 컸고, 대기실도 여러 구역으로 나눠진 데다가 연결 통로도 여러 개 있었다.
이곳은 온 병원을 통틀어 가장 감정이 격앙된 보호자가 있는 구역이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 수술 성공하길 기대하는 마음, 망연한 미래, 모두 이 로비에 모여 있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양 주임과 원 부주임은 보호자의 시선을 직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양 주임의 머릿속엔 능연의 수술을 받는 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부터 잠깐 보고 병실은 이따 가자.”
양 주임은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 주임은 환자의 보호자를 찾아냈다.
남녀 두 사람과 노인 하나, 그리고 교복 입은 어린애였다. 양 주임은 다가가지 않고 유리창 뒤에 서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익숙하고 또 낯선 존재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환자의 얼굴형 특징을 말하라고 하면 뭐라고 형용해야 할지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 전에 얼굴을 봤지만 말이다. 증상 특징은 그래도 좀 더 똑똑히 기억났지만.
“양 주임님?”
뒤에서 다가온 간호사 왕가가 의외라는 듯 양학을 힐끔 보고는 대범하게 인사했다.
“아……. 자네, 능 팀?”
양학 역시 의외라는 듯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간호사를 바라봤다.
“네. 보호자 간식 좀 가지고 왔어요. 수술 시간이 긴 데다가, 마침 한가해서요.”
왕가는 양학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도 덧붙였다. 아무래도 여긴 태무 센트럴 병원이니까.
양학이 고개를 갸웃하고 왕가가 들고 있는 아름다운 찬합을 바라봤다. 능연이 모두에게 나눠준 눈에 익은 도시락이었다. 양학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보호자 식사까지 챙기나?”
“마침 남은 게 있어서요. 손 안 댄 거 골라서 담아 왔어요.”
왕가는 상대의 나이와 신분을 두려워하진 않았다. 비슷한 직급 의사를 많이 봐와서 그저 있는 대로 이야기할 뿐이었다.
“능 선생님하고 다른 의사분들이 이 환자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딱히 할 일도 없고요. 외동인데, 가족들도 힘들겠다 싶어서요.”
“음. 자네도 외동인가?”
보호자 밥을 챙기는 간호사는 정말 처음이었다. 왕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긋 웃었다.
“출장 나오면 생각이 더 많아져요. 식구들을 못 돌보니까요. 누가 큰 병에라도 걸리면 더 바빠지고요.”
“음. 병이란 게 그렇지.”
환자의 병이 간담관 암색전이라는 생각에 양학은 더더욱 허탈해졌다. 간담관 암색전은 암 중에서도 복잡하고 짜증 나는 유형이었다. 돈은 많이 들고 예후는 떨어지는 질환이라 환경이 안 좋은 가정이라면 더 슬프고 아픈 일이다.
양학은 보호자들의 기대하는 눈빛을 볼 때마다 기대를 낮추라고 충고하고 싶어진다.
“오늘 수술은 보호자에게도 좋은 일이에요.”
왕가는 능연 밑에서 겪은 게 많아서 양 주임처럼 망연하거나 불확실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 넘치게 대답했다.
“능 선생님 수술, 성공할 거라고 믿어요.”
양 주임은 헛웃음이 나왔다.
“젊은이들은 참…….”
“그럼 식기 전에 도시락 전하러 가요. 환자가 수술실에서 나오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거예요.”
왕가는 꼰대 양 주임과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음…….”
양학도 당연히 왕가를 붙들고 수다 떨 수는 없어서 한가득 한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의사가 환자를 멀쩡히 고쳐놓는 신의 손, ‘묘수회춘’을 꿈꾼다. 그 역시 겪은 일이고, 그 정도 나이쯤 되면 추억이 더 많아진다. 특히 일정한 직급에 올랐을 때, 그가 마주하는 질환의 난도도 지극히 높아진다. 그리고 묘수회춘 같은 상황은 갈수록 줄어든다.
다빈치 로봇은 양학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에 로봇 수술을 시도한 후에, 양학은 의식적으로 수술 난도를 낮췄고, 수술 방향을 담낭, 담관, 췌장 위주로 잡아서 성공률을 올렸다.
그러나 은연중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대기실에 있는 보호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양학은 다시 감상적으로 변했다.
“자고로 장군은 미인과 마찬가지로 박명하다더니…….”
양학은 핸드폰을 쥐고 수술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