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천공은 들뜨고 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능팀의 개인 비행기에 탑승했다. 평범한 여객기와 달리, 오늘의 개인 비행기는 좁고 긴 통로 중간에 휴게실, 회의실, 사무실과 식당 등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꽤 빡빡하게 배치된 구역이지만, 장천공은 통로를 따라 휴게실 안으로 들어가 보고는 예상외로 실내가 넓다고 생각했다.
“장 선생님.”
좌자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일단 앉아요. 양 주임님이 선생님이 온다고만 했지 어디로 온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셔서. 별문제 없이 오셨나요?”
“예. 보안요원도 저더러 돌아보라고 하지 않고 알아서 자기가 돌던데요.”
장천공이 소박하게 웃어 보이자, 좌자전도 싱긋 웃으며 넘겼다. 마흔 다 되어가는 주치의 중에 순박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소수의 탈속형을 제외하고, 설사 본인이 능글맞지 않다고 해도 주변에 제약회사 직원이 시커멓게 물들여 놓는다.
그러나 좌자전은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았다. 트레이닝 캠프 의사들에게 도덕 수업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르바이트는 임시로 봉사하는 존재고, 오래 버틸 수 있느냐 마느냐는 모두 각자의 능력에 달렸다. 그리고 자리 잡을 수 있느냐 마느냐는 운에 달렸다.
“앉아요. 일단 앉아.”
좌자전은 진료과 작은 대장 기세를 조금 부리며 재빨리 양쪽을 훑어보았고, 휴게실에서 어슬렁거리던 초짜 의사 몇이 눈치 빠르게 사라졌다. 파워를 느낀 장천공은 고분고분 좌자전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았다.
“음. 장 선생 생각은요?”
좌자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수술 두어 건 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암색전 수술을 배우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목탁 탁탁 두드리면서 시간 끌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좌자전의 물음에 당황한 장천공은 무심결에 고개를 숙이다가 반지르르한 나무 바닥을 발견하고는 그제야 새삼스럽게 지금 개인 비행기에 타고 있음을 의식했다. 개인 비행기가 있는 의료 단체, 국내에서 사실 그렇게 희한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누구의 곁에나 있는 ‘내 친구’ 같은 존재처럼, 다들 들어만 봤고, 허풍만 떨어 봤고, 남 대신 허풍만 떨어 봤지, 직접 본 경험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말씀하신 세 가지를 제가 다 해야 하는 겁니까?”
장천공이 나지막이 물었다.
“수술 기회 벌고 싶은 거라면…….”
좌자전은 입을 삐죽이며 휴게실 구석의 티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럼 봉사부터 제대로 하세요. 기회 되면 능 선생 어시할 기회 드릴 테니까.”
“아…….”
장천공은 솔직한 좌자전의 말에 얼떨떨해졌다. 다행히 다들 터프한 외과의라서 이런 대화를 못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좌자전은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암색전 수술을 제대로 배울 생각이라면, 이건 조건이 좀 까다로워집니다. 봉사를 잘해야 해요. 그럼 기회 되면 능 선생 어시할 기회를 드릴 겁니다.”
장천공이 이야기의 의미를 곱씹기 전에 좌자전의 말이 이어졌다.
“목탁 두드리는 스님이 되고 싶다면, 쉬워요. 봉사 잘하면 됩니다.”
이제 알아들은 장천공은 쓴웃음 지었다.
“좌 선생님, 뭐가 됐든 봉사하란 소리네요…….”
“종업원이 되란 소리는 아닙니다. 직업에 귀천도 없고요.”
장천공이 그다지 기분 나쁜 것 같지 않자, 좌자전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삼갑병원 대형 진료과에서 십여 년 일한 사람 아니랄까 봐, 맷집이 꽤 좋았다.
“열심히 하면, 우리 쪽 암색전 수술, 장 선생한테 우선으로 드리죠.”
“왜요?”
장천공은 이번엔 믿을 수가 없어져서 고개를 퍼뜩 들었다. 좌자전은 혀를 끌끌 차며 속으로 눈치 없는 걸 보면 양학과 매우 닮았다고, 역시 일맥상통인가 생각했다.
“좌 선생님?”
좌자전이 말이 없자, 장천공은 조금 다급해졌다.
“운화병원에 가 보면 압니다. 우리 진료과에 지금은 암색전 수술할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서 암색전 수술에 대응할 수 없는 게 사실은 사실이었다. 능 팀 현재 상황은 연문빈은 이제 Tang 봉합법을 완전히 터득해서 단지 이식 수술을 홀로 할 수 있는 상태였고, 시간과 여력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연린은 아킬레스건 방면에 두각을 드러냈지만, 스포츠 선수 수술하기엔 아직 멀었다. 좌자전은 무릎 관절 수술을 조금 해오면서 대량의 경험을 축적한 후로 정형외과 일반 주치의보다 조금 강해졌지만, 우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능연의 수술 중에 진정으로 첨단 수술인 간 절제, 심장 우회술은 능 팀 의사는 다들 열심히 배울 뿐, 자신은 없었다. 그러니 능 팀엔 세분된 영역인 암색전 수술을 배울 의사가 없었다.
장천공은 말주변 좋은 좌자전의 눈을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꿈의 나라는 이들이 질린 곳일 뿐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천공도 더는 아랑곳할 것이 없었다. 어차피 태무 센트럴 병원의 세분화 영역에 매우 적합한 암색전 수술을 배우고 싶은 것뿐이었다. 대 태무 일반외과는 간 분야 실력이 원래 그저 그랬고, 만약 독자적으로 이 수술을 해낼 수 있게 되면 진료과에서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 게다가 암색전 긁어내는 수술을 다빈치 로봇에 이용하면 전통 수술보다 명확한 우세가 있다. 진료과와 병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전통방식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개혁, 갱신을 의미한다. 집도의는 재료비를 조금 더 받을 수 있으니 모두가 기쁜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장천공은 좌자전을 잘 모르지만, 집 떠나올 때부터 특별 대우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병원에서 다른 사람 침상과 환자를 쓰고, 다른 사람의 기술을 배우는데 눈치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눈치 없는 짓이다.
“일단 휴게실 정리부터 하죠. 빨리빨리. 응?”
패기 없는 온순한 망아지임을 확인한 좌자전은 살짝 안심하고는 다른 방으로 순찰 갔다.
능연은 비행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논문을 보면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기내 질서 유지 같은 일은 좌자전이 관리할 수밖에 없다. 또 한편으로 능 팀의 팀 회의 같은 것도 시간 절약할 수 있도록 이런 때에 진행한다.
어찌 됐든 누구나 기술 트리에 올라갈 필요를 느낀다. 필요를 느끼기만 할까, 다들 실제로 미친 듯이 기어오르고 있다. 각자 목표가 있어서 시간 낭비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좌자전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진료과 모든 의사의 시간은 능연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좌자전이 함부로 낭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천공처럼 굴리라고 온 놈은 제외하고.
비행기가 운화 공항에 착륙한 다음, 다들 헬리콥터로 갈아탔다. 병원으로 돌아온 그들 모두 당장 일상 업무로 복귀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능 팀 구성원은 정상급 의료팀이나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동시에 이건 능연의 출장 수술 실력 반, 능연의 잘생김 반으로 얻어온 것임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건, 환자를 구하고 열심히 분투하는 것뿐이었다.
장천공은 더러운 토끼처럼 낯선 응급실에 버려진 채 다들 빈틈없이 일하고 있는 걸 망연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입!”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장천공은 어쩔 줄 모르던 상태에서 깨어났다.
“예!”
“음, 따라와요.”
장천공이 서둘러 대답하자, 여원이 뒷짐진 채 장천공을 끌고 갔다.
여원은 오래 집 떠났던 목동이 드디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경쾌한 걸음으로 걸었다. 자기 소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싶고, 혹시라도 홀쭉하게 마른 건 아닌지, 풀은 맛있게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소똥 양은 충분하게 생산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오금이 쑤시는 모습이었다.
“장 선생님, ER에서 일한 적 있어요?”
“인턴 돌 때 한 한 달? 우리 병원 응급의학과는 그렇게 크지 않고 병상도 빡빡하고, 평범한 수준이었어요.”
장천공은 영문도 모른 채 여원을 뒤따라갔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아침까지 태무 센트럴 병원에서 리포트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운화로 오게 되어 지위가 더 낮은 초짜 의사가 되었다. 적응하려니 참으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주임이 시킨 일인데 또 어쩌겠나. 암색전 수술을 갈망하고 있는 건 접어두고, 그 갈망이 없더라도 강제적으로 한 일이 어디 한둘이랴.
그리고 운화병원이라는 해적선-어쩌면 해적 개인 비행기라고 해야 할지도?-에 올라탄 후엔 적응이니 마니 따질 때가 아니었다. 좌자전은 정말로 조금 무서웠고, 지금 눈앞에 있는 요 작은 것은…… 강호 전설에도 있듯이, 소형의 희한한 여자 캐릭터는 지극히 위험해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외과의는 모두 이런 모순적인 면이 있다. 각종 이득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일반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또 유난히 조심한다. 오후 휴식 시간에 감히 와이프 옆 건물에서 몰래 파트너와 한판 뜰 용기는 있으면서, 파트너가 ‘노콘’을 외치면 바로 쫄아버리는 것처럼.
장천공은 잘 사귀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여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일반외과에 있을 때는 응급처치도 자주 했어요. 우리 병원 주치의는 다 레지던트랑 같이 근무해서. 힘들긴 한데, 수술만 할 수 있으면…….”
일반적인 상황으로는 의사들끼리 듀티와 수술 이야기하는 건 날씨 이야기보다 흔한 일이다. 특히 병원에 오래 있는 의사는 날이 갈수록 이런 항온, 항습 환경에 익숙해져서 날씨가 뭔지도 잊고 산다.
여원은 뒤로 고개를 젖히며 담담하게 물었다.
“주치의는 당직하면 안 돼요?”
장천공은 순간 당황했다. 날 끌고 가는 이 작은 것이, 주치의도 아니란 말이야? 내 지위가 이 정도로 낮았어?
“장 수술 같은 흔한 수술은 문제없겠죠?”
여원이 다시 물었다.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장천공은 서둘러 대답했다. 본원이라면 일에 깔려 죽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겠지만, 지금은 타향에서 도둑질하는 것이니, 다리를 열심히 놀리고 달콤한 말을 하면 어찌 됐든 틀릴 일은 없었다.
“그럼 이따 부탁드려요.”
여원은 다시 뒷짐 지고 더 빨리 걸었다. 장천공은 전자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환자, 몇 번 베드예요?”
진료 안내 센터로 향한 여원은 그 김에 알콜겔을 짜서 바르면서 물었다.
“8번이요. 오늘 인턴 온다던데, 몇 명 거둬가실래요?”
“키 큰 애들은 됐어요. 목 아파.”
여원은 바로 받아들였다. 주치의가 되었지만, 능팀의 업무량은 여전히 어마어마했고, 필요한 인턴 수도 늘어만 갔다. 게다가 지금은 주치의 특별 대우를 바라지 않았다.
“진작 준비해뒀죠. 6명이에요. 제일 큰 사람이 160. 게다가 자기가 지원해서 온 거예요. 일단 진료하러 가세요. 찾아서 보내드릴게요.”
“넵.”
“능 선생님도 계세요.”
“집에도 안 가고. 하긴 집에 가도 환자가 가득할 테니, 차라리 여기 환자가 더 재미있겠네.”
간호사가 귀띔해 주자, 여원은 웃으며 대답하고는 장천공에게 ‘임시 직원’ 이름표를 건네고는 응급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떼기시장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다친 환자, 지친 보호자, 그리고 보온병을 들고 있는 노인, 노파가 온 천지에 가득한 것이 표준적인 응급실 모습이었다. 여원은 입을 삐죽이고는 해명하듯 장천공을 바라봤다.
“능 선생은 정갈한 걸 좋아해요. 그래서 처치실과 응급처리실은 깔끔해야 하는데, 그만큼 밖은 어수선해요. 환자나 보호자는 말을 안 들으니까요.”
“다들 자기 몸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장천공은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
“응급환자는 택일 환자보다 더 상대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응급실 가는 게 싫을 때도 있어요. 같은 환자라도 병실에 있을 때랑 응급실에 있을 때 태도가 달라요.”
“날 믿어요. 위험한 관상은 바로 알아본답니다.”
여원은 이야기하는 사이 8번 베드에 도착했다. 비쩍 마른 중년 환자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침대 헤드에 머리를 대고 있는 게 보였다.
“이탄묵 씨?”
“예.”
여원이 이름을 확인하자, 비쩍 마른 중년 환자가 눈을 뜨고는 귀여움을 잃은 유기견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복통? 또 아픈 곳은요?”
여원은 침대 곁으로 다가가며 장천공을 향해 눈짓했다. 장천공은 잠시 그 의미를 생각하다가 커튼을 둘러서 상대적으로 은밀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여원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치의급까지 올라간 의사니까 기본적으로 아이큐는 존재했다.
독립된 공간에 둘러싸인 환자는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져서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열도 조금 납니다……. 밥 먹고 났는데 배가 갑자기 심하게 아프더라고요. 평소에 아픈 거랑 느낌이 달랐어요.”
“평소에 배가 자주 아픈가요?”
“그건 아니고요.”
“그런데 왜 평소에 아플 때랑 다르다고 하셨어요?”
“전에 아플 때랑 다르니까요. 일종의 형용사죠…….”
여원은 아무도 보지 못할 흰자위를 까뒤집고는 계속 말했다.
“몸 검사 좀 할게요. 보호자는 오셨나요?”
“오고 있어요. 차 막힌다는 거 같더라고요. 전화해도 됩니다.”
“보호자하고 통화할 일이 뭐가 있어요.”
여원은 이분의 아이큐가 그렇게 높지 않음을 깨닫고는 환자의 자세를 고쳐준 다음 환자의 배 아래를 눌렀다.
“아프면 말씀…….”
“아파요, 아파, 아파!”
비쩍 마른 남자가 바로 고함쳤다.
“너무 크게 고함치진 마시고요. 이쪽은요.”
“아파요.”
“아까보단 덜 아픈 거죠?”
“못 들었어요? 아깐 아프다고 세 번 외쳤고 이번엔 한 번이잖아요.”
여원은 멈칫하다가 이내 껄껄 웃으며 손을 뗐다.
“이번엔 몇 번인가요?”
“아야야야야야야야.”
여원은 충수염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는 이상한 거 같아도, 반동 압통이 이토록 명확한 환자는 판단하기 매우 쉬운 편이었다. 다만 충수염 수술을 이렇게 간단하게 판단하는 건 조금 경솔해 보였다.
“수술 준비해야 해요. 보호자 어디까지 오셨대요? 재촉 좀 하세요. 검사 몇 개 더 하고 확진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요.”
여원은 프로그램대로 당부했다. 전신마취는 보호자가 반드시 현장에 있어야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병원에 가서 큰 수술을 하려면 국내에서도 외국처럼 거칠 과정이 매우 많다.
“확진이 뭔가요?”
이탄묵 환자가 물었다.
“염증으로 의심됩니다. 일단 검사부터 하고 오세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여원은 멈칫하다가 별문제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맥도 안 짚었잖아요. 청진기도 안 썼고. 체온도 안 쟀는걸요. 멀쩡히 쓰던 걸 왜 안 쓰는지. 굳이 더 비싼 기계로 검사하고…….”
환자가 불안한 듯 투덜거리고 있는데, 커튼 밖에 누군가 아른거렸다.
“여 선생님, 새로 온 인턴입니다.”
“들어와.”
여원이 대답하자, 키 작은 인턴들이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여 선생님.”
인턴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잘됐네. 환자 좀 만져 봐. 환자분, 우리 병원 인턴들입니다. 체격검사 좀 할게요.”
“아무나 막 만집니까.”
환자가 투덜거리자 여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인턴들이 좀 만져 보고, 제가 체온 재 드릴게요. 그럼 확진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검사 안 하고요?”
“한두 개 덜 할 순 있어요. 수술 전 진단할 정도면 돼요.”
흥정을 마친 여원은 인턴에게 눈짓했다. 막 병원에 들어온 인턴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멋도 모른 채 또 뭔가 알 것 같기도 한 느낌으로 침대 위의 남자를 한참 더듬어댔다.
이탄묵은 기대어 앉아 있다가, 완전히 누웠다가, 구부리고 누웠다가 자세를 바꿔가면서 차츰 조용해졌다.
“자, 체온 잴게요.”
얼떨떨한 사이, 여원이 체온계를 입에 물려 주자 이탄묵이 얼결에 입에 물었다.
“앙.”
“항문 체온 재게 엎드리세요.”
여원은 장갑을 끼고 체온계를 다시 확인하고는 잘못 쓰지 않았다고 중얼거렸다. 이탄묵은 벌떡 일어나서 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체온계를 물고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원은 느리지만 단호하게 이탄묵을 정확한 자세로 만들어 주고는 단호하고 느리게 체온계를 정확한 위치에 꽂았다.
“왜 이렇게 체온 재는지, 알아?”
여원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진 다음 인턴들을 향해 물었다.
“환자가 요구해서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니까?”
한 인턴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다른 실습생이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옆에 있던 장천공은 더더욱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그러게, 왜?”
침대에 엎드린 환자는 입에 체온계를 물고, 아래엔 체온계를 꽂은 채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첨단 기계가 없을 때. 이런 방법으로 안전하고 정확하게 충수염 진단했어.”
여원은 침대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따 직접 검사해 봐. 항문 온도가 구강 온도보다 눈에 띄게 높으면 확진해도 돼.”
“층스여미요? 힘각한가여?”
비쩍 마른 남자가 웅얼거리며 물었다.
“심각한 거 아니에요. 잘라내면 됩니다.”
여원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아’ 소리를 내고 다시 이었다.
“충수염은 맹장을 자르는 게 아니라 충수 돌기만 자르면 됩니다.”
“맹장염이 아니고요?”
“세간에선 그렇게 부르죠. 하지만 인턴에게 이야기할 때는 의학 용어로 말하니까요.”
여원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장천공을 시켜 커튼을 걷은 다음 밖으로 나갔다. 나머지 인턴 6명은 환자의 두 체온계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항문 체온이 구강 온도보다 명확하게 높다는 게, 얼마나 높아야 하는 거지?”
“검색해 볼까?”
“맞다, 빠지지 않게 더 깊이 꽂아야 하지 않을까?”
“환자분더러 힘주라고 하면 되지.”
환자 이탄묵의 표정이 갈수록 딱딱해졌다.
“이따 8번 베드 환자 보호자 오시면 바로 검사라고 충수염인 거 확실하면 수술하세요. 할 수 있어요?”
여원은 왜소한 대빵처럼 뒷짐진 채 장천공에게 물었다.
충수염 같은 수술을 못 하는 외과의는 없다. 일반외과 주치의는 말할 것도 없고. 여원이 지금 하는 말의 의미는 ‘승복할래, 말래’와 다름없었다. 좌자전에게 이미 한 번 제압된 장천공은 지금 여원의 수법이 귀엽게 느껴졌다. 키도 비슷한 것이, 딸 같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여 손을 내밀었다. 여원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고, 장천공의 손이 허공에 맴돌았다.
“할 수 있습니다. 충수염이잖아요. 아이고, 모기.”
“내 머리 쓰다듬으려고 한 거죠?”
여원이 싸늘한 목소리로 묻자 장천공이 크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하하. 다른 사람 머리통 만지려는 사람의 동작, 자세, 표정이 다 있거든요. 난 한눈에 다 꿰뚫어 본다고요. 내 전성기에…….”
여원은 순간 그다지 자랑할 만한 과거가 아님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이 만지려고 하는 의도를 미리 알면 뭐 하나. 어차피 다들 만지는걸.
장천공은 머리를 만지려고 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모르는 척 멍청하게 웃었다.
“정말 모기 있었어요. 참, 운화병원은 충수염 수술에 무슨 조건은 없나요? 8번 환자는 아무래도 개복 수술할 것 같은데.”
개복 수술은 복강경보다 몇천 위안 싸서 그쪽을 선택하려는 사람도 꽤 많았다. 게다가 흉터가 좀 더 크게 남는 것만 빼면 개복 수술 쪽이 경막 마취, 즉 통속적으로 말하는 반신 마취로 할 수 있어서 전신마취하는 수술하고 비교해서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원은 화제를 바꾸는 그의 모습에 콧방귀 뀌며 대답했다.
“진료과에서는 보통 복강경으로 진행하죠. 그러나 환자 요청이 있으면 개복으로 하기도 해요. 정 하기 싫으면 일반외과에 넘겨도 됩니다.”
“아닙니다. 뭐든 괜찮아요.”
장천공은 자기가 방금 막 인생에서 지극히 큰 위기 하나를 넘긴 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웃어 보였다. 곽종군이 목숨 걸고 일반외과에서 빼앗아 온 충수염 수술 권한을 어디에서 온 건지도 모를 주치의 놈이 다시 넘긴 걸 알게 되면, 설사 그게 한 건이라도 곽 주임은 칼을 천 번이라도 휘두른 다음에야 그를 돌려보냈을 것이다.
여원은 그가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니 됐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뒷짐진 채 응급 병동을 빠져나갔다.
장천공은 조금 영문을 모른 상태로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분수대가 있는 곳까지 가서 여원이 아이들 무리에 섞인 걸 보고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내가 아까 오해한 이유가 있었어…….’ 같은 생각을 하면서.
물론 장천공이 상상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벌어지지 않았고, 그 반대로, 아이들 안에 섞인 여원은 획 돌아서더니 벼락같이 손을 써서 목이 길고 입이 딱딱한 큰 거위를 정확하게 낚아챘다.
“아직 동심이 남은 건가. 그래도 이건 악당 같은 모습인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미소 짓는 장천공의 시야에 은빛이 획 스치고 지나갔다.
꾸엑.
투실투실한 큰 거위는 꽥 소리 한 번 내더니 바로 목을 숙이고 고개를 여원의 어깨에 떨궜다. 장천공이 서 있는 각도에서 큰 거위의 체외에 드러난 무언가가 보였다. 체온계였다.
“저 녀석……. 항문 패티쉬?”
장천공은 넋인 나갈 것만 같았다. 의사 생활하면서 의사들의 별별 희한한 취향을 봐왔다. 하지만 평범한 의사…… 아니, 여원 선생은 평범한 의사는 아닌 듯했다.
여원은 큰 거위를 들고 장천공 곁으로 다가갔다. 그 뒤엔 아이들이 졸졸 따라왔고, 간 큰 아이는 큰 거위를 만져 보려고 팔을 뻗기도 했다.
“얜 향만원이에요. 반려 거위죠. 능 선생이 기르는 애예요. 몰래 잡아먹으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여원은 향만원의 목을 쓰다듬으며 능숙하게 아이들의 손길을 피했다.
“이름은 향만원, 먹으면 안 되는, 소속 있는 반려 거위라는 거죠?”
장천공은 여원이 한 말을 총결했다.
“비슷해요. 체온계 뽑고 닦아서 치우세요.”
여원은 방향을 틀어서 향만원의 궁딩이를 장천공 쪽으로 내밀었다.
“아. 시간 충분했나.”
장천공은 그렇게 물은 다음 몇 초 더 기다리다가 체온계를 뽑고 싫다는 듯이 종이를 찾아 닦은 다음 다시 들어 올리고 수치를 읽었다.
“거위의 정상 항문 온도는 몇 도죠?”
“몰라요.”
“모른다고요?”
온도를 정확히 보려고 얼굴을 체온계 수은 위치까지 들이대서 신선한 거위 똥 냄새도 어렴풋이 맡은 것 같던 장천공은 온몸이 물음표가 되었다. 그런데 여원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내가 거위 항문 온도를 알아야 하나요?”
“왜냐면……. 님이 조금 전에 이 거위 항문 체온을 쟀으니까요?”
“거위가 검사 리포트를 보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요. 착하게 굴어야 한다. 알았지?”
여원이 향만원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하자 향만원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원이 손에 힘을 풀자, 향만원은 악마 소굴에서 탈출하는 듯이, 얇고 짧은 두 다리를 놀리면서 궁딩이를 실룩이며 사라졌다.
여원은 장천공을 바라봤고, 장천공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없고, 그냥 머리통을 흔들고 싶었다.
회진을 마친 능연은 그 김에 상처가 짓무른 환자 하나를 처리하고 응급실로 돌아왔고, 그러는 사이 또 몇 시간이 흘렀다. 또 그러는 사이,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 38개가 능연의 등에 꽂혔다.
“오픈.”
능연은 웃으며 받아들인 다음 집중했더니, 특별할 것 없는 스테미너 포션 38병이 튀어나왔다.
“새로울 게 없네.”
능연이 속으로 평가하자,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흔들리더니 전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능연은 연수의 몇 명을 거느리고 느릿느릿 잠시 더 회진했고, 그 후에 연수의들은 죽에 던져진 쌀알처럼 침대에 폭 파묻혔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응급실 입구에서 고함이 들렸다. 능연이 고개를 돌렸더니, 화려한 티셔츠를 입은 형님이 현란하게 어깨를 흔들면서 신이 나서 달려왔다. 어깨에 그려진 유니콘처럼 흥분한 모습이었다. 능연은 한눈에 그 유니콘을 알아봤다.
막 병원에 들어왔을 때, 이 꽃 티셔츠 형님을 봉합한 적이 있었다.
“다쳤어요?”
능연은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리며 상대 어깨 위의 유니콘을 관찰했다. 어쩐지 유니콘 얼굴에 미소가 는 것 같았다.
“이번엔 아닙니다. 와이프랑 같이 왔어요.”
능연의 시선을 알아챈 형님이 재빨리 설명했다.
“지난번에 선생님이 꿰맨 곳은 안 건드렸어요. 어깨 위에 몇 바늘 꿰매긴 했지만. 그래서 이 유니콘이 이렇게 웃는 낯짝이 됐죠.”
“안 다쳤으면 됐습니다.”
능연은 살짝 아쉬운 마음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프가 생겨서, 조심하고 있어요.”
형님은 뿌듯해하며 말을 이었다.
“와이프 전남친이 몹쓸 놈이거든요. 종일 사고나 치고. 다쳐도 병원 갈 돈도 없더라니까요. 나중엔 와이프더러 돈 내달라고 했대요. 웃겨 죽겠어. 하하하. 됐다, 이런 얘기. 돈 내러 갈게요.”
유니콘 형님은 신이 나서 자랑한 다음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턱을 치켜들고 어깨를 휘적이며 사라졌다.
곽종군은 처치실에서 나와서 마스크를 벗고는 신이 나서 능연을 향해 손짓했다.
“곽 주임님, 수술하셨습니까?”
능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곽 주임의 주치의가 보일 만한 반응이었다.
“아…… 아니. 화상 환자가 있어서 좀 보느라.”
응급의학과가 아니었다면 곽 주임은 아마도 화상 외과 쪽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본인이 원래 있어야 할 영역에서는 상당한 발언권도 있고. 그러나 능연이 병원으로 들어온 이래, 곽종군이 그 분야를 중시하는 정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화상 전문 의사를 키우기 힘들고, 곽종군 본인이 대적해야 하는 능력자가 너무 많아서였다. 그리고 젊은 날처럼 화상 환자를 밤낮없이 지키며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세는 나날을 견디기도 너무 힘들어졌다.
“몸 어떤지, 검사 좀 하겠습니다.”
능연은 곽 주임을 오냐오냐해주지 않고 적당한 곳으로 끌고 가서 체격검사를 시작했다. 곽 주임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며 주절주절 말했다.
“요즘 내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몸도 완전히 좋아졌어. 정말이네.”
“그래서 정기 검사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최근에 불편한 곳은 없고요?”
“없네. 멀쩡해.”
단호한 곽 주임의 대답에 능연은 검사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 유의하세요. 전 지금으로선 심장 우회술 재수술 경험이 비교적 적고 다빈치 로봇으로 심장 수술하는 데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거예요.”
“두 번 받을 일 없을 테니, 안심하게.”
능연의 대화 스타일을 잘 아는 곽 주임은 단호하게 장담했다. 능연은 신체검사를 마친 후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좀 지나면 검진 한 번 하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곽 주임은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하고 싶지만, 그러다가 심박이 불안정해질까 두려웠다.
“우리 없었을 때, 많이 바쁘지 않았습니까?”
능연은 주임을 풀어주고 다시 물었다.
“괜찮았어. 처음 이틀은 다들 그래도 좀 흥분한 거 같더니, 요 며칠은 그리워하는 거 같더라고.”
곽 주임은 혀를 끌끌 차며 그렇게 말하다가 피식 웃었다. 응급의학과에서 응급센터로 승급한 후로 침상과 수술량이 대량 증가했고, 응대할 수 있는 지역 범위도 넓어졌다. 그러나 능팀을 제외한 다른 치료팀은 기껏해야 치료팀마다 연수의 몇 명 늘고 실습견 몇 마리 늘었을 뿐,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능연이 진료과에 있을 때는 수술량이 원활하게 분배되지만, 능연이 사냥 나갔을 때는 집안일 배분에 큰 압박이 생긴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진료과 내부의 조화와 안녕에 도움이 되어서, 곽 주임은 오히려 즐겁게 생각했다.
능연도 담담했다. 온갖 흠모,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해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도 어려웠다. 몇 년 전 의대에 다닐 때만 해도, 해부실에 갈 때도 여자아이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들고 찾아와서, 조금이라도 편안한 곳은 수술실뿐이었다.
“새로 산 다빈치는…….”
능연은 자기의 큰 장난감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 주임이 껄껄 웃으며 손뼉을 쳤다.
“조바심 낼 것 없어. 내가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지.”
“네?”
능연은 서프라이즈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상상 못 했을 서프라이즈야.”
큰소리를 친 곽종군은 멈칫하고는 진지하게 능연의 표정을 읽고는 말을 고쳤다.
“적어도 자네가 별로 겪지 못했을 서프라이즈일 걸세. 머리 쪽 서프라이즈야.”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으며 연습을 거쳐온 말투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음…….”
곽종군은 저도 모르게 끙끙대며 속으로 알랑방귀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자, 전방의 복도는 통행 금지가 된 것처럼 금세 아무도 없이 텅 비었다.
“여길세.”
곽종군은 능연을 복도 끝 모퉁이까지 곧장 데리고 갔다. 응급센터의 신구 병동의 교차로로 새로 추가된 기능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능연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새로 리모델링한 대문 위엔 명패 같은 것도 없었지만, 익숙한 냄새가 났다.
“무엇일지 맞혀보게.”
곽종군이 기대하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능연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일단 산 사람부터 제거했다. 산 사람 선물은 용납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해부용 시신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부용 시신을 방치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고, 응급센터의 중심 구역에 둘 필요도 없다. 그런 추리를 거친 능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
통쾌하게 웃는 곽종군의 웃음소리가 어찌나 호탕한지, 단숨에 세 사람 욕할 때보다 더 시원했다.
“맞히기 힘든 선물이죠.”
“비밀 유지를 참 잘하셨습니다.”
“톡에서도 아무 이야기 못 들었는걸요.”
대빵 뒤에 선 의사들이 나지막이 수군거렸다. 대빵 맞장구쳐주는 셈이었다. 대빵과 함께 걷는 것도 맞장구고, 주거니 받거니 대화해주는 것도 맞장구였다.
“이제 보여주지. 일단 들어가세.”
곽종군이 손을 휘두르자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익숙한 탈의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저쪽 수술 복도와 연결된 걸세.”
곽종군은 싱긋 웃으며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가서 슬리퍼를 들고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능연을 에워싼 채 안쪽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곽종군을 따라 들어갔다.
진료과에 남아 있던 의사들도 이 방 안엔 들어와 보지 않았다. 곽종군은 더더욱 뿌듯해하며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너희들도 모르겠지? 음, 그럼 이제 답을 알려줄까.”
한 기민한 초짜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
“뚜둥!”
곽종군은 자체 BGM을 깔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복합 수술실! 운화 첫 복합 수술실이자, 창서성 두 번째 복합 수술실. 후하!”
마지막 소리는 곽종군의 뿌듯한 숨소리였다. 자부심 넘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통적인 수술실과 달리 복합 수술실은 진료과를 넘어서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복합’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는 물건은 그게 무엇이든 당연히 지극히 비싸다.
복합 수술실의 존재 가치는 같은 공간에서 여러 진료과의 협조 목적을 달성하여 다진료과 수술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수술실엔 여러 진료과에서 필요로 하는 수술 설비와 기구가 있다. 또다시 말하자면, 이 수술실의 비용은 일반 수술실보다 몇 배는 비싸다.
그러나 곽종군이든 능연이든, 지금 이 수술실의 경제 가치를 고려할 여분의 대뇌가 없었다. 베이지색 바닥, 하늘색 벽, 순결한 CT 기계, 파란 다빈치 기계, 그리고 베이지색 혈관 조영 X-Ray 기기, 청백색 체외 순환기, 순백색 마취과 크레인…….
“여기가 수술실의 항공모함이지.”
곽종군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능연에게 말했다.
“자네가 다빈치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생각했지. 2천만 위안도 회의를 열어야 하고, 4천만 위안도 회의를 열어야 하지 않나? 앞으로 이게 있으면, 다른 진료과 놈들 불러서 수술시킬 때도 편해질 거고. 지휘하기도 편하지 않겠나. 음,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듭니다.”
능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곽종군을 바라봤다.
“이 수술실이 있으니까, 주임님이 다음에 심장과 간에 동시에 문제가 생겨도 한 수술로 끝냈을 수 있겠네요.”
“…….”